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 '낙관적 경제 전망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
경제성장률이 전망에 미치지 못하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2011년 이후 국내외 전망기관들의 다음해 성장 예상치는 실제성장률을 계속 상회했다. 국제기구들은 다음해 세계경제 성장률이 3%대 후반에 이르고 중기적으로 4%대까지 높아질 것으로 예상해왔지만 실제로는 3%대 초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나라 전망기관 역시 실제보다 낙관적인 예상치를 제시해 왔다. 2011~2014년 성장률 예상치는 평균 3.7%였으나 실제 성장률은 3.0%에 머물렀다. 성장률이 과대 전망되면서 물가상승률 역시 높게 예상되었다.
예상치 못한 경제충격이 전망의 오차를 확대시킨 측면이 있지만 이것만으로 모두 설명하기는 어렵다. 일본대지진이나 쟈스민 혁명, 국내적으로 세월호 사태나 메르스 확산은 예측이 거의 불가능했던 외부적 충격이었지만 세계경제 및 국내경제의 지속적인 저성장을 모두 설명할 만큼 부정적 효과가 크지는 않았다. 전망오차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이유는 국내외 경제의 구조적인 충격으로 성장활력 자체가 떨어졌는데 이를 경기순환상의 문제, 혹은 일시적인 외부충격에 따른 영향으로 생각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긍정적 전망은 기업과 가계 등 경제주체들의 심리를 호전시켜 수요위축의 악순환을 막는 효과가 있지만 전망의 오차가 지속될 경우 신뢰성이 떨어지면서 이에 기반한 경제정책의 효과가 줄어들 수 있다. 더욱 중요한 점은 경제에 대한 판단이 잘못될 경우 적절한 정책대응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낙관적 예상이 경제의 건전성을 떨어뜨린 사례로 일본의 장기침체 및 유로존 재정위기 등을 들 수 있다. 장기침체기 일본은 경기침체가 일시적인 수요위축 때문인 것으로 간주해 구조개혁을 미루고 단기부양에 치중한 바 있다. 2000년대 남유럽 국가들은 성장률, 재정수지 등을 낙관했는데 이는 국가부채 및 경상수지 확대로 이어졌다.
현재의 낮은 성장이 경기위축 국면에서의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한 단계 낮아진 균형 성장수준일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성장세를 높이기 위해서는 부양을 통해 성장을 끌어올리기보다 구조개혁과 체질 개선을 통해 경제의 실력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 목 차 >
1. 주요 기관 경제전망의 상향 편향
2. 낙관적 전망의 원인
3. 낙관적 전망의 경제적 영향
경제 부진이 지속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경제를 전망하는 기관이나 연구자들도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실제 경제성장률이 전망에 미치지 못하는 전망의 상향편의 현상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망기관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성장전망을 하향조정하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 되어 버렸다. 이는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다. 대부분의 주요 국가에서 예상에 못 미치는 성장이 이어지면서 세계경제 성장률 역시 높은 상향오차를 보여왔다. IMF, OECD 등 국제기구와 글로벌 투자은행, 우리나라 경제연구기관 등 대부분 국내외 전망기관들이 향후 경제를 낙관해온 것으로 나타난다.
1. 주요 기관 경제전망의 상향 편향
국제기구, 세계성장률 지속적으로 낙관
지난해 말에 발표했던 주요 국제기구(IMF, OECD, 세계은행)들의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 평균 전망치(PPP 기준)는 3.8%였다. 그러나 올해 상반기의 수정 전망에서는 예상 성장률이 평균 3.3%로 낮아졌으며 최근 전망에서는 3.0%까지 떨어졌다. 특히 OECD는 올해 성장률 예상치를 2.9%까지 낮춘 바 있다.
다음해 성장률을 낙관하는 흐름은 금융위기가 어느 정도 진정된 2011년 이후 계속되고 있다. 세계경제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2009년에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정도로 크게 위축되었다가 2010년 빠른 반등추세를 보였지만 이후에는 3%대 초반의 낮은 성장을 지속했다. 그러나 주요 국제기관들은 다음해에 세계경제가 3% 후반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계속해서 예상해왔다(<그림 1> 참조). 내년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 역시 최근 다소 하향조정 되었지만 여전히 평균 3.6%에 달한다.
이는 2000년대 중반의 고성장기에 실제 성장률이 예상치를 계속 상회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2003~2007년 기간 중 세계경제 성장률은 5.0%에 달했지만 전망치는 4.3%로 더 낮았다(<그림 2> 참조). 1990년대 3% 초반 수준으로 성장하던 세계경제가 높은 성장을 지속하는 것이 정상적이지 않으며 다시 과거의 흐름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기대가 컸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반대로 세계경제가 다시 4% 성장 흐름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기대가 전망에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2년후 성장률에 대한 예측치는 1년후 예측치보다 항상 더 높게 형성되어 왔으며 4%를 넘어서는 것이 대부분이었다(<그림 3> 참조). 5년후 전망치까지 제시하는 IMF의 경우 최근 장기성장률 전망치를 다소 낮추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지만 여전히 중기적으로 세계경제가 4% 성장에 수렴할 것으로 보고 있다.
개도국 성장률을 더 낙관적으로 예상
세계경제 성장률은 각국성장률의 가중평균인만큼 개별 국가에 대한 낙관적 전망이 결국 전체 세계경기의 과대평가로 이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2011~2014년 기간 중 대부분 주요 국가들의 성장전망치가 실제보다 높았다(<그림 4> 참조). 미국의 경우는 2012년과 13년에 예상을 뛰어넘는 높은 성장을 기록하면서 상대적으로 전망오차가 크지 않았다. 그러나 유로존은 재정위기에 따른 2012년과 13년의 마이너스 성장시기에 이를 예상하지 못하면서 전망오차가 크게 확대되었다. 일본의 경우도 2011년 대지진과 지난해 소비세 인상 충격으로 마이너스 성장하면서 지난 4년간 예상치였던 1.6%에 크게 못 미치는 0.7% 성장에 머물렀다. 선진국 평균성장률에 대한 예상은 1.9%였으나 실제는 1.6%로 나타났다.
개도국의 경우 전망오차가 더 컸다(<그림 5> 참조). 개도국은 2011~14년에 5.8%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었으나 실제 성장률은 5.1%에 그쳤다. 브라질이 이 기간 중 1.6% 성장에 머물러 예상성장률 3.7%를 크게 하회했으며 러시아, 인도, 중국 등 거대개도국들도 기대에 못 미치는 성장에 머물렀다.
개도국의 성장이 더 과대평가 된 것은 평균성장률이나 변동성이 더 높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세계교역이 예상보다 크게 위축된 데 따른 측면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세계교역 증가율은 2000년대 금융위기 이전까지 연평균 7.1% 늘었지만 지난 4년간에는 3.7%로 크게 둔화되었다. 세계교역에 대한 전망의 오차는 1.9%p에 달해 성장률의 오차 0.4%p를 넘어섰다(<그림 6> 참조). 이에 따라 교역의존도가 높은 개도국의 성장을 과대평가하는 정도가 더 컸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도 성장률 상향오차 높아
우리나라 전망기관 역시 국내성장률을 실제보다 낙관적으로 예상했다. 주요 5개 전망기관의 성장률 전망치와 실제치를 비교해보면 2000년대에는 상향오차와 하향오차가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2011년 이후에는 성장률을 낙관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그림 7> 참조). 2011~2014년 우리나라 성장률 예상치는 평균 3.7%였으나 실제 성장률은 3.0%에 머물렀다. 지난해 말에 이루어진 올해 경제성장률에 대한 예상 역시 3.6%에 달했는데 3분기 성장률까지 발표한 현 시점에서 올해 성장률은 2%대 후반에 머물 가능성이 커 보인다. 국제기구나 투자은행 등 해외에서도 우리 경제성장률을 낙관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수요부문별로 보면 설비투자의 상향오차가 크게 나타났으며 소비와 건설투자 등 모든 수요부문에서 실제성장률이 예상에 미치지 못했다(<표 1> 참조). 통관수출 역시 실제증가율(5.5%)이 예상증가율(8.1%)을 하회했다. 성장률이 과대 전망되면서 물가상승률 역시 높게 예상되었다. 2011~2014년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은 2.8%였으나 실제 물가상승률은 2.2%에 머물렀다. 반면 경상수지 전망은 과소평가되었다. 지난 4년간 경상수지 전망은 280억달러 흑자였지만 실제는 600억달러에 달했다. 올해 경상수지 전망도 820억달러이지만 9월까지 흑자가 이미 800억달러를 넘어서 연간 1,000억달러를 돌파할 가능성이 크다.
2. 낙관적 전망의 원인
인간본성의 낙관적 경향
성장률 전망이 실제보다 높게 나타나는 것에 대해 여러 측면에서 해석해볼 수 있다. 우선 인간의 본성 자체에 미래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생각해볼 수 있다. 행동 경제학자인 시카고대 탤러 교수에 따르면 인간은 미래 경제를 예측하는 데 있어서 낙관적인 경향을 가지고 있다. 시카고대 MBA 신입생들에게 입학 첫날 조사한 결과 전원이 자신이 클래스에서 중간 이상의 성과를 거둘 것으로 예상했다고 한다. 물론 각 지역에서 탁월한 학생들이 모인 집단이지만 절반은 중간 이하의 성적을 기록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학생들은 합리적인 판단을 하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 ‘Optimism Bias’의 저자인 탈리 샤롯은 연령, 인종, 사회경제적 지위를 막론하고 긍정적인 미래를 예측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더 많다고 주장한다. 자신의 직업적 성취에 대한 전망을 과대평가하고, 자신의 자녀는 비범한 재능을 타고날 것이라 기대하며 기대수명도 평균보다 더 높을 것으로 예상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낙관적 편향은 미래에 닥쳐올 수 있는 고통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고 또 낙관적인 믿음을 실현하려는 노력을 통해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는 주장이다.
그동안 지역 및 시기별로 경제전망의 편향성에 대해 연구들이 다수 있었는데 대부분 전망에 상향편향성이 존재한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 나타나는 성장전망의 상향오차는 과거보다 크고 지속기간도 긴 것으로 보인다. 1995년 이후 IMF의 세계경제 성장전망에서 3년 이상 연속으로 상향오차가 발생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실제 경제가 전망에 미치지 못하게 되면 오차를 줄이기 위해 다음해에는 전망치를 떨어뜨리는 것이 일반적인데 현재는 이러한 모습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예상치 못한 경제충격도 전망오류의 원인
예측하기 어려운 충격들이 계속 발생하는 경우에도 전망에 체계적인 상향오류가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근래 들어 글로벌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사건들이 많았다. 2010년말 쟈스민 혁명으로 표현되는 중동지역의 민주화 운동으로 유가가 급등하고 세계 금융시장 불안이 확산된 바 있으며 2011년초에는 일본 대지진 발생으로 경제규모 세계 3위국인 일본이 마이너스 성장하고 세계적으로 부품 및 소재 공급이 차질을 빚으면서 생산체인을 교란시킨 바 있다. 또한 2011년 중반부터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 등 남유럽 국가의 재정위기 우려가 불거지고 이후 스페인, 이탈리아까지 확대되면서 2012년까지 유럽 및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을 확대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2013년에는 미국의 출구전략이 가시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신흥국 금융시장에 충격을 주었으며 이후에도 미국의 재정절벽 우려, 일본의 소비세 인상, 중국의 성장저하 추세 본격화, 글로벌 디플레 리스크 등이 세계경제가 과거의 궤도로 돌아가는 것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었다.
예기치 못한 충격이 성장세를 기대 이하로 떨어뜨렸다는 해석은 전망오류의 일정 부분을 설명할 수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선진국 중 최근 전망오차가 크게 나타났던 일본과 유럽의 경우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한 시기를 제외하면 전망치와 실제치의 차이가 작다. IMF는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한 기간을 제외할 경우 상향오차는 상당부분 사라진다고 밝힌 바 있다. 침체를 예측하지 못하는 것이 주된 오류라는 것이다.
세계경제의 충격이 수출부진으로 이어지면서 우리나라 역시 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더욱이 세계경제의 리스크는 국내 경제주체들의 불안심리 확산으로 이어지면서 기업의 투자와 가계의 소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우리나라 내부적으로는 세월호 사태와 메르스 발생 등이 외부충격으로 작용했다. 세월호 사태로 사회전체적으로 소비를 자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지난해 2분기 민간소비가 마이너스 성장한 바 있다. 올해 메르스 발생은 저유가로 호전되던 소비흐름을 꺾으면서 역시 2분기 소비침체를 가져왔다.
그러나 기대에 못 미치는 전망이 5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다는 점에서 이를 모두 예상하기 어려운 충격의 결과라고 보기는 어렵다. 일본대지진이나 쟈스민 혁명, 국내적으로 세월호 사태나 메르스 확산은 예측이 거의 불가능했던 충격이었지만 그것만으로 세계경제 및 국내경제의 지속적인 저성장을 모두 설명할 만큼 부정적 효과가 크지는 않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일반적으로 재난 등 외부적 충격의 영향은 지속성이 높지 않으며 충격이 사라지는 과정에서 미루어두었던 수요가 재개되는 반등효과도 존재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세월호 사태나 메르스 확산이 경제에 미친 부정적 영향은 연간 0.1%~0.2%p 내외였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어 0.7%p 내외에 달하는 지난해와 올해 전망오차를 모두 설명하지 못한다. 유럽 재정위기 파급이나 출구전략, 중국의 성장 둔화 등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던 경제의 내적 메커니즘에 따른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경제의 구조적인 변화를 과소평가
전망오차가 지속적으로 발생한 보다 중요한 이유는 전망기관들이 국내외 경제의 근본적인 변화를 과소평가하여 기존의 흐름이 계속 유지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심리학적으로 사람들은 지금까지 지속된 현상들이 패턴을 가지며 이러한 현상이 미래에도 지속될 것이라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하버드대 서머스 교수는 경제전망의 두 가지 일반적인 오류는 과거의 현상을 무리하게 미래로 연결시키는 것, 그리고 이러한 연속성에 대해 과도하게 주관적인 확신을 가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과거 각국의 지표를 분석한 결과 실제 경제성장의 지속성은 그렇게 높지 않았으며 특히 개도국의 경우 중기 성장잠재력의 변화가 심하게 나타났다. 그는 특히 중국과 인도의 고성장 과정에서 세계경제에 대한 과도한 낙관론이 형성되었으며 이것이 성장전망을 낮추지 못하는 원인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세계경제는 3% 초반 성장에서 고착되어 움직이지 않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각국 정부들이 양적 완화 등 대규모 통화확장과 재정부양 등을 통해 성장활력을 끌어올리려고 노력했지만 정책의 효과는 과거에 나타났던 것만큼 크지 않았다. 세계경제가 이처럼 오랜 기간 낮은 성장에 머물러 있는 것은 성장능력 자체가 떨어졌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세계경제의 성장활력 저하에 대해 여러 가지 이론들이 제시되고 있다. 선진국 경제의 장기침체(secular stagnation) 가능성을 제기하는 서머스 교수는 IT 혁신으로 자본재 등 물적 투자의 필요성이 줄어드는데 고령화로 저축의 필요성은 늘어나면서 실질금리가 낮아지고 이에 따라 통화정책의 효과가 떨어진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현재 상황이 경제주체들이 부채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수요위축의 악순환이 발생하는 대차대조표 불황이라고 보기도 한다. 금융위기 과정에서 노동시장에서 탈락한 근로자들의 영구적인 노동력 손실 등으로 잠재성장률 경로가 바뀌었다는 주장도 제시된다.
2000년대 고성장은 잘 알려졌다시피 선진국의 수요가 부채를 통해 과도하게 늘어났고 이를 중국 등 개도국이 공급하는 과정에서 세계적으로 생산활동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던 제조업의 노동인력이 교역의 형태를 통해 본격적으로 글로벌 생산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생산성이 크게 높아지고 자본투자도 확대되면서 고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금융위기를 계기로 이와 같은 글로벌 불균형이 지속되기 어려워졌다. 결국 세계교역이 둔화되면서 제조업 성장이 멈추고 이에 따라 세계경제는 과거와 같은 높은 생산성 증대와 자본투자 확대를 기록할 수 없게 된 것으로 판단된다.
세계경제의 성장 저하현상이 구조적이고 장기적이라면 우리나라 역시 잠재적인 성장능력이 한 단계 낮아졌을 가능성이 크다. 최근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을 추정해보면 생산성과 자본 부문의 성장기여도 저하현상이 뚜렷하다. 수출부진 장기화로 제조업 부문의 성장성이 떨어진 것이 주된 원인이다. 현재의 낮은 생산성 증가세가 개선되지 못한다면 향후 5년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2%대 중반에 머물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의 국내외 경제의 낮은 성장세는 곧 회복될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새로운 중기균형일 수 있는 것이다.
3. 낙관적 전망의 경제적 영향
긍정적 전망은 경제심리 호전 효과
의도적으로 성장전망을 높게 가져가는 측면도 있을 수 있다. 이는 전망의 자기실현적인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틸먼에 따르면 긍정적인 전망을 하는 사람들은 예측한 결과를 이루기 위해 더 노력을 많이 하기 때문에 전망이 실현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스포츠 경기의 선수나 감독들이 좋은 성과를 장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예상했던 결과를 이루기 위해 더 노력할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국가의 입장에서도 긍정적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1960~70년대 수출주도형 성장을 시작한 우리나라는 당시로서는 달성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었던 높은 수출전망을 제시했고 결국 이를 달성한 경험이 있다. 또한 현재와 같이 수요가 위축되어 있는 상황에서 미래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경제주체들의 심리를 위축시켜 경제를 더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정부의 성장률 전망이 다른 연구기관 전망에 비해 높은 것은 이러한 점을 고려하기 때문일 것이다.
장기정책 방향 잘못될 우려
그러나 이와 같은 심리적 효과에도 불구하고 전망이 지속적으로 실제치를 상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전망이 계속 틀리게 될 경우 전망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면서 이에 기반한 경제정책의 효과도 줄어들 수 있다. 경제가 좋아질 것이라고 예상해도 소비자들이 이를 믿지 않게 되면 소비심리가 살아나기 어려울 것이다.
더욱 중요한 점은 경제에 대한 판단이 잘못될 경우 적절한 정책대응에 나서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기부진이 일시적인 것인지 아니면 장기적인 현상인지에 따라 정책 대응방향도 달라진다. 일시적인 부진일 경우 수요부양을 통해 정상적인 경로로 돌아가도록 하는 정책이 필요하겠지만 성장잠재력 저하에 따른 구조적인 현상이라면 부양을 통한 효과는 지속되기 어려우며 오히려 장기적인 경제의 건전성을 악화시킬 수 있다. 특히 재정이나 연금 등 장기전망에 크게 영향 받는 부문의 건전성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 정부의 낙관적 예상이 경제위기 등 심각한 결과로 이어진 사례로 일본의 장기침체 및 유로존 재정위기 등을 들 수 있다.
① 일본의 장기침체
1990년대 초반 부동산거품의 붕괴를 계기로 일본경제는 20년간의 장기침체에 들어섰지만 일본 정부는 경제의 어려움이 이처럼 오래 지속될 것이라는 점을 오랜 기간 동안 예상하지 못했다. 일본의 경제기획청이 매년 말 발표하는 성장률 전망을 보면 대부분 다음해의 경기가 더 호전된다는 예측을 하고 있다. 스탠포드대 호시 교수에 따르면 1990년대 이후 일본은 고이즈미 정부의 개혁시기를 제외하고는 줄곧 실제 성장률보다 1%p 이상 높은 전망치를 제시했으며 이는 같은 시기 다른 나라 정부들의 전망치보다 더 낙관적이었다(<그림 8> 참조).
일본은 은행부실이나 디플레이션 등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었으나 경기회복으로 이러한 문제들이 호전될 것으로 기대하면서 근본적인 대책에 소홀했다. 예를 들어 은행부실이 한참이던 1999년초 미스터엔으로 불리우던 사카키바라 차관은 일본은행의 문제가 수주 안에 끝날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일본은행은 디플레가 잠시 멈춘 2000년 8월 금리를 인상하면서 향후 일본경제는 기업투자 확대로 뚜렷한 회복세를 보일 것이고 이에 따라 가격하락 압력이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는데 이후 일본은 다시 디플레이션 상황에 돌입하게 된다.
침체기간중 일본은 잠재성장률을 높게 추정했는데 이에 따라 당시의 낮은 성장률은 일시적인 수요 위축 때문인 것으로 간주되어 구조조정을 미루고 단기부양책을 지속하는 근거가 되었다. 구조적인 문제를 경기순환적인 현상으로 잘못 판단하면서 정책의 실패가 발생한 것이다. 대부분 정부 지출이 단기적 성과가 높게 나타나는 교통, 철도, 우편, 농림어업 등 일부 공공근로 프로젝트에 집중되면서 투자의 효율성이 떨어졌고 국가부채가 급증하면서 일본의 고질적인 문제점이 되었다.
② 남유럽 재정위기
유로존 재정위기에도 잘못된 전망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제시된다. 하버드대 프랑켈 교수에 따르면 성장에 대한 과도한 낙관이 유로존 재정계획 실패의 원인이 되었다. 유로존 국가들은 성장률 및 재정수지 전망을 높게 가져감으로써 재정적자를 GDP의 3% 이내로 유지하도록 하는 ‘안정과 성장 협약(SGP)’을 지키지 못하는 핑계로 사용하곤 했다. 유로존 24개국의 분석 결과 2000년대 성장률에 대한 1년후 전망은 평균 0.3%p의 상향오차를 기록했으며 2년후 전망은 0.9%, 3년후 전망의 경우 오차가 1.9%에 달해 장기전망일수록 낙관적이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성장률이 높게 예상되면서 조세수입과 재정수지도 낙관적으로 전망되었다. 프랑켈 교수 분석에 따르면 2000년대 재정수지 전망을 실제보다 가장 높게 보았던 국가는 그리스였는데 과대평가된 재정수지 규모가 GDP의 4%p를 넘어섰다(<그림 9> 참조). 아일랜드,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등 남유럽국가들이 대부분 성장과 재정수지를 낙관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결국 과도한 재정지출과 국가부채 확대로 이어졌다.
경제전망에 대한 낙관이 남유럽 국가의 경상수지 적자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제시된다. 2002~2007년의 고성장기간 중 성장률 전망을 낙관적으로 한 국가일수록 경상수지 적자가 크게 악화되었다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긍정적 전망으로 자본유입이 늘면서 부동산 경기가 활성화되었고 저축이 줄어들었다. 투자는 생산적인 자본보다는 부동산 등 건설부문에 집중되었다. 2000년대 고성장기의 위험선호 흐름과 경기조절의 실패가 이러한 현상을 가속시키면서 높은 투자율과 낮은 저축률로 인해 대외수지가 악화되었고 국가신뢰도 하락이 가속되었다.
③ 오일쇼크 이후 브라질
브라질은 고성장이 지속될 것이라는 기대로 과도한 단기부양책을 사용하다가 경제위기 상황에 직면한 경우이다. 1960년대 후반 세계교역의 빠른 증가와 안정된 환율, 교역조건 개선으로 수출이 크게 늘어나고 통화확장정책에 따른 신용증가가 소비호황을 이끌면서 내구재 생산과 건설이 크게 늘어났다. 68~73년 기간중 브라질은 평균 11.5%의 고성장을 기록해 ‘브라질의 기적’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선진국 진입 기대에 차 있던 브라질은 1차 오일쇼크의 충격으로 경제여건이 악화되었지만 고성장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당시 브라질 정부는 오일쇼크를 일시적인 현상으로 판단해 외부환경이 곧 개선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군사정부의 강경파에서는 고성장이 경제의 정통성이 되면서 성장둔화를 용인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대부분 국가들이 오일쇼크시기 긴축 정책을 통해 물가를 진정시키려고 애쓴 반면 브라질은 10% 성장 목표 하에 각종 보조금을 지급하고 확대정책을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높은 인플레와 재정악화로 강한 긴축정책이 불가피해졌고 이는 1990년대 저성장과 인프라 부족을 초래한 것으로 평가된다.
전망의 오류가 지속되면서 최근 들어서는 전망치를 낮추는 경향이 점차 나타나고 있다. OECD는 내년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을 3.3%까지 낮추었으며 내후년에도 3.6% 성장에 그칠 것으로 보았다. 우리나라 역시 내년 성장률 전망이 평균 3% 내외로 과거에 비해 낮아졌다. 그러나 아직도 국내외 경제가 여러 제약요인이나 충격으로 인해 충분히 성장하지 못했으며 내년에는 이러한 여건들이 호전되면서 성장세가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는 여전히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경제흐름이 어떻게 될지는 시간이 지나야 알겠지만 현재의 낮은 성장이 경기위축 국면에서의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한 단계 낮아진 균형 수준일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2%대 성장 시대가 이미 시작되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강한 경기부양 의지를 보이는 가운데 세수기반 확대 등 재정균형에도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그러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장에 대한 부담이 이어질 경우 단기성장 목표에 치중하려는 유인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경기부진의 원인이 낮아진 성장잠재력 때문이라면 부양을 통해 성장을 끌어올리기보다는 구조개혁과 체질 개선을 통해 경제의 실력을 높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짐 콜린스는 그의 저서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에서 상황에 대한 낙관적 판단의 위험을 스톡데일 패러독스라는 말로 표현한 바 있다. 베트남전 포로수용소에서 장기간의 수감생활을 한 포로들 중 끝까지 견디지 못했던 사람들은 오히려 낙관주의자였다는 것이다. 곧 풀려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 희망을 계속 했던 사람들은 이러한 기대가 실현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자 좌절하여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에 우선되어야 할 것은 냉혹한 현실에 대한 직시와 인정이었다는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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