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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경제연구원 '글로벌 다자개발은행 체제에 주도권 경쟁 시작됐다'

중국이 새로운 다자개발은행(Multilateral Development Bank, MDB) 체제를 열기 위한 본격적인 행보에 나서고 있다. 아시아 지역 인프라 투자 활성화를 목표로 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출범을 제안한 데 이어 브라질, 러시아, 인도, 남아공 등이 함께 참여하는 BRICS 개발은행도 적극 추진 중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중국의 의욕적인 움직임이 실제 성과로 이어질 것인지는 아직 불확실해 보인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과 BRICS 신개발은행(NDB) 

지난해 10월 2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자카르타를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유도요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재정 여력이 부족한 아시아 국가들의 사회간접자본 확충을 지원하기 위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을 제안한다고 첫 포문을 열었다. 아시아는 공동운명체인 만큼 아시아 국가들 중심의 다자개발은행(MDB)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덧붙여졌다. 마침, ‘아시아 중시(Pivot to Asia)’ 전략을 누누이 강조해오던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미 연방정부 폐쇄 사태로 발이 묶여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할 수 없다는 소식이 전해진 직후였던 만큼 그 의미는 더욱 각별했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구체적인 실체는 올해 5월 초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가 열린 카자흐스탄의 수도 아스타나에서 드러났다. 첫 날 밤, 러우지웨이(Lou Jiwei) 중국 재무장관은 한 중식당에 마련한 만찬 자리에서 AIIB의 자본금 규모와 중국의 분담 비율에 관한 계획을 밝히고 각국 대표들과 구체적인 의견을 주고 받는 시간을 가진 것이다. 미국, 인도, 일본 등 일부 외에 16개국 대표가 ADB 공식 행사 대신 러우지웨이 장관과의 만찬을 선택했다는 점은 AIIB 출범에 대한 아시아 국가들의 관심이 얼마나 큰 지를 잘 보여준다. 

새로운 다자개발은행 설립과 국제금융시장 질서 재편을 향한 중국의 의지는 7월 15~16일 브라질 포르탈레자(Fortaleza)에서 개최된 제 6차 BRICS 정상회의를 통해 다시 한 번 확인됐다. 회의에 참석한 5개국 정상은 2012년부터 논의해 온 BRICS 주도 다자개발은행의 공식 이름을 ‘신개발은행(The New Development Bank, NDB)’이라 명명하고 자본금 규모, 출자 방식, 분담 비율 등의 기본 사항들을 결정했다. NDB의 자본금 규모는 1000억 달러로 정해졌으며, 5개국이 각각 100억 달러씩을 출자해 500억 달러의 초기 자본금을 조성하고 추후 다른 나라들의 참여 의사를 봐가면서 설립 후 5년 내에 1000억 달러까지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애초 중국은 다른 회원국들보다 더 많은 출자를 희망했으나 5개국이 지분과 권한을 대등하게 분담해야 한다는 인도의 제안에 따라 각국이 똑같이 100억 달러씩 부담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NDB 본부가 상하이로 결정됐고, NDB와 별도로 외환위기 등의 긴급 사태에 대비해 조성키로 결정한 1천억 달러 규모의 ‘위기대응기금(Contingent Reserve Arrangement, CRA)’ 중 410억 달러를 중국이 출연한다는 점에서 NDB 내 주도권 확보에는 성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독특하게 구성된 자본금 분담 및 지배구조 배분 

흥미로운 부분은 AIIB와 NDB의 자본금 분담 및 지배구조 배분이다. 

AIIB의 경우, 중국이 총 자본금의 절반을 부담하고, 다른 회원국들의 출자 규모는 각국의 국내총생산(GDP) 비중에 따라 배분하자는 것이 중국의 제안이다. AIIB의 총 자본금 한도가 1000억 달러라는 점을 감안하면 중국이 부담할 금액은 최대 500억 달러에 이른다. 다만, 출범할 때 처음 납입하는 자본금은 최대 한도의 10% 수준에서 결정되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초기 부담액은 약 50억 달러 규모로 예상된다. 우리나라에 대해서는 5~7% 정도의 부담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지배구조다. 중국이 총 자본금의 50%를 납입하는 만큼 출자 지분에 따라 투표권을 부여하면 중국의 독주를 막을 방법이 없다. 그래서 ADB 등 다른 다자개발은행들의 경우, 지분이 많은 나라들이 일방적인 의사 결정을 하지 못하도록 상근이사들로 구성된 상임이사회를 둔다. 주요국들이 상근이사들을 임명한 후, 투자처 결정 등 주요 사항에 관한 논의와 결정을 이 상임이사회에 위임하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은 AIIB에 상임이사회를 두지 말자고 주장한다. 총회, 집행부, 비상임이사회 형태로 지배구조를 구성하고, 투자 관련 의사결정은 최대 주주인 중국 정부가 지명한 집행부에 맡기자는 뜻이어서 AIIB가 중국의 뜻에 따라 투자 결정을 하더라도 이를 견제하기가 어렵다. 일본의 불참이 거의 확실시 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중국의 참여 요청을 받아들인다면 제 2대 주주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바꿔 말하면, 출자액은 두 번째로 많이 부담하면서 실제 권한은 전혀 챙기지 못하는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다. 

AIIB에 비해 NDB는 사정이 조금 나은 편이다.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공 등 5개 회원국이 똑같이 100억 달러씩을 초기 자본금으로 출자하는 만큼 지분 비율이 같다. 즉, 어느 한 나라가 독점적인 권한을 행사하기가 불가능하다. 총재(인도), 이사회 의장(브라질), 본부(중국) 등도 골고루 나눠 맡기로 해 권력이나 정보가 어느 한 쪽으로 쏠리는 것을 막고 있다. BRICS 정상회의 초기부터 중국의 독주를 우려하는 다른 회원국들의 목소리가 컸기 때문이다. 

지배구조 역시 독특하다. 향후 다른 국가들의 참여로 자본금이 늘어나더라도 5개국의 지분 비율이 총 자본금의 55% 이상을 유지하도록 자동 증액된다는 단서 조항을 덧붙여두었다. 역외의 다른 국가가 아무리 많은 금액을 출자하더라도 45%의 지분밖에 가질 수 없도록 함으로써 NDB가 BRICS 주도의 개발은행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BRICS 각 회원국들 간 무역 및 금융 의존도를 고려할 때 NDB 내 의사결정의 무게 중심이 중국으로 상당 부분 쏠릴 것은 자명해 보인다. 

한계에 직면한 중국개발은행(CDB) 중심의 세계시장 진출 

중국이 이처럼 새로운 다자개발은행 설립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중국경제에 대한 위기감이 그만큼 커졌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지난 한 세대 동안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줄곧 두 자리 수를 기록할 만큼 성공적으로 고성장을 이끌어 온 중국 정부의 힘은 국내외 환경 변화에 걸맞은 적절한 정책 대응이었다. 

개방 초기에는 국내의 값싼 노동력이 해외의 앞선 기술 및 자본과 잘 결합될 수 있도록 국내 제도 개선과 규제 철폐에 주력했으며, 이는 곧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경이로운 수출 경쟁력 향상과 수출 주도 성장을 가능케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국내 자본과 기술이 어느 정도 축적되자 해외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중국 정부는 제 10차 5개년 규획(2001~2005)을 통해 자국 기업의 해외 진출 지원과 확대를 공식적인 정책 의제로 채택하였다. 이를 위해 중앙 및 지방 정부의 온갖 정책 수단과 여러 국유은행 등을 앞세워 정책 금융과 우대 차관을 제공하면서 중국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적극 지원하였다. 특히 2006년 이후에는 중국의 외환보유액이 당시 적정 수준으로 인식되던 5천 억 달러의 두 배인 1조 달러를 넘어서면서 과잉 유동성에 따른 위안화 절상과 물가상승 압력을 완화하기 위해 해외사업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당시 중국 기업들의 해외 진출 과정에서 가장 큰 역할을 수행했던 기관이 바로 중국개발은행(China Development Bank, CDB)이다. ‘개발은행’의 기본적인 사업 모델은 국제기구나 정부 등의 높은 신용도를 이용해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한 후 이 자금을 수요 기업이나 기관에 공급하는 것이다. 중국개발은행(CDB) 역시 초기에는 해외에서 차입한 자금을 국내 유망 투자 프로젝트에 배분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슈퍼파워 중국개발은행’의 저자 헨리 샌더슨은 중국개발은행(CDB)이 이 과정에서 뛰어난 선택과 집중 역량을 보임으로써 중국 산업의 근대화를 크게 앞당겼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중국 내 외환보유고가 급증하기 시작한 2006년부터는 넘쳐나는 중국의 외화를 활용해 기업들의 해외 진출, 특히 자원개발을 지원하는 쪽으로 사업의 중심을 옮겨가기 시작했고, 2010년 이후에는 자원개발 외에 중국 내에서 충분히 경험을 쌓은 철도, 수력발전용 댐, 고속철도 등의 인프라 분야가 추가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투자 주도의 고도 성장은 필연적으로 투자 효율성 악화와 성장률 둔화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값싼 자금을 이용한 투자는 과잉 투자를 불러오게 마련이고, 시장 논리보다 정치 논리가 앞서는 경우도 잦았다. 이런 과정들이 반복되면서 중국경제의 투자율은 계속 30%, 40%, 50%대로 높아지는데도 불구하고 성장률은 오히려 14%, 10%, 7%대로 계속 둔화되고 있다. 

해외 사업에서도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중국정부와 중국개발은행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실적이 빠르게 늘어났지만 돈의 힘, 즉 차관을 앞세워 해외자원이나 중국 기업의 영업권을 보장받는 방식의 해외 사업은 쉽게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초기에는 관대한 조건과 저렴한 금리로 제공하는 중국개발은행의 자금 지원을 환영했지만 그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자원개발 프로젝트와 함께 몰려든 중국 기업들과 노동자들은 상대국 정부와 국민들을 깜짝 놀라게 했으며, 이어지는 시장 장악, 환경 파괴, 계약 위반 등은 중국에 대한 불신과 반대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사업 규모가 커질수록 투자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은 일면 당연한 결과지만, 중국개발은행(CDB)의 부진에는 또 다른 원인이 한 가지 있다. 바로 정체성의 문제이다. 공식적으로는 은행이지만, 영업 행태나 운영 방식은 정부기관에 훨씬 더 가까웠다. 은행들이 의무적으로 발간해야 하는 연차보고서에 지방정부나 국유기업에 대한 대출, 해외 차관 등의 구체적인 내용이 빠져 있는 경우가 다반사고, 대외관계를 총괄하는 홍보 부서도 없다. 중앙 정부의 결정에 따라 주요 사업 방향이 결정되는 하향식 업무 관행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중국개발은행(CDB)이 중국의 경제성장 과정에서 담당해 온 역할이 컸던 만큼 이런 문제점들에 대한 개선 요구도 거센 편이다. 중국 정부가 다자개발은행 설립을 서두르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이 때문이다. 폐쇄적이고 관료적인 중국개발은행(CDB)만으로는 현재 중국 경제가 직면한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중국 기업들이 시장과 경쟁의 힘을 받아들이고 국제적 표준과 관행에 익숙해지지 않을 수 없도록 새로운 플랫폼 발굴에 나선 것이다. 즉, 제 12차 5개년(2011~2015) 규획에서 강조했듯이 양적 성장을 중시하던 과거와 달리 개혁 개방 심화를 통한 질적인 경제성장을 이뤄내기 위한 디딤돌로 다자개발은행 설립을 선택한 셈이다. 

삐걱거리는 다자개발은행(MDB) 체제와 미국의 국제금융질서 리더십 

선진국 주도의 기존 다자개발은행 체제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커진 탓도 크다. 세계은행(World Bank), 아시아개발은행(Asian Development Bank, ADB) 등 창설 이후 오랫동안 신흥국의 경제 성장과 발전에 큰 도움을 주던 공적 개발은행들이 언젠가부터 삐걱거리는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나라 산업은행, 중국개발은행(CDB)처럼 각국 정부가 출자해 설립하는 경우나 여러 나라가 함께 지분을 출자해 설립한 다자개발은행이나 기본 운영 원칙은 동일하다. 다만, 개별 국의 개발은행은 자국의 산업 발전과 경제성장을 위해 사업을 추진하는 반면, 다자개발은행은 앞서서 경제발전을 경험한 선진국들이 전세계, 혹은 인근 지역 후발국들의 성장 정체와 빈곤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기 위해 설립된 만큼, 특정 국가의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는 사업보다는 보편적인 수준의 인프라 건설이나 인간개발에 관심을 가져왔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첫째, 금융을 제공하는 다자개발은행과 지원을 받는 수원국 간의 눈 높이 차이를 해결하지 못했다. 지원을 받는 국가 입장에서는 자국 경제가 지속 가능한 발전의 토대를 확보할 수 있도록 산업 경쟁력 확보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의사 결정이 이뤄지길 희망한다. 인프라, 생산 설비 등의 투자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하지만, 다자개발은행을 포함한 국제금융기구나 원조기관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이 기구들은 경제발전을 먼저 경험한 나라들이 후발 국가들의 빈곤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기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별 국가의 수요보다는 UN, G8 등의 다자간 협의를 통해 새천년개발목표(MDGs)와 같은 원조 의제(agenda)를 먼저 설정하고, 이 의제를 잘 충족시킬 수 있는 사업에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의사 결정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수원 국가의 요청은 뒤로 밀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특히 최근에는 학교, 병원, 교육, 보건 등 기본적인 인간개발 수요 충족을 위한 프로젝트들이 우선 선정되는 경우가 많다. 한 예로, 1970년대까지만 해도 아프리카 지역에 대한 총 원조에서 전기, 통신, 운송, 수도 등의 인프라 투자 비중이 40% 이상을 차지했으나, 그 후 급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해 80년대 중반에는 20% 미만으로 떨어졌으며, 현재는 10%에도 못 미친다. 미국의 주도 하에 중남미 빈국을 주로 지원하는 미주개발은행(IDB)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나타나 과거에는 경쟁력 제고, 사회 개발, 국가 개혁 및 현대화 순으로 프로젝트 자원(resources)이 배분되었지만 최근에는 사회개발에 대한 지원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반면 중남미 지역 개도국들의 연합체라 할 수 있는 중남미개발은행(CAF)의 경우 금융시스템, 인프라, 사회개발 순으로 자금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둘째, 선진국들이 다자개발은행의 운영과 의사 결정을 독점적으로 주도한다는 점 역시 큰 문제로 지적된다. 1990년대부터 본격화된 신흥국 경제의 빠른 성장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 경제의 침체로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달라졌음에도 세계은행이나 IMF 등 국제금융기구의 지분 배분과 인적 구성은 그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예컨대, 전세계 GDP에서 BRICS 5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를 훨씬 넘어섰지만 세계은행에서의 지분, 즉 의결권은 아직도 13% 수준에 불과하다. 세계은행 총재는 미국이, IMF 총재는 유럽이 독점해 온지도 벌써 반세기가 넘었다. 올해로 48주년을 맞이한 아시아개발은행(ADB) 총재도 미국의 지원을 받은 일본이 독점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는 신흥 경제권의 요구가 다자개발은행의 정책 방향 결정에 제대로 반영되기 어렵다. 심지어, 국적상의 이점을 이용해 대규모 프로젝트를 비교적 손쉽게 수주하는 선진국 업체들이 프로젝트 계획 수립이나 컨설팅 등의 명목으로 알맹이를 챙긴 채 실제 사업 추진은 후발국 업체들에게 떠넘기는 사례도 빈번했다. 프랑스 기업들은 아프리카 프로젝트를, 미국이나 스페인 기업은 중남미 프로젝트를 독점적으로 수주하는 식이다. 

셋째, 선진국의 성공 경험, 즉 서구 몇몇 국가들의 합의에 의해 글로벌 스탠더드로 자리잡은 각종 제도와 정책, 경제발전 경험 등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점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나라를 포함한 일부 개도국 사례가 보여주듯이 성과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세계경제의 변화 속도가 워낙 빠른데다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 확대 등으로 각국의 이해관계가 점점 더 복잡하게 얽히면서 과거의 유용한 제도가 이제는 오히려 큰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다자개발은행 안팎에서 선진국의 리더십이 큰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여러 문제점들이 사업 방식과 인적 구성에 대한 불만, 신흥국의 경제적 위상이 아무리 높아져도 근본적인 해결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현실적 판단 등과 맞물리면서 비슷한 입장에 처한 국가들끼리 아예 새로운 틀을 짜보자는 남남 협력의 움직임을 끌어낸 것이다. 

국제금융질서 재편은 쉽지 않은 과제 

이런 일련의 움직임들이 새로운 다자개발은행 출범이나 국제금융질서 재편과 같은 실제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앞에 놓인 장애물이 많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국 등 신흥경제권 국가들이 국제금융 시장에서 새로운 질서와 합의를 만들어 갈 만큼의 신뢰를 확보했다고 보기가 어렵다. 중국, 브라질, 인도 등은 과거에도 역내 리더십을 확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ASEAN+3, SAARC, Mercosur 등 다양한 지역협력체와 국제기구들이 그 산물이다. 하지만 성공적이었다고 인정할만한 기구나 지역협력체는 아직 없다. 느슨한 제도와 부족한 신뢰 탓이라는 지적이 많다. 압도적인 인구와 경제 규모에 힘입어 지역 맹주로서의 위치는 오래 동안 누려왔지만 EU처럼 중심국이 주변국들을 설득하고 포용해 함께 성장을 도모하는 통합의 단계로까지는 발전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각국이 약속한 자본금 출자가 예정대로 이뤄질 것인가에 대해서도 의심스런 눈초리로 쳐다보는 나라들이 많다. 

자본금 확충과 민간 금융기관 및 기업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 것도 쉽지 않은 과제이다. 각각 1천억 달러에 달하는 AIIB와 NDB의 자본금 출자가 모두 완료되기 위해서는 중국과 BRICS뿐 아니라 선진국을 포함한 주변국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수적인데 아직은 이를 낙관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앞서 지적했듯이 선진국 중심의 기존 국제금융 체제가 여러 가지 문제점과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지난 반세기 동안 쌓여온 나름의 신뢰가 존재한다. 나이 들어 체력이 떨어져가지만 그 동안 여러 번의 항해를 성공시켰던 선장과 건강하고 패기 넘치지만 과연 긴 항해를 무사히 마칠 수 있을 지가 불확실한 젊은 선장. 이 둘 중에서 한 명을 선택해야 할 때 많은 사람들이 노련한 선장을 택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렇더라도 중국 등이 주도하는 다자개발은행(MDB) 설립 움직임을 마냥 못 본 체 하는 것은 바람직한 전략이 아니다. AIIB나 NDB 설립과 발전은 1차적으로 신흥경제권 내 인프라 시장 확대에 기여할 뿐 아니라, 인프라 개선에 따른 생산성 향상을 통해 관련국의 경제성장을 이끌어 낼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중국 기업들의 신흥시장 진출이 늘어나면서 중국 기업들을 매개로 한 글로벌 비즈니스 협력과 가치사슬이 확대되고 있다. 최근 브라질 월드컵 준비와 관련해서도 경기장 및 호텔 건설, 경기 중계용 IT 설비, 친환경 교통 인프라 등 여러 면에서 브라질 업체와 중국 업체들의 시너지가 활발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하이브리드 궤도버스의 시스템 설계와 운영은 브라질 회사가 맡고, 차량과 전력선 공급, 시공 등은 중국 업체가 맡는 식의 분업이 이뤄졌다. 중국산 크레인과 중국 노동자들이 없었다면 월드컵 스타디움 건설에 큰 차질이 빚어졌을 것이라는 분석도 많다. 

ADB 예측에 따르면 2010~2020년 아시아 인프라 개발 수요는 8조 2천억 달러 규모이며, 매년 8천억 달러의 투자가 필요한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아시아의 인프라 확충을 위해서는 각종 규제, 제도 정비 등의 정부 역량 강화와 금융 조달 환경 개선이 가장 시급하다고 꼽히는데, 이 두 가지는 AIIB 등을 매개로 다자협력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가장 손쉽고 효과적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지난 7월 초 시진핑 주석의 한국 방문 당시, 우리나라가 AIIB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줄 것을 희망한다는 중국과 이를 우려하는 미국 사이에서 묘한 긴장 관계가 만들어졌던 것처럼 어려운 결정일 수밖에 없다. 

한국의 전략적 입지는 경험이 적은 젊은 선장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쪽에 맞추는 것이 유리해 보인다. 즉, AIIB를 비롯해 새로운 국제금융질서에서 기대되는 이익이 큰 만큼 참여 자체는 긍정적으로 검토하되, AIIB 내 상임이사회 설치 등 한중 양국과 아시아 모두에게 도움이 될만한 대안을 함께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선진권과 후발 개도권 사이의 가교 역할을 통해 우리만의 자리를 만들어 냈듯이, 한 세대 만에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성과와 그 과정에서 겪은 다양한 경험들은 다른 신흥국들이 갖지 못한, 새로운 다자개발은행 체제의 발전과 신뢰기반 구축에 기여할 수 있는 훌륭한 자산이 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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