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 '일본기업 구조조정 20년의 교훈'
최근 우리경제의 저조한 성장세가 지속되면서 일본식 장기불황에 대한 우려가 불식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이 1990년대 이후 주요 산업의 경쟁력이 약해지고 과잉 설비에 고전하면서 고민했던 구조조정의 문제점이나 시행착오, 해법들은 유사한 성장경로를 거쳐온 후 저성장 국면에 직면하고 있는 우리나라에게 의미하는 바가 클 것이다.
일본은 장기불황 초기에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고 구조조정을 과감하게 추진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러한 초기 대응이 그 이후의 경제적 어려움과 전략적인 오류를 유발하는 악순환을 겪어야만 했다. 구조조정 지연으로 부실한 기업과 산업이 확대되고 은행 부실문제가 심각해졌다.
1990년대 후반 이후에는 각 산업에서 대형 합병, 경쟁사간 사업 통합이 이루어졌다. 철강 산업에서는 대형 5개사 체제가 3개사 체제로 재편되었으며, 조선업에서는 중소 조선사를 잇따라 매수한 이마바리가 최대 조선사로 부상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기존 사업의 축소, 정리, 인원감축 등을 통한 생산성 향상도 중요했지만 신규 성장 사업의 개척과 육성이 승패를 좌우했다. 철강업에서는 인원 감축 위주의 구조조정에서 점차 새로운 소재 기능과 신공법의 개발에 주력하면서 경쟁력이 회복되고 있다. 반면, DRAM 반도체 분야는 3개사 통합에 따른 기술적 시너지를 발휘하지 못하고 실패하고 말았다.
일본정부는 장기불황 초기에 기업의 구조조정을 촉진하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일본정부가 구조조정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성장전략을 본격화시킨 것은 장기불황 돌입 후 15년 정도가 지난 2000년대 중반이었다. 산업재생법을 통해 기업의 상시 구조조정을 유도하여 산업의 재생을 도모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나갔지만 늦게 시작되었을 뿐아니라 정권이 바뀔때마다 새로운 성장전략이 제시되는 등 추진력이 강하지 못했다.
일본의 구조조정 과정에 대해서는 무엇보다도 초기의 신속한 상황판단과 대응이 미진했던 것이 문제를 더 악화시킨 주요 요인이라고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Bottom up식 의사 결정 특성도 과감하고 혁신적인 구조조정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구조조정에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기 때문에 신성장 분야에 주력하지 못했던 것이 경제적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통한 경제 전체의 활력 제고에 불리하게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 목 차 >
1. 일본기업의 구조조정 과정
2. 주요 산업에서의 기업통폐합과 경쟁력 회생 노력
3. 일본정부의 구조조정 추진 정책
4. 일본기업 구조조정의 교훈
지난 1분기에 한국경제의 성장률은 전분기대비로 0.4%에 그쳤다. 최근 연간성장률도 2%대의 저조한 수준이 지속되면서 일본식 장기저성장에 대한 우려가 꺼지지 않는 상황이다. 특히 일본이 1990년대 후반 이후 고전했던 바와 같이 우리 주요 산업의 경쟁력이 약해지고 과잉설비 문제가 심각해질 경우 경제성장세의 회복이 어려워질 수 있다.
일본의 장기불황은 버블붕괴로 인한 장기간의 금융경색, 총수요관리 정책의 실패, 저출산·인구고령화, 극심한 엔고, 산업경쟁력 약화 등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사실, 일본의 장기불황에 대한 원인 분석과 처방에 대해서는 일본 내에서도 논쟁이 많다. 총수요의 부족을 주장하는 Reflation학파의 경우 디플레이션의 악순환 문제를 중요시하고 대폭적인 금융완화와 재정확대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한편, 저출산·인구고령화나 산업의 쇠퇴 등 공급측의 요인을 중시하는 구조혁신파들은 기업의 구조조정 등을 강조해 왔다.
일본의 산업과 기업의 구조조정 과정과 문제점, 극복노력들은 일본처럼 저출산 인구고령화에 따른 저성장 압력이 예상되는 우리에게도 유익한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1. 일본기업의 구조조정 과정
초기의 상황인식 착오와 기존 성공 방정식 집착
일본기업은 1990년대 이후 오랜 장기불황을 겪으면서 수익구조의 개선을 위해 노력해 왔다. 일본 기업의 수익성이 엔저에 힘입어 최근에는 개선 추세를 보였지만 장기간 고전하다가 결국, 대만의 홍하이에게 매각된 샤프의 사례처럼 일본기업의 구조조정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이는 장기불황 초기 일본이 당시의 경제 상황인식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결과, 방향을 찾지 못하고 전략에 혼선을 보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초기의 전략적 오류의 후유증이 다음 시기의 전략에 왜곡을 가져오고 일본기업의 수익회복을 더욱 어렵게 한 것으로 보인다.
장기불황의 계기가 된 버블의 붕괴는 주식시장에서는 1990년부터, 부동산 시장에서는 1991년부터 시작되었으나 1991년 당시만 해도 일본경제의 성장률은 3.4%에 달했기 때문에 일본 정부와 기업은 문제의 심각성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했다. 당시, 버블 붕괴는 부동산, 건설, 금융 산업의 문제 때문이며, 일본 제조업은 건실하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일본경제의 성장률이 1992년에 0%대로 떨어진 시점에서도 대부분의 일본기업들은 이를 통상적인 경기순환으로 간주하여 버블 붕괴로 악화된 재무구조 개선에 주력하면서 기존의 일본식 경영으로 본업을 강화하는 전략을 고수했다.
경기의 악화로 제조업에서 과잉설비, 과잉인력, 과잉채무 등 3대 과잉 문제가 대두되었으나 기업들은 원가절감, 경비 삭감 등 통상적인 불황 대책에 치중하여 근본적인 혁신보다도 참고 견디는 전략을 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1990년대만 해도 일본식 경영에 대한 자신감이 컸다. 당시 세계 정상급의 경쟁력을 가졌던 일본 전자산업에서는 소니가 워크맨을 카세트형에서 MD(Mini Disc)로 바꾸는 등 개량형 제품개발에 치중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기존의 개량형 제품 전략과 참고 견디는 비용절감 대책이 점차 한계를 드러내는 가운데 일본의 불황은 장기화되었다.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반에는 일본기업 전반에 걸쳐 부실이 확대되고 이들을 지원해 왔던 대형은행들의 경영이 악화되었다. 실제로 시중은행이었던 홋카이도 타크쇼크은행이 파산함으로써 일본경제의 전반적인 위기감이 고조되었다.
기업의 부실처리와 산업의 구조조정을 미루는 가운데 저성장이 장기화되면서 은행 부실채권이 쌓이고 결국 은행 자체의 부실화로 이어진 것이다. 금융권에서는 담당자가 해당 기업의 부실이 자신의 재임기간에 노출되지 않도록 추가적 지원을 하는 경우도 발생해 결국 부실채권 규모를 확대시켰다. 이와 같이 일본기업이나 은행들의 Bottom up식의 의사 결정 과정은 급변하는 경제 환경에 과감한 전략적인 결단을 어렵게 함으로써 근본적인 구조조정의 지연을 초래했다고 볼 수 있다.
글로벌 스탠더드 맹신과 구조조정의 시행착오
근본적인 구조조정을 피하면서 참고 견디는 식의 경비절감 대책으로 인해 일본기업은 성장사업을 강화하지 못하고 점차 경쟁력이 약해졌다. 은행부실채권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1997년에 4대 증권사였던 야마이치증권의 폐업, 1998년 홋카이도 타쿠쇼크은행의 파산이라는 금융위기 상황에 빠지자 점차 구조조정이 본격화되었다. 기존의 일본식 경영에 대한 자신감이 한꺼번에 무너지면서 글로벌 스탠더드를 도입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일본기업과 산업의 발전을 뒷받침해 왔던 종신고용제, 연공서열제 등이 기업구조조정의 장애로 인식되면서 일본식 경영의 기초였던 고용시스템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연봉제가 확산되고 비정규직을 활용하는 경우도 확대되었다. 대기업의 경우 핵심인력을 중심으로 한 정규직에 관해서는 종신고용 관행이 지속되었으나 동기입사자 중에서도 점차 승진과 연봉의 차이가 커졌다. 정규직의 감원은 최소화되었지만 이들의 정년 후 퇴사와 신규채용의 억제로 10년 정도 지나면서 일본기업의 1인당 부가가치도 회복세를 보였다.
그러나 고용 감축, 임금억제에도 불구하고 매출의 감소, 신규사업의 개척 부진에 직면하는 경우가 많아 수익률의 회복은 쉽지 않았다. 장시간에 걸쳐 완만하게 진행된 일본기업의 고용 조정으로 국가 전체적인 구조조정 기간이 길어지면서 소비부진, 경제성장 부진을 벗어나기가 더 어렵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일본기업이 아무리 경비를 감축해도 수익을 늘리기가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또한 글로벌 스탠더드를 기계적으로 도입하여 분기별 수익에 초점을 맞춘 단기성과를 강조하게 됨으로써 일본기업의 장점이었던 장기적 시각에서의 기술과 제품개발 투자의 장점이 후퇴하는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했다.
다만, 글로벌 스탠더드가 확산되면서 과거에는 같은 회사에서도 조직을 통합하기가 어려웠던 일본에서 경쟁사간 사업통합이나 기업합병을 통해 과잉설비 문제를 해결하려는 구조조정 전략이 점차 활기를 띠게 되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은행, 철강, 석유화학, 전기전자 등 주요 산업에서 대형 기업간 통합이 이루어졌다. 20개 이상이었던 시중은행이 대형 3대 메가뱅크가 주도하는 체제로 재편되었다. 2001년에 미쓰이 그룹의 사쿠라은행과 스미토모 그룹의 스미토모 은행이 합병하는 등 전후 일본경제를 주도해 왔던 6대 기업집단간의 기업통합 및 사업통합까지 이루어지면서 구조조정이 가속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기업집단내 상호출자 비율이 하락하고 일본 기업집단의 유대관계가 약해졌다. 그룹 내 은행과 대기업, 중견중소기업까지 망라한 계열융자라는 신용체제가 약해진 것은 장기적 시각에서의 연구 및 투자 활동을 위축시키는 효과가 있었으나 채산성 없는 사업의 조기 구조조정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었다. 일본기업의 합병 추이를 보면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에 걸쳐 크게 확대되는 모습을 보였다.
일본식 경영과 글로벌 경영의 접목
2000년대 중반 이후 일본기업의 구조조정 성과가 일부 가시화되는 속에서 성급한 단기지향의 문제점을 억제하고 일본식 경영의 장점을 접목하려는 노력이 많아졌다. 성과급 연봉제를 도입한 일본기업의 경우도 신규채용 이후 일정기간까지는 연공서열적인 요소를 다시 강화하는 한편 성과 평가에서 부하 육성이나 조직에 대한 협조 기여도 등을 고려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일본기업이 매출 확대를 중시하며, 저수익을 감수하는 과거의 경영으로 회귀하지는 않았으나 글로벌 스탠더드 도입으로 인해 지나치게 단기 성과 달성에 치우쳐진 시각을 수정하면서 중장기적 기술 및 사업 투자 전략을 강화했다. 특히 소재 분야에서는 탄소섬유나 수 처리 분리 막, IT기기 관련 소재 등에서 수십년 동안의 연구개발 성과를 바탕으로 한 제품 혁신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진정한 구조조정 성과를 거두기 위해 기존의 관행이나 경영시스템에서 버려야 하는 부분과 버리지 말아야 할 부분을 검토하면서 시대의 트렌드에 맞게 혁신 효과를 추구하는 방향이 강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모든 일본기업의 구조조정이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도요타와 같은 기업들은 기존 사업의 합리화 및 구조조정 뿐 아니라 중장기적 수익창출력을 강화하기 위한 신규 성장 사업의 개척과 육성에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 구조조정이 단순한 축소균형에 빠지게 될 경우 결국 글로벌 경쟁력을 구축할 수 없고 매출과 이익의 성장에도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도요타자동차는 일상적으로 제조현장에서의 합리화, 제품설계 단계에서의 원가절감에 뛰어나지만 1990년대 말에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개발하고 2000년대에 보급시키는 데 성공하는 등 끊임없이 신제품 개발 능력을 강화하면서 수익성 제고에 성공하고 있다. 도요타의 강점은 도요타식 생산시스템에 있다는 오해도 많지만 사실은 도요타의 제품개발 시스템이 진정한 도요타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다.
2. 주요 산업에서의 기업통폐합과 경쟁력 회생 노력
신닛테츠스미킨 등 철강 산업의 경쟁력 회생
일본기업의 구조조정은 장기불황기에 전반적으로 우여곡절을 보여 왔으나 산업별 상황이나 성과에는 차이가 있었다. 기업이나 사업의 통합과정에서 각 사별로 설비나 기술의 규격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통합의 효과를 거두기 위해 실무차원에서의 통합 시너지를 제고하는 전략이 중요한 경우가 많았다.
철강 산업의 경우 대형 고로 5개사 체제가 신닛테츠스미킨과 JFE 등 대형 2개사와 중견 코베제강소를 포함한 3개사체제로 통합되면서 결과적으로 수익성 제고 효과를 거두었다. 기업통합 과정에서 인력 감축이 이루어지면서 근로자 1인당 조강생산량이 1990년~2014년 사이에 72%나 확대되었다.
그러나 인원을 감축하고 사업을 축소하는 구조조정이 장기간 지속된 결과 성장활력이 떨어져 2000년대에 일본 철강 산업은 점차 한국, 중국의 추격을 받게 되었다. 특히 리먼쇼크 이후의 세계경제 부진이 일본 철강기업의 경영을 압박하였다.
이에 따라 일본 철강 기업들은 에너지 절약, IT기술 적용 등을 통한 생산성 및 품질향상 노력과 함께 고부가가치 특수 철강 부문을 강화해 왔다. 자동차용 철강 분야에서는 탄소섬유, 알루미늄 등의 다른 소재와 경쟁할 수 있는 고강도 경량이면서 녹슬지 않는 고부가 신소재의 개발에 주력했다.
그리고 제조 장치, 센서, 소재 분석 등 일본이 강점을 가진 기술력을 기반으로 고부가가치 철강재 기술 고도화와 제조공정 혁신을 추진했다. 최근에는 제조공정에서 IoT 기술을 활용한 품질개선, 자동제어 비중 확대, 설비의 효율적 운영, 생산차질 및 사고 최소화, 에너지 투입량 효율화 등에 주력하고 있다.
구조조정 효과와 함께 차별화 전략을 병행하는 노력, 아베노믹스 이후의 엔저 등에 힙입어 일본 주요 철강회사의 ROE는 2012년~2014년 사이에 신닛테츠스미킨이 -6%에서 8%, JFE가 3%에서 8%, 코베제강소가 -5%에서 10%로 개선되었다.
메모리 반도체, 기술적 시너지 확대에 실패
한국이나 대만기업과 경합한 일본 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경우 주요 기업 간 사업통합이 진행되고 정책적인 지원도 받았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외국기업에게 매각되는 실패를 겪었다. 1999년에 히타치와 NEC의 메모리 반도체 부문이 통합하여 NEC히타치 메모리가 설립될 당시에는 세계최강의 반도체 회사가 탄생했다고 일본 내에서 기대가 컸다. 일본 기업이 1980년대 말에는 세계 DRAM 반도체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세계시장을 석권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합법인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발족 당시의 17% 수준에서 2002년에는 4% 정도까지 급락했다.
일본기업은 첨단 기술력을 자랑했지만 두 모회사의 기술 규격이 달라서 통합시너지를 내기가 어려웠던 데다 양사 출신자들이 서로 견제한 결과 전략적으로 빠른 의사결정을 할 수가 없었다. NEC히타치 메모리는 2000년에 회사명을 엘피다메모리로 바꾸고 2002년에는 TI 출신의 전문 경영자인 사카모토 유키오 사장을 발탁하여 양사 출신 임원진을 경질하고 개혁을 단행 하면서 경영실적이 일시적으로 개선되기도 했다. 엘피다 메모리의 DRAM 세계시장 점유율도 2008년에는 15% 전후로 회복했다. 사카모토 사장은 엘피다메모리의 기술규격을 양산기술에서 강점이 있었던 NEC로 통합하는 한편 2003년에는 미쓰비시전기의 DRAM 사업도 통합해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엘피다메모리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가 위축되고 엔고가 진행되면서 다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다른 반도체 기업들이 낸드플래시, 스마트폰 시장을 개척한 것과 달리 엘피다메모리는 혁신 흐름을 타지 못해 여러 번의 경영위기를 맞았다. 그때마다 대규모 정부지원을 받았지만 경영을 정상화하지 못하고 2012년에 결국 미국의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에게 매각되고 말았다.
DRAM 반도체는 제품 개발 과정에서 구축한 생산 공정 프로세스를 양산 과정에서 수율을 올리면서 개선해 생산시스템을 확정한다. 단순히 제조장비만 설치해서는 제대로 된 제품이 나오지 않는다. 히타치의 경우 최신 기술에 강점이 있었다. NEC는 양산과정에서 수율을 올리는 치밀함이 있었으나 공정을 세분화했기 때문에 인력 코스트 부담이 크다는 단점이 있었다. 하위 기업이었던 미쓰비시전기는 상대적으로 소수의 기술자가 많은 공정을 파악해 공정을 통합하는 능력이 우수했다. 이들 3사의 강약점을 감안하여 히타치 출신자가 연구개발 부문, 미쓰비시전기가 공정개발 센터에서 생산공정을 설계하고 NEC가 양산공장에서 양산기술에 집중했더라면 세계 최강의 메모리 반도체 기업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엘피다메모리의 사카모토 사장도 이러한 기술적 시너지의 제고와 제품 혁신을 주도하지 못했다. 전반적으로 일본 전자 기업은 아날로그 시대의 강점이나 범용컴퓨터 시대의 반도체 기술 등 과거의 성공방정식에 사로잡혀 기술 트렌드가 급변하고 기존 상식이 통하지 않는 시대에 대응하지 못하면서 시장점유율의 급락을 겪었다고 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재무적인 측면을 주로 보고 경쟁사간 사업을 통합할 경우 해당 산업의 기술 트렌드 변화나 기술적인 시너지에 대한 고려가 부족할 수 있다. 이 경우 아무리 추진력이 있는 전문경영인을 발탁해도 구조조정이 성과를 거두기가 어렵다.
조선 산업의 통합 및 전략적 제휴, 아직 미완성
일본 조선 산업은 한때 세계최강을 자랑했으나 한국, 중국의 추격을 받고 규모 면에서도 한국기업에게 밀리면서 2000년대 초반 이후 구조조정을 강화해 왔다. 일본 조선사의 설비는 한국기업에 비해 규모가 작은데다 노후화되어 있었다. 그러나 일본기업은 경쟁사와의 합병이나 전략적 제휴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생산성 향상과 수익구조 개선에 나섰다. 조선 산업은 전자산업과 달리 생산 공정의 완전 자동화가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일본기업은 현장 근로자의 능력 향상과 고부가가치 분야의 강화에 주력했다.
2002년에 히타치조선과 JFE가 조선 사업을 통합하여 설립한 Universal사와 IHI, 스미토모중기계가 통합해서 설립된 IHI Marine United가 2013년에 다시 합병하여 Japan Marine United가 탄생했다. 조선 사업 부문을 분리한 각사는 다른 사업에 매진했다. 히타치조선의 경우 조선 사업을 분리한 후 환경 정화장치, 공장기계 등 기술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계 분야를 강화하였으며, 최근에는 차세대 2차 전지의 연구개발에도 주력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 조선사들은 경쟁사와의 사업 통합과 함께 LNG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과 선박의 설계 분야를 확대하고, 연비성능을 높이고 에코십(Eco-ship)으로서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등 차별화 전략을 강화했다. 일본 최대 조선사인 이마바리와 미쓰비시중공업은 2012년에 고연비 컨테이너 선박부문에서 제휴한 데 이어 2013년에는 공동출자하여 LNG선박의 설계 및 판매를 담당하는 공동 회사 MI LNG를 설립했다.
또한 이마바리사의 경우 1990년대 이후 중소 조선사를 잇달아 매수하면서 한국기업에 버금가는 규모로 성장하였다. 2001년에 ‘하시조우’, 2005년에 ‘와타나베’, ‘신카사’, 2014년 ‘코요’, 2015년 ‘타도츠’ 등을 매수해 일본 최대 조선회사로 성장했다.
이마바리는 고부가가치 선박을 미쓰비시중공업과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생산하는 한편 중형 조선사를 매수하면서 강점 분야에 특화 하는 전략으로 성과를 거두어 왔다. 일본의 중형 조선사의 경우 대형 선박에 강한 한국기업 등과의 전면적인 경쟁을 피하면서 벌크캐리어 등 특정 선박 분야에 집중했다. 단가는 낮지만 선주들의 특수한 요구에 철저하게 대응하는 노하우와 기술을 축적하면서 안정적인 수익기반을 구축해 왔다. 이들은 첨단기술보다도 기존 기술을 잘 활용하는 아이디어를 개발하면서 코스트를 절감했다. 단가는 낮지만 상대적으로 수요의 변동성이 적은 벌크캐리어에 집중하면서 설계 모델의 반복 활용, 부품 및 자재 조달 등에서 규모의 경제가 추구되었다. 이마바리의 본거지인 에히메현은 일본의 시코쿠 세토내해 연안에 위치하여 중형 조선사가 많고 조선 관련 기계 산업 등이 클러스터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동사는 이 지역의 조선사들을 선택적으로 매수하면서 규모를 키웠다.
그리고 이마바리는 2015년에 400억엔을 투자해서 신형 대규모 선박 건조설비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일본 조선산업으로서는 16년만의 일이었다. 세계경제 부진으로 주력부문이었던 벌크캐리어 등의 수요가 감소하고, 공급과잉도 심해지는 가운데 이마바리는 개선된 수익을 기반으로 한국기업들이 주도했던 대형 컨테이너 선박 시장의 개척에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동사는 2015년에 대만의 대규모 해운사인 에버그린으로부터 초대형(2만 TEU)급 컨테이너선 11척을 수주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물론, 일본 조선사의 구조조정이 순풍만 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고부가가치화 전략에 주력했던 미쓰비시중공업의 경우 대형 여객선 사업을 강화해 왔으나 노하우 부족 등으로 인해 선주의 까다로운 요구에 대응하느라 수정을 거듭하면서 납기가 지연되고 비용이 급증해 수주 금액의 2배를 넘는 막대한 손실이 발생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고부가가치 시장에서 활로 찾은 화학기업
석유화학 산업의 경우 범용 화학제품을 제조하는 대형 종합화학회사들은 장기불황에다 아시아 각국 기업들과의 경쟁 격화로 인해 수익이 악화되어 어려움을 겪은 반면, IT, 헬스케어, 첨단주조 재료 등의 특수소재 분야에 집중한 클라레, 도레이 등의 전문 화학기업은 상대적으로 호조를 보였다.
이에 따라 미쓰이, 미쓰비시 등의 종합화학 기업들이 잇달아 석유화학 부문의 통합 등 구조조정을 해 왔다. 일본의 석유화학 단지의 경우 소형 설비가 난립되어 과거부터 경기에 따라 과잉공급이 우려되어 왔다. 고도성장기에도 이러한 과잉설비 문제가 해소되지 않아 그때마다 일본 통산성(현 경제산업성) 주도의 공급 조절 카르텔이 추진되었다. 이것이 설비의 대형화와 경쟁력 향상에 부정적으로 작용한 측면도 있었다. 따라서 장기불황기를 거치면서 카르텔보다 사업체 수를 줄이는 기업 및 사업 통합이 활발해진 것이다.
미쓰비시의 경우 1994년 10월에 미쓰비시유화와 미쓰비시화성이 합병 함으로써 미쓰비시화학이 탄생하고 이 미쓰비시화학은 1999년에 의약품 사업을 분사 하여 타나베제약과 합병, 미쓰비시도쿄제약을 설립했다. 그리고 2001년에는 미쓰비시도쿄제약과 웰파이드가 합병, 미쓰비시웰퍼머로서 발족, 2005년 10월에 미쓰비시화학과 미쓰비시웰퍼머가 주식 이전을 통해 공동지주회사인 미쓰비시케미컬HD를 설립했다. 그리고 미쓰비시케미컬HD는 2008년에는 미쓰비시수지(합성수지), 2010년에는 미쓰비시레이욘(섬유원료), 2014년에는 태양일산(공업가스)을 잇따라 인수하였다.
미쓰비시케미컬HD 탄생 이후 매출액이 1조 3,500억엔이나 확대되는 가운데 채산성이 떨어지는 화학비료, 나일론 등의 사업(3,100억엔 정도)을 정리하면서 사업의 신진대사를 촉진했다. 동사는 아크릴 수지 등 성장성이 떨어지지만 강점이 있고 사업의 기반이 되는 분야에 주력하는 한편, 탄소섬유 복합 소재처럼 기술력이 있는 사업을 육성하고 있다. 또한 동사는 신사업으로서 소비자 스스로 약국에서 혈액을 채취할 수 있는 간이 검사시스템 등 매출규모는 크지 않지만 경쟁사가 쉽게 들어오지 못하는 틈새 사업을 개발하고 있다. M&A 등을 통해 소규모이지만 진입 장벽이 높은 신사업을 다수 개척하고 있다.
일본 화학기업들은 기업 통합뿐만 아니라 채산성이 떨어진 사업을 경쟁사와 함께 합치는 형태의 통합도 추진해 왔다. 쇼와전공(65%), 신일본석유(JX계 35%)가 각사의 폴리올레핀(LDPE, HDPE, PP) 사업을 1995년에 통합했다. 이를 통해 전체적인 생산 설비의 가동 효율을 제고하고 간접비용의 절감에 기여했다. 이와 함께 일본의 각 유화단지별로 에너지, 가스, 수도, 물류 등을 공동으로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등 공단 내에서 다른 기업들과 생산효율 개선 방안을 모색하는 사업이 여러번에 걸쳐서 추진되었다.
3. 일본정부의 구조조정 추진 정책
강제적인 행정지도에서 상시 구조조정 유도 체제로
일본정부는 장기불황 돌입 후 상당 기간 산업구조조정을 주도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1990년대 말 쯤에 일본경제의 위기가 고조되자 산업재생 정책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과거 통상산업성(현 경제산업성)은 경기가 후퇴하고 과잉설비 문제가 대두할 때마다 민간기업에 대한 행정지도를 통해 과잉설비의 폐기, 가동률 조절 등을 유도했지만 산업정책에 대한 회의론이 커지면서 1990년대 이후에는 기업에 의한 자율적인 통합을 지원하는 자세로 변했다. 물론, 앞에서 본 바와 같은 주요제조업에서의 기업 간 통합 과정 등에 일본정부의 입김이 작용한 것은 사실이다. 최근의 샤프 매각 과정에서도 경제산업성이 외국기업에게 기술을 유출시켜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 상당한 압력으로 작용한 바 있다.
그러나 일본정부의 정책 초점은 상시 구조조정을 유도하기 위한 시스템 구축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1999년에 도입된 ‘산업활력재생특별조치법(산업재생법)’은 민간기업간의 통합 및 사업통합에 대한 세제·금융지원과 독점금지 예외적용 등이 제도적으로 가능하게 했다. 일본정부도 기업의 통합과 구조조정을 통한 산업의 신진대사를 노린 것이다. 기업의 상시 구조조정 계획을 지원하는 이 산업재생법은 한시 입법이었지만 2003년, 2007년에 확대 연장된 후 2009년에 ‘산업활력 재생 및 산업활동의 혁신에 관한 특별조치법(산업활력법)’으로 명칭이 개정된 후 2014년에 아베정권에서 ‘산업경쟁력 강화법’으로 계승되었다. 또한 산업재생법을 측면 지원하는 정부계 펀드인 산업재생기구(2003~2007년)가 각종 기업통합, 사업통합 계획에 자금을 지원했으며, 이는 2009년 이후 산업혁신기구로 개편되어 활동 중이다.
이러한 일본정부의 산업재생 정책에서는 과거 경제산업성과 독점금지 정책을 담당하는 공정거래위원회가 대립했던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다. 사업통합으로 시장지배력이 강화될 수 있는 각종 안건에 대해 경제산업성과 각 부처가 부처간 협력할 수 있는 정책 추진체제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산업재생정책을 여러 부처가 수평적으로 추진하는 형태를 갖추었기 때문에 총리실의 종합조정 역할이 강화되기도 했다.
일본정부의 이러한 산업재생 정책은 앞에서 본 철강, 조선, 화학 등 대규모 제조업의 구조조정을 촉진하는 효과를 거두었다. 또한 경영위기를 겪고 있던 각 지방 중소기업의 활력 제고에도 기여했다. 일본 최대의 유통기업이었던 다이에이가 2000년대의 경영위기에서 파산을 면할 수 있었던 것도 산업재생법을 활용하고 산업재생기구에서 자금 지원을 받았기 때문이며, 그 후 다이에이는 2013년에 순조롭게 거대 유통사인 ‘이온’에 통합될 수 있었다.
이노베이션 촉진형 정책으로 전환
일본의 산업구조조정은 장기불황 돌입 후 15년 정도 지난 2000년대 중반 정도 되어서 어느 정도 진전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일본정부가 성장전략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도 이 시점이다. 2006년에 당시 코이즈미 총리에 의해 신경제성장전략이 처음 제시되었다.
그후 역대 정권의 성장전략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성장전략이 제시되어 왔다. 다만, 이들 정책의 명칭 등이 바뀌어도 일본이 스스로 이노베이션을 주도하고 성장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기초기술, 응용기술, 기업의 제품개발 등을 망라하는 이노베이션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방향은 어느 정도 유지되었기 때문에 정책의 누적적인 효과 면에서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다.
△ 그린 이노베이션 △ IT혁명 △ 신소재 혁신 △ 헬스케어 신사업 육성 등에서 차세대 성장산업을 육성하려는 정책의 효과가 조금씩 누적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린 이노베이션의 경우 2011년의 동일본대지진 후 더 가속되어 태양광, 풍력, 수력 등 재생 에너지의 전력생산의 경우 2012~2014년 사이에 연평균 33%의 증가세를 보였다. 재생에너지가 급성장하는 가운데 각종 친환경 에너지 관련 산업도 성장하면서 기술력을 높이고 있으며, 파나소닉의 경우 지난 3월 2일에 결정형 실리콘 계열의 태양전지 모듈의 전력전환 효율을 23.8%로 올려 지금까지 세계최고였던 미국의 SunPower의 22.8%를 능가했다. 파나소닉은 비결정형 실리콘 소재를 혼합하는 헤테로 구조의 소재 기술로 높은 발전 효율을 달성한 것이다.
또한 일본은 헬스케어 분야에서는 항PD-1항체라는 암 치료약을 개발했다. 이는 기존의 암치료약과 달리 환자 본인의 면역기능을 활용(암세포가 면역세포의 공격을 혼란 시키는 조작행위를 약으로 억제)하는 항암제로서 큰 효과가 확인되고 있다. 이는 학술적으로 평가가 높은 동시에 상업적인 성과가 기대되고 있다.
일본정부도 이러한 민간주도의 신성장산업을 촉진하기 위한 규제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특정 산업을 집중육성하는 식의 과거형 산업정책의 비중은 낮아졌지만 일본정부는 민간기업과의 대화, 협의 등을 통해 차세대 산업에 대한 비전을 공유하고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차세대 유망 산업의 방향에 맞는 신성장 산업생태계 형성을 위해 국가 전략 기술 투자, 자금 지원 등을 꾸준히 실시하고 있다.
아베노믹스의 중요정책 중 하나인 산업경쟁력 강화법의 경우 기업이 신규사업을 검토할 때 해당 사업이 위법인지, 적법인지의 여부를 정부가 유권해석을 함으로써 규제의 ‘회색 지대’를 해소하고 있다. 지금까지 세상에 없었던 신사업, 신제품의 경우 각각의 법률 제정을 기다린다면 글로벌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일본정부는 기존의 법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행정의 주도성 및 유연성을 높여 민간기업의 창조활동을 지원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4. 일본기업 구조조정의 교훈
일본의 구조조정은 여러 각도에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경제 및 산업구조의 트렌드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것이 중요했는데, 일본이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시점에서 구조조정을 과감하게 하지 못했다는 것이 비판되는 부분일 것이다. 통상적인 경기순환과 달리 경제 및 산업 환경의 구조나 트렌드가 변화할 때에는 참고 견디고 원가 절감에 매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트렌드에 맞게 고통이 따르더라도 근본적으로 구조를 혁신하는 노력이 필요했다고 할 수 있다.
초기 대응의 미숙으로 파생된 것이기도 하지만 구조조정을 장기간에 걸쳐서 서서히 진행하는 것은 일시적인 고통은 적더라도 결과적으로 보면 경제전체적으로나 기업의 성장 활력 제고에 부정적으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일본 연구의 대가인 제임스 아베글렌(James Christian Abegglen, 전후의 일본식 경영의 본질이 종신고용제, 연공서열, 기업내 조합 등 3가지 요소라고 처음으로 이론화)은 저서를 통해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은 조용히 진행된 구조혁신의 10년이었다고 평가한 바 있지만 신규채용을 오랫동안 억제하고 고령 근로자의 정년퇴직으로 1인당 생산성을 높이는 식으로 구조조정 기간이 길어진 것은 젊은 층의 경제 활동 기회를 제한함으로써 일본경제의 활력을 저하시켰다. 구조조정은 단기에 한꺼번에 집중적으로 마무리할 필요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일본기업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일본식 경영과 글로벌 스탠더드의 균형을 잡는데 고전했다. 버려야 할 성공방정식과 지켜야 할 핵심경쟁력을 구별해서 새로운 시대에 대응하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강점을 발전시키면서 글로벌한 트렌드에 적응하기 위한 실행력이 중요했다.
셋째, 구조조정과 같이 전략방향의 변화를 주도하기 위해서는 경영진의 리더십과 이를 뒷받침하는 전략기획 능력이 필요했지만 일본기업의 경우 원래가 Bottom up식의 의사결정에 강점이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전략경영이 어려웠다. 화학 기업들의 경우 범용 기초 합성수지 사업을 포기하고 자신의 강점인 기초 소재기술을 기반으로 IT나 헬스케어 사업 등을 강화하는 과감한 발상의 전환을 할 수 있었듯이 경영방식의 혁신을 구조조정과 함께 추진한 기업이 성공하기 쉬웠다. 예를 들어 섬유기업이나 식품기업이 갑자기 IT나 자동차 분야를 개척하는 것과 같은 전략적 결단을 할 수 있는 최고경영층 주도의 경영이 중요했던 것이다.
넷째, 기업간 및 사업간 통합을 수반하는 산업구조조정에서 엘피다메모리의 사례처럼 기업간 설비사양 및 기술 체계의 차이가 클 경우 부작용을 줄이고 시너지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주도 기업이 초기에 리더십을 확보하여 전략 방향을 통일할 필요가 있었다. 기업간 통합에서는 금융 및 재무적인 관점과 함께 기술적인 관점에서 구조조정을 주도할 수 있는 리더십과 조언 기능이 대단히 중요했다고 할 수 있다.
다섯째, 사업의 축소 전략만으로는 한계가 있었으며, 성장전략의 병행이 중요했다. 또한 성장전략에서는 과거의 연장선상에서 전략을 추진할 경우 성과가 미진했다. 샤프의 LCD 사업 대형투자의 실패 사례처럼, 일본기업이 잘 아는 사업의 개량형, 업그레이드형 대형 투자의 리스크를 과소평가했던 것도 문제였다. 샤프는 ‘LCD 다음은 LCD’라고 공언할 정도로 기존 제품이나 기술의 우위성을 지나치게 과신한 측면이 있었다. 자신이 잘 아는 사업의 경우라도 신규투자 금액이 커지면 리스크는 커질 수밖에 없다. 오히려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 벤처형으로 소규모 투자를 여러 개 실시해 틈새 분야에서 성과를 본 사례가 적지 않았다.
여섯째, 사업의 철수나 매각은 경제적 가치가 남아 있을 때 초기에 추진할 필요가 있었으나 현장 주도성이 강한 일본기업의 경우 이는 쉽지 않았다. 많은 경우 완전히 기업가치가 소멸될 정도로 악화되지 않으면 실무진을 설득하기가 어려웠다. 사업이 확대될 때 축소 및 철수 결정 기준이 미리 정해져 있었다면 이런 문제를 상당히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일본 종합상사의 경우 수많은 사업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철수기준을 세워서 구조조정에 나서기도 했다.
구조조정은 기존 조직이나 관행을 파괴하는 측면이 강하며, 인력 문제도 수반되기 때문에 쉽지 않은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기업의 버는 힘을 끊임없이 강화하지 않으면 국가경제가 장기적으로 쇠퇴할 수밖에 없고 근로자도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다. ‘버는 힘’의 원천이 되는 이노베이션은 슘페터가 일찌기 지적한 것처럼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를 필요로 한다. 파괴 없이, 버리지 않고서는 이노베이션을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업, 개인, 정부로서는 글로벌시장의 냉혹한 파괴 압력이 다가오기 이전에 자기 스스로를 파괴하면서 혁신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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