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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세계경제 리스크 진단

■ 경제보고서 ■ | 2016. 1. 18. 10:23 | Posted by 중계사


LG경제연구원 '2016년 세계경제 리스크 진단'



2016년 세계경제는 여러 위험요인에 둘러싸인 한 해가 될 전망이다. 가장 큰 불안은 미국과 중국의 G2 리스크다. 미국 금리인상이 진행될수록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커질 것이다. 중국경제가 구조조정에 성공해 새로운 발전단계에 연착륙할 것인지도 여전히 불확실하다.


미국과 중국이 세계경기를 이끄는 힘이 약화된 상황에서 각국은 각자도생에 나설 것으로 보이며, 이 과정에서 환율전쟁의 양상이 벌어지면 세계경제와 자국의 회복세에 악영향을 미칠 우려도 있다. 신흥국 경제는 중국 경제의 둔화, 원자재 가격 하락 등으로 2016년에도 어려움이 이어질 전망이다. 세계교역 부진을 극복하기 위한 다자간 무역협정이 진행되면서 기존 통상질서가 재편되는 환경변화도 예상된다. 이와 함께 국제 테러 확산 등 지정학적 리스크와 일부 국가들의 정치불안이 세계경제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처럼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우리 경제는 금융 및 실물부문의 개방도가 높아 향후 대외요인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 있다. 세계경제의 리스크 요인에 대한 면밀한 모니터링을 통해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충격에 대한 대응책을 미리 갖춰야 할 것이다.

 

 

< 목 차 >


1. 세계경제의 최대 불안요인, G2 리스크
2. 경기부양의 이면에 숨겨진 환율전쟁의 그림자
3. 성장 부진의 구조적 틀에 갇힌 신흥국
4. 지정학적 리스크와 정치적 불안 요인들
5. Mega FTA 시대가 야기할 통상질서의 재편

 

 

2016년 세계경제는 상당히 불투명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경제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회복세를 보인 배경에는 선진국의 대규모 통화완화 정책과 중국의 고성장이 있었다. 이런 동력이 원자재 수요 증대로 이어져 자원수출국 및 자원관련 산업의 성장을 촉진함으로써 경기상승 효과가 세계 각국으로 확산됐다. 그러나 이러한 선순환은 이제 한계에 다다른 것으로 보인다. 미국 금리인상으로 글로벌 통화완화 기조는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었으며 중국경제는 이제 불안의 한 축이 되었다. 국제유가도 약세가 전망되는 등 원자재 시장도 부진한 상황이다. 미국의 회복세가 세계경제를 이끌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에서 여러 불안요인이 곳곳에 산재하고 있는 상황이다.


앞으로 세계경제를 위협하는 요인으로는 미국 금리인상의 충격과 중국경제 둔화로 요약되는 G2리스크, 주요국 경기방어 과정에서 불거질 수 있는 환율전쟁, 자원수출국 등 신흥국의 경제위기 가능성, 중동지역 중심의 지정학적 리스크 등을 꼽을 수 있다. 부진한 세계 교역을 극복하기 위해 추진되는 다자간 무역협정도 새로운 환경 변화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다만 미국 금리인상이 완만할 전망인데다 유로존과 일본의 통화완화도 지속될 것으로 보여 당장의 글로벌 통화긴축 강도는 높지 않을 것이다. 저유가가 세계경제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를 감안하면 2016년 세계경제가 침체에 빠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하지만 우리 경제는 금융시장 개방도와 무역의존도, 특히 중국과의 연관성이 높아 향후 대외요인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 있다. 2016년 세계경제를 둘러싼 이슈들을 살펴보고 우리 경제가 놓인 상황을 이해함으로써,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충격에 대한 대비책을 미리 마련하는 것이 필요한 상황이다.

 

 

1. 세계경제의 최대 불안요인, G2 리스크

 


2016년 글로벌 경제를 좌우할 최대 변수는 미국과 중국에서 비롯되는 G2 리스크다. 미국의 금리인상은 완만하게 이루어지고 세계경제도 이를 감내할 것으로 보이지만 여전히 불확실성은 남아 있다. 또한 중국경제는 제조업의 부진을 서비스업의 성장으로 만회하면서 경착륙을 피할 가능성이 높지만 실물경제 충격이 예상보다 클 경우 신흥국과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이 확산되고 경제가 급속히 위축될 위험이 있다.

 

미국 금리인상으로 신흥국으로부터의 자금이탈 확대

 

2015년 12월 16일 미 연준이 연방기금금리 인상에 나서면서 글로벌 위기 이후 근 7년간 유지돼 온 제로금리가 막을 내렸다. 10년만에 처음 단행된 금리인상이다. 미국의 통화정책 전환은 미국경제의 정상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하지만 세계경제는 이에 따른 긍정적 영향보다는 국제투자자금의 흐름이 바뀌면서 나타날 부정적 파급효과를 더 우려하는 모습이다. 그 동안 저금리 시기에 주식과 고금리채권, 신흥국 투자자산 등 위험자산으로 대거 유입되었던 투자자금이 이탈하면서 금융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무엇보다 신흥국으로부터의 자금이탈이 신흥국 금융시장과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대다수 신흥국들은 과거에 비해 많은 외환보유고를 확보하고 있는데다 환율의 유연성 확대를 통해 대외충격을 흡수하고 있어 정부의 대외부채가 부도위험에 빠질 가능성은 과거에 비해 많이 낮아졌다. 그러나 민간기업의 부채는 안심하기 어렵다. 특히 신흥국 기업들은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저금리 기간에 대내외 부채를 크게 늘린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금리인상으로 각국 금리가 동반 상승하고 해외자본이 유출되며 통화가치가 하락할 경우 기업들의 부채부담은 더 크게 증가하게 된다. 글로벌 위기 이후 선진국 가계의 디레버리지가 경기를 위축시켰다면, 이제는 신흥국 기업들이 디레버리지에 나서는 것이 신흥국 경제의 위협 요인으로 작용할 우려가 높은 것이다. 특히 자원의존도가 높은 신흥국이 장기간의 자원가격 약세로 국제수지가 악화되는 등 경기위축을 겪고 있어 미국 금리인상에 따른 충격이 클 것으로 보인다. 자본유출에 따른 통화약세 우려가 크고 고물가에 시달리는 국가들은 미국과 다른 독자적인 통화정책을 펼 수가 없어 대응여력이 부족하다.

 

물론, 미국의 금리인상이 대단히 신중하고 느리게 진행될 것으로 보여 신흥국이 받을 충격을 완화시켜 줄 수는 있을 전망이다. 과거 금리 인상기에는 미 연준이 의도하는 금리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연속적으로 금리인상에 나서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이번에는 국내외 실물경제 및 금융시장 상황을 살피면서 추가 인상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2015년 말 금리인상 시에 미 연준 위원들은 2016년에 4차례, 총 1%p 정도의 금리인상 전망을 예상했으나 실제로는 이보다 금리인상폭이 더 작아질 수도 있다. 미국의 경제상황이 탄탄하지 않은 데다, 금리인상에 따른 달러강세와 글로벌 경제의 위축이 미국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고려치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원자재 가격 약세로 인해 물가불안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도 높지 않아 빠른 금리인상이 요구되는 상황도 아니다.

 

미 연준이 글로벌 경제에 큰 충격을 주지 않는 선에서 금리인상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만, 향후 신흥국 경제 등 글로벌 경제환경이 다른 변수와 맞물려서 예상 외로 악화될 불확실성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중국경제 경착륙의 불안감은 2016년에도 지속

 

중국경제의 경착륙 가능성은 2010년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온 문제다. 이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한 대응 과정에서 불거진 지방정부 재무구조 부실화, 경제성장의 부동산시장 의존도 증가, 그림자금융 팽창 등이 중국경제의 위협요인으로 지적되었다. 이를 의식하고 중국 정부도 2012년부터 ‘안정적 성장 속의 구조조정과 개혁(稳增长, 调结构, 促改革)’을 국정의 기치로 삼고 구조조정과 개혁을 추진한 결과 이 문제들은 이제 어느 정도 완화된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경기 둔화세가 이어지면서 개혁과 구조조정 추진의 기본요건이라 할 수 있는 안정적 성장이 위협받고 있다. 특히 2015년부터 기업 부도가 급증하고 주식, 외환 등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중국경제의 경착륙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부실기업 정리 등 제조업 부문의 구조조정이 얼마나 순조롭게 이루어질 것인지에 따라 향후 중국 경제의 명암이 갈릴 것으로 보인다.


2015년 3월 현재 중국 기업의 부채 잔액은 GDP 대비 161.3%로, 다른 개도국들이나 선진국들에 비해 규모가 크고 부채의 증가 속도도 매우 빠른 편이다. 반면 4년째 이어진 불경기 속에 기업들의 이익창출 능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어 2016년에는 빚을 갚지 못해 파산하는 기업들이 속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철강, 시멘트, 석탄 등 설비과잉 산업의 전통 제조업체들이 생사의 기로에 몰려있다. 상하이와 선전(深圳) 증시의 상장종목 가운데 ‘좀비기업(僵尸企业)’, 즉 비경상손익 차감 후 순이익이 3년 연속 마이너스인 기업이 전체의 10%에 이르며, 그 중 절반은 설비과잉 업종의 지방 국유기업들이다. 이런 좀비기업들을 큰 후유증 없이 도태시키는 동시에 고부가가치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비중을 빠르게 높여가겠다는 것이 중국 정부의 목표다. 부실기업 처리가 금융시장에 대한 충격 없이 이뤄지는 것, 그리고 일자리 창출에 필요한 성장의 하한선(6.5% 안팎)을 지키며 국유기업 개혁, 금융 및 재정개혁 등이 성과를 거두어 기업 활력이 되살아나는 것이 중국경제 최상의 시나리오가 될 것이다.

 

하지만 안정적 성장과 구조조정 및 개혁 간의 균형잡기에 실패한다면 최악의 경우 중국 경제가 경착륙을 하는 상황을 배제하기 어려울 것이다. 예컨대 성장률 방어에 치중해 금융위기 직후처럼 공격적으로 경기를 부양하거나 구조조정 및 개혁을 미룬다면, 잠시 숨을 돌릴 수는 있겠지만 결국 경제 체질이 허약해져 머지않아 더 큰 위기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 정반대로 너무 빠른 속도로 구조조정이나 개혁이 추진될 경우, 기업 대량파산이 금융시장에 충격을 주고 이에 따른 신용 위축이 전반적인 경기의 급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생길 수도 있다.

 

만약 중국 경제가 경착륙한다면, 예컨대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2분기 이상 5% 미만으로 하락하게 된다면 글로벌 경제에 대한 충격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 한국은 중국 수입시장 점유율 1위국인데다 중국과 많은 산업에서 긴밀한 국제분업 관계를 형성하고 있어 중국 발 충격에 상당히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10년간 중국의 원자재 수요 증가가 각 품목별로 전세계 원자재 수요 증가분의 50% 이상을 차지했던 점을 고려할 때, 중국 경기침체는 국제 원자재 가격의 급락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그 경우 원자재 수출의 성장기여도가 높은 신흥국들이나 재정 구조가 취약한 신흥국들이 자본유출과 환율 폭등에 호된 시련을 겪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단기간 내 중국 경제가 경착륙하는 최악의 상황이 빚어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중국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높은 수준인 금리나 지준율을 내려 경기를 지지할 수 있는 여력이 있고, 양적완화나 소비보조금 지급 등 경착륙을 막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정책수단을 갖고 있다. 그간의 성장모델 전환 노력의 결과, 위기의 진원지인 투자와 제조업을 대신해 소비와 서비스업이 중국 경제성장의 주 엔진으로 빠르게 부상하고 있기도 하다. 외채, 외국인 포트폴리오투자 등 통제하기 힘든 요인들의 경우, 그 규모와 비중이 작아 금융시장 불안이 외환위기로까지 비화될 가능성은 사실상 거의 없다고 판단된다. 또한 사회주의 통제경제 시기의 유산이 남아 있어 정부 부문(지방정부, 국유기업)이 여전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민간부문에 대한 정부 지배력이 강한 점도 중국 경제가 위기에 대해 강한 내성을 갖게 하는 요인이다.

 

G2 리스크 현실화되지 않더라도 세계경제 성장 억제 요인으로 작용

 

신흥국들은 미국의 빠른 금리인상과 중국경제의 경착륙이 동시에 발생할 경우 큰 충격을 받을 것이다. 많은 신흥국들이 경제위기를 겪고 글로벌 경제도 침체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단, 중국 경착륙 리스크가 고조될 경우 미국의 금리인상 속도가 느려질 것으로 보여 두 위험요인이 동시에 급격히 확대될 가능성이 높지는 않다.

 

다만 최악의 상황은 피한다 하더라도 G2리스크는 앞으로 상당기간 동안 신흥국 경제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특히 대외부채가 많은 신흥국들은 미국의 금리인상으로 채무부담이 늘어날 것이다. 중국 성장세 둔화 및 그에 따른 자원가격 약세, 위안화 절하 등으로 자원의존도나 대중 수출의존도가 높은 국가들도 경기 둔화와 금융 불안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우리경제는 튼튼한 외환방어막과 높아진 국가신용등급을 배경으로 미국 금리인상의 직접적인 충격은 크지 않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여타 신흥국 경제가 위축될 경우 악영향이 전염될 가능성은 있다. 특히 중국경제의 성장 둔화와 위안화 절하는 직접적으로 우리경제를 위축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다. 향후 미국 금리인상과 중국경제 상황에 대한 시장의 기대가 급격히 변하는 양상이 반복될 수 있으며, 이는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을 높이고 경제활동을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

 


2. 경기부양의 이면에 숨겨진 환율전쟁의 그림자

 

 

2016년 글로벌 경제는 예상보다 좋아지기보다는 오히려 더 부진할 위험이 높아 보인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는 상황에서 주요 국면마다 금융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위험이 큰데다, 중국 및 자원수출국 등 신흥국 경기에 대한 우려도 심화되는 등 불안요인들이 산재해 있는 상황이다.

 

대외 불안이 커질수록 각국은 더욱 자국 경기를 방어하고 대내 활력을 이어가려 애쓰게 될 것이다. 금융위기 이후 많은 국가들의 재정여력이 소진된 상태에서 결국 남아있는 카드는 통화정책이다. 금리를 낮추고 돈을 풀어 소비와 투자의 유인을 높이려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다. 하지만 그 이면에 기대되는 또 다른 효과로 자국통화 가치의 하락도 있다.

 

물론 명시적으로 환율을 주된 정책목표로 삼는 경우는 이제 드물다. 일반적으로는 통화완화 정책으로 자국 통화가 약세압력을 받았을 때 당국이 그 압력을 얼마나 흡수하느냐의 여부가 그 나라의 외환정책 노선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경기가 더 악화된 나라일수록 통화완화에서 기대할 수 있는 모든 효과를 거두려 할 것이다. 대외적으로도 경기가 부진한 국가일수록 통화약세가 용인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국 각국의 펀더멘털이 향후 환율 정책을 가늠하기 위한 열쇠인 셈이다.

 

미국 금리인상에도 유로존 및 일본 통화 완화 지속

 

2016년 중 미국은 금리를 올리더라도 나머지 주요 선진국들은 통화완화를 이어갈 전망이다. 달러 강세 및 주요 선진국 통화 약세 구도가 내년에도 지속되는 것이다. 우선 유로화는 추가 약세 가능성이 높다. 지난 해부터 유로존 경기가 다시 회복세를 보인 것은 유로화 약세로 인한 수출 증가에 기인한 부분이 컸다. 2015년 상반기 이후 유로화 약세가 주춤하자 수출 경기도 다시 둔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경기회복의 내부 동력이 미약한데다 해외수요도 부진한 점을 고려하면 유로존의 회복세는 여전히 위태로운 상황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추가 통화완화에 나서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유로화의 약세는 유럽 내 다른 통화들의 약세로도 이어지게 된다. 유럽국가들은 유럽 내 교역 비중이 높아 유로화 약세가 다른 국가의 경상수지 악화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유럽 각국은 자국의 경상수지가 악화되기 전에 미리 통화완화에 나서 유로존 대비 수출 경쟁력을 종전과 비슷하게 유지하려 할 것이다. 유로화 변동의 충격을 줄이고자 자국 통화 가치를 유로화에 연동시켜 놓은 국가들의 경우, 유로화 절하 시 통화가치가 동시에 동반 약세를 보이게 된다. 지난 2014년말과 2015년 초 유럽 내에서 각국이 경쟁적으로 통화가치를 낮춘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비슷한 상황이 앞으로도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일본도 통화완화 기조를 이어갈 전망이지만, 추가적인 엔저를 유도하기보다는 현재의 환율수준을 유지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엔화가 달러 당 120엔선을 넘어선데다, 수출은 기대에 못 미치는 반면 수입업체들의 어려움은 늘고 있어 추가 엔저를 도모하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일본 당국의 관심사는 갑작스러운 엔고 전환 가능성에 대비하는 것일 수 있다. 향후 금융불안이 심화될 경우 안전자산 선호가 심화되고 일본 대외투자가 환류되면서 엔화가 강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금융위기 당시에도 각국은 자국 통화 약세에 힘입어 경기가 회복세로 접어든 반면 일본은 엔고의 부담으로 부진을 면치 못한 바 있다. 일본 당국은 추가 양적완화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시장과 소통함으로써 과거의 양상이 반복되지 않고 현재의 환율수준이 안정적으로 이어지도록 노력할 것으로 보인다.

 

주요 거대 신흥국 및 자원수출국도 막바지 통화완화 전망

 

신흥국들도 경기우려가 큰 나라들을 중심으로 금리인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사실 신흥국은 자금이탈 우려가 있어 통화완화의 부담이 큰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미국과 함께 동반 금리인상에 나서는 국가들도 점차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신흥국들은 대부분 미국과의 금리수준 격차가 꽤 존재하는데다, 미국 금리인상 자체도 더딘 속도로 진행될 것으로 보여 추가 통화완화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중국, 인도 등 경기부양이 필요한 거대 신흥국과 브라질, 러시아 등 자원수출국들은 2016년 중 막바지 통화완화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결국 글로벌 금융시장에 영향력이 큰 국가들의 경쟁적 통화완화는 당분간 이어지는 셈이다.

 

우선 G2 중 한 축인 중국은 앞으로도 위안화 약세를 용인할 가능성이 높다. 내수 중심의 성장노선을 공표한 것이나 핫머니 유출을 막으려는 노력을 보면 일견 위안화 강세를 유도할 것으로 예상되기도 한다. 그러나 내수 중심의 성장은 중장기적 목표로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자본유출 역시 그 발단이 경기에 대한 우려라는 점에서, 오히려 어느 정도의 위안화 약세는 수출 개선에 대한 기대를 높여 자본유출 가능성을 줄이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이를 감안할 때 중국은 앞으로 통화완화를 지속하는 한편 그 과정에서의 위안화 약세도 용인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중국 외환관리국이 위안화 인덱스를 공표하고 위안화가 여전히 강세 통화라는 점을 애써 강조한 것에는 향후 환율정책 측면의 노림수도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예컨대 향후 위안화가 달러 대비 약세를 보이더라도, 전체적인 위안화 가치를 보면 수출경쟁력 유지를 위한 경기방어 차원이었음을 주장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느 정도의 위안화 약세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자원의존도가 높은 국가 및 중국과의 연관성이 높은 국가들도 통화완화가 전망된다. 해외 IB들의 전망 컨센서스를 참조하면 호주를 비롯해 브라질, 러시아, 인도, 인도네시아, 태국 등 주요 신흥국들이 2016년 중 금리인하에 나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특히 브라질은 얼마 전까지도 헤알화 급락 및 물가 상승에 대응하여 금리를 인상해왔으나, 최근 금융시장이 안정되는 모습을 보이자 바로 통화정책 기조를 완화로 급선회할 뜻을 내비쳤다. 유가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의 약세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경기 방어의 필요성이 더욱 커졌기 때문이다.

 

고정환율제 등 경직적인 환율제도를 채택한 국가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달러에 자국통화를 고정시킨 경우 달러 강세의 부담이 자국 경제로 전해지게 된다. 대표적인 예가 산유국들이다. 이 국가들은 유가 하락과 통화 강세의 이중고를 겪고 있다. 2014년 이후 달러 강세 및 유가하락으로 어려움이 가중되자 고정환율제를 채택하던 국가들도 자국 통화의 평가절하에 나섰다. 카자흐스탄, 시리아, 알제리, 이란 등이 대표적인 예다.

 

2016년에도 달러 강세 및 원자재 가격 약세가 예상됨에 따라 이들 국가들의 평가절하 움직임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국제유가가 배럴당 40달러 대에 머물 경우 거의 모든 산유국에서 재정적자 압력이 클 것으로 보여 부담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등 아직 기존 환율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국가들 중에서도 경기부담이 가중되면 평가절하에 나서거나 심할 경우 페그제를 포기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2016년은 경기부진과 금융불안의 우려 사이에서 정책 밸런스가 요구되는 한 해가 될 것이다.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는 상황에서 통화완화에 나서는 것은 물론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사실 과거에도 그런 경험은 적잖이 있었다. 1994년 당시에는 유럽 선진국들과 일본이, 1999년에는 브라질, 필리핀 등이 금리를 인하했고, 2004년에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중국, 브라질, 터키 등 여러 신흥국이 금리를 낮춘 바 있다. 앞으로 각국의 통화정책이 엇갈리는 국면이 나타나는 것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오히려 글로벌 통화긴축의 강도가 더 세지기 전에 어떻게든 회복의 동력을 마련하기 위한 각국의 시도가 더 치열해질 가능성이 높다. 미국 금리인상이 더딘 속도로 진행될 것이라는 점도 각국 통화완화의 여지를 넓혀주는 부분이다. 경쟁적 통화완화와 그 이면에 숨어있는 환율 전쟁은 2016년에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3. 성장 부진의 구조적 틀에 갇힌 신흥국

 

 

2016년에도 신흥국 경제는 부진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전망이다. 무엇보다 2012년 이후 지속되고 있는 원자재 가격약세가 주된 요인이다. 지난 5년 사이 금, 구리, 석탄 등 주요 원자재 가격은 거의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2015년에는 원유가격마저 크게 하락하면서 산유국도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다. 수출에서 원자재 비중이 높은 나라일수록 성장률이 더욱 떨어졌다.

 

전 세계적인 교역부진도 제조업 신흥국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에 편입되면서 성장의 과실을 나누었던 국가들은 수출부진으로 타격을 입고 있다. 여러 국가에서 부품 및 원자재를 수입하여 조립한 후 다른 지역으로 수출하는 글로벌 가치사슬이 전세계적인 경기부진을 전파하는 통로가 된 셈이다.

 

게다가 2015년 12월 미 연준이 통화정책 정상화를 시작한 것도 신흥국에는 부담이다. 금융위기 이후 자원기업을 중심으로 부채가 크게 늘었고, 2010~14년 중 신흥국으로 흘러 들어간 채권과 주식투자 자금만 하더라도 1조 달러에 달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신흥국의 부진이 일시적이고 단기적인 수준이 그치지 않고 구조적인 저성장의 시작일 수 있다는 점이다.

 

선진국의 수요부진에 중국경제 감속까지 겹쳐

 

우선 수요측면에서 살펴보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의 성장세가 크게 낮아진 상태다. 미국만 하더라도 금리인상을 고려할 정도로 경기가 회복되었지만 노동시장 참가율은 80년대 이후 최저치이고 강달러에 따른 제조업 부진 우려도 있다. 유럽과 일본은 전반적으로 안정을 되찾은 모습이지만 2016년 성장률은 1% 전후로 전망된다. 중기적으로도 성장세가 크게 높아지기는 어려워 보인다. 일본, 유럽 등은 고령화, 낮은 혁신수용성 등으로 잠재성장률이 1%대에 그친다. 미국의 경우에도 인구구조나 혁신측면에서는 상대적으로 낫지만 잠재성장률은 2% 초중반으로 2000년대 중반에 비해서 0.5~1%p 가량 하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고 2000년대 중반과 같이 부채가 견인하는 성장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금융위기 이후 민간부문에서는 부채확대에 미온적이며, 금융부문에서도 규제가 강화되는 등 리스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여전히 남아있다. 실제로 민간부문은 2010년 이후 부채축소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에도 불구하고 금융위기 이전과 비교하면 전체 부채 증가율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태다.


글로벌 수요의 또 다른 축인 중국도 심상치 않다. 중국 경제는 저성장 추세 속에 투자와 수출 중심에서 내수와 소비 위주로 성장 축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2010년대 초반 10%를 상회하던 성장률은 이제 6%대로 하락했고, 2015년 3분기까지 중국 제조업의 생산 증가율은 6%에 그쳐 8.4%를 기록한 서비스업에 비해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성장축의 변화가 중국으로서는 불가피하고 또 한편으로는 긍정적일 수 있지만, 중국의 대규모 투자와 수출 덕분에 빠른 성장을 구가했던 신흥국에게는 불리한 여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OECD의 세계투입산출분석에 따르면 중국의 고정자산투자가 교역상대국의 부가가치를 늘리는 효과가 소비의 2.1배에 달한다. 당분간 신흥국들은 중국의 성장률 하락과 성장축 전환, 그에 따른 원자재 가격 약세라는 삼중고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세계교역 부진, 원자재 가격 약세 등으로 투자도 감소세

 

공급, 즉 투자측면의 변화도 신흥국에는 당분간 부정적일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앞서 언급한 글로벌 가치사슬의 변화와 밀접하다. 우선 선진국과 중국의 수입수요가 과거에 비해 크게 늘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여 글로벌 분업구조를 기반으로 성장해 왔던 아시아 신흥국에게는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다. 실제로 2014년 이후 중간재의 세계교역 규모가 감소세로 돌아섰다. 또한 신흥국으로 향하는 해외직접투자 규모도 점차 증가세가 둔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출부진이 투자부진으로 연결되면서 글로벌 생산네트워크의 확산이 주춤하는 현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원자재 가격 약세도 자원 의존도가 높은 국가를 중심으로 부담을 키우는 요인이다. 2014년 이후 원자재 가격이 크게 하락하면서 원자재 관련 자본지출도 줄어들고 있다. 2015년 중 시추선이나 파이프라인 등 원유관련 투자는 전 세계적으로 1,500억 달러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이나 구리 등 여타 원자재 역시 가격이 하락할 경우 이에 대한 투자도 점차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원자재 부문의 문제는 투자축소에 그치지 않는다. 신흥국의 원자재 기업들은 독점적인 지위를 구축하기 위해 2012년 이후에도 부채확대를 통해 투자를 늘려 왔다. 이런 상황에서 예상 밖으로 원자재 가격이 크게 하락하면서 이들 기업의 재무구조도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무엇보다 신흥국 원자재 기업들이 사실상 국영기업으로 재정에 기여하는 부분이 많다는 점에서 이들 기업의 재무구조 악화는 신흥국의 위기로 직결될 가능성도 짙다. 이에 더해 2016년에는 본격적인 미국의 통화정책 정상화가 예상되고 있어 원자재 의존도가 높고 외국인 투자의존도가 높은 중남미 국가들을 중심으로 금융위기 가능성도 커질 것이다.

 

2016년은 내부적인 성장동인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많은 신흥국들에게 기회보다는 위협이 많은 해가 될 것이다. 특히 원자재 수출 비중이 높은 국가, 달러에 연동된 환율제도를 운영하는 국가,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국가, 대외부채가 많은 국가 등이 위험리스트의 맨 윗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반면 중국과의 무역 연관성이나 원자재 의존도가 낮은 국가, 또는 중국의 생산기지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양호한 성장세가 예상된다. 중국의 임금상승이나 세제혜택 축소 등으로 대체 생산지로 떠오르고 있는 베트남이나 최근 성장세가 가파른 인도가 대표적이다. 인도는 포트폴리오 투자가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외국인 직접투자는 증가하는 등 중기적 경제발전에 대한 기대가 높은 상황이다.

 

최근 수 년간 세계경제여건은 신흥국에게 상당히 불리하게 작용했다. 유로존 위기,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중국의 부진 등이 신흥국 경제를 위협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도 대부분의 신흥국은 상당히 잘 버텨왔다. 보수적인 재정 및 통화정책을 유지하는 한편, 외채구조를 개선하고 외환보유액도 확충하는 등 대외건전성 제고를 위한 노력도 꾸준히 해 온 결과다.

 

다만 외환위기 가능성은 줄었다 하더라도 경기부진의 우려는 여전하다. 과거와 같이 단기 조정 후 급반등하는 회복패턴은 이제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신흥국 각국이 주어진 개혁과제를 풀어내고 이에 따라 외국자본 유입이 확대되며 경제의 활로가 열리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그런 선순환 구조를 마련하기 전까지 신흥국 경제는 어려운 상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4. 지정학적 리스크와 정치적 불안 요인들

 

 

중동지역 불안과 국제테러확산 우려

 

2015년 11월에 프랑스 파리에서 발생한 국제테러를 비롯 미국, 영국, 중동, 아프리카에서도 잇따라 테러가 발생하면서 이제 어느 국가도 국제테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런 위험은 여행 등 일상생활에 뿐만 아니라 각국의 정치, 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2016년에도 세계경제를 위협하는 지정학적 리스크 및 정치적 불안요인들이 줄어들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중동지역에서는 IS(Islamic State)와 그에 대응하는 국제적 공동전선 간의 지정학적 갈등이 더욱 첨예해진 상황이다. 미국의 이라크전쟁으로 수니파의 후세인 정권이 붕괴된 이후 중동에서는 이슬람 종파간 갈등이 더욱 심해지며 분쟁이 이라크, 시리아로 확산되어 왔다. 식민지 시대에 구미열강이 설정한 중동 지역의 국경선은 사실상 이미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문제는 갈등의 골이 깊을 뿐만 아니라 이해관계가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점이다. 중동 각국 및 종파 간, 그를 둘러싼 주요 강대국 간의 입장이 여러 맥락에서 맞물려 있어 문제 해결을 위해 한 방향으로 힘을 모으기란 사실상 쉽지 않은 상태다. 앞으로도 중동을 둘러싼 갈등이 쉽사리 해소되기 어려운 이유다.

 

우선 중동 불안의 초점인 시리아 내전에서는 아사드 정권을 지원하는 이란, 이라크의 시아파 연대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다. 서방의 반IS 동맹도 강화되고 있으나, 그럴수록 지금까지 미국, 터키, 사우디아리비아 등이 대립해 온 아사드 정권이 이점을 얻는 측면도 있어 IS 격퇴를 위한 움직임은 생각만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터키도 반IS전선에 합류했지만 IS 반대 세력인 쿠르드족의 기세가 확산되는 것 또한 경계하고 있다. 또한 수니파의 사우디아라비아는 일단 IS가 자국 내 과격 이슬람세력을 선동하는 것을 막으려 하고 있지만, 동시에 시아파의 세력 확장이나 미국과 이란의 관계개선 등을 염려하는 측면도 있다.

 

이런 복잡한 이해관계는 중동 지역의 분쟁을 장기간 지속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중동의 분쟁은 국제정세 뿐만 아니라 세계경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우선 국제 유가가 그 영향의 통로가 될 수 있다. 통상적으로 중동지역의 지정학적 불안정성은 국제유가를 급등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아직까지는 중동 분쟁이 원유 관련 시설에 큰 타격을 주지는 못한 상태지만, IS를 조기에 섬멸하기는 어려울 전망임을 감안하면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더 커질 수 있다. 예컨대 이라크 내 석유시설이 공격을 받거나 중동 각국의 내전으로 인해 국제유가가 상승압력을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IS의 국제테러가 더 확대되거나 또 다른 새로운 분쟁지역으로 조직을 확산·이동시키면서 발생하는 불안도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중동 분쟁은 해당 국가들의 재정 기반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등은 이미 각종 전쟁비용 부담으로 재정이 악화되고 있으며 이런 흐름은 앞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중동 각국의 정부지출이 삭감되며 중동과 경제적 연관성이 높은 산업 및 기업이 타격을 입을 수 있으며, 석유관련 시설에 대한 투자를 감소시킴으로써 중장기적인 석유 공급능력에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 더욱 심할 경우 국제금융시장에서 풀려 있던 오일머니(Oil Money)가 회수되면서 이들 국가가 투자했던 각종 해외자산 가격이 하락하는 등 금융 불안이 확대될 우려도 있다. 2016년 세계 경제를 내다보기 위해서는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 역시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유럽통합의 개방성 후퇴 위기

 

파리 테러를 계기로 유럽 시민들의 反이민 정서 확대가 솅겐(Schengen)협정의 후퇴로 이어질 것인지도 2016년의 초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솅겐 협정은 EU 역내에서의 자유왕래를 보장하는 협정으로 EU의 근간이 되는 조약이다. 2015년 한 해에만 EU에 유입된 이민자 수가 99만명을 넘은 상황에서 2015년 12월의 EU정상회의에서는 국경 경비를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밀려오는 이민자 중에 테러리스트가 숨어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유럽 내에서의 반 이민 정서를 고조시키고 있는 것이다.

 

2015년 12월의 프랑스 지방선거 1차 투표에서 극우파 정당이 예상 외의 승리를 거둔 것도 같은 맥락이다. 2차 투표에서는 여당인 사회당이 최대야당인 온건보수파를 지원하면서 극우파가 승리하지는 못했으나 테러의 확산과 함께 유럽 시민들의 생각이 미묘하게 변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국제테러 확산에 따른 EU 시스템의 긴장은 솅겐 협정 반대 여론이 높은 영국의 EU 탈퇴 관련 국민투표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영국의 캐머런 총리는 2017년 말까지 영국의 EU 탈퇴 문제에 관한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공언해 왔으며, 영국정부는 수시로 여론 조사를 통해 동향을 살피고 국민투표의 조기 실시 기회를 탐색해 왔다. 국제테러의 확산과 이민의 급증으로 국민 정서가 악화된 상태에서 국민투표가 시행될 경우, 가능성은 낮지만 영국이 EU를 탈퇴하는 결과(Brexit)에 까지 이를 수도 있다. 그 경우에는 EU뿐만 아니라 세계경제 성장률이 급락하는 등 그 충격이 상당히 클 것으로 보인다. 국제 테러와 각국 이민정책의 변화 여부가 세계경제에도 중요한 변수인 것이다.

 

EU가 국제적 치안유지에 성과를 보이면서 자유왕래라는 EU의 기초를 유지하는 데 성공하더라도 국제테러의 후유증은 EU경제에 적지 않는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의 경우 이미 對테러 전쟁과 치안유지 비용 부담으로 인해 EU집행부에 재정적자 감축 목표를 지키지 못할 것이라고 통고한 상황이다. 그 외의 EU 각국도 對테러 전쟁을 위한 재정지출을 추가하고 있다. 또한 테러와의 전쟁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 관광 수요 위축 등으로 인해 당초 예상에 비해 EU경제의 회복세가 더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고립주의 경향 강화

 

이라크 전쟁 이후 중동지역에서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해 왔던 미국은 2016년에 대통령 선거 등으로 내정문제에 주력하면서 중동 등의 지정학적 리스크에 주도적으로 대처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국제테러의 온상이 되고 있는 시리아 내전에 대해서도 지상군 투입을 포함한 막대한 군사적 및 경제적 자원을 투입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전반적으로 미국은 글로벌 문제에 대한 개입을 줄이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사실, 미국은 최근의 중국의 부상에 대해서도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경향을 보였다. 미국은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부상을 일본과 함께 견제했으나, 동맹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은 AIIB에 참여하며 결국에는 성공리에 발족하게 되었다. 위안화를 SDR(IMF의 준비자산인 특별인출권) 구성통화로 편입해서 국제통화로서의 위안화의 위상을 높이는 문제에 대해서도 미국은 수동적인 입장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오바마 대통령이 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존재감을 강화하겠다고 공언하고 남중국해 분쟁지역에 전투함을 파견한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 미중 갈등은 그리 심각하지 않다는 평가가 대다수다. 지난 2015년 10월 미중간 해상충돌 가능성에 대한 보도가 나오던 당시에도 막상 미국 군함은 작전태세를 갖추지 않고 통행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앞으로도 미국과 중국이 충돌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판단된다. 오히려 중동 정세의 악화와 국제테러의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은 중국과의 협조를 강화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5. Mega FTA 시대가 야기할 통상질서의 재편

 

 

글로벌 통상 환경에도 적잖은 변화가 예상되는 가운데, 새해에는 그 중에서도 다자간(multilateral) Mega FTA 체제로의 변화에 주목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두 나라, 즉 양자간(bilateral)에 주로 체결되던 무역자유화 협정의 양상이 다수의 국가들이 함께 참여하는 방식으로 바뀌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지난 2015년 10월 초 타결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rans-Pacific Strategic Economic Partnership, TPP)’은 이를 잘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TPP 타결은 양자간 FTA 시대에서 다자간 FTA 시대로의 전환이 시작됐음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다. 물론 TPP가 실제 발효되기까지는 국내 비준을 비롯해 중요한 절차들이 여럿 남아 있지만, 미국과 일본이 함께 참여하는 거대 경제블록이 모습을 드러낸 것만으로도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는 충분했다.


TPP 타결 이전에도 ASEAN, NAFTA, EU 등 여러 나라가 참여하는 경제블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 국경을 맞대거나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라들을 중심으로 이뤄져 왔다. 그런데 해외직접투자 증가를 비롯해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과 물류 비용 하락, 제조업의 소프트화 등에 힘입어 거리가 멀고 이질적인 산업 구조를 가진 국가들끼리도 경제통합이 가능해진 것이다.

 

비준과 발효만을 남겨둔 TPP를 선두에 두고, ‘범 대서양 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과 ‘EU-일본 FTA’ 등이 그 뒤를 바짝 따른다. 다소 속도는 늦지만 ASEAN 10개 국을 비롯해 우리와 중국, 인도 등이 참여하는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도 조금씩 진전을 보인다. 애초에 ‘전세계 무역자유화’를 목표로 출범한 WTO 도하라운드만이 여전히 지지부진한 상태다.


Mega FTA 확산, 경제 및 산업구조 변화 반영한 결과

 

Mega FTA 중심의 무역자유화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세계교역 부진을 극복하기 위한 각국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줄곧 두 자리 수를 기록했던 세계교역 증가율이 전년 동기 대비 1~3% 수준에 머무는 등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만성적인 수요 위축 국면이 나타나면서 줄어든 ‘시장’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이런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더 효율적인 생산 방식을 찾기 위한 기업들과 글로벌 투자 유치를 위해 경쟁하는 여러 나라 정부의 기대가 맞물려 개별 공정들을 여러 나라로 분산해 최적의 솔루션을 찾는 ‘글로벌 생산 분업’이 활발해졌다. 글로벌가치사슬(GVC, Global Value Chain)이 확장 및 세분화(fragmented) 된 것이다. 그리고 이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새로운 플랫폼으로 ‘다자간 Mega FTA’가 부상하는 모양새다.

 

기존에 체결한 양자간 FTA의 매력이 계속 줄어든다는 점도 Mega FTA를 늘리는 요인이다. 세계무역기구(WTO)에 신고된 FTA가 300여 개를 넘어설 정도로 포화 상태에 이르고, 여러 국가들과 체결한 상이한 FTA 규정들이 서로 충돌하는 ‘스파게티보울(spaghetti bowl) 현상’이 심해지면서 회원국들에게 제공하는 ‘차별적 특혜’라는 의미는 상당 부분 줄어들게 되었다. 과거에는 많은 산업의 생산 단계가 1~2개 국가 안에서 이뤄져 양자간 FTA만으로도 특혜관세 혜택을 누리는데 별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제조업, 특히 첨단 제조업일수록 하드웨어부터 소프트웨어에 이르기까지 생산에 필요한 여러 요소들을 다양한 나라에서 조달하는 경우가 많다. 자연히 전체 부가가치에서 최종 수출국이 기여하는 몫이 줄어들 수밖에 없어 양자간 FTA 혜택에 필요한 원산지 비율을 충족시키기가 쉽지 않다. 글로벌가치사슬이 복잡해짐에 따라 양자간 FTA의 장점이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반면 다자간 Mega FTA는 생산에 관여한 모든 역내 국가들의 부가가치에 대해 누적원산지 규정을 적용한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비즈니스 환경도 다자간 무역자유화에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추세다. 정보통신 기술 발달로 원산지 규정 적용이 점점 엄격해지는 데다, 표준이나 통관 절차 등과 같은 규범과 제도를 여러 나라가 공유할 때 얻는 이점도 계속 커졌다. 세계경제 통합 확대로 투자 및 교역 장벽이 낮아지고 S/W, OS 등 디지털 재화의 거래 비중이 높아진 점,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과 물류 비용 하락 등도 이런 변화에 한 몫 했다.


한국경제에도 규제 시스템 변화와 혁신 압력 거세질 듯

 

다자간 FTA가 앞으로 더욱 확산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우리 역시 이에 대한 관찰과 대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EU, 중국 등 거대 경제권과의 FTA 체결로 주요 시장에 대한 차별적인(preferential) 접근 권한을 확보한 것은 맞지만, 양자간 FTA의 한계를 고려할 때, 장기적으로는 미국과 일본, 베트남 등 TPP 참여 국가들이 글로벌 분업구조 재편 경쟁에서 더 유리한 입지를 확보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예를 들어 TPP가 모든 회원국들의 국내 비준 절차를 무사히 마치고 발효된다는 것을 전제로 가늠해본다면, 우리가 TPP에 가입하지 않을 경우 일본과 베트남을 비롯한 TPP 회원국들에게 미국 시장을 잠식당할 우려가 크다. 한미 FTA를 통해 누려온 상대적 우위를 더 이상 향유할 수 없고, TPP 회원국들이 서로의 비교우위를 바탕으로 글로벌 생산분업 체제를 강화하는 것도 우리 기업들에게는 부담될 수밖에 없다. 우리 기업들의 대미 수출 상품이 특혜관세를 받기 위해서는 한국 내 원산지 비율을 일정 수준 이상 충족시켜야 하는 반면, 일본 기업들은 여러 TPP 회원국들과 다각적인 분업구조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 기업들의 글로벌화가 많이 진전된 고급 의류, 자동차 부품, 정밀화학 등의 분야를 중심으로 시장 잠식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 시장 개방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뒤쳐졌던 일본이 TPP를 디딤돌 삼아 우리를 앞지를지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 한 가지 예상되는 변화는 제도 및 규제에 관한 것이다. 일차적으로는 물류 비용 부담이 적은 공정이나 고부가가치 부품, 소프트웨어 등을 중심으로 국가 간 산업 내 분업이 확대되겠지만, 그 다음 단계로 기술이나 지식, 정보 중심 중소기업들의 해외 직접 진출을 위해 회원국들의 관련 제도 정비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사전적 규제 중심인 우리의 제도 환경을 사후적 규제 중심으로 바꿔야 할 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예컨대, 법률이나 규정에 신고/등록만으로 가능하다고 명시된 사업만을 허용하는 체제(positive list system)에서 특별히 금지된 상품이나 업종 외에는 모두 진출 가능한 체제(negative list system)로 전환할 것을 의무화 할 수도 있다. 사전적 규제 중심이었던 일본이나 베트남이 사후적 규제체제로 바꾸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결국 Mega FTA는 세계 각국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고 개혁과 혁신에 나선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향후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각국의 비즈니스 환경이 빠르게 변화할 수밖에 없음을 드러내주는 대목이다. 이는 위협요인인 동시에 기회이기도 하다. 향후 글로벌 통상환경이 급변하는 속에서, 다가오는 흐름이 충격이 아닌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철저한 사전 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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