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 '세계 기상이변에 위협받는 국내 물가'
기상이변 등에 따른 공급충격 현상이 완화될 경우 국제원자재 가격의 급등 추세는 향후 다소 누그러질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국내 소비자물가 불안도 2분기 이후 어느 정도 진정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원자재 가격이 빠르게 낮아지기는 어려워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보다 높은 3%대 초중반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1년 새해 들어 국내경제는 물가불안이라는 복병을 만났다. 물가상승을 주도하는 부문은 농산물과 석유류이다. 지난해 12월중 농산물 가격은 전년동월비 26.5%, 석유류 가격은 8.3% 상승해 소비자물가 상승 기여도가 1.9%p에 달했다(<그림 1> 참조). 전체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인 두 부문이 물가상승의 절반 이상 원인을 제공한 셈이다.
특히 불안감을 크게 하는 요인은 새해 들어 원자재 가격 상승이 공산품 가격의 연쇄적인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 점이다. 설탕, 밀 등 국제농산물 가격 상승으로 원가상승 압력을 받고 있는 식품생산 기업들이 가격인상에 나서고 있다. 여기에 지난해 하반기부터의 빠른 전세가격 상승과 구제역 파동 등이 겹치면서 소비자물가에 대한 불안심리가 크게 확대되는 양상이다. 물가연동 국채와 일반 국채의 수익률 격차로 표시되는 예상 인플레이션은 금년 들어 가파르게 상승했다. 지난해 후반부터 성장활력이 둔화되고 있는 가운데 물가불안까지 겹치면서 위기에서 막 벗어난 국내경제가 다시 어려움에 봉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내 수요 측면에서의 물가상승 압력 높지 않아
현재 국내 수요 측면에서의 물가상승 압력은 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경제위기 이후 빠른 반등추세를 보이던 국내경기는 지난해 하반기 들어서 상승활력이 뚜렷하게 저하된 상황이다. 지난해 11월 실질 제조업 생산 규모는 상반기말 수준에 미치지 못할 정도로 낮아졌고 경기싸이클을 나타내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가 8월 부터 하향추세를 지속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수출 및 투자 둔화로 생산증가 추세가 꺾이면서 경기가 국지적인 하향국면을 맞고 있어 공급능력에 수요가 미치지 못하는 디플레이션 갭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그림 2> 참조). 이는 석유와 농산물을 제외한 핵심물가 상승률이 아직 2% 내외에 그치고 있다는 점에서도 확인해볼 수 있다.
현재 소비자물가 상승은 대외부문이 주도하고 있다. 국제원자재 가격 상승추세는 2010년 하반기부터 뚜렷이 나타났다(<그림 3, 4> 참조). 2010년 상반기에는 농산물 가격이 연초 대비 8.9% 상승했지만 에너지, 금속 가격이 안정되면서 전체 원자재 가격은 약 1.6% 하락한 바 있다. 그러나 하반기에는 농산물과 금속, 에너지 등 원자재 전반에 걸쳐 가파른 가격 상승세가 나타났다. 특히 4분기 들어서는 원자재 전반에서 가파른 가격 상승세가 나타났는데 전기 대비로 에너지, 금속, 농산물 가격이 각각 11.9%, 9.9%, 15.8% 상승했다. 금, 구리, 원당 등 일부 원자재들은 명목 가격 기준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고 철광석 역시 사상 최고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
원자재 수입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이에 따른 소비자물가 상승압력이 크게 나타난다. 농산물과 석유, 금속 등 광산물의 가격이 10% 상승할 때 전체 물가는 약 1.4%p 상승 압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표> 참조).
그동안 국제원자재 가격 상승을 완화시켜주는 역할을 하던 원화절상 추세가 약화된 점도 수입원자재 가격을 안정시키지 못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지난해 유럽 재정위기에 이어 한반도 리스크, 선물환 규제, 외국 채권투자에 대한 과세 등 자본이동에 대한 규제 등으로 인해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에도 불구하고 원화강세는 빠르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개도국의 내수 성장이 국제원자재 수요 견인
국제원자재 가격 상승 요인을 수요 측면에서 경기순환적 요인과 구조적 요인, 그리고 공급측면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구조적 수요 증가 요인으로는 개도국들의 내수주도 성장으로의 전환 과정에서 농산물 및 금속원자재 등을 중심으로 원자재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점을 들 수 있다. 중국을 비롯한 주요 개도국들은 내수성장과 산업다각화 기반 마련을 위한 철도, 도로, 전력망 등 인프라 구축에 적극 나서고 있다. 임금 상승을 통한 구매력 확대 과정에서 극빈층, 저소득층의 식료품 소비가 늘면서 농산물에 대한 수요가 확대되고 있다. 최근 개도국을 중심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지고 있는 점도 이러한 측면을 일부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그림 5> 참조).
그러나 경기순환적인 측면에서는 수요증가 속도가 빠르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세계경제는 성장세가 둔화되는 소강국면을 맞고 있는 것이다(<그림 6> 참조). 최근 미국경기가 다소 회복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과열양상을 보이고 있는 개도국의 성장세 둔화, 재정위기 우려가 해소되지 않는 유럽의 부진 지속 등으로 세계경제 성장속도는 지난해 상반기에 비해 크게 낮아져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원자재 가격 상승은 수요 측면보다 공급 측면의 변화에 의한 것으로 판단된다. 투기적 요인에 의한 가격상승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으나 금 등 일부 금속원자재를 제외하면 이에 따른 상승요인은 제한적인 것으로 생각된다.
기상이변이 공급 불안의 주요인
2010년은 자연재해, 기상이변, 사고 등이 유난히 빈번해지면서 농산물과 금속원자재 생산의 차질이 매우 컸다. 세계 최대 구리 생산국인 칠레에서 강진이 발생하고 최대 주석 생산국인 인도네시아에서 폭우가 이어지면서 구리와 주석 수출에 차질을 빚은 바 있다. 11월부터 50년만의 기록적인 폭우가 내리고 있는 호주(세계 원료탄 공급의 60%를 차지)는 석탄 생산에 차질을 보이고 있다. 농산물 부문의 경우 세계 3대 밀 수출국인 러시아가 130년만의 최악의 가뭄을 겪으면서 밀 수출을 중단하고 있다. 주요 곡물 생산지인 호주의 홍수, 남미의 가뭄 등 심각한 이상기후(라니냐 현상)에 의해 파종 지연 및 위축, 품질 저하 등 작황부진에 대한 우려감도 높아지고 있다. 이와 함께 기상조건과는 별개로 광산 사고와 파업, 항만 사고 등으로 인해 칠레에서 구리 생산 차질이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기상이변은 수요 측면에서도 원자재 가격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2010년 12월부터 100년만의 기록적인 한파가 닥친 유럽은 17년만의 최악의 폭설을 경험하고, 미국 중부지역과 캐나다 역시 폭설과 한파가 매섭게 몰아치면서 에너지 부문에서 추가적인 수요 확대가 나타나고 있다.
원자재 가격 강세 진정되나 하락폭은 제한적
향후 국제원자재 가격을 전망해보면 첫째, 현재의 원자재 가격의 빠른 상승 추세는 계절적, 일시적인 측면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에 겨울철이 지나면서 다소 완화될 가능성이 크다. 기상악화나 한파가 호전되면서 원자재에서 가격 하락 압력이 발생할 것이고 이에 대응해 선물시장에 유입된 투기자금 역시 빠져나갈 것으로 보인다. 주요 투자은행들의 원자재 전망을 종합한 블룸버그 전망에 따르면 현재 강세를 보이는 농산물 가격이 점차 완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그림 7> 참조).
둘째, 원자재 가격 급등 추세가 진정되더라도 이전 수준으로 바로 돌아가기보다는 높아진 수준에서 어느 정도 유지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호주 기상청은 기상악화를 발생시킨 라니냐 현상이 봄쯤에 약화될 것으로, 미항공우주국(NASA)은 라니냐 현상이 올 상반기까지 북반구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과거 농산물 가격 급등 패턴을 살펴보면 평균적으로 가격 급등이 시작된 이후 약 3개월 후 정점을 지나 5개월 정도 후에 안정되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최근 들어 기상이변 발생의 빈도와 지속기간이 길어지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그림 8, 9> 참조).
셋째, 원자재 가격은 불확실성이 큰 기후 요인에 의해 많이 좌우되기 때문에 가격급등 리스크가 여전히 남아 있다. 석유와 구리 등 금속의 경우 생산이 지정학적으로 불안정한 지역에 집중되고 또한 심해나 깊은 지하 등 사고 가능성이 높은 채굴지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농산물의 경우에도 지구온난화로 인해 자연재해나 기상이변이 점차 빈번해지는 추세이다. 기상악화, 자연재해, 사고 등은 예상이 어렵기 때문에 원자재 가격이 돌발적으로 상승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점차 커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넷째, 추세적, 구조적 요인에 따른 원자재 가격의 상승기조는 중장기적으로 지속될 것이다. 중국과 인도 등의 임금상승이 지속되면서 원자재 수요가 꾸준히 늘어날 전망이다. 공급 측면에서는 중동, 남미 등에 더욱 의존하면서 생산 확대가 더딜 것이고, 생산비용은 지금보다 더 높아질 것이다.
물가불안 당분간 지속될 전망
국제원자재 가격과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 추이를 보면 2000년대 들어 두 지표간의 관계가 더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그림 10> 참조). 원자재 가격 상승기에 국내물가가 상승압력을 받지만 원자재 가격이 떨어지면서 소비자물가도 다시 안정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인플레이션 기대심리 확산에 따라 물가가 추가적으로 상승하는 효과가 크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2000년대에는 전반적인 내수부진이 지속되면서 가격을 인상시킬 경우 내수가 추가적으로 더 위축될 것을 우려해 인상을 자제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는 80년대 후반 내수호황기에 국제원자재 가격이 떨어진 이후에도 국내 소비자물가의 높은 상승세가 지속되었던 것과 대비된다. 2000년대 자영업 부문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개인서비스 물가가 안정되고 있는 점도 인플레이션 확산을 제약한 요인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대외부문의 충격을 제외하면 국내적인 물가상승 압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 국내경제의 성장활력이 지난해보다 낮아지면서 디플레이션 갭이 유지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현재의 환율 수준에서는 경상수지 큰 폭 흑자가 지속되기 때문에 원화도 절상되면서 대외부문에서의 가격 충격을 완화시켜 주는 요인이 될 것이다.
따라서 국제원자재 가격 급등추세가 진정될 경우 국내소비자 물가 불안 현상도 누그러질 가능성이 크다. 다만 국제원자재 가격의 급등세가 진정되더라도 단기간에 크게 하락하기보다는 일정 기간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한 국제원자재 가격 변화는 약 1~3개월의 기간에 걸쳐 국내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난다(<그림 11> 참조). 이에 따라 1분기중에는 3%대 중후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유지되고 2분기 이후 상승세가 점차 둔화될 것으로 보인다. 연 평균으로는 지난해에 비해 높은 3%대 초중반의 물가상승률이 예상되고 있다. 물론 대외 여건 변화에 따라 소비자물가 불안이 수시로 재개될 리스크는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이다.
당장은 인플레 기대심리 차단에 주력해야
소비자물가 상승의 주원인이 대외부문의 충격에서 비롯되었고 이러한 충격이 일시적일 가능성이 있는 만큼 물가정책의 초점은 당분간 원자재 가격 상승이 경제주체들의 인플레이션 기대심리 확산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는 데 두어야 할 것이다. 국내경기가 둔화추세를 보이고 세계적인 경제불안 요인도 여전히 남아 있어 총수요 정책의 기조를 당장 바꾸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이러한 측면에서 원자재 가격이 안정될 때까지 공공요금 인상을 가급적 연기하고 관세인하 등 미시적 정책들을 통해 정부가 물가상승을 억제하는 의지를 보이는 현재의 정책기조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만약 국제원자재 가격이 진정되지 않고 불안이 장기간 지속되는 경우에는 미시적인 정책을 지속하는 데 따른 부작용이 확대될 수 있다. 이 경우 원자재 가격 상승의 원인을 보다 면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특히 원자재 가격 상승이 개도국 수요의 지속적인 확대와 동반될 경우에는 물가상승 추세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 경우 국내외 경기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금리인상 등 총수요 억제정책의 시기를 앞당기는 조치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유통체계의 비효율성 개선, 원자재 수입의존도 축소 등과 같은 중장기적인 가격안정 노력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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