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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경제연구원 '내년까지 마이너스 탈피 쉽지않은 러시아 경제'


경기침체에 고물가까지 겹치면서 러시아에서는 소비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보다 더욱 빠르게 얼어붙고 있다. 서방의 경제 제재와 저유가가 지속되면서 최소 내년까지는 러시아가 마이너스 성장에서 벗어나기 힘들 전망이다. 단기적으로 극단적인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은 낮지만, 재정 악화가 성장 모멘텀을 더욱 약화시키면서 러시아 경제가 취약해질 리스크가 있다.


러시아 경제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상반기에 유가의 상승세 전환으로 러시아 경제가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가 형성되기도 했지만 유가가 다시 약세로 전환되면서 당초 예상했던 하반기 회복의 가능성이 낮아졌다. 최근에는 12월 미국 금리인상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1주일 동안 유가가 9% 넘게 하락했다.


러시아 경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6년만에 경기침체에 진입했다. 올해 1분기와 2분기, 3분기 모두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했다. 2013년에 유럽 경제 불안으로 자본이탈이 확대되면서 성장세가 뚜렷하게 둔화되기 시작한 러시아 경제가 2014년 이후에는 서방의 경제 제재와 유가 급락까지 맞이하면서 급속히 냉각되고 있다(<그림 1> 참조).


국내로 유입되는 해외직접투자의 42%(2012년 기준)를 유럽이 차지하고 있고 전체 수출의 60% 이상을 석유와 천연가스에 의존하는 러시아 경제로서는 유럽과 유가 상황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유럽 등 서방의 경제 제재와 유가 급락이라는 대외 악재는 러시아에서 자본을 빠져나가게 하고 수출을 위축시킨다. 2014년 러시아 민간부문의 자본유출 규모는 1,530억 달러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기록한 1,336억 달러를 훌쩍 뛰어넘었다. 2015년 상반기 러시아의 상품 수출액은 전년 대비 30%(달러 기준) 감소했다.


급격한 자본 이탈과 수출 감소로 인해 환율과 물가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이상으로 급등했다. 11월 첫째 주의 미국 달러화 대비 루블화 환율은 63.7, 10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5.6%로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2009년 연평균 환율 31.7, 물가상승률 11.7%) 보다 높다. 지난해 11월 러시아가 자유변동환율제를 채택하면서 환율 변동성이 더욱 높아졌고, 환율 급등으로 수입품 가격이 상승하는 가운데 러시아 당국이 유럽산 식료품에 대해 수입 금지 조치까지 취하면서 물가가 더욱 자극을 받고 있다.


소비 위축이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보다 더욱 심각


이러한 고물가 탓에 러시아의 소비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보다 더욱 심각하게 위축되고 있다. 물가는 급등했는데, 소득이 빠르게 줄어들면서 구매력이 크게 약화되고 향후 경제 개선에 대한 기대감도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질임금 역시 지난해 대비 10% 정도 감소하면서 2009년 당시보다 더욱 빠른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다. 이로 인해 2분기 러시아의 가계지출이 전년 대비 -8.7%, 9월 소매판매가 -10.4%를 기록하여 2009년의 위축 속도를 넘어섰다(<그림 2> 참조).


투자도 소비만큼 위축되고 있다. 경기침체 우려로 투자는 2분기에 7.4% 감소를 기록했다. 사실 러시아의 투자 감소는 자본이탈이 가속화된 2013년부터 시작됐다. 경기침체뿐만 아니라 물가 방어를 위한 러시아 중앙은행의 고금리 정책(11%)과 경제제재로 인한 해외 금융시장 접근 제한 등도 러시아 기업들의 투자 위축을 부추기고 있다.


다만 환율 상승과 경제 제재에 다소 긍정적인 영향을 받는 부문도 있다. 루블화를 기준으로 한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로 상반기에 17.7%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루블화 기준으로 러시아의 순수출(수출-수입)은 환율 급등과 내수 급랭에 따른 수입 위축에 영향을 받아 올해 상반기 동안 50%나 증가하며 성장률 하락폭을 줄이는 역할을 했다(<그림 3> 참조). 환율 상승은 에너지 기업들에게 유가 하락의 충격을 완화시켜주고 있고, 식료품 수입금지 조치는 러시아 내 농업과 식품 제조업 성장의 토대를 조성해 주고 있다. 러시아 제조업 전반이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반면, 농업의 실질 부가가치 창출액은 올해 2분기에 2.1%의 증가를, 식료품 제조업의 산업생산은 물량 기준으로 9월에 1.4% 증가했다.


서방의 경제제재와 저유가


1998년 모라토리엄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러시아 경제는 유가 상승을 발판으로 비교적 빠른 회복세를 보였다. 위기 이후 1999년과 2010년에 러시아 경제 성장률이 6.4%, 4.5%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러시아 경제가 과거와는 달리 빠르게 회복되기가 어려울 것이다.


먼저 우크라이나 사태로 촉발된 서방과의 마찰이 해소될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지난 2월에 휴전과 러시아의 군사지원 금지 등을 골자로 한 민스크 평화 협정이 체결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우크라이나에서 교전이 계속되고 있다. 미국과 EU는 러시아의 협정 이행이 완전히 확인되어야만 제재를 해제한다는 입장이며, 8월과 9월에 러시아 유전과 군수 관련 기업에 대해 미국이 제재를 추가한 바 있다. 러시아로서는 자원이 풍부하고 지정학적으로 중요도가 높은 우크라이나와 크림반도를 양보하기가 쉽지 않다. 경기침체를 겪고는 있지만 푸틴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그림 4> 참조). 러시아의 강경한 대외정책 기조가 쉽게 바뀔 것 같지는 않다.


러시아 경제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유가의 빠른 회복도 기대하기가 힘들다. 유가 급락에도 불구하고 세계경제의 저성장세가 계속되고 있고 중국의 성장이 둔화되면서 세계 석유 수요의 둔화세도 이어질 전망이다. 반면 석유 공급은 시장 점유율 사수를 위한 사우디아라비아 등 OPEC의 공급 확대 기조가 이어지는 가운데 미국 타이트 오일의 생산이 크게 위축되지도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최소 내년까지는 초과공급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원유 재고도 크게 늘어나 있기 때문에 유가가 현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기는 힘들 것이다.


서방과의 마찰과 저유가가 지속되고 고물가로 경기 부양을 위한 정부의 통화정책 여지도 줄어들어 러시아의 경제 회복이 상당기간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 5월초에 배럴 당 65달러(두바이유)로까지 상승하던 유가가 중국 성장 둔화 우려 등으로 인해 현재 40.4(11월 17일, 두바이유)달러로까지 하락했다. 유가 변동에 따른 러시아 실물 경제의 충격이 1분기 정도의 시차를 두고 나타나는 점을 감안하면, 러시아의 경기침체가 최소 연말까지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이후에는 유가가 현 수준에 머물면서 경제악화 정도가 점차 완화될 것이다. Global Insight는 러시아 경제가 이번 4분기에 성장률 -5.8%를 기록한 이후 침체 속도가 둔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그림 5> 참조). 러시아 중앙은행을 비롯해 국제통화기금(IMF) 등 주요 기관들은 러시아 경제가 올해와 내년에 각각 4%, 1% 내외의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루블화는 경기침체 지속으로 완만한 약세가 예상되고 있다.


외환보유고는 아직 여유


경기침체가 이어지면서 러시아가 모라토리엄과 같은 극단적인 경제위기에 빠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미국 금리인상과 이란 제재해제 등이 러시아 경제를 더욱 불안케 한다. 미국 금리인상은 산유국 등 개도국에서의 자금이탈을 유발하면서 러시아 경제에 추가적인 환율 상승을 발생시킬 수 있다. 이란의 석유수출 확대가 급물살을 탈 경우에는 유가가 하락하면서 러시아 경기침체의 골이 더욱 깊어질 것이다.


러시아는 1998년 모라토리엄을 경험한 이후 외환보유고를 늘리고 안정화 기금(reserve fund)을 마련해 왔다. 그러나 러시아 정부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환율 안정과 재정 적자 보전에 노력하면서 외환보유고와 안정화 기금이 빠르게 줄어들었다. 지난해 연초 5,105억 달러에 이르던 외환보유고가 올해 10월말에 3,692억 달러로 28% 감소했고, 지난해 8월 900억 달러에 이르던 안정화 기금은 최근 660억 달러로 줄어들었다(<그림 6> 참조). 10월에 인출된 안정화 기금이 48억 달러에 이르는데, 이 추세대로 안정화 기금이 빠져나간다면 내년 연말에 고갈될 것이다. 러시아 재무장관도 유가가 배럴 당 45달러에 머문다면 내년 연말에 기금이 소진될 것이라 밝힌 바 있다.


단기적으로 경상수지 흑자 지속에 외환보유고의 규모가 여전히 높아 금융위기 발생 가능성이 높지는 않아 보인다. 유가 급락에도 불구하고 산유량이 늘고 있고 수입이 크게 감소하면서 2분기 경상수지는 GDP 대비 5% 가까운 흑자를 기록했다. 외환보유고는 수입대금의 22개월치에 이르고 내년 6월까지 상환할 외채가 696억 달러로 채무지불이 어려운 수준은 아닌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정부 부채도 GDP의 13.4%(2014년말 기준)로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유가가 추가적으로 하락할 경우에는 외환보유고가 빠르게 줄어들면서 러시아 금융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질 우려가 있다. 또한 저유가가 지속되면서 안정화 기금이 바닥을 드러낸다면, 러시아 재정 약화에 대한 우려도 높아질 것이다. GDP 대비 재정적자 규모도 올해 1분기 1.99%에서 2분기에 2.91%로 커지고 있다. 경제 제재로 자금조달이 쉽지 않은 형편에 있는 러시아로서는 정부 지출 축소와 산업다각화 강화 등을 통해 재정 약화에 대응할 것이다. 영국 소재의 글로벌 경제연구소인 Oxford Analytica는 러시아 정부가 보건, 교육, 인프라 등에서 사업을 줄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018년 월드컵 예산이 축소되는 등 올해 러시아 정부지출이 10% 삭감된 바 있다. 재정 악화로 성장 활력이 더욱 낮아질 위험이 있다.


경제 회복에 난항 예상


저유가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러시아는 석유 수출에 더 의존해야 하는 입장이지만 세계 최대 원유수출국 중 하나인 러시아의 이런 상황은 저유가를 더 부추기는 한 요인이기도 하다. 아직 여유가 있는 외환보유고와 푸틴 대통령의 탄탄한 지지기반으로 볼 때 당분간 러시아의 대외정책과 서방의 제재조치의 변화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서방의 제재와 러시아의 외환 및 재정자금 사정의 악화에 따른 투자 부진은 러시아 경제의 장기 성장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IMF는 중기적으로도 러시아의 경제 성장률이 1.5% 정도에 그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미국 금리인상 등으로 인해 글로벌 금융시장에 불안이 촉발되면 지난해 하반기와 같이 환율과 물가가 급등하는 등 러시아 경제가 다시 출렁일 수 있다.


자원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러시아는 산업다각화와 극동지역 개발에 한층 박차를 가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환율절하로 높아진 기계 등 장비의 수입부담 극복을 비롯해 부패와 관료주의의 타파 등이 경제 체질개선의 관건이 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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