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 '중국판 창조경제 ‘대중창업, 만인혁신’, 사상 최대의 창업붐 조성되고 있다'
혁신은 거의 모든 국가경제의 당면과제다. 기업과 마찬가지로 혁신이 없는 경제란 허약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 정부의 혁신 캠페인은 혁신의 주체세력으로 ‘만인(萬人)’을 상정하고 거기에 더해 일반대중의 창업까지 연결시킴으로써 다분히 중국적인 접근법을 채택했다. 리커창 중국 총리가 3월 정부공작보고에 공식 인용함으로써 ‘대중창업, 만인혁신’은 이제 정부의 공식 업무로까지 격상했다.
출발은 비교적 성공적이다. 중국 정부의 ‘1위안 창업’ 지원책은 회사등기 건수를 크게 늘려놓았고 대학생들의 창업열기는 학원가를 들썩이고 있다. 그러나 창업이 수익성을 갖추고, 일자리를 늘리며, 작은 혁신이라도 성공시키려면 수많은 난관을 넘어서야 한다.
무엇보다 중국경제의 최대의 강점이었던 저렴한 인건비 등 저비용구조가 약화되고 있다. 금융의 왜곡에 따른 높은 융자 코스트, 대도시의 높은 경영 인프라 비용, 선진국보다 턱없이 부족한 자본시장의 신뢰, 음성적인 준조세, 파산제도의 미비 등을 고려할 때 올해 본격화된 창업 혁신 조류가 당장 가시적인 성과를 내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과거와 달리 시장친화적인 창업 혁신 정책을 긴 호흡에서 펴고 있고, 창업을 성공시킬 수 있는 기술적 금융적 인적 인프라가 전보다 많이 성숙됐다는 점에서 ‘찻잔 속 태풍’과 같이 일과성 캠페인으로 지나가진 않을 것 같다. 특히 샤오미 화웨이 등 로컬기업들의 자수성가형 성공사례가 잇따르면서 자금과 인재, 글로벌 기술역량이 집중되는 IT 산업 분야에선 적잖은 성과가 예상된다.
중국은 거대한 내수시장에서 수많은 기업들이 경쟁하는 복마전 같은 곳이다. 혜성처럼 나타난 유망기업이 몇 년 새 사라지기도 하고 알리바바와 같이 단숨에 세계가 주목하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하기도 하는 전쟁터와 같은 시장이다. 이 같은 역동성에 전대미문의 창업 및 혁신붐이 더해진다면 중국시장과 중국산업의 경쟁력은 한 단계 더 도약하게 될 것이다.
< 목 차 >
1. 리커창 중국 총리가 총대를 멘 ‘창업 혁신 붐’
2. 쉬운 창업, 어려운 성장, 더 어려운 재(再)창업
3. 중국식 창업과 혁신, 과거와 다른 출발
1. 리커창 중국 총리가 총대를 멘 ‘창업 혁신 붐’
베이징 서북쪽 대학가에 자리잡은 창업가(街)는 서점거리를 리모델링한 곳이라 규모가 웅장하지도 않고, 경관도 화려함과는 동떨어진 구역이다. 그러나 수년 전부터 10여개 유명 카페가 창업 희망자들의 아이디어 산실이자 거부들의 입도선매식 투자창구로 알려지면서 중국에서 널리 알려진 창업공간으로 부상했다. 외견상 카페골목에 불과한 이 곳을 중국 행정권력의 정점에 있는 리커창(李克强) 국무원 총리가 이달 7일 전격적으로 방문했다. 지난해부터 줄곧 주창해온 ‘대중창업, 만인혁신(大众创业,万众创新)’을 현장에서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리 총리는 한 카페에서 축구동호회의 경기대진을 짜는 앱을 소개받은 뒤 “대중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부는 모르지만 시장은 알고 있다. 시장을 믿는 것이 대중혁신의 근본”이라고 강조했다.
리 총리의 ‘대중창업, 만인혁신’ 발언은 작년 9월 중국에서 열린 하계 다보스포럼에서 처음 나왔다. 올해 초 스위스에서 열린 다보스포럼에선 그 취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중국은 근면하고 지혜로운 13억 인구를 가지고 있다. 만약 전 사회 모든 세포를 활성화할 수 있다면, 경제라는 유기체는 생기로 충만할 것이다. ‘대중창업, 만인혁신’은 무궁무진한 창의와 무한한 부를 품고 있는, 끝없이 캐낼 수 있는 금광과 같다.”
지난 3월 직접 발표한 양회(两会) 정부공작보고에는 ‘대중창업과 만인혁신, 그리고 공공제품 및 서비스라는 양대 엔진으로 경제의 양과 질을 모두 높이겠다’는 청사진이 공개됐다. ‘두 개의 엔진’이란 이름으로 공식 정부 업무계획에 포함된 것이다.
양회 이후 ‘창업’은 중국 경제사회의 핫 이슈로 떠올랐고(<그림 1> 참조), 리 총리 역시 창업혁신의 전도사가 됐다. 국가공상총국 통계에 따르면 작년 9월부터에서 올해 3월까지 214만 개 시장주체가 새롭게 생겨났다. 1년전 같은 시기 대비 33% 늘어난 것이다. 아울러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메이커(Maker) 운동’이 중국에서도 시작되고 있고, 혁신을 추종하는 청년층이 자발적으로 만든 ‘촹커쿵젠(創客空間)’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베이징의 ‘촹커쿵젠’은 아시아 최대 규모이며, 선전의 ‘차이훠(柴火, 땔감) 촹커쿵젠’은 창업자들의 천국으로까지 불린다. 중국경제 둔화 속에서 ‘창업’이라는 열풍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대졸자들의 취업난이 극심해지는 상황에서 큰 관심을 끄는 것은 당연하다(<그림 2> 참조).
다만 ‘대중창업, 만인혁신’이 중국경제의 질과 효율을 높일 수 있는 또 다른 엔진이 되려면, 갓 태어난 창업회사가 일자리를 만들면서 혁신을 이끌고, 결과적으로 경제성장에 힘을 보탤 수 있는 규모로 자라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중국의 창업 생태계는 부족한 부분이 많아 이제 막 창업한 기업들의 앞길에는 수 많은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 ‘대중창업, 만인혁신’이란 정부 구상과 업무계획도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상황이다.
2. 쉬운 창업, 어려운 성장, 더 어려운 재(再)창업
세계은행에서 매년 국가별 기업들의 생애주기에 따른 경영환경 수준을 비교해 발표하는 ‘Doing Business’ 보고서를 보면 중국 창업 생태계의 오늘을 쉽게 알 수 있다. 올해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189개국 중 90위에 올라있다(전년 대비 3단계 상승). 기업 설립 영역에서는 지난해 151위에서 올해 128위로 많은 개선이 있었지만, 그 외 영역에서는 그다지 변화가 없으며 상위권 국가들과의 격차도 여전히 컸다. 기업청산과 관련된 영역의 수준에서는 아시아 경쟁국에 비해서도 차이가 많았다(일본 94점, 미국 90점, 한국 90점, 중국 55점). 종합적으로 평가해보면, ‘창업은 쉽지만, 창업한 기업을 키워나가기는 어렵고, 실패를 딛고 다시 창업하기는 더욱 어려운’ 것이 중국의 창업 환경이다.
창업 : 1위안만으로 회사 세울 수 있다
공상등기제도 개혁은 이번 정부 출범 이후 가장 성공적이라 평가된다. 4개월간의 준비 끝에 국무원은 작년 2월 ‘등록자본등기제도 개혁안’을 비준했다. 기업 등록자본금 및 기타 등기 관련 사항이 크게 개선되면서 진입 문턱이 낮아졌다(<표 1> 참조). 예전에는 등록자본금이 부족해서 아이디어가 있어도 창업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는데 등록자본금 최소 요건이 폐지되고, 출자 방식도 자율화하면서 이 문제가 해결됐다. 쉽게 말해 ‘1위안만 있으면’ 창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기업 등록 절차도 바뀌면서 속도가 빨라졌다. 기존에는 창업자들이 주관 부서의 행정허가증을 발급받은 후에 공상행정부서에서 영업허가증을 받도록 되어 있었다. 이로 인해 창업기업이 경영 활동을 시작할 수 있는 시간이 지연되기 일쑤였다. 제도 개혁 이후 창업기업은 먼저 영업허가증을 받은 후 행정허가증을 받을 수 있게 되어 행정허가 발급대기 기간에도 일반적인 경영활동이 가능해졌다.
이 제도 개혁의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2014년 전국 신규등록 시장주체는 1,293만 개로, 전년 대비 14% 증가했다. 그러나 올해 설 연휴가 지나고 증가세가 둔화되기 시작했다. 이에 리 총리는 올해 정부공작보고에서 등록제도를 더욱 간소화한 ‘3증합일’을 통해 등록 소요시간을 5일로 단축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렇게 되면 기업 설립은 더욱 쉬워지고, 더 많은 시장주체들이 ‘대중창업, 만인혁신’에 참여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기업 성장 : 발목을 잡는 장애물들
창업보다 어려운 것이 일정 규모 이상으로 키워내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일반적 어려움에 더해 중국적 장애물이 적지 않다.
● 쉽지 않은 자금 조달
창업은 1위안으로도 가능하지만, 기업운용엔 당장 적잖은 자금이 필요하다. 중국 창업자들이 가장 먼저 직면하게 되는, 그리고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운영 자금 확보이다. 창업자들이 현재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은 ▲ 자기 자본(개인 예금 및 지인의 도움) ▲ 은행대출 ▲ 투자자 모집 ▲ 인터넷 크라우드 펀딩 ▲ 정부 창업지도기금 등 크게 5가지로 볼 수 있다. 이 중 자기 자본을 제외한 네 가지는 모두 손에 넣기가 쉽지 않다.
먼저, 은행대출은 가장 보편적이지만, 대출이자가 비싸고 창구가 높아 창업자들이 다가가기가 쉽지 않다. 중국 내 대표적인 금융기관들의 대출 실질금리는 6% 후반대로서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높다. 미국은 금융위기 이후 약 3.25%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작년 8월 상하이의 중소기업 및 개인사업 대출 금리는 한때 18%까지도 올라갔다. 이자에 더하여 중소기업 및 개인들은 대출 신청하면서 담보비, 자문비 등 각종 수수료도 부담해야 한다. 광둥성에서는 중소기업이 은행에서 1만 위안을 대출받기 위해서 1,600위안의 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관행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최근 중국 창업가에는 벤처투자자들의 활동이 눈에 띄게 늘었다. 미국 Dow Jones Venture Resource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벤처투자 총액은 155억 달러로 2006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모든 창업 기업들이 그 혜택을 얻진 못했다. 중국 창업투자 분석회사 칭커촹터우(清科创投)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엔젤투자 금액의 81%가 인터넷 및 IT 창업 부문에서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그림3> 참조). 그 외 산업 분야의 창업자들은 투자자를 구하기 쉽지 않다.
미국 인터넷 펀딩업체인 Kickstarter의 성공으로 중국에서도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가 발전하기 시작하여 2014년 8월 이미 90개가 넘어섰다. 창업기업 자금조달을 위한 또 하나의 새로운 길이 열린 것이다. 크라우드 펀딩이 빠르게 발전은 하고 있지만, 그 규모는 아직 작다. 투자자산 규모가 연 6~8억 위안 수준으로는 혜택을 보는 창업자들이 많을 수 없다.
창업자들에게 정부의 창업기금과 보조금은 가장 매력적인 자금원이다. 무이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청 자격이 까다롭고 심사과정도 복잡해 접근이 쉽지 않다. 2009년 출범한 국가 ‘신흥산업 창업투자계획’에 따르면 전체 직원 중 R&D 인원이 20% 이상인 기업만 신청할 수 있다. 지방정부 심사를 거친 후 중앙정부의 2차 심사를 거쳐야 하는데, 갖춰야 할 서류도 적지 않다. 신청에만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창업보조금은 이보다 더 복잡하다. 예를 들어 선전 시 정부로부터 사무실 임대료 보조금을 받으려는 창업 기업은 서류 준비에 더하여 인력자원국이나 취업서비스 관련 기관 등의 조사를 받아야 한다. 신청자격 기준도 높고, 절차마저 번거로우니 창업자들이 정부 기금이나 보조금을 얻기가 쉽지 않다.
올 1분기 일정규모 이상(연 2,000만 위안 매출) 중국 기업들의 영업이익률은 5.2%였다. 지난 한해 5.9%보다 악화됐다. 기업 자금조달비용인 평균 이자율 6%와 격차가 벌어지는 중이다. 밑지는 장사를 하는 기업들이 늘어나는 추세라는 얘기다. 갓 창업한 기업들은 더욱 상황이 어려울 것이다.
● 만만치 않은 운영 비용
중국의 평균 물가는 선진국보다 여전히 싸지만, 창업기업들이 자리를 잡아야 하는 사업장 물가는 만만치 않은 부담이다. 치솟는 인건비와 임대료, 높은 전기 및 수도요금 등은 선진국에 비해서도 결코 싸다고 말하기 어렵다.
인력자원 및 사회보장부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최저임금은 무려 3배로 치솟았다. 제조업 노동자 임금은 2004년 시간당 4.35달러에서 2014년 12.47달러로 올랐다. 미국 노동자의 임금 인상률은 같은 기간 27%만 올랐을 뿐이다. 임금 외에도 중국의 기업들은 임금의 40% 정도에 달하는 각종 보험과 주택공적금을 부담해야 한다. 창업자 입장에선 적지 않은 부담이 되고 있다.
높은 임대료 역시 창업자들에게 두통거리다. 만약 창업자가 도시 오피스텔에 150㎡의 사무실을 임대할 경우, 한 달에 평균적으로 2만 위안 이상의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베이징이나 상하이 같은 1급 도시라면 두 배가 넘는다. 사무 공간을 여러 창업자들이 나눠 사용하는 미국의 Wework를 본 뜬 창업 사무 건물도 등장했지만, 터무니없이 분담비용이 높다. 공용 사무실이 만실이 된다고 가정하면, 대개 같은 면적 사무실 임대료의 2.6배에 해당하는 높은 임대료가 책정돼 있다.
중국의 평균 전기료는 0.56위안/kWh으로 미국보다 약 30% 높다. 인터넷 비용 역시 창업기업들의 원성대상이다. 인터넷 속도는 한국의 7분의 1에 불과한데 비용은 한국과 맞먹는다. 리 총리가 지난 4월 주요 통신업체들에게 인터넷 비용을 낮추고 속도를 높일 것을 요구했지만 3대 통신업체들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중국의 물류비용은 GDP의 약 18%에 달한다. 반면, 미국과 한국은 약 8~9% 수준이다. 위의 여러 비용을 비교해보면, 1인 창업을 한다고 가정했을 때, 중국 창업자는 미국 창업자에 비해 두 배에 가까운 비용을 부담해야 된다(<표 2> 참조).
● 보이지 않는 비용, 정부의 관리 감독
경제평론으로 유명한 우샤오보(吴晓波) 전 제일재경 편집국장이 개인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민영경제가 가장 발달한 저장(浙江)성 닝보(宁波) 지역에서조차 기업가들은 일하는 시간의 절반을 대관(对官)업무에 쏟아야 한다고 한다. 정부 감독 대상에 막 올라온 창업자들은 말할 것도 없다. 공상국 세무국 위생국 인력자원국 공안국 환경보호국 등 수많은 정부 기관들의 비준, 조사, 벌금 등은 기업의 생사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렇다 보니 대관 업무는 창업자들이 어쩔 수 없이 부담해야 하는 보이지 않는 비용이 된다.
중국 법의 특성상, 각종 법률과 정부 입법(규장) 조항이 명확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결과적으로 현장의 행정관리 부서는 상당한 재량권을 행사한다. 행정관리 및 처벌 조항도 원칙만 있을 뿐 세칙이 없다. 벌금조항의 경우 ‘심각한 정도에 따라’ OO위안 이상 OO위안 이하를 내게 한다는 식이다. 명확한 규정이 없으니, 공무원들이 사적 이익을 추구할 공간이 생겨난다. 공무원들 중에는 빈번히 조사를 하거나 수속을 지연시켜 접대나 뇌물을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명절 때면 ‘명절 특수세’가 횡행하곤 한다.
비리나 불법은 아니지만, 정부 부처마다 가지고 있는 기준이 다르거나 관할 조직이 분명하지 않아 생기는 창업가들의 부담도 적지 않다. 각급 행정기구 사이에 권리와 책임이 분명하게 규정되지 않은 탓이다. 그렇다 보니 A 기관에서 정해 놓은 절차대로 일을 처리하더라도 B기관에서 인정해주지 않아 또 다른 절차를 밟아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기업은 어쩔 수 없이 더 많은 시간과 돈을 지불하게 되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 행정 처리 관련 불만을 신고할 곳이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중앙정부에서 이런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나서긴 했지만, 수십 년 묵은 관행이 쉽게 사라지기 어려울 것이다. 중앙의 권력과 의지가 지방에 미치기에는 워낙 땅이 넓고 지방의 지역이기가 강고하다.
중국사회의 독특한 ‘훙딩중제(红顶中介)’란 존재도 창업기업에게는 준조세 부담을 지운다. 훙딩중제는 정부 부서 업무 중 감정 평가 공증과 같은 대(对) 기업 창구 서비스를 위임 받아 시행하는 곳을 말한다. 훙딩중제의 증명서류가 없으면 행정허가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종종 ‘제 2의 정부’라 불린다. 예를 들어 건설회사가 주택건설위원회에 제출해야 하는 착공증을 받으려면 반드시 정부가 지정한 입찰회사를 통해 입찰을 진행해야 한다. 이 입찰회사가 바로 전형적인 훙딩중제다. 이런 구조 때문에 홍딩중제에서는 부패가 발생하기 쉽다. 정치협상회의를 이루는 민주당파 중 하나인 ‘구삼학사(九三学社)’에서 올 2월 조사한 한 건설회사 사례를 보면, 토지사용권 계약 체결 후 준공까지 중개 보고서 9~20개, 150여 명의 승인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 중제의 조사 및 보고에만 300일 이상이 걸렸다. 정부 기관 간부가 ‘훙딩중제’를 겸직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2014년 환보부가 강제로 퇴직시킨 62명의 환경평가기사 중 55명은 관련 공무원이었다. 산업협회 중에서도 서비스비, 회비, 자문비 등 각종 명목으로 기업들에게 부당한 비용을 요구하고, 응하지 않으면 관련 자격을 취소하기도 한다.
임대료나 수도 전기요금과 같이 명시적 비용보다 위와 같이 숨겨진 비용이 창업초기 기업에게는 더 큰 장애물이다. 이러한 무형의 비용을 없애기 위해서는 현재 추진 중인 행정권력 간소화를 더욱 강력하게 추진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법률 제도 및 정부의 관리감독체제를 완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런 문제들은 하루 아침에 해결되기 어렵다.
● 창업 투자에 찬 물을 끼얹는 창업사기
창업 후, 성장을 위해 필요한 운영 자금을 확보하는 것은 일종의 경쟁이다. 정부기금·보조금을 얻기 위해, 혹은 투자자를 찾기 위해 수 많은 창업자들이 경쟁하고 있다. 그 와중에 문서를 위조해 정부기금·보조금을 타거나, 실적을 부풀려 투자자들을 속이는 등의 창업사기가 적지 않다. 그러다 보니 정부나 투자자 입장에서는 누가 사기꾼인지, 누가 진짜 창업자인지 구분하기 쉽지 않아 투자를 망설이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창업사기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의미에서 창업 희망자들의 장애물로 등장하고 있다.
조달 자금 부풀리기는 창업 업계에선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다. 창업자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투자액을 부풀려 언론과 사회의 관심을 끌려고 노력한다(<표 3> 참조).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실제 조달한 자금을 뻥튀기 하는 것이다. 위안화 표기를 달러로 바꾸는 것이 흔히 쓰인다. 예를 들어, ‘100만 위안(약 1억 8천만원)’ 투자를 받았다면 이를 ‘100만 달러(약 11억원)’라 적어 투자 규모를 부풀린다. 어떤 경우에는 ‘1천만 위안’이 약간 넘는 투자를 받고도 ‘수 천만’ 위안대의 투자를 받았다고 모호하게 표현한다.
언론사와 공모해 뿌리는 ‘~카더라’ 식의 기사도 좋은 예이다. 자금을 보탠 투자기관들도 ‘투자액 부풀리기’가 자신들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모르는 척 눈감는다. 파헤치는 사람이 없으니, 진상이 폭로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올해 초 중국 벤처투자계의 거두인 쉬샤오핑(徐小平),왕란(王冉) 등은 ‘알면서도 서로 눈 감아주는 관행’이 문제라고 공개적으로 지적하기도 했다.
사업실적도 종종 부풀려진다. 2009년 개시된 선전의 창업기업 주식시장(창업판 创业板)의 신뢰도는 중국 내부에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첫 조작사례로 알려진 ‘완푸성커(万福生科)’는 주식상장 이전 매출과 이익을 날조하여 4.3억 위안을 투자 받았다. 투자가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끼쳤지만, 벌금 850만위안, 책임자 징역 3년 6개월이 고작이었다. 처벌이 미지근하자, 더욱 많은 사이비 창업자들이 유혹을 느끼고 있다. 올 들어 중국 증시가 고공 행진하면서, 창업판 주식가치 역시 1분기에 58.7% 폭등하여 세계 최고를 기록했다. 주가수익비율(PER)은 4월에 이미 100배를 넘어서 1990년대말 미국의 닷컴버블 당시보다 심각하다. 이 버블의 일정 부분은 투자자들의 맹목적 투자열기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기업 실적 과대평가 및 조작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증권감독관리위원회가 2012년 말 상장신청 기업 대상으로 재무 심사를 시작하자, 226개의 신청기업 중 134개가 취소해버렸다. 신고한 실적이 거짓이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2012년 12월부터 2014년 1월까지 창업판 기업의 IPO가 전면 중단되었다.
위에서 열거한 유형 외에도 가짜 상품, 가짜 광고, 가짜 증서, 가짜 학력 등 각종 ‘가짜’들이 무궁무진하다. 이러한 창업사기를 근절하지 못한다면 전체 창업 환경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며, 건강한 창업 생태계는 요원할 것이다.
파산 후 재창업 : 한 번 실패는 영원한 실패
창업의 성공율은 매우 낮을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실패한 창업자가 한 번의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재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건강한 창업 생태계라면, 창업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동시에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기업 퇴출 시스템이 정립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창업 실패자들이 빠르게 경영자원을 추슬러 다음 창업을 준비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중국의 법적 사회적 환경은 파산한 창업자들이 재도전할 발판을 마련하기 어려운 구조다.
최고인민법원이 2003년부터 2012년까지 처리한 파산 사건은 불과 40,483건이며, 그 중 민영기업은 19%에 불과하다. 실패한 창업가가 그렇게 적었던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파산 제도가 발달한 미국을 보면, 기업 파산 수리 건수가 매년 7만 건에 달한다. 기업 숫자가 더 많은 중국에서 그 보다 많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정법대학교 파산법 및 기업 구조조정 연구센터 리수광(李曙光) 주임도 매년 사법절차를 신청하는 파산 기업이 실제 시장 퇴출 기업의 0.3%에도 못 미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또 영업허가가 취소된 기업 중 90%가 채무를 청산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2007년 7월 1일 발효된 <파산법>은 기업 파산 신청 절차와 비용에 대해 비교적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법원에 파산 신청을 하지 않고, ‘야반도주’하는 길을 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번거로운 절차와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다.
파산 신청을 하기 위해서는 변호사와 중개기관을 선임하고, 이들을 통해 채권 분배 등 각종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파산 관리인 제도는 기업의 청산을 돕기 위한 제도이나, 오히려 기업의 파산비용을 높이고, 재산 관리와 분쟁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든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파산법> 외 중소기업의 퇴출에 대해 명확하게 규정한 국가 규정이 없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중국 기업이 파산 절차에 소요하는 시간은 미국과 비슷하다. 중국은 1.7년, 미국은 1.5년이다. 그러나 미국의 파산 비용은 기업 자산의 8.2%인데 비해 중국은 22%나 된다. 더구나 중국 법원의 청산 결과는 대부분 지속적 경영이 아닌 자산의 매각이다. 그렇다 보니 창업 실패자들이 몸을 털고 일어나 재도전하기가 쉽지 않다. 현 파산법은 경제적 자원을 낭비하게 만드는 동시에 창업자들의 열정과 에너지도 갉아 먹고 있다.
3. 중국식 창업과 혁신, 과거와 다른 출발
여러모로 미성숙한 창업 생태계를 고려할 때, ‘대중창업 만인혁신’이 당장 중국경제의 효율을 높이는 엔진으로 힘을 발휘하기는 힘든 측면이 있다. 그러나 멀지 않은 장래에 창업 및 혁신 붐이 중국 경제의 체질을 바꿀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도 높다.
무엇보다도 정부가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리 총리가 ‘대중창업, 만인혁신’을 제기한 이후 국무원 각 부서에서 창업환경 개선을 위한 정책과 조치를 끊임없이 내놓는 등 최고의 우선순위로 올라있다.
창업기업의 돈 가뭄을 해결하기 위해 각급 정부는 이미 여러 가지로 손을 쓰고 있다. 증감위는 작년 12월부터 <사모주식 및 크라우드펀딩 관리법> 초안을 출시하여 창업 초기 기업들의 자금 확보를 돕고 있다. 국무원도 지난 1월 400억 위안의 신흥산업 창업투자기금을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대중창업, 만인혁신’을 위한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하겠다는 의도다. 2009년 설립된 ‘신흥산업, 창투계획’과 다른 점은, 정부가 자금을 배정하는 형태가 아니라 시장화 방식을 통해 실력 있는 기업, 대형 금융기관 및 해외 자본을 끌어들여 공동으로 전문적인 투자지원 제도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기금신청 과정의 각종 장애를 제거하고, 관련 공무원들의 사적이익 추구행위도 근절할 계획이다.
400억 위안이란 규모는 크지 않지만(국가 집적회로 산업 전문 기금은 약 1,200억위안 규모) 정부가 처음으로 민간자본에게 수익을 양보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정부기관이 수익을 얻으려 노력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보다 공정하게, 그리고 창업자의 입장에 서서 서비스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 기대된다. 재정부도 5월 초 <소규모 창업기업 혁신도시 시범사업>을 출시하여 앞으로 3년 내에 중소기업 창업을 지원할 수 있도록 15억 위안을 지원할 계획이다.
3월 정부공작보고가 발표되고 일주일 후, 국무원에서도 <대중적 창업공간을 통한 대중창업 만인혁신 지도의견>을 출시했다. 국가 자주혁신 시범구, 국가 첨단기술산업 개발구와 과학기술기업, 대학 과학기술원, 그리고 대학교 등을 활용하여 저비용으로 창업공간을 만들어 더 많은 창업자들을 모아 혁신적인 소형 기업을 육성하겠다는 계획이다. 또한 창업공간에서는 무료로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장려하고 있다. 이러한 조치들은 기존의 연구개발자원을 활용하여 창업자들의 비용 부담을 줄여줄 것이다.
급기야 국무원은 이달 13일 대학교 학생들의 창업 관련 활동도 학점으로 인정하도록 각 대학들에 요구하고 나섰다. 바야흐로 전 국민들의 창업열기에 불을 붙이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기업 관리감독 방식에 있어서도 조금씩 변화의 조짐이 나타난다. 4월 말 국무원은 <국무원 행정심사 중개 서비스 정리에 대한 통지>를 통해 각 부문 산하의 중개서비스 기관을 정리하고 규범화하도록 했다. 특히 발개위 등 3개 부처에서 중개서비스의 비용 기준을 정하도록 해 창업기업의 ‘공공의 적’이 된 ‘훙딩중제’를 정돈하려는 포석이다. 한달 뒤인 5월 6일 국무원 상무회의는 ‘비(非)행정허가심사’에 대해서도 칼을 빼 들었는데, 일부 행정관리 과정에서 경계가 모호한 부분을 없애 공무원들의 자의적인 법 집행을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조치들로 인해 기업이 정부로부터 받는 어려움들도 일정 부분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변화와 더불어 중국의 기술력이 날로 높아져 창업의 기술적 토양이 비옥해지는 것도 눈여겨봐야 한다. 지난해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 특허 신청 중 중국의 비중은 12%였는데, 10년 전에는 2% 미만이었다. 특히 데이터통신, 전산기술, IT관리, 반도체 분야에서 중국의 기술력은 갈수록 성장하고 있다(<그림 4> 참조). 중국 기업들이 확보한 특허는 창업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화웨이는 2011년 5월부터 ‘특허 거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누구라도 2만위안만 지불하면 화웨이의 특허를 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더 나아가 화웨이는 올해 3월에 심천에 ‘eLTE’란 창업공간도 열어, 창업자들을 지원하고 있다. 창업자들을 위한 IT 플랫폼을 구축하여 제공하는 한편, 창업자들의 좋은 아이디어를 받아 들여 제품 개발까지도 같이 할 계획이다.
중국 기업가들과 청년 세대에서 어느 때보다 강렬한 도전주의가 팽배해진 점도 주목해야 한다. 알리바바 샤오미나 화웨이처럼 민영기업으로 시작해 엄청난 대기업으로 큰 성공담이 중국 사회에 회자되면서, ‘간단한 혁신 아이디어로 단번에 대기업을 일굴 수 있는’ 중국시장만의 강점이 각별히 부각되고 있다. 중국 소비자들의 1%의 관심만 끌 수 있다면, ‘제 2, 제3의 마윈’이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이 수많은 창업공간을 만들고 있다.
창업환경, 특히 법적 환경의 개선은 하루 아침에 이뤄질 수 없다.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 역시 중앙정부에서 지방정부까지 제대로 전달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다만 현재까지 중국정부가 ‘대중창업, 만인혁신’을 추진하는 과정은 상당히 실속 있어 보인다. 목표도 명확하다. 400억 위안 산업기금, 창업공간의 발전 촉진, 창업 혁신 시범도시 등 다양한 정책은 제각각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력 제고가 필요한 첨단 과학기술 등 신흥산업을 지원하겠다는 목표를 향해 정렬되어 있으며, ‘중국제조 2025 규획’과도 적절히 결합되어 있다. 기금 지원 역시 신중한 태도로 1위안도 낭비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미 국제적 대기업 반열에 오른 민영기업들도 힘을 보태고 있다. 알리바바, 레노버, 하이얼 등 대기업들도 혁신 창업 플랫폼을 만들어 창업 생태계를 조성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스스로의 장기생존을 위한 미래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중국은 거대한 내수시장에서 수많은 기업들이 경쟁하는 복마전 같은 곳이다. 혜성처럼 나타난 유망기업이 몇 년 새 사라지기도 하는, 전쟁터와 같다. 이 같은 역동성은 거대기업에 취업하려는 취준생 조류와 함께 정반대의 ‘나도 할 수 있다’란 기업가 정신도 만들어냈다. 때마침 경제성장이 둔화되면서 80후, 90후 등 젊은 세대의 취업난이 맞물리면서 전대미문의 창업 붐이 만들어지고 있다.
정부의 창업 혁신 관련 정책이 잘 다듬어지긴 했지만, 기업활동을 억눌렀던 수 많은 난관은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특징과도 연관돼 있어 쉽게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신생 창업기업 중에는 다른 모든 도전자들의 실패를 보상하고 남을 만한 훌륭한 혁신을 성공시킨 사례도 나올 것이 분명하다. 이런 혁신이 쌓이고 쌓이면서, 중국시장과 중국산업의 경쟁력은 한 단계 더 도약할 것으로 보인다. <끝>
'■ 경제보고서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도시장, 투자와 교역의 동반 확대 필요하다 (0) | 2015.06.01 |
---|---|
◎태양광 시대의 여명이 밝아오고 있다 (0) | 2015.05.28 |
◎웨어러블 시장 커질수록 생체인증 뜬다 (0) | 2015.05.26 |
◎우리나라 장기침체 리스크 커지고 있다 (0) | 2015.05.21 |
◎경기 부진하고 자금 안 돌아도 중국발 양적완화는 없다 (0) | 2015.05.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