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 '아베노믹스 3년 일본경제, 다시 약해진 성장 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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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부터 시작된 엔화 가치 상승과 일본 주가 하락이 최근에도 계속되고 있다. 일본 경제는 소비와 수출이 살아나지 않는 가운데 기업 실적 하락으로 투자도 둔화될 가능성이 크다. 규제 완화, TPP 등의 성과가 나타나기 전에 금융완화의 효과가 한계에 부딪침에 따라 일본 경제가 당분간 회복의 동력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아베노믹스의 한 축인 일본은행의 양적·질적 금융완화 정책이 시작된지 3년이 지났다. 지난 2013년 4월, 물가상승률 2%의 2년 내 달성이라는 목표를 위해 일본은행이 대담하게 연간 50조엔에 달하는 규모로 국채를 매입하기 시작하자 국내외 경제주체들의 심리에 변화가 나타났고 가장 뚜렷하게 반응한 것이 환율과 주가였다. 2014년 4월 소비세율 인상 후 실물 경기가 침체된 가운데서도 엔화 약세와 주가 강세는 그 해 10월의 추가 금융완화에 힘입어 2015년에도 유지됐다.
그런데 작년 말부터 엔화 가치가 강세로 반전되더니 올해 4월 들어서는 2014년 10월말 이래 처음으로 달러당 110엔 밑으로 내려갔다(<그림 1> 참조). 지난 4월 말 일본은행의 금융정책 결정회의를 앞두고 추가 완화 기대에 따라 잠시 약세로 돌아서는 모습도 보였지만 회의에서 기존 정책을 유지하자 엔화 강세 흐름이 재개됐다.
올해는 엔저 가능성 낮아
최근 한때 달러당 105엔까지도 내려간 엔화 환율에는 투기적인 거래의 영향도 반영돼 있어서 앞으로의 엔화 가치 향방은 좀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시장의 지배적인 의견은 작년(연평균 121엔/달러)보다 엔화가 강세를 띨 것이라는 것이다.
사실 작년까지의 엔화 약세는 실질실효환율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플라자 합의 이전에 해당하는 초엔저였다. 이러한 엔저가 계속된 배경에는 일본은행의 금융완화 정책과 미국 FRB의 금리 인상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미국, 중국을 비롯한 세계 경기의 둔화로 미국의 금리 인상은 예상했던 것보다 느리게 진행되고 있고 앞으로도 당분간 그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엔화 가치를 약세로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일본은행의 추가적인 금융완화 정책인데 지난 1월의 마이너스 금리 도입은 시장이 예상하지 못한 뜻밖의 조치였음에도 중국 주가 하락 등 세계 금융시장의 불안과 겹치면서 일본은행이 기대한 효과를 내지 못했다. 오히려 일본은행의 완화 정책이 한계에 다다른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되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이처럼 엔저를 유지할 수 있는 힘이 약해진 가운데 엔화 가치 상승에 대한 압박은 더 세졌다. 최근의 글로벌 경제 리스크 증가는 안전자산으로서의 엔화(또는 엔화 자산)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켰다. 일본의 경상수지 흑자폭도 유가하락으로 커졌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 적자를 보이던 무역수지는 작년 4분기부터 흑자로 전환돼 엔화 가치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그림 2> 참조). 미국 정부가 대선을 앞두고 주요국의 환율 정책에 민감한 반응을 보임으로써 일본 당국의 운신의 폭도 좁아졌다. 지난 4월말 미국 재무부 환율정책 보고서에서 일본은 ‘환율관찰 대상국’으로 지정되었다.
일본 경기와 물가 추이에 따라 올해 안에 일본은행이 자산 매입 규모 확대나 금리 인하 등 추가 완화를 단행할 가능성은 작지 않다. 하지만 엔화 가치 상승 압력이 이전보다 강해졌고 금융완화 정책의 효과에 대한 의구심이 커진 상황에서 추가 완화를 결정한다고 하더라도 작년 수준으로까지 엔저가 진행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주가 하락의 배경은 기업 수익 악화
지난 3년여의 아베노믹스 하에서 엔화 약세는 기업 수익을 떠받치는 기둥이었다. 엔저 이후에도 수출량이 크게 늘지는 않았으나 엔화 기준 수출액과 해외 사업 수익의 증가에 따라 기업들의 영업 이익은 글로벌 금융 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됐다(<그림 3> 참조). 이에 따라 일본 주가는 엔화와 연동되는 모습을 보여왔다. 즉 대체로 엔화 가치가 하락하면 주가가 상승하고 엔화 가치가 상승하면 주가가 하락했다(<그림 1> 참조).
지난해 말부터 엔화 가치가 상승함에 따라 주가도 함께 하락하고 있다. 12월까지만 하더라도 1만 9천 내외이던 주가가 이제는 1만 6천대로 떨어졌다. 아베 총리의 자민당이 집권하기 전인 2012년에 1만을 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지만 하락 추세가 가파르다.
엔화 가치 상승이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 경기의 부진과 함께 나타나면서 기업들의 고통이 더 커지고 있다. 아직 일본 정부의 공식 통계는 나오지 않았지만 상장기업들의 2016년 1분기 결산 보고에 따르면 경상이익이 평균적으로 전년동기대비 20% 감소했다. 앞으로 글로벌 경기가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는 가운데 엔화 강세가 계속되면 기업 수익 악화가 심해질 수 있다.
소비, 수출 부진에 투자도 둔화 우려
지난해 일본 경제는 엔화 약세 상황에서도 플러스 성장과 마이너스 성장을 오가는 롤러코스터 경기를 보이며 연간 0.5% 성장에 그쳤다. 기업 설비투자는 1.3% 늘었지만 소비가 1.3% 줄었고 수출은 2.7% 느는 데 그쳐 부진했다. 분기별 성장 기여도를 보면 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2분기와 4분기에 소비와 수출이 마이너스 기여를 했다. 반면 설비투자는 2분기에는 마이너스 기여를 했지만 4분기에는 플러스 기여를 했다(<그림 4> 참조). 소비와 수출이 부진한 가운데 설비투자가 어느 정도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셈이다.
소비세율 인상 후의 소비 부진은 지난 2년간 일본 경제의 발목을 잡아왔다. 지난 해 일본 정부는 임금 인상을 압박하면 수익이 개선된 기업들이 이를 받아들여 임금 인상 → 소비 증가라는 선순환이 가시화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실질임금 상승은 평균적으로 소폭에 그쳤으며 소비 또한 장기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그림 5> 참조). 이 같은 상황은 올해 1분기에도 계속됐다. 앞으로도 기업 수익 악화로 임금 인상 폭이 지난해보다 낮아질 것으로 예상돼 소비가 뚜렷이 회복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지난 3년간 엔저가 계속되는 상황에서도 수출 또한 기대했던 것만큼 늘지 못했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세계 경제 성장률에 비해 교역 증가율이 둔화된 데다 IT 분야에서 일본 제품의 경쟁력이 하락했고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자동차 분야는 해외 생산 비중이 늘어 글로벌 판매 증가가 수출 증가로 바로 연결되지 않았다. 올해는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의 경기 부진이 계속됨에 따라 수출 증가에 기대를 걸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일본은행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실질수출은 직전 분기에 비해 0.1% 감소했다(<표 1> 참조).
소비와 수출이 부진한 가운데 그나마 회복세를 보이던 설비투자도 기업 수익 악화로 둔화될 가능성이 크다. 기업들의 업황 판단도 올해 들어 악화됐다. 일본은행은 3개월마다 전국기업 단기경제관측조사(흔히 ‘단칸’으로 약칭)를 실시하는데 지난 3월 조사에서 대기업 제조업의 업황판단지수(DI)는 3년 3개월만에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다. 지수는 비제조업과 중소기업에서도 악화됐는데 그만큼 기업들이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설 유인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다시 난관에 빠진 아베노믹스, 재정확대 카드 부상
이처럼 아베노믹스는 지난 2014년말에 이어 또다시 난관에 직면했다. 당시 일본 정부는 재정 적자에 대한 심각한 우려 속에서도 2015년 10월에 예정돼 있던 소비세율 인상(8%→10%)을 2017년 4월로 1년 6개월 연기하기로 하고 중의원 재선거를 단행했다. 금융완화의 효과가 아직 힘을 발휘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은 결정은 소비세율 인상의 충격에서 벗어나고 구조개혁에 힘을 낼 수 있는 시간을 버는 선택으로서의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눈 앞에 닥친 난관은 증세 연기로 벗어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금융완화 정책의 효과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증세 연기로 시간을 버는 것은 2017년 이후에 닥칠 충격을 완화하는 효과는 있지만 현재의 난관을 헤쳐나가는 데는 역부족이다. 지난 3월말 아베 정부 관계자들과 국내외 경제 전문가들이 의견을 나눈 ‘국제금융경제분석회의’에서 4명의 외부 전문가들은 소비세율 인상에 대해 2명은 연기, 2명은 보류 의사를 표시했는데 이들 모두가 한 목소리로 필요하다고 한 것이 재정확대(fiscal expansion)였다. 재정확대를 통한 경기부양은 효과가 즉각적이지만 지속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지금은 그 같은 문제점을 감수하면서도 반전을 꾀해야 하는 상황으로 이들 전문가들이 판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재정 상황은 2014년말에 우려됐던 것보다는 나쁘지 않다. 세수가 늘고 명목 GDP가 실질 GDP 이상으로 성장하여 GDP 대비 재정적자는 감소 추세에 있고 정부부채도 증가 속도가 늦춰졌다. 일본 내각부의 지난 1월 ‘중장기 경제재정에 관한 시산’에 따르면 2015년도 GDP 대비 기초재정수지는 -3.3%(2014년도는 -4.1%) 2015년도말 GDP 대비 정부부채는 197.5%(2014년도말 195.4%)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구마모토 지진 피해 복구 수요에 더해 이달 하순에 일본에서 열리는 G7 정상회의에서 세계 경기 회복을 위한 재정지출 확대 합의가 이루어질 가능성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올해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분위기 반전을 꾀해야 하는 아베 정부로서는 재정확대라는 카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여지가 커진다.
하지만 재정확대 정책은 역시 효과가 일시적이며 재정건전화라는 목표와 상충되기 때문에 지속하기 어렵다. 재정상황이 우려했던 것보다 괜찮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일본의 GDP 대비 정부부채 규모는 주요 선진국 중에서 최대이다. 재정확대가 해외 수요 부진과 엔화 가치 상승의 악영향을 일정 부분 완화시킬 수는 있겠지만 경기 흐름을 되돌리기는 역부족일 것으로 보인다.
구조개혁도 회복 동력 되기 쉽지 않아
지난 3년간 아베 정부는 정치적 안정을 바탕으로 기업 지배구조 개혁, TPP 체결, 법인세율 인하, 국가전략특구 설치를 비롯한 규제 완화 등에서 나름의 진전을 이뤘으나 그 성과가 가시화되지는 못했다.
해외 시장 개척과 일본 국내 시장 개혁에서 비교적 큰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됐던 TPP는 힘겨운 협상 끝에 지난해 10월 타결됐지만 미국 대선 일정에 밀려 올해 안 비준이 쉽지 않다. 미국 대선 과정에서 무역 장벽 완화에 대한 미국인들의 반발이 표출됨에 따라 내년에 신정부 출범 후에도 비준이 순탄치 않을 가능성이 있다.
구조개혁 중에서도 가장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는 노동개혁은 올해 초 아베 정부가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화두를 꺼내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2015년 10월 발족한 제3차 아베내각은 ‘1억 총활약 사회’를 핵심 목표로 내세웠다. 저출산·고령화를 억제해 50년 후에도 인구 1억명을 유지하고 가정·직장·지역에서 모두가 활약할 수 있는 사회를 실현하자는 것인데 지난 1월 아베 총리의 시정연설에서 이를 위한 개혁 과제 중 하나로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제기된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한정 정사원’의 확대를 통한 노동개혁이 성과를 내지 못하자 다른 차원에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해결하고자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캐치프레이즈는 단순명료하고 호소력이 강해서 참의원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정치적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그 구체적인 실행 계획은 5월 중에 ‘1억 총활약 국민회의’에서 발표할 ‘일본 1억 총활약 플랜’에서 제시될 예정이다. 문제는 이것이 기업, 정규직 노동자의 한쪽 또는 양쪽의 희생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정규직의 처우를 그대로 두고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하려면 기업의 부담이 늘 수밖에 없고 그 부담을 줄이려면 정규직의 혜택을 줄일 수밖에 없다. 구체적인 내용을 기다려봐야겠지만 경기 회복의 동력이 될 만큼의 개혁안이 담기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올해 일본 경제는 작년보다 낮은 0.3%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소비, 수출, 투자가 모두 부진하거나 둔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완화 정책의 효과가 한계에 부딪친 상황에서 추가 금융완화나 재정확대 정책이 회복의 모멘텀을 제공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아베노믹스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심각한 난관에 직면해 있다고 할 수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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