◎경기하강기에 체감물가 높아지는 이유
LG경제연구원 '경기하강기에 체감물가 높아지는 이유'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는 경기하강기 동안 필수소비재의 물가가 상승기보다 더 높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경기하강기에는 필수 소비지출 비중이 늘고 소득이 감소함에 따라 소비자들이 느끼는 체감물가는 더욱 높게 나타난다.
작년 5%를 넘어서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올 6월 들어 2.0%로 크게 둔화되었다. 하지만 실제 소비자들이 느끼는 체감물가는 공식지표보다 높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식료품 등 소비자들이 접하는 빈도가 높은 품목들의 물가상승률이 더 높기 때문이다. 올 6월 농축수산물, 가공식품의 전년동월대비 물가상승률이 각각 6.6%, 9.0%로 상대적으로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경제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 체감물가가 상승하는 것은 단순히 우연이라고 보기 어렵다. 과거 물가상승을 주도해 온 품목과 경기국면별 물가상승의 특징을 분석해 봄으로써, 외환위기 이후 소비자물가 상승 패턴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외환위기 이후 경기하강기에 필수소비 관련 물가가 상대적으로 높게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것이 소비자들의 체감물가를 높이고 경기하강에 따른 충격을 더욱 크게하는 요인이 된 것으로 판단된다.
2000년대 필수 소비재가 물가 상승 주도
외환위기를 전후하여 소비자물가 역시 구조적 분절이 있었다. 품목별 통계치가 발표되는 85년 이후부터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구해 보면, 외환위기 이전에는 평균물가상승률이 5.6%로 높은 수준이었으나 외환위기 이후에는 3.2%로 안정되었다.
물가상승을 주도했던 품목 역시 변한 것으로 나타난다(<그림 1> 참조). 외환위기 이전에는 서비스 부문이 물가상승을 주도하였다. 외식 등 개인서비스 부문은 8.9%의 높은 상승률을 보인 반면, 농축수산물 등 필수소비재의 가격상승률은 5.2%로 전체지수보다 작게 오른 것으로 나타난다. 또한 내구재 등 선택소비재의 경우에는 2.1% 상승에 그쳤다.
이에 반해 외환위기 이후에는 필수소비재와 교육비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게 상승하였다. 필수소비재와 교육비의 물가상승률은 각각 3.5%, 5.2%로 전체지수보다 가격이 많이 올랐다. 반면 외환위기 이전 물가상승을 주도하였던 개인서비스 항목 중 외식비, 기타서비스 부문은 상승률이 낮았다.
외환위기 이후 기간동안 소비재를 좀더 세분해서 보면, 농축수산물과 가공식품, 석유류의 가격상승률이 상대적으로 높았던 것으로 나타난다(<그림 2> 참조). 이외의 재화들은 2% 내외의 낮은 상승률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대적으로 높은 상승률을 보이는 농축수산물, 석유류 등의 재화들은 해외의존도가 높은 품목이라는 특징을 가진다. 이들 제품들은 2000년대 국제상품가격의 상승과 환율 변동에 따라 가격이 크게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이와는 달리 대외부문보다 내수에 민감한 서비스 부문들은 물가가 안정되었는데, 이는 외환위기 이후 민간소비 부진이 이어지면서 수요 창출이 크지 않았다는 점, 자영업 등 서비스 부문의 경쟁이 심화되었다는 측면 등이 작용하였을 것이다. 서비스 부문 중 예외적으로 교육비 부문만이 상대적으로 높은 물가상승률을 보였는데, 이는 우리나라에서 교육비가 필수소비의 성격을 지니게되면서 학원 등 사교육 부문에 대한 수요가 크게 확대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경기하강기의 물가상승률이 상승기보다 높아
이와 같은 필수소비재의 가격상승은 경기상승기보다는 하강기에 더 크게 나타났다. 상승기 필수소비재의 평균상승률은 1.9%였으나, 하강기에는 5.5%나 상승한 것이다(<그림 3> 참조). 이에 따라 전체물가도 하강기에 더욱 오르는 현상이 발생하였다. 경기하강기의 평균 상승률이 4.1%였으나 상승기에는 2.2% 상승에 그쳤다.
물가상승이 경기에 다소 후행한다는 측면이 있긴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환율이 경기하강기에 오르면서 물가상승요인으로 작용했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외환위기 이후 경기상승기에는 환율이 연평균 5.3% 하락하였으나, 하강기에는 10.5%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환위기를 포함하면 원화 절하폭은 더욱 커질 것이다.
현재를 포함한 4번의 하강기는 2003년 카드사태를 제외하고는 대외요인이 주도한 경기하강이였다. 외환위기시 해외자본의 급속 이탈을 경험하였고, 2000년 IT 버블 붕괴와 지금의 금융위기때에도 세계 금융시장 불안, 안전자산 선호에 따른 달러화 강세 등의 요인으로 환율이 급등하였다. 결국 세계경기 하강이 금융불안과 결합되면서 원화환율을 상승시킨 것이다. 이는 농산물 등 원자재의 수입가격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여 경기하강기에 소비자물가를 상승시켰다. 2003년 카드 사태시에는 원화강세 기조가 유지되었으나, 세계경제 호황으로 인해 국제상품가격이 꾸준히 올라 물가를 상승시켰다.
인플레이션 행태방정식을 이용하여 물가상승 요인을 경기국면별로 나누어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다(<그림 4> 참조). 총수요압력은 경기상승기에 물가상승요인으로, 하강기에 물가안정요인으로 전환되는 반면, 환율요인은 총수요압력과 逆방향으로 물가상승에 영향을 미쳤다. 상승기에 환율요인은 물가상승률을 0.2%p 낮추는 역할을 한 반면, 하강기에는 0.3%p 높인 것이다.
해외의존도가 높은 농축수산물이나 석유제품은 다른 품목들에 비해 대외요인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 양곡의 자급도가 27%에 불과할 정도로 농축수산물은 수입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90년대 들어 하향 안정되어오던 국제농산물가격은 2000년대 들어 가격이 크게 올라 연평균 6.1%의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그림 5> 참조). 국제석유가격 역시 외환위기 이전 평균 20달러 내외 수준에서 안정되어 있었으나, 2000년대 들어 연평균 10.6% 상승하였다. 결국 국제상품가격 변화가 이들 품목의 국내물가 상승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농축수산물, 석유제품 가격은 환율변동에도 민감하게 반응한 것으로 나타난다. 비교를 위해 단순 회귀식을 통해 환율 탄성치를 구하여 보면, 농축수산물과 석유류의 환율탄성치는 각각 0.22, 0.29로 추정되었다(<표 1> 참조). 이는 환율이 10% 상승할 경우 이들 가격이 각각 2.2, 2.9% 상승함을 의미한다. 반면 전체 소비자물가의 환율탄성치는 0.0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 이들 제품가격이 환율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였음을 알 수 있다.
2000년대 전반적인 국제상품가격의 상승 추세 속에서 경기 하강기의 원화절하폭이 더 커지면서 물가불안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경기하강기 필수 소비 지출비중이 커져
경기하강기에 필수소비재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더 높아지면 경제주체들이 실제 접하게 되는 물가는 평균적인 소비자물가의 상승률보다 높게 나타날 것이다. 왜냐하면 하강기에는 필수소비재의 소비지출 비중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구입 금액이 크고 교체주기가 긴 내구재는 소비시점의 연기를 통해 지출을 줄일 수 있으며, 소득에 대한 탄력성이 큰 사치재 소비는 경기에 보다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다. 이에 반해 필수 소비에 대한 지출 조정은 상대적으로 작을 것이기 때문에, 필수 소비지출 비중이 높아지게 된다(자세한 내용은 LG Business Insight 2009년 3월 4일자, ‘경기 하강에 취약한 우리의 소비구조’ 참조). 특히 마이너스 성장을 하였던 외환위기에는 이러한 소비지출 비중변화가 더욱 뚜렷이 나타났다(<그림 6> 참조). 식료품, 주거 등 필수 소비 품목의 지출비중이 증가한 것에 비해 선택적 소비 항목들은 대부분 하락한 것이다.
또한 필수소비재 가격이 더 오르면, 저소득층의 물가상승률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게 된다. 저소득층의 경우 필수소비재 비중이 35%인 것에 비해 고소득층은 24% 불과하기 때문이다. 소득계층별 물가상승률을 계산하여보면 이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6월 현재 저소득층은 고소득층에 비해 0.6%p 높은 물가상승률을 겪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었다(<그림 7> 참조).
소득감소에 따라 체감물가 높아져
경기하강기에는 소득 증가세가 둔화되거나 혹은 소득 수준 자체가 줄어들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물가상승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게 될 것이다. 기초적인 소비 수준은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가격의 작은 상승도 더 크게 느끼는 것이다. 특히 현재와 같이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하면서 임금이나 자산 소득이 줄어드는 경우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물가는 훨씬 높아지게 된다. 올 1분기 가계의 가처분소득(=가계소득-비소비지출)은 명목기준으로 0.4% 줄어들었는데, 소비자 물가상승을 감안하면 실질소득은 -4.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난다.
소득 감소는 저소득층일수록 더욱 크게 나타나고 있다. 저소득층의 가처분소득은 올 1분기 전년동기대비 8.7% 감소하였다. 중산층 0.7% 감소, 고소득층 1.4% 증가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큰 타격을 받아 소득 양극화 현상이 심화된 것으로 나타난다. 결국 저소득층은 필수소비재 가격 상승에 따른 충격을 많이 받는데다 소득도 더 크게 줄어들면서 물가상승에 대한 부담이 훨씬 컸을 것이다.
경기하강기 체감물가의 괴리 가능성 고려해야
전세계적인 경기침체 속에 공급과잉 현상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하향 안정될 전망이다. 다만, 환율이 안정되고는 있지만 여전히 전년대비 높은 수준이며, 최근 농산물 등 국제상품가격이 다시 오르는 등 물가 불안요인으로 남아있다. 이러한 불안요인들은 필수소비재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식료품 등의 가격은 당분간 높게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체감물가와 소비자물가의 괴리는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결국 소비자들의 구매력은 현재 지표가 보여주는 것보다 약화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소득양극화에 따라 저소득층이 느끼는 부담은 더욱 클 것으로 예상되므로, 이들 계층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할 것이다. 또한, 수급대책, 유통구조 효율화 등 체감물가를 안정시킬 수 있는 미시적 대응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여야 할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