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 '중국 실업문제의 실태와 시사점'
경제성장 둔화에 따른 고용기반 약화로 중국의 실업사태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공식 실업통계는 실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정부의 실업대책에 대한 평가와 실제 실업률의 추정을 통해 실업이 중국 사회와 우리 기업들에 주는 영향을 점검해 본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인한 경제성장 둔화로 중국에서도 실업의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수출이 급감하는 가운데 기업의 채산성이 크게 악화되는 한편, 국유기업 구조조정이 지속되고 있어 대량 실업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실제로 2008년에 부도 처리된 중소기업은 67만 개에 달했으며 기업 이익 증가율은 5년여 만에 가장 낮은 5%로 하락했다 (’08년 11월 기준). 1억 3,000만 명으로 추정되는 농민공 중 15.3%인 2,000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지난해 560만 명의 대졸자 가운데 150만 명이 아직 취업을 하지 못한 실정이다. 중국 노동사회보장부가 전국 99개 도시를 대상으로 조사한 구인/구직 비율은 2008년 3/4분기 이후 크게 떨어지고 있다(<그림 1> 참조).
중국에서 실업문제는 왜 중요한가?
중국에서는 실업률이 위험수위를 넘었는지 여부가 경제의 경착륙과 연착륙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간주되고 있다. 즉 경제성장률이 과거 연평균 수준에서 얼마나 벗어나는지보다는 충분한 고용을 창출할 수 있는 성장률이냐가 판단의 척도가 된다. 단순히 경제적 측면에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관리 측면의 의미를 중시하는 것이다. 최근 ‘8%의 성장률을 유지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겠다’는 뜻의 ‘바오바잔(保八戰)’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11차 5개년 규획(2006~2010년)에서 설정한 경제성장의 목표도 8%이다. 현재의 고용시장 구조상 실업 악화를 막으려면 경제성장률이 8% 이상 되어야 한다는 판단인 것이다.
실상을 반영하지 못하는 공식 실업 통계
국가통계국이 발표한 2008년의 공식 실업률은 4.2%이다. 한국의 3.2%보다 다소 높지만 5.8%를 기록한 미국과 7.8%인 독일 등 선진국들에 비해서는 양호한 수준이다. 하지만 이 수치가 중국의 실제 실업 상황을 반영한다고 보기 어렵다.
1970년대 말 중국에서 실업관련 대책으로 처음으로 도입된 것이 ‘실업등록제’였다. 당시 실업은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현상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대업(待業·직업을 기다린다)’이라는 용어가 대신 사용됐다. 계획경제 시대에 모든 취업대기자들은 정부가 지정한 노동 관련 부서에 신고를 한 후 국가가 일자리를 배정해주는 것을 기다리면 되었다. 그러나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된 후 정부의 ‘일자리 배정’ 기능이 상실됨에 따라 94년부터 ‘등기 실업’ 이라는 이름으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관련 기관에 신고한 실직자에게 재취업 정보와 함께 실업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등기 실업률은 이렇게 실업보조금 지급 등 사회보장 시스템 관리 측면의 통계 수치로서 의미가 강하다. 또한 지방정부는 관할 지역의 경제성과를 과시하기 위해 지역 내 실업률을 실제보다 낮춰 보고하는 경향이 있다.
중국의 공식 실업률 통계의 가장 근본적인 한계는 조사 대상자가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도시 호구를 가진 사람만이 신고할 자격이 있기 때문에 전체 인구의 56%를 차지하는 농촌 인구는 통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또한 실업자로 인정 받으려면 남성은 50세, 여성은 45세를 넘으면 안 되며, 본인이 직접 관할 지역의 취업 관리 기관에 방문해 종전 직장과 노동관계가 종료되었고 다시 취업할 의사가 있다는 것을 밝혀야 한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대학 졸업생들은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 또한 국유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면직’ 처리된 이른바 ‘샤강(下崗·일자리에서 밀려난다는 뜻)’ 노동자 중 3년 이상 재취업에 실패한 자만이 실업자로 인정된다.
따라서 중국의 과거 실업률 수치를 살펴보면 GDP 성장률의 변동과 상관없이 실업률은 일정한 수준을 유지해왔다(<그림 2> 참조). 이는 실제 상황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공식 실업률이 4%대에 머무는 반면, 실제 실업률 추정치는 8~12%로 양자간의 괴리가 매우 큰 것으로 나타난다(<그림 3> 참조).
2009년 실제 실업률은 11%대로 추정
중국에서는 농촌에서 발생하는 계절적 실업이 실업으로 간주되지 않아 관련 통계가 발표되지 않는 관계로 전체 실업률을 추정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경제성장률 수치에 부합하는 일자리 창출 규모 등을 토대로 도시 실제 실업률을 추정해볼 수 있다. 중국정부의 목표가 달성된다고 간주하고 2009년 중국의 성장률은 8%, 신규 창출 일자리 수는 약 900만 개로 가정하자. 2009년의 구직자 수는 정부가 공식 발표한 2008년 도시 실업자 886만 명에다 올해의 신규 도시 구직자, 지난해 실업 농민공 등 모두 5,000만 명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퇴직 및 자연감원 수를 감안하면 올해 실업자 수가 대략 4,000만 명에 달하며, 이 경우 실제 도시실업률은 10.9%로 추정된다.
그러나 올해 중국 경제는 경기침체를 피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8% 수준의 성장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선진국 불황으로 인해 수출급감이 예상된다. 중국의 수출주도형 기업들은 전체 신규 취업자의 절반인 1,800만 명(2007년 기준)을 고용할 정도로 고용기여도가 매우 높다. 수출 증가율이 1%p 증가할 때마다 18만~20만 개의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올해와 같이 수출이 감소하는 경우 반대로 타격이 크다. 수출급감에 내수침체까지 겹쳐 올해 경제성장률이 6.0%에 그칠 경우 다른 요건이 변하지 않는다는 조건하에서 실업률은 11.5%로 추정된다.
기업투자가 축소되면서 대규모 감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농민공의 60%가 경기변동에 취약한 중소기업에 고용되고 있는데, 경기가 호전되지 않을 경우 올해 실업 농민공들의 수가 3,000만 명에 달할 수도 있다. 중소기업의 대규모 도산에 따른 추가 감원 가능성 등 이상의 추정에 반영되지 않은 변수들을 고려할 때 실업률은 한층 더 높아질 수 있다.
샤샹(下鄕)에서 샤강(下崗)으로
중국은 과거에도 두 차례의 ‘실업 대란’이 있었다. 문화대혁명 기간 ‘노동을 통한 정신 개조’를 목적으로 지식청년을 농촌으로 내려보내는 ‘샤샹(下鄕)운동’이 마무리되면서 1970년대 말 농촌으로 내려간 약 1,700만 명의 도시 지식청년(知靑)들이 도시로 복귀하면서 도시 등기실업률이 5% 중반으로 치솟았다. 이를 완화하기 위해 국유기업이 농촌 호구를 가진 자를 채용하지 못하게 하거나, 부모가 물러난 일자리를 자녀들이 승계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강제적인 정책들이 시도되었다. 또한 국유기업, 집체기업(集體企業), 그리고 동사무소, 학교 등 비영리부문에 채용 인원을 배정하고, 나아가 일부 기업들로 하여금 ‘귀향 지식청년 전용’ 생산 기지(知靑場隊)들을 조성하게 하여, 무이자 대출과 세금 우대를 제공했다. 정부는 각종 취업 서비스센터를 통해 적극 일자리를 배정해주는 것 이외에도, 실업 청년들이 자체적으로 자금을 마련하여 창업하는 것을 장려했다. 지식청년들에 의해 설립한 찻집, 종이박스 제조 등 소규모 민영기업들로 매년 100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생겨나 민영경제의 싹이 트기 시작했다. 1985년에 도시의 등기실업률은 1978년의 5.3%에서 1.8%로 급락했다.
두 번째 실업대란은 1990년대 중반에 본격적인 개혁개방에 따라 생산성과 효율성 제고를 위해 국유기업의 슬림화가 진행되면서 발생했다. 국유기업의 대대적인 정리해고로 일터에서 쫓겨난 사람은 해마다 500만 명 이상이 됐다. 국유기업의 취업자 비중도 1995년 59%에서 2001년 31%로 크게 떨어졌다. 특히 지역적으로는 국유기업이 밀집한 동북 3성, 업종별로는 방직과 기계 등 제조업은 혹독한 구조조정을 겪었다. 정부가 꺼낸 카드는 ‘재취업 프로젝트’. 즉 일반 실업자와는 달리 국영기업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밀려난 인력을 일시 휴직으로 간주해, 전 직장에서 3년간 최저생계비와 사회복지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기업들은 30% 운영비용을 부담하여 ‘재취업 센터’를 설립해 그들을 관리하고 재취업 자리를 알선해주는 의무를 져야 했다. 기업들이 일부 샤강 근로자를 내부적으로 재흡수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상점 판매원, 택배사원 등 다른 업종을 종사하게 되었다. 기초생활을 보장해줌으로써 사회불안의 불씨가 확대되지 않았고, 90년대 말 재취업센터를 통한 취업 성공률이 50% 안팎에 달해 실업 압력을 완화할 수 있었다.
다시 거세지는 제3의 ‘실업한파’
최근에 대두되는 실업 문제는 과거 실업사태들과 몇 가지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다. 먼저, 이번 실업은 경기하강 국면에서 수출 부진과 설비투자 위축 등에 따른 일종의 경기적 실업으로, 노동 수급의 일시적 부조화에 따른 마찰적 실업이나 산업구조 개편 등으로 발생하는 구조적인 실업과 차원이 다르다. 둘째, 일정 산업과 지역에 쏠리는 경향이 있다. 실업이 수출주도형 기업을 비롯해 제조업과 건축업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2008년 하반기에 두 산업의 신규 실업자가 각각 1,980만 명과 1,546명으로 추정되어 전체 실업자 수의 절반을 넘어섰다. 지역적으로는 수출 기업이 밀집한 주강삼각주 지역과 동부에서 귀향하는 실직 노동자들이 많은 중부지역의 실업 압력이 확대되고 있다. 셋째, 이번 실업의 핵심 주체는 실업 통계에 잘 잡히지 않은 농민공과 대졸 학생들이다. 농민공의 수입은 전체 농촌 수입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농촌 수입 증가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따라서 농민공들의 대량 실업은 농촌 소득 감소로 이어져, 소비심리 위축 등의 결과를 초래하고 중국 경제의 구조전환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한편 기업들이 신규 채용을 꺼리면서 대졸자들의 2008년 취업률 (유학, 진학 등 제외)은 84.5%으로, 2001년의 90%보다 낮아졌다. 사회과학원이 추정한 지난해 대졸자들의 실업률은 공식 평균실업률보다 3배 높은 12%로 나타났다.
이번 금융위기가 중국 노동시장에 주는 충격은 97년 외환위기 때보다 더욱 심대한 것으로 판단된다. 외환위기 당시 타격을 받은 아시아 국가들이 당시 중국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았고, 중국은 당시 위안화 고정환율제를 고수한 결과 외부 충격을 완충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좀더 깊이 들어다 보면 이번 실업 문제는 경기침체 등으로 표면화되었지만, 장기간 축적된 각종 구조적 문제들에서 기인한 측면이 작지 않다. 우선 자본집약적 산업을 육성하는 산업고도화 과정에서 노동집약적 산업의 성장이 빠르게 둔화하였다. 또한 지난 수년간의 고성장에도 불구하고 2차산업 취업자 비중이 거의 증가하지 않았다(<그림 4> 참조). 고용 흡수력이 강한 노동집약적 산업과 중소기업들의 성장이 둔화되면서 만성적으로 실업 압력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실업과의 끝없는 전쟁
실업의 원인과 특징은 시기별로 달라지기 때문에 중국 정부가 현 상황에서 제 1, 2차 실업 당시의 ‘처방’을 그대로 쓸 수는 없다. 특히 과거 계획경제 체제 하에서 가능했던 시장 수요를 고려하지 않는 일자리 배분, 기업 부담을 크게 가중시키는 재취업센터 설립 등은 시장체제가 정착된 지금은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과거에는 실업문제의 해결 책임을 기업에게 강제적으로 부과함으로써, 실업 대책이 주로 직업훈련 등을 통한 노동력의 질 제고, 재취업 센터를 통한 취업정보 제공, 기초 생활보장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에 비해 최근 잇따라 발표된 실업 대책들은 외부환경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내수를 최대한 살리는 경기부양책의 일환으로서 사회의 체질 개선, 외부충격에 대한 저항력 제고 등 보다 근본적인 이슈를 다루고 있다(<표 1> 참조). 노동력 유동성 증가를 위한 호구제도 완화, 인프라 투자 위주의 대규모 재정 확대, 10대 산업 진흥책 등은 모두 수요 확대에 초점이 맞춰졌다. 예컨대 2009년에 예정된 6,000억 위안의 대형 철도 건설 프로젝트는 건설 노동자 일자리뿐만 아니라 유통, 관광 등 관련 산업 발전을 촉진시키면서 향후 총 600만개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비스업, 중소기업 육성 등 다양한 산업정책과 취업 관련 규정을 법제화한 것도 정부의 고용문제 해결 의지를 보여준다. 90년대 말보다 크게 개선된 재정 상황이 이 같은 정책의 실행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그러나 정부 정책만으로 실업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고용은 일반적으로 경기에 후행하는 경향이 있어, 정부대책에 힘입어 당장 호전되지는 않는다. 특히 경기가 언제 바닥을 찍고 반등할지 불투명한 상황에서 기업들의 채용이 대폭 늘어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당장 실업률 수치가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중국 정부는 기업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면서까지 대졸 실업자를 인턴으로 채용할 것을 종용하고 있다. 실업자를 채용할 경우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대량 해고 시 사전에 신고해야 한다는 등 노동시장 유연성을 저해하는 미봉책들도 속속 나오고 있다. 이와 같은 인위적인 고용창출 노력은 기업에게도 부담이 될 우려가 있다. 고용 실적을 지방정부의 업무평가 기준으로 선정한 것도 지방정부의 수치 부풀리기 등의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실업사태가 장기화될 전망
중국 경제가 과거와 같은 두 자릿수의 고도성장을 지속하기는 쉽지 않다. 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성장의 고용창출 효과를 나타내주는 고용탄성치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실업 문제를 낙관하기 힘들게 하는 요인들이다. 연간 취업자 증가율을 실질 GDP증가율로 나눈 고용탄성치는 2000년 이전까지 계속 상승하다가 2001년을 정점으로 하락세로 돌아선 뒤 2007년에 사상 최저치인 0.06를 기록했다(<그림 5> 참조). 즉 GDP가 1% 증가할 때 과거 90년대에는 0.2% 이상의 고용 증가 효과가 있었으나, 산업 고도화 등 영향으로 최근에는 그 효과가 0.06%에 그치고 있다.
반면에 노동 공급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어, 고용시장의 과잉공급 구조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16~64세 노동 인구의 증가세는 점차 완만해지고 있으나, 2015년까지 연평균 500만 명 가량은 여전히 늘어날 전망이다. 특히 올해 20~24세의 노동시장 신규 진입자 수는 작년보다 5.6% 증가할 것으로 예상돼 실업 압력을 가중시킬 것으로 보인다. 1999년부터 실시된 대학 정원 확대로 대졸자의 규모가 꾸준히 늘어나 2009년에는 611만 명으로 전년보다 79만 명 증가했고, 전체 규모는 2000년의 5.7배가 넘는다. 대학 정원 확대 방침이 단기적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크지 않으므로 청년실업이 장기화 및 고착화될 전망이다. 이와 더불어 대졸자의 평균적인 능력 저하, 노동력의 동부연해 대도시로의 쏠림 현상 등 여러 요인들도 노동시장 수급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다. 즉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만성적인 노동력 공급과잉, 산업구조 전환에 따른 고용탄력성 약화 등으로 인해 일자리 수 확대에 한계가 있는 만큼 중국 실업문제의 장기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사회불안 사태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아
과거 90년대 실업문제의 주역인 도시 국유기업 근로자들은 정리해고를 당한 이후에도 기초생활비와 사회복리 서비스를 받을 권리와 재직 기간에 기업으로부터 배정 받은 주택에서 계속 거주할 권리가 있었다. 실업을 당해도 기본적인 생활이 보장되는 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실업문제는 사회적으로 가장 취약한 노동집단인 농민공을 중심으로 발생하고 있다. 농민공들은 아무런 사회보장도 받지 못하는 소외계층으로서 임금이 체불되거나 직장에서 퇴출당하면 먹고 살기가 힘들어진다. 특히 도시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농촌에 대한 소속감도 상실한 일부 신세대 실업 농민공들이 도시를 떠돌아다니면서 중국 사회의 심각한 빈부격차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 이를 감안할 때 범죄나 소요사태가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도시에서 오랫동안 거주한 농민공들 중에는 토지 사용권을 타인에게 양도한 경우가 적지 않아 실업으로 인해 귀향할 경우 토지분쟁이 급증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현재 상황을 살펴봤을 때 실업사태가 곧바로 반정부, 반체제 운동으로 번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 먼저, 농민공들은 일자리를 좇아 농촌과 도시를 오가며 전국으로 돌아다니는 특징이 있다. 대부분 농민공들은 고향에서 토지를 소유하고 있고 과거와는 달리 정부로부터 보조금과 재취업 서비스를 제공받고 있다. 또 한국 농민들과는 달리 중국 농민공은 매우 분산적이고 조직력이 약하다. 그리고 90년대 당시 사회주의 체제 하의 평생고용을 익숙한 중국인들에게 실업은 정치적 이념과 현실의 괴리를 보여주는 매우 충격적인 사태였지만, 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실업은 경기 상황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인식이 일반화되어 있다. 이번 실업 문제의 또 다른 주역인 청년실업자들의 경우 대부분 80년대 이후 태어난 독자로서 부모의 경제적 도움으로 생계의 어려움을 느끼지 않아 ‘직장 눈높이’를 쉽게 낮추지 못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취직을 못하고 부모에게 전적으로 기대어 생활하는 젊은 층을 가리키는 유행어 ‘컨라오주(캥거루족)’가 등장할 정도다. 풍요로운 환경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애국주의 성향이 유난히 강하고 의외로 친정부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다. 대량실업자들의 불만이 종교적 자유를 위한 저항 움직임 등 기타 사회불안 요인들과 결합되어 극단적으로 표출되지 않는 한 실업사태가 사회불안으로 연결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낮아 보인다.
기업에게 실업은 ‘양날의 칼’
중국에 진출한 기업이면 취업난으로 구직자가 넘치는 걸 보고 ‘이제 마음대로 노동자를 뽑을 수 있고 임금도 낮출 수 있게 됐다’고 좋은 쪽으로만 생각할 수 있다. 단순노동직, 일반사무직 인력을 대량으로 필요로 하는 기업들에게 구직자 수의 증가가 인력 확보에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인력 중 고학력자 비율의 상승과 이직률 하락으로 노동생산성이 제고되는 효과도 어느 정도 볼 수 있다.
또한 기업들이 고용을 유지할 수 있도록 대출규제를 완화하거나 재무사정이 어려운 기업에 대해 사회보험금 납부 기한을 늦춰주는 등 기업 부담을 덜어주는 조치도 실시되고 있다. 예컨대 중부 내륙의 난창(南昌)시의 경우 금융위기로 경영난을 겪고 있는 기업을 대상으로 최장 6개월 동안 사회보험금 납부를 유예해주고 있으며 실업보험금의 기업부담 비중을 2%에서 1.5%로 낮추었다. 이와 더불어 형편이 좋지 않는데도 인력을 줄이지 않는 기업에게 고용 인원 당 500~600위안의 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다. 이러한 직접적인 지원책 이외에도 이번 실업사태를 계기로 정부가 직업교육을 대폭 강화함으로써 중장기적으로 노동력의 질적 향상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2008년부터 시행된 新노동계약법은 15년 이상 근무자, 5년 내 정년 예정자 등을 해고 제한 대상으로 명시하는 등 고용조정과 관련해 기업의 운신 폭을 줄이는 규정을 다수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연말 이후 경기침체가 본격화하면서 일부 지방정부들이 신노동법의 엄격한 적용을 유예하는 등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는 양상이다. 또한 중국 정부는 실업을 막기 위해 서비스산업에 대한 지원을 대폭 강화하고 있으며 이 분야의 외자기업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취업난 속에서도 고급 기술인력 부족 등 구인난 현상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어, 고부가가치 산업에 진출한 기업의 경우 요구 수준에 맞는 인재를 발굴하기가 여전히 쉽지 않는 실정이다. 중국 인력자원부에 따르면 2002년 이후 고급 기술인력에 대한 수요는 공급을 초과하고 있다(<그림 6> 참조). 또한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중국 정부의 노력이 기업의 경영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해고 제한과 같은 실업대책은 고용시장의 유연성을 크게 저하시켜 기업에게 부담을 줄 우려가 있다.
일례로 올해부터 한 번에 20명 이상, 혹은 20명 미만이라도 전 직원의 10% 이상을 감원할 경우 30일 전 현지 노동행정당국이나 노동조합에 사전보고를 해야 한다. 광둥성의 경우 공장 가동을 중단하더라도 그 기간이 30일 이내이면 직원의 급여를 전액 지급하도록 하고, 30일 이상이면 최저임금의 80%이상을 지급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중국 전국공회(노조)도 ‘노사간 협상을 통한 임금 결정’을 골자로 한 ‘임금법’ 초안을 마련하고 있다. 즉 기업이 경영난을 이유로 임의로 임금삭감을 하지 못하도록 노조와 협상을 통해 임금을 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실업률 수치가 지방정부의 업적 평가 지표로 선정됨에 따라 지방정부들이 자기 지역에 투자한 외자기업들에 대해 과도한 고용창출 요구를 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도 경영을 압박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최근 중국 정부의 실업대책들은 특히 경영난으로 인해 청산 절차를 밟으려는 기업들에게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철수를 위해 대량 감원을 추진할 경우 노조 및 직원 전원에 대해 상황을 설명하고 의견을 청취한 후 인력 감축 방안을 중국 당국에 보고해야 한다. 따라서 직원들의 집단반발과 노조의 압력행사로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 나아가 현지 지방정부가 해고 직원들의 재취업 방안을 제출하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은 중국의 실업증가를 우수인재 확보의 계기로 삼되 중국정부의 정책변화가 야기할 수 있는 새로운 노무관련 리스크에 대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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