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 '애플이 TV 산업에 진입한다면'
다른 IT 기기들과 마찬가지로 TV 산업에 있어서도 컨텐트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컨텐츠 서비스에 강점을 가지고 있는 애플과 같은 기업들의 TV 산업 진입 가능성은 매우 높아 보인다. MP3와 휴대폰에서 성공한 애플의 TV 산업 진출은 기존 기업들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출혈 경쟁이 심한 현재의 TV 산업이 제로섬 게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통신과 방송의 융합 촉진, TV 생산의 EMS 인프라 확대, TV에 대한 소비자들의 근본적 인식 변화 등을 통해 TV 산업의 경쟁이 포지티브섬 게임으로 바뀔 수 있다. 컨텐츠와의 연계가 무엇보다도 중요해질 미래 TV 산업에서는 개방형 컨텐츠 서비스를 제공하고 디스플레이 기술을 지속적으로 차별화하며 소비자 감동을 위한 유통 채널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 목 차 >
Ⅰ. 애플이 TV 산업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이유
Ⅱ. 애플이 TV 산업에 들어가지 않는 이유
Ⅲ. 시사점
지난 8월 시장조사기관인 파이퍼 제프리(Piper Jaffray)의 한 애널리스트가 애플이 TV 산업에 새롭게 뛰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하였다. 애플이 2011년에 음악, 영화 뿐만 아니라 게임 및 각종 동영상 등의 구현이 가능한 첨단 엔터테인먼트 TV를 자체브랜드로 출시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그 후 ‘애플이 출혈 경쟁이 심한 TV 산업에 들어올까? 들어온다면 어떤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들어갈까? 아이팟(iPod), 아이폰(iPhone)과의 연계성은 어떻게 될까?’ 등에 대한 많은 의견들을 쏟아져 나오고 있다.
애플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애플은 이미 이러한 기능을 할 수 있는 기기를 팔고 있는데 도대체 뭐가 이슈일까?’ 라고 생각할 수 있다. 사실 애플은 이미 2007년에 ‘애플TV’라는 것을 출시하여 TV 산업에 일부분 발을 담그고 있다. 애플TV는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아이튠스(iTunes) 서비스와 연계하여 음악, 영화, 게임 및 웹(Web) 상의 각종 콘텐츠를 저장하거나 재생하여 TV로 시청할 수 있게 해주는 편리한 기기이다. 애플이 TV 산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한다는 것은 디스플레이를 가지고 있는 TV 수상기 사업을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존에 출시된 애플TV는 디스플레이 화면을 가지고 있지 않은 셋탑박스 형태이다. LG나 삼성, 소니 등이 생산하고 있는 일반 TV가 아니다.
현재 TV 산업은 많은 글로벌 기업과 로컬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고 전후방 산업들과의 교섭력이 약하여 수익성이 박하고 출혈 경쟁이 매우 심한 산업에 속한다. 잘 알려져 있듯이 애플은 높은 투자 수익성(ROIC)를 추구하는 기업이다. 또한 기존에 출시된 애플TV로도 아이튠스나 앱스토어(App Store)를 통해 다양한 콘텐츠를 충분히 제공할 수 있고 아이팟과 아이폰과의 연계 서비스 구현도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플이 기존의 애플TV에 만족하지 않고 디스플레이를 가지고 있는 TV 수상기 산업에 굳이 뛰어든다는 루머가 자꾸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본고에서는 애플이 TV 산업에 들어갈 가능성과 그 조건에 대해 살펴보고 미래 TV 산업의 Winning Points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Ⅰ. 애플이 TV 산업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이유
TV 산업의 경쟁 패러다임 변화
요즘 TV 산업의 가장 큰 이슈는 LED TV이다. 사실 LED TV는 기존 LCD TV와 같은 것이며 단지 백라이트만을 형광램프(CCFL) 대신 발광다이오우드(LED)를 사용한 것이다. 현재 크게 유행하고 있는 에지형 백색 LED LCD TV는 사실 화질 및 성능 측면에서 고급형 CCFL LCD TV보다 좋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자가 높은 가격을 주고 LED TV를 구매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디자인이다. LED를 사용함으로써 기존의 CCFL로는 달성할 수 없는 현격하게 얇은 TV를 만들 수 있다.
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공급되기 시작한 LCD TV는 기존의 CRT 기술로 구현할 수 없었던 박형 TV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CRT TV를 빠르게 대체하기 시작했다. 당시 LCD TV의 가장 큰 이슈는 대형화였다. 30인치 이상의 TV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이 핵심 경쟁력이었고 LCD 패널 기술을 선도했던 일본 기업인 샤프(Sharp)가 시장을 지배하였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LCD TV 산업의 가장 중요한 경쟁 요소는 화질이었다. LCD TV는 CRT TV에 비해 화질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후발 주자였지만 이 분야에 기술적 강점 가지고 있는 소니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2000년 중반 이후 LCD TV의 화질 차이가 기업간에 거의 비슷해지기 시작했고 경쟁패러다임은 기술에서 디자인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삼성은 ‘보르도’라는 차별화된 디자인의 LCD TV를 출시하면서 업계 선두로 올라섰다. 화질 수준이 일반 소비자가 느끼기에 거의 차이가 없어진 요즘에는 디자인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게 되었고 초박형 에지형 LED TV는 화질의 열위에도 불구하고 크게 성공할 수 있었다(<그림 1> 참조).
그렇다면 디자인 이후에 나타날 중요한 경쟁패러다임은 무엇일까? OLED TV나 3D TV 등의 하드웨어적인 차별화도 중요하겠지만 PC나 휴대폰 등 다른 IT 기기에서 경험했듯이 컨텐츠 서비스도 매우 중요한 경쟁 요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TV를 통해 다양한 컨테츠를 보고 싶어하는 소비자의 니즈는 매우 빠르게 커지고 있다. 아이팟과 아이폰을 통해 검증되었듯이 애플은 이 분야에 강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소비자가 원하는 다양한 컨텐츠를 아주 쉽고 편리하게 보고 듣고 즐길 수 있도록 해주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TV 산업의 PC화
얼마 전 소니가 LCD TV 생산 자회사인 소니 바하 캘리포니아의 지분 90%와 멕시코의 티파나 공장의 생산 관련 자산을 대만의 홍하이에 매각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단편적으로 보면 경영실적이 어려운 소니가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자산을 매각했나 보다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보면 TV 산업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사건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전자통신 제품의 임가공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쉽게 말하면 전자제품의 생산을 대신해주는 것을 EMS(Electronic Manufacturing System)라고 하는데 이러한 전문 EMS 기업들은 과거 PC산업의 생산 외주화 현상과 더불어 대만 및 중국을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하였다. 노동 집약적인 성격의 PC 조립 공정은 부가가치가 상대적으로 낮았기 때문에 브랜드 기업 입장에서는 직접 생산라인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는 외부 용역으로 생산 부문을 이전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으로 유리하였다. 더구나 이러한 현상이 보편화됨에 따라 EMS 기업들은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수 있는 수준으로 급성장하였고 이는 브랜드 업체들이 생산을 외주화하는 것을 더 촉진하게 되었다. 그 후 EMS는 PC이외에도 MP3, 게임기, 휴대폰 등으로 사업 영역을 빠르게 넓혀가고 있다.
대표적인 EMS 기업으로는 폭스콘(Foxconn)이란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는 대만의 ‘홍하이(Hon Hai)’를 들 수 있다. 최근 5년간 연평균 성장율이 40%를 넘으며 2008년 매출은 590억 달러에 이른다(<그림 2> 참조). 한마디로 거대 생산 전문기업인 것이다. 델, HP 등의 PC뿐만 아니라 노키아, 모토로라의 휴대폰, 시스코와 썬마이크로시스템즈의 통신 장비, 닌텐도와 소니의 게임기 등 최고 기업들의 최고 제품들을 생산하고 있다. 더구나 애플의 아이팟과 아이폰을 생산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러한 기업이 이제는 EMS의 영역을 TV 산업까지 본격적으로 확대하려고 하고 있다. LCD TV의 최고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 소니의 LCD TV 생산라인을 매입한 것이다.
TV 산업의 EMS가 지금까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LCD TV의 기술이 보편화됨에 따라 많은 업체들이 TV 산업에 뛰어들었고 경쟁이 빠르게 격화되면서 판가가 급락했다. 원가 압박이 점점 심해지면서 일부 선두 기업들이 생산을 아웃소싱(Outsourcing)하기 시작했고 아예 생산 자체를 모두 외부에 맡기고 브랜드 사업만을 하는 비지오(Vizio)와 같은 기업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TV 산업에 있어서는 주로 저가 제품 및 저급(Low Tier)용 제품들이 EMS를 통해 생산되어 왔다. 하지만 브랜드 기업들의 외주 생산 비중은 앞으로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이며 EMS 기업들의 LCD TV 생산 기술 역량도 빠르게 빌드업(Buildup)될 것으로 예상된다. TV 산업이 생산과 브랜드가 완전히 분리되는 PC 산업처럼 될지 아닐지를 속단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애플이 브랜드만으로 TV 사업을 하더라도 충분히 하드웨어적인 프리미엄 제품을 공급받을 수 있는 EMS 환경이 조성되어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새로운 성장의 기회
쓰리스크린(Three Screens)은 최근 IT 업계의 큰 화두 중에 하나이다. 미국의 통신기업인 AT&T가 최초로 주창한 것으로 협의로는 사용자가 동일한 컨텐츠를 모바일 기기의 화면과 PC화면, 그리고 TV의 화면으로 언제 어디서나 끊김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의미하며 조금 더 광의의 개념으로는 유무선 통신과 방송 플랫폼의 컨버전스를 통한 통합 엔터테인먼트 서비스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쓰리스크린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유무선 통신상의 다양한 컨텐츠 및 방송, 영화 등 저작권이 있는 유용한 컨텐츠의 원활한 소싱이 중요할 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최종 접점이 되는 다양한 형태의 하드웨어 기기, 또 이 하드웨어 기기를 서로 연결하여 동기화시킬 수 있는 소프트웨어 기술 및 단거리 무선 송수신 기술 등이 종합적으로 갖추어져야 한다. 애플은 이러한 쓰리스크린을 가장 잘 구현할 가능성이 있는 기업이다. 즉, 애플 입장에서 보면 쓰리스크린은 기존의 사업 역량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성장의 기회를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애플의 핵심 역량은 잘 알려져 있듯이 컨텐츠 서비스의 차별화를 통해 단말기의 차별화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아이튠스를 통해 아이팟의 차별화에 성공하였고 앱스토어를 통해 아이폰의 차별화에 성공하였다. 모바일 기기에서는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도입하여 새로운 시장을 창출했다고 볼 수 있다. 그 다음 애플이 새로운 성장의 축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 쓰리스크린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PC와 TV가 될 가능성이 높다. PC는 애플의 근간이 되는 사업이다. 이와 관련해서 나오고 있는 신제품 루머 중 유력해 보이는 것에는 ‘맥 태블릿’이 있다. 7~10인치 정도 크기의 풀터치 스크린 화면을 갖는 일종의 넷북이다. 맥 태블릿은 기존의 아이팟과 아이폰의 컨텐츠 뿐만 아니라 기존 PC에서 다루던 대부분의 컨텐츠와 e-book 리더 및 고급 게임기의 컨텐츠 등도 수용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 다음으로는 누구든지 쉽게 TV를 생각할 수 있다. 방송 및 BD급 고해상도 영화 등의 컨텐츠를 담을 수 있는 TV는 애플이 쓰리스크린을 완성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기기임에 틀림없다.
애플의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또 하나의 핵심 역량은 막강한 소매(Retail) 판매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애플의 소매 판매망인 'Apple Retail Stores'는 '08년 기준으로 북미 주요 유통 채널 중 가전 매출로 4위를 기록하였다. 실제적으로 도산한 Circuit City를 제외하면 3위에 해당하며 매출 성장 속도도 가장 빠르다.
특히 북미 전자 제품 유통 1위인 베스트바이(Best Buy)와 종합 유통 채널인 월마트(Walmart)는 LG, 삼성, 소니, 파나소닉 등 다양한 브랜드의 다양한 제품(심지어 냉장고, 세탁기 등 생활 가전까지)을 파는데 비해 애플의 리테일 스토어는 애플이 생산하는 소수 IT 제품만을 판다고 생각해 볼 때 실로 놀라운 매출을 올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핵심 요지에 위치해 있는 애플의 오프라인 매장은 단순 판매뿐만 아니라 애플의 혁신 기기를 체험하고 즐길 수 있는 문화 공간으로 발전하고 있어서 마케팅 측면에서 더 큰 효과가 있다. 만약 쓰리스크린과 같이 컨텐츠 연계형 기기가 앞으로 전자 제품의 대세가 된다면 마케팅 및 영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비자들에게 직접 경험하고 느껴보게 하는 것이다. 온라인 혹은 방송 광고로만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베스트바이와 월마트, 그리고 애플 스토어를 모두 가보신 분이라면 쓰리스크린을 소비자들이 쉽게 체험하고 감동하여 구매로 이어지게 하는 데는 애플의 리테일 스토어만한 곳이 없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Ⅱ. 애플이 TV 산업에 들어가지 않는 이유
제로섬 게임은 하지 않는다
현재 TV 산업은 춘추전국시대이다. 일단 참여기업이 너무 많다. 글로벌 시장 점유율 1위인 삼성과 최근 2위로 올라선 LG, 그리고 명예 회복을 노리며 와신상담(臥薪嘗膽)하고 있는 일본 기업들의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또한 글로벌 경제 불황 이후 떠오르고 있는 중국 시장을 기반으로 한 중국 기업들과 저가 유통망을 통해 지갑이 얇아진 소비자들을 적극 공략하면서 급속이 성장하고 있는 퓨나이(Funai)나 비지오 등의 2nd Tier 로컬 기업들 또한 만만하지 않다. 또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TV 산업의 성장은 점점 둔화되고 있다는 것이다(<그림 3> 참조). 현재 LCD TV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TV 산업은 매우 유망해 보인다. 하지만 사실 LCD TV의 빠른 성장은 CRT TV의 대체수요 때문이다. 2~3년 내에 CRT TV의 대체가 거의 끝날 것으로 보이며 그 이후에는 LCD TV의 성장 속도가 현격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현재의 경쟁방식과 시장 성장 속도 하에서 TV 산업은 제로섬(Zero-sum) 게임을 할 수밖에 없다. 애플이 이런 제로섬 게임 시장에 들어갈까? TV 시장은 애플이 성공했던 MP3와 휴대폰(특히, 스마트폰) 시장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휴대폰과 MP3는 애플의 시장 진입시기에 충분히 빠른 성장을 하고 있었다. 또한 개인용 휴대기기이다. 선진국 시장에서는 개인용 기호품 수준을 넘어서기 시작하면서 1인당 1대 이상을 보유하기 시작했고 신흥국 시장에서는 보급율이 낮아 아직도 성장 가능성이 매우 크다. 교체주기도 짧다. 2~3년에 한번씩 새로운 기기로 바꾼다. 반면 TV는 어떠한가? 일단 개인용 기기가 아니고 가족 기기이다. 즉, 한 가구당 1대가 일반적이다. 또한 보급된 지가 오래되어서 웬만한 가정들은 다 보유하고 있다. 교체주기도 길다. 국가마다 차이가 있지만 평균 7년 이상이다. LCD TV가 나오면서 달라진 게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숫자상으로 TV의 성장율은 2000년 이후 더 감소하였다. 여기에 판매 가격을 고려하면 더 차이가 난다. 휴대폰은 신제품이 나오면 기존의 동급 제품이 처음 출시될 때의 가격과 비슷하게 유지된다. 반면 TV는 신제품의 출시 가격이 계속 낮아진다. 앞으로 이러한 경향이 조금은 진정될 것으로 보이지만 디스플레이 패널에 대한 원가 의존도가 높은 이상 가격 경쟁은 계속 나타날 수밖에 없다.
애플은 제로섬 게임 시장에 들어갈 생각이 없을 것이다. 아이팟도 그랬고 아이폰도 그랬다. 단순히 하드웨어 중심의 MP3 시장에 들어가서 기존 경쟁사의 고객을 뺏어오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아이튠즈라는 음악 서비스를 접목시킴으로써 MP3 산업을 제로섬 게임이 아닌 포지티브섬(Positive-sum) 게임으로 바꾸었다. 휴대폰 산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드웨어가 더 좋은 휴대폰을 만들어서 기존의 글로벌 메이저 기업들의 고객을 뺏어오는 것이 아니고 스마트폰에 앱스토어라는 차별화된 서비스를 연결함으로써 고객에게 새로운 가치 창출을 해주면서 시장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생각해 보았을 때 애플이 현재 경쟁구도하의 TV 산업에 들어가는 것은 별로 메리트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포지티브섬 게임의 준비가 부족하다
현재 애플이 디스플레이가 붙어있는 TV를 만들 수 없어서 사업을 안 하는 것일까? 또는 컨텐츠 연결 서비스를 할 수 없어서 사업을 안 하는 것일까? 둘 다 아닌 듯 하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애플은 이미 애플TV라는 제품을 만들어서 PC상에 있는 각종 컨텐츠들을 TV화면으로 쉽게 보여주는 것뿐만 아니라 아이튠스 서비스도 받을 수 있도록 해 놓았다. 또한 PC용 모니터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TV 산업의 가치사슬(Value Chain) 전후방에 대한 사업 경험 및 노하우도 충분히 보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TV 산업을 본격적으로 하지 않는 이유는 포지티브섬 게임을 할 준비가 안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애플이 2007년 야심차게 출시했던 애플TV는 아이팟과 아이폰처럼 컨텐츠를 통해 하드웨어를 차별화하는 동일한 사업모델을 가지고 있다. 근데 왜 애플TV는 잘 안 팔리는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 우선은 이름은 TV인데 화면이 없다는 것이다. 좋게 생각하면 화면 있는 TV를 다시 살 필요 없이 조그마한 박스(Box)만 간단히 연결하면 다양한 컨텐츠를 이용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애플TV를 사더라도 디스플레이 있는 TV를 또 사야 하는 것이다. 소비자는 애플TV를 셋톱 박스의 일종이라고 생각하지 TV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문제는 애플TV가 셋톱 박스는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셋톱 박스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방송을 전달하는 것이다. 애플TV는 방송을 전달하지 못한다. 물론 웹상에 떠도는 녹화 방송의 전송은 가능하나 실시간 방송을 볼 수는 없다. 애플TV가 있더라도 실시간 방송을 보기 위해서는 디스플레이를 가진 TV 수상기와 케이블 TV (CATV) 혹은 인터넷 TV (IPTV)를 볼 수 있는 셋탑 박스를 더 구입해야만 한다. 아무리 다른 기능이 많더라도 전화가 안 되는 아이폰이나 음악을 들을 수 없는 아이팟을 상상해보라.
LCD TV의 원가 구조는 휴대폰과는 매우 다르다(<그림 4> 참조). LCD TV의 원가는 LCD 패널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크다. 휴대폰용 LCD 패널을 생산하는 기업은 상당히 많으며 휴대폰 생산기업에 대해 낮은 교섭력을 갖는다. 반면 TV용 LCD 패널을 생산하는 기업의 수는 TV를 생산하는 기업들에 대비하여 상대적으로 작으며 교섭력이 높다. 특히 시장 지배력과 기술 측면에서 가장 앞서나가고 있는 것은 국내 기업인 LG와 삼성이다. LG와 삼성은 TV 세트(Set) 산업에 있어서도 선두를 달리고 있다. LCD TV와 그 핵심이 되는 LCD 패널을 수직 통합한 사업모델을 가져감으로써 시너지를 내고 있다. 최고의 교섭력을 가지고 있는 애플이라 하더라도 다소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Ⅲ. 시사점
앞에서 기술한 것처럼 애플 입장에서 보면 TV 산업은 매우 매력적인 사업임에는 틀림없으나 포지티브섬 게임을 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다. 하지만 최근 들려오는 몇 가지 소식들은 애플이 TV 산업에도 포지티브섬 게임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한가지는 통방융합과 관련된 것이다. 애플이 아이튠스를 통해 내년 초에 월정액 30달러의 인터넷 TV방송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현재 영화사나 방송국들과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영화사, 방송국 등 컨텐츠 업체들은 새로운 수익원 창출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기존 광고 시장에 미칠 영향을 계산하기에 분주하다고 한다. 이러한 협상이 어떻게 진행되느냐는 CATV나 IPTV 서비스를 제공하는 케이블이나 통신 업계에 미치는 영향도 크겠지만 TV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훨씬 클 수 있다. 애플TV의 가장 큰 결점이었던 실시간 방송 서비스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또 다른 소식은 홍하이의 자회사인 이노룩스(Innolux)와 대만의 LCD 패널 생산 기업인 CMO가 합병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신문 기사에도 나오는 것처럼 LCD 패널 산업에도 큰 영향을 주겠지만 더 큰 영향을 TV 산업에 미칠 수 있다. 이노룩스는 주로 모니터나 노트북용 LCD 패널을 생산하는 조그만 회사이지만 CMO는 TV용 패널을 생산할 수 있는 시장 점유율 세계 4위의 회사이다. 소니의 LCD TV 생산 공장을 인수할 예정인 최고의 EMS 기업, 홍하이가 LCD TV의 핵심 부품인 LCD 패널까지 수직 계열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홍하이에게 대부분의 제품 생산을 맡기고 있는 애플에게는 반가운 소식임에 틀림없다.
미래 TV 산업의 Winning Points
애플의 TV 산업 진출 가능성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휴대폰 산업에서도 그랬듯이 TV 산업에서도 TV의 용도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이 근본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예상하고 있는 것처럼 애플이 추구하는 것은 당연히 컨텐츠 서비스가 차별화되는 TV일 것이다. 아이튠스와 앱스토어의 기존 컨텐츠는 물론이고 쓰리스크린, 실시간 화상 커뮤니케이션 (전화/회의/강의 등), 엔터테인먼트 클라우딩 서비스까지 상상할 수 있는 것은 많이 있다. 미래의 TV는 방송?영화?게임 등을 즐길 수 있는 통합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 기기를 넘어서서 Social Network Platform의 중심 기기가 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① 폐쇄형 보다는 개방형 컨텐츠 서비스
애플이 추구하는 컨텐츠 서비스는 기본적으로 폐쇄성을 가지고 있다. 애플은 각종 컨텐츠 및 어플리케이션을 자사의 OS(Operating System)와 UI(User Interface)에 연결시켜야만 구동할 수 있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서는 애플의 컨텐츠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애플의 하드웨어 기기를 반드시 사야만 한다.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은 아이팟과 아이폰의 성공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하지만 향후 컨텐츠가 다양해지고 소비자가 사용하는 하드웨어기기가 다양해질 경우 이러한 폐쇄형 비즈니스 모델이 꼭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애플이 모든 기기에서 최고 스펙의 제품과 최고 디자인의 제품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소비자들은 컨텐츠 서비스는 그대로 받으면서도 휴대폰은 아이폰은 쓰고 노트북은 소니의 바이오를, TV는 LG의 보더리스를 사고 싶을 수 있다.
현재 TV를 생산하는 기업들은 MP3와 휴대폰에서 겪었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이미 여러 가지 준비를 하고 있다. 다양한 컨텐츠도 확보하고 브로드밴드(Broadband) TV, 위젯 TV 등도 개발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애플이 추구하고 있는 전략을 흉내 내거나 모방하는 방향으로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같은 폐쇄형 전략을 추구해서는 애플을 따라잡기가 어렵다. 반대로 개방형 전략을 추구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애플의 비즈니스 모델에 반하는 많은 기업들이 있다. 구글, 마이크로 소프트 등의 소프트웨어 관련회사들, CATV나 IPTV 관련 케이블이나 통신사들, 더 나아가 광고 수익 및 저작권 보호에 고민하는 콘텐츠 업계들과의 개방형 협업 모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소비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폐쇄형이 아니라 개방형이기 때문이다.
② 지속적 디스플레이 차별화
TV 하드웨어의 핵심은 디스플레이이다.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TV에서 디스플레이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소비자들은 화면 없는 기기를 TV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컨텐츠 서비스가 아무리 차별화되더라도 디스플레이 화질이 확실히 차별화되는 TV라면 소비자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TV 산업에 있어서 3D, UHD (Ultra High-Definition), OLED 등의 새로운 디스플레이 개발은 시장을 선점하고 제품 리더십(Product Leadership)을 유지하는데 여전히 가장 중요한 성공요인(Key Factors of Success)중에 하나가 될 수 있다.
③ 바이어보다 소비자 감동의 유통
요즘은 온라인 유통이 대세이다. TV도 마찬가지이다. 웹 서핑을 해보면 각 기업별 제품의 기본 정보는 물론 성능 비교, 가격 비교까지 나온다. 인터넷 쇼핑몰 별로 어디가 싼지도 다 나온다. 한마디로 TV는 마치 일반 생필품처럼 유통되고 있다. 자동차의 경우도 내외관 디자인과 엔진 및 기어의 성능, 판매 가격 등이 인터넷에 다 나오지만 자동차를 살 때 인터넷으로 사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자동차가 주로 오프라인 매장에서 팔리는 이유는 딜러에 따라 금액 네고(Nego)의 변동성이 매우 큰 것도 있지만 소비자가 실제 한번 시험 운전해 보면서 핸들의 움직임, 소음의 크기, 좌석의 불편함, 시야의 확보성 등을 종합적으로 체험한 후 구매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컨텐츠 연계형 TV가 본격적으로 출시되기 시작하면 애플 리테일 스토어와 같은 오프라인 유통망이 큰 힘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된다. 소비자 직접 체험(User Experience)이 중요한 구매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화면 크기, 휘도, 해상도, 소비전력, 디스플레이 방식 등 하드웨어적인 차별성은 인터넷에 쉽게 나온다. 그것도 숫자로 명확하게. 하지만 쓰리스크린이나 화상 회의의 유용성, 인터랙티브 컨텐츠 사용을 위한 UI의 편리성이나 터치 패널의 감도 등은 직접 사용해 보지 않으면 소비자가 감동하기 어렵다.
현재 TV 선두 기업들은 CES, IFA 등 국제 전시회를 성공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많은 투자를 한다. 주요 바이어(Buyer)를 감동시키고 참관객들에게 좋은 어필을 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앞으로 더 중요한 것은 소비자를 직접 감동시키는 것이다. 베스트바이(Best Buy)나 월마트(Walmart)와 같은 기존의 전자제품 유통 채널과 방식만으로 경쟁사와 차별화된 소비자 감동을 줄 수 있을까?
MP3는 10년 된 산업이고 휴대폰은 20년 된 산업이며 TV는 50년 된 산업이다. 오래된 만큼 성장성도 낮고 수익성도 박하다. 애플이 TV 산업에 진출하는 것은 기존 기업들에게 위기이자 기회이다. 애플은 포지티브섬 게임을 하기 위해서 TV 산업에 들어오지 제로섬 게임을 하기 위해 들어오지는 않을 것이다. ‘소비자의, 소비자에 의한, 소비자를 위한’ 가치를 제공하기 위해 고민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끝>
다른 IT 기기들과 마찬가지로 TV 산업에 있어서도 컨텐트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컨텐츠 서비스에 강점을 가지고 있는 애플과 같은 기업들의 TV 산업 진입 가능성은 매우 높아 보인다. MP3와 휴대폰에서 성공한 애플의 TV 산업 진출은 기존 기업들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출혈 경쟁이 심한 현재의 TV 산업이 제로섬 게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통신과 방송의 융합 촉진, TV 생산의 EMS 인프라 확대, TV에 대한 소비자들의 근본적 인식 변화 등을 통해 TV 산업의 경쟁이 포지티브섬 게임으로 바뀔 수 있다. 컨텐츠와의 연계가 무엇보다도 중요해질 미래 TV 산업에서는 개방형 컨텐츠 서비스를 제공하고 디스플레이 기술을 지속적으로 차별화하며 소비자 감동을 위한 유통 채널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 목 차 >
Ⅰ. 애플이 TV 산업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이유
Ⅱ. 애플이 TV 산업에 들어가지 않는 이유
Ⅲ. 시사점
지난 8월 시장조사기관인 파이퍼 제프리(Piper Jaffray)의 한 애널리스트가 애플이 TV 산업에 새롭게 뛰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하였다. 애플이 2011년에 음악, 영화 뿐만 아니라 게임 및 각종 동영상 등의 구현이 가능한 첨단 엔터테인먼트 TV를 자체브랜드로 출시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그 후 ‘애플이 출혈 경쟁이 심한 TV 산업에 들어올까? 들어온다면 어떤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들어갈까? 아이팟(iPod), 아이폰(iPhone)과의 연계성은 어떻게 될까?’ 등에 대한 많은 의견들을 쏟아져 나오고 있다.
애플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애플은 이미 이러한 기능을 할 수 있는 기기를 팔고 있는데 도대체 뭐가 이슈일까?’ 라고 생각할 수 있다. 사실 애플은 이미 2007년에 ‘애플TV’라는 것을 출시하여 TV 산업에 일부분 발을 담그고 있다. 애플TV는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아이튠스(iTunes) 서비스와 연계하여 음악, 영화, 게임 및 웹(Web) 상의 각종 콘텐츠를 저장하거나 재생하여 TV로 시청할 수 있게 해주는 편리한 기기이다. 애플이 TV 산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한다는 것은 디스플레이를 가지고 있는 TV 수상기 사업을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존에 출시된 애플TV는 디스플레이 화면을 가지고 있지 않은 셋탑박스 형태이다. LG나 삼성, 소니 등이 생산하고 있는 일반 TV가 아니다.
현재 TV 산업은 많은 글로벌 기업과 로컬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고 전후방 산업들과의 교섭력이 약하여 수익성이 박하고 출혈 경쟁이 매우 심한 산업에 속한다. 잘 알려져 있듯이 애플은 높은 투자 수익성(ROIC)를 추구하는 기업이다. 또한 기존에 출시된 애플TV로도 아이튠스나 앱스토어(App Store)를 통해 다양한 콘텐츠를 충분히 제공할 수 있고 아이팟과 아이폰과의 연계 서비스 구현도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플이 기존의 애플TV에 만족하지 않고 디스플레이를 가지고 있는 TV 수상기 산업에 굳이 뛰어든다는 루머가 자꾸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본고에서는 애플이 TV 산업에 들어갈 가능성과 그 조건에 대해 살펴보고 미래 TV 산업의 Winning Points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Ⅰ. 애플이 TV 산업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이유
TV 산업의 경쟁 패러다임 변화
요즘 TV 산업의 가장 큰 이슈는 LED TV이다. 사실 LED TV는 기존 LCD TV와 같은 것이며 단지 백라이트만을 형광램프(CCFL) 대신 발광다이오우드(LED)를 사용한 것이다. 현재 크게 유행하고 있는 에지형 백색 LED LCD TV는 사실 화질 및 성능 측면에서 고급형 CCFL LCD TV보다 좋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자가 높은 가격을 주고 LED TV를 구매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디자인이다. LED를 사용함으로써 기존의 CCFL로는 달성할 수 없는 현격하게 얇은 TV를 만들 수 있다.
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공급되기 시작한 LCD TV는 기존의 CRT 기술로 구현할 수 없었던 박형 TV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CRT TV를 빠르게 대체하기 시작했다. 당시 LCD TV의 가장 큰 이슈는 대형화였다. 30인치 이상의 TV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이 핵심 경쟁력이었고 LCD 패널 기술을 선도했던 일본 기업인 샤프(Sharp)가 시장을 지배하였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LCD TV 산업의 가장 중요한 경쟁 요소는 화질이었다. LCD TV는 CRT TV에 비해 화질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후발 주자였지만 이 분야에 기술적 강점 가지고 있는 소니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2000년 중반 이후 LCD TV의 화질 차이가 기업간에 거의 비슷해지기 시작했고 경쟁패러다임은 기술에서 디자인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삼성은 ‘보르도’라는 차별화된 디자인의 LCD TV를 출시하면서 업계 선두로 올라섰다. 화질 수준이 일반 소비자가 느끼기에 거의 차이가 없어진 요즘에는 디자인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게 되었고 초박형 에지형 LED TV는 화질의 열위에도 불구하고 크게 성공할 수 있었다(<그림 1> 참조).
그렇다면 디자인 이후에 나타날 중요한 경쟁패러다임은 무엇일까? OLED TV나 3D TV 등의 하드웨어적인 차별화도 중요하겠지만 PC나 휴대폰 등 다른 IT 기기에서 경험했듯이 컨텐츠 서비스도 매우 중요한 경쟁 요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TV를 통해 다양한 컨테츠를 보고 싶어하는 소비자의 니즈는 매우 빠르게 커지고 있다. 아이팟과 아이폰을 통해 검증되었듯이 애플은 이 분야에 강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소비자가 원하는 다양한 컨텐츠를 아주 쉽고 편리하게 보고 듣고 즐길 수 있도록 해주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TV 산업의 PC화
얼마 전 소니가 LCD TV 생산 자회사인 소니 바하 캘리포니아의 지분 90%와 멕시코의 티파나 공장의 생산 관련 자산을 대만의 홍하이에 매각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단편적으로 보면 경영실적이 어려운 소니가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자산을 매각했나 보다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보면 TV 산업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사건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전자통신 제품의 임가공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쉽게 말하면 전자제품의 생산을 대신해주는 것을 EMS(Electronic Manufacturing System)라고 하는데 이러한 전문 EMS 기업들은 과거 PC산업의 생산 외주화 현상과 더불어 대만 및 중국을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하였다. 노동 집약적인 성격의 PC 조립 공정은 부가가치가 상대적으로 낮았기 때문에 브랜드 기업 입장에서는 직접 생산라인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는 외부 용역으로 생산 부문을 이전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으로 유리하였다. 더구나 이러한 현상이 보편화됨에 따라 EMS 기업들은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수 있는 수준으로 급성장하였고 이는 브랜드 업체들이 생산을 외주화하는 것을 더 촉진하게 되었다. 그 후 EMS는 PC이외에도 MP3, 게임기, 휴대폰 등으로 사업 영역을 빠르게 넓혀가고 있다.
대표적인 EMS 기업으로는 폭스콘(Foxconn)이란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는 대만의 ‘홍하이(Hon Hai)’를 들 수 있다. 최근 5년간 연평균 성장율이 40%를 넘으며 2008년 매출은 590억 달러에 이른다(<그림 2> 참조). 한마디로 거대 생산 전문기업인 것이다. 델, HP 등의 PC뿐만 아니라 노키아, 모토로라의 휴대폰, 시스코와 썬마이크로시스템즈의 통신 장비, 닌텐도와 소니의 게임기 등 최고 기업들의 최고 제품들을 생산하고 있다. 더구나 애플의 아이팟과 아이폰을 생산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러한 기업이 이제는 EMS의 영역을 TV 산업까지 본격적으로 확대하려고 하고 있다. LCD TV의 최고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 소니의 LCD TV 생산라인을 매입한 것이다.
TV 산업의 EMS가 지금까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LCD TV의 기술이 보편화됨에 따라 많은 업체들이 TV 산업에 뛰어들었고 경쟁이 빠르게 격화되면서 판가가 급락했다. 원가 압박이 점점 심해지면서 일부 선두 기업들이 생산을 아웃소싱(Outsourcing)하기 시작했고 아예 생산 자체를 모두 외부에 맡기고 브랜드 사업만을 하는 비지오(Vizio)와 같은 기업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TV 산업에 있어서는 주로 저가 제품 및 저급(Low Tier)용 제품들이 EMS를 통해 생산되어 왔다. 하지만 브랜드 기업들의 외주 생산 비중은 앞으로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이며 EMS 기업들의 LCD TV 생산 기술 역량도 빠르게 빌드업(Buildup)될 것으로 예상된다. TV 산업이 생산과 브랜드가 완전히 분리되는 PC 산업처럼 될지 아닐지를 속단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애플이 브랜드만으로 TV 사업을 하더라도 충분히 하드웨어적인 프리미엄 제품을 공급받을 수 있는 EMS 환경이 조성되어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새로운 성장의 기회
쓰리스크린(Three Screens)은 최근 IT 업계의 큰 화두 중에 하나이다. 미국의 통신기업인 AT&T가 최초로 주창한 것으로 협의로는 사용자가 동일한 컨텐츠를 모바일 기기의 화면과 PC화면, 그리고 TV의 화면으로 언제 어디서나 끊김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의미하며 조금 더 광의의 개념으로는 유무선 통신과 방송 플랫폼의 컨버전스를 통한 통합 엔터테인먼트 서비스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쓰리스크린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유무선 통신상의 다양한 컨텐츠 및 방송, 영화 등 저작권이 있는 유용한 컨텐츠의 원활한 소싱이 중요할 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최종 접점이 되는 다양한 형태의 하드웨어 기기, 또 이 하드웨어 기기를 서로 연결하여 동기화시킬 수 있는 소프트웨어 기술 및 단거리 무선 송수신 기술 등이 종합적으로 갖추어져야 한다. 애플은 이러한 쓰리스크린을 가장 잘 구현할 가능성이 있는 기업이다. 즉, 애플 입장에서 보면 쓰리스크린은 기존의 사업 역량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성장의 기회를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애플의 핵심 역량은 잘 알려져 있듯이 컨텐츠 서비스의 차별화를 통해 단말기의 차별화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아이튠스를 통해 아이팟의 차별화에 성공하였고 앱스토어를 통해 아이폰의 차별화에 성공하였다. 모바일 기기에서는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도입하여 새로운 시장을 창출했다고 볼 수 있다. 그 다음 애플이 새로운 성장의 축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 쓰리스크린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PC와 TV가 될 가능성이 높다. PC는 애플의 근간이 되는 사업이다. 이와 관련해서 나오고 있는 신제품 루머 중 유력해 보이는 것에는 ‘맥 태블릿’이 있다. 7~10인치 정도 크기의 풀터치 스크린 화면을 갖는 일종의 넷북이다. 맥 태블릿은 기존의 아이팟과 아이폰의 컨텐츠 뿐만 아니라 기존 PC에서 다루던 대부분의 컨텐츠와 e-book 리더 및 고급 게임기의 컨텐츠 등도 수용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 다음으로는 누구든지 쉽게 TV를 생각할 수 있다. 방송 및 BD급 고해상도 영화 등의 컨텐츠를 담을 수 있는 TV는 애플이 쓰리스크린을 완성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기기임에 틀림없다.
애플의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또 하나의 핵심 역량은 막강한 소매(Retail) 판매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애플의 소매 판매망인 'Apple Retail Stores'는 '08년 기준으로 북미 주요 유통 채널 중 가전 매출로 4위를 기록하였다. 실제적으로 도산한 Circuit City를 제외하면 3위에 해당하며 매출 성장 속도도 가장 빠르다.
특히 북미 전자 제품 유통 1위인 베스트바이(Best Buy)와 종합 유통 채널인 월마트(Walmart)는 LG, 삼성, 소니, 파나소닉 등 다양한 브랜드의 다양한 제품(심지어 냉장고, 세탁기 등 생활 가전까지)을 파는데 비해 애플의 리테일 스토어는 애플이 생산하는 소수 IT 제품만을 판다고 생각해 볼 때 실로 놀라운 매출을 올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핵심 요지에 위치해 있는 애플의 오프라인 매장은 단순 판매뿐만 아니라 애플의 혁신 기기를 체험하고 즐길 수 있는 문화 공간으로 발전하고 있어서 마케팅 측면에서 더 큰 효과가 있다. 만약 쓰리스크린과 같이 컨텐츠 연계형 기기가 앞으로 전자 제품의 대세가 된다면 마케팅 및 영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비자들에게 직접 경험하고 느껴보게 하는 것이다. 온라인 혹은 방송 광고로만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베스트바이와 월마트, 그리고 애플 스토어를 모두 가보신 분이라면 쓰리스크린을 소비자들이 쉽게 체험하고 감동하여 구매로 이어지게 하는 데는 애플의 리테일 스토어만한 곳이 없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Ⅱ. 애플이 TV 산업에 들어가지 않는 이유
제로섬 게임은 하지 않는다
현재 TV 산업은 춘추전국시대이다. 일단 참여기업이 너무 많다. 글로벌 시장 점유율 1위인 삼성과 최근 2위로 올라선 LG, 그리고 명예 회복을 노리며 와신상담(臥薪嘗膽)하고 있는 일본 기업들의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또한 글로벌 경제 불황 이후 떠오르고 있는 중국 시장을 기반으로 한 중국 기업들과 저가 유통망을 통해 지갑이 얇아진 소비자들을 적극 공략하면서 급속이 성장하고 있는 퓨나이(Funai)나 비지오 등의 2nd Tier 로컬 기업들 또한 만만하지 않다. 또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TV 산업의 성장은 점점 둔화되고 있다는 것이다(<그림 3> 참조). 현재 LCD TV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TV 산업은 매우 유망해 보인다. 하지만 사실 LCD TV의 빠른 성장은 CRT TV의 대체수요 때문이다. 2~3년 내에 CRT TV의 대체가 거의 끝날 것으로 보이며 그 이후에는 LCD TV의 성장 속도가 현격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현재의 경쟁방식과 시장 성장 속도 하에서 TV 산업은 제로섬(Zero-sum) 게임을 할 수밖에 없다. 애플이 이런 제로섬 게임 시장에 들어갈까? TV 시장은 애플이 성공했던 MP3와 휴대폰(특히, 스마트폰) 시장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휴대폰과 MP3는 애플의 시장 진입시기에 충분히 빠른 성장을 하고 있었다. 또한 개인용 휴대기기이다. 선진국 시장에서는 개인용 기호품 수준을 넘어서기 시작하면서 1인당 1대 이상을 보유하기 시작했고 신흥국 시장에서는 보급율이 낮아 아직도 성장 가능성이 매우 크다. 교체주기도 짧다. 2~3년에 한번씩 새로운 기기로 바꾼다. 반면 TV는 어떠한가? 일단 개인용 기기가 아니고 가족 기기이다. 즉, 한 가구당 1대가 일반적이다. 또한 보급된 지가 오래되어서 웬만한 가정들은 다 보유하고 있다. 교체주기도 길다. 국가마다 차이가 있지만 평균 7년 이상이다. LCD TV가 나오면서 달라진 게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숫자상으로 TV의 성장율은 2000년 이후 더 감소하였다. 여기에 판매 가격을 고려하면 더 차이가 난다. 휴대폰은 신제품이 나오면 기존의 동급 제품이 처음 출시될 때의 가격과 비슷하게 유지된다. 반면 TV는 신제품의 출시 가격이 계속 낮아진다. 앞으로 이러한 경향이 조금은 진정될 것으로 보이지만 디스플레이 패널에 대한 원가 의존도가 높은 이상 가격 경쟁은 계속 나타날 수밖에 없다.
애플은 제로섬 게임 시장에 들어갈 생각이 없을 것이다. 아이팟도 그랬고 아이폰도 그랬다. 단순히 하드웨어 중심의 MP3 시장에 들어가서 기존 경쟁사의 고객을 뺏어오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아이튠즈라는 음악 서비스를 접목시킴으로써 MP3 산업을 제로섬 게임이 아닌 포지티브섬(Positive-sum) 게임으로 바꾸었다. 휴대폰 산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드웨어가 더 좋은 휴대폰을 만들어서 기존의 글로벌 메이저 기업들의 고객을 뺏어오는 것이 아니고 스마트폰에 앱스토어라는 차별화된 서비스를 연결함으로써 고객에게 새로운 가치 창출을 해주면서 시장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생각해 보았을 때 애플이 현재 경쟁구도하의 TV 산업에 들어가는 것은 별로 메리트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포지티브섬 게임의 준비가 부족하다
현재 애플이 디스플레이가 붙어있는 TV를 만들 수 없어서 사업을 안 하는 것일까? 또는 컨텐츠 연결 서비스를 할 수 없어서 사업을 안 하는 것일까? 둘 다 아닌 듯 하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애플은 이미 애플TV라는 제품을 만들어서 PC상에 있는 각종 컨텐츠들을 TV화면으로 쉽게 보여주는 것뿐만 아니라 아이튠스 서비스도 받을 수 있도록 해 놓았다. 또한 PC용 모니터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TV 산업의 가치사슬(Value Chain) 전후방에 대한 사업 경험 및 노하우도 충분히 보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TV 산업을 본격적으로 하지 않는 이유는 포지티브섬 게임을 할 준비가 안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애플이 2007년 야심차게 출시했던 애플TV는 아이팟과 아이폰처럼 컨텐츠를 통해 하드웨어를 차별화하는 동일한 사업모델을 가지고 있다. 근데 왜 애플TV는 잘 안 팔리는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 우선은 이름은 TV인데 화면이 없다는 것이다. 좋게 생각하면 화면 있는 TV를 다시 살 필요 없이 조그마한 박스(Box)만 간단히 연결하면 다양한 컨텐츠를 이용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애플TV를 사더라도 디스플레이 있는 TV를 또 사야 하는 것이다. 소비자는 애플TV를 셋톱 박스의 일종이라고 생각하지 TV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문제는 애플TV가 셋톱 박스는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셋톱 박스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방송을 전달하는 것이다. 애플TV는 방송을 전달하지 못한다. 물론 웹상에 떠도는 녹화 방송의 전송은 가능하나 실시간 방송을 볼 수는 없다. 애플TV가 있더라도 실시간 방송을 보기 위해서는 디스플레이를 가진 TV 수상기와 케이블 TV (CATV) 혹은 인터넷 TV (IPTV)를 볼 수 있는 셋탑 박스를 더 구입해야만 한다. 아무리 다른 기능이 많더라도 전화가 안 되는 아이폰이나 음악을 들을 수 없는 아이팟을 상상해보라.
LCD TV의 원가 구조는 휴대폰과는 매우 다르다(<그림 4> 참조). LCD TV의 원가는 LCD 패널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크다. 휴대폰용 LCD 패널을 생산하는 기업은 상당히 많으며 휴대폰 생산기업에 대해 낮은 교섭력을 갖는다. 반면 TV용 LCD 패널을 생산하는 기업의 수는 TV를 생산하는 기업들에 대비하여 상대적으로 작으며 교섭력이 높다. 특히 시장 지배력과 기술 측면에서 가장 앞서나가고 있는 것은 국내 기업인 LG와 삼성이다. LG와 삼성은 TV 세트(Set) 산업에 있어서도 선두를 달리고 있다. LCD TV와 그 핵심이 되는 LCD 패널을 수직 통합한 사업모델을 가져감으로써 시너지를 내고 있다. 최고의 교섭력을 가지고 있는 애플이라 하더라도 다소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Ⅲ. 시사점
앞에서 기술한 것처럼 애플 입장에서 보면 TV 산업은 매우 매력적인 사업임에는 틀림없으나 포지티브섬 게임을 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다. 하지만 최근 들려오는 몇 가지 소식들은 애플이 TV 산업에도 포지티브섬 게임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한가지는 통방융합과 관련된 것이다. 애플이 아이튠스를 통해 내년 초에 월정액 30달러의 인터넷 TV방송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현재 영화사나 방송국들과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영화사, 방송국 등 컨텐츠 업체들은 새로운 수익원 창출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기존 광고 시장에 미칠 영향을 계산하기에 분주하다고 한다. 이러한 협상이 어떻게 진행되느냐는 CATV나 IPTV 서비스를 제공하는 케이블이나 통신 업계에 미치는 영향도 크겠지만 TV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훨씬 클 수 있다. 애플TV의 가장 큰 결점이었던 실시간 방송 서비스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또 다른 소식은 홍하이의 자회사인 이노룩스(Innolux)와 대만의 LCD 패널 생산 기업인 CMO가 합병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신문 기사에도 나오는 것처럼 LCD 패널 산업에도 큰 영향을 주겠지만 더 큰 영향을 TV 산업에 미칠 수 있다. 이노룩스는 주로 모니터나 노트북용 LCD 패널을 생산하는 조그만 회사이지만 CMO는 TV용 패널을 생산할 수 있는 시장 점유율 세계 4위의 회사이다. 소니의 LCD TV 생산 공장을 인수할 예정인 최고의 EMS 기업, 홍하이가 LCD TV의 핵심 부품인 LCD 패널까지 수직 계열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홍하이에게 대부분의 제품 생산을 맡기고 있는 애플에게는 반가운 소식임에 틀림없다.
미래 TV 산업의 Winning Points
애플의 TV 산업 진출 가능성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휴대폰 산업에서도 그랬듯이 TV 산업에서도 TV의 용도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이 근본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예상하고 있는 것처럼 애플이 추구하는 것은 당연히 컨텐츠 서비스가 차별화되는 TV일 것이다. 아이튠스와 앱스토어의 기존 컨텐츠는 물론이고 쓰리스크린, 실시간 화상 커뮤니케이션 (전화/회의/강의 등), 엔터테인먼트 클라우딩 서비스까지 상상할 수 있는 것은 많이 있다. 미래의 TV는 방송?영화?게임 등을 즐길 수 있는 통합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 기기를 넘어서서 Social Network Platform의 중심 기기가 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① 폐쇄형 보다는 개방형 컨텐츠 서비스
애플이 추구하는 컨텐츠 서비스는 기본적으로 폐쇄성을 가지고 있다. 애플은 각종 컨텐츠 및 어플리케이션을 자사의 OS(Operating System)와 UI(User Interface)에 연결시켜야만 구동할 수 있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서는 애플의 컨텐츠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애플의 하드웨어 기기를 반드시 사야만 한다.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은 아이팟과 아이폰의 성공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하지만 향후 컨텐츠가 다양해지고 소비자가 사용하는 하드웨어기기가 다양해질 경우 이러한 폐쇄형 비즈니스 모델이 꼭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애플이 모든 기기에서 최고 스펙의 제품과 최고 디자인의 제품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소비자들은 컨텐츠 서비스는 그대로 받으면서도 휴대폰은 아이폰은 쓰고 노트북은 소니의 바이오를, TV는 LG의 보더리스를 사고 싶을 수 있다.
현재 TV를 생산하는 기업들은 MP3와 휴대폰에서 겪었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이미 여러 가지 준비를 하고 있다. 다양한 컨텐츠도 확보하고 브로드밴드(Broadband) TV, 위젯 TV 등도 개발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애플이 추구하고 있는 전략을 흉내 내거나 모방하는 방향으로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같은 폐쇄형 전략을 추구해서는 애플을 따라잡기가 어렵다. 반대로 개방형 전략을 추구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애플의 비즈니스 모델에 반하는 많은 기업들이 있다. 구글, 마이크로 소프트 등의 소프트웨어 관련회사들, CATV나 IPTV 관련 케이블이나 통신사들, 더 나아가 광고 수익 및 저작권 보호에 고민하는 콘텐츠 업계들과의 개방형 협업 모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소비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폐쇄형이 아니라 개방형이기 때문이다.
② 지속적 디스플레이 차별화
TV 하드웨어의 핵심은 디스플레이이다.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TV에서 디스플레이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소비자들은 화면 없는 기기를 TV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컨텐츠 서비스가 아무리 차별화되더라도 디스플레이 화질이 확실히 차별화되는 TV라면 소비자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TV 산업에 있어서 3D, UHD (Ultra High-Definition), OLED 등의 새로운 디스플레이 개발은 시장을 선점하고 제품 리더십(Product Leadership)을 유지하는데 여전히 가장 중요한 성공요인(Key Factors of Success)중에 하나가 될 수 있다.
③ 바이어보다 소비자 감동의 유통
요즘은 온라인 유통이 대세이다. TV도 마찬가지이다. 웹 서핑을 해보면 각 기업별 제품의 기본 정보는 물론 성능 비교, 가격 비교까지 나온다. 인터넷 쇼핑몰 별로 어디가 싼지도 다 나온다. 한마디로 TV는 마치 일반 생필품처럼 유통되고 있다. 자동차의 경우도 내외관 디자인과 엔진 및 기어의 성능, 판매 가격 등이 인터넷에 다 나오지만 자동차를 살 때 인터넷으로 사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자동차가 주로 오프라인 매장에서 팔리는 이유는 딜러에 따라 금액 네고(Nego)의 변동성이 매우 큰 것도 있지만 소비자가 실제 한번 시험 운전해 보면서 핸들의 움직임, 소음의 크기, 좌석의 불편함, 시야의 확보성 등을 종합적으로 체험한 후 구매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컨텐츠 연계형 TV가 본격적으로 출시되기 시작하면 애플 리테일 스토어와 같은 오프라인 유통망이 큰 힘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된다. 소비자 직접 체험(User Experience)이 중요한 구매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화면 크기, 휘도, 해상도, 소비전력, 디스플레이 방식 등 하드웨어적인 차별성은 인터넷에 쉽게 나온다. 그것도 숫자로 명확하게. 하지만 쓰리스크린이나 화상 회의의 유용성, 인터랙티브 컨텐츠 사용을 위한 UI의 편리성이나 터치 패널의 감도 등은 직접 사용해 보지 않으면 소비자가 감동하기 어렵다.
현재 TV 선두 기업들은 CES, IFA 등 국제 전시회를 성공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많은 투자를 한다. 주요 바이어(Buyer)를 감동시키고 참관객들에게 좋은 어필을 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앞으로 더 중요한 것은 소비자를 직접 감동시키는 것이다. 베스트바이(Best Buy)나 월마트(Walmart)와 같은 기존의 전자제품 유통 채널과 방식만으로 경쟁사와 차별화된 소비자 감동을 줄 수 있을까?
MP3는 10년 된 산업이고 휴대폰은 20년 된 산업이며 TV는 50년 된 산업이다. 오래된 만큼 성장성도 낮고 수익성도 박하다. 애플이 TV 산업에 진출하는 것은 기존 기업들에게 위기이자 기회이다. 애플은 포지티브섬 게임을 하기 위해서 TV 산업에 들어오지 제로섬 게임을 하기 위해 들어오지는 않을 것이다. ‘소비자의, 소비자에 의한, 소비자를 위한’ 가치를 제공하기 위해 고민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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