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 '전세 감소의 경제적 의미'
전세보증금의 레버리지 효과가 퇴색하면서 전세는 월세로 전환되고 있다. 전세가구가 월세 혹은 자가로 점차 전환되면서, 임대시장에서는 전문업자가 늘어나고 공공임대가 강화될 여지가 클 것으로 보인다. 또한 개인자산의 포트폴리오 변화, 임차인으로부터 임대인으로 소득 이전 효과 등도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활발해지는 전세의 월세전환
우리나라의 주택 점유형태를 살펴보면 전세가구 비율은 줄고, 월세가구 비율은 늘어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전세가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1995년에 29.7%로 정점을 보인 후 2005년에는 21%까지 낮아진 반면 월세가구 비율은 동기간 중에 14.5%에서 19.2%로 상승했다.
최근의 추이는 국민은행에서 발표하는 임대차 구성비를 통해서 알 수 있는데, 전국적으로는 전세가 월세비중을 앞서지만 광주, 대전, 대구 등의 광역시에서는 보증부월세가 전세비중을 앞선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상대적으로 전세보증금이 싼 지방을 중심으로 전세의 월세전환이 활발해지는 현상을 반영하는 것이다.
임대인들의 보증금 반환 여력이 뒷받침된다면 서울 및 수도권에서도 전세의 월세전환이 빠르게 이뤄지면서 전세 비중은 더욱 감소할 전망이다.
전세의 레버리지 역할 감소
전세 제도는 임대차 계약의 한 형태이며 강제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추세대로라면 제도 자체의 소멸도 예상되고 있다. 이의 근거는 공급자, 즉 임대인에게 전세가 월세에 비해서 나은 점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70~80년대의 경제 고도성장기와 급격한 도시화 시기에는 주택수요가 많은 반면 금융기관 대출은 어려웠기 때문에 전세를 낀 주택 구입이 임대인에게 선호됐다. 또한 전세보증금의 무이자 차입에 따른 이득에 더해 주택가격의 상승과 이어지는 매매에서 시세차익이 얻어졌다. 따라서 임대인들은 주택투자가 매력이 있다고 여겼고, 주택 구입시 전세보증금은 무이자 차입금으로서 지렛대(leverage) 효과를 발휘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집값의 수준과 상승률이 모두 높은 서울에서는 전세를 낀 주택구입이 많다 보니, 지난 2005년의 전세가구 비중이 31.9%로 전국 기준보다 높게 나타난다. 임대차계약에서 전세계약의 비중을 살펴보더라도 서울에서 동 비중이 58.6%로 6개 광역시 평균 49.4%를 앞지르고 있다.
그렇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주택보급률이 높아지고 집값 상승폭은 둔화됨에 따라 전세를 낀 주택투자의 매력이 떨어지고, 이는 전세제도의 쇠퇴로 이어지는 중이다.
월세가 수익률 측면에서 임대인에게 유리
전세 제도의 또 다른 약점은 월세에 비해 뒤쳐지는 수익률이다. 전세보증금은 임대인에게 무이자 차입금인 셈이며, 그 용도는 주택구입시 부족금액의 충당이든지 다른 금융상품에 투자하든지간에 상관이 없다. 가장 보수적인 투자 방법인 예금을 가정한다면 임대인은 2년간 전세보증금 예치에 따른 이자수입을 얻을 것이다. 이에 비해 보증부월세로 전환할 경우에는 보증금만큼은 여전히 이자수입을 얻는데 그치지만, 나머지 금액 (전세보증금-월세보증금)에 대해서는 시중금리보다 훨씬 높은 월세이율이 적용된다. 현재 2년만기 정기예금 금리는 연 3.0~4.3% 수준인데 비해 월세이율은 연 9.7~12%에 이른다. 예를 들어 1억원 전세를 준 임대인이 월세보증금을 7천만원으로 내리고 나머지 3천만원에 대해 월세를 받게 되면 전세에 비해서 연간 192만원(=3천만원×(월세이율-수신금리))의 추가 수익을 얻게 된다. 따라서 이론상 임대인이 전세보증금을 모두 임차인에게 반환하고 순수월세 계약으로 전환했을 때, 전세와 월세간의 수익률 차이는 월세이율과 수신 금리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향후 보증금의 필요성이 축소되고 월세이율이 수신금리보다 계속 높은 수준에 머문다면 임대인은 월세보증금마저 줄이려 할 것이다. 그리고 이는 궁극적으로 전세 제도의 소멸로 이어질 전망이다.
다주택자 vs 전문 임대업자
전세제도의 축소는 주택임대시장의 재편과 전문 임대 서비스에 대한 수요 확대를 가져올 것이다. 전세제도에는 사실 임대수익률이라는 개념이 들어가 있지 않으며, 따라서 임대인도 전문업자라고 볼 수 없다. 대부분의 전세 임대인들은 보증금을 받아서 주택구입시 자금으로 활용하거나 은행에 예치하여 이자소득을 올리는데 만족해 왔다. 따라서 상당수의 전세 임대인들은 전문적인 임대업자라기 보다는 다주택자라고 하겠다. 향후 자가와 월세로 양분될 주택시장에서 전문 임대업자들의 역할이 커질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임대업자들에 의해 제공되는 주거 서비스의 질이 차이가 나고 임대료에도 차등이 주어질 것이다. 따라서 전세임대인 가운데 경쟁력이 떨어지거나 자금여력이 충분치 않은 상당수는 임대용 주택을 처분할 가능성도 높다고 하겠다. 이러한 처분 물량의 일부는 실수요층에게 자가주택으로 팔리면서, 자가주택 보유율이 60%대로 올라갈 전망이다. 또한 자가주택으로 흡수되지 않은 전세임대용 주택은 월세로 전환되어 주로 민간임대로 활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 공공임대 확대에 기여할 수도
전세제도의 축소는 공공임대 확대와 관련해서도 일정부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와 같이 공공주택 부문이 취약한 상황에서 공공부문이 다세대 주택, 연립주택 등을 매입하여 공공임대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공임대주택시장의 규모는 지난 2010년 기준으로 92만 4천호이며, 이 가운데 국민임대 방식이 37만 6천호로 전체의 41%를 차지하고 있다. 총주택 가운데 공공임대주택은 6.2%에 불과하며, 임대주택 가운데 85%는 민간이 담당하고 있다. 공공임대 비중이 민간임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낮은 수준임을 보여준다. 주요국과 비교해 보면 유럽 국가들은 총주택에서 공공임대주택이 20% 이상을 차지하며, 임대시장에서 공공임대의 비중도 30~75%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난다.
정부의 장기적인 공공임대 비율의 목표가 15%라고 할 때 신규주택 건설을 통한 임대공급과 함께 민간 전세 축소에 따른 물량 출회의 일부분을 소화하는 것도 방안이 될 수 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전월세 상한제 도입과 같은 논의도 민간 임대의 비중이 너무 크고 공급자 중심의 계약 구조가 정착된데 따른 부작용을 해소하고자 하는 데서 비롯됐다. 장기적으로 전세축소 물량이 일부나마 공공임대 확대로 이어진다면 굳이 정부의 인위적인 가격제한 정책이 시행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공공임대부문이 임대시장에서 가격조절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자산 포트폴리오 변화 예상
한편 금융측면에서 예상되는 변화는 무엇보다도 전월세 보증금의 감소가 될 것이다. 현재 전월세 보증금의 추산규모는 259조원 정도(20면 내용 참조)이며, 이는 임대용 주택총액인 769조원의 33.6%에 달한다.
전월세 보증금이 모두 사라지고 순수월세 제도만 남게 된다면 임대자가 100% 주택지분을 소유하게 된다. 주택총액에서 임차인의 보증금이 빠지지만 임대인이 같은 금액을 충당하므로 사회 전체적으로 유동성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다. 다만 개인별 자산포트폴리오 구성에는 변화가 생겨서, 임대인은 부동산 자산 비중이 높아지고 임차인은 저축 자산 비중이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임차인은 자산 구성에서 36.2%를 차지하는 전월세 보증금을 돌려받아 저축이나 목돈 투자를 늘리게 될 전망이다. 또한 월세 제도가 정착되고 주거안정성이 크게 나빠지지 않는다면, 임차인들은 풀려난 보증금으로 채무를 상환하거나 가계자금으로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
반면 임대인은 월세 전환을 위해 보증금을 반환하려면 기존 금융자산을 사용하든가 아니면 담보대출을 활용하게 된다. 만약 저축액을 모두 보증금 반환 용도로 사용하는 극단적인 경우를 상정한다면 자산 포트폴리오가 모두 부동산으로 구성되는 경우가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그렇지만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가 높지 않고 임대료 상승 폭도 제한된다면 이러한 부동산 위주 포트폴리오 투자는 매력을 상실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임차인의 소비 감소 가능성 커
어떠한 조달 방법을 택하든지 임대인의 금융 순자산 감소(혹은 부채증가)가 동반될 것이기 때문에 반환 보증금액에 대한 이자 수익이 희생되거나 이자 비용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임대료에는 주택총액에 대한 이자에 해당하는 금액이 기본이 되고 보유 및 유지비용이 반영된 임대투자 수익률이 더해질 전망이다.
한편 월세의 확대에 따라서 매달 임대차인간 추가적인 현금 흐름(연 15.5조원 규모)이 발생하고, 이는 자산이 아닌 소득의 변화를 야기하여 소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임차인은 매달 임대료를 지불함에 따라 가처분소득이 줄어서 소비가 감소할 것이다. 반면 임대인은 소득이 증가하여 소비를 늘릴 수 있다. 문제는 어느 쪽의 한계소비성향이 더 크느냐이다. 일반적으로 고소득층(임대인)이 소비를 늘리는 효과보다는 중산층(임차인)이 소비를 줄이는 데 따른 영향이 클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임대시장 안정 확보 필요
전세 축소와 월세 확대는 임대차 계약 형태의 비중 변화라는 단순한 현상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고 하겠다. 수익률 차원에서 월세가 전세보다 유리하기 때문에 임대인(공급자)에 의한 월세전환이 일어나고 있지만, 민간의 다주택자들이 모두 임대사업자로 변신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주택가격 상승률을 기대하게 하여 민간임대업자로 남게 하는 것도 사회적으로 후생을 더욱 악화시키는 발상이 될 수 있다. 여기에 전세를 선호하는 임차인들의 수요 압력을 고려하면 전세 축소가 임대시장의 불안요소가 될 가능성도 엿보인다. 이런 점에서 전세축소 물량의 일부를 공공임대로 흡수하여 임대시장을 안정화시키는 것은 장기적인 주택정책의 한가지 방향이 될 것으로 보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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