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 '경기저점 언제인가'
우리나라 경기지표 회복이 주요 경쟁국들보다 훨씬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말의 경제위기 이후 원화가치 하락폭이 경쟁국들에 비해 월등히 높아 주요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일 수 있었다. 유가하락으로 교역조건도 다른 나라들에 비해 크게 개선되어 소비위축을 완화시키고 지표경기에 비해 체감경기를 안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정부의 경기부양책도 미국 등 선진국보다 큰 수준이며 이에 따라 성장에 대한 기여도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요인들로 인해 경기지표가 빠르게 개선되고 있지만 아직 경기저점을 예고해주는 지표나 분석들이 일관된 결과를 제시하지는 않고 있다. 연초 지표급등의 효과가 2분기에 나타나면서 전기비 성장률이 상당히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우리나라에 유리했던 경제환경들이 점차 소멸되면서 하반기에는 경기지표 반등의 속도가 크게 둔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경기가 저점을 지나 본격적인 회복국면에 접어드는 시기는 금년말이나 내년으로 미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 목 차 >
Ⅰ. 최근 경기동향
Ⅱ. 지표 반등의 원인
Ⅲ. 경기저점에 대한 판단
Ⅰ. 최근 경기동향
최근 경기에 대한 긍정적인 소식들이 심심찮게 들려오면서 경기회복 여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말 세계 금융위기와 함께 급락했던 국내 경제지표들이 올해 초가 지나면서 하락세가 완화되거나 혹은 호전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경제에 관한 주된 논의는 이제 경기의 추락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에서 경기가 저점을 지나 회복단계에 들어선 것인지, 그리고 저점 이후 회복추세가 얼마나 빠를 것인지 등에 집중되는 상황이다.
수출과 내수의 동시 반등
지표의 개선 추세는 제조업 부문 생산활동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큰 폭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던 산업생산은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월평균 3.2% 증가했다(<그림 1> 참조). 이는 연율로 환산할 경우, 즉 이 속도로 계속 12월말까지 성장할 경우 12월의 전년동기비 성장률이 46.4%에 달하는 빠른 상승속도이다. 서비스업 부문의 생산지표도 완만한 상승추세를 보이고 있다.
생산활동의 회복으로 1분기 경제성장률도 전기비 0.1%의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섰다. 지난해 말 생산규모가 크게 줄어들어 올초의 빠른 상승에도 불구하고 1분기의 평균 생산은 지난 4분기와 비슷한 규모를 회복하는 데 만족해야 했지만 현재의 빠른 지표개선의 효과로 2분기에는 전기비 성장률이 큰 폭으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수요부문별로 보면 설비투자를 제외하고는 수출과 내수 모두 뚜렷한 개선추세를 나타내고 있다. 올해 1월 -33.8%라는 최악의 성적을 기록한 수출은 이후 바닥에서 빠르게 벗어나는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지난해에 비해 절대 규모면에서 크게 줄어들어 전년동기비로는 여전히 -20% 내외의 증가율을 계속 유지하고 있지만 지난해 초반에 수출이 빠르게 늘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금년 중에도 지난해 초와 유사한 속도로 전기대비 수출증가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계절적 요인과 조업일수 요인을 제외하고 볼 때 올해 1월 이후 5월까지 수출의 월평균 증가율은 전월 대비 3%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동일한 추세의 수출증가 속도가 유지될 경우 10월경에는 전년동기비 플러스 성장을 회복하고 12월 수출증가율은 30%를 넘게 된다.
소비 역시 올해 2월 이후 전기 대비 완만하게 개선되는 추세를 나타내고 있다. 특히 내구재 소비의 회복 추세가 뚜렷한데 지난해 하반기 중 급감했던 내구재 판매는 수출과 유사하게 전년동기비 큰 폭의 마이너스 성장 속에 전기 대비 뚜렷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건설투자는 정부의 공공발주 확대와 부동산 경기 해빙 조짐 등으로 수요부문 중 유일하게 전년동기비 플러스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다만 설비투자는 금년 들어서도 전월대비 마이너스 성장을 이어가고 있어 기업들의 장기적인 성장 전망이 밝지 않음을 보여준다.
주변국보다 지표회복 속도 빨라
이와 같은 경제 지표의 개선은 세계적으로도 빠른 편에 속한다. 우선 1분기 GDP 성장률을 보면 우리나라는 전기비 0.1%의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서 대부분의 국가들이 마이너스 성장을 지속한 것과 대조적이다(<그림 2> 참조). 선진국들은 대부분 금년 1분기중 지난해 4분기와 비슷한 성장률을 기록했다. 미국이 -1.6%에서 -1.5%로 마이너스 성장이 유지되었고 일본과 유로지역은 1분기중 성장률이 더욱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주요 유럽국가들의 성장률 역시 1분기중 더욱 악화되었다. 1분기 GDP가 발표된 개도국 중에서는 멕시코가 미국경기 부진의 영향으로 성장률이 더욱 크게 하락한 것을 비롯하여 홍콩, 말레이시아 등도 1분기중 성장세가 크게 악화되었다. 지난 4분기 우리나라보다 성장률 하락이 더욱 심했던 대만과 태국의 경우 금년 1분기중 성장률이 다소 높아졌지만 여전히 마이너스 성장에 머물렀다. 우리나라는 1분기 성장률이 발표된 나라 중에서는 인도 등과 함께 플러스 성장을 보였으며 성장률의 변화가 매우 크게 나타났다.
수요부문별로 보면 우리나라는 순수출, 민간소비가 1분기중 전기비 플러스 성장을 기록했다(<그림 3> 참조). 투자는 소폭 마이너스 성장했는데 이는 대부분 국가들의 투자가 크게 감소한 것에 비하면 양호한 수준이다. 미국은 소비가 소폭 개선되었으나 투자 하락폭이 커졌고 영국은 투자와 소비 모두 더 큰 폭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우리나라와 경쟁관계에 있는 일본, 대만은 투자부문에서 급격한 하락 추세가 지속되었다. 일본은 1분기 투자의 성장률이 -7.7%로 지난해 4분기보다 하락폭이 커졌고 대만의 경우도 -10%를 넘는 투자 하락추세가 이어졌다. 이들 국가들은 1분기에도 물량기준 수출이 전기대비 두자리 수 이상 하락하면서 급격한 투자심리 위축이 지속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결국 우리나라는 수출과 내수경기가 동시에 회복되면서 상대적으로 빠른 지표의 개선을 경험한 것으로 판단된다.
Ⅱ. 지표 반등의 원인
지표들이 개선되는 주된 요인은 무엇보다도 세계 각국의 적극적인 경기부양책으로 경기가 계속 추락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줄어들면서 소비자들이 조금씩 소비활동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수요가 언제까지 추락할 것인지 예측하기 어려워 생산을 멈추고 재고를 급격히 줄이던 기업들이 다시 생산을 재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지표개선 속도가 상대적으로 빠르게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단순한 근거는 우리나라 경기하락이 심했기 때문에 반등의 폭도 더 크다는 것이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데다 수출 주력상품이 내구재, 투자관련 중간재 등 경기변동에 따른 영향을 크게 받는 제품들로 이루어져 있어 우리 수출은 세계경기 급락의 영향이 컸다. 이와 함께 국제 금융시장의 혼란상황에서 외화자본이 빠르게 유출되면서 국내 금융시장의 경색이 심화되었고 이는 내수심리를 위축시키면서 우리나라는 지난 4분기 성장률이 급락한 바 있다. 경제의 불확실성이 줄어들면서 각국의 경제주체들은 세계경제가 계속 추락할 가능성에 대비해 미루어두었던 내구재 소비나 설비투자를 일정 부분 재개하였고 이것이 우리 제품에 대한 수요로 나타났다. 국내 외환시장의 불안도 빠르게 진정되면서 국내수요 심리도 되살아나고 있다. 최근의 환율하락 및 주가 상승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단순한 반등효과 만으로 우리나라의 빠른 경제호전 추세를 설명할 수는 없다. 지난해 4분기 우리나라보다 성장률이 더 크게 하락했던 대만, 태국, 멕시코 등은 금년 1분기중 여전히 마이너스 성장을 지속했다. 우리나라는 환율여건이나 경기부양 규모, 교역조건 등이 경기호전에 유리한 측면으로 작용했다고 평가된다.
환율상승에 따른 경쟁력 제고
수출경기 회복에는 환율여건이 크게 작용했다. 국제결제은행(BIS)의 발표에 따르면 2009년 4월중 원화의 실질실효 환율은 2008년 1월에 비해 24.7% 떨어졌는데 이는 발표 대상 58개국 중 두번째로 큰 하락폭이다(<그림 4> 참조). 통화가치가 가장 크게 떨어진 국가가 외환위기로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아이슬랜드(-34.4%)라는 점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 원화의 가치가 얼마나 크게 떨어졌는가를 짐작해볼 수 있다. 주된 경쟁국인 일본은 같은 기간중 엔화가치가 14.5% 상승하면서 조사대상국중 화폐가치가 세번째로 크게 올랐다. 중국, 싱가포르, 홍콩 등이 통화가치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대만 및 동남아국가와 기타 BRICs 국들은 통화가 절하되었으나 절하폭은 우리나라에 미치지 못했다. 원화의 가치하락은 지난해 4분기 금융위기 이후 가속되었고 이에 따른 가격경쟁력 상승이 우리 수출을 빨리 회복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우리나라는 수출상품 구성이 경기하강에 취약해 수출의 타격이 컸지만 경쟁국들보다는 상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일본, 대만, 싱가포르, 홍콩, 태국 등 우리와 수출상품 구성이 비교적 유사하고 생산성 격차가 크지 않은 아시아 공업국들과 비교해볼 때 우리나라는 세계시장에서 더 좋은 성과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미국 수입시장 점유율은 금년 들어 3월까지 0.45%p 높아져 이들 국가중 가장 좋은 성과를 기록했다(<표 1> 참조). 일본은 점유율이 -0.45%p 떨어져 엔화강세에 따른 타격을 크게 받은 것으로 보인다. 미국시장 성과의 순위는 환율변동의 순위와 유사하다. 중국시장에서도 우리나라의 점유율이 0.5%p 높아졌고 대만의 점유율이 가장 크게 떨어졌다.
교역조건 개선폭 가장 커
지난해말 이후 유가의 급락은 세계경기 침체에 따른 것이지만 원유수입국들의 실질소득을 높여 경기를 개선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원유수입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높은 환율 상승에도 불구하고 유가 및 원자재 가격이 안정되면서 소비자 물가의 상승을 제한할 수 있었다. 이는 소비자 실질구매력의 개선요인으로 작용하면서 내수경기 하강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원자재 가격 하락의 효과는 원자재 수입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서 크게 나타난 것으로 평가된다. 4월까지 우리나라의 원유 및 석유제품의 순수입 물량은 2.8억 배럴을 기록했으며 평균 수입단가는 배럴당 43.2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91.2달러에 비해 절반 이하로 하락했다. 이는 약 130억달러 가량의 수입비용을 줄인 것으로 그만큼 우리나라 소득이 보전된 것으로 평가해볼 수 있다. 이는 연율로 환산했을 경우 GDP의 5.6%에 달하는 규모이다. 물론 유가하락이 제품가격에 파급되는 과정에서 시차가 존재하고, 유가하락으로 높아진 구매력이 반드시 다른 부문의 수요나 생산에 반영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성장에 미치는 영향은 이보다 줄어들겠지만 원유 외의 다른 원자재 가격 하락까지 감안하면 금년 우리나라 성장률 제고 효과는 상당히 크다고 볼 수 있다.
원자재가격 하락의 효과가 우리나라에 더욱 크게 나타났다는 것은 국별 교역조건의 변화를 비교해볼 때 확연히 드러난다. 90년대 중반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던 우리나라 교역조건 지수는 수입단가의 빠른 하락에 힘입어 금년 3월중 지난해 말에 비해 11.9% 상승했다(<그림 5> 참조). 같은 기간중 경쟁국인 일본은 교역조건이 2.4% 상승에 그치고 대만의 경우는 교역조건이 오히려 악화되었다. 대부분의 국가에 비해 우리나라가 교역조건이 크게 개선된 것이다. 2000년대 우리나라는 교역조건의 악화로 인해 생산활동에 비해 소득증가가 미진하게 나타나면서 GDP 성장률 등 지표경기에 비해 체감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이 지속되었는데 금년 들어서는 반대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큰 폭의 마이너스 성장 속에서도 체감경기는 상대적으로 안정되는 모습이다.
정부의 경기부양 규모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
경기부양의 규모도 우리나라가 상대적으로 크다. 정부는 올해 28조원의 추경을 통해 당초 GDP 대비 2.8% 수준이었던 경기부양 규모를 4.3%로 높였다(<그림 6> 참조). 미국의 올해 부양규모가 GDP 대비 2% 내외, 중국이 3% 내외로 추정되는 것에 비해 큰 규모이다. 정부는 4월말까지 연간 예산의 43%를 집행해 목표대비 빠른 예산집행률을 보여 부양의 효과가 조기에 나타나도록 노력하고 있다.
1분기중 정부소비의 증가율은 전기비 3.7%로 나타나 성장률을 0.5%p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그림 7> 참조). 1분기 성장률이 0.1%라는 점을 감안할 때 정부소비 확대가 플러스 성장을 견인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은 1분기중 정부소비가 전기비 마이너스 성장했고 독일, 영국, 일본 등도 1% 미만의 낮은 성장에 머물렀다. 또한 수요부문중 가장 견조한 성장을 보이고 있는 건설투자도 주로 공공건설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어 이 부문에서도 정책효과가 상당히 작용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건설기성액에서 공공부문이 차지하는 비중과 증가율 등을 국민계정에 적용해 계산해보면 1분기 건설투자 증가율 5.3% 중 4.9%가 공공부문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추산된다. 즉 공공부문의 건설투자가 경제성장률을 약 0.7% 끌어올린 셈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정부의 일자리창출, 저소득층 지원 등이 민간소비를 끌어올리는 등의 효과 및 승수효과 등을 고려할 때 정부의 부양책이 1분기 우리경제 성장에 크게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Ⅲ. 경기저점에 대한 판단
경기순환을 나타내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2009년 2월을 바닥으로 이후 두 달 연속 상승세로 돌아섰다(<그림 12> 참조). 경기선행지수 전년동월비 증가율도 4개월 연속 상승해 당분간 순환변동치의 상승기조가 유지될 것임을 예고해주고 있다. 경기저점은 GDP나 산업생산, 동행지수 등의 움직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정되지만 경기동행지수 순환변동치의 저점을 기준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경기는 금년초 저점을 지나 회복국면에 들어선 것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일부 지표에서 저점 신호 나타나
경기의 저점 도래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여러 지표나 분석들이 이용된다. 우선 대표적인 지표인 재고지표를 보자. 재고/출하 비율을 나타내는 재고율 지수는 과거 경기저점에 0~6개월 정도 선행하여 떨어지는 모습을 나타냈다. 경기하강 국면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재고조정이 마무리되어 재고가 줄어들고 수요확대로 출하가 늘면서 재고율이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현재 재고율의 정점은 지난해 12월로 이후 4개월 동안 재고율이 낮아지고 있어 재고신호로만 보면 경기가 저점에 근접했을 가능성이 크게 나타난다(<그림 8> 참조). 재고-출하 싸이클을 보더라도 금년 4월중 재고증가율이 출하증가율보다 더 낮아져 경기가 회복되는 단계에서 나타나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그림 9> 참조)
과거 경기순환 국면에서의 선행지수의 확률분포를 이용해 향후 경기저점 도래확률을 계산하는 네프치 방법을 통해 보면 2009년 4월 현재 경기저점이 조만간 도래할 확률은 약 87%로 나타난다(<그림 10> 참조). 보통 저점 신호의 임계치를 90%로 본다는 점에서 저점 신호에 상당히 근접했다고 볼 수 있다. 과거의 경험을 보면 저점 신호가 도래한 이후 평균 6개월 이후 저점이 도래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90년대 이후 경기수축기간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신호가 나타나기 이전에 이미 저점이 도래한 경우도 두 차례 있어 저점이 이미 도래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연속신호 추출법은 경기선행지수의 전년동월비 증가율이 과거 경기수축기의 동행지수 평균 증가율보다 높아질 때 경기가 저점에 근접한 것으로 판단한다. 현재 선행지수 증가율이 상승하고 있다고는 하나 여전히 전년대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있어 연속신호 추출법에 따르면 저점신호가 나타났다고 보기 어렵다(<그림 11> 참조). 이는 결국 경기가 빠른 속도로 살아나고 있지만 지난해 대비 큰 폭으로 떨어져 있기 때문에 사실상 회복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다만 이번과 같이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서는 급격한 경기하락기에는 선행지수 증가율이 과거 평균 수준으로 높아지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게 되며 경기의 저점은 사전에 나타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외환위기 시기에도 선행지수 증가율이 마이너스를 유지하는 가운데 경기가 저점을 통과한 바 있다.
아직 저점 단정은 어려울 듯
경기저점과 관련된 신호들이 혼재되어 있어 아직 저점도래 여부를 단정하기는 아직 이르다. 경기저점은 경제의 장기적인 추세까지 고려해서 사후적으로 결정되는 것으로 향후 경제 상황의 전개방향에 따라 현재의 저점 여부가 결정된다. 동행지수의 상승 속도가 우리나라의 추세적인 경제성장 속도보다 낮다면 순환변동치는 하락하게 된다. 즉 향후 경기지표의 상승속도가 둔화될 경우 순환변동치가 다시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의 경기순환 국면 중 한 개의 저점이 뚜렷이 나타날 때는 저점의 판정이 쉽지만 순환변동치 값이 등락을 거듭하여 크기가 비슷한 국지적인 저점이 다수 나타날 때에는 경기상승의 모멘텀이 강해지는 시점을 전문가들이 판단하여 결정하게 된다.
예를 들어 2002년 12월 이후의 신용카드 버블붕괴에 따른 경기하강 국면의 경우 2003년 7월 이후 수출의 빠른 회복에 힘입어 순환변동치가 상승세로 돌아선 바 있다(<그림 12> 참조). 그러나 소비부진의 장기화와 함께 수출도 꺾이면서 2004년 2월 이후 순환변동치는 7개월만에 하강국면으로 돌아서 경기저점은 2005년 4월로 잠정 결정되어 있다. 현재 순환변동치가 2개월 연속 상승했고 최근의 선행지수 변화를 감안했을 때 향후 한두달은 상승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이지만 그 이후는 아직 속단하기 어렵다. 현재의 빠른 지표 상승추세가 지속된다면 물론 금년초가 저점이 되겠지만 이후 상승추세가 꺾일 경우 경기싸이클이 등락하면서 저점이 뒤로 미루어질 수 있다.
기술적인 측면을 떠나서 경기저점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경제의 활력이 확대되는, 즉 본격적인 회복의 모멘텀이 발생해 수요확대가 생산증가와 소득증대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이끌어내는 시작점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고용의 회복 여부도 저점 판단의 중요한 근거가 될 것이다. 과거 우리나라 고용추이를 보면 경기저점 이후 큰 시차 없이 뚜렷이 회복되는 모습을 보여왔다(<그림 13> 참조).
재고조정 어느 정도 마무리
결국 경기의 저점 통과 여부는 향후 경제활동의 활력을 지속시킬 수 있는 모멘텀이 얼마나 강한가에 대한 판단에 따르게 될 것이다. 경기가 본격적인 회복국면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수요의 회복과 함께 재고가 충분히 조정되어 수요확대가 생산으로 이어질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재고가 빠르게 줄어든 것은 경기회복에 긍정적 측면으로 작용한다.
재고의 빠른 조정은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미국은 올 3월 현재 제조업 재고액이 5,250억달러로 피크였던 지난해 8월에 비해 6.7% 줄어들었다(<그림 14> 참조). 매월 1%씩 줄어든 셈으로 1960년대 이후 가장 급격한 하락추세이다. 유가하락과 함께 정유 부문 재고가 크게 줄었고 영상음향기기, 자동차 등 소비재 부문의 재고 감소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일본도 지난해 12월 이후 재고물량이 급격하게 줄어들기 시작해 4월까지 10% 이상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재고조정 속도가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보다 더욱 빠르게 나타난다. 제조업 재고지수는 지난해 10월 정점 이후 올 4월까지 월평균 3.2%씩 하락했다. 6개월 동안 재고규모가 17.8% 줄어든 것이다. 이는 과거 외환위기 당시 약 1년 6개월에 걸쳐 월평균 1.6%씩 재고가 줄어든 것보다 더욱 빠른 속도이다.
세계적으로 재고조정이 신속하게 이루어진 것은 심각한 금융시장 불안과 이에 따른 실물경기 급락현상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 속에서 기업들이 생산을 최소한으로 억제하고 재고를 줄이는 노력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특히 수요하락이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되는 내구소비재와 투자 관련 중간재를 중심으로 이러한 현상이 심화되었는데 이들 산업의 비중이 큰 우리나라에서 재고감소 폭이 더욱 컸다고 보여진다. 4월까지 지표를 보면 우리나라의 재고 감소는 컴퓨터와 영상기기, 자동차 등 내구재, 반도체 등 전자부품과 화학 분야에서 빠르게 이루어졌다(<그림 15> 참조).
4월까지 제조업 평균 재고가 17.8% 줄었지만 외환위기 당시 우리나라 재고는 정점 대비 24% 가량 하락한 바 있어 아직 재고조정이 다 마무리 되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향후 높은 재고 수준이 생산을 제약해 경기회복을 지연시킬 우려는 크게 줄어든 것으로 판단된다. 수요확대가 꾸준하게 이루어질 경우 기업들이 생산을 재개할 수 있는 기반은 갖추어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 유리한 여건 점차 축소
경기의 빠른 반등을 가져왔던 수요측면에서의 견인효과들은 하반기중 지속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우선 경기부양이 직접적으로 우리 성장에 기여하는 부분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다음 분기에도 같은 규모의 정책이 집행된다고 했을 때 전기비 성장률 증대효과는 없어지기 때문이다. 부양책의 효과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이에 따른 수요 증가가 민간의 소득 증가로 이어져 민간 수요가 확대되는 선순환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아직은 민간부문의 수요회복 여부가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다.
고환율에 따른 이득도 점차 줄어들 것이다. 4월 이후 원화는 빠르게 절상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이러한 추세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그림 16> 참조). 월 60억 달러 규모의 경상수지 흑자 지속으로 외환보유고가 늘어나는 현상이 이어지면서 우리 경제에 대한 외국투자자의 부정적 인식이 줄어들고 있다. 물론 6월 초 현재의 달러당 1,200원 수준의 환율에서도 아직 가격경쟁력의 이점이 어느 정도 유지되고 또 환율 변화가 수출에 영향을 미치는 시차가 존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분간 수출의 회복추세가 지속되겠지만 환율효과는 점차 줄어들 전망이다.
연초 WTI 기준 배럴당 30달러 대까지 하락했던 국제유가는 6월 9일 현재 배럴당 70달러 가까운 수준까지 급등했다. OPEC의 감산과 경기회복 기대에 따른 수요증가, 달러화 약세 등이 겹치면서 유가가 상승기조를 보이고 있다. 세계경기의 상승 속도가 빠르지 않아 유가 급등은 제한적이겠지만 연초와 같은 수준으로 떨어지기도 어려워 보인다. 향후 교역조건은 다시 악화 추세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되며 이에 따라 소비자들의 실질구매력을 감소시키는 요인으로 다시 작용하게 될 것이다.
하반기 성장속도 둔화 예상
70년대 이후 9차례의 경기순환 국면 중에서 2번은 내수 주도의 회복이었다. 89년 7월 이후의 5순환기에는 주택 200만호 건설계획에 따른 건설투자 확대와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소비가 확대되면서 경기가 빠르게 상승했고 2001년 이후의 8순환기에는 신용카드 급증에 따른 소비확대가 경기회복을 주도했다. 나머지 7차례의 경우는 모두 대외여건 개선 등에 따른 수출의 호조가 경기상승을 이끌었다.
정부가 적극적인 내수부양책을 쓰고 있지만 현재의 경기국면에서 과거 두 번의 사례처럼 국내수요가 크게 활기를 띠면서 경기회복을 이끌어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높은 가계부채를 조정해야 하는 소비자들이 소비성향을 높여가면서 소비를 할 정도로 낙관적이 되기 어렵고 금융기관을 통해 차입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국내 부동산 가격이 급등해 건설투자나 소비를 자극할 가능성도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 유리했던 환경들이 점차 소멸되고 있는 상황에서 향후 국내경기의 상승 추세는 세계경기의 흐름을 따라가게 될 것이다. 수출이 홀로 경기를 선도한다기보다는 수출과 내수가 함께 경기를 이끌게 될 것으로 생각된다. 정부의 경기부양이 민간수요를 자극하면서 국내와 세계부문에서 수요가 같이 늘어나게 될 것이다. 다만 수요의 확대 속도는 빠르지 않을 것이다. 급락에 따른 반등효과가 일단락되면 국내외 경제는 성장세가 둔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경제는 내년까지도 1% 내외의 낮은 성장에 머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금융기관의 기능 정상화 및 가계의 부채조정이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미국을 필두로 유럽, 일본 등 선진국 경기의 저성장이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상대적으로 선전하고 있지만 국내수요를 중심으로 성장하면서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됨에 따라 전반적인 개도국 경제도 빠른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
향후 국내 경기지표들의 상승 속도가 성장의 중기 추세보다 낮아져 동행지수 순환변동치가 다시 하락하더라도 금년 초의 순환변동치 바닥이 매우 깊어서 기술적으로 경기저점이 금년 초반으로(1월 혹은 2월) 결정될 수도 있다. 그러나 경기저점의 의미를 본격적인 회복의 모멘텀이 발생하는 시점이라고 한다면 아직 경기가 회복국면에 들어설만큼 수요측면에서의 견인력은 크지 않다고 판단된다. 하반기부터 중기 성장추세에 미치지 못하는 부진한 상황이 재개된다면 본격적인 경기회복이 시작되는 시점은 금년초가 아니라 금년말이나 내년으로 미루어지게 될 것이며 이 경우 현재의 경기급락에 뒤이은 급반등은 일시적인 조정이라고 평가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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