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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경제연구원 'G20 정상회의, 환율갈등 둘러싼 각국 입장과 의장국의 역할'

향후 환율문제의 전개방향을 결정하는 주된 관건은 미국 경기이다. 양적 완화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경기회복이 기대만큼 빠르지 않을 가능성이 커 환율을 둘러싼 국가간 갈등이 쉽게 사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선진국의 양적 완화기조 확산, 개도국의 시장개입 및 자본 통제 등이 무역전쟁으로 이어질 경우 세계교역의 위축으로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등 개도국의 타격이 클 것이다. 환율갈등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G20 정상회의를 통해 글로벌 차원에서의 의미있는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 단기적으로 미국과 중국의 양보와 타협을 유도하고 글로벌 불균형 해소를 위해 현재 논의되고 있는 경상수지 목표제 논의를 더 진전시킬 필요가 있다. 의장국으로서 가장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은 자유시장경제와 국가간 자유무역이라는 양보할 수 없는 가치를 바탕으로 갈등해소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환율과 관련해서는 자유변동환율제도를 지향해야 할 것이다. 또한 개도국의 외환보유 필요성을 줄이기 위해 자본이동을 제한하고 글로벌 금융안전망을 강화하는 방안에 대해 신흥국들과 공조하고 선진국을 설득시켜야 할 것이다. 자본이동규제는 자유변동환율제도를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수단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현재 환율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기축통화국의 국제수지 적자를 통해 국제유동성이 전세계에 공급되는 구조에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다극통화 체제나 SDR의 역할 확대 등 국제통화 체제의 개선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 목 차 > 
  
Ⅰ. 국가간 환율갈등의 전개 방향 
Ⅱ. 현 국제통화체제의 문제점 
Ⅲ. 환율갈등 해소 방향 
Ⅳ. 결론
 
  
국제적 정책공조를 통해 글로벌 금융위기를 무난히 극복했던 세계경제가 다시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다. 미국 등 주요국 경제가 다시 침체 조짐을 보이면서 국제공조의 정신은 사라지고 각국간 환율을 둘러싼 대립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경주 합의에도 불구하고 향후 환율 갈등이 원만히 해소되지 않을 경우 무역 보복 등을 통해 무역 전쟁으로 확산될 위험이 여전하다. 2차 대전 이후 세계경제가 비교적 꾸준한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유무역의 이점을 충분히 활용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많은 저개발국의 경제성장도 대외무역이 늘면서 가능했다. 그러나 최근 환율 갈등으로 말미암아 지난 글로벌 위기 이후 제기되었던 뉴노멀(New Normal)중 하나인 보호무역주의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 중국, 일본, 유럽 그리고 신흥국 등 주요 국가별 대응에 따라 향후 환율 갈등이 어디로 향할 지를 점검한다. 그리고 글로벌 불균형과 환율 갈등을 낳은 근본적 배경으로서 달러화 중심의 국제통화체제가 지닌 문제점을 살펴본다. 이에 기반하여 현재의 환율 갈등을 풀 수 있는 해법은 무엇인지를 제시하고자 한다. 
  
 
Ⅰ. 국가간 환율갈등의 전개 방향 
  
 
10월 경주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 회의에서 시장결정적 환율제도로 이행하고 경쟁적 통화절하를 자제하기로 결의하면서 단기적으로 환율을 둘러싼 갈등은 누그러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G20 합의안이 강제적인 구속력을 가지기 힘들다는 점을 감안할 때 경제여건 변화에 따라 국가간 환율 갈등이 재발할 위험은 여전히 남아 있다. 국가마다 환율 변화에 따른 손익이 다르기 때문에 통화가치의 하락이 절실해진 일부 국가가 행동에 나설 경우 다른 국가들이 이에 대응하면서 세계적인 통화절하 경쟁이 전개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가간 성장격차 확대가 환율갈등 심화 원인 
 
글로벌 불균형 현상은 2000년대 이후 지속되어 왔지만 최근 들어서 환율을 둘러싼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것은 선진국 내수부진의 장기화로 수출이 성장에 미치는 영향이 더욱 중요해진 가운데 주요국간 경제의 온도차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최근 1년간 경제성장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기여율이 50%에 달하고 있으며 유럽, 일본의 경우는 수출의 기여도가 성장률을 크게 넘어서는 상황이다(<그림 1> 참조). 이처럼 수출의 중요성이 커지는 가운데 선진국 경제의 부진 지속과 개도국의 상대적 고성장으로 국가간 성장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 올해 세계경제 성장에서 개도국의 기여율은 70% 가까운 수준에 달할 것으로 보이며 내년에는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개도국의 빠른 수출 증가가 어느 정도는 저평가된 환율에 기인한다는 인식이 선진국-개도국간 환율갈등을 확대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또한 선진국 내에서도 내수부진으로 수출의 성장기여도가 높아지면서 환율 변화에 따른 성장의 격차가 뚜렷해졌다. 지난해 중반 달러화 약세로 인해 미국이 유럽에 비해 상대적으로 빠르게 회복되었으나 올 들어서는 유로화 약세가 꾸준히 지속되면서 유럽의 회복이 뚜렷해진 바 있다. 위기 이후 유로/달러 환율은 미국과 유럽의 성장률 격차와 0~1분기의 시차를 두고 유사한 모습으로 움직인다(<그림 2> 참조). 일본도 달러당 80엔 수준의 엔고로 IT, 자동차 등 주력부문의 수출이 차질을 빚으면서 환율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미국의 완만한 양적 완화는 반발 크지 않을 듯 
 
국가간 환율갈등의 시작점은 미국의 양적 완화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미국은 표면적으로는 양적 완화의 근거로 실업 축소와 적정 인플레 유지 등 내부적 요인을 들고 있으며 여전히 강달러 지지가 미국의 기본방침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양적 완화의 내수 부양 효과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은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통화를 늘리는 데에는 수출에 대한 고려가 크게 작용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미국은 11월 3일 6,000억달러 규모의 2차 양적 완화 계획을 발표했다. 최근 들어 고용이나 부동산 지표들의 하락이 멈추는 등 경기신호들이 혼재되어 있어 미국이 국가간 환율갈등을 최소화하는 수준에서 양적 완화 규모를 결정한 것으로 판단된다. 
 
미국은 양적 완화의 근거로 국내적인 이유를 들고 있기 때문에 환율갈등을 유발한다는 직접적인 비난을 피할 수 있는 상황이다. 더욱이 대규모의 경상수지 적자를 지속하고 있어 일정 수준의 달러화 약세는 시장 결정적 환율제도라는 합의와 부합해 완만한 양적 완화에 대한 직접적인 반발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유럽의 경우 유로화가 달러화에 비해 상당 수준 절하되어 있고 경상수지도 흑자를 기록하고 있어 현재 회복기조를 보이는 경기 상황이 다시 뚜렷한 하강세로 돌아서기 전까지는 통화정책 대응을 자제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자본시장의 개방도가 낮아 외환시장 통제가 가능한 중국은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의 경험이 재현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어 연 5% 이내에서 위안화를 달러화에 대해 완만하게 절상시키는 정책을 견지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이 내수중심 성장을 강조하고 있지만 아직 내수비중이 크지 않다는 점을 감안할 때 위안화 저평가를 통한 수출증대 효과를 쉽게 포기하기 어려울 것이다. 최근 중국의 금리 인상 역시 내수를 일정 부분 포기하더라도 수출을 늘리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판단해볼 수 있다. 일본도 달러당 80엔대 이하의 초엔고 시 외환시장 개입을 재개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이 과정에서 아시아 등 경상수지 흑자 기조를 보이는 개도국들의 화폐는 상대적으로 더 큰 폭의 절상기조를 보일 전망이다. 외환시장에 대한 소규모의 개입이 실시되고 자본유입 규제 등이 부분적으로 도입될 것이지만 자국 화폐의 절상 추세를 막을 정도로 강도 높은 정책을 시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자본시장 개방도가 높고 자본통제에 대한 합의가 강하게 이루어지지 못해 상대적으로 절상폭이 클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미국의 양적 완화에 대한 예상으로 이미 각국의 환율 조정이 상당부분 이루어진 상황이어서 추가적인 환율의 변화는 크지 않을 수 있다. 
 
양적 완화의 결과 국제 환율 변동이 완만한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가운데 미국경기의 활력이 점진적으로 살아날 경우 결과적으로 세계경제 전체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다. 미국경기의 회복으로 더블딥 우려 등 세계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줄어들면서 기업투자 등 민간 수요가 재개되고 세계교역이 확대되는 효과도 기대된다. 추가적인 양적 완화의 필요성이 줄어들 경우 국가간 환율에 대한 민감성도 점차 약화되면서 환율갈등이 완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경기부진 장기화 시 환율갈등 불씨 
 
향후 환율갈등의 재개 여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는 미국경기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미국의 회복조짐이 뚜렷해지거나 반대로 급격한 하강 국면을 맞게 될 경우에는 환율문제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수 있다. 미국 경기가 다시 빠르게 침체할 경우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가 국제환율을 결정하는 주된 요인이 되는 가운데 리먼 쇼크 이후 시기처럼 세계 수요회복을 위한 국가간 정책공조가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통화확대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기가 뚜렷이 회복되지 못하고 고실업과 저인플레가 지속될 경우 미 정부는 추가적인 양적 완화에 나서는 한편 흑자국에 대한 화폐가치 절상 압력을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유로권도 경기상황 여부에 따라 양적 완화를 재개하면서 미국의 정책에 동조할 것으로 판단된다. 수출에 대한 의존도가 미국보다 높은 유럽은 양적 완화로 유로화 강세폭을 완화시키는 한편 미국, 일본 등과 공조하에 중국과 흑자개도국에 대한 통화절상 압력을 강화하고 반덤핑 등 부분적인 무역제재를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위안화를 달러화에 대해 일정 비율로 유지하려는 중국과 선진국간에 위안화 절상을 둘러싼 공방이 확산될 것이다.  
 
아시아 개도국들은 자국 통화가치의 강세로 인해 수출의 타격이 커지는 가운데 외국자본 유입이 가속되면서 자산거품 발생과 금융시장 불안정 등을 겪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인플레 우려가 큰 개도국들은 양적 완화보다는 외환시장 개입을 통해 이러한 부작용을 극복하려고 할 것이다. 시장개입 과정에서 통화환수를 위한 불태화 정책이 재정건전성에 영향을 미치고 또 달러자산 보유를 확대시킨다는 부작용을 감안할 때 개도국들은 자본유출입 규제도 더욱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급격한 외환유출입의 부작용을 경험한 바 있는 남미와 아시아 일부 국가에서는 자본유출입 제한 등 강도 높은 통제 정책이 시행될 수도 있다.  
국가간 환율 갈등이 지속되는 동안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경제주체들의 수요심리 위축이 예상된다. 장기적 관점에서의 기업 투자가 이루어지기 어렵게 되고 가계도 소비를 줄임으로써 불확실성에 대비하려고 할 것이다. 세계경기 부진과 이에 따른 선진국의 양적 완화가 다시 환율 갈등을 확대시키는 악순환이 반복될 우려가 있는 것이다. 
 
극단적인 경우 세계 무역전쟁 발생 
 
최근 G20 합의에서 볼 수 있듯이 주요 국가들은 자국 이기주의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환율갈등이 심화될 경우 글로벌 차원의 안정 노력을 기울이게 될 것이다. 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구체적인 정책방향이 합의되고 또 일련의 제재를 통한 구속력을 지니게 될 경우 환율갈등은 진정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이러한 합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할 경우 각국의 환율 움직임에 따라, 그리고 국가간 경제상황 변화에 따라 국가간 갈등은 심화와 완화를 반복하며 장기간 지속될 수 있다. 또한 환율갈등이 장기화될 경우에는 무역전쟁으로 확산될 위험도 커지게 될 것이다. 선진국은 환율조작국 지정을 통해 특정 개도국에 대한 무역제재를 강화하고 개도국도 이에 대한 무역보복에 나설 우려가 있다. 이에 따른 세계교역의 위축은 각국의 경기 위축을 가속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다. 무역을 위한 생산구조가 쉽게 내수생산 구조로 바뀌기 어렵기 때문에 일부 산업에서는 과잉수요가, 일부 산업에서는 과잉공급이 발생하면서 전반적인 성장 저하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무역 의존도가 큰 나라일수록 경제에 미치는 충격이 크게 나타날 것이다.  
 
또한 국가간 환율절하 경쟁은 달러화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림으로써 글로벌 금융시장을 크게 혼란시키게 될 것이다. 기축 통화로서 달러화의 지위가 단기간 내에 무너지게 될 경우 국가간 실물 및 금융거래가 더욱 위축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아울러 각국의 막대한 통화 발행이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부추겨 국가에 따라서는 경기후퇴 가운데서도 물가가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 및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위험도 존재한다.  
  
 
Ⅱ. 현 국제통화체제의 문제점 
  
 
현재 진행 중인 환율 갈등은 단기적으로 각국의 취약한 경기 상황과 관련이 있지만, 보다 근원적으로는 글로벌 불균형과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글로벌 불균형을 야기한 배경에는 기축통화로서 달러화를 기반으로 한 달러본위(Dollar Standard) 국제통화체제가 있다. 2차대전 후 성립된 브레튼우즈 체제가 30여 년만인 1971년 막을 내렸지만 뒤이어 나타난 포스트 브레튼우즈 체제 하에서 40여년 동안 또 다시 달러화는 기축통화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그동안 달러화 체제에 대한 문제점과 달러화 위기론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속에서도 달러화는 비교적 기축통화의 위치를 굳건히 지켜온 셈이다. 그러나 지난 글로벌 금융위기와 이번 환율 전쟁을 계기로 이제 달러화 중심 체제가 한계에 이르렀다는 의견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달러화 체제가 글로벌 불균형 원인 
 
금 1온스당 35달러의 가치로 보장된 달러화의 금태환성과 고정환율제도에 기반한 브레튼우즈 체제는 71년 닉슨 미 대통령의 금태환 정지 선언과 함께 무너졌다. 이후 과도기적인 스미소니언 체제를 거쳐 73년 성립된 킹스턴 체제가 현재까지 유지되어 오고 있다. 킹스턴 체제는 사실상 무체제이다. 주요국이 모두 변동환율제도를 채택하게 되었지만 공식적으로 IMF 가맹국은 각국의 경제여건에 따라 적합한 환율제도를 선택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금의 역할이 공식적으로 폐지됨으로써 금과 달러와의 연계성이 사라졌다. 이로써 달러화는 한낱 미국의 법정화폐(fiat money)에 불과한 셈이지만 여전히 각국 중앙은행의 준비통화로서 수요되고 국제거래에서 결제통화와 상품가격의 표시 통화로 선호되는 등 달러화의 기축통화 역할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금태환 중지 선언 이후 각국 외환보유액에서 달러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일시적으로 높아지기도 했다(<그림 4> 참조). 
 
이러한 기축통화로서 달러화에 대한 국제적 수요는 미국이 장기간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를 지속할 수 있게 한 요인이다. 1970년 이전만 하더라도 미국은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했고, 이로 인해 기축통화가 담당해야 하는 국제유동성의 제공은 해외투자 확대 등 미국의 자본 순유출을 통해 가능했다. 70년대 미국은 경상수지 적자와 흑자가 번갈아 가면서 나타났고 80년대 초반부터 비로소 경상수지 적자 구조가 고착되기 시작했다. 특히 2000년대 들어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급증하기 시작하여 2006년에는 경상수지 적자 규모가 GDP 대비 6%로 확대되기도 했다(<그림 5> 참조). 
 
기축통화국이 아니라면 환율의 대폭 조정이든지 외환위기를 맞아야 될 상황이었겠지만, 기축통화국인 미국은 이로부터 자유로웠다. 각국 중앙은행에 의한 국제 준비통화로서 또는 민간의 투자대상으로서 달러화 자산에 대한 대규모 수요가 존재하는 한, 달러화의 절하가 억제되는 한편 경상수지 적자 보전을 위한 차입과 채권발행 비용이 낮게 유지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2000년 이후 글로벌 불균형이 확대된 시기에는 이러한 구조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위기 방지 목적의 외환준비 수요가 커진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신흥국들이 경상수지 흑자를 통해 유입된 외화를 달러화 자산에 투자하여 외환보유액으로 축적함으로써 달러화의 약세를 통한 경상수지 조정을 막고 미국의 낮은 금리를 가능하게 한 것이다. 이미 60년대초 당시 프랑스 재무장관이었던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이 지적했던 달러화의 과도한 특권(exorbitant privilege)이 2000년대에는 과거와 비할 바 없이 커진 셈이다. 
 
달러화 체제가 잘 작동해 온 이유 
 
브레튼우즈 체제의 연장이라 할 수 있는 현재의 국제통화체제는 그 동안 비교적 잘 작동해 왔다. 세계경제는 현 통화체제에서 일부 오일쇼크 기간을 제외한다면 고성장을 구가하기도 했다. 계속되는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에도 불구하고 트리핀 딜레마(Triffin’s Dilemma)가 시사한 바와는 달리 달러화 체제가 장기간 유지되어 온 셈이다. 그 배경으로는 금과의 연계성이라는 제약의 완화, 무역적자국인 미국과 무역흑자국인 여타 국가들이 누리는 이익의 공유 구조, 발달된 미국의 금융시장, 대안 통화의 부재 등을 지적할 수 있다. 
 
60년대 예일대 경제학 교수 트리핀의 지적처럼 유동성과 신뢰성 사이의 딜레마는 기축통화가 지닌 숙명이다. 국제 유동성 공급을 위해서는 기축통화국인 미국의 국제수지 적자가 불가피하지만, 국제수지 적자가 커질수록 달러화에 대한 신뢰가 저하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흑자를 지속해 오던 미국의 경상수지가 70년과 71년 적자로 돌아선 것이 71년 금태환 중지 선언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미국이 더 이상 1온스당 35달러로 달러화의 금태환을 보장하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이 확산되면서 금태환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70년과 71년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각각 0.1%, 0.5%에 불과했지만, 금과 달러간의 연계성으로 인해 브레튼우즈 체제가 붕괴로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1971년 닉슨의 금태환 금지 선언 이후 금과의 연계가 상실된 것은 달러화에 대한 신뢰 약화로 이어지기보다는 유동성 공급에 대한 제약이 완화되어 오히려 달러화의 역할을 확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금 가격으로 달러화 가치가 고정되는 사슬에서 벗어나게 된 후,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 확대는 달러화 가치 하락으로 이어질 뿐 통화체제의 붕괴로 이어질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또한 달러화 체제하에서 미국과 여타국들은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측면도 있다. 미국은 기축통화국의 지위를 이용하여 경상수지 적자 보전을 용이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소비와 재정적자를 쉽게 늘릴 수가 있다. 또한 여타 국가들과는 달리 통화가치 하락에 따른 위험이 크지 않은 이점도 있다. 금융기관의 자산, 부채가 대부분 달러화로 표시되므로 환율 변동에도 불구하고 통화의 미스매치에 따른 건전성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다른 나라의 입장에서도 그 동안 달러화 본위체제를 붕괴시키지 않는 것이 이익인 이유가 분명했다. 미국이 최대 시장으로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대미 수출로부터 얻은 달러로 외환보유액을 확충할 수 있었다. 또한 외환보유액으로 유동성이 풍부한 미국 채권을 매입하는 것은 달러화 하락을 억제하여 자국의 수출여건을 보호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것은 마치 브레튼우즈 체제하에서 금과 달러간의 연계성을 지키기 위해 주요국이 골드풀(Gold Pool)을 구성하여 금값 상승을 막기 위한 금 매각에 나선 것과 유사하다.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가 의미한 달러화 가치의 하락은 수출여건의 악화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의 일본 및 독일 등 선진국과 2000년대의 중국 및 아시아 신흥국들은 달러화 체제하에서 기축통화국인 미국과의 이익 공유 구조를 누린 셈이다. 
 
경상수지 적자로 해외로 풀려 나간 달러화가 미국으로 환류되면서 달러화 체제를 지지해 주는 구조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이 발달된 금융시장을 통해 다양한 금융 투자대상을 제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현실적으로 기축통화로서 달러화를 대신할 만한 마땅한 통화가 없었다는 점도 달러화의 신뢰 저하에도 불구하고 달러화 기축통화체제가 유지되어 온 배경이 되었다. 
 
한계에 부딪힌 달러화 체제 
 
과거 미국의 쌍둥이 적자가 심화되는 시기에는 어김없이 달러화 위기론이 대두되고 기축통화 변경 문제가 불거져 나왔다. 그러나 대안 통화가 없었기 때문에 80년대 중반처럼 환율조정 등을 통해 경상수지가 개선되면서 문제가 극복될 수 있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별다른 조정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왔다. 글로벌 위기 이후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축소 과정을 나타내기도 했지만 최근 다시 확대 추세로 돌아선 상태이다. 대외적으로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되는 과정은 대내적으로 소비를 늘리기 위해 가계의 부채가 커지고 재정적자 누적으로 국가부채 규모도 확대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미국의 가계부채와 국가부채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은 한계상황에 다다른 것으로 보여진다. 그 결과로서 나타난 것이 지난 글로벌 금융위기이다. 트리핀이 얘기한 구조적인 딜레마를 완화할 수는 있었지만 결국 피할 수는 없었던 셈이다. 
 
몇몇 나라들은 이미 달러화 신뢰 저하에 대비한 준비단계에 돌입하고 있다. 일차적으로 각국 중앙은행들은 외환보유액의 통화 구성 다양화에 나서고 있다. 과거 브레튼우즈 체제가 붕괴한 것은 프랑스가 골드풀을 이탈하면서 각국이 뒤따라 금과 달러간의 가치 유지를 포기한 때문이었다. 시중 금가격이 달러화의 금태환시 미국이 약속한 공식가격보다 높은 상황에서, 각국은 달러화를 미국에 공식가격에 매각하고 받은 금을 시중에 내다파는 것이 이익이었다. 금의 시중가격과 공식가격간에 괴리가 있는 한, 골드풀이 장기간 유지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던 것이다. 이제 동일하게 외환보유액을 달러로 쌓아두고 있는 나라들은 달러화 자산을 줄이고 타국 통화 자산을 늘리고픈 유혹에 시달리고 있다. 현재는 중국이 과거의 프랑스와 동일한 역할을 하고 있다. 달러런(Run on the Dollar)은 골드풀 이탈과 기본적으로 같은 것이다. 다만 외화보유액의 통화 구성을 다양화하기 위한 달러화 자산의 매각은 곧 달러화 가치의 하락을 야기하여 보유 외환의 손실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각국이 대규모로 실행하기 어렵다. 또한 달러화 가치의 급격한 하락은 수출여건의 악화를 가져오는 것이기에 중국 등 신흥국 입장에서 피하고 싶은 것이기도 하다. 
 
아직 달러화의 뚜렷한 대안통화가 없다는 점에서 현재의 달러화 체제의 급속한 붕괴는 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달러화 체제에 대한 질서 있는 대안을 찾기 위한 국제적 논의가 점차 활발해져야 하는 이유이다. 
  
 
Ⅲ. 환율갈등 해소 방향 
  
 
최근 벌어진 국제적인 환율갈등의 핵심은 미국과 중국 등 주요국간의 경쟁적인 통화약세 유도 혹은 강세압박에 대한 반발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동시에 선진국의 완화적인 통화정책에 따라 신흥국으로 단기자본이 급격히 유입되면서 잠재적인 거시경제적 불안정성이 증가하는 것도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다. 때마침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는 과거 G7이나 G8과는 달리 이러한 두 가지 문제점과 관련된 선진권과 개도권의 중요한 당사자들이 모두 참석해 해법을 모색한다는데 그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환율갈등을 해소하는 데에는 다양한 접근방법이 있을 것이다. 미국과 중국 등 주요 당사국간의 합의가 있는가 하면 관련 당사국 모두가 참여해 불균형을 해소하고자 하는 글로벌한 합의도 있다. 직접적으로 환율 갈등이나 불균형 자체를 논의하는 방법이 있고 우회적으로 환율갈등의 원인을 완화시키는 금융안전망 강화와 같은 간접적인 접근 방법도 있다. 또한 대부분의 접근이 환율갈등의 원인이 되는 글로벌 불균형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면 국제통화제도 개혁은 글로벌 불균형의 부작용을 중립화시키는 방법이 될 것이다.  
 
미·중 양국의 양보와 타협이 관건 
 
환율 갈등의 핵심인 미국과 중국간 갈등의 가장 분명한 해결방안은 양측간의 양보를 통한 합의가 될 것이다. 미국의 입장은 20~40%에 달하는 위안화 절상으로 정리된다. 위안화의 대폭 절상을 통해 미국의 대중 수출을 늘리는 동시에 대중 수입을 줄여 미국 무역적자의 44%에 달하는 대중 무역적자를 축소시키겠다는 것이다. 이에 맞서는 중국 역시 경상수지 흑자를 줄인다는데 동의하고 있다. 다만 위안화의 급격한 강세는 중국 한계기업의 부도를 초래해 대량의 실업이 우려되는 만큼 대폭적인 환율 변경이라는 가격조정보다는 내수 확대라는 물량 조정에 의해 흑자를 줄여나간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결국 양측의 입장은 방향은 같으며 다만 속도에 이견이 있는 것으로 요약되며 따라서 양보와 타협을 통해 간극을 줄일 여지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타협을 위해서는 흑자국인 중국과 적자국인 미국의 노력이 동시에 필요할 것이다. 중국은 어느 정도의 환율 조정에 더해 내수 확대정책을 가속하고 전력이나 교통 등 사회간접자본이나 조달시장 등 시장을 개방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 적자국인 미국은 경상수지 적자를 줄이기 위해 재정건전화를 추구해야 할 것이다. 위안화가 크게 절상된다 해도 미국의 수입선이 중국에서 제3국으로 전환될 뿐 미국의 수지개선 효과가 크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는 점은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 축소 접근이 단순한 위안화 절상 압박에서 벗어나야 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경상수지목표제도 효과적이나 강제방법 강구해야 
 
다음으로 전세계적인 불균형 해소를 위한 글로벌한 접근을 들 수 있다. 선진국이 소비를 줄이고 흑자를 내는 신흥국이 소비를 늘리는 방향으로 수요조절을 한다면 현재의 불균형이 축소되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재정지출 축소정책과 내수확대정책을 통해 상호 접근을 모색할 필요성이 있다. 현재 이와 관련해 각국의 경상수지 규모를 일정 수준 이하로 유도하자는 경상수지 목표제가 G20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경상수지가 GDP 대비 일정 범위를 넘는 불균형을 띤다면 환율을 통한 자동적인 국제수지 조정이 이루어지지 않을 정도로 환율 유연성에 문제가 있으니 해결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식의 접근이다. 현재 GDP의 4% 이내로 제한하자는 4%룰이 논의되고 있다. 각국이 합의할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 낮은 수치로 제한할 때 글로벌 불균형이 조기에 해소될 수 있겠지만 일단은 각국간의 합의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당장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 기간의 유예기간을 두고, 각 년도가 아닌 예컨대 3년 평균 경상수지를 제한한다면 각국의 동의를 구하기가 한결 수월할 것이다. 최근 중국의 이 강 인민은행 부총재가 중국이 향후 3~5년간 경상수지흑자를 GDP의 4% 이내로 축소하는 것을 목표하고 있다고 밝히는 등 중국 내에도 경상수지목표제에 대해 전향적인 목소리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편 유로존의 경우 국가별 경상수지 격차가 크게 나타나므로 국별보다는 유로존 전체에 대한 경상수지 목표제를 시행하고 국가별 문제는 지역 내에서 해결토록 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일 것으로 보인다. 경상수지목표제를 합의할 수 있는가의 여부와 더불어 커다란 이슈는 어떻게 목표범위 내로 강제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이며 아직은 논의가 더 필요한 상황이다. 다만 범위를 넘어서는 흑자에 대해서는 브레튼우즈 체제 설립 논의 당시 케인즈가 주장한 바와 같이 국제기구에 리저브로 예치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글로벌 금융안전망은 간접적으로 환율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  
 
국가간 환율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간접적이지만 효과적이고 상대적으로 각국의 동의를 구하기가 용이한 방법으로서 글로벌 금융안전망 확충을 들 수 있다. 투기성 단기자본 유입에 대해 건전성 규제 차원의 자본유출입 통제를 할 경우 각국의 거시경제적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 경상수지 흑자를 통해 외환보유고를 늘리려는 신흥국들의 노력을 줄일 수 있어 환율갈등의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는 효과가 있게 된다. 동아시아의 신흥개도국들이 대체로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하다가 90년대 외환위기 이후 흑자유지 노력을 강화, 흑자로 전환한 사실을 감안하면 의미 있는 접근방식이 된다. 글로벌 금융안전망은 특히 환율 등과 더불어 G20의 주요 의제 가운데 하나라는 점에서 더욱 중점을 두고 추진할 수 있는 문제이다.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 환율 안정, 통화정책의 독립성 등은 개방경제의 트릴레마(open economy trilemma)로서 동시에 성립할 수가 없다. 특히 소규모 경제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세가지 항목 가운데 통화정책의 독립성과 환율안정은 양보하기 어려운 덕목이며 따라서 국가경제의 안정이라는 기준에서 볼 때 자본의 이동을 부분적으로 제약하는 것이 나머지 두 항목이 제약되는 것에 비해 피해가 덜하다고 볼 수 있다. 자본이동 규제에 대해 자본자유화라는 큰 흐름과 어울리지 않아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지만 단기자본의 급격한 이동에 따른 외화유동성 부족, 나아가 국가부도위기 가능성 등을 고려한다면 일정한 제약조건 하에 자본이동을 부분적으로 제약하는 것을 전향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최근 들어 자본이동 규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시각도 비교적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지난 2월 IMF에서 자본통제의 역할을 인정하는 보고서가 나온 바 있고 은행세 논의도 확산되고 있는 분위기이다. 물론 브라질이나 태국과 같이 단독으로 자본통제적 성격의 금융안전망을 마련하는 데에는 부작용이 따를 수도 있다. 따라서 G20의 틀 안에서 신흥국 여러 나라들과 공조하고 이러한 필요성에 대해 선진국들을 설득시키는 일이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금융안전망의 구체적인 방법으로서 이미 IMF 내에서 유동성 위기에 닥친 국가들이 용이하게 대출에 나설 수 있도록 FCL(탄력대출제도)의 개선과 PCL(예방적 대출제도)의 신설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번 G20에서는 글로벌 안정망과 지역 안전망과의 연계 방안이 논의될 예정이고 금융안정메커니즘(GSM)은 내년 회의에서 논의될 예정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로 금융 안전성을 충분히 확보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 지난번 금융위기 때 우리나라가 효험을 톡톡히 봤던 중앙은행간의 통화스왑협정 상시화나 통화스왑협정을 제도화하는 효과가 있는 국가간 외화대출보험을 시도할 만하다. 이와 아울러 자본이동의 수익성을 낮추어 자본 이동 자체를 제한할 수 있는 은행세나 자본거래세의 도입과 같은 보다 근본적인 수단의 도입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국제통화체제의 개선이 필요 
 
현재의 달러화 체제가 글로벌 불균형을 심화시킨 주요 원인이 되고 있는 만큼, 근본적 차원에서 글로벌 불균형의 해소와 환율 갈등의 완화는 국제통화체제의 개선을 필요로 한다. 다극통화체제로의 이행과 국제통화의 발행이 주요 대안으로 제시되곤 한다. 기축통화로서 달러화가 누려온 이익과 책임을 몇몇 나라 또는 모든 나라에 나누자는 방안이다. 
 
다극통화체제로의 이행은 달러화 외에 유로화와 중국의 위안화가 기축통화로서의 역할을 분담하자는 것이다. 세 통화 모두 독자적으로 기축통화의 역할을 맡기에는 약점과 한계를 지니고 있다. 달러화는 미국의 막대한 쌍둥이 적자와 국가부채에 대한 우려, 그리고 세계경제에서 미국경제의 비중이 20%로 축소된 상황 등으로 인해 단독으로 기축통화 역할을 지속하기는 어렵다. 유로는 유로존의 통합이 유지될 지에 대한 불확실성과 더불어 유로존내 개별 국가들의 독자적 국채 발행으로 금융시장의 유동성이 미국시장에 못 미친다는 제약도 존재한다. 위안화는 아직 경상, 자본거래에서 태환성이 제한된 지역통화에 불과하다. 기축통화국은 화폐발행 차익, 기업의 환위험 제거 등의 이익을 누릴 수 있지만 통화공급에 대한 통제권 상실, 국제수지 적자를 통한 국제 유동성 공급 등의 제약과 책임을 감수해야 한다. 향후 다극통화체제로의 이행은 일차적으로 유로화나 위안화가 지닌 한계점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중요한 것은 유로존과 중국이 무역적자를 통한 통화 공급 등 기축통화국으로서 의무와 책임을 감당할 의지가 있는지 여부일 것이다. 
 
효율성이나 사용 편의성 등의 측면에서 볼 때 기축통화국의 역할이 분점되는 것이 바람직한지 또는 가능한 지에 대한 논란이 있다. 또한 다극통화체제는 달러화 체제의 문제점을 여러 통화에 나누는 것일 뿐이라는 한계도 있다. 그래서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제시되는 것이 초국가적인 중앙은행 설립과 국제통화의 발행이다. 이 방안은 과거 케인즈나 트리핀에 의해서도 주장된 바 있다. 이후에도 기축통화가 독점적으로 누리는 이익이나 신뢰 상실 문제로부터 자유롭다는 점에서 달러화 위기론이 불거질 때마다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당장은 이상론에 가깝기 때문에 그 전단계로서 보다 현실적인 주장은 IMF가 발행하는 SDR(특별인출권)의 역할을 확대하자는 것이다. 현재는 장부상 통화에 불과하여 사용이 제한된 SDR을 발행 규모도 확대하고 이용 대상도 늘리자는 것이다. 이미 지난해 3월 중국인민은행 총재가 SDR의 역할 확대를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있다. 85%의 동의를 필요로 하는 IMF의 의사결정구조상 현재 15%를 넘는 쿼터를 지니고 있는 미국의 동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미국이 기축통화로서 달러화의 위상을 약화시키는 이러한 방안에 동의할 지는 의문이다. 다만 위안화의 저평가 시정을 지속 요구해 온 피터슨 경제연구소의 버그스텐 같은 이들도 SDR의 역할 확대가 기축통화국으로서 한계에 도달한 미국의 부담을 줄이는 길이라는 데 동의한다. 미국이 전향적으로 국제사회에서 차지하는 미국의 위치나 역할에 대한 생각을 바꾼다면 SDR 역할 확대가 현실성 없는 방안은 아니다.  
  
 
Ⅳ. 결론 
  
 
환율 갈등은 구조적 요소와 주기적인 요소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구조적으로는 국제통화체제의 문제점과 글로벌 불균형의 해소를 위한 것이라는 측면이 있고 주기적으로는 위기 이후 선진국과 신흥국간 경기회복력의 차이 외에 정치적 배경도 있다. 그만큼 다양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 얽힌 실타래를 푸는 것이 간단치 않으며 단시일 내에 해결되기 어려운 과제이다. 미국과 중국간의 갈등이 대표적이기는 하지만 유럽과 일본 등의 선진국 그룹과 브라질과 우리나라 등 기타 신흥국들의 입장 역시 제각기 다르다. 향후 환율갈등이 어떻게 전개될지를 예측한다는 것이 어려울 것임을 말해주는 부분이다.   
 
지난 번 경주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 회의에서 적절한 의제설정과 적극적인 조정기능을 통해 시장결정적 환율제도 이행을 합의하는 등 환율갈등 해소의 계기를 마련했다. 그렇지만 선언의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고 구속력이 없다는 점에서 아직 갈 길이 멀다. 보다 장기적인 차원에서 구성원 모두를 설득시킬 수 있는 환율문제 해결 접근을 위해 G20 정상회의의 의장국으로서 아래의 몇 가지 사실에 유념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첫째, 자유시장경제와 국가간 자유무역이라는 양보할 수 없는 가치를 바탕으로 갈등해소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환율과 관련해서는 자유변동환율제도를 지향해야 할 것이며 환율전쟁을 통해 보호무역주의적인 길을 걷는다면 지난 수십 년 간 시장통합과 효율적 자원배분을 통해 이루어 온 전세계적 후생증가가 반대 방향으로 되돌려질 수 있다는 사실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신흥국의 거시경제 안정과 글로벌 불균형 해소를 위해 도입을 모색하고자 하는 자본이동 규제는 자유변동환율제도를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수단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둘째, G20의 테두리 내에서 개도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책무에도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글로벌 금융안전망 강화는 매우 시급한 과제이다. 신흥국의 의사를 모음과 동시에 신흥국의 거시경제적 불안정성을 줄이는 것이 세계경제 전체에도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시켜야 할 것이다. 특히 경상수지 목표제 논의가 진전될 경우 흑자 비율이 높은 신흥국들의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 따라서 G20 회의에서 금융안전망 의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경상수지 목표제에 따른 신흥국의 부담증가를 선진국에 대한 설득에 적절히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글로벌 불균형 해소를 위해서는 환율조정을 한 축으로 하고 내수확대와 재정건전화 등 물량 조정을 다른 한 축으로 하는 종합적이고 균형 잡힌 접근을 전제로 각국의 의견을 수렴하고 국가간 이견을 조정해야 할 것이다. 경상수지 불균형을 환율만으로 조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환율 갈등 해소를 위한 첫 단추는 꿰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이 추세를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며 만일 논의가 단절되고 파행으로 치달을 경우 환율 갈등이 더욱 심화될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통상마찰 증가와 교역 감소 등으로 세계경제의 건전한 성장에 금이 갈 수도 있다. 특히 개방과 경쟁을 바탕으로 하는 우리 경제는 상당한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다. 서울 G20 회의에서 일정 정도의 성과를 거두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 인내심을 가지고 내년 프랑스 G20 회의로 의제를 연결시키는 것도 고려해야만 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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