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 "‘취향과 체험’, 전염성 있는 브랜드 만든다"
소셜미디어가 부상하면서 과거의 브랜딩 방식으로는 소비자의 마음을 얻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환경이 되고 있는 가운데, 취향을 추구하는 소비자들로부터 인상적인 소비체험을 이끌어내고 있는 ‘작은 브랜드’들이 부상하고 있다. 소비자들의 적극적인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는 ‘전염성 있는 브랜드’들의 속성을 살펴본다.
블루보틀 커피의 일본 상륙
2015년 2월 도쿄에 아시아 1호점을 낸 블루보틀 커피숍 앞에는 커피를 마시려는 사람들이 매일 길게 줄을 서 있다. 들어가려면 2시간 이상 기다려야 할 때가 많고 주문을 하는데 성공하더라도 방문자들이 커피를 실제 마시기까지에는 또 30~40분의 시간이 걸린다. 블루보틀 커피에서는 주문을 받고 나면 볶은 지 48시간 이내의 신선한 원두 적정량을 전용 저울로 재는 것부터 시작하여 원두를 갈고, 이를 특유의 슬로우 드립 방식으로 내리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무엇이 소비자들로 하여금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무려 2시간 이상을 기꺼이 소비하도록 만드는 것일까?
‘커피 궁극의 맛’을 지향하는 블루보틀 커피는 커피 애호가인 제임스 프리먼이 2002년 샌프란시스코의 작은 가게로 시작하였다. 그는 개업 초기부터 손님이 커피를 주문하면 그때서야 커피콩을 저울에 달고 갈아서 한잔 씩 만드는 핸드 드립 방식을 고수하였는데, 가격마저도 스타벅스와 비슷한 수준으로 책정하여 샌프란시스코 지역의 커피 애호가들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받기 시작하였다. 지역 명물이 된 블루보틀 커피는 배우 자레드 레토, 록그룹 U2의 보노,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의 설립자 등을 단골로 두게 되었다.
수요가 커지게 되면 빠른 성장을 위한 프로세스 효율화와 프랜차이즈 확장을 염두에 둔 시스템화 등을 지향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나, 블루보틀 커피는 오히려 그 반대를 지향하였다. 블루보틀 커피는 뉴욕 등에 분점을 내면서도 소비자들이 개점 초기에 열광하였던 ‘장인 정신’을 체화한 프로세스를 그대로 유지하였고, 이를 통해 소비자들이 한 잔의 완벽한 커피를 위해 때로 2시간이 넘는 대기시간을 기꺼이 소비하는 ‘열광적인 지지’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하였다.
그렇지만 이러한 프로세스를 고집하면 사업의 규모를 키우고 수익성을 확대하는데 한계가 있지 않을까? 이미 커피에 대해 일가견이 있는 소비자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 낸 블루보틀 커피는 소매 사업보다 오히려 자사의 원두를 다른 커피숍에 공급하는 B2B 사업을 확대하여 수익성 확보에도 성공하였다. 커피숍에 쓰여있는 ‘저희는 블루보틀 커피에서 제공하는 원두를 씁니다’라는 문구가 소비자들이 커피숍을 고르는 기준이 된 것이다. 2012년에 구글 벤처스 등으로부터 2,000만 달러, 2014년에는 모건스탠리로부터 4,600만 달러, 2015년에는 피델리티 등으로부터 7,000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하는데 성공한 블루보틀 커피는 글로벌 확장의 일환으로 일본 도쿄에 1호점을 열었다. 홍보나 광고에 거의 돈을 들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블루보틀 커피의 명성을 알고 있는 태평양 건너 일본 소비자들조차 열광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기술 문외한이 만든 GoPro
GoPro는 2014년 기준 액션캠 세계 시장 점유율 57%를 확보하고 있는 액션캠 분야 독보적 1위 업체이다. 2014년에는 증시 상장에도 성공, 2015년 6월 기준 시가총액은 8조원을 상회한다.
닉 우드만에 의해 설립된 GoPro는 객관적으로 보면 내로라하는 전통적인 카메라 제조사들이 수십 년 동안 지배해 온 비디오 카메라 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성공할 수 있는 요소라곤 전혀 없었다. 하드웨어 제조 역량과 기술도 부족하고 브랜드 인지도도 없으며, 마케팅 비용도 부족했던 작은 회사가 어떻게 액션캠 시장 점유율 1위에 등극하게 되었을까?
시각디자인과 문예창작을 전공한 창업자 닉 우드만은 기술 분야의 문외한이었으나 서핑을 사랑하는 소위 ‘매니아’였다. 2002년 호주에 서핑 여행을 간 닉 우드만은 자신이 서핑하는 모습을 근접 촬영할 수 있는 아마추어 수준의 촬영 장비가 전무함을 깨닫고 스트랩에 연결하여 몸에 장착할 수 있는 카메라 시장의 가능성을 인지하였다. 2006년에 그가 시장에 내놓은 몸에 장착이 가능한 소형 카메라 ‘Digital Hero’는 동영상 촬영 가능 시간이 10초에 불과하였음에도 시간이 지나면서 서핑, 패러글라이딩 등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소수 커뮤니티의 열광적인 반응을 얻게 되었다. 커뮤니티의 회원들이 GoPro를 사용하여 촬영한 영상들을 유튜브 등에 올리고, 이 영상들이 다시 페이스북 등의 SNS를 통해 공유되면서 GoPro의 액션캠 판매량은 수 년에 걸쳐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였다. 2014년 기준 GoPro의 매출은 14억 달러, 영업이익은 1.9억 달러에 달한다.
급성장한 작은 브랜드들
기존 기업들에게 마케팅과 브랜딩은 점점 어려운 과제가 되어가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에 접속해서 제품이나 서비스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시대가 되면서 기업이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장점보다는 제품을 이미 사용해 본 경험이 있는 다른 소비자들의 추천·비추천에 기반하여 구매의사결정을 하는 시대가 도래하였기 때문이다. 스탠포드 대학의 이타마르 시몬슨 교수는 '절대가치'라는 저서에서 소비자들이 구매의사결정 시 브랜드 인지도, 과거의 특정 브랜드 사용 경험 등을 감안하던 습관에서 벗어나, 다양한 제품 리뷰, 다른 사람들의 사용기 등을 통해 제품 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한 '절대가치'를 기반으로 구매의사결정을 내린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이 수많은 경쟁 제품이나 서비스들 사이에서 절대가치, 즉 객관적인 품질 비교를 통해 소비자의 선택을 받는 업체들외에도 짧은 시간 내에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업체들의 사례 또한 증가하고 있다. 블루보틀 커피나 GoPro의 경우처럼 ‘작은 브랜드’로 시작하였으나 매니아의 취향에 ‘정조준’한 제품 속성에 사용 경험, 매장 방문 등 소비자 체험이 결합되는 과정을 통해 형성된 소비자들의 적극적인 호응을 바탕으로 성장한 사례들이다. 이외에도 Beats Audio, Intelligentsia, Eataly, Lush 등 음식 카테고리, 헤드폰이나 자전거 등의 문화·여가활동 분야에서 이런 브랜드들이 많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커피 리브레, 테라로사 등의 국내 커피 전문점들은 커피 매니아들 사이에서 확보한 주류 커피 브랜드 못지 않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매장을 늘려가고 있으며, 한 지방 도시의 제빵점인 성심당이 서울 한 백화점에 입점하자 빵을 사기 위해 소비자들이 긴 줄을 서는 광경이 연출되기도 하였다. 또한 브롬턴이라는 영국 브랜드의 자전거는 수백만 원의 가격에도 불구하고 날개 돋친 듯 판매되고 있다.
취향과 경험, 브랜딩의 환경을 바꾸다
개인의 취향을 보여주는 제품에 대한 소비는 꾸준히 존재해 왔다. ‘취향 소비의 본질은 과시와 모방이다’라는 미국의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의 주장까지는 아니더라도, 취향에 기반한 소비 이면에는 개인의 정서적 만족을 위한 부분에 더하여 자신을 사회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의 요소 또한 존재한다는 것이 무리한 주장은 아닐 것이다.
과거에는 자기 취향의 과시가 ‘고가 브랜드 소비’라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즉, 고가의 럭셔리나 프리미엄 브랜드 제품을 소유함으로써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높은 지위에 있음을 보여주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카테고리를 지향하는 브랜드들은 특정 지위를 상징하는 생활 패턴을 제품과 연관지어 지속적으로 소비자들에게 보여주는 방식으로 광고와 홍보를 진행하여 고객들의 머리 속에 ‘프리미엄 이미지’를 각인시키려 노력하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제품의 가격이 브랜드의 희소성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가격보다는 우월한 정보력과 취향을 상징하는 ‘덜 알려진’ 매니아 제품에 대한 선호가 사회적 소비의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지난 수년 간 브랜딩 환경의 근본적인 변화 과정에서 발생하였다. TV, 신문, 라디오, 잡지로 대표되는 전통적 미디어의 소비가 극적으로 감소한 반면 블로그, 소셜미디어 등으로 대표되는 쌍방향 미디어의 소비가 크게 늘어나게 되자 일부 취향 선도자들이 열광하는 검증된 ‘작은 브랜드’들의 미디어 노출이 과거에 비해 용이해졌다. 취향선도자들이 진심을 담아 추천하는 ‘작은 브랜드’들은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차별화를 원하는 일반 소비자들의 ‘사회적 소비’ 니즈에 부합한다. 취향 선도자들이 자발적으로 추천하는 제품이기에 믿을 수 있고, 상대적으로 ‘희소한 정보와 경험’을 지인들에게 사진과 동영상의 형태로 공유하여 관심과 부러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서는 사회적 소비로서의 동기부여가 높은 것이다.
전염성을 지닌 제품의 속성
이러한 취향 기반 제품의 속성은 ‘Viral Product’ 의 속성과도 부합한다. 'Viral Product'라는 용어는 ‘전염성을 지닌 제품’으로 해석이 가능하며, 입소문이나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쉽게 확산되어 다른 사람들의 구매욕구를 자극하는 특징을 지닌다. 뉴욕대의 시난 아랄 교수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기고문에서 ‘Viral Product’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면서, 제품 자체에 소셜미디어에 친화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으면 제품 확산의 효과가 높다고 주장하였다.
와튼 스쿨의 조나 버거 교수는 전염성을 지닌 제품의 특성을 정의하였는데, 그 중 눈에 띄는 항목은 ‘Social Currency’, 즉 사회적 화폐라는 요소와 ‘Emotional Impact’, 즉 감정적 동요를 일으킬 수 있는 요소이다. 사회적 화폐의 개념은 소비자들이 자신이 특별하다고 여기거나 다른 사람에 비해 유행을 앞서간다고 생각되는 요소를 갖춘 제품에 대한 구매 의사가 높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으며 감정적 동요는 제품이 소비자에게 특정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경우, 소비자들은 해당 제품을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알린다는 의미로 해석 가능하다.
버거 교수는 또한 ‘Visibility’, 즉 시인성과 스토리를 전염성의 특성으로 꼽았다. 시인성은 해당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이 쉽게 인지할 수 있는 속성이며, 스토리는 해당 제품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할 때 쉽게 타인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일화 등을 지칭한다.
위의 요인들을 종합하면, 전염성이 강한 제품은 첫째, 소비자들이 제품을 사용함에 있어 정서적, 감정적인 만족을 느낄 수 있는 속성과 둘째, 제품의 사용 여부를 다른 소비자들이 쉽게 인지할 수 있거나 제품이나 브랜드 정보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여 관심을 끌기 쉽다는 속성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체험이 수반되는 취향 기반 소비로서 앞에서 언급한 블루보틀 커피의 사례는 이러한 ‘전염성을 지닌 제품’ 속성에 부합한다. 소비자들은 커피를 마시는 동안 자신이 사랑하는 커피라는 취향을 즐기는 동시에, 커피를 마시기 위해 두 시간이나 줄을 서는 특별한 체험을 다른 사람들에게 스토리로, 사진으로 전달하면서 소셜미디어 상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세우고, 지인들의 관심을 얻는 데 성공하게 되는 것이다.
작은 것이 아름다운 세상의 도래
영국의 경제학자 E. F. 슈마허는 1973년에 출간된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그의 저서에서 아름다움이나 건강, 깨끗함과 같은 비경제적인 가치들조차 경제적인 것으로 입증되는 경우에만 살아남을 수 있는 산업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그의 저서 제목대로, 소비자들에게 소비를 강요하는 방식으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얻는 시대는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들간의 연결이 촘촘해지면서 작아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자신의 취향을 제대로 읽어내고 이를 제품과 서비스에 세심하게 반영한 브랜드들에 열광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소비자들은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브랜드를 추천하는 에반젤리스트의 역할을 자발적으로 수행하여 브랜드의 성공을 돕는다. 작은 것도 충분히 아름다운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시대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현실화된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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