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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경제연구원 '중국 IT기업들이 무서운 진짜 이유'

글로벌 IT시장에서 중국 토종기업들의 약진은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다. 그렇지만, 최근 부상한 중국 IT기업들은 창업한 지 수년밖에 되지 않거나 전통적인 하드웨어 대형기업들이 아니라는 점에서 글로벌 경쟁기업들을 긴장시키기 충분하다. 

샤오미 같은 최근 중국 IT 강자들의 제품은 ‘Same Spec, Low Price’가 특징으로서, 전통적인 하드웨어 업체들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런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출발점은 남다른 소프트웨어 경쟁력과 기존 강자들의 틀을 깨는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한국 등 글로벌 경쟁자들이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은 이런 후발강자들이 내놓는 제품의 면면 만이 아니다. 이들이 출현할 수 있었던 사업환경 및 혁신동력이 더 위협적이다. 중국 본토시장에선 제2, 제3의 샤오미가 줄줄이 대기하고 있고, 기존 하드웨어 강자들도 이들의 성공방정식을 배우기 바쁘다. 

과거 중국 내수시장에서 개별기업 단위로 진행됐던 하드웨어 스펙 경쟁은 이제 제휴와 연대를 통한 소프트웨어 융합경쟁으로 흘러가고 있고, 이를 뒷받침하는 제조체인도 상당부분 내재화됐다. 중국 공산당이 오랜 기간 공을 들인 소비시장의 고도화 및 균질화, 혁신 인프라 확충 정책이 만들어낸 과실이 아닐 수 없다. 13억 시장이 질적 전환을 경험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 IT기업은 이제 글로벌 시장에서 원가경쟁력뿐만 아니라, 미국의 소프트역량을 시장에 적용하는 데에서도 자칫 중국 IT 강자들에 뒤질 수 있다. 중국 내수시장의 흐름을 감지하고(Sensing), 고객가치 제고를 위해선 중국의 혁신기업들과 공동 보조를 맞추는(Strategic Alliance) 방안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기업들이 원가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실리콘밸리 기업들까지 협력을 모색하는 선전의 제조벨트도 더 이상 방치하기 어려울 것이다. 
  

< 목 차 > 

1. ‘중국 같지 않은’ 중국 IT기업, 중국 IT시장 
2. 중국 IT 산업의 4가지 Paradigm Shift 
3. 중국적 특징
4. 한국기업들의 활로
 
  

일본 전자기업들이 한국의 경쟁기업들에게 ‘따라 잡힌 건’ 디스플레이 산업의 패권을 내준 2000년대 초반으로 추정된다. 10년을 끈 경제의 장기침체로 대규모 투자에 머뭇거리는 사이 한국의 경쟁자들은 외환위기 이후 튼실해진 재무적 기반 위에서 특유의 기민함을 발휘해 수조 원 대 디스플레이 라인을 깔았고, 이를 계기로 TV와 모바일 분야의 하드웨어 경쟁에서 한국의 우위는 분명해졌다. 한국 기업들이 독자 브랜드로 글로벌시장에 진출한지 대략 10년이 소요된 셈이다. 

그로부터 다시 10년, 이제 한국기업들의 앞날에 빨간 등이 켜졌다. 한국 언론에는 연일 중국 전자기업들의 괄목상대할 만한 발전상이 소개된다. 중국 안방시장에서 로컬기업들이 메이저가 된 것은 이미 2000년대 후반의 일이었다. 치열한 내수시장에서 체질과 덩치를 키운 중국기업들이 해외로 쏟아져 나올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지만, 지금 기세는 과거 한국 경쟁자들이 뜰 때보다도 훨씬 플레이어도 많고, 자신감도 넘쳐난다. 

중국 IT기업들의 약진을 ‘저가(低價)경쟁력 덕택’으로만 재단할 수 있을까. 미국에서 만개했던 전자산업의 패권이 일본, 이어 한국과 대만으로 흘러오는 동안 많은 산업 전문가들은 노동집약 공정의 상대우위 변화에 따라 다음 헤게모니는 중국으로 넘어갈 것으로 전망해왔다. 이런 추론대로라면, 중국 IT산업의 인건비 토지가 등 원가요인이 상승하고 중국 위안(元)화마저 절상한다면 중국도 인도 베트남 등 제3국에 전자IT 분야 헤게모니를 내주게 된다. 

최근 중국 IT기업 브랜드 제품을 보면 한국 일본 등 글로벌기업 제품과 같은 성능과 외관을 가지면서도 가격경쟁력에서 앞선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이 가격경쟁력의 원천이 저임 덕택이라고만 해석하기는 어렵다. 한국이나 일본의 경쟁기업들과 전혀 다른 ‘시장파괴형(disruptive)’ 사업모델을 내세운 기업들이 성공을 거두고 있고, 무엇보다 이런 기업들이 단시간 내 자라나도록 밑밥을 뿌려둔 ‘중국적 특색’도 저임과 뚜렷한 연관성이 없다. 중국이 자랑해온 저렴한 노동집약 공정에 더해 ‘플러스 알파’가 작용하고 있다면, 향후 전자 IT분야에서 중국 기업들의 경쟁력은 오랫동안 유지될 공산이 크다. 
  

1. ‘중국 같지 않은’ 중국 IT기업, 중국 IT시장 
  

‘중국판 애플’이란 별칭으로 잘 알려진 샤오미(小米)의 열풍은 서해를 건너 한국에까지 화제를 뿌리고 있지만, 중국시장에선 샤오미 류의 후발주자들까지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중이다. 미국의 스마트폰 평가 사이트인 엔가젯(Engadget) 홈페이지는 이 분야 전문가들이 전 세계에 출시된 스마트폰의 성능 및 디자인을 평가해놓은 점수 표를 공개하고 있다. 11월 4일 기준 이 랭킹에서 3등을 차지한 스마트폰은 중국 로컬기업 오포(oppo)의 신생 자회사인 원플러스(one plus)가 내놓은 원(one)이었다(<표 1> 참조). 놀랄 만한 것은 글로벌 선진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유력 브랜드들의 최신 폰 랭킹보다 원이 앞섰다는 점이다. 한국에 잘 알려진, 샤오미(Mi 4)나 화웨이(Ascend P7) 브랜드들과는 격차가 더 벌어진다. 이 평가표 순위만 놓고 보면, 이미 중국 브랜드들의 글로벌 브랜드 캐치 업은 과거의 일처럼 느껴진다. 눈길을 끄는 점은 원 브랜드의 홈페이지가 아예 영어로 도배돼있다는 점이다. 광고모델도 서구인을 썼고, 회사의 정체성을 아예 미국의 혁신기업으로 설정해놓았다.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중국이 자랑하는 화웨이는 이미 올 1분기 시장점유율 3위에 올랐다. 글로벌 TV 시장에서도 중국 하이신(Hisense) 브랜드가 4위에 올랐다(매출액 기준). 한국의 경쟁기업들이 오랜 기간 공을 들인 끝에 진입할 수 있었던 미국의 주요 유통채널(Costco, Bestbuy)에도 이미 지난해부터 진열을 시작했다. 

중국 IT기업의 부상을 세계적으로 알린 상징적인 사건은 지난 9월 대형 인터넷기업인 알리바바의 뉴욕증시 상장이다. 알리바바의 시가총액은 2,200억 달러로 단박에 치솟아 아마존 이베이 등 미국의 인터넷 강자들을 멀찌감치 따돌렸다. 먼저 상장한 텅쉰(Tencent)과 바이두(Baidu)까지 합치면 중국산 인터넷 공룡 BAT(세 회사의 머릿글자)는 향후 인터넷 비즈니스 판도를 바꿀 실탄을 손에 쥐게 된 셈이다. 

그런데 중국 토종 IT 브랜드들의 부상보다 더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본토 시장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다. 지난해 중국 IT업계의 인수합병 규모는 120억 달러로, 한국의 10배가 넘었다. 벤처기업과 벤처투자자들이 차고 넘친다. 알리바바 텅쉰 등 자금여력이 넘쳐나는 인터넷 공룡들은 될성부른 혁신기업을 싹쓸이하듯 품에 넣고 있다. 글로벌시장에서 명망을 갖춘 이 분야 전문가들 중 중국으로 활동공간을 옮기는 사례가 적지 않다. 생활여건 및 복지혜택이 좋아진 덕택이다. 레노버 같은 대형 IT기업은 이사회 멤버에 외국인이 적지 않아 아예 영어로 회의를 진행한다. 주요 IT 기업의 언론 행사는 실리콘밸리와의 합작이나 새로운 개념의 혁신 아이디어를 공개하는 무대가 되고 있다. 

중국 내수시장은 인터넷이란 새 사업환경 속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찾으려는 도전정신으로 충만해 보인다. 중국 내에서 온라인으로 물건을 주문해 2일 내 배송 받을 수 있는 소비자 수는 대략 3억4,000만 명으로 추산된다. 미국 온라인 쇼핑인구 수(1억9,000만 명)는 이미 뛰어넘었다. 온라인 소비계층을 상대로 샤오미의 성공에 고무된 후발주자들이 나름의 차별화 포인트를 들고 경쟁하고 있다. IT 분야 혁신의 수준과 생태계 범위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미치지 못할지라도 창업열기와 도전정신만큼은 용광로처럼 타오르고 있다. 
  

2. 중국 IT 산업의 4가지 Paradigm Shift 
  

사실 글로벌 경쟁기업들이 염두에 둬야 할 것은 샤오미 같은 중국 신흥 IT기업들의 화려한 성과나 제품의 면면만이 아니다. 고작 창업 4년에 불과한 샤오미가 시장의 열화와 같은 찬사를 받으며, 한해 6,000만대나 되는 휴대폰을 찍어내는 게 가능한 비즈니스 환경과 제조체인이 더 위협적일 것이다. 중국 전자 IT산업의 지난 30년의 성장과정은 간단히 말해 글로벌 선진기업들을 캐치 업하는 과정으로 풀이할 수 있다. 글로벌 혁신제품의 중국 버전을 더 빨리, 더 싸게 만들어 내느냐에 로컬 시장 내 승패가 갈렸다. 그러나 최근 벌어지는 내수시장의 경쟁양상은 이 같은 성공패턴이 많이 달라졌음을 말해준다. 본 고는 이러한 변화상을 4가지 패러다임 시프트로 구분해 정리했다. 

① 인터넷 플랫폼이 혁신의 촉매로 부상 

가장 눈에 띠는 변화는 중국 IT기업들의 경쟁 양상이 ‘각개전투(各個戰鬪)형’에서 제휴 및 짝짓기 형태로 진화하고 있는 점이다. 이러한 ‘공동전선’이 구성되는 데 가장 혁혁하게 공헌하고 있는 기업군이 바로 대형 인터넷 플랫폼들이다. <그림 1>에는 알리바바와 텅쉰이 최근 2년 새 벌여놓은 사업확장 및 제휴동향이 나타나있다. 

B2B형 인터넷 상거래업체로 출발한 알리바바는 제3자 결제방식인 알리페이의 출범(2004년)으로 결정적인 성장의 계기를 마련했다. 2013년 매출 160조원의 공룡기업으로 부상한 뒤, 미디어 콘텐츠 분야와 모바일 웹 분야로 제휴범위를 확장했고 중국 최대의 가전업체인 하이얼의 물류부문에 투자함으로써 가전유통에도 발을 들여놓았다. 최근에는 자체 개발한 클라우드 운영체제인 ‘알리OS’를 스마트 TV의 지배적인 규격으로 삼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알리바바의 사업생태계는 전자상거래 플랫폼에서 출발해, 가전유통 플랫폼으로 확장한 데 이어 스마트가전 OS 분야에까지 현재 손을 뻗고 있는 셈이다. 

소셜 미디어업체로 출발한 텅쉰은 이와 달리 최대의 온라인 가전유통업체인 징동(京東)과 제휴해 가전 유통으로 사업 생태계를 확장한 데 이어 샤오미 등 모바일 OS업체 등에도 지분을 투자했다. 알리바바 텅쉰 두 인터넷 공룡들이 자기 진영으로 경쟁적으로 모바일 및 가전기업들을 끌어들이면서 투입한 자금만 2013년 이후 각각 7조원, 4조원대에 이른다. 최근엔 뉴욕 증시에 가장 먼저 상장했으면서도, 생태계 조성에서 한발 늦었던 평가를 받아온 바이두(Baidu)도 검색엔진의 강점을 바탕으로 지난 6월 중국 최대의 부동산 및 쇼핑몰 기업인 완커(Wanke)와 제휴, 유통사업에 발을 걸쳤다. 

인터넷 공룡들의 생태계 구축작업은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결과적으로 중국 IT산업 내 R&D에서부터 물류 유통에까지 온라인 혁명을 몰고 왔다. 몇몇 전자기업들이 이들과 손을 잡고 스마트 TV 및 사물인터넷(IoT) 개발에 나섰고, 반면 온라인 유통이 대도시의 지배적인 가전 구매채널로 부상하면서 궈메이(國美) 수닝(蘇寧)과 같은 전통적인 오프라인 가전유통 기업들은 자구책 마련에 부산하다. 수닝의 경우 온라인과 오프라인 유통을 통합하는 O2O 전략을 표방하고 물류망 강화 및 인터넷 금융진출 등을 시도하고 있지만, 자금 동원력이나 제휴의 범위 등에서 열세를 벗어나기 쉽지 않다. 경영권 분쟁까지 겪었던 궈메이 역시 수익성을 중시하는 신중한 경영모드로 돌아서고 있어 유통시장에 몰아친 패러다임 변화를 활용하기엔 역부족이다. 2010년까지 전자업체들의 ‘슈퍼 갑(甲)’이었던 이들이 ‘시장파괴형 혁신’의 희생양이 될 공산이 점차 커지고 있다. 

② S/W가 주요 경쟁요소로 부상 

중국 로컬기업들이 제휴 및 공동전선을 통한 경쟁에 나서고 있는 것은 최근 경쟁 양상이 하드웨어 스펙 고도화보다는 OS나 컨텐츠 분야에서의 차별화를 지향하는 것과 관련이 깊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중국 전자 IT시장의 경쟁 포인트는 ▲크고 선명한 화면 ▲에너지 절약형 설계 ▲내구성 강한 부품 ▲오래 쓰는 배터리 ▲고광택 플라스틱 외관 ▲모방하기 어려운 디자인 등과 같은 하드웨어 스펙 중심이었다. 스마트 기기의 보급률이 낮았기 때문에 각종 애플리케이션이나 컨텐츠 같은 S/W 기반 부가가치가 제품 내 구현될 여지가 적었던 것이다. 따라서 대형 IT기업들의 경쟁은 글로벌시장의 최신 제품이 자랑하는 H/W 스펙을 원가우위를 바탕으로 저렴하게 중국화하는 데 집중됐다. 

이런 전통적인 경쟁국면은 2009년 3G 통신서비스가 시작되고 스마트폰이 시장 주력으로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지각변동을 일으키게 된다. 중국 정부는 2G 시대까지의 통신 규격 대외의존성을 탈피하기 위해 같은 해 자국 표준 TD-SCDMA 규격을 제시했는데, 로컬 IT 강자들이 이 규격에 맞는 통신장비 및 단말기 제조에 뛰어들면서 로컬 제조체인이 단번에 탄탄히 자리잡을 수 있었다. 최대 이동통신업체인 차이나모바일(中國移動)이 입찰을 통해 레노버 화웨이 등 로컬 IT기업들에게 수백만 대씩 물량을 구매해준 것이 대표적 사례일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3G 시대 스마트폰 시장에서 안드로이드(Android) 진영의 글로벌 최강인 구글(Google)의 본토시장 진입을 막은 것도 결과적으로 로컬 IT기업들의 스마트 역량을 키우는 데 크게 기여했다. 다른 시장 같으면 구글 앱이 차지했을 이윤공간을 토종 단말제조업자는 물론 통신사업자, 포털사업자 등 200여개 사업자들이 나눠 가지면서 자체적으로 소프트웨어 및 서비스시장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샤오미가 ‘안드로이드의 변형’이라 할 만한 자체 OS(MIUI)를 개발하고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하면서 내수강자로 부상할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진입장벽을 쳐놓았기에 가능한 일이다(<그림 2> 샤오미의 사업생태계 참조). 

최근 벌어지는 모바일 및 TV시장의 경쟁은 고객의 요구에 맞는 OS 및 컨텐츠 차별화로 한 단계 더 진화했다. 더욱이 이 경쟁은 OS 같은 소프트웨어 역량을 내세워 성장한 후발IT 기업들이 기존 H/W 거대기업들을 자의반, 타의반 경쟁 및 협력관계로 끌어들이는 형태로까지 나타나고 있다. 샤오미가 휴대폰 제조를 외주 생산한 경험을 살려 TV사업에 발을 뻗었고, 동영상 컨텐츠 분야 최대 기업인 LeTV(樂視網)도 TV 제조에 나선 것이 좋은 사례다. 전자 IT산업의 융합이란 트렌드는 소비자 입장에선 모바일 단말기와 TV를 통해 집중적으로 체감할 수 있기 때문에 전통적인 H/W 업체들로선 어떤 식으로든 대응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음원 콘텐츠와 재생 플레이어를 융합시킨 애플 아이팟(iPod)의 성공 이후 글로벌 IT시장에서 S/W와 H/W를 융합시킨 사업모델은 새로울 것은 없다. 그러나 미국의 융합모델이 애플이나 구글 S/W 플랫폼에 대한 종속도가 높은 것에 비해 중국 로컬시장의 융합은 그 종속도가 상대적으로 낮아 로컬기업간 합종연횡이 비교적 유연하게 진행되고 있다. 또 글로벌시장에서는 H/W와 S/W 강자들이 생태계를 주도하기 위해 상호 견제하는 바람에 협력이 제한적인 반면, 중국은 두 분야 모두 글로벌시장에선 후발업체이다 보니 H/W와 OS, 서비스 제공업체간 융합이 상대적으로 용이한 측면이 있다. 메이디(美的)나 스카이워스(Skyworth), 리더(Leader) 같은 전통적인 H/W 브랜드들이 후발업체라 할 수 있는 알리바바의 OS 탑재 시제품을 개발하는 것은 좋은 사례다. 

③ 제조 생태계의 완결성 증대 

중국이 IT 분야에서 글로벌 강자들보다 혁신이 늦거나 심지어 종속되는 형태를 띠었던 원인 중 하나는 핵심 고부가 제조체인이 중국 밖에 있었기 때문이다. 첨단 세대의 디스플레이 패널이나 반도체 칩 등이 대표적 사례이다. 이 분야의 글로벌 강자 입장에서는 중국 내에 효율이 뛰어난 제조 클러스터를 형성하기 어렵거나, 자국이나 제3국에 제조라인을 운용해도 중국 수입관세가 높지 않아 수출로 대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중국의 경제성장에 따른 소득증대와 도시화 등이 급속히 진행되면서 덩달아 내수시장의 고부가가치화가 진전되고, 한편으로는 로컬 기업들과의 기술격차가 좁혀지면서 중국 밖에 제조체인을 유지하는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이 부각되고 있다. 

한국의 글로벌 기업들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8세대 첨단 디스플레이 패널라인을 중국 본토에서 가동하고 있는 것은 2011년 중국 토종 8세대 패널라인(CSOT, BOE 등)이 양산에 나선 데 자극을 받은 측면이 적지 않다. 이미 지난해 글로벌 UHD TV의 84%가 중국에서 판매될 정도로 프리미엄 제품 군에서 중국 고객(TV제조업체)들의 중요성이 커졌다. 휴대폰 제조는 물론 판매에서도 중국시장의 위상은 압도적이다. 

애플 아이폰 5S에 탑재되는 AP 설계업체였던 영국의 ARM도 중국 고객업체들의 니즈에 기민하게 대응하기 위해 대만에 연구개발 및 제조라인을 설립했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정치적 고향이자 서북지역의 대표적인 하이테크 단지인 시안(西安)에도 글로벌 선두업체의 10나노급 반도체 전(前)공정이 들어섰다. 

로컬 IT기업들의 제조체인도 덩달아 경쟁력이 올라서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모조 휴대폰 공장의 집산지로 알려졌던 선전(深圳)의 산쟈이(山寨) 제조벨트의 환골탈태다. 선전 산쟈이들의 변화는 2007년 중국 정부가 휴대폰 생산자격제를 철폐한 것이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대만제 칩셋에 글로벌 브랜드 제품의 외관을 입혀 매출을 올렸던 이들 기업이 고유 브랜드로 시장에 진입할 수 있게 되자, 부품 공정 별로 분업화가 진행되는 한편, 뛰어난 원가경쟁력을 바탕으로 로컬시장의 중저가 영역은 물론 신흥국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들 분화된 제조라인을 한데 묶는 일종의 콘트롤 타워가 독립설계업체(Independent Design House)인데, 선전에만 대략 350개가 들어설 정도로 성황을 누리고 있다. 

현재 산쟈이 체인에서 만드는 휴대폰의 60%는 해외시장으로 팔려나가고 있을 정도로 국제화되어 있으며, O-Film Tech(欧菲光)과 같이 터치패널 기술을 인정받아 화웨이 등과 같은 글로벌기업의 협력업체로 부상한 곳도 나타나고 있다. 샤오미 역시 산쟈이 제조체인을 일부 활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실리콘 밸리 혁신기업의 아이디어를 선전의 제조라인에서 구현해내는 일종의 인큐베이팅(Incubating) 컨설팅 업체도 나타나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머리와 선전의 몸통이 연결되는 글로벌 ‘최강조합(最强組合)’ 사업모델이 어쩌면 수년 내 나타날 수도 있다. 

중국 내 제조사슬은 알리바바와 같은 인터넷 플랫폼을 통해서도 이미 국제적 기술 간극을 좁히고 있는 상태다. 알리바바(B2B) 플랫폼에 가입한 고객 수는 2012년 이미 280만 개를 넘어선 것으로 집계되는데, 이 중 60% 정도가 글로벌 고객으로 알려져 있다. 꼭 필요한 제조사슬 중 중국 로컬시장에서 빠진 부분일지라도 인터넷 플랫폼이 촘촘히 메워주고 있는 것이다. 

④ 빈익빈(貧益貧)형 구조조정의 진행 

중국 본토시장이 S/W와 H/W의 융합, 연대와 제휴를 통한 혁신경쟁으로 흘러가면서, 이 같은 역량을 갖추지 못했거나 소외된 중소기업들의 어려움은 가중되고 있다. <그림 3>을 보면, 스마트폰 및 LTV 시장에서 최근 수년 새 중소 브랜드들의 점유율 약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2009년부터 본격화된 중국 정부의 교통 통신 등 인프라 투자 등으로 시장 선두업체들의 헤게모니가 지역적으로 확대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중국 내수시장이 지난 30여년 동안 각급 정부의 지역이기로 파편화된(Fragmented) 특징을 보여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지방정부의 고용 및 세수를 책임져온 지방기업들이 해당 지역 내 전자시장의 강자로 군림할 수 있었던 것도 기본적으로 지역적 연계가 탄탄하고 일정한 범위 내에서 물류 유통경쟁력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통인프라의 확충으로 물류라인이 보다 전국화, 효율화되고, 통신인프라 업그레이드로 인터넷 등 온라인 환경이 불과 수년 새 소비자들의 구매패턴으로 정착되면서 이 같은 파편화된 장벽은 갈수록 힘을 잃을 수밖에 없는 추세다. 

중국 국무원은 2013년 주요 부처와 연합으로 2015년까지 전자 IT분야에서 매출 1,000억~5,000억 위안대 로컬기업을 5~8개까지 늘리겠다는 청사진을 발표했다. 이 발표의 이면에는 ‘될성부른’ 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은 도태하더라도 개의치 않겠다는 정책의지가 숨어있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로컬기업들의 과잉생산 및 경쟁은 산업 구조조정을 더디게 하고, 외려 자원낭비를 초래한다는 것이 시진핑 5세대 지도부의 시각이다. 위에서 설명한 3가지 로컬시장의 패러다임 변화 양상에 비춰볼 때 설사 지방정부의 지원이 작동하더라도 이들 기업의 생존공간이 유지될지도 의문이다. 

중국 내수시장에 진출해온 글로벌 IT 강자들은 지난 20여년동안 제품별로 수십 개에 달하는 로컬 브랜드들과의 출혈 가격전쟁을 벌이면서 ‘언젠가는’ 몇 개의 수익성 좋은 브랜드가 살아남아 경쟁하는 구조조정의 시기가 올 것으로 기대해왔다. 경쟁관계가 분명해야, 앞선 기술력과 브랜드 파워를 바탕으로 시장지위를 끌어올릴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지난 수년간 시장의 프리미엄화와 대형 로컬 IT기업의 등장, 경쟁 룰의 변화 등으로 이 같은 기대는 서서히 현실화되고 있다. 그러나 소수 정예화한 로컬기업의 제품력이나 브랜드 파워는 내수시장에서 결코 허약하지 않다. 글로벌 강자라 할지라도 내수역량이 뛰어나지 않다면, 구조조정의 과실을 향유하기보단 오히려 도태될 가능성이 커졌다. 
  

3. 중국적 특징 
  

중국 본토시장에서 진행되는 패러다임 변화를 종합해보자. 20여년 이상 개별기업 단위로 이뤄져 왔던 H/W 스펙 업그레이드 경쟁이, 이제는 인터넷 환경 속에서 기업간 연대와 제휴를 통해서 고객가치를 높일 수 있는 소프트웨어 역량까지 다투는 시대로 바뀌었다. 과거 H/W 스펙 업그레이드 경쟁에서 주요한 역할을 했던 글로벌기업들의 제조체인은 이제는 중국에 내재화(內在化)됐거나 로컬기업과 경쟁구도를 형성하면서 그 위상이 약화됐다. 오랜 장기 고도성장으로 포지티브 섬(positive sum) 게임이 지배했던 시장흐름은 드디어 중국 경제의 중속 성장과 함께 중소 브랜드의 생존공간이 좁아지는 구조조정기에 들어섰다. 다시 말해, 중국 IT시장의 변화는 ‘양적 팽창이 질전 전환’으로 넘어가는 단계라 분석된다. 중국 로컬기업의 경쟁력 제고가, 저임노동력에 기초한 원가우위에만 있지 않다는 얘기이다. 그렇다면, 중국이 IT 분야에서 급속히 혁신동력을 키울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보다 동질적인 13억 시장의 힘 

중국 내수시장이 최근 13억 규모로 갑자기 폭증한 것은 아니다. 중국인구가 13억을 돌파한 것은 9년 전인 2005년이며, 10억 인구를 돌파한 것이 1981년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세계 최대시장이란 지위는 오래 전부터의 일이다. 

그러나 13억 인구가 소비자로서 본격 등장하게 되는 시기는 내수 주도성장을 표방한 2009년 이후로 구분할 수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급속한 성장률 저하를 막기 위해 중국 정부는 같은 해 4분기부터 4조위안대 긴급 재정확대 정책을 시행했고, 더불어 내수 중 소비의 성장견인 능력을 확충하기 위해 가전하향(家電下鄕) 기차하향(汽車下鄕)과 같은 소비진작책을 전국적으로 시행했다. 특히 이 시기 중부굴기(中部屈起)와 같이 상대적으로 낙후된 내륙지역의 도시화를 유도하는 정책에 주력했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도시형 생활 및 소비패턴을 가진 계층을 전국적으로 키우는 결과를 가져왔다. 개혁개방 과정을 먼저 거쳤던 연해 대도시 지역에는 대규모 프리미엄 소비계층이 늘어났으며, 통신 물류 인프라 확충사업은 지역적으로 장벽이 적지 않았던 중국 내수시장을 보다 균질화(均質化)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올해 상반기 말 기준 중국의 인터넷 보급률은 47%에 이르며, 3G 통신 이용자는 4억7,000만 명에 달한다. 

IT 시장의 프리미엄화 및 균질화는 작은 혁신으로 단박에 시장에 생존공간을 만들고,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시장이 지역별로 파편화돼 있고, 저가경쟁으로 흘러갈 경우 후발 혁신기업들이 기존 강자들이 만들어놓은 경쟁구도를 비집고 나오기 어렵다. 샤오미 같은 후발 혁신기업이 창사 4년만에 휴대폰 내수 점유율 1위에 등극한 것은 특정 소비계층의 니즈에 맞는 혁신 제품을 내수시장에 독특한 마케팅 기법으로 뿌릴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샤오미의 성공 이후 니치형 제품이나 서비스만으로도 단번에 거대기업으로 발돋음할 수 있다는 기대심리가 팽배해졌다. 

로컬기업들의 기술역량이 글로벌기업에 근접할수록 이 같은 혁신 도전의욕은 충만해진다. 글로벌기업과의 기술역량이나 브랜드파워가 현격하게 벌어져 있을 경우, 자그마한 기술적 업그레이드가 시장의 성과로 이어지긴 쉽지 않다. 글로벌 강자들의 강력한 견제장치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격차가 많이 좁혀졌다면, 자그마한 혁신을 통해 성과를 낼 가능성은 더욱 커지게 마련이다. <그림 4>를 보면 50인치 이상 프리미엄급 TV시장에서 로컬 브랜드의 점유율이 글로벌 브랜드를 압도하고 있으며, 2,000위안 대 이상 중고가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로컬브랜드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기술적 간극이 좁혀졌을 때, 로컬 특정 소비자계층의 니즈를 만족시키는 차별화 경쟁이 벌어진다면 시장흐름에 익숙한 로컬기업이 훨씬 유리해진다. 

중국의 주요 IT기업 경영자는 한국 일본의 경쟁기업보다 훨씬 ‘혁신의 메카’인 실리콘밸리에 친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알리바바는 지분구조만으로 보면, 미국 일본 중국의 다국적 기업이다. 바이두의 창업자인 리옌홍(李彦宏)은 미국 IT 업계에서 다년간 근무한 ‘하이꾸이(海龜)’ 출신이다. 샤오미에는 실리콘 밸리에서 영입된 안드로이드 전문가 휴고 바라(Hugo Barra)가 해외사업을 관장하고 있다. 중국 로컬 30대 IT기업 대표들의 평균 연령은 올해 46세로 집계된다. 글로벌 흐름의 한 가운데에서 몸소 체험하거나, 개방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연령대이다. 

사회주의 정부의 당근정책 

앞서 교통 통신 인프라와 같은 하드웨어 인프라 확충에 중국 정부가 남달리 열성적이었음을 설명했다. 최근 중국 정부 산업정책의 골자는 7대 신흥산업과 같은 미래산업을 경제의 성장엔진으로 키우는 한편, 전통산업은 고부가가치화 스마트화 에너지효율화 등으로 마치 ‘오래된 나무가 싹을 틔우듯(老樹發新芽)’ 갱생시키는 것으로 요약된다. 인터넷을 토양으로 성장한 로컬 IT기업들의 혁신경쟁은 미래형 산업의 범주에 포함되는데, 중국 정부는 그 동안 이 분야의 로컬경쟁력을 단번에 키우기 위해 글로벌 선두업체들과의 합작사업을 ‘외상투자사업 지도목록’ 등을 통해 부단히 강제해왔다. 미래형 사업일수록 외국기업의 단독 사업운영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또 3G 통신규격과 같이 국가표준을 제정하고 보급해야 할 사안의 경우 로컬기업간 합종연횡을 유도함으로써 단기간에 가치사슬의 중국 내재화를 유도하기도 했다. 소프트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최근 국유기업에 한해 로컬기업의 S/W를 사용하도록 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공산당 일당지배라는 일관된 정치권력의 지휘에 따라 장기적으로 일사불란한 산업정책을 펴고 있는 셈이다. 

IT 산업과 같은, 글로벌 트렌드가 중요한 분야에선 특히 중국 공산당의 ‘천인계획(千人計劃)’이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것으로 분석된다. 1,000명의 글로벌 인재를 중국에 유치한다는 발상으로 2008년부터 중앙당 조직부가 주관하고 있는 이 계획은, 중국의 위상이 G2급으로 격상되면서 지금까지 당초 목표인원을 훌쩍 뛰어넘는 4,000명이 학계나 기업경영 부문으로 이식됐다. 3분의 1은 전자 IT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중국 공산당은 인터넷 관련 혁신은 ‘선 방임 후 규율’하는 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알리바바와 같은 인터넷 플랫폼이 온라인 결제사업을 벌이거나 소액대출 사업에 나서는 것 역시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소액대출 사업은 아직 그 규모 면에서 국유상업은행들의 여신규모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비교적 높은 이율에 힘입어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어 자칫 미래의 화근이 될 수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중국 공산당은 이런 지적에 대해 감독주체와 규정을 제정하는 식으로 사후규율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이 이런저런 규제를 통해 실질적으로 인터넷 금융시장에 빗장을 걸고 있는 것과 비교된다. 
  

4. 한국기업들의 활로 
  

중국 IT기업들의 혁신동력이 중국 공산당의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지원정책이란 배경을 깔고 있고 자생적인 추진력을 갖춘 것이라면 현 경쟁력 수준이 앞으로 인건비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면서 약화될 것이라고 예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특히 부상하는 로컬 IT기업일수록 실리콘밸리 등 글로벌 혁신기업과 연계를 맺거나 그들의 성공방정식을 해부하면서 중국식으로 변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로컬 IT기업들의 글로벌 시장 진출은 이제부터 본격적인 수순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치열한 경쟁 탓에 내수사업의 수익성은 점차 악화되는 반면, 내수경쟁에서 나름대로 효용을 입증한 비즈니스 모델을 글로벌시장에 확장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 선발기업들을 물리치고 입지를 다져온 한국의 글로벌기업들은 이제 제품력도 뒤지지 않고, 원가경쟁력은 더 뛰어나면서, 실리콘 밸리에 대한 후각도 앞선 최강의 후발 경쟁자와 맞닥뜨리게 됐다. 

그렇지만, 중국 본토시장과 글로벌시장은 엄연히 게임의 룰과 경쟁대상이 다르다. 중국 내수시장에서 강한 입지를 다졌다고, 모두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것이라고 판단할 수는 없다. 중국 내에서 패러다임 변화를 이끌고 있는 로컬 IT 기업군은 크게 ▲인터넷 플랫폼 기업 ▲S/W 기반 경쟁력으로 H/W 분야를 융합하는 기업 ▲H/W 기반이 강한 대형 IT기업 등으로 3분할 수 있다. 알리바바와 같은 인터넷 플랫폼들은 사업의 특성 상 이용자 기반을 확장하는 데 월등한 강점이 있다. 앞으로도 알리바바 텅쉰 바이두를 중심으로 치열한 고객확보 경쟁을 벌일 것이며, 이 과정에서 더 소수업체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더라도 플랫폼 진영의 내수시장 지배력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본업인 전자상거래를 제외했을 때, 글로벌시장으로의 생태계 확장은 결코 쉽지 않은 과제이다. OS 컨텐츠 분야에선 미국 구글 애플과 같은 글로벌 IT 거대기업은 물론 각국 시장 내에도 저마다 강력한 컨텐츠 사업자가 지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중국 내수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H/W 융합형 혁신도, 아직까진 기대만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알리바바는 자체 개발한 알리OS를 중심으로 기존 H/W 강자들을 엮는 생태계 조성을 시도하고 있지만, 전반적인 반응은 시큰둥한 편이다. 알리OS가 앱을 다운받지 않고 클라우드 환경에 접속해 운용하는 형태인데다, 소비자들의 사생활 보안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지 못하고 있다. 

두 번째 진영인 S/W 기반 융합업체들은 현재까지 가장 뛰어난 차별화 혁신을 성공시킨 그룹이다. 그러나 글로벌 사업경험이 충분치 않아 글로벌시장으로 확장하는 데 있어 난관이 적지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이를 테면, 글로벌시장에서의 마케팅 역량이 충분한가, ‘중국산’이라는 브랜드 이미지 저평가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해외시장 최적화 비용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등의 이슈가 발목을 잡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샤오미가 중국 시장에서 성공신화를 쓸 수 있었던 가장 기초적인 역량은 젊고 까다로운 소비자층에 최적화된 S/W 개발능력이었는데, 해외시장에서는 안드로이드 진영과의 지재권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함과 동시에 충성고객을 만들어낼 현지화 능력 등이 구비돼야 한다. 이런 난관을 돌파하지 못한다면, ‘스펙 좋은 또 다른 저가의 중국제’ 핸드폰에 머물게 되는데 이는 화웨이 등 전통적인 H/W업체들이 강력하게 버티고 있는 시장영역이기도 하다. 

H/W 기반이 강한 세번째 IT기업 진영에는 화웨이 중싱(ZTE) 하이얼 하이센스(Hisense) 등 중국 전자산업을 이끌어온 대형업체들이 포함되는데, 규모의 경제에 입각한 강한 원가경쟁력이 공통적인 강점이다. 샤오미 등 S/W 기반 IT 진영의 돌풍에 밀리는 형국이지만, ‘안마당’ 고객인지도는 여전히 무시할 수 없다. 
이들 진영은 글로벌 브랜드 인수합병 등을 통해 해외사업 경험을 축적한 데다, 글로벌 강자들과의 기술격차도 거의 좁혀놓은 만큼 가장 해외진출 동기가 강하고 성과를 낼 가능성도 높다. 이들 그룹은 최근 수년 새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일본의 선발기업들이 그랬듯 브랜드 투자를 강화하면서 프리미엄 제품 라인업을 크게 늘려왔다. 그러나 최근 샤오미 등 내수 후발주자들의 부상이 방심할 수 없는 수준에 달했다는 판단에 따라 고객과의 소통, 연관분야와의 제휴를 강화하는 한편, 중저가 영역에서의 가격경쟁력도 여전히 담금질하고 있다. 향후 글로벌시장에서 한국의 IT 기업들을 가장 힘들게 만들 그룹들이 바로 기존 H/W 경쟁력에 소프트 파워을 가미하게 될 이들 기업으로 판단된다. 

중국 전자기업들의 부상 이후 한국 IT기업들은 ‘미국과 중국 사이 낀’ 신세로 간주돼왔다. 원가 경쟁력 측면에서도 끼인 신세이지만, 미국의 소프트역량에 밀리면서 중국의 하드웨어 역량에 쫓기는 애매한 처지에 놓여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이제 중국의 신흥 IT기업들이 부쩍 강력해진 S/W역량을 기반으로 실리콘 밸리식 혁신을 추구하면서 상황은 더욱 낙관하기 어려워졌다. 미국에서 한국 일본으로, 이어 중국 시장으로 이어져온 ‘혁신의 시차(時差)’가 거의 없거나, 역전될 위기를 맞은 것이다. 

한국 IT 기업들은 이제 실리콘밸리의 혁신 아이디어에 주목하면서도, 중국 본토시장에서 벌어지는 ‘중국적 변용(Adaptation)’도 무시할 수 없다. 투입 가능한 인적 물적 경영자원을 비교해볼 때 적어도 아시아 시장에서는 중국 로컬 IT기업들이 가장 빠르게 혁신을 성공시킬 가능성이 높아졌고 이들의 글로벌시장 확장은 더욱 성공 가능성이 높아졌다. 유럽이나 미국의 IT기업들이 단순 생산거점이 아니라 베이징이나 상하이 선전 같은 대도시에 연구개발 센터를 세우고, 현지화에 나서고 있는 것은 참고할 만한 일이다. 

중국 IT시장의 잠재력이 만개하는 가운데에서도 한국기업들이 이를 체감하지 못하는 것은 ▲중국 내수시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여전히 중국이 글로벌 혁신수준과의 시차가 있다는 고정관념 때문일 것이다. 한국 IT기업들로선 중국 내수시장의 흐름을 감지하고(Sensing), 제품 영역에 따라선 중국의 혁신기업들과 공동보조를 맞추는(Strategic Alliance) 방안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IT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게 되는 데 있어 선전의 샨자이 벨트와 같은 제조 클러스터는 원가 리더십 측면에서 상당기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글로벌 제조 아웃소싱 기지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IT기업들도 핵심 부품이나 공정을 제외한 가치사슬은 과감히 중국에 맡길 필요가 있다. 더 나은 브랜드 이미지가 벌어주는 높은 판가효과도, 중국 기업들의 대규모 글로벌 브랜드 투자가 지속된다면 조만간 약화되기 십상이다. 브랜드 파워가 비슷해지기 전까지, 중국 로컬기업 수준의 원가경쟁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글로벌 시장 내 생존공간은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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