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 '아이패드의 성공이 말하고 있는 태블릿의 미래'
2010년, 아이패드가 시장에 등장했다. 아이패드는 아이폰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보급되며, 그때까지 약 10년 동안 절대로 대중적으로 성공하는 제품이 될 수 없다고 여겨졌던 태블릿 PC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왜 그때까지의 수 많은 태블릿 PC는 안되고 아이패드는 되는지 알아보고, 이에 따라 향후 태블릿 PC가 가야할 진화 방향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한다.
2001년, 당시 마이크로소프트의 회장이던 빌 게이츠는 컴덱스(Comdex) 2001의 기조 연설에서 태블릿 PC(이하 태블릿)를 소개하며 이것이 PC의 미래라는 식으로 말한 바 있다. 그냥 말로 그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윈도우XP의 태블릿 PC용 버전을 개발해서 발표하기도 했다. 윈도우XP 태블릿 버전에 대응하여 삼성, 컴팩, 도시바, 에이서, 후지쯔, HP 등 많은 제조업체들이 태블릿을 잇따라 출시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중에서 대중적으로 성공을 거둔 회사나 제품은 단 하나도 없었다. 일부 매니아 층, 얼리 어댑터에게 소량 판매되었을 뿐, 일반 대중으로부터는 철저히 외면 당했던 것이다.
아이패드의 대성공
애플은 2010년 10월에 아이패드를 출시했다. 이 저주 받은 시장에 애플이, 드디어 10년만에, 참여한 셈이다. 물론 애플은 기존의 태블릿과는 약간 달랐다. 우선, 윈도우XP가 아니고 애플 OS를 사용하였고, 스타일러스 펜이 아니라 터치 입력이 기본 입력 방식이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미 아이팟과 아이폰에서 쌓은 애플 고유의 자산을 이용할 수 있었다. 예를 들자면 압도적인 브랜드 가치, 다수의 애플 애호 고객, 방대한 수량의 앱과 컨텐츠 등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앱과 컨텐츠라면 윈도우가 오히려 훨씬 더 다수, 다종의 것을 쓸 수 있었고, 태블릿에서 꼭 손가락 입력이 펜 입력보다 좋다는 근거도 없었다. 따라서 아이패드에 대해 반신반의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출시 첫 날, 아이패드는 선 주문 50만대를 포함하여 70만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는 기염을 토하며 모든 우려를 날려 버렸다. 이런 추세는 계속 이어져서 두 달이 되기 하루 전에 판매량 200만대를 돌파했다. 출시 이후 1년 반 동안의 판매 추이를 보면 아이패드의 성공은 그 대단하다는 아이폰의 성공을 초라하게 만들 정도의 대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트너의 예측에 따르면 아이패드의 이러한 폭발적 성장은 앞으로도 지속되어 2010년1,468만대에서 2015년 1.4억대까지 판매하며 태블릿 PC 시장의 부동의 1위를 지킬 것이라고 한다(<표 1> 참조).
왜 아이패드는 성공했을까?
아무리 애플의 브랜드가 좋고, 튼튼한 고객 기반을 갖고 있다고 해도 아이패드가 보여준 성공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이미 그 시장은 10년 동안 수 많은 세계적인 PC 회사들이 수 없이 많은 실패를 쌓은 곳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라는 세계 최강의 OS 회사의 지원이 있었지만 아무도 대중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다. 전세계 기준으로 볼 때 PC 시장의 1%도 되지 않을 정도로 보급은 미미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왜 아이패드는 되는 걸까? 아이패드 성공의 이유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몇 가지가 있다.
1. 가격이 달랐다.
아이패드 이전의 태블릿은 너무 비쌌다. 일반 노트북에 비해 사양도 나쁘고 성능도 나쁜 데 가격은 더 비쌌다. 물론 노트북보다 더 가볍고 그래서 휴대가 용이하다는 것은 장점이긴 하지만 그래도 너무 비쌌다. 대략적으로 보자면, 2003년에는 300만원을 넘기 십상이었고, 2006년경이 되어 원가 절감이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200만원 수준이었다. 요즈음은 그보다 더 낮아져서 100만원대나 또는 5~60만원대의 태블릿 PC를 살 수 있지만 동일 사양의 노트북에 비해 비싸다는 것은 여전하다. 어차피 노트북 PC의 대체재로 태블릿을 사용해야 하는데 그 가격은 고객들을 그냥 노트북 PC 시장에 주저앉히기에 충분할 정도로 높았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을 아이패드는 혁신적으로 낮추었다. 지금에야 다양한 태블릿이 시장에 나와있고 그 태블릿 PC 중에서 아이패드가 결코 싼 가격이 아니게 되었지만 아이패드 출시 시점에서 판단하자면 다른 윈도우 계열 태블릿에 비해 매우 낮은 가격이었다.
2. 기술적 문제를 많이 해결했다.
과거의 태블릿은 말이 태블릿이지 실제 이동 단말로 이용하기에는 여러가지 불편함, 부족함이 있었다. 이것은 단지 제조업체의 문제가 아니라 당시의 기술 수준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당시의 태블릿은 완전 충전 상태에서 시작해도 한 두 시간 이용하고 나면 배터리 부족으로 더 이상 쓸 수 없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아이패드의 경우 다양한 절전 기술의 채택과 함께 신 기술이 충분히 적용된 대용량 배터리를 이용하여 대체로 하루 정도는 충전 없이 쓸 수 있는 수준이다. 필요한 순간에만 쓰면 된다는 개념과 언제라도 마음껏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의 차이는 매우 크다.
게다가 아이패드는 아이폰으로 입증된 애플의 강력한 UI를 이용하고 있다. 애플 UI의 장점은 이미 아이폰을 통해 증명된 바 있는데, 이것이 거의 그대로 아이패드에서 구현되었다. 편리한 이용이라는 아이패드의 장점은, 이용자 고객 입장에서 볼 때, 기존 태블릿과 아이패드를 차별화할 충분한 요인이 된다.
여기에 더하여 스마트폰을 통해 강화된 3G, WiFi 등의 통신 인프라가 있다. 과거와 달리 태블릿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고 이용하는 것이 기본이 아니라 인터넷 접속을 통해 태블릿 바깥의 세상과 연결하는 것이 기본이 되었다. 당연히 더 풍부한 컨텐츠 소비가 가능하게 되었다.
3. 태블릿의 성격을 바꾸었다.
기존의 태블릿은 노트북 PC의 진화형으로 제시되었다. 태블릿이나, 노트북 PC나, 데스크 탑 PC가 가지는 기능은 거의 같다. 사람들은 PC를 이용해서 글을 쓴다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편집하거나 하는 등의 일을 한다. 또 게임도 하고 웹을 보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고 영화도 보고 음악을 듣기도 한다. 앞의 활동을 컨텐츠 생산 활동이라 하고 뒤의 활동을 컨텐츠 소비 활동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PC는 컨텐츠 생산 활동을 전제로 하고 만들어진 기기라는 점에 동의할 것이다. 실제 이용 시간을 분석해 보면 컨텐츠 소비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을 수 있지만 그것이 PC가 만들어진 고유의 목적 자체를 희석시키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아이패드는 애초에 컨텐츠 소비 활동을 주 목적으로 만들어진 기기이다. 물론 가상 키보드가 있고 마이크가 있고 카메라가 있기 때문에 컨텐츠 생산을 위해 이용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보조적 용도이지 주 용도가 아니다. 게다가 그 생산 활동도 자세히 보면 PC의 생산 활동하고는 많은 차이를 가진다. 아이패드 또한 PC와 마찬가지로 보고서를 만들고 책을 쓴다거나 하는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보다는 자신의 SNS를 업데이트 한다거나, 가볍게 일상의 사진을 찍어 메일로 공유한다거나 하는 등의 UCC의 생산에 더 많이 이용된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아이패드는 “생산 활동을 전제로 만들어진” 태블릿이 아니다. 아이패드는 “소비 활동을 전제로 만들어진” 패드라고 봐야 한다. 아예 전혀 다른 성격의 제품으로 봐야 한다는 뜻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앞의 두 가지 이유 또한 이 세번째 이유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일 뿐이라 할 수 있다. 컨텐츠 소비를 위한 기기라면 기존의 유사 목적 기기, 컨텐츠 소비 목적 기기인 TV나 게임기나 비디오 등에 비해 터무니 없이 비싸면 안된다. 소비 목적 기기라면 컨텐츠 소비를 원하는 그 시점에서 이용할 수 있어야지 배터리가 없다거나 무거워서 들 수 없다거나 해서는 곤란하다.
컨텐츠 소비 목적 기기
아이패드를 “컨텐츠 생산을 위한” 태블릿이 아니라 “컨텐츠 소비를 위한” 패드라고 재 정의하고 그 특성을 다시 꼼꼼히 살펴보기로 하자. 그러면 아이패드의 “패드”로서의 몇 가지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
● 휴대성: 들고 다니기에 좋다.
아이패드는 기존 넷북이나 노트북이나 태블릿과 같은 PC 진화형 이동 기기에 비해 무게가 압도적으로 가볍다. 게다가 배터리 성능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에 충전을 위한 케이블을 상시 휴대하고 있을 필요도 없다. 그래서 들고 다니기에 매우 좋다.
집에서 학교나 회사로 들고 다니기 편하다는 것도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댁 내 이동이다. 안방에서 거실로, 거실에서 책상으로 또는 화장실로 또는 부엌으로 또는 차고로 또는 마당으로 어디라도 가볍게 들고 갈 수 있다. 전원이 어디 있는지, 충전기를 어디 두었는지 고민할 필요 없이 그냥 아이패드만 들고 가면 그만이다.
● 신속성: 바로 쓸 수 있다.
아이패드는 기본적으로 꺼지 않는 기기이다. 그래서 쓰고 싶을 때 바로 쓸 수 있다. 심지어 스마트 커버라는 보조 제품을 이용하면 커버를 여는 순간 바로 이용 가능한 상태가 된다. 노트북이나 기존의 태블릿과 같이 사용하지 않을 때 꺼 두었다가 이용할 때 전원을 넣고, 부팅을 기다려야 하는 것과 확연히 다른 이용 행태이다.
태블릿이나 노트북은 일단 끄면 다시 켜기 위해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그 대기 시간이란 것이 길어야 수 십 초 수준에 불과하다. 그 정도 시간은 생각해보면 그다지 긴 시간도 아니다. 게다가 요즈음 노트북은 완전히 전원이 차단되는 것이 아니라 슬립 모드라고 하는 방식을 이용하기 때문에 매우 신속하게, 수 초 정도에 다시 켜지는 것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소비 목적 기기에서는 하염없이 긴 시간이다. 소비 목적 기기라고 하면, 이용 대기 시간이 짧기로 아주 막강한 기기들이 널려 있기 때문이다. TV나 라디오나 MP3나 모두 마찬가지인데, 딸깍하면서 바로 켜져야 하고 바로 쓸 수 있어야 한다. 수 초는커녕 1초 미만 수준이라 해도 그 정도 수준은 우수한 것이 아니라 소비 목적 기기라면 가져야 할 기본적인 수준에 불과할 정도이다. 그런데 그 기본 수준에 아이패드는 도달했고, PC는 도달하지 못했다.
● 편리성: 쓰기 쉽다.
애플이 미국에서 아이패드를 광고할 때 쓴 문구가 있다. 그것은 “당신은 이미 사용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You already know how to use it)”이란 것인데, 사실 이 말은 크게 틀리지 않다. 누구라도 특별히 이용 방법을 교육받지 않고도 아이패드를 제법 잘 이용할 수 있다. 그만큼 아이패드는 쓰기 쉽다는 뜻이다. 3살짜리 아기가 아이패드를 잘 쓰더라는 것은 더 이상 놀랄 거리도 못된다. 누군가는 고릴라마저도 아이패드를 이용한다는 것을 동영상으로 공유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것은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아이패드를 쓰기 쉬운 기기로 만들기 위한 고도로 계산된 애플 UI의 탁월함이 그 뒤에 있다. 어린 아이들도 키보드나 마우스와 같은 다른 기기를 이용할 필요 없이, 눈에 보이는 것을 손가락으로 직접 건드리고 움직여서 조작한다는 터치 방식의 쉬움. 단 하나만 있는 취소, 원상 복귀 버튼. 그리고 여기에 더하여 아이폰이 갖지 못한 광활한 화면이라는 장점. 이런 것이 다 합쳐지면 고릴라와 3살 아이와 30살 청년이 모두 쉽게 쓸 수 있는 패드가 만들어지게 된다.
실제 오레곤주에 살고 있는 99세의 캠벨 할머니는 녹내장을 앓게 되면서 좋아하던 책 읽기를 포기했다가, 아이패드를 통해 책 읽고 글을 쓰는 즐거움을 되찾았다는 뉴스 보도는 소비자들이 ‘태블릿PC를 내가 아닌 가족들에게도 얼마나 친화적으로 사용 가능한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 다양성: 재밌는 것이 많다.
이미 아이팟과 아이폰에서 애플이 증명한 바 있지만, 하나의 기기가 책도 되고, TV도 되고, 게임기도 되고, 라디오도 된다. 그런데, 이것을 뒤집어 생각해보면 아이패드 하나만 있으면 TV라는 기계를 대신할 수도 있고, 라디오라는 기계를 대신할 수도 있으며, 무거운 책도 들고 다닐 필요 없고, 게임 말고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게임기를 가지고 다닐 필요도 없다는 뜻이 된다. 즉, 아이패드는 이들 각각의 기계들이 줄 수 있는 모든 재미를 다 줄 수 있다. 단 하나의 기기로 할 수 있는 재밌는 것이 너무나도 많은 셈이다.
이미 PC에서도 그런 것을 다 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틀렸다. 아이패드는 아이폰이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지만 PC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화면을 터치해서 움직이는 게임, 기기 자체를 이리저리 기울여서 움직이는 게임 등은 PC가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아이패드만 가진 재미인 셈이다.
태블릿의 미래는?
앞서 말했지만 아이패드는 단지 더 싸고 더 좋은 기기가 아니다. 아이패드는 태블릿이라는 유형의 기기가 가져야 할 본질적 성격 그 자체를 바꾼 기기이다. 아이패드를 통해 고객들은 언제, 어디서나 가장 편안하고 즐겁게 컨텐츠를 소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가치는 지금까지 그 누구도 제공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부분, 소비에 최적화된 많은 기능과 특장점이라는 부분에서 크게 차별화되지 못하면 아이패드의 경쟁 상대가 될 수 없다. 그것이 바로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도전자들이 모두 아이패드에게 패퇴한 직접적 이유라 할 수 있다.
아이패드와 싸울 방법은 그다지 많지 않아 보인다. HP가 했던 것처럼 엄청나게 저렴한 가격으로 승부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고, 킨들 파이어나 누크가 했던 것처럼 차별적 컨텐츠를 이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며, 윈도우8이 하려는 것처럼 기존의 PC와 완벽히 호환되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결국 누가 살아 남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것은 아이패드가 손을 들어 가르키고 몸소 증명한 바, 태블릿은 PC가 아니고 컨텐츠 소비에 최적화된 전혀 다른 유형의 기기라는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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