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 '이머징 시장에 대한 오해와 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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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다음의 이머징 시장을 찾기 위한 글로벌 기업들의 관심이 뜨겁다. 그러나 여전히 이머징 시장에 대한 오해와 편견 때문에 잘못된 전략을 세우고 실행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합리적인 이머징 시장에 대한 전략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업 담당자 자신이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고, 직접적인 현지 분석과 편향되지 않은 조언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머징 시장에 대한 깊은 이해가 선행되지 않은 전략은 기업에게 오히려 위협이 될 수도 있다.
글로벌 식품 기업인 네슬레는 작년 북아프리카 21개 국가의 인력 15%를 줄이고 르완다와 우간다에서는 완전히 철수한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네슬레 북아프리카 지역 본부장은 파이낸셜타임즈와의 인터뷰를 통해 가장 큰 실패의 원인은 중산층의 규모를 잘 못 계산한 것이라고 밝혔다. 인터뷰 내용에 따르면, 네슬레는 2011년 북아프리카의 성장 잠재력에 대한 논의가 뜨거울 때, 아프리카개발은행의 자료를 통해 이 지역의 중산층 규모를 3억 3천만명으로 추정하여 공격적인 진입 전략을 선택하였다. 그러나 네슬레가 사업을 진행하는 지난 4년의 과정 중, 실제 중산층 규모는 고작 1천 5백만명 수준이었고, 증가속도가 예측치와 달리 매우 더딘 것을 발견했다. 물론, 이 시장은 향후 성장할 가능성이 높지만, 속도에 대한 추정은 상당부분 오해가 있었다고 밝혔다.
기존 시장의 성장둔화는 자연스럽게 글로벌 기업들이 이머징 시장에 대한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앞으로도 글로벌 기업들은 중국 다음의 성장 시장을 발굴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지속할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위의 네슬레 사례와 같이 여전히 여러 글로벌 기업들이 이머징 시장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가지고 전략을 수립하는 실수를 범할 수 있다. 합리적인 이머징 시장에 대한 전략을 세우기 위해서는 알려진 정보와 지식들의 정확한 사실 여부를 반드시 확인하고 오해와 편견들은 없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1. 이머징 시장 중산층 잠재력은 매우 크다?
글로벌 기업들이 이머징 시장을 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중산층의 규모 및 증가율이다. 글로벌 기업의 상품을 소비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앞으로 얼마나 많아질지가 매우 중요한데, 이를 추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다. 주요 전문기관에서는 연령별·지역별·가구별 인구수, GDP, 가처분소득 등의 과거 숫자 데이터를 이용하여 미래의 시장 규모를 추정한다. 그러나 과거 숫자만으로 분석된 예측치, 그리고 관련된 전문가들의 주관적 견해들로 인하여 결과는 종종 과다하게 계산되는 경우가 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참여한 인도의 쇼핑몰 건설 프로젝트 역시 중산층이 10년간 약 4억명까지 성장할 것이라는 예측을 통해서 진행되었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인도의 고급 쇼핑몰을 꾸준히 이용할 수 있는 중산층 규모는 10년이 지난 현재 약 1천만명 남짓하다고 분석했다. 결과적으로 새로 세워진 250개 이상의 대형 쇼핑몰은 대부분이 매우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2. 한 국가의 사람들은 동질적인 편이다?
이머징 시장에 대해 이해하려면 반드시 대도시와 그 외의 지역을 두루 살펴봐야 한다. 교통 인프라나 네트워크의 발달이 더딘 지역일수록 각 지역의 특색이 매우 상이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각 지역의 사람들을 살펴보면 종종 그들이 심지어 같은 민족이 아닌 경우도 있다. 비단 겉모습뿐만 아니라 문화, 종교, 심지어 언어까지 다르기도 하다. 몇 년 전, 미얀마 시장에 대한 관심이 뜨거울 때, 직접 시장조사를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여러 민족으로 구성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갔지만, 실제 가보니 20개가 넘는 민족들이 여러 주에 흩어져 살고 있었고, 각 주들을 나누는 산악 지형은 마치 각각의 주들이 서로 다른 국가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이들은 저마다 다른 문화를 가지고 다른 형태의 소비 패턴을 보이기 때문에 같은 세그먼트로 묶어서 접근하는 방식은 좋은 전략이 아닐 것이다.
3. 정부의 투자 계획은 어느 정도는 믿을 수 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이머징 시장에 본격적인 투자를 시작할 때, 가장 예의 주시하는 부분은 아마도 정부의 역할일 것이다. 글로벌 기업들은 해당 국가의 정부가 경제 성장에 적극적인지, 외국 기업에 대한 혜택을 얼마나 주는지, 부정부패가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갑자기 정권이 바뀌는 리스크는 없는지 등을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그 중에서도 정부의 공식적인 장기 인프라 투자 계획은 글로벌 기업들에게 매우 중요한 정보가 된다. 도로, 항만, 철도, 전기, 수도 등 기본적인 인프라가 투자하려는 지역에 적시에 깔리지 않으면, 사업을 성공적으로 시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과 같은 강력한 중앙정부의 힘이 있는 국가는 계획에 맞게 인프라 투자를 밀어붙인다. 그러나 지역 정부로 힘이 흩어져 있는 국가에서는 정부의 장기 계획이 종종 늦춰지거나 아예 취소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포스코는 인도 오리사주에서 철강 공장을 설립하는 약 12조원 규모의 프로젝트를 인도 정부와 체결했었다. 그러나 끊임없는 주민들의 시위와 정부의 애매한 태도로 인하여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로 머물러 있다. 또한 인도에서는 수 년째 끊어진 채 방치되고 있는 고가다리나 움푹 패인 도로 등을 쉽게 볼 수 있는데, 현지 전문가는 부정 부패로 인하여 공사비가 중간에 다 사라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4. 제품을 현지화 해야한다?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이머징 시장을 진입할 때, 대부분 먼저 기존 시장에서 성공한 제품을 수출하면서 테스트를 시작한다. 시장의 반응이 지속적으로 좋아지면, 본격적으로 시장 공략에 나서는데,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이 바로 현지화 전략이다. 해당 국가의 타겟 소비자를 자세히 분석하고 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상태에서 펼치는 현지화 전략은 매우 뜨거운 반응을 얻지만, 어설픈 현지화 전략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2011년 독일의 글로벌 기업인 퓨마 역시 아랍에미리트 시장에서 어설픈 현지화로 곤욕을 치렀다. 당시 퓨마는 아랍에미리트의 40주년 독립기념일을 축하하는 행사로 국기의 색상인 빨간색, 하얀색, 초록색을 활용한 운동화를 출시했다. 그러나 퓨마는 중동에서 신발이나 발은 불경스러운 것으로 간주된다는 것을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 신성한 국기를 신발 디자인에 넣은 것은 아랍에미리트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한 소비자들은 불매운동을 벌이면서 격렬하게 항의했다. 결국, 퓨마는 공식적으로 실수를 인정하며 사과했고, 제품을 전량 회수하여 패기처분 할 수 밖에 없었다.
5. 저가 제품으로 승부해야 성공한다?
물론 좋은 가치를 저가에 제공하는 것은 모든 기업들이 추구해야 할 성공전략일 것이다. 그러나 글로벌 기업들이 생각하는 ‘저가’라는 개념은 이머징 시장에서 저가가 아닐 수도 있다. 2006년 듀퐁의 자회사인 솔래이는 인도에서 콩 단백질 분말 제품을 현지에 맞게 적은 용량의 패키지에 넣어 약 30센트에 선보였다. 솔래이는 그러한 저가 전략이 인도의 저소득층에 어필할 것이라고 판단했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왜냐하면, 타겟 소비자들은 오래전부터 렌틸콩이라는 우수한 천연 단백질을 카레나 수프 등에 넣어 먹곤 했기 때문이다. 4인 가족이 한끼 식사에 필요한 렌틸콩의 가격은 솔래이 단백질 분말 일인용 가격보다 저렴했다.
때로는 오히려 이머징 시장의 고가 세그먼트를 공략하는 것도 좋은 전략이 될 수 있다. 이머징 시장이 성장할 때, 종종 부의 편중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카자흐스탄, 캄보디아 등과 같은 새로운 이머징 시장에서의 럭셔리 자동차 성장률이 2020년까지 연평균 9%가 넘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실제로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인 롤스로이스의 작년 신규 매장 6개 중 4개가 이머징 시장(아제르바이젠, 캄보디아, 멕시코, 카자흐스탄)에서 오픈했다.
6. 우수한 현지 인재들을 쉽게 고용할 수 있다?
인도의 MIT로 알려진 IIT(Indian Institutes of Technology)는 현재 인도 주요 18개 도시에 설립되어있다. 매년 이곳에서 약 6만명의 학사, 석사, 박사들이 배출된다. 숫자만 보면 글로벌 기업들이 탐내는 수많은 엘리트 공대생 인력자원이 충분해 보이지만 현실은 다르다. 작년 구글, 오라클과 같은 IT업체들이 뽑아간 IIT 소프트웨어 전공 졸업생들의 연봉은 약 2천만루피(3억5천만원)에 달하고 골드만삭스나 모건스탠리와 같은 금융권이나 컨설팅 업체에서도 약 1천만루피(1억7천만원) 이상의 연봉을 제시한다. 설사 이러한 인재를 뽑았다 하더라도, 책임과 권한이 적절히 주어지지 않거나 개인적인 성장이 어려운 기업 문화에서는 이직률이 매우 높다. 현지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르면 파격적인 대우를 해주지 않는 경우에는 차라리 성장성이 높고 문화적으로 편한 로컬 대기업이나 안정적인 정부기관에 취업하는 것을 선호한다고 한다.
따라서 일반적인 글로벌 기업들에게 우수한 인재를 얻을 기회는 그리 크지 않을 수도 있다. 생산직과 관련해서도 오해와 편견이 있는데, 예를 들어 인도에 공장을 세우면 생산직 직원들과 직접 영어로 대화할 수 있어서 다른 이머징 시장보다 커뮤니케이션 비용이 적게 든다는 오해와 편견이 있다. 그러나 ‘인도 인력 개발 서베이’ 자료에 따르면 실제로 인도인 중 영어를 쓸 수 있는 사람은 약 10% 정도이고 유창하게 말할 수 있는 비율은 5% 미만이다. 그 밖에도 ‘베트남 인력들은 성실하다’, 멕시코 인력들은 ‘게으르다’ 등의 일반적인 생각들도 실제 현지 전문가들에 따르면 지극히 개인차일 뿐 전체를 설명할 수 없다고 한다.
이머징 시장의 소비자들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오해와 편견은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보통 과거의 제한적인 경험이나, 그러한 경험을 통해 전달된 2차 자료를 통해서 생성된다. 현재 그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직접 파악하는 것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를 추정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근거가 될 것이다. 현지 탐방 시에도 좋은 호텔, 식당, 쇼핑몰에만 머무른다면 일반 소비자들의 특성을 파악 할 수 없을 것이다. 글로벌 자동차 업체인 르노는 인도 시장에 대해 글로벌 히트 제품을 단지 저가로 바꾸어 승부하면 된다는 오해와 편견으로 초기 로간이라는 모델의 실패를 맛보았다. 실패 후, 르노는 본격적인 인도에 대한 리서치를 시작했다. 가장 먼저 르노는 인도 고객에 대한 철저한 연구를 위해 5개의 도시, 30가구의 포커스 그룹을 선별했다. 다른 기업들이 흔히 하는 포커스 그룹 인터뷰로는 인도 고객들의 니즈를 파악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르노는 현지 고객들의 동의 하에 제품 개발자들을 두 달간 고객들의 집에 투숙시켰다. 이러한 강도 높은 고객 조사 후에 제품 개발자들은 인도 고객들의 원하는 차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르노의 유럽 향 SUV인 더스터(Duster)를 출시 모델로 결정했으며, 무려 41개 부분에 걸친 크고 작은 현지화를 진행했다. 2012년 7월 2년간의 준비를 마친 더스터는 인도 시장에 공개되었고,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더스터는 1년만에 인도 콤팩트 SUV시장의 점유율 20퍼센트를 넘는 기염을 토하였다.
이머징 시장 진출 시, 사업 담당자의 과도한 확신도 주의해야 할 부분이다. 사업 담당자는 자신이 맡고 있는 시장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하게 되고, 본사로부터 더 큰 지원을 받기 위해 낙관적인 분석, 전망들로 편향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잘 알려지지 않은 국가일수록 객관적인 데이터나 리포트를 찾기 어렵기 때문에, 결국 사업 담당자의 판단을 신뢰할 수 밖에 없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중립적인 혹은 오히려 사업 담당자의 의견을 반박할 수 있는 데이터와 논리를 제공할 수 있는 편향되지 않은 조언 그룹이 필요할 수도 있다.
물론, 이머징 시장은 장기적으로 엄청난 기회의 땅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오해와 편견 없이, 철저한 현지 분석과 시장 조사를 하지 않는다면, 이 기회는 오히려 큰 손실을 가져다 주는 위협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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