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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경제연구원 '장기적인 물가 압력, 경제 구조 변화 요구한다'

우리나라의 물가 수준은 OECD 국가들 가운데 낮은 편에 속한다. 그렇지만 중장기적으로 물가에 대한 우려를 자아내는 여러 대내외적 요인이 존재한다. 먼저 대외요인으로 경기회복세를 유지하기 위한 각국의 금융완화 정책으로 글로벌 유동성이 풍부하다는 것을 꼽을 수 있다. 중국에서 생산성을 초과하는 빠른 임금 상승이 이뤄지면서 인플레이션 수출이 이어지리라는 점과 신흥국 성장에 따른 에너지 및 원자재 가격의 추세적 상승이 전망된다는 점 또한 장기적 물가불안 요인이다. 국내적 요인으로는 서비스업 부문의 낮은 생산성에 비해 향후 임금이 빠르게 올라가면서 물가를 자극할 가능성, 우리 경제가 에너지 다소비 업종의 비중이 높은 산업구조를 지녔으며 대외환경 변화에 민감하다는 사실 등을 들 수 있다. 불완전경쟁 시장구조와 비효율 때문에 물가가 다른 나라에 비해 하방경직적이라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이러한 장기적 물가 불안 요인들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금리 인상과 같은 수요조절수단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고 대외경제를 안정시키는 동시에 서비스부문의 규제 완화를 통해 공급을 자극하고 수요를 창출하는 등 경제의 구조변화 노력이 요구된다. 
  
  
< 목 차 > 
  
Ⅰ. 우리나라 물가 현황
Ⅱ. 중장기적 물가 불안 요인
Ⅲ. 시사점
 
  
  
최근 우리 경제의 가장 큰 화두는 물가이다. 작년 4분기부터 한파, 구제역 등 각종 공급충격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대를 기록하면서 가계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반기 들어 공급충격이 완화되면 다소 개선될 여지가 있다고는 하지만 공공요금 인상 등 물가를 자극할 수 있는 요인들이 여전히 남아있다. 대외변수인 유가의 향방 또한 불안이 가시지 않는 모습이다. 

빠른 물가 상승세가 이슈화되면서 물가 수준에 대한 관심 또한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물가 수준 자체가 너무 비싼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시각과 더불어 중장기적으로 우리나라 물가를 어떻게 보아야 하나 하는 관심도 증폭되고 있다. 이하에서는 우리나라 물가수준을 국제비교를 통해 가늠해보고 장기적으로 물가 불안을 야기할 수 있는 대내외 요인들에 대해 살펴본 후 물가 안정과 관련된 시사점을 도출하고자 한다. 
  

Ⅰ. 우리나라 물가 현황 
  

그간 주요 기관과 경제 관련 전문지 등에서 국제적으로 물가 수준을 비교하여 분석한 바 있다. 서울의 생활비가 가장 높은 축에 든다든가, 특정 수입 유모차의 가격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훨씬 비싸다든가 하는 것들이 그 예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물가 비교 자료들은 일부 품목만을 조사하여 지수에 산입하거나 특정 계층이 소비하는 품목들만 감안하는 등 많은 한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균형있게 한 국가의 전체 물가 수준을 반영하지 못한다. 

한 나라의 전반적인 물가 수준을 비교적 공신력 있게 나타내는 것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이하 OECD)의 물가 수준 비교 데이터를 들 수 있다. 소비자물가와 생산자물가 등 각종 물가지수가 특정 계층, 즉 소비자나 생산자가 주로 구매하는 품목들을 대상으로 하는 반면 OECD 자료는 GDP 계정에 나타나는 한 국가 전체의 지출 항목 모두에 대한 물가 수준을 측정한다. 그러므로 지출의 주체에 개인, 기업, 정부가 모두 포함돼 있으며 지출 항목에도 각종 소비재뿐 아니라 자본재 등도 고려된다. 물가 수준은 구매력 평가 기준 환율에 따른 GDP 상의 지출과 시장환율 기준 지출 간의 비율을 통해 산정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와 미국에서 같은 상품의 가격이 각각 1,000원, 2달러라고 한다면 구매력 평가 기준 환율은 일물일가 법칙에 따라 500원/달러가 된다. 그런데 시장에서 결정된 환율이 만일 1,000원/달러라고 한다면 우리나라 사람이 미국에 가서 그 상품을 구매할 때 2,000원을 지불해야 한다. 양 국가간에는 물가 수준이 두 배(=(1,000원/달러)/(500원/달러) 만큼 차이가 나는 것이다. 이를 경제 전체 상품에 대해 확장하면 일반 물가 수준의 비교가 된다. 

물가 수준 낮지만 부담 커지는 중 

OECD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물가 수준은 67(2008년 기준, OECD 평균=100)로 비교대상국 가운데 낮은 편에 속한다. 전체 34개 OECD 회원국 중 우리보다 물가 수준이 낮은 나라는 멕시코와 터키뿐이다. 1인당 소득 수준이 비슷한 나라들 가운데서도 마찬가지로 확인된다. PPP 환율 기준 1인당 명목GDP가 우리와 비슷한 국가(2만5천 달러에서 3만 달러 사이)는 체크, 포르투갈, 폴란드, 이스라엘, 그리스, 뉴질랜드 등인데 그 중 우리나라의 물가 수준이 가장 낮다(<그림 1> 참조). 

품목별로는 음식료품 가격 수준이 106으로 OECD 평균을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고기류와 非알코올성 음료, 우유 및 치즈, 과일 및 야채 등이 이에 해당한다(<그림 2> 참조). 내구재와 준내구재 등 공산품의 가격이 각각 85와 91로 비교적 OECD 평균에 근접한 가운데 서비스 가격이 60으로 평균을 크게 하회한다(<그림 3> 참조). 우리나라의 1인당 소득이 OECD 평균 대비 79%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할 경우 공산품의 가격은 소득 수준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싸지만 낮은 서비스 가격이 우리나라의 전체 물가 수준을 끌어내리고 있는 셈이다. 이는 교역재가 대부분인 상품 가격이 국제적인 평균에 수렴해가려는 경향이 있는 반면 비교역재인 서비스는 낮은 생산성으로 인해 다른 국가들과 격차가 훨씬 많이 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물가 수준은 우리나라가 매우 낮은 편에 속할지라도, 2000년대 들어 상승률은 비교적 높은 것으로 확인된다. 각 국가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비교해보면 우리나라는 매년 3.2%로 전체 34개 회원국 중 8번째로 빠르게 올랐다(<그림 4> 참조). 특히 최근 들어서는 공급충격 등으로 상승률이 더욱 가팔라진 상황이다. 

소비자들이 느끼는 부담은 수치로 나타나는 것에 비해 더 심각하다. 앞서 본 바와 같이 지출항목 가운데 음식료품의 물가수준이 OECD 평균 대비 높은 상황에서 이들 품목이 최근 물가 상승을 주도함으로써 소비자들의 체감 물가 사정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품목의 질 제고를 이유로 값이 크게 오른 상품이 늘어난 점도 체감 물가에 영향을 미친다. 기준시점과 동일 품목으로 물가지수가 계산되기 때문에 상품 질의 변화는 통계에 바로 반영되기 어렵지만 실질적으로 가계의 부담을 높인다. 일례로 최근 3년 새 일반 쌀 소비가 4% 줄어든 반면 적게는 20%에서 200%까지도 비싼 즉석 도정미의 소비량은 40%가 늘었다. 무선통신비도 무선인터넷 등 데이터 서비스가 크게 늘면서 최근 2~3년간 두 배 가까이 비싸졌다. 
  

Ⅱ. 중장기적 물가 불안 요인 
  

전반적으로 우리나라의 물가 수준이 OECD 회원국들 가운데 낮은 편에 속한다고는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물가 부담을 초래할 수 있는 여러 요인들이 존재한다. 풍부한 글로벌 유동성, 중국의 인플레이션 수출, 에너지·원자재 가격의 추세적 상승 등이 소규모 개방경제인 우리나라가 직면하고 있는 대외적 물가 상승 요인이다. 대내적으로도 서비스업 부문의 낮은 생산성,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산업 구조 및 대외의존도, 불완전경쟁 시장구조와 비효율 등을 꼽을 수 있다(<그림 5> 참조). 이하에서는 이러한 중장기적 물가 불안 요인들에 대해 차례로 살펴보고자 한다. 

대외요인 ① : 풍부한 글로벌 유동성 

2008년 9월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으로 글로벌 경제가 위기를 겪으면서 각국 중앙은행들은 경기 회복의 모멘텀을 확보하기 위해 정책금리 인하 및 양적완화를 시행하게 되었다. 미국이 제로 수준의 기준금리를 유지하고 1차 양적완화(약 1조7천억 달러 규모, 2009년 3월~2010년 3월)와 2차 양적완화(6천억 달러 규모, 2010년 11월~2011년 6월)를 시행하면서 세계 경제에는 유동성이 매우 풍부해진 상태이다. 피셔(I. Fisher)의 교환방정식에 따르면 화폐유통속도가 일정한 경우 유동성 증가율에서 경제성장률을 차감한 것이 물가 상승으로 귀결되는 장기적인 관계가 성립한다. 실제로 전세계의 유동성(Broad Money 기준) 증가율-경제성장률과 글로벌 소비자물가 상승률 사이에 상당히 밀접한 모습이 나타난다(<그림 6> 참조). 다만 1차 양적완화 기간 동안에는 경제위기 발생 직후 총수요압력이 크게 낮아진 가운데 원자재 가격이 급락하고 급격한 신용위축 등으로 경제활동이 둔화되면서 화폐유통속도 또한 떨어져 유동성 증가만큼 물가 상승이 초래되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그림 7> 참조). 

앞으로 글로벌 유동성 추이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는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정책 방향에 달려있을 것이다. 2분기 각국의 경기지표가 부정적으로 나타나면서 글로벌 경제가 조정 국면에 들어선 것으로 판단된다. 먼저 미국에서의 3차 양적완화 시행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이다. 블룸버그(Bloomberg)에 따르면 아시아의 트레이더들이 3차 양적완화의 시행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고 언급했으나 마켓워치(Market Watch)는 전미은행협회(ABA) 소속 이코노미스트들의 견해를 들어 3차 양적완화가 없을 것이라고 내다보는 등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그러나 만일 양적완화가 2차에서 완전히 종료된다고 하더라도 美 연방준비제도(FRB)가 만기 도래 채권을 다시 투자하는 방식 등을 통해 시장에서의 유동성 규모를 당분간 유지할 것을 고려 중이다. 그러므로 1차 양적완화 종료 때와 달리 급격한 유동성 위축은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경기의 불확실성이 심화된 상황에서 재정정책마저 여의치 않아 기준금리가 낮은 수준에서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이 컨센서스이다. 회원국들의 재정위기로 어려움에 처해있는 유로존과 대지진으로부터의 회복이 시급한 일본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공급충격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가 가시지 않고 있지만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을 감안할 때 글로벌 유동성 공급 기조가 지속될 것으로 보는 이유이다. 

대외요인 ② : 중국의 인플레이션 수출 

2000년대 중반 미국과 유로존, 일본의 초저금리 정책으로 글로벌 유동성이 매우 풍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경제의 높은 성장세에 비해 인플레이션이 낮게 나타났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중국의 저물가 수출이다. 1990년대 이후 중국은 막대한 저임 노동력을 바탕으로 세계의 공장 역할을 수행해 왔다. 10억이 넘는 인구는 농촌으로부터 도시로 인력이 무한정 공급될 수 있는 배경이 되었다. 높은 생산성 증가율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중국의 2000년대 명목임금 상승률이 15%였던데 비해 노동생산성은 이보다 높은 17% 수준을 기록하였다. 임금보다 생산성이 더 빠르게 오르면서 단위노동비용은 줄곧 하락세를 보여온 것이다. 따라서 중국에서 생산되는 공산품들의 가격이 낮게 유지될 수 밖에 없었고 이는 중국 수출제품 가격의 안정을 불러왔다. 

그러나 향후 중국의 생산성 제고에 비해 임금 상승 속도가 더 빠를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그림 8> 참조). 빈부격차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중국 정부는 2015년까지 근로자 임금을 현재의 두 배로 올리기 위해 ‘소득분배 조정을 강화하는 지도의견 및 실행 세칙’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중국 정부의 강한 의지를 감안할 때 향후 단위노동비용이 상승세로 반전될 전망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수출과 내수의 불균형이 더욱 두드러지면서 투자와 소비 활성화를 통해 양자간의 균형 성장을 도모하고 있다는 점도 임금의 대폭 상승을 예견케 하는 대목이다. 중국의 인구구조가 루이스 전환점에 다다르고 있고, 위안화의 절상 추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점 또한 중국발 글로벌 물가 안정을 더 이상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그렇다고 글로벌 기업들이 중국에 위치한 생산시설을 보다 저임금의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 등으로 전환배치 하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베트남의 임금 수준은 중국의 3분의 1, 인도네시아는 절반에 불과하지만 입지, 산업연관관계, 노동자들의 숙련도 등을 감안할 때 중국만큼 규모의 경제를 갖추고 있지 못하다. 글로벌 분업구조가 재편되고 중국의 산업 고도화가 진행되면서 일부 경쟁력을 상실한 노동집약적 산업 부문의 생산시설 이탈은 불가피하겠지만 그 진행 속도는 매우 완만할 것이다. 대중국 교역확대가 국내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중국으로부터의 수입 비중 확대는 국내물가 하락요인으로, 중국제품의 가격 상승은 국내물가 상승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의 대중국 수입 비중이 2011년 1~5월 기준 16.7%로 2008년 이후 정체 상태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과거와 달리 중국과의 교역 확대가 향후 국내물가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에 유의해야 하는 상황이다. 

대외요인 ③ : 에너지·원자재 가격의 추세적 상승 

2000년부터 유가가 급격히 오르기 시작한 2007년 이전까지의 원유 현물 평균 가격은 배럴당 40달러(WTI 기준)에도 미치지 못했다. 세계 경제가 자원가격의 제약 없이 높은 성장세를 구가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돼 있었다. 원유 이외의 다른 원자재 가격도 마찬가지의 흐름을 보여왔다. 하지만 2007년 이후 원유 등 원자재 가격이 빠르게 상승하기 시작하면서 글로벌 경제는 커다란 제약조건에 직면하게 되었다. 서브프라임 위기를 겪는 와중에 이들의 가격이 재차 하락하기도 했지만 대체에너지가 충분한 경제성을 확보하기 전에는 값싼 에너지와 원자재가 소멸될 것이라는 자원 패러다임의 변화를 꺾지 못했다. 

1970년대 두 차례의 오일쇼크가 공급 충격에서 비롯됐다면 현재의 유가 상승세는 수요압력에 따른 것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올 초부터 문제가 되고 있는 중동의 정정불안이 공급 충격에 대한 우려를 가중시키고는 있지만 2000년대 이후 세계 경제의 성장 센터 역할을 하고 있는 신흥국들의 막대한 자원 수요가 원자재 가격 상승의 주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선진국들보다 발전 단계가 낮은 신흥국들의 경우 앞으로도 상당 기간 동안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만 하는 상황이며 에너지 다소비 업종이 포함된 제조업을 육성시키려 할 것이다. 현재 추세로 보아 석유의 경우 3~4년 후에는 개도국의 소비량이 선진국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그림 9> 참조). 중국과 인도 두 나라만 고려하더라도 20억 안팎의 인구에게 기본적인 의식주에 필요한 수도와 전기, 주택 및 인프라 제공에만도 막대한 원자재가 소요될 것이다. 또한 2008년 현재 GDP 단위당 에너지 소요량을 나타내는 에너지원단위(toe/천달러)는 신흥국이 0.39로 OECD 국가의 3.1배에 달한다. 에너지 효율이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신흥국으로서는 같은 양의 산출을 위해 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쓸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한편 최근 일본 대지진으로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각 국가들의 에너지 관련 정책에 중대하고 다양한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원전 건설 계획을 취소하기도 하고 안전성에 대한 재검토 후 지속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지만 원자력에 대한 회피 성향이 높아진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안전한 발전에 대한 요구가 결국 신재생에너지 개발을 더욱 촉진시키겠지만 과도기적으로 신재생에너지가 충분한 경제성과 규모를 확보할 때까지 천연가스 등 기존 화석에너지에 더욱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09년을 100으로 했을 때 2020년에 원유 가격이 210.4, 천연가스 가격은 183.0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그림 10> 참조). 

대내요인 ① :  서비스업 부문의 낮은 생산성 

이하에서는 장기적으로 우리나라의 물가를 위협하는 대내 요인들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그 중 하나로 우선 서비스 부문의 낮은 생산성과 이에 비해 높은 임금 상승 가능성을 꼽을 수 있다. 

우리나라의 서비스업 1인당 부가가치는 1990년대 초에 비해 2.6배 이상 향상되었다. 1993년 서비스업 1인당 명목 부가가치는 14.4(백만 원)에서 2010년에는 37.7까지 높아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서비스업 부문의 꾸준한 생산성 향상에도 불구하고 제조업과의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1993년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생산성은 거의 같은 수준에 있었지만 이후 제조업의 1인당 부가가치 증가율이 더 높게 나타나면서 2010년에는 서비스업 생산성이 제조업의 47%에 불과하게 되었다(<그림 11> 참조). 자본집약화에 따른 대량 생산과 그에 따른 비용 절감이 수반되면서 우리나라 제조업의 노동 생산성은 눈에 띄게 개선되었다. 교역재를 생산하기 때문에 글로벌화에 따른 경쟁 환경에 무제한 노출되면서 이를 기반으로 산업 발전을 이루어냈다. 반면 비교역재 부문인 서비스업은 경쟁에의 노출도가 낮고 각종 제도에 의해 보호되고 있는 측면이 크다. 이런 격차가 존재함에도 국내적으로는 노동의 이동이 자유롭기 때문에 서비스업 부문은 낮은 생산성에도 불구하고 임금 수준이 제조업에 맞춰 빠르게 상승하는 경향이 존재한다. 이에 따라 서비스재의 가격이 높아지게 되는데 이를 Balassa-Samuelson 효과라고 부른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소비자물가에서 교육(2009년 기준 11.1%), 통신(6.0%), 외식 및 숙박(13.3%)등 주요 서비스 부문의 비중이 선진국들에 비해 2배 안팎 높은 것이 특징이다. 아직까지 서비스 부문의 물가 수준 자체는 다른 OECD 회원국들에 비해 낮은 수준이고 그 동안 상품 가격에 비해 억눌려온 측면이 있지만 향후 이 부문의 빠른 임금 및 가격 상승이 전반적인 소비자들의 부담을 늘리는 요인으로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 

대내요인 ② :  높은 에너지 다소비 업종 비중과 대외의존도 

또 다른 한편으로 우리나라의 낮은 에너지 효율과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에서 장기적인 물가 불안 요인을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효율은 개선되는 추세이긴 하지만 아직 선진국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에너지 효율을 나타내는 에너지원단위는 우리나라가 0.298(toe/천달러)로 체크, 헝가리,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들을 제외하면 주요국 대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에너지원단위가 높은 이유는 에너지 이용 효율이 떨어지는 데다 제조업 부문의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OECD 회원국 가운데 우리나라는 총부가가치 대비 제조업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이다. 2009년 기준 우리나라의 제조업 비중은 28.1%로 OECD 평균인 16.0%에 비해 12%p 이상 높다(<그림 12> 참조). 특히 우리나라 제조업에는 철강, 석유화학 등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업종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동일한 부가가치 창출을 위해 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다 보니 향후 값싼 에너지가 소멸되어 감에 따라 성장을 위해 더 높은 물가상승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 나타날 수 있다. 

환율 변동에 물가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또한 불안 요인 중 하나이다. 모형의 설정에 따라 결과가 다소 다르게 나타나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다른 조건이 일정할 때 소비자물가에 총수요압력 다음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환율로 나타난다. 총수요압력과 환율, 유가가 10% 상승할 때 소비자물가는 각각 0.9%. 0.6%, 0.2% 높아지는 것으로 추정된다(<표> 참조). 단순히 물가와 환율의 상관계수만 보아도 0.65로 매우 높게 나타난다. 환율은 물가를 구조적으로 높이는 요인이라기보다 대외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물가의 변동성을 확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특징적인 것은 환율 요인으로 인해 경기 하강기에도 물가가 급하게 오르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1990년대 후반의 외환위기 이후 4번의 경기 하강기 가운데 국내 요인에 의해 발생한 카드 사태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대외 요인이 주도한 경기 침체였다. 세계경기 하강이 대외 금융불안과 결합하면서 원달러 환율을 상승시켰고 이는 곧바로 국내물가 불안으로 이어졌다(<그림 13> 참조). 반대로 환율이 하락하면 물가가 안정되는 효과가 있긴 하지만 주로 경기 회복 및 상승기에 해당하기 때문에 수요 압력이 발생하여 환율이 오를 때의 물가 상승폭만큼 떨어지진 않는다. 오히려 물가가 소폭 오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외환경 변화와 환율 변동에 따라 물가도 함께 불안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대내요인 ③ :  불완전 경쟁 시장구조와 비효율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의 물가를 장기적으로 우려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불완전한 경쟁 및 시장구조 등에 따른 물가의 하방경직성을 꼽을 수 있다. 기획재정부의 세미나 발표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물가가 오를 때 쉽게 오르고 내릴 때 잘 떨어지지 않는 하방경직성이 선진국에 비해 뚜렷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선진국 주요 품목들의 가격 변화는 상하방으로 모두 움직이는 톱니바퀴식 추이를 보이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계단식 움직임을 보인다는 것이다(<그림 14> 참조). 

이처럼 우리나라 물가가 하방경직적인 이유로 낮은 경쟁압력, 왜곡된 가격결정 구조, 지대 추구행위 등이 꼽힌다. 시장에 비효율성이 존재하면 유통구조가 경쟁적이지 못하여 기업들이 가격 설정자(price setter) 역할을 함으로써 가격의 하향 압력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내리지 않고 잉여를 흡수하게 된다. 또한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해 소비자들의 감시 기능이 충분히 발휘되지 못해 가격 결정구조를 파악할 수 없는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 리베이트와 같은 음성적인 비가격적 요소가 가격의 하락을 막고 소비자에게 비용이 전가되면서 가격의 하방경직성이 나타나기도 한다. 중장기적으로 시장에서의 경쟁 원칙이 관철되지 못한다면 이러한 가격의 경직적 움직임을 해소하기 어려울 것이다. 
  

Ⅲ. 시사점 
  

단기적인 물가압력은 그때그때의 여건에 따라 호전될 수도, 악화될 수도 있다. 예컨대 경기가 갑자기 가라앉거나 날씨가 정상화되면 물가압력이 낮아지게 된다. 문제는 국내외 경제의 추세와 구조가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의 물가부담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장기적 차원에서의 물가 우려는 우리 경제가 개방도가 매우 높은 신흥국이라는 구조적 측면에서 비롯된 바 크다. 유가와 같은 에너지 가격의 장기적 상승세는 외생변수로 주어져 에너지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우리나라 물가에 직격타를 던진다. 또한 세계경제의 불안요인이 확대될 경우 국제금융시장의 리스크가 높아지면서 우리 경제의 기초여건과 상관없이 원화가격을 낮추고 결과적으로 수입물가가 오르게 된다. 한편 제조업이 발전한 신흥국이라는 점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비스 가격이 가팔라질 소지가 있으며 후진적인 유통구조 역시 물가에 부담을 주고 있다. 인구고령화와 생산가능인구 감소 등의 중장기적인 물가하락 요인도 있지만 이는 구조적인 물가상승 요인에 압도될 전망이다. 2000년대 들어 우리나라의 평균 물가상승률은 OECD에서 상당히 높은 편에 속한다. 단순히 이러한 흐름을 연장해도 중장기적으로 물가부담이 커질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설혹 물가가 크게 오르지 않더라도 양질의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갈망 때문에 소비자의 부담은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장기적인 물가상승 요인에 대해 금리 인상과 같은 수요조절수단으로 대응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경제의 구조변화 노력이 요구되는 이유이다. 무엇보다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제조업 비중이 높은 우리 경제의 구조상 단시일내에 개선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에너지 사용을 효율화하고 신재생에너지산업의 경쟁력 강화에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유가 충격에 대한 민감도를 낮추는 동시에 유가상승에 따른 경상수지 악화 가능성을 줄여 대외경제부문의 안정화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규제 완화를 통해 서비스부문의 생산성을 제고함으로써 서비스 부문의 가격상승요인을 완화하는 동시에 서비스 수요를 창출하는 등 내수를 확충함으로써 경제 전반의 대외의존도를 낮추어야 할 것이다. 금융안전망 구축 등을 통해 외환시장의 불안정성을 극복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며 개방과 경쟁을 통한 경제체질의 효율성 제고도 요구된다. 상품과 서비스 유통구조의 경쟁을 촉진하고 복잡한 유통단계를 단순화시키는 등 구조적인 물가 악화 요인을 최소화하는 노력은 그 예가 될 것이다. 

장기적인 물가압력을 낮추기 위한 노력은 우리 경제의 가장 큰 약점이라 할 수 있는 외부여건에 쉽게 흔들리는 취약성을 극복하고 거시경제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과 상통하는 부분이 많다. 소비자들의 후생을 증가시키는 동시에 우리 경제의 장기적인 안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더욱 관심을 가지고 변화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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