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 '저탄소차협력금 제도, 친환경과 산업경쟁력 간 균형점 찾아야'
내년 시행 예정인 ‘저탄소차협력금 제도’가 국내 자동차 업계 및 정부 부처들간 입장 차이로 여전히 갈팡질팡하고 있다. 이 제도의 의미와 도입에 따른 득실 논쟁을 친환경과 산업 경쟁력 측면에서 균형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내년 1월 시행까지 불과 반년을 앞두고 있는 ‘저탄소차협력금 제도’ 도입에 대한 찬반논의가 끊이질 않고 있다. 이 제도 도입을 추진하는 쪽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높은 자동차에 부담금을 매기고, 배출량이 낮은 친환경차에는 보조금을 줘서 온실가스를 줄인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해 당사자인 국내 자동차 업계는 물론이고 정부 부처들 간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여전히 갈팡질팡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중립구간 등 제도의 세부 사항도 아직 확정되지 못하고 있으며 심지어 제도 시행이 유보될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이에 저탄소차협력금 제도의 의미와 도입에 따른 득실 논쟁을 친환경과 산업경쟁력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저탄소차협력금 제도’의 배경
저탄소차협력금 제도 도입에는 친환경차 위주로 국내 자동차 소비 패러다임 변화를 유도하여 글로벌 아젠다인 기후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자 하는 배경이 깔려 있다. 차량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구매 가격에 직접 연동시키면 소비 패턴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계산에서다. 현재 국내 자동차 시장은 중·대형차 위주의 차량 소비가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 전체 등록 차량 중에서 중·대형차가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72%로 일본(30%), 영국(34%), 프랑스(26%)와 견주어 볼 때, 다소 높은 상태임을 알 수 있다. 여기에 중·대형차가 경·소형차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이 약 1.5~2.5배 많은 점을 감안하면, 현재 국내 차량 소비 패턴 변화 시 2020년부터 강화될 세계적인 기후 변화 대응에 상당 부분 기여할 수 있다.
● 친환경에 대한 소비자의 사회적 책임 부여
저탄소차협력금 제도가 시행되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따라 자동차 구매 가격이 더 높아질 수도, 혹은 낮아질 수도 있기 때문에 ‘친환경’이라는 요인이 신규 차량을 구매할 때 차량 선택에 있어 과거보다 더 중요한 고려 축으로 작용할 수 있다. 여기에는 자동차를 구매하는 단계부터 소비자들로 하여금 자신이 선택한 자동차의 운행이 지속적으로 가져올 환경적 영향에 대해 사회적 책임을 부여하겠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환경에 대한 소비자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강조는 일찍이 프랑스에서 시작되었으며, 국내 저탄소차협력금 제도의 근간이 되는 프랑스의 보너스 맬러스 제도가 그 예이다.
2008년부터 시행된 이 제도는 중립구간 이상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차량에는 맬러스(부담금)를 징수하고 더 적게 배출하는 차량에 보너스(보조금)을 지급하는 구조이다. 시행 초기인 2009년까지 131~160g/㎞였던 중립구간의 평균 이산화탄소 배출량 기준을 2012년 106~140g/㎞, 2014년 91~130g/㎞로 설정해 단계적으로 강화해오고 있다.
당위론적으로 제도의 친환경적 영향력은 인정하면서도 일각에서는 현재 성급한 제도 도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실상 제도 도입에 관한 논의는 2020년 이후 모든 가입국에 신 기후변화체제를 적용하려는 유엔 기후변화 협약 이행의 차원에서 지난 5년 여간 지속되어 왔다. 한국은 2020년까지 온실 가스 배출을 기존 전망치 대비 30% 감축하기로 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 인식 하에 2009년 7월 제 4차 녹색성장위원회 보고 대회에서 저탄소차협력금 제도 도입 추진 방안이 결정되었고, 이후 관련 법안 제정 및 저탄소차협력금 제도 시행 계획이 연기 및 수정되며, 오는 2015년 1월부터 발효를 앞두고 있다.
단기적 희생 우려되는 친환경 제도
그러나, 기후변화라는 범지구적 과제에 대응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친환경 제도에 대해 산업계에서는 적잖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친환경 측면에서 아직 경쟁력이 약한 국내 자동차 업체들에게는 저탄소차협력금 제도 시행에 따른 희생이 당분간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저탄소차협력금 제도와 유사한 보너스 맬러스 제도가 시행될 당시, 프랑스 자동차 산업은 디젤 엔진 및 소형차 제작에 경쟁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따라, 보너스 맬러스 제도의 시행은 기후 변화에 대응은 물론이고, 자국의 완성차 업체들을 보호하면서 자동차 산업을 활성화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실제로, 2007년 프랑스에서 르노, 푸조 등 자국 브랜드 매출이 0.2% 감소한 반면, 보너스 맬러스 제도가 시행된 2008년에는 전년대비 2.1% 증가했다. 동일 기간 프랑스에서 수입차 판매가 7.6% 증가했다가 이듬해 3.9% 감소한 현상과 대조적이다.
● 친환경차 준비 아직 부족
반면, 저탄소차협력금 제도 시행을 앞둔 현재 국내 자동차 산업은 아직 친환경 차량 제작에 강점보다는 취약한 측면이 많다. 하이브리드 차량에서는 일본 업체가, 디젤 차량은 독일 업체가 오랜 준비로 축적된 경쟁력을 확보한 상황에서, FTA 발효에 따른 관세 인하로 해가 갈수록 국내 수입차 시장은 빠르게 커지고 있다. 여기에 저탄소차협력금 제도까지 가세하게 되면 국산 차량은 더욱 어려운 지경에 빠져, 결국 국내 자동차 산업 활성화에 오히려 저해 요인이 작용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걱정이다.
예를 들어, 현재 중·대형차 위주의 국내 소비 패턴으로 미루어 볼 때, 저탄소차협력금 제도가 시행될 경우, 국산 중·대형차를 사려던 소비층이 보조금이 지급되는 수입 중·대형차 선택으로 전환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연비 및 이산화탄소 배출량 측면에서 당장 경쟁력이 약한 국산 차량들로부터 부담금을 거두어, 친환경 조건에 만족하는 수입 차량에 보조금을 지급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제도 시행으로 국내 자동차 시장이 수입 자동차에 유리한 환경으로 조성되어 국산 자동차들이 역차별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국내 시장에서 국산차의 입지가 좁아짐에 따라 그 여파가 자동차 산업뿐만 아니라 국내 경제로까지 이어져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된다. 자동차에는 약 3만 개 이상의 부품이 들어가고 완성차 업체는 상당수의 부품 및 모듈을 외부에서 조달받는 구조이다 보니, 완성차 판매는 자연스럽게 완성차에 부품을 제공하는 협력업체의 손익과 직결된다. 국내 완성차 제조업체의 수는 손에 꼽더라도, 이에 제품을 조달하는 국내 1차 부품협력업체는 2012년 기준 887개사이고, 이들 1차 부품협력업체에게 부품을 조달하는 2차, 3차 부품협력업체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더욱 늘어난다. 결국, 국산차의 판매 저하는 관련 산업 종사자의 손실로 연결되며, 더 나아가 단기적으로 국내 경기를 침체시키는 요인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된다.
장기적 관점에서 산업경쟁력 업그레이드의 Enabler
제도 도입에 찬성하는 측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시행을 늦춰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당장에는 준비가 미비한 국내 자동차 업계의 일정 부분 손실이 불가피할 지 모르지만, 보다 중장기적인 시각에서 보면 저탄소차협력금 제도가 국내 산업 경쟁력을 촉진하는 기폭제가 되어, 실보다는 득을 더 많이 가져다 줄 것이라 판단하기 때문이다.
● 생존을 넘어 신성장 동력으로
제도 시행 연기 불가론을 주장하는 배경에는, 강화되는 글로벌 환경 규제에 신속히 대응을 하지 않을 경우 불과 수년 내에 자동차 수출에 당장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깔려있다. 국내 자동차 업체의 전체 완성차 수출 중에서 약 40%가 북미와 EU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자동차 선진 시장인 이들 지역으로의 수출이 순조로울 경우, 보수적인 자동차 산업에서 지속적인 경쟁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른 시일 내에 유럽과 북미를 중심으로 저탄소차량에 대한 기준이 엄격해질 뿐만 아니라,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이 같은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그림> 참조).
구체적인 규제 기준을 보면, EU국가에서 판매되는 자동차 평균 이산화탄소 배출량 상한선이 2015년 130g/km로 설정되었는데, 유럽 주요 완성차 업체들은 이미 2012년에 132g/km을 달성하였다.
나아가, EU 국가에서 2020년까지 완성차 제조사들에게 요구하는 평균 이산화탄소 배출량 기준은 95g/km로 그 기준이 급격히 높아지기 때문에, 기술력을 빠르게 발전시키지 않으면 쉽게 따라잡기 어려워진다. 주요 완성차 업체들이 평균적으로 달성하는 기준을 국내 기업이 만족시키지 못하게 된다면, 지금 당장은 매출 상황이 크게 문제되지 않더라도 2015년부터 점차 경쟁력을 상실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국내에서 차지하는 자동차 산업의 중요도를 생각해 볼 때, 향후에도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친환경차에 대한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하며, 저탄소차협력금 제도는 국내 친환경차의 개발 및 판매를 가속화시키는 하나의 동인이 될 수 있다.
또한 국내 자동차 산업 유관 플레이어들의 친환경 혁신을 가속화시킨다면, 자동차 산업에서 경쟁력을 유지하는 차원을 넘어 국가적 신성장 동력으로 확대될 수 있다. 하이브리드 및 전기차에서 새롭게 필요로 하는 배터리 및 신제어 기술과 관련하여 국내 자동차 업계에서의 혁신은 향후 글로벌 자동차 산업에서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시기에 성장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친환경 중심의 자동차 산업 혁신은 다른 유관 산업으로의 발전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저탄소 기술은 자동차 산업뿐만 아니라 전 산업에 친환경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기반 기술 성격이 강하며, 글로벌 정세는 점차 환경 문제에 민감해지고 있다. 저탄소 기술을 개발하는 과정 및 혁신적인 저탄소 기술 개발 완성을 통해 산업뿐만 아니라 학계, 연구소, 공공 등 다양한 영역에서 새로운 시장의 형성 및 확대까지 가능하다.
이와 같이 저탄소차협력금 제도가 제도의 취지대로 성과를 낸다면 범 국가적 친환경 과제에 대응하는 기반이 될 수 있고 중장기적으로 국내 산업 경쟁력을 업그레이드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다. 유관 산업 발전으로 이어져 국가의 신성장 동력화에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환경과 산업경쟁력 간 균형적 접근 필요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저탄소차협력금 제도의 시행에 대한 찬반입장은 각각 일면 타당한 측면이 있다. 국산차의 경쟁력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제도를 무리하게 시행할 경우 단기적으로 희생이 불가피하며, 국내산업 경기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반면, 친환경 기준이 급격히 높아지며 변화하는 글로벌 자동차 패러다임에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면, 주요 수출 지역에서 직접적 타격을 입게 될 뿐만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국가 산업 경쟁력마저 저하시킬 위험성도 존재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찬반입장에 선 이해 관계자들이 오랜 기간 첨예하게 대립하고 여전히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태가 지속되어 왔다.
그러나 합의점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아 보이는 이 두 견해는 국내 경제에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해 온 자동차 산업이 경쟁력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점에서 궁극적인 지향 목표가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반대 입장에서는 단기적으로 보았을 때 그 경쟁력을 상실할 것을 우려하고, 찬성 입장에서는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입지 약화를 경계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 경쟁력의 지속적 확보라는 목표가 동일하지만, 제도 도입이 미치는 영향이 장단기적으로 차이가 있어 상반된 견해가 존재하는 것이라면, 시점별로 우려되는 사항에 대한 개선을 통해 합의점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범 국가적인 약속 및 친환경적인 글로벌 패러다임 변화에 맞추어 가되, 그 세부 방향 및 속도를 국내 상황에 맞게 조정할 수 있다.
저탄소차협력금 제도가 환경과 산업경쟁력 사이에서 적정한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와 업계, 그리고 소비자가 서로의 관점과 우려,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살펴보고, 해결점을 찾기 위한 실질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 업계의 기술 혁신 속도와 소비자의 수용 수준 등을 반영하여 단계적으로 제도를 진화, 발전시켜나가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환경 대응 측면에서 정부가 주도적으로 담당해야 할 역할과 국내외 시장에서의 경쟁력 향상이라는 산업계의 역할을 서로 인정하는 기반 위에 제도의 세부 사항이 논의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찬반 양측 각각이 상반된 쟁점을 강조하고 타협하기 어려운 입장을 고수하기 보다,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목표를 논의의 중심에 둘 때 최선의 결과에 접근하기가 보다 수월해 질 수 있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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