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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경제연구원 '레드오션 중국 가전시장, 로컬&글로벌 기업의 생존전략 백태'


중국 가전시장이 몇 년째 침체에 빠져있다. 가전기업들의 생존공간이 좁아졌고, 향후 성장세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여기에 러스나 샤오미 같은 신규 플레이어들이 가전시장에 진입하면서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이런 분위기는 기존 플레이어들에게 변화를 강요하고 있다.


중국 대표 가전기업들은 사업 다각화를 통해 생존을 모색 중이다. 메이디는 로봇제조 사업에 진출하여 신규 수익원을 창출함과 동시에 기존 제조라인의 자동화를 통해 원가를 줄이고 시장 대응력을 높이려 하고 있다. 거리(Gree)는 스마트홈 생태계 구축을 위해 배터리와 에너지저장 기술을 보유한 업체를 인수하려는 중이다. 하이얼은 인터넷 플랫폼 기업으로의 변신을 꾀하는 중이다.


외국 가전기업들도 각자의 강점을 바탕으로 나름의 생존 방식을 찾고 있다. 보쉬지멘스는 일관된 프리미엄 전략을 통해 프리미엄 시장에서 강자의 위치에 올랐다. 파나소닉은 중국에서 TV사업을 포기하는 대신, 백색가전과 소형가전에 집중하면서 반전에 성공하고 있다. 필립스는 아이러니하게도 중국 TV사업을 포기했지만 브랜드 임대를 통해 중국에서 돈을 벌고 있다.

 

중국 가전시장은 분명 레드오션이다. 그러나 위의 기업들처럼 오히려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치열한 경쟁은 중국 로컬 기업들에게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을 수 밖에 없는 계기로, 글로벌 기업에게는 각자의 강점 역량에 맞추어 전략적 변화를 시도하는 계기로 작동하고 있다.

 


< 목 차 >


1. 변화하는 중국 가전시장
2. 사업 다각화 추진하는 중국 기업
3. 외국계 기업의 대응방식
4. 시사점

 


1. 변화하는 중국 가전시장

 


적자생존과 자연선택설은 생물 진화론의 기본적인 관점이다. 이 관점은 자연계뿐 아니라 치열한 시장 경쟁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수많은 경쟁자가 우글거리는 중국시장에선 더욱 그렇다. 지난해까지 중국 IT산업의 성공신화로 불렸던 샤오미가 휴대폰 실적이 악화하면서 회사 미래가 불투명해진 것이 단적인 예이다.


특히 중국 가전시장은 저성장 기조가 몇 해에 걸쳐 이어지면서, 기업들의 생존공간이 크게 좁아졌다. 향후 가전시장의 성장세 역시 불투명하다 보니, 결국 업계 선두기업들조차 적자생존을 위한 마지막 카드를 내놓기 시작했다. 항상 그래왔듯이 시장의 변화를 놓치지 않고, 기민하게 움직이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것이지만, 변화를 모색하는 과정 중에는 어느 쪽이 효과적인 승부수인지 간파해내기 어렵다.


본고에서는 최근 중국 가전 내수시장에서 변신을 모색하는 로컬기업과 글로벌기업의 다양한 생존전략을 소개한다. 중국 내수시장 공략에 공을 들이고 있는 한국기업들에게도 좋은 시사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신창타이’가 된 매출 부진


중국 가전시장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1분기 역시 부진하다. TV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등 4대 가전 중 TV만이 4% 성장했을 뿐, 나머지 3종 백색가전은 각각 8%, 2%, 16%씩 판매량이 줄었다. 가전제품 소비 보조금 조치 3건이 2013년 6월 모두 종료되면서 가전시장은 부진기에 들어섰고(<그림 1> 참조), 이는 향후 최소 3년 정도 가전시장의 ‘신창타이(新常态)’로 자리잡게 될 가능성이 크다.


소비 보조금은 당시 가전시장을 활성화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현재의 시장부진의 한 요인이 됐다. 보조금 정책으로 일부 가전 수요를 앞당겨올 수 있었고, 도시 및 농촌 가정의 가전 보유량이 빠르게 상승했다. 도시민 100가구당 가전 보유량은 TV 122대, 냉장고 94대, 세탁기 92대로 늘었고, 농촌의 경우엔 각각 117대, 83대, 79대에 달했다. 가전제품의 평균수명을 8년으로 계산하면, 보조금 정책 시기 구매한 가전제품의 교체시기는 빨라야 2018년이다.


더구나 중국 정부의 가전소비 진작정책도 직접적인 소비자 보조금 지급 방식에서 간접적으로 가전산업 혁신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보조금 혜택을 누릴 수 없게 된 소비자들로선 제품 교체 의욕이 줄 수밖에 없다.


변화하는 소비자 트렌드


전체적으로 가전시장은 부진한 반면, 프리미엄 가전은 고성장을 구가하고 있다. 냉장고를 예로 들면, 전체 시장이 부진한 상황 속에서도 양문형 과 다문형 냉장고는 20% 이상의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그림 2> 참조). 가격 구간별로 살펴보아도 20,000위안 이상의 최고급 제품은 최근 2년간 두 자릿수 성장을 유지하고 있다. 소비자들의 소비수준이 한 차원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경제성장률이 둔화하면서 과거 두 자릿수로 성장하던 가계소득 증가율이 한 자릿수로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그림 3> 참조), 프리미엄 가전제품의 판가가 떨어지는 추세여서 소비 업그레이드 추이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중국 부유층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그림 3> 참조). 초상은행 추정에 따르면 자산 1,000만 위안 이상의 부유층 규모가 2006년 18만명에서 2015년 126만 명으로 크게 늘었다. 프리미엄 가전이 다양해지면서 프리미엄 제품 군에서도 일반 프리미엄과 최고급 프리미엄으로 분화가 진행되고 있다. 자동차 시장에 비유하자면, 단순하게 독일산 프리미엄 세단을 찾았던 고객들이 벤츠(Benz)와 최상위 클래스인 마이바흐(Maybach)로 나뉘는 식이다.


한편 소비자가 선호하는 가전제품 유형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TV에 대한 부모세대의 인식이 ‘혼수가전 중 하나’ 정도에 머무르고 있는 반면, 개성을 중시하는 80허우와 90허우 젊은 층 중에는 자신을 더 잘 드러낼 수 있는 맞춤형(커스터마이징) 가전을 선택하는 사람이 늘기 시작했다. 비록 현재의 맞춤 가전은 외관 디자인 및 간단한 기능 추가 수준이지만 반응은 매우 좋다. 하이얼 퉁솨이(海尔统帅)가 내놓은 핸드 페인팅 버전의 냉장고와 에어컨, 메이디의 ‘캡틴 아메리카’ 버전의 맞춤형 세탁기 등이 좋은 사례다. 칭다오 하이얼의 재무제표에 따르면 2015년 커스터마이징 제품의 판매량이 15만 대에 달했다. 와이파이 기능을 통해 휴대폰 등 모바일 기기와 연동되거나, 또 자체적으로 스마트 진단, 에너지절약 등 기능을 갖추고 있는 스마트 가전제품 역시 가전시장의 총아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2%에 불과했던 스마트 냉장고 판매액의 비중은 올 1분기 7%에 달했고, 스마트 세탁기 역시 16%에 달했다. 가사노동보다 레저생활을 중시하는 유형의 소비자들은 소형 가전제품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2015년 중국의 소형 가전제품의 판매액은 12% 증가했다. 소형 가전제품의 보급률이 10%에 불과한 만큼 엄청난 시장 잠재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가전제품 소비 채널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채널이 모두 상호 연동되는 방식이 점차 주류가 되고 있다. 올해 1분기 냉장고, 세탁기, TV의 온라인 판매가 동기대비 각각 67%, 51%, 64% 늘어나는 등 크게 호조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가격이 비싸고 다양한 기능을 갖춘 프리미엄 가전제품은 여전히 오프라인 위주로 판매되고 있다. 소비자들이 구매 전에 제품을 체험해본 후 구매 결정을 내리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징둥(京东), 쑤닝(苏宁) 등 주요 유통업체들은 물류센터, 대리점, 서비스센터 등 인프라를 중소 도시까지 확장하고자 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오지의 소비자들도 서비스센터 등에서 제품을 직접 본 후 온라인으로 구매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중국 행정단위 상 낙후된 촌진(村镇)시장이 점차 온오프라인 통합의 시험장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괴로운’ 가전 메이커


중국 공신부 통계에 의하면 지난해 전국 가전제조 업종의 주영업 매출과 이윤 증가율이 모두 3년만에 최저를 기록했다(<그림 4> 참조). 주영업 매출은 0.4% 감소했다. 시장은 부진하지만, 온라인 채널의 시장침투율이 높아지자 가전 OEM을 하던 기업이나 심지어는 부품 공급업체들까지 자체 브랜드 제품 생산에 나서는 경우가 생겨났다. 패널 생산업체였던 BOE(京东方)가 프리미엄 TV 브랜드인 Alta를 출시했고, 가전 OEM 업체였던 자오츠(兆驰)도 펑싱(风行) 브랜드의 스마트TV를 내놨다. 스마트 가전이 등장하면서 인터넷기업들 역시 가전 영역으로 넘어오기 시작했다. 러스나 샤오미 같은 인터넷 기업들의 가전 브랜드는 이미 친숙한 브랜드로 성장했으며, 두 기업을 합쳐 올 1분기 TV 시장 점유율은 이미 5%에 가깝다. 전반적인 시장 부진과 늘어나는 경쟁자들로 인해 중국 내 기존 가전 업체들은 경계를 늦출 수가 없게 됐다.


외국계 가전기업의 경우에는 상술한 여러 가지 어려움뿐 아니라 갈수록 치열해지는 중국 로컬기업과의 시장경쟁까지 견뎌야 한다. 과거 외국 가전기업이 주도하던 프리미엄 가전시장 구도는 지금 중국 로컬기업으로 인해 무너지고 있다. 중국 기업들이 ‘시장진입용’ 제품으로 프리미엄 가전시장에 뛰어들었을 뿐 아니라, 상대적인 저가격의 이점으로 소비자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냉장고 시장을 예로 들면, 지난해 신규 출시한 양문형 및 다문형 모델 416개 중 로컬 브랜드가 내놓은 것이 70%나 차지한 것으로 집계된다. 이로 인해 외국계 가전기업은 시장 점유율을 크게 잃게 되었다(<그림 5> 참조). 로컬 가전기업들의 프리미엄 시장공세를 어떻게 방어할 지가 외국기업들로선 숙제로 부상했다.

 


2. 사업 다각화 추진하는 중국 기업

 


자국 가전시장의 포화에 대응해 메이디, 하이얼, 거리 등 중국 가전 대기업들은 해외시장 개척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하이얼이 지난 1월 54억 달러에 미국 GE 가전부문 인수를 발표했고, 3월엔 메이디가 일본 가전기업 도시바의 인수를 공개했다. 또 하이얼은 인도와 러시아에 가전 생산라인을 신설해 서남아시아 및 유럽시장 공략 기반을 다졌다. 그러나 한국 일본기업들이 이미 다져놓은 글로벌 시장을 공략한다는 것은 브랜드 파워가 뒤지는 중국 기업들로선 결코 쉽지 않은 과제다.


중국 로컬 가전기업에게 있어 프리미엄 시장은 이윤이 큰 매력적인 영역이지만, 가격경쟁에 나서는 순간 매력이 반감되는 모순적인 시장이다. 앞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로컬 가전 기업은 ‘시장진입형’ 프리미엄 가전제품을 출시하면서 상대적으로 저가라는 강점으로 소비자들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여전히 진정한 프리미엄 제품을 만들만한 충분한 기술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또 자사의 제품 이미지를 일반 매스 제품 수준으로 포지셔닝하고 있는 로컬기업도 적지 않다. 하이얼과 메이디 같은 로컬 강자들은 이 같은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자체 프리미엄 브랜드를 개발하고 제품 가격도 외산 브랜드와 비슷한 수준까지 올려놓았지만 이 때문에 시장점유율이 여전히 낮다.

 

메이디(美的·Midea) : 로봇제조 사업 진출로 일석이조를 노린다


중국 가전업계는 3월 메이디의 일본 도시바 인수 발표보다 그 뒤 기자회견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 6월 글로벌 4대 로봇회사 중 하나인 독일의 쿠카(KUKA)와 투자협의를 맺었다고 공개한 것이다. 가전제조보다 기술적으로 한 차원 더 높은 로봇분야를 새로운 성장점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로봇산업은 ‘중국제조2025’ 발전규획이 발표되면서 중국 업계의 뜨거운 관심을 끌고 있는데, 메이디 역시 이 분야를 자사의 새로운 수익 성장점으로 선택했다. 국제로봇연합회의 최신 통계에 따르면 2015년 25만 대 이상에 달하는 전세계 로봇 판매량 중 중국이 약 4분의 1을 차지한다. 중국 로봇시장은 2015년에 17% 성장했으며, 산업용 로봇 수요는 세계 1위다. 노동비용이 끊임없이 상승하고, 노동가능인구의 공급이 감소하면서, 경공업 분야에서 로봇의 수요 잠재력은 매우 크다. 제조업체가 밀집해 있는 주강삼각주와 장강삼각주 지역에서는 ‘기기환인(机器换人, 로봇으로 사람을 대체함)’이 기업의 절박한 수요가 되고 있으니, 현금 유동성이 풍부한 메이디가 로봇업체에 투자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메이디는 쿠카의 자동화 솔루션을 전국의 일반 제조기업에 보급하고, 서비스 로봇 시장도 함께 개척한다는 구상이다. 메이디는 이미 지난해부터 로봇산업에 대한 준비에 착수해, 그 해 3월 중국의 산업용 로봇 디자인, 제조, 시스템 집성업체인 안후이(安徽) 아이푸터(埃夫特) 스마트장비회사의 지분을 비공개리에 사들였다. 8월에는 일본 야스카와전기와 4억 위안을 공동 출자해 광둥성 포산(佛山)시와 순더(顺德)시에 산업로봇과 서비스로봇 연구개발 및 제조업체를 설립했다.


메이디가 로봇산업에 진출한 또 다른 중요한 목적은 바로 자사의 가전공장 생산라인을 개조하여 비용을 절감하고 시장변화에 대한 반응속도를 높이기 위함이다. 메이디그룹은 지난해 ‘스마트홈+스마트제조’라는 ‘듀얼 스마트 전략’을 내놓고 향후 5년간 40~50억 위안을 투자해 산하의 모든 공장을 스마트화하여 인건비를 대폭 절감하겠다고 밝혔다. 자회사인 샤오톈어(小天鹅) 세탁기 공장의 ‘T+3’ 생산모델이 공장개조의 모범사례다.


‘T+3’ 생산방식이란, 소비자의 주문부터 제품이 최종적으로 소비자의 손에 들어오기까지 거치게 되는 주문접수, 부품구매, 생산, 물류 배송의 4개 단계별로 각각 3일을 넘기지 않는다는 의미다(<표 1> 참조). ‘T+3’ 생산방식을 실현하기 위해서 샤오톈어는 경소상, 부품 공급업체, 물류 배송업체를 선별해 ‘T+3’의 속도를 소화할 수 있는 협력업체만 남겨놓았다. 이어 자사의 생산 플랫폼에 대해 스마트화, 표준화 개조를 진행했다. ‘T+3’ 생산방식을 통해 샤오톈어는 과거 가전제품을 대규모로 제조한 후 대량의 화물 재고가 쌓이던 방식에서 C2M(Customer to Manufactory) 생산방식으로 성공적으로 전환할 수 있었다. 전국의 제품 창고 면적도 90만㎡에서 10만㎡로 대폭 줄였다. 샤오톈어의 매출은 2015년 전반적인 불경기 속에서도 22% 성장했으며, 순익은 21% 증가했다고 메이디는 밝히고 있다.


로봇산업 투자로 인해 메이디그룹이 추진하던 ‘T+3’ 모델은 날개를 달게 됐다. 쿠카와 야스카와는 메이디에게 로봇 제품을 제공하고, 쿠카의 자회사인 Swisslog(瑞仕格)는 창고, 분류, 운송, 자재처리 등 자동화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리(格力·Gree) : 신에너지 분야 진출로 스마트홈 생태계 구축


거리의 둥밍주(董明珠) 회장은 중국 가전업계를 대표하는 여걸이다. 2013년 기자회견에서 5년뒤 자사 매출이 2,000억 위안에 달할 것이라는 원대한 청사진을 내놨다. 그러나 지난해 매출은 977억 위안으로 한 해전보다 오히려 400억 위안이나 줄었다. 거리는 주저 없이 사업 다각화를 모색하기 시작해 신에너지 분야에 자원을 집중시켰다.


올해 3월 거리는 신에너지 자동차업체인 주하이인룽(珠海银隆)을 인수하겠다는 구상을 공개했다. 주하이인룽은 리튬배터리, 전기차 동력전달장치, 완성차제조, 전력 저장시스템 분야에서 연구개발부터 판매까지 신에너지 산업체인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 광둥성의 주하이(珠海), 허베이성의 우안(武安)과 스자좡(石家庄) 등 3개 지역에 생산기지도 갖추고 있다. 전기버스 연 3.3만 대, 순전기 SUV 차량 연 10만 대 생산이 가능하며 티탄산염 리튬 배터리와 에너지저장 소재 등도 생산한다. 시장에서는 거리의 목적이 신에너지차 산업의 잠재력과 정부의 보조금 정책에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의 신에너지차 보조금 기준에 따르면, 주하이인룽은 전기버스 생산으로 매년 약 330억 위안의 보조금을 지원받을 수 있다고 한다(대당 100만 위안 보조금). 거리에게 있어 전기차 산업은 절대적인 성장엔진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그렇다고, 거리가 보조금만을 노리고 즉흥적으로 이 분야에 뛰어든 것은 아니다. 거리는 2011년에 이미 1.5억 위안을 투자하여 주하이에 거리 신에너지 과학기술 유한회사를 설립했다. 신에너지, 리튬 전지, 에너지저장 분야에 발을 들이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기술 및 시장 경험의 부족으로 답보상태에 놓여있다. 2015년에는 태양광 중앙 에어컨을 출시했다. 에너지저장과 가정용 전기기기 사용을 연결하겠다는 의도였다. 스마트홈 개념이 주목을 받으면서 거리 역시 자사의 친환경 스마트 홈 시스템을 구축했다. 태양광 에어컨 에너지저장을 통해 가정 전체의 생활 전력을 공급함과 동시에 인터넷과 모바일 디바이스를 이용하여 가전 전력기기의 스마트 제어를 실현할 수 있다. 이렇게 하나의 생태계를 구축하려면 에너지저장 설비는 필수적이다. 둥밍주 회장은 5월 주주총회에서, 주하이인룽 인수는 자동차가 목적이 아니라 리튬 배터리와 에너지저장장치라는 두 가지 경쟁력 있는 기술을 획득하기 위함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거리가 수중에 충분한 현금을 보유하게 되자 성숙한 기술을 보유한 회사를 인수한 것이다. 오랫동안 거리의 주력제품은 줄곧 에어컨 위주였다. 자사의 주력제품과 연관된 신에너지 분야에 진출하는 것이 거리로서는 최고의 선택일 수도 있다.


하이얼(海尔·Haier) : 전통 가전기업에서 인터넷 플랫폼으로 변신


메이디와 거리의 다각화 전략은 사실 자사의 강점이 있는 제조분야에 국한된 인상을 받는다. 반면 중국을 대표해온 가전기업 하이얼은 2014년부터 창립자인 장루이민(张瑞敏) 회장이 앞장서 대대적인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인터넷 플랫폼 기업이 변신의 종착역이다.


하이얼은 2014년 기존의 폐쇄적인 조직 구조를 깨고 프로젝트 중심으로 인력을 재배치했다. 연구개발인력, 일반직원, 심지어 물류배송인력까지 모두 ‘샤오웨이(小微, 매우 작다는 뜻)’라 불리는 소 창업자로 나서게 해 고객가치를 창조하도록 했다. 샤오웨이를 지원하는 투자 인큐베이팅 플랫폼도 설립해 적절한 자원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현재 이 플랫폼 상에서는 1개의 모(母)투자기금과 7개의 자(子)투자기금이 세워져 샤오웨이가 제시한 창업 아이디어를 사업화하고자 하고 있다. 특정 샤오웨이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하이얼이 샤오웨이를 인수하거나, 지분을 투자할 수도 있고, 샤오웨이가 독립적으로 운영될 수도 있다. 하이얼 직원 외에도 일반 창업자나 창업단체 역시 하이얼의 ‘하이리팡(海立方)’과 ‘하이촹후이(海创会)’ 등 인터넷 플랫폼을 통해 하이얼 플랫폼 하에서 창업할 수 있다. 2015년 하이얼 플랫폼에는 연매출 1억 위안 이상의 샤오웨이 기업이 약 100여 개에 달했다. 인터넷 기업으로 전환하겠다는 하이얼의 첫 시도는 적잖은 성과를 내고 있는 셈이다.


사실 하이얼이 투자 인큐베이팅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최종적인 목적은 자사의 본업인 백색가전 플랫폼으로 전환하기 위함이다(<그림 6> 참조). 하이얼은 자사가 생산한 가전제품을 더 이상 ‘전기 기기’라고 부르지 않고 ‘네트워크 기기’로 부른다. 인터넷을 통해 스마트하게 구동되는 전기기기라는 뜻이다. 그 핵심이 바로 ‘샤오웨이’들이 고객과 소통하고, 소비자들이 제품의 설계와 제조에 참여하도록 하여 가전의 커스터마이징 제작 과정을 완성하는 것이다. 하이얼의 ‘인터넷 공장’은 생산 과정을 담당한다. 모든 ‘샤오웨이’가 후방 공장의 담당 부문을 가지고 있어서 이를 통해 소비자와 제조의 연결을 실현한다. 제품이 생산라인에서 나오는 순간 샤오웨이가 마케팅과 A/S를 담당하고 소비자들에게 공급한다. 이것이 하이얼이 추구하는 진정한 가전기업이다.


위 두 플랫폼의 정상적인 운영을 보장하고 또 소비자들에게 더 나은 고객체험을 제공하기 위해 하이얼은 세 번째 플랫폼인 금융지주플랫폼도 만들었다. 샤오웨이와 소비자들이 보다 자금융통을 용이하게 하기 위함이다. 이 플랫폼에는 소비자와 샤오웨이 기업용 3자 결제 플랫폼뿐 아니라 샤오웨이 대상 금융서비스 지원 플랫폼 등도 포함돼 있다. 하이얼은 각 샤오웨이가 생산한 다양한 하드웨어 상품을 연결하기 위한 U+스마트생활 생태계도 구축했다. 생태계에는 물, 공기, 음식, 건강, 안전, 엔터테인먼트 등 7대 생활 카테고리가 마련되어 있다. 샤오웨이의 혁신은 모두 이 스마트생활 생태계를 기반으로 진행된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하이얼의 혁신은 기업의 플랫폼화, 직원의 창업자화, 고객(제품)의 개성화를 실현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다각화는 새로운 수익원 창출과 기존 가전 경쟁력 제고에 도움


중국 가전을 대표하는 3개 기업은 각각 로봇제조 및 자동화, 신에너지, 인터넷 창업모델에서 각자의 생존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공통적인 것은, 세 분야 모두 중국 정부가 지원하는 육성방침과 맞아떨어진다는 점이다. 당연히 보조금 수령을 통해 신규 사업의 리스크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들 기업의 다각화 노력은 본업인 가전제조와 연관성이 매우 크다. 다각화를 통해 자사의 가전제조 역량도 키우고, 소비자 맞춤형 생산과 스마트홈 등 새로운 영역 진출도 용이해진다고 보는 것이다. 특히 수요가 크게 늘어나는 프리미엄 가전시장에서 이 같은 제조역량 확충이 더욱 중요한 기여를 할 것으로 보는 시장전문가가 많다.

 


3. 외국계 기업의 대응방식

 


중국 로컬기업들의 경쟁력이 일취월장하면서 중국 내 외국 가전기업들의 위기감은 고조되고 있다. 시장환경도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아, 외국계 가전기업들에게는 설상가상의 상황이다. 중국 사회에서는 예로부터 ‘역경 속에서 영웅의 진면목이 드러난다’고들 얘기하는데, 척박해진 중국 가전시장이야말로 외국 가전기업들의 경쟁력을 가늠하는 시험무대가 되고 있다.


보쉬지멘스(BSH) : 변함없는 전략으로 결실을 맺다


롤란트 게르커(Roland Gerke) 보쉬지멘스 차이나 CEO는 판매 담당으로 1990년대 초 중국시장에 처음 발을 디뎠으며 2005년 CEO가 된 후 11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CEO가 안 바뀐 것과 마찬가지로, 보쉬지멘스의 중국시장 전략에도 변화가 거의 없었다. ‘투자기조·프리미엄·품질’을 견지한다는 단순 전략이다. 전략적 일관성은 중국 가전시장의 침체기 속에서도 유지되고 있다.


보쉬지멘스 역시 중국 진출 초기엔 사업이 정상궤도를 찾지 못했다. 1999년에 들어서 중국 사업을 전면 재검토했는데, 그 결과 철두철미 프리미엄 전략을 추구하기로 했다. 기술제일주의를 표방해 독일에서 생산설비를 수입했고, 중국 시장일지라도 품질기준을 자사의 글로벌 기준(WTS)에 맞췄다. 중국시장과 유럽시장의 차별을 없앤 것이다. 최신 제품도 모두 동시에 출시했다. 이 전략방향을 중국 소비자들에게 성공적으로 이해시키면서, 프리미엄 제품의 이미지가 형성됐다. 2013년 이후 내수시장의 소비 고도화 추이가 두드러지면서, 이 회사의 일관된 프리미엄 전략은 드디어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가정용 냉장고 분야의 양문형 냉장고를 예로 들면 올해 1분기 보쉬지멘스의 시장점유율은 외국 브랜드 중 가장 높은 21%를 기록했다. 이 분야 선두기업은 하이얼이지만, 8,000위안 이상 고가품으로 좁히면 보쉬지멘스의 점유율이 하이얼을 앞선다. 드럼세탁기 시장에서는 보쉬지멘스, 하이얼, 메이디가 사이 좋게 각자 5분의 1씩 시장을 점유하고 있지만, 5,000위안 이상의 제품 중에서는 보쉬지멘스가 거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어 프리미엄 제품의 절대강자라 할 수 있다.


금융위기 이후 외국 가전기업은 물론 로컬기업들조차 중국을 떠나거나 투자를 줄이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러나 보쉬지멘스는 2011년 9,000만 유로를 들여 안후이(安徽)성 추저우(滁州)에 냉장고 생산라인을 증설하는 등 생산능력을 키웠다. 이러한 일관성은 가전시장이 부진기에 들어서자 보상을 받게 된다.


중국 현지의 경쟁자들이 입문급 제품으로 프리미엄 가전제품의 문턱을 끌어내리자 보쉬지멘스는 다년간 투자를 통해 확장해온 생산기지(<그림 7> 참조)와 규모의 경제를 이용하여 성공적으로 중국 경쟁자들의 저가 전략을 따라갈 수 있었다. 냉장고 시장을 예로 들면 2015년 이후 중국기업은 다양한 모델의 양문형 냉장고를 내놨고 이로 인해 4,000~8,000위안의 가격대가 점차 시장의 주류가 되었다. 6,000위안 이하의 제품이 없던 보쉬지멘스도 이에 대응하는 제품 모델을 내놨고, 6,000~ 8,000위안이었던 제품 평균가격도 낮췄다. 올해 1분기에는 이 가격대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게 되었다.


중국 소비시장에 고급화 바람이 불 때도 보쉬지멘스는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이 회사는 지난해 프리미엄 식기세척기를 중국에 들여온 뒤 추저우시에 첫 번째 식기세척기 공장과 R&D센터를 설립했다. 지난 연말에는 유럽과 동시에 중국에서도 ‘홈 커넥트(Home Connect)’ 플랫폼을 출시하여 중국 소비자에게 자사의 스마트홈 전략을 알렸다. 이 플랫폼은 보쉬지멘스 뿐 아니라 다른 브랜드의 가전제품도 제어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또 온라인 유통채널을 적극적으로 개척하여 세탁기 제품의 경우 온라인 비중이 20% 이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세탁기 업계 평균보다 높은 수준이다. 알리바바 계열 톈마오와 손잡고 O2O 체험장을 설립해 소비자와의 소통 채널을 확대함으로써 자사의 프리미엄 이미지 제고에 도움이 됐다. 지난해 보쉬지멘스의 글로벌 가전매출은 11% 성장한 반면 중국시장에서는 24% 성장했으며(유로화 기준), 여전히 중국 프리미엄 가전시장의 강자로 인식되고 있다.


파나소닉 : 중국사업에 더 많은 자체 결정권 부여


외자계 전자업체 중 중국시장에 첫 진출한 파나소닉은 1980년에 흑백 브라운관 기술을 중국에 들여와 중국 가정에 TV시대를 개막했다. 그러나 35년 후 파나소닉은 산둥성 지난(济南)시의 LCD TV 공장을 폐쇄했다. TV 사업은 파나소닉 중국사업의 발목을 잡고 있는 사업이었기 때문에 일본 본사에서는 TV 중국 생산을 접기로 단호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 필요할 경우 OEM 방식으로 중국시장에 대응하되, 여전히 경쟁력이 있는 다른 가전제품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하기로 한 것이다. 이를 위해 파나소닉은 중국 가전사업부의 조직구조를 조정했다.


2015년 이전의 파나소닉 가전부문은 중국의 생산, 판매, 연구개발 부서가 모두 파나소닉 전기(중국)유한공사의 총괄 아래 있었다. 이 유한공사는 가전사업 외 다른 중국사업도 관리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었기에 온전히 가전사업 부문에만 역량을 집중시키기 어려운 구조였다. 파나소닉은 지난해 4월 파나소닉 전기(중국)유한공사 산하에 전화주택설비기기사(电化住宅设备机器·AP 차이나)를 설립하고 가전제품 관련 생산, 마케팅, R&D 부문을 모두 이 회사로 집중시켰다. 아울러 AP차이나에 전보다 훨씬 많은 의사결정권을 넘겨줘 중국 내 제품 연구개발과 가격 등을 자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본사 경영진은 일본계 전자기업들이 현지에 가격결정권을 넘기지 않았던 것이 중대한 판단미스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중국기업들이 2000년대 후반 들어 가격전쟁을 시작했을 때, 시장대응이 늦어져 점유율에서 밀리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조직 구조조정을 완료한 후에는 제품 및 생산부문도 조정했다. 제품 분야에서는 중국시장에서 아직까지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백색가전과 생활건강 유형의 소형가전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리고 목표고객을 중국의 중·고소득 계층으로, 목표시장은 진정한 프리미엄 제품으로 잡았다. 이를 위해 파나소닉은 일본 본사의 선진 기술을 들여왔을 뿐 아니라 중국에서 현지화 연구개발을 적극적으로 시행하여 더욱더 중국 현지에 맞는 제품을 개발해냈다. 에너지 절약 시스템(EcoNavi)과 급속 냉난방 기능을 갖춘 파나소닉 에어컨은 중국의 에너지효율 등급기준에 맞추어 개발됐다.


중국 소비자들이 ‘일본에서 생산된 것과 똑같은 느낌’의 품질을 느낄 수 있도록 기존 중국 생산라인도 최적화해 일본 현지 생산기술을 그대로 중국에 접목시켰다. 공장을 개량한 후에는 중국시장용 제품만을 생산하고 일본 본토 수출용 제품은 더 이상 생산하지 않기로 했다. 프리미엄 시장수요에 대응하되 원가를 줄이기 위해 엄격한 품질관리를 적용한 ODM 생산방식도 채택했다. 특히 이 회사는 중국 소비자들이 프리미엄 시장에서 O2O 체험을 중시한다는 점에 주목해 지난해부터 스마트 가전 오프라인 체험매장을 집중적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체험장에서는 파나소닉 제품의 스마트 연동 기능을 집중적으로 시연하고 있다.


파나소닉은 지난해 중국 세탁기 시장에서 8%의 점유율을 기록, 보쉬지멘스에 이어 외자 브랜드 중 2위를 차지했다. 소형가전 분야에서도 잇따라 두드러진 성과를 내고 있다. 2015년 중국 토스터 시장에서 판매량 350만 대를 돌파했고, 그 중 1,000위안 이상의 프리미엄 제품 시장에서는 파나소닉의 점유율이 무려 93%에 달했다.


필립스 : 중국시장 철수 후 브랜드 사용권으로 수익


중국 내 전통 TV업체들이 러스나 샤오미와 같은 인터넷 기반 신규 진입자에게 시장을 잠식당하는 사이 필립스TV의 판매량은 2014년 80만 대에서 2015년 180만 대로 껑충 뛰었다.


사실 많은 중국 소비자들은 필립스TV가 이미 네덜란드 모회사의 간판만 내걸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2010년 네덜란드의 필립스는 중국전자정보그룹(CEC) 산하의 디스플레이 및 TV OEM 업체인 관제(冠捷·AOC)와 함께 출자하여 TP Vision사를 설립했다. 그리고 자사의 TV 브랜드 사용권을 모두 AOC에 넘겼다. 합자 이후 3년간 두 회사가 기업 경영을 두고 자주 분쟁을 벌였고 필립스 TV 판매량도 급전직하했다. 2013년 필립스는 자사가 가지고 있던 TP Vision의 지분을 전부 AOC에 팔았으나, AOC가 계속해서 필립스 브랜드를 사용할 수 있다는 데에 동의했다. AOC가 필립스 TV브랜드에 대한 전권을 가지게 되면서 필립스 브랜드는 오히려 살아나기 시작했다.


AOC는 먼저 인터넷 유통의 폭발적인 성장세에 주목, 전면적으로 활용하기로 결정했다. 2014년부터 AOC는 필립스 브랜드 TV를 징둥과 톈마오 양대 인터넷 채널에 배치했고, 이 곳에서 여러 차례 마케팅을 통해 필립스 브랜드 노출도를 크게 높였다. 특히 필립스가 원래 네덜란드 브랜드라는 것과 ‘4K+X’라는 규격에 부합하는 품질임을 강조해 중국 소비자들의 머릿속에 고급 브랜드라는 인식을 심었다. 그러면서도 가격을 낮춰 소비자들에겐 ‘귀하지만 비싸지는 않다’는 점을 강조할 수 있었다. 업계의 통상 규칙을 깨고 일부 TV 모델에 대해서는 무상수리 기간을 2~3년으로 늘리기도 했다.


이런 전략이 가능했던 것은 필립스라는 브랜드 이면에 중국 토종기업의 원가경쟁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AOC는 중국에 6개의 TV생산기지를 보유하고 있어 규모의 경제를 통해 저가전략을 유지할 수 있었다. 또 자체 브랜드인 AOC의 오프라인 채널도 필립스 제품의 A/S를 보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AOC 브랜드와 CEC 배경을 통해 필립스는 온라인 채널에서 기반을 다진 뒤 오프라인 브랜드 샵을 4~6선 도시까지 냈다. 최근엔 필립스 브랜드로 인터넷 공룡업체인 텅쉰과 제품개발 및 공동마케팅을 시작하기로 했다.


필립스 본사에 이제 TV사업은 큰 의미가 없을 지 모르지만 AOC로부터 브랜드 사용료를 받고 있기 때문에 중국 수익원은 남아있는 셈이다. 필립스는 전쟁터 같은 내수시장에서 직접 자원을 투입해 일희일비하는 쪽보다 내수시장을 더 잘아는 중국 협력기업에 칼자루를 넘겨주고 여기서 생기는 수익을 중국의 다른 사업분야에 투입하기로 방향을 튼 것이다. 현재까지는 이 같은 방향전환이 성과를 내고 있다.

 


4. 시사점

 


메이디그룹의 팡훙보(方洪波) 회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중국 가전시장은 이미 조정기에 접어들었지만, 준비만 잘하면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고 낙관했다. 유수의 중국 가전기업들이 사업 다각화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고 있지만, 그들의 다각화가 무턱대고 준비 없이 ‘노다지를 캐자’는 식은 아니었다.


중국 가전시장에 진출해 있는 외국 기업들에게도 지금은 전략적인 조정의 시기이다. 보쉬지멘스, 파나소닉, 필립스는 중국에 진출한 외국기업의 세 가지 모습을 잘 보여준다. 보쉬지멘스는 한결 같은 전략으로 프리미엄 시장의 강자로 우뚝 섰을 뿐만 아니라 규모의 경제를 통해 중국 라이벌들의 저가전략에도 효율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파나소닉은 사업전략을 완전히 재조정하여 프리미엄 시장에 집중했다. 규모의 경제는 확보하지 못하더라도 ODM 방식을 통해 중국 경쟁자들에 완전 밀리지 않았다. 필립스는 가장 극단적인 사례로, 사실상 중국시장을 떠났지만 브랜드 인지도를 살려 수입을 창출하고 있다. 필립스 전략은 점유율이 바닥권으로 전락한 글로벌기업들에게 하나의 선택일 수 있다.


글로벌시장에서 프리미엄 영역의 우수한 제품역량을 바탕으로 탁월한 실적을 내고 있는 글로벌기업이라면, 보쉬지멘스나 파나소닉의 접근법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두 기업의 공통점은 프리미엄 고객에 집중하면서도, 가격경쟁력을 잃지 않아 중국 경쟁자들에 대응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보쉬지멘스는 자사가 다져놓은 규모의 경제를 이용했고, 파나소닉은 ODM 방식을 이용했지만, 소비자들 입장에서 이 둘을 굳이 구분하진 않는다. 두 회사는 중고 소득층 소비자들을 잡기 위해 적극적으로 O2O 채널을 이용하여 고객 체험기회를 살렸다. SNS를 통해 소비자들과 소통하면서 그들의 세세한 수요를 발굴한 것도 공통점이다.


이런 접근법은 사실 널리 알려져 있고, 다른 외국기업들에게도 열려있다. 그러나 실제로 시장에서 수행할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다. 보쉬지멘스는 중국을 20년 동안 시장으로서 깊이 연구해 온 외자기업으로 내수시장의 게임법칙에 익숙하다. 본사와 현지법인간 중국시장에 대한 관점이 일치하고, 전략 일관성도 유지해왔다. 단기적 사업성과에 휘둘리지 않을 만큼 전략방향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파나소닉의 접근법은 중국 가전시장의 짧은 제품주기, 수시로 출현하는 경쟁기업들, 탄력적으로 변하는 정책환경 등을 감안할 때 늦었지만,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현장 지휘관만큼 더 시장환경을 잘아는 전문가는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인터넷 비즈니스 모델이 급부상하는 등 IT혁신이 다반사로 이뤄지는 최근 중국 시장에서는 가전에 잔뼈가 굵은 중국인 최고경영자들도 자사의 미래를 장담하지 못하고 있다. 로컬 강자들이 사업다각화를 추진하는 것도 ‘가전에 올인했을 때’의 리스크가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다만 파나소닉처럼 현지 의사결정권을 확대해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적정한 현지 시장대응 역량을 미리 확보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파나소닉이 중국에 첫 진출한 외국 가전기업으로서 30년 이상 내수사업을 벌였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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