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 '중국의 거침없는 해외 M&A, 최근의 특징과 명암'
강천섬의 겨울풍경
최근 중국기업의 해외M&A 규모가 사상최대 수준으로 급증하고 있다. 중국기업들이 해외 확장에 가속도를 내고 있는 이유는 ▶기업 내부의 전략적 요구 ▶외부의 유리한 거시환경 ▶중국정부의 강력한 지원 및 유도 등을 꼽을 수 있다. 성장둔화와 치열한 시장경쟁에 직면하고 있는 중국기업들에게 해외 M&A는 단시간에 부족한 역량을 채우고 경쟁자를 추월하는 ‘지름길’이자 과잉생산 능력을 해소하는 돌파구이다. 저금리에 따른 풍부한 유동성, 고평가된 주식과 위안화 환율 변동성 확대 등 외부요인, 특히 중국정부가 해외 M&A를 ‘공급측 개혁’ 등 산업고도화 정책의 중요한 수단으로 격상시킨 것도 중국기업의 해외진출을 촉진시켰다.
중국기업의 글로벌 M&A에서는 최근 들어 새로운 패턴과 특징이 나타나고 있다. 투자대상국은 자원국 중심에서 기술선진국으로 전환되었고, 소비고도화와 인터넷 플러스 등 정책에 힘입어 급성장 중인 TMT(기술·미디어·통신) 산업이 해외 M&A의 주요 산업영역으로 떠올랐다. 또한 규제완화와 자금조달 경로 다양화 등으로 민영기업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수평적 확장이 여전히 주류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수직적 통합과 사업다각화를 추구하는 혼합형 M&A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해외M&A의 자금조달 경로가 과거보다 다양해지고 있는 가운데, 특히 기업이 재무적 투자자인 사모펀드(PE)와 공동 출자해서 인수를 추진하는 투자 패러다임이 보편화되고 있다. 정부가 설립한 각종 해외 M&A지원 펀드도 기업의 ‘해외기업 사냥’을 위한 실탄이 되고 있다. 충분한 자금을 공급받은 중국기업들은 브랜드 및 기술 확보, 시장주도권 강화 및 사업영역 확장 등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해외 선진기업을 인수했다. 이런 과정에서 취약한 합병후 통합(PMI) 능력, 높은 인수 프리미엄 등 문제점도 부각되고 있다. 신흥국 기업으로서의 경험부족과 선진 기술에 대한 절박함에서 기인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기업은 중국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중국 산업고도화 과정에서 생긴 다양한 시장기회를 활용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정체된 내수시장의 한계를 돌파하고 성장활력을 되찾을 수 있는 새로운 길이 될 수 있다. 물론 중장기적으로 중국기업의 M&A는 ‘양날의 칼’과 같이 경쟁 격화로 이어지는 등 부정적인 측면도 없지 않다. 기술격차 축소의 가속화도 예상된다. 그러나 중국기업들의 해외M&A와 기술추격은 거스를 수 없는 추세인 만큼 경계심만 높이는 것보다 기술혁신에 힘을 기울이고 윈윈의 기회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 목 차 >
1. 중국기업, 글로벌 M&A에 열을 올리는 이유
2. 최근 중국기업 해외 M&A의 특징
3. 해외 M&A 실탄은 어디서 나오나
4. 중국기업들의 글로벌 M&A 활용법
5. 거침없는 해외 인수합병의 명암
최근 중국기업들의 공격적인 해외 인수합병 행보가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해부터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워 불붙기 시작한 중국의 해외 M&A는 올 들어 더욱 가속도를 내기 시작해 1분기의 규모가 이미 역대 최고치였던 2015년의 연간 전체 실적에 육박했다(<그림 1> 참조). 특히 같은 기간 해외 M&A 규모의 감소세가 두드러지고 있는 반면 중국기업들의 ‘나 홀로 약진’이 계속되면서 전세계 해외 M&A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2.4%로 미국을 제치고 최대 해외 M&A 국가로 등극했다. 중국화공(中國化工, CHEMCHINA)의 신젠타 인수, 하이얼의 GE 가전부문 인수 등 대형 M&A 사례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중국의 해외 M&A도 처음으로 인바운드 M&A(건수 기준)를 넘어서 명실상부한 ‘슈퍼 포식자’로 부상했다.
이처럼 ‘골드러시’를 방불케 하는 중국의 ‘기업사냥’에 대한 우려도 확산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중국기업의 한국기업에 대한 인수 건수가 전년에 비해 3배 폭증하는 등 ‘바이 코리아(Buy Korea)’ 기세가 갈수록 거세지면서 자본잠식, 기술유출 등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중국기업들이 해외 M&A를 통해 빠른 시간 내 기술력 향상과 시장점유율 확대가 이뤄지면 글로벌 시장에서 위협적인 경쟁자로 떠오를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한편, 중국 국내에서는 지금이 해외자산 확보의 ‘적기’라고 평가하면서도 일각에서는 투자 과열, 높은 인수 프리미엄 등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으며, 80년대 무분별하게 미국 자산을 인수한 일본기업들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는 신중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1. 중국기업, 글로벌 M&A에 열을 올리는 이유
중국기업들의 거침없는 해외 확장의 배경에는 기업의 내부 전략적 필요성, 유리한 외부 금융통화 환경, 그리고 중국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등의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였다. 중국 경제의 체질 전환 과정에서 나타난 필연적 결과이기도 하다.
기업 자체의 전략적 필요성 + 유리한 외부환경
먼저, 해외 M&A는 중국기업들로서는 성장둔화 극복과 기회모색을 동시에 고려한 ‘Two Track’ 전략이다. 중국은 기존의 저임 노동력에 기반한 요소투입형 성장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기술혁신 등을 통한 생산성 증대, 새로운 성장동력의 육성이 절실하다. 글로벌 가치사슬에서 고부가가치 단계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기업들의 꾸준한 연구개발 노력이 요구되지만 압축성장에 익숙한 중국기업들은 긴 시간을 들여 기술 노하우를 축적하기보다 인수합병이라는 지름길을 택하려는 경향이 높다. 생존 경쟁이 날로 치열해져 시간이 부족한 반면 자금은 상대적으로 넉넉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수요위축과 내수부진에 따라 성장 정체를 겪고 있는 중국기업들에게 해외 M&A는 일종의 돌파구나 다름없다. 해외 기업인수를 통해 새로운 시장 진입 통로를 개척하고 브랜드, 핵심기술 및 영업망 등을 단숨에 확보해 내수시장 역량 강화와 해외 시장 입지 확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편, 해외 M&A는 기업 구조조정 전략의 일환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철강, 시멘트 등 일부 생산과잉업종의 경우, 기초 인프라 건설 수요가 많은 지역들에 있는 기업을 인수함으로써 과잉생산능력을 이전하고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다. 최근 중국 최대 철강업체인 허베이철강이 세르비아 유일의 철강공장을 5200만 달러에 인수하여 과잉 설비와 생산라인을 이전한 것은 바로 이러한 전략적 타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외부 시장환경을 놓고 볼 때도 지금은 해외 기업을 ‘저가매수’할 수 있는 적기이다. ▶낮은 금리에 따른 풍부한 유동성 ▶국내외 기업자산평가 차액 ▶ 향후 위안화 환율 절하 가능성 등 시장여건들이 중국기업들의 해외M&A 의욕을 돋우고 있다. 첫째, 최근 2년간 잇따른 금리인하로 기업들의 자금조달비용이 크게 낮아진 데다 부동산 등 자산시장 거품으로 중국 내에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해외로 눈을 돌리는 자금이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중국의 기업대출 기준금리는 2014년 1월 5.73%에서 2015년 말 4.3%로 크게 하락했다. 해외 자금시장 사정도 호조세를 보이고 있다. 유럽과 일본 등 다른 주요국에서는 마이너스 정책금리 도입과 양적완화 확대 등 통화완화 흐름이 강하기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풍부한 유동성 여건이 최근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둘째, 중국 주식시장 거품으로 상당수 중국기업의 자산가치가 고평가되고 있는 반면, 해외에서는 경기침체 여파로 저평가된 매물들이 쏟아지고 있다. 2016년 4월말 종가기준으로 중국상장기업들의 주가수익비율(PER)은 85.43배로 미국(28.12)보다 3배, 홍콩(18.08)의 4.7배 이상 높았다. 고평가된 주가에 힘입어 해외시장에서 중국상장기업들의 구매력이 커지는 효과도 있다. 실제로 2015년 중국 상장회사들의 해외기업 M&A 거래 건수가 중국 전체 해외 M&A의 58%로 주역의 자리를 차지했다. 셋째, 최근 위안화의 고평가 논란이 지속되면서 향후 위안화 환율 변동성 확대 및 추가 절하에 대한 예상으로 중국기업들이 서둘러 외화자산을 매입해 글로벌 자산배분 다변화를 도모하고 있다.
중국 정부의 강력한 지원 및 유도
중국정부의 적극적인 유도와 지원도 기업 ‘해외행’의 결정적인 추동력이다. 중국정부가 현재 강력히 추진중인 경제정책 핵심 이슈로는 기업 체질개선 방법론 격인 ‘공급측 개혁’, 제조강국 로드맵인 ‘중국 제조 2025’ 프로젝트, 그리고 대외확장 전략인 ‘일대일로(一帶一路)’를 꼽을 수 있다. 공급개혁이란 기술, 자본 등 생산요소 배분 시스템을 개혁해 기업 효율성 강화, 기업경쟁력 제고를 실현하는 의미로 기업 인수합병 전략의 목적과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지난 3월에 열린 ‘양회’에서 ‘국유기업 개혁’의 일환으로 ‘해외투자’가 공식적으로 거론된 바가 있다. 또한 중국 제조업 핵심기술의 높은 대외의존도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출발한 ‘제조 2025 프로젝트’의 목표도 역시 기술경쟁력 강화이다. 향후 5년내 40%의 핵심부품과 기초소재의 자주화를 실현해야 하고, 10년 내 제조강국 반열에 진입해야 한다는 시간표까지 구체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시간과의 싸움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속전속결식으로 M&A를 통해 원천기술을 통째로 사들이는 방법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을 것이다. 한편, 중앙아시아와 ASEAN 국가들과의 협력강화 및 메가 경제권 구축을 위해 추진 중인 일대일로 사업도 시장영향력을 확대하는 차원에서 관련국 기업들과의 M&A를 필요로 하고 있다.
중국기업들의 순조로운 해외진출을 위해 관련 규제도 완화됐다. 2014년 중국 상무부가 제정한 ‘해외투자관리방법(境外投資管理方法)’이 공포되면서 해외 M&A의 심사절차가 대폭 간소화되었다. 정부승인이 필요한 금액기준은 기존 1억 달러에서 10억 달러로 대폭 상향 조정되었고, 신청 후 심사기간도 3일 이내로 크게 단축됐다. 달러 대신 위안화를 이용한 해외기업 인수합병이 허용되는 등 위안화 국제화 전략도 중국기업들의 해외투자를 가속화하는 데 한 몫을 했다.
2. 최근 중국기업 해외 M&A의 특징
중국정부의 정책방향과 맞물려 중국기업들의 해외 M&A의 패턴과 성격이 최근 의미있는 변화를 보이고 있다. 대상지역 다변화와 업종 다각화가 두드러지고 있으며, 투자주체의 성격과 융자환경에서도 뚜렷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자원국에서 기술선진국으로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중국의 해외 M&A는 자원과 원자재에 편중됐다. 자원확보가 그 당시의 최대 관심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운영실패로 많은 손실이 발생한 데다 최근 중국국내에서 자원의 안정적인 공급보다 에너지구조 최적화, 에너지 품질관리 등이 더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면서 중국 대형 국유 자원업체들의 해외투자 움직임이 수그러들고 있다. 투자 대상국을 보면 중동, 아프리카 등 자원이 풍부한 지역에 대한 M&A 규모가 2011년의 55.1억 달러에서 2015년의 9.8억 달러로 급감했다. 반면, 산업고도화라는 발전방향에 맞춰 선진 기술을 보유한 서유럽과 북미기업들에게 몰리면서 북미와 서유럽 지역으로 투자한 규모는 최근 5년 사이에 3.5배 가량 늘었다(<그림 2> 참조). BCG가 2014년에 실시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해외 M&A를 실행한 중국기업들의 경우, 기술, 지적재산권 및 브랜드 확보를 위한 투자가 전체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전략적 자산(Strategic Asset)에 대한 갈망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그림 3>참조).
자원산업은 지고, TMT는 뜨고
비슷한 트렌드는 업종별 투자비중 변화에도 반영되어 있다. 2015년 중국기업 자본이 가장 많이 몰린 산업은 TMT(기술·미디어·통신), 제조업(IT제외), 금융, 부동산 순이었고, 에너지 분야의 비중은 낮게 나타났다. 이는 에너지와 금융의 비중이 높았던 5년 전의 모습과 대조적이었다(<그림 4> 참조). 특히 TMT분야의 약진이 눈에 띈다. 지난해 TMT 분야의 해외 M&A 비중이 전체의 18%에 달해 2011년의 5.7%에 비해 역할이 크게 확대됐다. 소득수준 향상과 산업구조 재편에 따라 첨단기술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시장수요가 급증한 데다 정부도 ‘인터넷 플러스’ 등 산업 육성 정책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빠른 보급, 통신 인프라 건설, 소비고도화에 따른 시장확대에 힘입어 TMT분야 기업들의 실적은 연평균 20%를 넘는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그림 5> 참조). 특히 지난해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 분야 M&A 규모가 2014년보다 67% 증가했다. 텐센트의 넷마블게임즈 인수 등을 비롯하여 기술력이 높고 기업가치가 저평가된 한국기업들에 대한 M&A공세도 늘고 있다. 영화관 등 하드웨어를 갖췄지만 콘텐츠 제작 노하우와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한류열풍을 일으킨 한국기업들은 매력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편, 중국정부는 기술산업 육성책의 일환으로 기업들의 해외 기술기업 인수 자금을 지원해주고 있다. 2014년 <국가 집적회로산업발전 추진요강>의 발표와 함께 설립된 국가 IC산업보조기금 중 40%가 M&A에 지원되고 있다.
민영기업들, 주역으로 떠올라
국가적 차원에서 에너지 자원 확보를 목적으로 해외진출을 했을 때에는 자금력이 탄탄한 국유기업들이 첨병역할을 했지만 최근 대상분야가 TMT 등 신성장 산업쪽으로 쏠리면서 이 분야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민영기업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거래건수 기준으로 2015년 민영기업의 해외M&A는 207건으로 같은 기간 국유기업의 2.6배 달했고, 거래액도 전년동기대비 55.2% 증가했다. 민영기업들의 거래규모가 2011년만 해도 국유기업의 1/4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그 비중은 76.3%까지 올랐다 (<그림 6> 참조). 산업별 투자주체를 보면 그 차이가 매우 뚜렷하다. 국유기업이 원자재, 에너지, 금융 등에 집중되는 반면, 민영기업들은 하이테크, 소매, 의료건강 등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 투자하고 있다(<그림 7> 참조). 특히 알리바바, 푸싱(複星), 완다(萬達)그룹 등 거물급 민영기업들이 국유기업들에 비해 명확한 소유지배구조, 높은 효율성 및 시장적응력 등 장점을 내세워 대규모 투자를 통해 사업 다각화 기회를 적극 모색하고 있다. 민영기업 해외투자에 대한 규제가 완화되고, 채권, 사모펀드 등 자금조달 채널 다양화에 따라 해외진출의 걸림돌인 자금난 문제가 해소되면서 민영기업들의 해외 M&A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수평적 확장, 지분인수가 주류
글로벌 기업들의 M&A는 인수목적과 범위에 따라 크게 수평적 확장, 수직적 통합, 혼합형 결합으로 나눌 수 있다. 2002~2015년 중국기업의 해외 M&A 가운데 수평적 확장이 87%로 주를 이루고 있다. 수평적 확장은 동종산업 내에서 경쟁 기업간의 통합을 통해 시장지배력 강화 및 규모의 경제 달성을 목적으로 하는 방식으로 상대기업의 전략적 자산을 가져올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특히 중국의 하이테크 산업 등 핵심기술이 필요한 기업의 경우 수평적 인수합병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레노버의 IBM PC부문 인수, 하이얼의 GE 가전부문 인수 등이 전형적인 사례다. 그러나 최근에 전후방 사업 통합을 통한 시너지 효과를 추구하거나, 혼합형 M&A 방식의 비관련 다각화를 통해 글로벌 자원 재배치와 함께 신사업 기회를 모색하고 있는 중국기업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스위스 기내식 업체인 게이트그룹과 항공화물처리 업체인 스위스포트를 인수해 수직계열화를 가속화하고 있는 하이난항공(HNA); 프랑스 레저전문 업체인 클럽메드(Club Med), 미국 보험사 MIG, 포르투갈 의료그룹 ESS 등 다양한 분야 업체들을 잇따라 인수하여 사업다각화를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키운 푸싱그룹; 그리고 한국 알리안츠생명, 뉴욕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 등을 사들여 다양한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하며 글로벌 입지를 넓혀가고 있는 안방보험 등이 그 예이다.
또한 중국기업 해외 M&A의 78%(2015년 기준)가 지분인수 방식으로 이뤄질 정도로 자산인수보다 지분인수방식을 선호하고 있다(<그림 8> 참조). 자산인수 방식으로는 특허권 등 무형자산은 이전 받을 수 없는 반면, 지분인수는 경영권을 넘겨 받는 방식으로 해당 사업체의 브랜드, 저작권 등을 그대로 이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제방식의 경우, 2015년 현금으로 인수자금을 지급한 중국기업의 비중이 무려 92.4%로 매우 높다. 중국 자본시장의 개방도가 낮은 탓에 해외기업과의 주식교환이 쉽게 이뤄지지 못한 영향이 크다. 미국기업의 경우 현금비중은 75.7%, 주식교환과 복합결제 비율이 20%를 넘은 반면, 중국기업의 주식교환 비중은 1.43%에 불과하다(<그림 9> 참조).
3. 해외 M&A 실탄은 어디서 나오나
자금조달 경로 다원화
중국기업의 해외 M&A 자금은 주로 기업 자체조달 부분(국내 및 해외 은행대출, 채권발행, 사모펀드 연합출자)와 정부지원 부분(각종 해외투자 펀드, 국부펀드)로 나눠볼 수 있다. 과거 은행대출에만 의존했던 것과 비교하면 자금조달 경로가 다양해졌다. 상무부가 2015년 426개 해외M&A 참여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상업은행 대출을 활용한 기업은 44.3%, 해외은행 대출 16.9%, 국내 제2금융권 대출은 13.6% 순으로 은행대출에 대한 의존도가 여전히 높은 상황이다. 하지만 국내외 시장에서 채권발행, 중국정부에게 자금지원 요청, 사모펀드 활용 등을 응답한 기업도 30.5%에 달했다. 특히 사모펀드(PEF: Private Equity Fund)와 손잡고 해외 M&A를 추진하는 사례가 점차 늘고 있는 추세다. 중국 최대의 건설중장비업체인 삼일종공(三一重工)과 중신(中信)산업투자기금이 공동 출자로 독일 푸츠마이스터(Putzmeister)의 지분 100%을 인수했고, 중국 광명그룹(Bright Food)사도 중국 대표 PE인 훙이캐피탈(弘毅投資)와 연합해서 이스라엘 최대 식품제조업체인 트누바(Tnuva)의 지분 76%를 매입하여 경영권을 획득했다. 모두 전략적 투자자(SI)인 기업과 재무적 투자자(FI)인 PE가 결합하는 새로운 투자 패러다임이다. 기업과 PE간 결합은 2014년 이후 중국국내 사모펀드 발행이 급증하면서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PE 등 금융투자자가 참여한 중국기업의 해외 M&A 건수가 2013년의 25건에서 2015년 95건으로 2년사이에 4배 가까이 증가했고 거래액도 전체의 1/4인 161억 달러로 사상최고를 기록했다. 산업별로 보면 대부분 PE가 하이테크 영역에 집중되고 있어, TMT 분야 해외 M&A 돌풍을 일으킨 숨은 주역 중 하나로 볼 수 있다(<그림 10, 11>참조). PE는 자금뿐만 아니라 풍부한 해외투자 경험을 바탕으로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투자방안 개선 등에 도움을 줄 수 있으므로 인수합병의 성공률을 높일 수 있다. 한편, 피인수업체의 해외상장을 통해 인수자금을 회수하려는 사례도 적지 않다. 완다(萬達)그룹이 미국 2위 극장체인인 AMC를 인수한 후 1년만에 뉴욕거래소에 상장시켜 4억달러의 자금을 확보했고, 광민(光明)그룹도 자사가 인수한 뉴질랜드 낙농회사인 신라이트밀크(Synlait Milk)를 상장시켜 약 5000만 달러 조달에 성공했다.
정부의 아낌없는 지원
한편, 중국정부는 대규모 해외M&A 펀드조성, 국부펀드의 투자 참여 등 방식으로 중국기업들의 해외투자를 밀어주고 있다(<표 1> 참조). 지방정부의 노력으로 상하이 사이링(賽領) 국제투자기금, 충칭 다오퉁(道同)투자기금 등 지역별 해외M&A 전문펀드가 잇달아 탄생했고, 2015년 말에 하이테크 기업들의 해외 M&A 촉진을 목적으로 한 베이징 중관촌(中觀村) M&A자본센터도 문을 열었다. 특히 중관촌 자본센터는 단순히 자금지원의 차원을 넘어 인력, 전략 등 종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 중국기업들의 해외 M&A에 날개를 달아줄 것으로 예상된다. 중앙정부의 경우 더욱 통 큰 지원에 나서고 있다. 2천억 위안(약 3.8조원) 규모의 국가반도체 산업기금의 든든한 후원으로 칭화유니(紫光集團)가 미국 IT기업에게 ‘러브콜’을 잇따라 보내고 있다. 최근 중국화공이 430억 달러의 거금으로 스위스 종자기업인 신젠트 인수를 추진할 수 있었던 것도 정부와 국가개발은행 등이 공동 출자한 실크로드 펀드(絲路基金), 국부펀드(CIC),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 산하의 중국궈신(國新)홀딩스 등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화공은 비상장회사로 주식발행을 통한 자금조달이 불가능한 데다 2012년 이후 영업이익이 줄곧 적자였다. 그러나 이 회사의 신용등급을 정부 신용등급과 동일시하고 앞다퉈 대출을 제공하려는 은행들이 줄을 잇고 있다. HSBC, 크레디트 스위스(Credit Suisse), 라보뱅크 그룹(Rabobank Group) 등 외자 금융기관들도 대거 포함됐다. 국유은행이 제공한 대출금리가 2%미만으로 매우 낮은 데다 정부의 담보가 있어 재무위험성이 우려한 것보다 낮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4. 중국기업들의 글로벌 M&A 활용법
브랜드파워 향상과 시장개척: 레노버 (휴대폰)
세계최대 PC제조업체인 레노버는 2014년 1월 구글로부터 모토로라의 스마트폰 사업부문을 29.1억 달러에 인수했다. 인수시점에 현금 6.6억 달러와 7.5억 달러상당의 자사지분만 지불하고 나머지는 3년에 거쳐 약속어음 형태로 지불하는 조건이었다.
인수하기 전 레노버는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시장점유율이 5위였으나 중저가 스마트폰 시장에만 머물렀고, 차별화된 기술경쟁력 부재로 해외에서는 신흥국 시장을 중심으로 가격경쟁력으로 승부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삼성전자나 애플 등 선두업체들과 화웨이 등 다른 로컬 저가업체들에 둘러싸인 ‘샌드위치’ 신세에서 벗어나고, 후발주자로서 치열한 시장경쟁을 뚫고 세계로 뻗어나가려면 취약한 브랜드가 걸림돌이었다. 마침 구글은 모토로라의 특허 포트폴리오를 확보한 후 스마트폰 비즈니스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아 이를 매각하려던 참이었다.
이 인수를 통해 레노버는 모토로라 브랜드와 등록상표, 그리고 ‘모토X’, ‘모토G’ 등 제품 포트폴리오, 2000개 특허 등을 보유하게 되었다. 과거 IBM의 브랜드 후광효과로 해외PC시장에서 성공했듯이, 미국 내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3위 업체인 모토로라의 높은 브랜드인지도와 판매채널은 레노버에게 선진국 스마트폰 시장을 개척하는 발판을 마련해준 셈이다. 특히 미국의 주요 통신사를 포함한 전세계 수십 곳의 통신사와의 네트워크를 확보하게 됨으로써 세계시장 진출이 한층 수월해졌다. 레노버는 모토로라를 자회사 형태로 경영하면서 하이엔드 스마트기기에는 ‘모토(Lenovo Moto)’를, 보급형에는 ‘레노버 바이브(Lenovo Vibe)’브랜드를 사용하는 투트랙(two track) 브랜드 전략을 취하고 있다. 인수 후 레노버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합병전의 5.2%에서 7.9%로 증가해 삼성과 애플에 뒤이어 3위로 상승했고, 해외시장의 스마트폰 판매량은 15% 증가했다(2015년기준). 비록 고비용 등 문제로 모토로라 휴대폰 사업은 아직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으나 레노버의 공급망 공유, 생산지 이전 등으로 향후 개선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레노버는 인수를 통해 모토로라의 특허까지 손에 쥐게 됐다. 비록 구글이 여전히 대부분 특허에 대한 소유권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으나 라이선스를 통한 사용권을 허락했다. 이를 이용해 레노버는 보다 업그레이드된 단말기를 개발하고 다양한 제품 라인을 갖출 수 있게 되고, 기술혁신 능력이 제고되면서 경쟁업체들과의 격차가 좁힐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핵심기술과 시장주도권 확보: 반도체 업체 JCET(長電科技)
중국 반도체 패키징 전문 민영기업 JCET가 2015년초 세계 반도체 선두주자인 싱가포르 스태츠칩팩(STATS ChipPAC, 星科新朋)을 7.8억 달러에 전액 현금으로 인수했다. 스태츠칩팩(싱가포르)은 패키징 세계시장점유율 4위인 글로벌 기업으로 매출과 자산규모가 모두 JCET의 두 배였다. 이와 같은 “뱀이 코끼리를 삼키는”식의 인수가 가능한 것은 중국정부의 개입과 치밀한 인수전략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수자금 최소화를 위해 JCET는 다소 복잡한 ‘3단계 전략’을 고안해냈다. 먼저 JCET와 중국 정부 반도체 펀드, 그리고 중국최대 반도체 업체인 SMIC가 각각 2.6억 달러, 1.5억달러, 1억달러를 투자해 합자사A(長電新科)를 설립하고, 이에 대해 각각 51%, 29.4%와 19.6%의 지분을 보유했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합자사A와 반도체펀드가 각각 5.1억 달러와 0.1억 달러를 출자해 합자사B(長電新朋)를 세웠고, 반도체펀드는 합자사B 에게 1.4억 달러의 전환사채를 제공했다. 마지막 단계에서 합자사B가 주주들이 출자한 자금(5.2억달러)과 주주대출금(1.4억달러)를 합쳐 싱가포르에서 인수전문 자회사인 JCET-SC를 세운다. JCET-SC가 보유한 기존의 6.6억 달러에다 중국은행에서 빌린 1.2억 달러를 더해서 결국 7.8억 달러로 스태츠칩팩 인수에 성공했다(<그림 12> 참조).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실제로 JCET는 단지 2.6억 달러의 자금으로 인수를 성사한 셈이다. 그 과정에서 정부반도체펀드는 총 3억 달러를 출자했지만 경영권은 교묘하게 JCET에게 양보했다.
이 인수로 JCET의 세계시장점유율은 인수 전의 3.4%에서 9.8%로 급등하면서 단숨에 세계 3위의 반도체 패키징 업체로 부상했다. 스태츠칩팩은 2천여개의 특허를 보유할 정도로 세계적 수준의 선진기술을 가진 기업이다. 차세대 3D 패키징 기술을 선보이며, 특히 프로세서에서 처리한 정보를 신속히 기기로 전달하는 ‘팬아웃(Fan-out)’ 기술은 세계 최고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JCET의 고객사가 대부분 중국 현지 업체인 반면, 스태츠칩팩은 퀄컴(Qualcomm)을 포함한 미국과 유럽의 주요 하이테크 기업을 클라이언트로 보유하고 있다. 인수를 통해 JCET는 핵심기술 획득을 통해 기술고도화에 가속이 붙게 될 뿐만 아니라 유수한 고객사와 함께 대규모 생산라인을 모두 얻게 된다. 인수 후 JCET의 2015년 연간 매출증가율은 인수전인 26%에서 68%로 높아져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신속한 시장영역확장과 수직계열화: 완다(萬達)그룹
중국 최대의 부동산개발 민영업체인 완다그룹은 해외인수를 통해 문화, 스포츠 등 분야로 발빠른 사업다각화를 추진하고 있다. 해외시장에 발을 들여놓기 전 완다그룹의 전체 영업이익 중 부동산관련 사업이 90% 이상을 차지했다. 부동산 경기가 침체 국면에 접어들자 완다는 2012년부터 해외M&A를 통해 ‘탈(脫)부동산화’ 노력을 본격화했다. 그 결과 문화, 레저사업의 비중이 전체의 30%까지 치솟았다.
완다의 해외 확장은 주로 영화와 스포츠에 집중되고, 전면적인 산업체인 구축에 초점을 맞춘 것이 특징이다. 소비고도화와 정부의 문화서비스 산업 육성 정책에 힘입어 완다그룹은 사업구조 전환을 꾀하기 시작하면서 2012년 세계최대 수준의 IMAX와 3D스크린 운영업체인 미국 AMC엔터테인먼트 지분 100%를 26억 달러에 인수했다. AMC는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영화체인업체로, 348개 영화관, 총 4950개 스크린을 보유하고 있다. 인수를 통해 완다는 전세계 영화관 시장 점유율의 10%를 차지해 글로벌 영화시장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영화관 확장을 통해 규모의 경제효과가 나타나자 완다는 다시 전방산업인 콘텐츠 제작으로 눈을 돌렸다. 2015년 할리우드 영화 ‘사우스포(Southpaw)’ 제작사 와인스타인에 3000만 달러를 투자한 데 이어, 2016년 1월 ‘쥬라기월드’ 등을 제작한 미국 헐리우드 메이저 영화 제작사인 레전더리 엔터테인먼트를 35억 달러 전액 현금지불 방식으로 사들였다. 영화제작 노하우와 품질 높은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또한 호주 최대 영화 광고업체인 호이츠(Hoyts)와 한국 영상시각효과(VFX) 업체 텍스터 등에 대한 잇따른 인수와 지분투자로 ‘영화왕국’ 구축에 전방위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영화산업 이외 영역에서도 완다의 동시다발적인 사업확장이 이어지고 있다. 2015년 한 해 동안 스페인 프로축구클럽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Atletico Madrid), 세계 2위 스포츠 마케팅 업체인 인프런트(Infront)에 이어 미국 세계트라인애슬론사(WTC)의 지분 100%를 인수해 매출 측면에서 세계 최대 스포츠 기업으로 등극했다(<표 2> 참조). 이와 같은 ‘쇼핑열기’는 중국의 스포츠산업이 아직 초기단계이지만 잠재적 수요와 정부의 육성의지를 감안할 때 폭발적인 성장이 있을 것이라는 전망에서 비롯된다. 지난해 국무원에서 발표한 ‘스포츠 산업 발전 추진 가속화 및 스포츠 소비 추진에 관한 의견’에서 향후 10년간 연평균 16% 성장시켜 스포츠 산업을 5조위안 규모로 키운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단순히 몸집 불리기에만 그친 것도 아니다. 완다 CEO인 왕젠린(王健林)에 의하면 스포츠 산업체인은 ① 국제축구연맹, 올림픽조직위원회 등 국제기구(조직) ② 경기 중계권, 판매권을 가진 마케팅 업체 ③ 단일 스포츠 경기 및 클럽으로 이뤄져 있는데, 하이엔드 부분인 ①와 ②를 집중 공략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완다가 인수한 Infront와 WTC가 바로 벨류체인 상단에 위치한 ‘고부가가치 자산’이다. 전자는 세계주요 스포츠 협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월드컵, 동계올림픽 중계권을 보유하고 있으며, 후자는 연간 전세계 250여 종 경기를 운영하고 철인 3종경기를 주관하는 업체다. 이러한 기업에 대한 인수를 통해 스포츠 분야에서 중국의 위상을 높이고 다양한 대형 경기 개최의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 완다의 포부이다.
영화와 스포츠산업의 해외진출을 기반으로 완다그룹은 영국 럭셔리 요트업체 인수, 러시아 캅카스 여행지구 개발 참여, 한국 중견 여행사에 대해 인수 제의를 하는 등 다각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고액의 인수자금은 상당부분을 은행 대출로 충당하고 있으며, 완다그룹 자회사인 ‘완다시네마’의 상장을 통해 조달된 자금도 일부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완다의 문화산업 진출은 정부의 호응 하에 매우 낮은 금리의 대출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완다는 중국은행 등 4대 국유은행을 비롯한 다수의 상업은행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특히 전략적 협력 약정을 맺은 중국수출입은행으로부터 ‘인수금액의 50%’의 대출상한을 넘는 규모의 대출을 받아왔다. 완다그룹이 민영기업이지만 부동산 개발과 영화관, 백화점 운영 등으로 지역상권 활성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어 지방정부와 끈끈한 유대관계가 형성된 점도 자금조달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5. 거침없는 해외 인수합병의 명암
중국기업들은 해외 M&A를 통해 단기간 내 시장지배력 확대, 핵심기술 확보, 글로벌 입지확대 등 경쟁력 강화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높은 인수 프리미엄과 레버리지, 그리고 취약한 합병후 통합(PMI: Post Merge Integration) 능력 등의 문제도 나타나고 있다.
첫째, 중국기업들은 해외 인수할 때 높은 인수가격을 제시하는 경향이 높다. 1999년에서 2016년 2월까지 중국기업들의 EBITDA 대비 해외 인수금액은 11.8배로, 같은 기간 전세계 평균 기준인 8.7배보다 약 35% 높다. 최근의 개별 인수사례를 보면 중국화공과 중롄중공업이 각각 피인수기업 EBITDA의 19.3배와 41배의 가격을 지불했다. 이와 같은 높은 인수 프리미엄은 중국기업들이 선진기술과 전략적 자산에 대한 확보 의지와 정부의 강력한 후원을 반영하고 있으나 합병 후 재무상태를 악화시키는 부담요인으로 작용될 수 있다.
둘째, 중국기업이 해외M&A에 필요한 자금은 주로 차입을 통해 조달된다. 2015년 해외M&A에 참여한 54개 중국기업의 평균 EBITDA 대비 부채총액 비율은 5.4배로 국제 경계선인 3배를 초과했다. 특히 일부 대형 국유기업의 부채비율은 놀라울 정도다. 예컨대 33억 달러의 가격으로 미국 건설기계업체인 테렉스(Terex)에 대한 인수를 추진 중인 중롄중공업(中聯重科, Zoomlion)의 부채총액은 무려 EBITDA의 83배 (테렉스는 3.6배에 불과), 중량(中粮, Cofco), 중위안(中遠, Cosco) 등 해외 M&A 주역들도 40배 이상으로 나타났다(<그림 13> 참조). 높은 부채비율로 재무구조 악화 위험성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중국을 ‘국제기준’의 잣대로 판단하면 리스크가 과대평가될 수 있다. 중국은 시장경제의 게임 룰(Game Rule)를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특수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해외 M&A는 모두 상업적인 관점으로 볼 수가 없고, 특히 대규모 인수합병의 경우 정부가 ‘수렴청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략적인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대리인’ 격인 국유기업에게 자금을 필요한 대로 제공한다는 구조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셋째, 경험부족으로 인수 후 통합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중국기업들이 많다. BCG가 2014년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약 67%의 중국기업이 피인수기업을 효율적으로 운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최근 구체적인 통합계획 없이 무분별하게 해외시장에 뛰어든 기업들이 적지 않아 문화차이 등으로 기대했던 인수효과를 얻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큰 규모의 M&A는 단기적으로 기업의 주인이 비뀌는 것 이상의 큰 의미를 찾기 힘든 경우가 적지 않다. M&A는 인수기업에게 성장과 발전의 토대가 되기보다는 오히려 과도한 부담이 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중국기업의 해외M&A는 양극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부 대형 국유기업과 민영기업들의 약진이 두드러지는 반면 비효율적인 경영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업체들도 많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적지 않은 중국기업들이 해외M&A를 통해 더 강력한 시장플레이어가 될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한국의 입장에서 볼 때 중국기업의 공격적인 해외M&A는 ‘양날의 칼’과 같다. 먼저 중국은 해외 M&A를 통해 산업고도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다양한 부문에서 새로운 시장수요가 발생할 수 있고, 한국기업은 중국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이러한 시장기회를 활용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크다. 정체된 내수시장의 한계를 돌파하고 성장활력을 되찾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특히 인터넷과 문화콘텐츠 등 높은 시장진입장벽이 존재하는 시장에서 중국기업과의 협력이 해법이 될 수 있다. 한중간의 보완적 관계를 살려 윈윈 효과를 창출한 사례가 바로 드라마 ‘태양의 후예’를 제작한 영화배급사 NEW와 중국 최대 엔터테인먼트 그룹 화책(華策)미디어의 협업이다. 2014년 10월 화책이 535억원으로 NEW 지분의 15%를 매입해 제2대 주주가 됐다. 화책의 도움으로 ‘태양의 후예’는 중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중국 동영상 플랫폼인 아이치이(愛奇藝)에 43억원으로 판권을 팔아 판권료 기록을 경신했다. 향후 중국에서 공동으로 영화를 제작해 상영할 계획도 갖고 있다. EBS와 방송용 콘텐츠 공공제작을 참여하고 있는 레드로버(Redrover)도 중국지역에서 쑤닝(蘇寧)그룹의 거대한 유통만을 이용해 연평균 20%대로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 유아용 교육시장 공략에 나설 예정이다.
중국자본은 곤경에 처한 한국기업들에게 생존의 활로를 열어주기도 한다. 2014년 넷마블게임즈(Netmarble Games)는 CJ E&M과의 지분정리를 앞두고 최소 4000억원 이상의 외부자금이 필요한 상황에 놓였지만 당시 한국 국내에서는 투자처를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중국 최대 인터넷업체인 텐센트의 투자제의를 받아들인 넷마블은 자금과 함께 중국내수시장 진출 통로 확보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었다. 실적부진으로 고전했던 한국 토종 유아복 회사 ‘아가방’도 중국 대형 패션업체인 랑시(朗姿)그룹에 인수된 후 현지 대형 백화점과 온라인쇼핑몰 입점 등을 통해 급성장중인 중국 유아용품시장을 공략했다. 소황제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아가방’은 결국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물론 다른 한편으로는 해외 M&A로 경쟁력이 강화된 중국기업들과의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중국기업들은 넓은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일부 산업영역에서는 한국기업들을 앞서는 기업들도 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글로벌시장에서 한국기업에 비해 추격자의 자리에 있다. 그러나 문제는 앞으로다. 레노버, 하이얼 등 해외경험이 풍부한 일류기업들은 첨단기술을 신속히 빨아들이고 시장영역을 끊임없이 확장하고 있다. 그들이 M&A를 통해 시너지효과를 얻을 경우 해외시장에서 유력한 경쟁자로 부상할 수 있다. 특히 한국기업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분야에선 중국정부의 든든한 후원을 얻은 중국기업의 발 빠른 시장선점으로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 또한 중국기업들은 M&A를 통해 핵심 기술과 콘텐츠, 그리고 제조(제작) 노하우를 갖춘 인력을 대거 확보하고 있어 한국기업과의 기술격차가 빠르게 축소될 전망이다. 최근 중국 인터넷 3대 회사 BAT (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가 한국 비상장 벤처기업들을 대거 인수하러 나서고 있어 기술유출이 가속화될 수 있다.
그러나 중국기업들의 해외 M&A와 기술추격은 경제발전의 자연스러운 결과로서 나타나는 측면이 있다. 한국도 과거에 가전, 반도체 등 핵심 산업영역에서 일본과 미국기업들의 시장을 빼앗으면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중국기업들의 M&A를 부정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을 통해 동반성장 할 수 있는 지혜를 모색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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