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 '기회의 시장, 글로벌 저소득층'
글로벌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선진국들의 성장 한계에 대한 불안이 팽배한 가운데, 40억 인구에 달하는 글로벌 저소득층 시장(Bottom of the Pyramid)이 새로운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가구당 연 소득이 3천 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시장에 어떤 기회가 숨어 있는지 살펴본다.
글로벌 기업들의 이유 있는 남진(南進)
새로운 시장 발굴은 모든 기업들이 늘 고민하는 숙제지만, 최근 들어 그 무게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소비의 큰 손인 미국 등 선진 시장의 수요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또 주목 받던 BRICS 시장은 이미 유망하다는 말이 진부할 만큼 기술, 자본, 마케팅 노하우를 갖춘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력이 높아진 로컬 기업들의 격전지로 변해가고 있다. 이제 발빠른 글로벌 기업들은 BRICS의 중하위 계층과 그 동안 시장으로 고려되지 않았던 아프리카까지도 관심의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일본의 니혼게이자이 신문에 따르면 실제로 유엔개발계획(UNDP)과 같은 국제 기관을 통해 저소득층 시장에 접근하려는 일본 기업들의 상담 건수가 1년 만에 3배로 늘었다고 한다.
성장 동력이 위태로워진 글로벌 기업들이 그 동안 낮은 소득 수준과 열악한 인프라 등으로 방치되다시피 한 저소득층 시장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은 어찌 보면 선택이 아니라 필연적인 결과일지 모른다. 게다가 공정 무역이나 사회적 기업을 지지하는 소비집단이 의미 있는 규모를 형성하게 되면서, 저소득층에게 고용 기회나 인프라를 마련해 주는 사업들이 더 많은 관심을 받게 되었다.
기존 ‘선진 시장의 아웃렛형’ 전략의 한계
사실 저소득층을 자선의 대상이 아닌 시장으로 접근하려는 시도가 아주 최근에야 시작된 것은 아니다. 코카콜라는 이미 90년 전 아프리카 시장에 진출했다. 미시간대학 경영대학원 C.K. 프라할라드 교수는 1998년 ‘제국주의의 종말(the end of imperialism)’을 예언하며 연소득 3,000달러 이하, 소득 피라미드의 최하위 계층인 40억 인구의 BOP(Bottom of the Pyramid) 시장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4~5년 전에는 신흥국의 저가 휴대폰 시장에서 기회를 본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기존의 프리미엄 전략을 수정하고 저가 경쟁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몇몇 성공 사례들을 제외하면 글로벌 기업들의 저소득층 시장에 대한 관심은 아직도 시험적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개도국 시장에 진출하더라도 일부 고소득층에 한정적으로 집중하고 있다. 제품 전략도 기존 시장의 것을 저소득층의 낮은 구매력에 맞추어 조정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품질을 희생해 가격을 낮추는 전략이다. 그러나 이 경우 공들여 쌓은 브랜드 이미지가 훼손되거나 치열한 가격 경쟁의 함정에 빠질 위험이 있다. 브랜드 프리미엄이나 기술 우위 등 가치 높이기 중심의 전략을 펼쳤던 글로벌 기업들이 ‘박리다매’형 사업에 필요한 효율성을 확보하기도 쉽지 않다. 선진 시장과 저소득층 시장의 소득 격차는 종종 단순한 가격 할인이 아닌 혁신에 가까운 효율화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전략은 품질을 유지하는 대신 소량으로 판매해 일회 구입 부담을 줄이는 것이다. 이 전략을 통해 몇몇 소비재 기업들이 기존 브랜드의 프리미엄 이미지는 지키면서 저소득층 소비자들에게 성공적으로 다가갈 수 있었다. 소용량으로 판매되는 코카콜라, 특별한 날에만 쓰게끔 일회용으로 판매되는 유니레버, 개츠비의 헤어 제품 등은 저소득층 소비자들에게 ‘작은 사치’를 안겨 주는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이러한 전략은 소비재 중에서도 용량 조절이 가능하고, 기호품이나 미용 목적이 큰 제품 등 제한적인 범위에서만 효과적으로 활용 가능하다는 단점이 있다. 규모의 효율을 달성할 수 있을만한 시장이 형성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렇게 기존 시장의 제품, 사업모델을 조금 수정한 전략으로는 한계가 있다. 저소득층 시장은 선진 시장의 제품, 사업모델을 염가에 제공하는 아웃렛 매장이 아니다. 단순히 질과 양을 조절하면서 가격을 낮추는 생산자적 방식에서 벗어나 저소득층 소비자의 니즈에 맞는 새로운 제품과 사업 모델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저소득층 시장의 숨겨진 기회
저소득층 시장을 겨냥한 남진(南進) 전략에는 전세계 인구의 70%와, 5조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시장 규모에 대한 기대가 그 바탕에 깔려 있다. 더욱이 세계 자원 기구(World Resource Institute)에 따르면 개도국 경제활동의 70%는 영세 자영업과 같은 비공식 경제에 의존하고 있어 이 시장의 실질적인 잠재력은 공식적인 경제 지표에서 나타나는 수치를 훨씬 상회할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러한 수치는 구매 여력을 고려한 현실적인 가격의 제시나 열악한 시장 인프라 개선이 선행되지 않고는 결코 실현될 수 없는 규모이기도 하다. 안정적인 전기 공급과 인터넷 사용 환경이 조성되지 않는 상황에서 100달러짜리 노트북이 무슨 소용인가? 게다가 하루 2달러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100달러는 여전히 너무 고가다.
따라서 단순히 시장의 총합에만 매료되어 기존 시장의 사업 모델을 들고 저소득층 시장에 진입하는 것은 너무 위험한 선택이다. 이 시장은 고기보다 고기 잡는 도구가 필요한 시장이며, 이를 통해 시장을 성장시키면서 시장 기회도 키우는 과정이 필요하다. 다행스럽게도 오늘날의 IT, 소재 및 생산 기술의 발전은 과거보다 도구를 소유하는 데 드는 비용, 즉 인프라 확보 비용을 감소시켰다. 또 열악한 경제 상황으로 극도의 효율성을 추구할 수 밖에 없는 저소득층의 니즈는 환경 보호나 시간 절약의 차원에서 효율성을 중시하는 선진국들의 과제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이는 친환경, IT 통신과 관련한 선진국 소비자들을 위한 기술이 저소득층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활용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저소득층을 위한 개선이 선진국 소비자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저소득층 시장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혁신의 촉매를 발견하는 것이 이 시장의 또 다른 가치다. 이러한 가능성을 활용해 기회를 포착한 기업들의 사례를 통해 저소득층 시장을 바라보는 관점을 새롭게 정립해 보기로 한다.
1. 저소득층 시장의 제약조건에 주목
저소득층에게 낮은 소득 자체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들이 속한 사회의 낙후된 유통과 저개발 상황 때문에 고소득층보다 더 비싼 가격에 제품을 구입해야 하는 ‘빈곤의 불이익(Poverty Penalty)’에 있다. 예를 들어 자카르타, 마닐라, 나이로비의 슬럼가 주민들은 일반 시민보다 5~10배 비싼 가격에 물을 사 먹어야 한다. 인도 뭄바이 지역에서 저소득층은 하루 돈을 빌리는 데 20%에 달하는 이자를 지급하기도 한다. 글로벌 기업들이 인프라 구축이나 효율적인 대체 수단을 마련하여 빈곤의 불이익 문제를 해결한다면, 이는 해당 사업의 가치를 높일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저소득층 소비 시장의 기반도 향상시킬 수 있다. 다양한 사업 모델을 통해 시장의 제약조건을 기회로 바꾼 기업들의 사례가 있다.
◎ ICT4D를 인프라의 대안으로 활용
ICT4D는 ‘개발을 위한 정보통신 기술(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technology for development)’의 약자로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보통신 기술의 활용을 말한다. 기본 인프라가 취약한 저소득층 사회에서는 ICT4D가 효과적인 인프라 대체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특히 선진국에서는 다양한 대체재들간의 경쟁으로 널리 활용되지 못했던 기술도 저소득층 시장에서는 오히려 밀도 있게 사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선진국 소비자들은 은행 업무를 처리하는 데 인터넷, 휴대폰, 전용 거래 단말기, 혹은 지점에 직접 방문하는 등 다양한 대안이 있다. 하지만 인터넷 사용이 불가능하고 은행까지의 거리가 먼 아프리카에서는 휴대폰이 금융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도구여서 모바일 뱅킹이 더욱 활성화 될 수 있다.
48%의 휴대전화 보급률을 보이는 케냐는 휴대전화 사용자의 약 40%인 8백만명 이상이 모바일 머니를 사용한다. 케냐의 이동통신사 사파리콤(Safaricom)이 2007년부터 시작한 M-PESA라는 모바일 머니 서비스는 농촌에 거주하는 가족에게 생활비를 송금하거나 공과금을 납부하는 데는 물론이고 택시비 지급 등 일상적인 거래에도 종종 활용된다. 또 주로 가축과 같은 현물로 재산을 축적하던 농민들은 천재지변에도 안전한 현금 저축 수단으로 M-PESA를 사용하기도 한다. M-PESA가 엄밀한 의미에서 금융 서비스는 아니기 때문에 은행처럼 이자가 지급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은행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타고 하루를 이동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편리한 대체재임에 틀림없다. 필리핀과 남아프리카에서도 비슷한 서비스가 인기를 모으고 있다고 한다.
이 서비스는 단순히 해당 업체의 수익을 올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모바일 머니의 사용으로 사람들은 생산적인 일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할 수 있게 되었고 궁극적으로 소득이 개선되는 효과를 보았다. 사파리콤은 자체 조사를 통해 M-PESA 서비스를 사용하는 가구의 경우 이전보다 소득이 5~30%정도 증가했다는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월드 뱅크 자료에 따르면 100명당 10개의 전화가 추가 보급되면 개도국 GDP가 0.8% 성장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한다(<그림 3> 참조). 통신 수단 보급이 도로 및 교통 인프라의 부족을 보완하면서 정보 교환과 시장 형성을 돕기 때문이다. 실제로 휴대폰이 친교나 오락 등 가벼운 용도로 사용되는 선진국과 달리 저소득층에서는 생계 수단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휴대폰의 활용 범위를 확대하는 것 만으로도 수많은 사업 기회를 창출하고 경제 발전 효과를 거두는 것이 가능하다. 구글은 아프리카에 휴대폰 기반으로 구글 트레이더(Google Trader)라는 문자 메시지 기반의 비즈니스 매칭 서비스를 제공한다. 농산품이나 원자재 상인들이 언제, 무엇을 제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면 일주일 안에 반경 30km 내에 들어오는 잠재 고객들이 문자를 받을 수 있다. 건당 0.05달러인 문자 메시지 비용과 별도로 0.01달러 정도의 이용료가 부과되는데 개시 5주 만에 백만 건이 등록될 정도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적으로 40억 대 이상의 휴대폰이 보급되었는데 그 가운데 4분의 3이 개도국에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아프리카에서도 10명 가운데 4명은 휴대 전화를 가지고 있다. 저가 휴대폰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노키아는 저소득층 고객들의 다양한 활용 니즈에 주목해 정보 제공 기능을 결합한 휴대폰을 개발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금융이나 상업뿐 아니라 헬스케어 분야에서도 기본 인프라가 취약한 저개발 시장에서 더 빨리 유비쿼터스 시대가 도래할지 모른다고 전망하고 있다.
◎ 인프라 사용의 경제성을 제고
저소득층의 전기, 물, 냉방, 그리고 다른 모든 기본 인프라의 부족은 이 시장의 접근을 어렵게 하는 장애요소일 수도 있지만,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시장 기회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기술의 발전은 원가 절감, 대체 에너지원의 활용 등을 통해 저소득층의 삶의 질을 개선시킬 수 있는 도구들을 이전보다 경제적인 가격에 이용할 수 있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저소득층 소비자들에게는 가장 효율적이라는 대안조차도 비싸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인도의 한 중소기업이 농촌지역의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출시한 태양광 충전식 랜턴이 예가 될 수 있다. 이 제품은 전기를 사용할 필요도 없고 랜턴 가격도 30달러로 비교적 저렴해 양초를 사용하는 것 보다 장기적으로는 훨씬 경제적이다. 하지만 잠재 구매자인 저소득층 농민들에게는 구입가인 30달러가 2주치 소득과 맞먹어 선뜻 구매하기 어려웠다. 결국 기존 제품대비 획기적인 효율성과 가격을 제시했지만 잠재 소비자의 경제적 능력에 도달하는 데 실패해 2001년 출시된 이후 연간 5천여 개 밖에 판매되지 못했다.
최소한의 품질을 유지하면서 가격을 낮추는 데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저소득층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한 기업들은 종종 구매가 아닌 이용에 따라 지불하는 방식(Pay per use)으로 사업 모델을 설계해 높은 초기 비용의 부담을 줄여준다. 세계적인 재봉틀 생산기업인 아이엠 싱거(I.M.Singer & Company)사는 약 150년 전부터 이미 소액 할부 판매 방식을 도입해 저소득층 여성들에게도 널리 제품을 보급해 왔다. 최근에는 일본 오토바이 제조사들이 저소득층에게 소액 할부 판매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 재봉틀이나 오토바이 모두 대부분 생계 목적으로 구입하는 제품이기 때문에 구매자들의 신용도 양호한 편이라고 한다.
개인이 따로 비용을 들여 해야 했던 일들을 공동으로 처리해 비용을 낮추는 것도 가능하다. 인도의 비영리기구인 바이라주 재단(Byrraju Foundation)은 마을 공동 정화장을 설치해 대량으로 정수한 물을 판매한다. 같은 양의 물을 얻기 위해 개인이 가정용 필터를 사용하는 비용의 절반밖에 들지 않기 때문에 훨씬 경제적이다. 현재까지 인도 전역에 60개의 정수 시설을 지어 90만 명에게 식수를 공급하고 있다.
2. 저소득층을 위한 혁신의 '우연한 부가가치'
저소득층 시장의 가치에 최초로 주목한 C.K. 프라할라드를 비롯해 많은 전문가들은 저소득층이 직면한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선진 시장에도 적용될 수 있는 혁신이 발견될 수 있다는 ‘역 혁신(Reverse Innovation)’ 을 강조하고 있다. 사실 소득이 낮다고 해서 기술에 대한 니즈도 낮은 것은 아니다.
앞선 사례들에서 보았듯이 인프라 부족을 대체할 신기술에 대한 요구나 수용도는 선진국 소비자들 못지 않게 높을 수 있다. 특히 고효율과 친환경이라는 최근의 기술 발전 방향은 이전의 자원 소모적인 방식과 달리 개도국과 선진국 소비자 모두에게 유리한 지향점이기 때문에 역 혁신이 일어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교수가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저렴한 교육용 PC를 보급하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One Laptop per Child’ 프로젝트가 넷북의 개발로 연결되었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프로젝트는 목표 수준까지 원가를 낮추는 데 실패했지만, 중산층 고객들은 필요한 기능만 탑재된 작고 저렴한 노트북이라는 대체재를 얻을 수 있었다. 저소득층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얻어낸 혁신을 지렛대 삼아 더 큰 시장 기회를 만들어 가고 있는 기업들의 사례가 있다.
◎ 제품 혁신 사례
저소득층 시장은 선진 시장과는 다른 제약과 니즈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시장에 특화된 제품이 필요하다. 글로벌 의료기기 시장의 선두 업체인 GE 헬스케어도 선진 의료 시장을 타깃으로 한 초음파 기기를 신흥 시장에 그대로 출시했다가 고배를 마셨다. 의료 인프라가 열악한 중국 농촌 지역 등 신흥국 저소득층 시장에서는 최고급 기술보다 합리적인 가격과 여러 곳에서 활용할 수 있는 이동성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GE는 현지 합작 기업과 이동이 편리한 초음파 기기를 개발해 기존 제품의 15%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격에 판매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신흥 시장을 타깃으로 한 이 제품은 애초에 목표로 했던 저가 시장뿐 아니라 선진 시장에서도 새로운 수요를 창출했다. 응급 진단이나 수술실 간에 이동하면서 사용하는 용도로 각광받게 된 것이다. 저소득층을 위한 제품이 우연히 선진 시장에 역 이용되는 효과까지 더해져 이 제품은 2008년 경제 위기 상황에서도 50~60%의 매출 성장을 달성할 수 있었다.
GE 헬스케어의 초음파 기기가 의도치 않게 적용 기회를 확장한 경우라면, 휴대폰 제조사 노키아는 저소득층 소비자들의 제품 활용 방식을 선진 시장을 위한 제품 개발에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한 사례다. 아프리카에서는 선진국만큼 휴대전화 보급률이 높지 않아 여러 사람이 함께 휴대폰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노키아는 가나와 모로코의 젊은이들이 통화 내용을 함께 들을 때 휴대폰을 다루는 방법을 연구했다. 이 결과는 아프리카 소비자들을 위한 제품 개선뿐 아니라 음악이나 동영상을 여러 사람이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선진 시장용 신제품을 개발할 때 스피커의 위치를 결정하는 중요한 정보로 활용되었다.
◎ 프로세스 혁신 사례
저소득층 시장은 어쩔 수 없는 마진의 한계로 효율 극대화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따라서 저소득층 시장에서 살아남은 기업들은 대부분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움직이는 법을 체득해 왔으며 때로는 이 프로세스가 선진 시장에도 적용될 수 있다. 최근에는 선진 금융기관들도 수익 모델을 다변화시키기 위해 소액 대출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방글라데시의 그라민 은행(Grameen Bank)과 같이 오랫동안 담보 없는 고위험군을 관리해 온 기관들의 노하우에 주목하고 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유제품 생산 업체인 다농(Danone)은 방글라데시에 진출할 때 냉장 설비를 갖출만한 자금력이 부족한 지역 파트너의 경제력을 감안해 일반적인 다농 공장 표준의 100분의 1 규모로 생산공장을 만들었다. 소규모 생산으로 작은 지역 수요에만 대응해 냉장 설비의 필요성은 줄이면서도, 프로세스의 혁신으로 다농의 기존 대형 생산 설비와 같은 비용에 요거트를 생산할 수 있었다. 방글라데시에서 개발된 이 공정은 인도네시아와 같은 주변 저개발 국가뿐 아니라 프랑스 본국의 저가형 유제품 생산에도 활용되었다.
◎ 서비스 혁신 사례
선진국을 능가하는 혁신은 서비스에서도 가능하다. 인도의 아라빈드 안과 병원(Aravind Eye Care Hospital)은 빈곤층을 대상으로 한 무료 시술소에서 출발해 현재 연 240만 명의 외래 환자 진료와 28만 여 건의 수술을 하는 세계 최대의 안과 병원이 되었다. 아라빈드 병원은 수술실에서 여러 명의 의사가 동시에 집도하고 한 환자의 수술이 끝나면 뒤를 돌아 바로 다른 환자를 수술할 수 있는 표준화 된 시스템을 구축했다. 또 개당 200~300달러 하는 인공 수정체를 자체 생산하여 5달러 수준으로 가격을 낮추었다. 이러한 효율 극대화로 30%에 달하는 무료 환자 비율과 저렴한 진료비에도 불구하고 40%가 넘는 높은 수익률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병원의 경쟁력은 저렴한 비용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의사 한 명 당 수술 건수가 많아 의사들의 수술 실력이 향상되었고, 이 병원을 거쳐가면 최고의 실력을 입증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명문 의대 졸업생들도 이 곳에 오기를 선호했다. 양질의 의료진 확보는 아라빈드 병원이 가격에 이어 서비스 품질까지 앞서 나가게 한 경쟁력의 비결이다. 극빈층을 대상으로 시작한 자선 사업의 서비스 혁신이 이제는 일반 고객 및 해외 환자까지도 끌어들이고 있다.
멀리 기회를 봐야 하는 시장
저소득층 시장은 글로벌 기업들이 기존에 경험해 온 시장과는 다른 니즈와 특징을 가진 시장이다. 낮은 소득과 열악한 인프라를 비롯해 이 시장에 산재해 있는 위험 요소들을 하나씩 풀어나가면서 결실을 맺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저소득층 대상 사업의 성공 모델로 가장 많이 꼽히는 소액금융도 1970년대 인도네시아, 브라질, 방글라데시 등에 시범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해 현재와 같은 형태로 완성되기까지는 30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되었다. 특히 앞으로 저소득층 시장과 선진 시장 모두에게 절실한 환경 친화적이고 고효율적인 기술 개발은 오랜 시간에 걸친 R&D 투자가 요구된다. 따라서 지금까지는 저소득층 시장의 개발 과정에 정부나 NGO 등이 앞장섰지만 앞으로는 기업들의 참여 필요성이 더욱 높아질 것이다. 기업은 많은 자원과 합리적인 운영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NGO 및 지역사회와의 연합에서도 각각을 연결시켜 줄 수 있는 중추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글로벌 저소득층 시장이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인지는 그 중추적 역할을 하는 기업들이 지금부터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달려 있다. <끝>
글로벌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선진국들의 성장 한계에 대한 불안이 팽배한 가운데, 40억 인구에 달하는 글로벌 저소득층 시장(Bottom of the Pyramid)이 새로운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가구당 연 소득이 3천 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시장에 어떤 기회가 숨어 있는지 살펴본다.
글로벌 기업들의 이유 있는 남진(南進)
새로운 시장 발굴은 모든 기업들이 늘 고민하는 숙제지만, 최근 들어 그 무게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소비의 큰 손인 미국 등 선진 시장의 수요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또 주목 받던 BRICS 시장은 이미 유망하다는 말이 진부할 만큼 기술, 자본, 마케팅 노하우를 갖춘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력이 높아진 로컬 기업들의 격전지로 변해가고 있다. 이제 발빠른 글로벌 기업들은 BRICS의 중하위 계층과 그 동안 시장으로 고려되지 않았던 아프리카까지도 관심의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일본의 니혼게이자이 신문에 따르면 실제로 유엔개발계획(UNDP)과 같은 국제 기관을 통해 저소득층 시장에 접근하려는 일본 기업들의 상담 건수가 1년 만에 3배로 늘었다고 한다.
성장 동력이 위태로워진 글로벌 기업들이 그 동안 낮은 소득 수준과 열악한 인프라 등으로 방치되다시피 한 저소득층 시장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은 어찌 보면 선택이 아니라 필연적인 결과일지 모른다. 게다가 공정 무역이나 사회적 기업을 지지하는 소비집단이 의미 있는 규모를 형성하게 되면서, 저소득층에게 고용 기회나 인프라를 마련해 주는 사업들이 더 많은 관심을 받게 되었다.
기존 ‘선진 시장의 아웃렛형’ 전략의 한계
사실 저소득층을 자선의 대상이 아닌 시장으로 접근하려는 시도가 아주 최근에야 시작된 것은 아니다. 코카콜라는 이미 90년 전 아프리카 시장에 진출했다. 미시간대학 경영대학원 C.K. 프라할라드 교수는 1998년 ‘제국주의의 종말(the end of imperialism)’을 예언하며 연소득 3,000달러 이하, 소득 피라미드의 최하위 계층인 40억 인구의 BOP(Bottom of the Pyramid) 시장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4~5년 전에는 신흥국의 저가 휴대폰 시장에서 기회를 본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기존의 프리미엄 전략을 수정하고 저가 경쟁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몇몇 성공 사례들을 제외하면 글로벌 기업들의 저소득층 시장에 대한 관심은 아직도 시험적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개도국 시장에 진출하더라도 일부 고소득층에 한정적으로 집중하고 있다. 제품 전략도 기존 시장의 것을 저소득층의 낮은 구매력에 맞추어 조정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품질을 희생해 가격을 낮추는 전략이다. 그러나 이 경우 공들여 쌓은 브랜드 이미지가 훼손되거나 치열한 가격 경쟁의 함정에 빠질 위험이 있다. 브랜드 프리미엄이나 기술 우위 등 가치 높이기 중심의 전략을 펼쳤던 글로벌 기업들이 ‘박리다매’형 사업에 필요한 효율성을 확보하기도 쉽지 않다. 선진 시장과 저소득층 시장의 소득 격차는 종종 단순한 가격 할인이 아닌 혁신에 가까운 효율화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전략은 품질을 유지하는 대신 소량으로 판매해 일회 구입 부담을 줄이는 것이다. 이 전략을 통해 몇몇 소비재 기업들이 기존 브랜드의 프리미엄 이미지는 지키면서 저소득층 소비자들에게 성공적으로 다가갈 수 있었다. 소용량으로 판매되는 코카콜라, 특별한 날에만 쓰게끔 일회용으로 판매되는 유니레버, 개츠비의 헤어 제품 등은 저소득층 소비자들에게 ‘작은 사치’를 안겨 주는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이러한 전략은 소비재 중에서도 용량 조절이 가능하고, 기호품이나 미용 목적이 큰 제품 등 제한적인 범위에서만 효과적으로 활용 가능하다는 단점이 있다. 규모의 효율을 달성할 수 있을만한 시장이 형성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렇게 기존 시장의 제품, 사업모델을 조금 수정한 전략으로는 한계가 있다. 저소득층 시장은 선진 시장의 제품, 사업모델을 염가에 제공하는 아웃렛 매장이 아니다. 단순히 질과 양을 조절하면서 가격을 낮추는 생산자적 방식에서 벗어나 저소득층 소비자의 니즈에 맞는 새로운 제품과 사업 모델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저소득층 시장의 숨겨진 기회
저소득층 시장을 겨냥한 남진(南進) 전략에는 전세계 인구의 70%와, 5조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시장 규모에 대한 기대가 그 바탕에 깔려 있다. 더욱이 세계 자원 기구(World Resource Institute)에 따르면 개도국 경제활동의 70%는 영세 자영업과 같은 비공식 경제에 의존하고 있어 이 시장의 실질적인 잠재력은 공식적인 경제 지표에서 나타나는 수치를 훨씬 상회할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러한 수치는 구매 여력을 고려한 현실적인 가격의 제시나 열악한 시장 인프라 개선이 선행되지 않고는 결코 실현될 수 없는 규모이기도 하다. 안정적인 전기 공급과 인터넷 사용 환경이 조성되지 않는 상황에서 100달러짜리 노트북이 무슨 소용인가? 게다가 하루 2달러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100달러는 여전히 너무 고가다.
따라서 단순히 시장의 총합에만 매료되어 기존 시장의 사업 모델을 들고 저소득층 시장에 진입하는 것은 너무 위험한 선택이다. 이 시장은 고기보다 고기 잡는 도구가 필요한 시장이며, 이를 통해 시장을 성장시키면서 시장 기회도 키우는 과정이 필요하다. 다행스럽게도 오늘날의 IT, 소재 및 생산 기술의 발전은 과거보다 도구를 소유하는 데 드는 비용, 즉 인프라 확보 비용을 감소시켰다. 또 열악한 경제 상황으로 극도의 효율성을 추구할 수 밖에 없는 저소득층의 니즈는 환경 보호나 시간 절약의 차원에서 효율성을 중시하는 선진국들의 과제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이는 친환경, IT 통신과 관련한 선진국 소비자들을 위한 기술이 저소득층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활용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저소득층을 위한 개선이 선진국 소비자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저소득층 시장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혁신의 촉매를 발견하는 것이 이 시장의 또 다른 가치다. 이러한 가능성을 활용해 기회를 포착한 기업들의 사례를 통해 저소득층 시장을 바라보는 관점을 새롭게 정립해 보기로 한다.
1. 저소득층 시장의 제약조건에 주목
저소득층에게 낮은 소득 자체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들이 속한 사회의 낙후된 유통과 저개발 상황 때문에 고소득층보다 더 비싼 가격에 제품을 구입해야 하는 ‘빈곤의 불이익(Poverty Penalty)’에 있다. 예를 들어 자카르타, 마닐라, 나이로비의 슬럼가 주민들은 일반 시민보다 5~10배 비싼 가격에 물을 사 먹어야 한다. 인도 뭄바이 지역에서 저소득층은 하루 돈을 빌리는 데 20%에 달하는 이자를 지급하기도 한다. 글로벌 기업들이 인프라 구축이나 효율적인 대체 수단을 마련하여 빈곤의 불이익 문제를 해결한다면, 이는 해당 사업의 가치를 높일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저소득층 소비 시장의 기반도 향상시킬 수 있다. 다양한 사업 모델을 통해 시장의 제약조건을 기회로 바꾼 기업들의 사례가 있다.
◎ ICT4D를 인프라의 대안으로 활용
ICT4D는 ‘개발을 위한 정보통신 기술(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technology for development)’의 약자로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보통신 기술의 활용을 말한다. 기본 인프라가 취약한 저소득층 사회에서는 ICT4D가 효과적인 인프라 대체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특히 선진국에서는 다양한 대체재들간의 경쟁으로 널리 활용되지 못했던 기술도 저소득층 시장에서는 오히려 밀도 있게 사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선진국 소비자들은 은행 업무를 처리하는 데 인터넷, 휴대폰, 전용 거래 단말기, 혹은 지점에 직접 방문하는 등 다양한 대안이 있다. 하지만 인터넷 사용이 불가능하고 은행까지의 거리가 먼 아프리카에서는 휴대폰이 금융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도구여서 모바일 뱅킹이 더욱 활성화 될 수 있다.
48%의 휴대전화 보급률을 보이는 케냐는 휴대전화 사용자의 약 40%인 8백만명 이상이 모바일 머니를 사용한다. 케냐의 이동통신사 사파리콤(Safaricom)이 2007년부터 시작한 M-PESA라는 모바일 머니 서비스는 농촌에 거주하는 가족에게 생활비를 송금하거나 공과금을 납부하는 데는 물론이고 택시비 지급 등 일상적인 거래에도 종종 활용된다. 또 주로 가축과 같은 현물로 재산을 축적하던 농민들은 천재지변에도 안전한 현금 저축 수단으로 M-PESA를 사용하기도 한다. M-PESA가 엄밀한 의미에서 금융 서비스는 아니기 때문에 은행처럼 이자가 지급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은행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타고 하루를 이동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편리한 대체재임에 틀림없다. 필리핀과 남아프리카에서도 비슷한 서비스가 인기를 모으고 있다고 한다.
이 서비스는 단순히 해당 업체의 수익을 올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모바일 머니의 사용으로 사람들은 생산적인 일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할 수 있게 되었고 궁극적으로 소득이 개선되는 효과를 보았다. 사파리콤은 자체 조사를 통해 M-PESA 서비스를 사용하는 가구의 경우 이전보다 소득이 5~30%정도 증가했다는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월드 뱅크 자료에 따르면 100명당 10개의 전화가 추가 보급되면 개도국 GDP가 0.8% 성장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한다(<그림 3> 참조). 통신 수단 보급이 도로 및 교통 인프라의 부족을 보완하면서 정보 교환과 시장 형성을 돕기 때문이다. 실제로 휴대폰이 친교나 오락 등 가벼운 용도로 사용되는 선진국과 달리 저소득층에서는 생계 수단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휴대폰의 활용 범위를 확대하는 것 만으로도 수많은 사업 기회를 창출하고 경제 발전 효과를 거두는 것이 가능하다. 구글은 아프리카에 휴대폰 기반으로 구글 트레이더(Google Trader)라는 문자 메시지 기반의 비즈니스 매칭 서비스를 제공한다. 농산품이나 원자재 상인들이 언제, 무엇을 제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면 일주일 안에 반경 30km 내에 들어오는 잠재 고객들이 문자를 받을 수 있다. 건당 0.05달러인 문자 메시지 비용과 별도로 0.01달러 정도의 이용료가 부과되는데 개시 5주 만에 백만 건이 등록될 정도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적으로 40억 대 이상의 휴대폰이 보급되었는데 그 가운데 4분의 3이 개도국에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아프리카에서도 10명 가운데 4명은 휴대 전화를 가지고 있다. 저가 휴대폰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노키아는 저소득층 고객들의 다양한 활용 니즈에 주목해 정보 제공 기능을 결합한 휴대폰을 개발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금융이나 상업뿐 아니라 헬스케어 분야에서도 기본 인프라가 취약한 저개발 시장에서 더 빨리 유비쿼터스 시대가 도래할지 모른다고 전망하고 있다.
◎ 인프라 사용의 경제성을 제고
저소득층의 전기, 물, 냉방, 그리고 다른 모든 기본 인프라의 부족은 이 시장의 접근을 어렵게 하는 장애요소일 수도 있지만,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시장 기회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기술의 발전은 원가 절감, 대체 에너지원의 활용 등을 통해 저소득층의 삶의 질을 개선시킬 수 있는 도구들을 이전보다 경제적인 가격에 이용할 수 있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저소득층 소비자들에게는 가장 효율적이라는 대안조차도 비싸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인도의 한 중소기업이 농촌지역의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출시한 태양광 충전식 랜턴이 예가 될 수 있다. 이 제품은 전기를 사용할 필요도 없고 랜턴 가격도 30달러로 비교적 저렴해 양초를 사용하는 것 보다 장기적으로는 훨씬 경제적이다. 하지만 잠재 구매자인 저소득층 농민들에게는 구입가인 30달러가 2주치 소득과 맞먹어 선뜻 구매하기 어려웠다. 결국 기존 제품대비 획기적인 효율성과 가격을 제시했지만 잠재 소비자의 경제적 능력에 도달하는 데 실패해 2001년 출시된 이후 연간 5천여 개 밖에 판매되지 못했다.
최소한의 품질을 유지하면서 가격을 낮추는 데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저소득층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한 기업들은 종종 구매가 아닌 이용에 따라 지불하는 방식(Pay per use)으로 사업 모델을 설계해 높은 초기 비용의 부담을 줄여준다. 세계적인 재봉틀 생산기업인 아이엠 싱거(I.M.Singer & Company)사는 약 150년 전부터 이미 소액 할부 판매 방식을 도입해 저소득층 여성들에게도 널리 제품을 보급해 왔다. 최근에는 일본 오토바이 제조사들이 저소득층에게 소액 할부 판매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 재봉틀이나 오토바이 모두 대부분 생계 목적으로 구입하는 제품이기 때문에 구매자들의 신용도 양호한 편이라고 한다.
개인이 따로 비용을 들여 해야 했던 일들을 공동으로 처리해 비용을 낮추는 것도 가능하다. 인도의 비영리기구인 바이라주 재단(Byrraju Foundation)은 마을 공동 정화장을 설치해 대량으로 정수한 물을 판매한다. 같은 양의 물을 얻기 위해 개인이 가정용 필터를 사용하는 비용의 절반밖에 들지 않기 때문에 훨씬 경제적이다. 현재까지 인도 전역에 60개의 정수 시설을 지어 90만 명에게 식수를 공급하고 있다.
2. 저소득층을 위한 혁신의 '우연한 부가가치'
저소득층 시장의 가치에 최초로 주목한 C.K. 프라할라드를 비롯해 많은 전문가들은 저소득층이 직면한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선진 시장에도 적용될 수 있는 혁신이 발견될 수 있다는 ‘역 혁신(Reverse Innovation)’ 을 강조하고 있다. 사실 소득이 낮다고 해서 기술에 대한 니즈도 낮은 것은 아니다.
앞선 사례들에서 보았듯이 인프라 부족을 대체할 신기술에 대한 요구나 수용도는 선진국 소비자들 못지 않게 높을 수 있다. 특히 고효율과 친환경이라는 최근의 기술 발전 방향은 이전의 자원 소모적인 방식과 달리 개도국과 선진국 소비자 모두에게 유리한 지향점이기 때문에 역 혁신이 일어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교수가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저렴한 교육용 PC를 보급하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One Laptop per Child’ 프로젝트가 넷북의 개발로 연결되었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프로젝트는 목표 수준까지 원가를 낮추는 데 실패했지만, 중산층 고객들은 필요한 기능만 탑재된 작고 저렴한 노트북이라는 대체재를 얻을 수 있었다. 저소득층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얻어낸 혁신을 지렛대 삼아 더 큰 시장 기회를 만들어 가고 있는 기업들의 사례가 있다.
◎ 제품 혁신 사례
저소득층 시장은 선진 시장과는 다른 제약과 니즈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시장에 특화된 제품이 필요하다. 글로벌 의료기기 시장의 선두 업체인 GE 헬스케어도 선진 의료 시장을 타깃으로 한 초음파 기기를 신흥 시장에 그대로 출시했다가 고배를 마셨다. 의료 인프라가 열악한 중국 농촌 지역 등 신흥국 저소득층 시장에서는 최고급 기술보다 합리적인 가격과 여러 곳에서 활용할 수 있는 이동성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GE는 현지 합작 기업과 이동이 편리한 초음파 기기를 개발해 기존 제품의 15%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격에 판매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신흥 시장을 타깃으로 한 이 제품은 애초에 목표로 했던 저가 시장뿐 아니라 선진 시장에서도 새로운 수요를 창출했다. 응급 진단이나 수술실 간에 이동하면서 사용하는 용도로 각광받게 된 것이다. 저소득층을 위한 제품이 우연히 선진 시장에 역 이용되는 효과까지 더해져 이 제품은 2008년 경제 위기 상황에서도 50~60%의 매출 성장을 달성할 수 있었다.
GE 헬스케어의 초음파 기기가 의도치 않게 적용 기회를 확장한 경우라면, 휴대폰 제조사 노키아는 저소득층 소비자들의 제품 활용 방식을 선진 시장을 위한 제품 개발에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한 사례다. 아프리카에서는 선진국만큼 휴대전화 보급률이 높지 않아 여러 사람이 함께 휴대폰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노키아는 가나와 모로코의 젊은이들이 통화 내용을 함께 들을 때 휴대폰을 다루는 방법을 연구했다. 이 결과는 아프리카 소비자들을 위한 제품 개선뿐 아니라 음악이나 동영상을 여러 사람이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선진 시장용 신제품을 개발할 때 스피커의 위치를 결정하는 중요한 정보로 활용되었다.
◎ 프로세스 혁신 사례
저소득층 시장은 어쩔 수 없는 마진의 한계로 효율 극대화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따라서 저소득층 시장에서 살아남은 기업들은 대부분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움직이는 법을 체득해 왔으며 때로는 이 프로세스가 선진 시장에도 적용될 수 있다. 최근에는 선진 금융기관들도 수익 모델을 다변화시키기 위해 소액 대출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방글라데시의 그라민 은행(Grameen Bank)과 같이 오랫동안 담보 없는 고위험군을 관리해 온 기관들의 노하우에 주목하고 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유제품 생산 업체인 다농(Danone)은 방글라데시에 진출할 때 냉장 설비를 갖출만한 자금력이 부족한 지역 파트너의 경제력을 감안해 일반적인 다농 공장 표준의 100분의 1 규모로 생산공장을 만들었다. 소규모 생산으로 작은 지역 수요에만 대응해 냉장 설비의 필요성은 줄이면서도, 프로세스의 혁신으로 다농의 기존 대형 생산 설비와 같은 비용에 요거트를 생산할 수 있었다. 방글라데시에서 개발된 이 공정은 인도네시아와 같은 주변 저개발 국가뿐 아니라 프랑스 본국의 저가형 유제품 생산에도 활용되었다.
◎ 서비스 혁신 사례
선진국을 능가하는 혁신은 서비스에서도 가능하다. 인도의 아라빈드 안과 병원(Aravind Eye Care Hospital)은 빈곤층을 대상으로 한 무료 시술소에서 출발해 현재 연 240만 명의 외래 환자 진료와 28만 여 건의 수술을 하는 세계 최대의 안과 병원이 되었다. 아라빈드 병원은 수술실에서 여러 명의 의사가 동시에 집도하고 한 환자의 수술이 끝나면 뒤를 돌아 바로 다른 환자를 수술할 수 있는 표준화 된 시스템을 구축했다. 또 개당 200~300달러 하는 인공 수정체를 자체 생산하여 5달러 수준으로 가격을 낮추었다. 이러한 효율 극대화로 30%에 달하는 무료 환자 비율과 저렴한 진료비에도 불구하고 40%가 넘는 높은 수익률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병원의 경쟁력은 저렴한 비용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의사 한 명 당 수술 건수가 많아 의사들의 수술 실력이 향상되었고, 이 병원을 거쳐가면 최고의 실력을 입증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명문 의대 졸업생들도 이 곳에 오기를 선호했다. 양질의 의료진 확보는 아라빈드 병원이 가격에 이어 서비스 품질까지 앞서 나가게 한 경쟁력의 비결이다. 극빈층을 대상으로 시작한 자선 사업의 서비스 혁신이 이제는 일반 고객 및 해외 환자까지도 끌어들이고 있다.
멀리 기회를 봐야 하는 시장
저소득층 시장은 글로벌 기업들이 기존에 경험해 온 시장과는 다른 니즈와 특징을 가진 시장이다. 낮은 소득과 열악한 인프라를 비롯해 이 시장에 산재해 있는 위험 요소들을 하나씩 풀어나가면서 결실을 맺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저소득층 대상 사업의 성공 모델로 가장 많이 꼽히는 소액금융도 1970년대 인도네시아, 브라질, 방글라데시 등에 시범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해 현재와 같은 형태로 완성되기까지는 30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되었다. 특히 앞으로 저소득층 시장과 선진 시장 모두에게 절실한 환경 친화적이고 고효율적인 기술 개발은 오랜 시간에 걸친 R&D 투자가 요구된다. 따라서 지금까지는 저소득층 시장의 개발 과정에 정부나 NGO 등이 앞장섰지만 앞으로는 기업들의 참여 필요성이 더욱 높아질 것이다. 기업은 많은 자원과 합리적인 운영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NGO 및 지역사회와의 연합에서도 각각을 연결시켜 줄 수 있는 중추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글로벌 저소득층 시장이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인지는 그 중추적 역할을 하는 기업들이 지금부터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달려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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