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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경제연구원 '제품 잘 만들면 되던 B2B 기업, 이제 시장도 잘 만들어야'

B2B 기업의 사업 환경 변화로 고객사 요청에 대응하며 사업을 영위하던 기존 사업 방식에 빨간 불이 켜지고 있다. ‘잘 만드는 것’에 집중하는 차별성이 사라지면서 상품 컨셉을 발굴하여 상품화하는 상품기획 역량이 주목받고 있다. 시장 판세를 읽고 이를 적시에 제품화하는 상품기획 역량을 쌓아간다면 B2B 기업의 시장 선도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2009년 3월 인도의 타타자동차가 나노 모델을 출시했을 때 시장의 관심은 ‘과연 이 자동차가 팔릴 것인가?’였다. 동급 모델 가격의 30% 수준인 2,500달러로 출시된 나노에 제대로 된 부품이 사용되었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노에는 세계 최고의 자동차 부품기업 보쉬의 부품이 채용된다는 얘기가 흘러나오면서 나노에 대한 세간의 시각은 바뀌기 시작했다. 인도 시장에 적합한 자동차 부품을 준비한 보쉬의 지원으로 출시 일 년 만에 10만 대 이상 판매된 나노는 국민차로서 인도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부품업체가 완성차업체의 수요 형성에 영향을 미친 경우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그 반대다. 

델파이는 1999년 GM에서 분사했다. 분사한 이후에도 GM에 대한 의존도가 50%를 넘었다. 갑을관계가 명확한 자동차 부품 산업의 룰에 충실했던 델파이는 GM의 요청에 성실히 대응했고 한때 부품 업계 2위의 자리도 차지했다. 그러나 GM의 사업 부진과 글로벌 구매 비중 증가로 2005년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 

B2B 기업의 사업 환경 변화 

지금까지 B2B 기업 대부분의 성공방정식은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고객사가 원하는 대로 성실하게 만들어서 전달해주면 되었다. 고객사의 구미에 맞춘 품질로 차별성을 확보하고, 꾸준한 생산성 향상으로 박하지만 안정적인 이익을 누렸다. 고객사의 판가 인하 압력에는 꾸준한 원가 개선 활동으로 대응했다. 

그런데 사업 환경 변화로 고객사 요청에 충실히 대응하며 사업을 영위하던 B2B 기업의 기존 사업 방식에 빨간 불이 켜지고 있다. 고객사 GM의 요청에 성실히 대응했던 델파이는 고객사의 사업 성과가 나빠질 때 시장에서 지위를 잃었다. ‘잘 만드는 것’에 집중한 차별성이 희석되면서 새로운 경쟁력이 필요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B2B 기업의 사업 환경에 어떤 변화가 생기고 있는지 살펴보자. 

우선 수요 불확실성이 높아졌다. 고객사가 속한 산업이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고객사의 전략 자체가 매우 유동적으로 바뀌고 있다. 고객사의 주문에 맞추어 안정적으로 생산만 하면 되었지만, 이제는 수시로 변하는 주문량을 생산 계획에 그대로 반영하다가는 큰 코 다치기에 십상이다. 

닛산의 전기차 리프는 출시 당시 연간 50만 대 판매를 목표로 한 모델이다. 닛산은 리프 생산을 위해 설비를 공격적으로 확충할 계획까지 발표했었다. 당연히 부품 기업들도 이에 맞추어 선행 투자를 선언했다. 하지만 최근 리프의 월평균 판매량은 2천~3천 대에 불과하다. 리프에 배터리를 독점 공급하는 AESC는 리프를 대체할 만한 수요처를 뒤늦게 찾고 있다. 

한때 연간 870만 대가 판매되었던 소니의 바이오 PC가 일본산업파트너스(JIP)에 매각되면서 바이오에 대응하던 대만의 부품업체들은 아직도 사업 지속 여부를 놓고 갈팡질팡하고 있다. 판매량 감소로 막대한 재고 부담을 지니게 된 것은 물론이고, 소니 브랜드가 사라진 바이오 PC가 시장에서 생존할 것인가에 관해 판단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 B2B 기업이 싸워야 할 대상이 확대되었다. 보수적으로 공급망을 유지하며 협력 업체와 상생을 도모하던 고객사가 조금이라도 저렴하고 빠르게 대응하는 부품기업을 찾아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중국 IT 부품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부품소재 분야에서 중국산 부품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고객사의 글로벌 통합 구매가 일반화되면서 기존 기업 간 형성된 경쟁의 틀이 무너지고 있다. 

세 번째로 기술 경쟁의 과열로 제품 수명 주기가 짧아지고 있다. 종전 전자시장의 주력 제품이었던 TV와 백색가전의 경우 소비자들의 제품교체주기가 10년 이상이 되는 경우도 많았지만 요즘 IT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스마트폰의 교체주기는 1~2년에 불과하다. 휴대폰 기업들은 거의 1년이 멀다하고 새로운 기능을 선보이며 시장에 신모델을 출시하고 있고, 관련된 부품 생태계도 해마다 바뀌고 있다. 

B2B 기업에도 상품기획이 필요 

상품기획은 최종 소비자를 직접 대면하는 B2C 기업 몫이라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영업사원을 통해 입수한 고객사의 주문을 따르는 B2B 기업의 사업 방식에서는 상품기획이 굳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B2B 기업 사업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B2B 기업이 시장을 형성하고 고객사를 주도할 수 있는 역량으로 상품기획이 주목받고 있다. 특정 기기 시장 또는 고객사에 의존해서는 지속적 성장이 어려운 B2B 기업이 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고, 시장을 따라가기보다는 주도적으로 이끌 수 있는 성장엔진으로 상품 기획 역량이 평가 받고 있다. 그렇다면 B2B 기업에게 상품기획은 무엇일까. 

B2B 기업에 적합한 상품기획의 특성 

상품기획이란 시장성이 있는 상품 컨셉을 발굴하거나 제안하여 개발과 생산과정을 거치면서 상품화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B2C 기업과 다른, B2B 기업에 맞는 상품기획의 특성을 살펴보자. 

먼저, 컨셉 발굴을 위해 분석해야 할 대상이 다르다. B2C 기업은 목표 시장의 최종 고객만을 고려하면 된다. 경쟁기업 동향도 고려하지만 소비자 니즈 동향과 변화 방향을 우선으로 살펴본다. 

하지만 B2B 기업은 고객사와 고객사의 고객 모두 고려해야 한다. 시장이 호황이어도 거래관계에 있는 고객사가 지지부진한 경우가 있고 반대로 시장이 매력적이지 않아도 고객사는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인 경우도 있다. 스페인의 의류 브랜드 ‘자라’의 창업자 오르테가가 ‘사양산업은 있어도 사양기업은 없다’고 했듯이  시장이 정체기라도 성장하는 고객사는 분명히 존재한다. B2B 기업의 시장에 대한 이원화된 접근이 필요한 이유다. 

두 번째로, 제품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과정이 다르다. B2C는 최종 소비자 대상의 설문조사, 인터뷰 등을 활용하여 고객의 니즈를 지속해서 알아보고, 치밀하게 분석하여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경우가 많다. 소비자의 특성이 무엇인지, 알려진 니즈와 숨겨진 욕구 등을 간파하여 신제품 컨셉의 실마리를 찾는다. 

B2B 기업은 기술 동향과 전망, 고객사와 밀접하게 형성된 관계 등을 통해 아이디어를 찾는다. B2C 기업이 전체 시장 수요의 크기 등 객관적 전망에 상대적으로 많이 의존하는 반면 B2B 기업은 독자적 논리로 수요를 예측하는 경우가 많다. 중국 자동차 시장 진출을 준비하는 글로벌 자동차 B2C 기업이 중국 자동차 시장의 규모와 고객의 니즈에 맞는 아이디어를 찾으려 하는 반면에 중국 자동차 기업에 부품을 공급하는 B2B 기업은 중국의 자동차 시장 수요와 자동차 구매자 선호도 뿐 아니라 중국내 자동차 기업 동향과 이들 기업과의 관계, 중국 정부의 산업 정책 방향 등을 종합하여 형성한 독자적 논리를 기반으로 신제품을 기획한다. 따라서 B2B 기업의 신제품 아이디어는 주로 자사만의 준비 과정을 통해 도출되는 경우가 많다. 

B2B 기업의 상품기획 프로세스 

B2B 기업의 통상적인 상품개발 프로세스는 고객사 요청사항을 입수하고, 이에 따라 개발과 생산을 하는 것이다. 물론 환경 분석, 아이디어 도출, 제품 사양 확정 및 사업성 분석, 시제품 개발 및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B2B 기업의 상품개발 프로세스에서는 새로운 제품 개발보다는 안정적 공급 대응에 무게중심이 실렸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환경 변화로 아이디어 발굴 과정이나 개발 효용성 확대를 강조하는 상품기획 모델을 적용하는 B2B 기업이 늘고 있다. 

① Stage Gate 모델 : 개발 효용성 및 성공 가능성 향상에 집중 

미국의 Robert Cooper 교수가 개발한 Stage Gate 모델은 개발 과정의 효용성과 성공 확률을 높이는 데 집중하여 고안된 프로세스로 B2C 기업에도 적용가능하지만 B2B 기업에 더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모델이다. Stage Gate 모델은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제품 개발 및 성능을 검증하는 Stage 과정과 다음 단계로 진행 여부를 결정하는 Gate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 5단계로 나뉘어 있다. 

Stage Gate 모델의 특징은 단계별로 성공 여부를 엄격하게 관리하는 의사결정 Gate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다양한 부문의 구성원이 관여하는 Gate 과정을 통해 실수를 미리 방지할 수 있고, 기준에 미달하는 과제는 더 이상의 자원이 투입되기 전에 제거도 가능하다. 

실제로 1986년 소개된 이래 미국 기업의 70% 이상이 Stage Gate 모델을 사용하고 있다고 할 정도로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프로세스이다. 다만 정보통신 산업 등 시장의 변화가 빠른 산업에서는 한 발자국씩 조심해서 움직이는 Stage Gate 모델이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② CECOR 모델 : 마케팅의 중요성에 집중 

CECOR(Calibrate-Explore-Create-Organize-Realize) 모델은 GE가 고안한 신제품 개발 방법론으로 상품기획 과정에서 마케팅의 중요성에 역점을 둔 것이 특징이다. 새로운 기술이나 아이디어를 상품화하는 CECOR 모델은 시장 관점으로 새로운 기술에 마케팅을 결합한 점이 주목할 만하다. 

5단계로 구성된 CECOR 모델은 배움 단계와 실행 단계로 구성된다. 1단계는 시장 변화 및 기술 트렌드를 파악하고 고객사의 동향을 분석하는 측정(Calibrate) 단계다. B2B 기업이 관심을 가져야 하는 시장과 고객사에 대한 이원화된 접근이 강점이다. 2단계는 기업이 목표로 하는 세분 시장을 선정하여 기회를 발굴하는 탐구(Explore) 단계이며, 3단계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굴하여 시장에서의 가치를 추정해보는 창조(Create) 단계다. 잠재 고객의 평가를 가설적으로 수행해보고 필요하다면 다시 1단계로 돌아가서 반복할 수도 있다. 여기까지가 배움 단계로서 신제품의 컨셉을 발굴하고 상업화 전략을 수립하는 과정이다. 

실행 단계는 실제 상업화를 시행하는 단계인 조직화(Organize) 단계와 실현(Realize) 단계로 구성된다. 발굴된 컨셉을 제품으로 구현하고 이를 고객사에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수립한다. 마케팅 활동을 구체적으로 명기하고 성과를 평가하기도 한다. 

미래 에너지 사업의 유망 분야로 손꼽히는 에너지저장시스템 영역에서 GE는 출하량 기준으로 5위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1위부터 4위까지는 전지 사업을 전문으로 수행하는 기업으로 적어도 10년 이상의 사업 경험을 보유했다는 점이다. 2007년 Beta R&D라는 영국계 전지 연구소를 인수하면서 전지사업에 뛰어든 GE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 사업을 본궤도에 올려놓았고, 그 배경에는 CECOR 모델이 있었다. 

GE의 IB 프로젝트를 통해 발굴된 Durathon (GE의 대용량 전지 브랜드)은 CECOR 모델로 기획된 제품이다. 기관차 시장의 성장 정체와 배출가스 규제에 직면한 GE의 교통사업부에서는 엔진과 전기 모터를 번갈아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기관차 개발을 IB 프로젝트로 제안했다. 하이브리드 기관차는 제동할 때 발생하는 에너지를 회수해서 배터리를 충전하고, 이를 필요 할 때 재활용하여 연료 소모를 낮추고 배출가스도 줄이는 친환경 기관차이다. 실제로 연료 절감량은 15%로 추정되었고, 배출가스는 50%나 감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1970년대까지 기관차를 직접 생산한 GE에게 하이브리드 시스템 개발은 그리 어려운 과제는 아니었다. 문제는 기관차에 사용할 수 있으면서 메가와트급의 거대한 에너지를 저장할 만한 대용량 저장장치를 구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고민 끝에 GE는 대용량 전지를 직접 개발하기로 한다. CECOR 모델을 통해 컨셉과 구체적 사양도 도출했다. 실행 단계에서 GE는 원천 기술을 보유한 기업을 먼저 탐색했다. 전지 사업의 핵심인 화학적 소재의 개발과 생산 역량을 GE가 단기간에 육성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마침내 영국에 근거지를 두고 1980년대부터 대용량 전지를 연구해 온 Beta R&D라는 기업을 발굴한 GE는 인수와 함께 본격적인 사업화에 돌입한다. 우수한 원천 기술과 1억 달러에 달하는 설비 투자, 그리고 식스시스마 방법론을 적용한 Durathon은 이제 GE의 핵심 사업 영역이 되었다. 

CECOR 모델은 이제 GE만의 노하우가 아니다. 시장에서 기회를 발굴하여 창의적 아이디어를 조기에 사업화 하는데 관심이 있는 B2B 기업이 적용할 만한 상품기획 프로세스로 자리 잡았다. 

③ 순환형 개발 모델 : 직관적 아이디어를 사업화 

순환형 개발 모델은 시장의 빠른 변화로 차분히 단계를 밟다가는 기회를 놓치기 쉬운 경우에 적합한 프로세스다. 일단 만들어보고 시장의 반응과 작동의 문제점을 반복적으로 반영하고 개선하여 빠르게 사업화 하는 것이 특징이다. 도요타가 렉서스와 관련 부품을 개발할 때 적용한 방식이다. 

가격 경쟁력이 있는 보급형 자동차를 넘어서 프리미엄 고급차 시장에 진입하기로 한 도요타는 구체적 사양을 확정한 이후 개발을 진행하는 기존 프로세스를 적용해서는 도저히 경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결국, 도요타는 제품에 필수적으로 필요한 기술적 목표를 먼저 정해놓고 이에 맞추어서 시제품 개발을 진행하기로 한다. 당시 렉서스의 개발 총책임자인 이치로는 프리미엄 고급차의 필수 요소를 우선하여 정의하고 구체적 개발에 착수한다. 높은 조정 안정성과 동시에 승차감도 좋을 것, 빠르고 부드러우면서 연비도 우수할 것, 디자인이 고급스러우면서도 공기저항은 낮을 것 등으로 개발 목표를 정하고 이에 맞추어 부품을 개발한 것이다. 

도요타는 순환형 개발 모델을 통해 비록 초기 완성도는 낮아도 변화하는 시장의 목소리를 낮은 비용으로 빠르게 반영했다. 렉서스의 제품 신뢰도에도 만전을 기한 도요타는 초기 개발 단계부터 관련 부서 간 협업 시스템을 형성함과 동시에 도요타 고유의 생산 시스템도 차질 없게 적용하였다. 1989년 미국에서 처음 출시된 이후 최근까지 가장 많이 팔린 고급차 브랜드인 렉서스의 강점은 시장의 변화를 빠르게 반영한 디자인과 드라이빙 성능이며, 그 배경에는 순환형 개발 모델이 있었다. 

자동차를 판매하는 도요타는 B2C 기업이지만 순환형 개발 모델은 빠른 제품화가 필요한 영역이면 B2B 기업에도 적합한 상품기획 프로세스다. 기술적 차별성보다 시장에 대한 색다른 시각으로 제품을 빠르게 구현하고 핵심 성공요소에 집중한 것으로 산요의 사례를 들 수 있다. 

지금은 파나소닉에 흡수되어 그 명맥을 찾기도 힘든 산요는 세계 최고의 휴대폰 기업이었던 노키아의 핵심 협력업체로 번성했었다. 피처폰의 차별 포인트가 디자인이었던 2000년대에는 대부분의 휴대폰 기업이 휴대폰 외부 장착형 배터리팩을 선호했다. 모델별 맞춤형 디자인으로 원가가 높았지만, 휴대폰 디자인의 차별적 구현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요는 표준 사이즈의 내장형 배터리팩을 기획하여 노키아에 제안하였고 그 후 몇차례의 적용-수정 과정을 거친 후 다양한 노키아 휴대폰 모델에 공용으로 적용되었다. 이것은 노키아의 핵심 경쟁력이었던 원가 우위를 굳건하게 지켜 주는 힘이 되었다. 

상품기획에 능숙한 B2B 기업의 조건 

B2B 기업은 고객사의 완성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부품을 공급하는 기업이다. B2B 기업을 평가하는 기본 요소는 품질, 가격, 공급대응력이다. 이것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Apple, GM, ABB 등 글로벌 기업들은 주기적으로 협력업체를 평가하여 주문 물량을 조정한다. 절대적 평가 요소는 역시 품질, 가격, 공급 대응력이다. 

하지만 산업이 성숙되면서 기본 평가 요소에 의한 B2B 기업 간의 변별력은 줄어들고 있다. 고객사가 놓치고 있던 부분을 일깨워주고, 고객사와 함께 미래를 준비하고, 궁극적으로는 고객사의 비전을 달성하는데 B2B 기업이 어떻게 기여하는지가 중요한 평가요소로 부각되고 있다. 

상품기획에 능숙한 B2B 기업은 경쟁사가 모르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기보다는 시장에 대한 독자적 시각을 지니고 있다. 시장에 대한 독자적 시각이란 제품과 관련한 다양한 지식은 물론 고객사와 경쟁사의 동향을 민감하게 인식하고, 기술 트렌드와 향후 시장의 전개 방향을 자사 관점에서 분석할 수 있는 역량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기초하여 상품기획의 첫걸음을 떼는 것이다. 

B2B 기업이 상품기획을 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다양한 프로세스 중에서 어떤 프로세스가 절대적으로 우월하다고 단언하기보다는 기업별 사업 배경과 시장에 대한 독자적 시각을 감안하여 프로세스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상품기획 프로세스를 통해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고 차별적이고 지속적인 경쟁력을 지닌 제품을 개발하는 것에 집중함이 필요하다. 

전 세계 자동차 기업에서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자동차 모델에 부품을 공급하는 보쉬의 핵심 경쟁력 중 하나는 자동차 시장에 대한 독자적 시각이다. 부품을 기획할 때 보쉬는 자체적으로 분석한 시장 상황과 고객 동향을 반영하여 계획을 세운다. 자동차 기업이 새로운 부품 개발을 요구할 경우에도 개발 초기부터 몇 가지의 대안을 세우고 개발에 임하는 것은 물론이고 시장의 흐름과 경쟁사의 움직임을 보쉬 독자적으로 분석해서 상품기획에 반영하는 것이다. 

시장을 선도하고 고객사를 주도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 B2B 기업은 없을 것이다. 방법을 몰라서 못하는 것은 더욱 아닐 것이다.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없어서 주저할 수도 있지만, 고객사를 이끌고 시장을 만들어가는 상품기획 역량이 극한의 원가경쟁력이나 천재적인 아이디어에서 기인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시장의 판세를 정확히 읽고 이를 적시에 제품화하는  상품기획 역량을 쌓아간다면 시장 선도의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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