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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경제연구원 '중남미, 극단적 위기보다 회복 기반 약화가 더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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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주요 국가들이 정치 불안에 휩싸이면서 정부의 리더십 부재와 이에 따른 재정 악화로 각국 경제의 장기적 성장 잠재력마저 흔들리고 있다. 특히 지난 10년새 반짝 증가했던 중산층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빠르게 위축되고 있다는 점에서 중산층 시장에 초점을 맞춰왔던 기업들 입장에서는 기존 전략의 재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중남미 주요국, 정치 불안 속 경제 위기 상황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시비로 1년 가까이 국정 마비 상태인 브라질, 대통령 취임 3개월 만에 파나마 페이퍼 공개로 부패 스캔들에 휘말린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주요국의 정치 상황이 불안하다. 가뜩이나 세계경제 환경이 어두운 가운데 이처럼 정치적 불확실성까지 더해지면서 중남미 경제의 어려움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이 나라들의 문제점은 외환시장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미 3년 가까이 국제금융시장에서 탕자 취급을 받아온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에 이어 브라질과 콜롬비아도 위험 국가군에 한 발짝씩 다가서면서 각국의 통화가치는 2000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하락한 상황이다. 최근 원자재 가격 회복으로 다소 안정되기는 했으나 2000년은 물론이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보다도 절하 폭이 크다.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커짐에 따라 CDS (Credit Default Swap) 프리미엄 역시 높아지고 있다. 2년 전 200bp에도 못 미치던 브라질의 CDS 프리미엄은 지난 연말 한 때 500까지 치솟았고,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도 최근 5년 새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세계적인 양적 완화 기조 속에 사상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던 각국의 기준 금리도 지난 2년간 계속 높아져왔다.


이에 비해, 경제 환경이나 산업구조는 비슷하지만 정치적으로 안정된 멕시코와 페루의 경우, 경제 지표 면에서도 더 건실한 모습을 보여줬다. CDS 프리미엄이나 금리 상승 폭이 낮은 것은 물론이고, 경제성장 면에서도 다른 4개국과 사뭇 대조적인 성과를 만들어냈다. 올해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되는 베네수엘라, 브라질, 아르헨티나와 달리 오히려 작년보다 더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기대된다.


대내외 원인 복합적으로 작용


중남미 국가들이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은 세계경제 환경 변화라는 불가피한 변수와 각국 내부의 정치적 난맥상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먼저, 대외적으로는 미국경제가 상대적으로 빠른 회복세를 보인데 반해 중남미 자원 부국들의 주요 시장인 유럽의 회복이 늦어지고 중국 역시 성장률이 한 단계씩 계속 낮아지면서 국제 원자재 가격 하락과 수출 물량 감소 충격에 고스란히 노출됐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출구 전략 시작, 즉 금리 인상으로 달러화 가치가 두 자릿수 이상 절상되면서 대부분의 신흥국 통화는 외환시장에서 인기를 잃게 되었다.

 

다만, 2014년 평균 배럴당 97달러였던 국제유가가 1년 여 만에 20달러 대까지 떨어질 정도로 에너지 및 광물 자원 가격이 약세를 보이는 가운데, 농수산물 가격은 상대적으로 하락 폭이 적어 관련 상품의 수출 비중이 높은 멕시코, 페루 등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브라질 경제가 베네수엘라 등 다른 자원 수출국에 비해 그나마 충격을 덜 받은 것도 대두와 사탕수수 등 주요 농산물의 세계적 생산국인 탓이 크다.


내부적으로는 열악한 재정구조가 가장 큰 문제다. 그 대표적인 예로, 상당수 중남미 국가들이 정부 재정수입의 많은 부분을 원자재 수출에 의존한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경제 운용 면에서 사회주의적 색채를 강화해 온 베네수엘라와 아르헨티나는 물론이고 브라질과 멕시코 역시 국영석유회사로부터 들어오는 수익의 기여도가 절대적이다. 2000년대 초·중반처럼 자원가격이 고공행진을 계속할 때는 문제점이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면서 각국 정부의 재정수지 구조에 충격을 주기 시작했고, 경기 둔화로 실업연금 등 복지 지출 수요가 급증하면서 고유가 시기에 설계된 관대한 사회복지 지원 정책들은 그 뿌리부터 흔들리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금리가 올라 국채 원리금 상환 부담이 늘어나자 일부 연금과 공무원 임금마저 지불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그 여파로 각국의 내수시장까지 빠르게 얼어붙었다.


재정적자 역시 감당하기 힘든 수준으로 늘어났다. 브라질의 경우, 2008~2012년 평균 GDP 대비 2.6%에 그쳤던 재정적자가 2015년에는 9.3%까지 늘어났으며, 그 결과 올해 말 GDP 대비 공공부채 비율은 76.3%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문제는 이처럼 정부 지출 규모가 큰데도 불구하고 그 예산이 성장잠재력 확충에 별로 기여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브라질 예산구조를 살펴 보면, 총예산의 45% 정도가 부채 상환 및 이자 지급을 위해 쓰이고, 사회보장과 사회적 지원을 위한 고정 지출이 각각 22%와 28%에 달한다. 즉, 브라질 정부가 재량적으로 쓸만한 예산이 거의 남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재정 건전성 확보가 필수적이다. 그러려면 정부 지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연금과 사회복지 지출을 합리적인 수준으로 개혁해야 하지만 브라질은 물론이고 베네수엘라와 아르헨티나도 아직 정치적 리더십이 확고하지 않아서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과거와는 다른 특징들


최근 중남미의 정치, 경제적 혼란은 몇몇 부분에서 과거와 다른 특징들을 보여준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중남미 전반적으로 사회주의 색채가 줄어들고 시장경제 질서에 바탕을 둔 실용주의 노선이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는 점이다. 친 기업 성향의 마끄리(Mauricio Macri) 대통령을 당선시킨 아르헨티나는 물론이고, 중남미 사회주의 동맹의 맹주를 자처하던 베네수엘라에서도 2013년 마두로(Nicholas Maduro) 정부 출범 이후 차베스(Hugo Chavez) 식의 보편적 복지 기조 대신 선별적 복지 비중을 높여가고 있다. 카스트로(Raul Castro)가 이끄는 쿠바의 문호도 미국과의 수교 재개를 계기로 빠르게 열리는 추세다. 그러다 보니 일부에서는 ‘중남미의 우경화’라는 표현도 사용한다.


두 번째 특징은 과거에 비해 경제의 변동성이 크게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세 자리 수를 기록했던 물가상승률, 30~50%대를 훌쩍 넘었던 시중 금리 등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경기의 불확실성과 변동성은 완화됐지만 그 추세적 움직임은 꾸준히 지속되고 있어서 반등과 회복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여전히 낮고 자급 기반의 내수시장이 오랫동안 발전해오면서 과거처럼 외부 충격에 힘없이 무너지는 일은 줄어들었지만 제조업 경쟁력이나 혁신 산업 역량과 같은 성장 잠재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결과다.


세 번째로, 중산층 기반이 아직 확실하지 않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지난 10여 년 새 중남미의 중산층 비중이 높아진 것은 분명하다. 브라질의 경우, 2002년 38%에서 2012년에는 53%까지 늘어났다. 그러나 이렇게 늘어난 중산층 중 상당수는 노동생산성에 기반한 임금 소득 증가보다는 정부의 각종 보조금 확대, 최저 임금 인상, 인구구조 변화 등에 힘입은 결과라는 점에서 재정 악화와 제도 변화로 정부 지원이 중단되면 쉽게 붕괴될 수밖에 없다. 즉, 중산층을 목표로 한 기업 전략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네 번째 특징은 최근 정치, 경제적 불안과 혼란을 겪고 있는 국가들이 모두 민주적 절차를 통해 수립된 정부라는 점이다. 즉, 과거처럼 쿠데타나 독재에 의해서만 정부 실패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민주주의 하에서도 얼마든지 정치적 무질서와 사회적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오히려 선거 때마다 유권자들의 표심을 얻기 위한 각종 보조금과 복지제도 남발이 재정 악화를 증폭시켰다는 지적도 많다.


극단적 위기보다는 회복 기반 약화가 더 문제


현 상황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디폴트와 같은 극단적인 경제위기 발생 가능성보다는 향후 시장의 변화이다. 경제의 변동성이 줄어들고 각국 정부의 경제정책 운용 역량이 발전하면서 과거와 같은 위기 발생 가능성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업 기반을 제대로 육성하지 못해 원자재가 약세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자력으로 위기를 탈출하기도 쉽지 않다.


더구나 거시경제 지표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 시장의 미시적 변화가 클 수 있어서 현지에 진출한 기업들의 경우 신중한 대응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예컨대, 중산층의 구매력이 줄어들면 시장 규모는 어떻게 바뀔 것인지, 제조사와 소비자 사이에서 경기 위축의 충격을 흡수해 주던 유통업체나 금융회사들의 부실화 가능성은 없는지 등에 주목하면서 ‘성장’보다는 ‘생존’에 우선순위를 둬야 할 시점으로 보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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