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 '정말 현지화한 제품이 맞습니까?'
신흥시장에서 어설픈 현지화 제품들은 고객들에게 외면 당한다. 현지 고객과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현지 기업들까지 가세한 초경쟁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현지화 제품을 선보여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타겟 고객층을 위한 글로벌 스탠다드 제품으로 승부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2007년 5월 인도 르노(Renault)는 마힌드라(Mahindra & Mahindra)와 합작회사로서의 첫 작품인 중소형 세단 로간(Logan)을 인도 시장에 선보였다. 기대와 달리, 로간은 저조한 성적을 내며 결국 르노가 마힌드라와의 결별을 선언하고 독립하게 만든 원인을 제공하였다. 인도 시장에서의 로간 출시 스토리를 잠시 살펴보자. 로간은 르노가 루마니아 자동차 회사인 다치아(Dacia)를 인수한 후 개발한 저가 중소형 세단으로 2004년 본격 생산되자 유럽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1년 후인 2005년 르노는 급성장하는 인도 시장 공략을 위해 마힌드라와의 합작회사를 설립하고 처음으로 선보일 제품을 선정할 때, 로간은 가장 적합한 제품이었다. 르노는 마힌드라로부터 인도 시장과 소비자에 대한 노하우를 간단히 전수받고 로간 현지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르노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가격이라고 판단하여 로간이 이미 저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생산비용을 15% 더 절감하였다. 또한 왼쪽에 있던 핸들을 인도에 맞게 오른쪽으로 이동하고, 디자인 역시 조금 수정하여 ‘현지화된’ 로간을 출시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현지 고객들의 취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로간의 외형 디자인은 고객들에게 외면을 당했다. 가격 역시 15% 비용을 낮췄음에도 불구하고 경쟁 차들인 마루티 스즈키(Maruti Suzuki)의 스위프트 드자이어(Swift Dzire)나 포드의 피에스타(Fiesta)에 비해 높아 경쟁력이 없었다.
어설픈 현지화 제품들
과거 선진국의 기업들은 자국 시장 혹은 다른 선진 시장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신흥국 시장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글로벌 기업들은 진입 초기 경쟁우위에 있는 자국의 제품들을 설명서 정도만 해당 국가어로 번역하여 그대로 들여와 현지 유통업체를 통해 시장에 선보였다. 물론, 타겟 고객 역시 구매력이 매우 높고 글로벌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대상이 주였다. 시장이 급격히 성장하고 타겟 고객층이 넓어 짐에 따라 글로벌 기업들은 현지에 공장을 세우고, R&D를 시작했으며 현지 인력을 대거 채용하여 마침내 현지 고객들을 위한 차별화된 제품을 준비하게 되었다. 물론, 제품군에 따라 글로벌 전략을 지속적으로 운영하는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어, 비행기, 선박과 같이 초대형 제품이면서 고객이 기업인 경우나 컴퓨터, IT기기와 같이 최첨단 제품이면서 고객이 젊은 제품군들은 현지화에 대한 필요가 상대적으로 낮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글로벌 기업들은 중국과 인도와 같이 급성장하는 시장이면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신흥시장에서 현지 고객들을 사로잡기 위해 앞다투어 현지화 전략을 펼치게 되었다. 그러나 현지 고객에 대한 연구와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출시된 제품들은 앞서 설명한 로건의 사례처럼 어설픈 현지화 제품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인도의 로건 외에도 어설픈 현지화 사례들은 많다. 2006년 듀퐁(DuPont)의 자회사인 솔래이(Solae)는 인도인들의 영양부족 상태를 시장 기회로 보고 자사의 콩 단백질 분말 제품을 현지에 맞게 적은 용량의 패키지에 넣어 약 30센트에 내놓았지만 고객들은 외면하였다. 왜냐하면 인도인들은 렌틀(lentil)이라는 볼록한 콩을 카레 등과 함께 요리하여 아주 오래 전부터 즐겨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렌틀의 가격은 솔래이의 단백질 분말에 절반도 되지 않았다.
중국에서도 바비인형으로 유명한 마텔(Mattel)의 실패사례가 있다. 마텔은 2009년 중국 중상류층 여자 아이들 사이에서 미국의 금발 바비인형이 인기가 높아지는 것을 기회로 포착하였다. 나름 중국 중상류층 고객들에 대한 분석을 마친 마텔은 바비인형을 실제로 구매하는 부모들에 집중했고, 그 결과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바비스토어(House of Barbie)를 상하이에 개장하였다. 이 스토어는 6층 건물로 바비인형 매장뿐만 아니라 레스토랑, 헤어샵, 칵테일 바, 심지어 스파까지 갖춘 대형 몰이었다. 더불어 바비의 대표격인 파란 눈과 금발이 아닌 검은 눈과 머리의 둥근 얼굴을 가진 링(Ling)이라는 인형을 선보였다. 결과는 대 실패였고 마텔은 3천만 달러가 소요된 바비스토어를 닫아야만 했다. 우선 무엇보다 중국 여자 아이들은 8등신의 금발머리 파란눈의 바비인형을 자신들의 모습과 비슷한 링보다 선호했다. 또한 중국 중상류층 부모들은 아이들이 원하기 때문에 금발 바비인형을 구매했던 것 일뿐, 마텔이라는 브랜드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원했던 것은 아니었다.
2011년 독일의 글로벌 기업인 퓨마 역시 아랍에미리트 시장에서 어설픈 현지화로 곤욕을 치렀다. 당시 퓨마는 아랍에미리트의 40주년 독립기념일을 축하하면서 국기의 색상인 빨간색, 하얀색, 초록색을 활용한 운동화를 출시했다. 그러나 퓨마는 중동에서 신발이나 발은 불경스러운 것으로 간주된다는 것을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 신성한 국기를 신발 디자인에 넣은 것은 아랍에미리트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한 소비자들은 불매운동을 벌이면서 격렬하게 항의했다. 결국, 퓨마는 공식적으로 실수를 인정하며 사과했고, 제품을 전량 회수하여 패기처분 할 수 밖에 없었다.
성공적인 현지화 제품들
반면, 현지 고객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현지화에 성공한 제품들도 존재한다. 앞에서 실패사례로 든 인도의 르노를 다시 살펴보자. 로건의 실패 후, 어설픈 현지화에 대한 교훈을 얻은 르노는 마힌드라와의 합작계약을 깨고 첸나이(Chennai) 지역 근처에 공장을 설립하고 새로운 모델 발굴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르노는 인도 고객에 대한 철저한 연구를 위해 5개의 도시, 30가구의 포커스 그룹을 선별했다. 다른 기업들이 흔히 하는 포커스 그룹 인터뷰로는 인도 고객들의 니즈를 파악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르노는 고객의 동의 하에 제품 개발자들을 두 달간 고객들의 집에 투숙시켰다. 이러한 강도 높은 고객 조사 후에 제품 개발자들은 인도 고객들의 원하는 차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르노의 유럽 향 SUV인 더스터(Duster)를 출시 모델로 결정했으며, 무려 41개 부분에 걸친 크고 작은 현지화를 진행했다. 2012년 7월 2년간의 준비를 마친 더스터는 인도 시장에 공개되었고,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더스터는 1년만에 인도 Compact SUV시장의 점유율 20퍼센트를 넘는 기염을 토하였다.
KFC 중국 역시 잘 알려진 성공적인 현지화 사례 중의 하나일 것이다. 1987년 베이징에 처음 매장을 오픈한 KFC는 전통의 ‘커넬 샌더스 레시피’를 고집하지 않았다. KFC 중국은 현지에서 시장조사 전문가들을 대거 영입하여 자체적으로 고객들의 입맛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중국인들이 아침식사로 길거리에서 주로 사먹는 죽이나 요티아오(중국식 도너츠) 등을 연구하여 아침식사용 메뉴들로 선보였다. 또한, 심층적인 고객 연구를 통해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음식인 밥, 오리, 구운 닭 등을 KFC 레시피와 조합하여 성공적인 현지화 메뉴들을 선보이고 있다. 중국 KFC는 현재 850개 이상의 도시에서 4,400개가 넘는 매장을 운영하며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90년대 초, 두바이 LG전자 시장조사 팀들은 본격적인 진입에 앞서, 제일 먼저 시장이나 가정집이 아닌 이슬람 사원을 방문했다. 무슬림에게 종교가 어떤 의미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긴 팀은 시간이 날 때마다 사원을 드나들며 사람들을 관찰하고 연구했다. 연구 중, 조사 팀은 무슬림들이 하루 5번 정해진 시간(해뜨기 전, 일출, 정오, 오후, 해지기 전, 일몰)에 맞추어 메카 방향으로 기도를 하는데, 시간을 못 지키거나 나침반을 휴대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음을 발견했다. 그 결과 ‘메카폰’이라는 무슬림을 위한 핸드폰이 개발되었고, 이것은 하루 5번 기도 시간을 알려주는 기능, 메카를 가리키는 나침반 기능, 그리고 기도 중 전화가 올 경우 자동으로 수신 거절과 함께 기도 중이라는 메시지가 전송되는 기능 등을 탑재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현지화 전략 vs. 글로벌 전략
그렇다고 글로벌 기업들이 모두 제대로 된 현지화 전략을 써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애플의 모바일폰, 지멘스의 가전, 스타벅스의 커피처럼 글로벌 전략으로 성공하고 있는 기업들도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글로벌 기업들은 신흥국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때, 현지화 제품 전략을 택할지 아니면 글로벌 스탠다드 제품 전략으로 갈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이러한 고민을 해결해 주지는 못할 망정 더욱 심화시키는 논쟁들도 있었다. 2005년 미국의 언론인이었던 토마스 프리드만(Thomas Friedman)은 ‘세계는 평평하다(The world is flat)’라는 책을 발표하였다. 이 책은 37개 언어로 번역되고 400만권이 넘게 팔려나갔다. 프리드만은 책에서 10가지 주요 동력들로 인하여 세계는 상당히 평평해졌고 또 앞으로 더 빠르게 평평해 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당시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였던 판카쥐 게마와트(Pankaj Ghemawat) 교수는 전화통화, 웹트래픽, 투자 등의 수치 데이터들을 제시하면서 “실제로 세계는 그다지 평평하지 않다”고 주장하며, 토마스 프리드만의 주장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여러 학자나 CEO들의 찬반이 지속되는 가운데, 적어도 모두가 부인할 수 없는 부분은 정도는 다르지만 글로벌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도시들을 중심으로 글로벌화는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고, 비도시 지역은 다소 느리지만 IT기기들의 급격한 침투로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 정도의 정보로는 글로벌 기업들이 진정한 현지화를 위해 막대한 규모의 공장 설립, R&D 투자 그리고 현지 인력 운영 등을 결정하는데 그리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정답은 언제나 고객에게 달려있다. 현지의 어떤 고객들이 어떤 제품을 필요로 하는지, 왜 필요한지, 어떻게 사용할지, 현지의 다른 대체 제품은 없는지, 경쟁 제품 보다 어떤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철저한 현지 고객 이해를 통해 답을 얻어야 한다. 만약 그 결과 타겟 고객층이 글로벌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면 굳이 현지화를 강행할 필요는 없다. 반대로 그 결론이 현지화라면 앞서 설명한 사례들처럼 제대로 된 현지화 제품을 선보여야 할 것이다. 제대로 된 현지화를 위해서는 우선 현지 고객과 문화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본사의 사업관련 담당자들이 직접 외부인의 시각에서 현지 고객들의 생활을 관찰하고 문화에 대해 연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현지 직원에게 물어봐서 얻는 정보들은 자칫 편향되거나 중요한 부분을 놓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둘째로, 저가 이상의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 신흥 시장이라고 해서 비용에만 매몰되다 보면 정작 중요한 부분들을 놓칠 수 있다. 타겟 고객층에 맞게 때로는 가격이 저렴하지 않아도 현지 고객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제품이 개발될 수 있다. 이런 과정에서 나온 현지화 제품은 역으로 다른 국가(선진국 포함)의 시장에서 글로벌 스탠다드 전략으로 사용될 수도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인도와 중국에서 개발된 GE의 휴대용 초음파 기기가 미국 시장을 점령한 사례나 인도에서 개발된 네슬레의 저지방 라면이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다이어트 식품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사례들이 존재한다.
이제는 신흥국에서도 현지기업들이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의 어설픈 현지화 제품들은 앞으로 더욱 설 자리가 없어질 것이다. 현지 문화와 고객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현지화 전략과 글로벌 전략을 선택해야 하고, 만약 현지화 전략을 선택하였다면 ‘정말 현지화된 제품이 맞습니까?’라는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을 정도의 제품을 선보여야 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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