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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다양성을 포용하는 회사

■ 경제보고서 ■ | 2013. 9. 18. 01:36 | Posted by 중계사

LG경제연구원 '생각의 다양성을 포용하는 회사'

오늘 날처럼 경영 환경의 변화가 다양하고도 급속하게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리더 한 사람만의 지혜에 의탁하여 조직을 운영하는 것은 위태로운 도박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양한 구성원들의 집단 지혜를 충분히 활용하는 조직의 모습을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 
  
‘생각의 다양성을 포용하는 회사’란 각계각층에 있는 구성원들의 다양한 아이디어와 관점들을 창조적으로 통합함으로써 더 나은 가치를 지속적으로 창출해 내는 회사라고 할 수 있다. 즉 모든 구성원들의 지혜를 직급이나 나이, 성별, 인종 등에 따른 편견 없이 통합하여 활용할 수 있는 회사다. 이러한 모습을 갖춘 회사로서의 초기 원형 중 하나는 일본의 자동차 회사인 도요타다. 1980년대 미국의 자동차 회사들은 도요타의 고효율 생산 시스템의 비결을 알아내기 위해 수 많은 벤치마킹을 거듭했다. ‘최소의 노동 시간으로 최소의 결함을 가진 차를 생산하는 비결’을 알고 싶어했다. 오랜 기간의 벤치마킹 끝에 미국 회사들이 내린 결론은, 현장 구성원들의 아이디어 하나하나를 의미 있게 받아 들이고 경영에 반영해 나가는 능력에 있다는 것이었다. 도요타 내부에서는 이를 ‘생각하는 사람 방식’이라고도 일컫는다. 
  
다양성, 정말 중요할까? 

하지만 이러한 조직의 모습과 반대적인 모습으로 조직을 운영하면서 성공하는 기업들도 적지 않다. 천재적인 한 명의 리더십에 의해 조직이 성장해 나가는 경우인데, 스티브 잡스의 애플도 그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다. 학계든 기업계든 “너무나 평범해 보이기까지 하는 구성원들의 생각을 반영하려고 민주적인 고생을 하기 보다는, 천재적인 한 명의 리더십을 선택하고 그 뒤를 이을 후계자를 잘 선정하여 육성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고상한 방법 아닐까?”라는 논란이 일곤 한다. 분명 세상에는 스티브 잡스처럼 수 백명 혹은 수 천명 이상의 사람들보다 먼저 미래를 선견하고 더 나은 판단을 하는 진정한 천재들도 존재한다. 그렇지만 이런 천재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을 뿐 아니라, 한 기업에서 탁월한 천재들이 연속적으로 발굴되어 뒤를 이을 가능성도 높지 않다.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의 저자인 짐 콜린스는 불과 10년 만에 ‘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How the Mighty Fall)’라며, 본인이 꼽았던 위대한 기업들 중 상당 수를 실패한 기업으로 재분류해야 했다. 

포용력 있는 기업, 즉 다양한 구성원들의 집단 지혜를 충분히 활용하는 조직의 모습이 확실한 상대적 우위의 모습이라고 아직 단언하기는 어렵다. 이를 단언할 만큼 충분한 사례들이 축적되어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꾸준히 발표되는 연구결과들을 보면, 이는 미래에 조직의 지속적 성장을 이끌어갈 조직 운영 방식 중 하나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더구나 오늘 날처럼 경영 환경의 변화가 다양하고도 급속하게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리더 한 사람만의 지혜에 의탁하여 조직을 운영하는 것은 위태로운 도박처럼 보이기도 한다. 런던 비즈니스 스쿨의 교수인 게리 해멀은 그의 최근 저서인 ‘경영의 미래(the Future of Management)’에서 다양성이 조직 운영의 중요한 키워드로 부각되고 있는 변화의 모습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며, 앞으로도 동일한 방향으로의 지속적인 변화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장담한 바 있다. 

결국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우선 구성원들의 집단 지혜를 활용할 수 있도록 조직의 체질을 만들어 놓고, 천재적인 리더십은 ‘만나면 천운이요, 못 만나면 아쉬울 뿐’이라는 형태로 조직을 운영해 가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일 것이다. 구성원들의 집단 지혜를 활용할 수 있는 조직으로 체질 변화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어쩌면 천재적인 리더십을 기대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다만 천재적인 리더십을 얻는 것은 말 그대로 ‘천운’에 가깝다면, 포용력 있는 조직을 만드는 일은 ‘시간이 오래 걸리긴 하겠지만 사람의 힘으로 변화시켜 나갈 수 있는 것’에 가까울 것이다. 다양성을 포용하는 회사로 거듭나는데 있어 우선적으로 짚어봐야 할 기본적인 사항들을 몇 가지 살펴 보자. 
  
1. 살아있는 핵심가치 (Shared Value) 

무엇보다 핵심가치를 명확히 해야 한다. 뚜렷한 방향성이 없는 상태에서 다양성을 강조할 경우 자칫 회사는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사공이 많은 배는 산으로 간다’는 말이 있다. 목적지가 명확하지 않다면 별 자리를 잘 아는 사공은 별을 따라가기 좋은 곳으로, 물을 잘 아는 사공은 물 흐름을 따라가기 좋은 곳으로, 바람을 잘 아는 사공은 바람을 잘 탈 수 있는 곳으로 가자고 다툴 것이다. 목적지가 분명해야 각자의 관점에 근거하여 의견을 조율하며 동일한 방향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전사적으로 공유되는 핵심 가치가 없다면 각 구성원들은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을 하려고 할 뿐, 다른 구성원들과 힘을 모으는 데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있다. 

사실 어떤 형태로든 핵심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은 회사란 없다. 대다수의 회사는 사훈, 경영이념, 경영방침 등의 이름 하에 핵심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핵심가치는 액자 속에서 잠자고 있을 뿐 실제 경영 현장에서 적용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렇다면 핵심가치에 생명력을 불어 넣고 이를 기반으로 구성원들의 다양성을 통합해 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직관적이고도 감각적으로 구성원들의 가슴에 꽂힐 수 있도록 핵심가치를 재정리해야 한다. 어렵고 복잡하거나, 유려하기만 한 말들은 큰 의미가 없다. 구성원들의 감성을 실질적으로 터치하고 감동을 줄 수 있는 핵심가치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우리는 왜 회사를 운영하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익 창출이라는 기본 목표가 있지만 사람들은 돈 때문에만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무언가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일본의 제약업체인 에이사이의 예를 들어보자. 에이사이는 부단한 조직 변화 노력을 통해 구성원들의 지혜를 널리 흡수하여 활용하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에이사이는 우선 ‘어떤 회사가 되길 원합니까?’라는 근원적 질문을 던지면서 변화를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사람을 위한 건강관리’를 이끌어내었고 이를 ‘이노베이션을 위한 서약(Commitment to Innovation)’이라는 일종의 세부적인 성명서로 자세히 풀었다. 에이사이는 이를 기반으로 구성원들의 마음과 지혜를 하나로 묶기 위한 노력을 시작할 수 있었다. 

둘째, 경영자들이 앞장 서서 실제적인 의사결정의 중심에 핵심가치를 놓아야 하며 이에 따라 전사의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도록 독려해야 한다. 앞서 에이사이의 경우 핵심가치를 정립한 이후 경영진들은 구성원들에게 환자들을 ‘어떻게든 우리 물건을 사게 만들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감정’을 가진 인간으로서 이해할 것을 강조했다. 에이사이에서 중요한 질문은 “적은 비용으로 양질의 의약품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이 아니라 “우리가 의약품을 만드는 진정한 목적은 무엇일까?”로 바뀌었다. 특히 경영진은 ‘사람을 위한 건강관리’라는 슬로건이 모든 구성원들의 행동지침으로 내면화되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전파했다. 구성원들 하나하나가 “어떻게 ‘감정’을 가진 한 주체로서의 사람을 위한 건강관리를 잘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하게끔 독려하고 환자와 직접 만나는 기회를 자주 갖도록 장려했다. 이를 통해 에이사이는 조직 내의 커다란 의사결정에서부터 작은 의사결정에 이르기까지 모든 의사결정의 기준이 ‘사람을 위한 건강관리’가 되도록 만들어 나갔다. 때로 구성원들간 이견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명확하게 “사람을 위한 건강관리”라는 큰 틀 안에서 의견 조율이 이루어져 갔다. 
  
2. 일하는 방식의 자율성을 보장 

구성원에게 잠재되어 있는 각자의 다양성을 충분히 잘 이끌어 내려면, 일하는 방식에 있어서의 자율성을 보장해 줘야 한다.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스타일이 있다. 어떤 사람은 강하게 휘몰아치며 독불장군처럼 일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온화하게 주위를 배려하며 일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내성적으로 묵묵히 일하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은 ‘당장 하루하루를 잘해야 먼 미래도 있는 법’이라는 생각으로 일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당장 먹고 살기 힘들어도, 미래를 위한 준비를 따로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일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사람의 스타일에 옳고 그름이 있을 수 있을까? 주요 심리학 이론들에 따르면 사람들마다 스타일이 다를 수 밖에 없는데, 이러한 각자의 스타일을 존중해 줄 때 그 사람에 맞는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다고 한다. 구글의 회장인 에릭 슈미트는 “우리 회사의 핵심 전략은 좋은 인재를 확보한 후 그들을 풀어 놓는 것이다(Turn them Loose)”라고 말한 바 있다. 각자의 다양성을 존중하며 자율적으로 일하도록 내버려둘 때 가장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간혹 ‘문화적 적합성(Culture Fit)’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즉 회사의 문화에 맞게 일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화적 적합성’이라는 말은 매우 주의 깊게 이해해야 한다. 이 말은 특정한 성향을 가진 사람, 예컨대 활달하거나, 온순하거나, 인간적이거나 등 그런 성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문화적 적합성은 조직이 지향하는 핵심가치에 얼마나 몰입(Commitment)하는 사람이냐를 판단하는 것이다. 이를 특정한 성향으로 이해하기 시작하면 자칫 마녀사냥이 될 수 있다. “저 사람은 우리 회사에 적합하지 않아” 이런 말들이 나오기 시작하면, 이는 구성원들의 개성과 다양성을 빼앗고 재단시켜 버린다. 문화적 적합성은 매우 잔인한 말이 될 수 있다. 광야를 활보할 야성의 사자를, 동물원에 갇힌 온순한 사자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과거 등소평은 수정된 사회주의 노선을 지향하면서 “하얀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를 잘 잡는 고양이가 좋은 고양이다”라고 말했다.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다. 조직이 지향하는 방향성과 핵심가치를 금과옥조로 삼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자신만의 스타일대로 알아서 하도록 가급적 내버려 둬야 한다. 그 일하는 스타일이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함께 가는 동지라는 생각으로 각자의 방식을 존중해 줘야 한다. 그래야 다양성이 살아날 수 있다. 
  
3. 책임을 지게 만드는 관리의 기술 

조직 내 자율성이 있어야 다양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점에 대해 부인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자율(自律), 스스로 다스린다는 의미인 자율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사람들이 조직에 얼마나 있을까? 리더들은 “자율을 줬다고 생각했는데 방임이라며 비난하고, 그래서 다시 관리를 좀 하려고 하면 간섭이라고 한다”며 난감해 한다. 리더들에게 문제가 없다고 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리더들 탓만 할 일도 아니다. 많은 구성원들이 “좀 더 자율적으로 일하게 해 줘야 한다, 리더들이 너무 지시 일변도다”라고 말을 하지만, 막상 자율을 줬을 때 그 자율을 제대로 누리기 보다 리더에게 의존적인 모습을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할까? 

그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구성원들은 자율에 따른 책임을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고 리더들은 부하들을 챙기는 것을 리더십의 덕목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즉 구성원들은 특정 사안에 대해 주도적으로 의사결정하며 책임지기 보다는 “잘못되면 어떻게 하지. 일단 리더에게 보고해 두면 리더가 책임을 질 것”이라는 생각을 은연 중에 하는 경우가 많고, 리더들은 구성원에 대해 “내가 리더십을 보여야지. 내 부하인데 내가 보호해주고 챙겨줘야지”라는 생각을 하는 경향이 있다. 유교적 문화가 강한 우리나라에서 이는 ‘아름다운 미덕’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조직이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훼방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호 작용의 한계를 넘어 서려면 업무 영역에 대한 책임을 명확히 규정하고 실행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리더에게 보고를 하더라도 리더는 코칭하는 것일 뿐 그 일에 대한 의사결정과 책임은 구성원 본인 스스로 지도록 만들어야 한다. 특히 리더들이 유념해야 할 사항은, 해답을 알려 달라고 찾아오는 구성원들을 보며 “그렇지, 내가 없으면 역시 안되지”라며 기뻐해선 곤란하다. 자율에 익숙하지 않은 구성원들의 경우 책임을 진다는 것을 두려워할 수도 있고 계속 리더를 찾아 해답을 달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리더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구성원들은 “역시 우리 리더는 자신의 뜻을 물어보고 그대로 실행하는 사람을 좋아해”라며 동일한 행동을 반복할 것이다. 한 두 번이라면 몰라도 계속 그런 상태라면 해당 구성원에게는 일을 맡기지 않아야 한다. “당신이 아직 준비가 안된 것 같다. 일단 다른 사람에게 시키겠다”라며 일을 돌리는 게 좋을 것이다. 냉정하게 보일 수도 있고 “리더가 사람에 대한 책임감이 너무 없는 것 아니냐”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지만 그래야 구성원들도 일하는 자세가 바뀔 것이다. 또한 리더 입장에서 본인의 의견을 반드시 관철시키고 싶은 사안이 있다면 “네 일이 아니라 내 일이다”라고 사전에 분명히 선을 긋는 것이 나을 것이다. 
  
4. 정성적 판단의 여지를 넓혀라 

다양성을 인정하며 각자의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것은 실패 가능성과 성공 가능성의 범위(Range)가 넓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정성적 판단의 여지가 많아진다는 것이다. 정량적 평가도 중요하지만 다양성을 폭 넓게 용인하기 위해서는 정성적 판단의 여지에 대한 재량권을 높일 필요가 있다. 정량적인 평가가 정교해 질수록 새로운 시도나 생각은 숨을 쉬기가 어려워지고, 구성원들은 해당 목표를 ‘안전하게’ 달성하기 위해서 조직 내 관행이나 선임자의 방식을 답습하는 행동을 보이게 된다. 

조직에서 정성적 평가를 하기 어려운 이유는 공정성 시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조직은 구성원들의 공정성 시비에 말려 들고 싶어하지 않는다. 즉 “객관적 성과가 아니라, 그냥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은 평가를 준 것 아니냐?”와 같은 이야기들이 나오는 것을 두려워한다. 특히나 많은 리더들은 “당신은 회사가 잘되게 하는 것보다, 당신 사람들을 챙기는데 더 신경을 썼다”라는 평가를 들을까 전전긍긍한다. 그러다 보니 여러가지 다양한 시도를 해 보면서 일을 더 잘했다고 판단되는 사람이 있더라도, 정량적 목표를 제대로 달성하지 못하면 평가를 좋게 주기가 어렵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객관적인’ 성과라는 것은 없다. 경영 상황은 수시로 변한다. 언제 어디서 새로운 경쟁자가 등장할지, 갑자기 중요한 시장에서 전쟁이나 테러가 일어날지, 금융 위기가 터질지, 원자재 가격이 폭등할지 등등 알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연초의 목표 대비 성과 달성 여부를 놓고 정량적 평가를 중점적으로 수행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경영은 본질적으로 예술(Art)이다”라는 말이 있다. 복잡다단한 환경에서 그때그때 균형 잡힌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가 터진 시장에서 판단을 잘 내려서 손해를 최소화한 사람이, 문제가 없던 시장에서 목표를 달성한 사람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이 상식적인 일이 되어야 한다. “목표 대비 못했으면, 어쨌든 못한 걸로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억지스러울 수 있다. 정량적 목표에 지나치게 치중할 경우에는, 이에 맞추기 위한 왜곡된 행동까지도 나타나게 된다. 예를 들면, 단기적인 성과 달성만을 위해 미래에 필요한 투자를 하지 않는다든지, 전사 차원에서 이익이 되는 의사결정을 하기 보다는 자기 부서의 입장만 고려한 의사결정을 하는 것과 같은 일들이다. 

정성적 판단의 여지를 높이려면 무엇보다 ‘성과에 대한 평가는 온전히 리더의 몫’이라는, 리더의 정성적 평가를 철저히 신뢰하는 분위기가 조직 내부에 굳건히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정성적 판단의 여지를 높이면서 동시에 공정성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방법이 있을까? 프랑스 인시아드 경영대학원의 김위찬 교수는 절차적 공정성(Process Fairness)을 높여야 한다고 말한다. 즉 평가 과정과 결과에 대해 평가자와 피평가자간 서로 공유하고 논의하는 절차가 있어야 한다. 연말에 평가 결과를 놓고 무엇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논의하고 피평가자의 변을 들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통해 피평가자는 “리더가 내 업무와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구나. 몰라서 잘못 평가한 것이 아니구나. 나름 이유가 있구나”를 알게 되고, “내 의견을 다시 한번  들어주는구나”라며 존중 받는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이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구성원들이 업무적인 측면은 물론 인간적인 측면에서도 리더에 대한 신뢰감을 가질 수 있게끔 하는 프로세스이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들의 많은 리더들은 이러한 피드백을 불편하고 부담스럽게 여긴다. 그러나 평가 결과에 대한 허심탄회한 공유와 논의 없이는, 리더의 진심어린 정성적 평가가 리더의 온정주의로 폄하되어 버릴 수도 있다. 
  
5. 유연한 조직 운영 

다양성을 장려하고 자율을 허용하다 보면, 아주 기발한 아이디어이지만 기존 조직 체계에서 살아남기 힘든 생각들이 나오기도 한다. 다양성을 보다 폭넓게 포용하려면 기존의 정형화된 조직을 조금 더 유연하게 운영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조직이나 업무 프로세스는 기존의 업무를 가장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전체 조직을 대규모로 개편하는 등 크게 흔드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 조직은 한번 흔들고 나면 안정화 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하부 조직들 간의 역할과 책임을 재정의하는 것만 하더라도, 문서화될 수 없는 세세한 영역까지 ‘누가, 어디까지, 어떻게 일을 할 것인가’, ‘평가는 어떻게 할 것인가’ 등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그런 만큼 가급적 기존의 조직 형태는 크게 변형시키지 않으면서, 유연성을 부여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과거부터 미래 조직의 형태로 제안된 조직의 모습은 적지 않다. 널리 알려진 스컹크 조직(Skunk Team)을 비롯하여 일본 교세라의 아메바 조직, IBM의 양수겸장 조직(Ambidextrous Organization), 네트워크 조직 등 여러 모습이 있다(<그림> 참조). 조직 운영 방식이란 ‘단 하나 뿐인 최고의 대안’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급하게 움직이기 보다, 각자 처한 상황에 맞게 구조와 운영 시스템을 구축하여 한걸음씩 움직여 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조직의 다양한 생각들을 포용해 나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기존의 위계적인 조직에 익숙한 리더와 구성원들의 경우 더욱 그렇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일을 해 나가고 관계를 맺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다변화하는 현대 사회에서 장기적으로 견고하게 살아남는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한 두 사람보다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들을 품어내는 기업으로 변화해 나가는 것이 조직이 풀어야 할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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