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한국을 ‘어포더블 프리미엄’의 기지로'
미 국 영국 등 선진국 들은 제조업 보다는 금융과 소프트웨어, 서비스업의 비중이 높고 이들 부문에서 많은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왔다. 선진국과 신흥국의 경계에 서 있는 한국경제로서는 이들 선진국의 모습이 이정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선진국경제의 위기에서도 보듯이 적어도 인구 5천만 명 수준이상의 큰 나라의 경우 제조업의 활성화 없이 건실한 경제를 유지하는 나라가 없다.
제조업 부문의 경쟁은 어느 산업 못지 않게 치열하다. 선진국과 신흥국 모두 소비자의 눈은 높아졌지만 경제성장의 속도는 낮아지면서 고품질과 저가격이라는 이율 배반적인 목표를 요구한다. 이러한 두 가지 요구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제품을 어포더블 프리미엄(Affordable Premium)이라고 지칭한다면 한국 기업들이 향후 역점을 두어야 할 영역이 이 부분이 될 것이다. 어포더블 프리미엄 제품은 기존에 있었던 제품의 가치를 높이면서 동시에 가격은 유지한 제품이다. 따라서 어포더블 프리미엄 제품에 요구되는 역량은 세상에 없었던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 내는 역량과는 다르다.
어포더블 프리미엄 제품 군이 요구하는 역량은 한국기업들의 역량과도 잘 맞아 떨어지지만 한국기업이 이 시장에서 더 위상을 확대해 나가기 위해서는 고객에게 꼭 필요한 니즈와 가치만을 고를 줄 아는 안목을 더 높여야 한다. 저렴한 가격을 구현해야 하기 때문에 값비싼 재료를 마음대로 쓸 수 없고 이것 저것 좋은 기능을 모아 놓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어포더블과 프리미엄을 동시에 추구하기 위해서는 프리미엄만 추구하는 제품이나 대량판매에 집중하는 매스 제품 보다 고객의 니즈를 더 깊이 파악해야 한다. 시장이 열리는 시점에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현장에서의 실행력의 속도뿐 아니라 의사 결정 속도도 더 높여야 한다.
또 한편으로는 아이디어는 강하지만 실행력이 약한 해외기업과 협력하여 아이디어를 얻는 방법도 생각해 봐야 한다. 운영상의 문제로 기업 가치가 저평가되어 있지만 브랜드 가치는 유효한 경우를 찾아 적극적으로 취득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프리미엄 제품을 어포더블하게(구매할 수 있는 가격으로) 제공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원가혁신 노력뿐 아니라 사회적인 비용 절감과 사회시스템 전반의 속도향상도 필요하다.
< 목 차 >
Ⅰ. 추종 전략의 성공과 새로운 도전
Ⅱ. 제조업의 재발견
Ⅲ. 글로벌 소비자의 변화와 어포더블 프리미엄
Ⅳ. 어포더블 프리미엄의 조건과 한국 기업의 특징
Ⅴ. 어포더블 프리미엄의 성공 포인트
지난 50년간 한국 산업은 완제품 위주의 추종 전략으로 지속적인 성공을 거두어왔다. 우수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악착 같은 실행력을 바탕으로 시장 흐름에 기민하게 대응한 결과, 경쟁 국가들에 비해 뛰어난 성과를 가져온 것이다. 세계 최고의 IT 하드웨어 경쟁력, 세계 5위권의 자동차 산업, 해양플랜트와 고부가가치 선박 등은 우리 산업의 위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한국 산업은 섬유, 봉재 등 자체적 역량으로 가능하면서 전세계적으로 수요가 큰 분야에 집중했다가, 역량이 높아짐에 따라 전자, 기계 산업 등으로 중점 분야를 이동했다. 이 같은 산업 구조 조정은 국가의 내부 역량과 환경 변화를 고려한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었으나, 사실 큰 고민을 요구한 전략적 의사 결정은 아니었다. 산업 혁명 이후 선진국이 걸어왔던 발전 경로를 되풀이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 혁명의 효시였던 영국은 섬유를 짜는 방직기에서 시작해서 철강, 자동차와 조선 등의 산업을 발전시켰다. 일본도 방직기를 만들던 토요타가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세계 제조업의 선두가 되는 기틀을 닦았다.
즉, 한국의 산업 구조는 선진국의 발전 경로를 모범생처럼 차근차근 따라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한국 기업들의 성공 이면에는 선진국의 산업 구조 뿐만 아니라 그들 기업의 상품을 철저히 모방하는 전략도 있었다.
Ⅰ. 추종 전략의 성공과 새로운 도전
지금까지 한국 기업들에게는 늘 따라하고 싶은 기업이 있었다. 전자 산업에서 소니와 파나소닉은 오랜기간 선망의 대상이었다. 자동차 산업에서 토요타나 제너럴 모터스는 거대한 벽과 같았으나, 이제 한국 기업의 실적은 그동안 롤 모델(Role Model)이었던 기업에 육박하거나 뛰어넘고 있다.
하지만, 높아진 한국 기업의 위상은 그리 안정적이지 않다. 무엇보다도, 중국을 중심으로 한 신흥국 기업들의 거센 도전 때문이다. 중국 기업의 추격 위험은 오래 전부터 경고되었으나, 아직까지 현실화되지 않은 점은 다행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시간 문제일뿐 위험은 현실이 될 가능성은 여전히 크다.
최근 들어 한국 기업을 두렵게 하는 또 다른 요인은 IT를 중심으로 한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다. 휴대폰과 TV 등에서 한국 기업의 주특기인 하드웨어 완제품의 경쟁이 더 치열해지고 차별화가 어려워지고 있다. 반면, 한국 기업이 약한 운영 체제(OS)와 애플리케이션 등 소프트웨어 분야의 시장 규모와 수익성은 높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도 산업을 소프트웨어 위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지금부터라도 공장식 효율성 위주의 사고를 버리고 창의성에 기반한 소프트웨어를 적극 육성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제품이 아닌 서비스를 강화하자는 주장도 있다. 제조업 위주의 수출 정책은 글로벌 경제의 부침에 따른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서비스업 위주로 내수 비중을 키우는 것이 경제의 안정성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모두 일리있는 이야기지만, 다른 각도에서도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Ⅱ. 제조업의 재발견
지금 사회에 나오는 젊은 세대는 과거 제조업의 최강자가 미국이었다는 사실을 들으면 놀라기도 한다. 이들은 미국이라면 영화와 소프트웨어를 떠올린다. 그러나 196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의 제조업은 세계 최강이었다. 자동차에서 만년필에 이르는 수많은 제품들이 Made in USA라는 이름 아래 비싼 값에 팔려나갔다.
1966년에 시판된 GM의 폰티악 GTO는 넓직한 실내를 자랑하는 승용차임에도 시속 100km에 이르는데 5초도 걸리지 않는 놀라운 성능을 보이기도 했다. 기성 세대에 추억으로 남아 있는 파커 만년필은 고급 필기구의 대명사였다.
그러나, 미국의 제조업 경쟁력은 일본에게 추월당하고, 금융과 소프트웨어, 서비스업 등의 비중이 높아졌다. 이런 미국 산업의 변화는 한국 산업의 전환 필요성을 강변하는 논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 미국도 서비스업 중심의 산업 구조에 한계를 느끼고, 제조업 부흥을 노리고 있다. 전기 자동차, 태양광 발전 등 새로운 사업 분야에서 과거의 제조업 영화를 재현하려 힘쓰고 있다.
또, 과거 강한 제조업을 갖고 있었으나, 점점 산업이 소프트해진 이탈리아의 경우도 산업 전환의 결과는 좋지 않다. 이탈리아는 토리노 등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오랜 기계 공업의 역사를 지니고 있었다. 두번의 세계 대전을 치르면서 많은 군수 물자를 생산하는 등 제조업의 기반은 탄탄했다. 그러나, 점차 패션과 관광 등으로 산업은 소프트해지고 자동차 같은 제조업은 약화되었다. 이탈리아는 여전히 세계 패션을 주름잡고 있지만, 다른 남유럽 국가들과 함께 이탈리아의 경제 사정은 나빠지기만 하고 있다.
반면, 독일은 전통적인 제조업을 기반으로 선진국 중 가장 좋은 경제 상황을 보이고 있다. 독일은 기술력을 높이는 동시에 체코 등 상대적으로 생산비가 저렴한 동유럽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하면서 가격 경쟁력까지 갖추고 있다.
<그림 1, 2>는 제조업에 중심을 둔 독일의 경우 글로벌 1000대 기업에 속한 기업 수가 늘어난 반면, 금융 등 서비스업에 중심을 둔 영국은 1000대 기업의 속하는 기업 수가 10년새 절반으로 줄어든 모습을 보여준다.
지금 전세계 어디를 보더라도 인구가 5000만명 이상인 큰 나라의 경우, 제조업이 아닌 다른 산업에 중심을 두고 경제가 활성화된 경우는 없다. 물론 제조업에 초점을 맞춘 국가들이 모두 건실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경우, 제조업 위주의 경제 구조임에도 20여년간 불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제조업은 폐쇄적인 전략과 코스트 경쟁력 상실 등으로 글로벌 시장에서의 입지가 약화되었다. 결국 제조업을 중심으로 하되 글로벌 시장의 변화에 조응하는 모습을 보이는 국가만이 성공할 수 있다.
그런데, 제조업을 중심으로 하자는 의미가 서비스업을 도외시하고 제조업에만 집중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하드웨어에 결합(Embedded)되어 하드웨어의 가치를 높이는 소프트웨어는 매우 중요하다. 또, 독립적인 서비스업도 다양하게 꽃을 피워 소비를 질적으로 업그레이드하고 경제의 안정성을 함께 높여나가는게 당연히 바람직하다. 다만, 그렇더라도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글로벌 시장에서 수익을 창출한다는 관점에서는 제조업에 무게 중심을 둘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Ⅲ. 글로벌 소비자의 변화와 어포더블 프리미엄
2000년대초 글로벌 IT 버블 등 경제 호황기에는 고급품의 수요가 늘어났다. 그러나, 경제가 침체에 빠지게 되면서 줄어든 소득과 이미 높아져버린 눈높이에 괴리가 생기게 되었다. 이제 소비자는 완벽히 만족하지는 않더라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핵심적인 포인트를 충족시켜주면서 구매 가능한 수준의 가격을 지닌 제품을 원하고 있다. 고소득층 대상 마케팅 회사인 RSVP에 따르면 고소득층도 가격 대비 가치를 무엇보다 앞세우는 경향이 과거에 비해 높아졌다고 한다. 앞으로도 선진국의 경제 성장률은 매우 낮을 것으로 예상되고, 이들 지역의 소비자들이 저렴하면서 품질이 괜찮은 제품을 찾는 경향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인터넷의 보급과 해외 여행 등에 따라 중국, 인도 등 신흥국 소비자들의 눈높이가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만하다. 그러나, 이들 국가 소비자들의 전반적인 구매력은 여전히 낮은 상황이고, 생산 요소 비용의 증가 등으로 높은 성장세를 이어가는 것도 어려워지고 있다. 결국 신흥국에서는 가격이 크게 오르지 않는 범위 내에서 조금 더 나은 품질의 제품을 원하는 경향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한편, 인구 구조가 노령화되는 점도 글로벌 수요에 큰 영향을 미친다. 고연령층 소비자들은 제품 구입에 따른 리스크를 줄이고자 하는 경향이 강하다. 고장 등 귀찮은 문제는 노령층 소비자들에게는 더 골치 아픈 문제이기에 좀더 믿을 수 있는 제품으로 손이 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앞으로 살아갈 여명(餘命)은 점점 길어지는데, 경기의 변동성이 커져서 연금 소득 등이 불확실해지면서 중년층 이상은 소비에 보다 신중해지는 경향을 보이게 되었다. 소비는 줄이면서 제품 구입의 리스크는 높이지 않는 방법은, 흡족하지는 않지만 적당한 품질의 적당한 가격대의 제품을 구입하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중노년층을 형성하고 있는 베이비 부머(Baby Boomer) 세대 중 50%가 소비에 인터넷을 적극 활용하고, 이전 중노년층에 비해 훨씬 더 가치 지향적인 소비 행태를 보인다고 한다. 또, 베이비 부머는 30-40대에 비해 디자인이나 스타일보다 기능과 가격을 더 중요시하는 실속 위주 구매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선진국과 신흥국 소비자 모두 눈은 높아지되 구매력은 제한되고 있는 글로벌 경제 상황은 고품질과 저가격이라는 이율배반적인 목표를 요구한다. 이러한 두마리 토끼를 노리는 제품을 어포더블 프리미엄(Affordable Premium)이라고 지칭하고, 한국 기업이 어포더블 프리미엄 시장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보자.
Ⅳ. 어포더블 프리미엄의 조건과 한국 기업의 특징
어포더블 프리미엄 제품은 기존에 있었던 제품의 가치를 높이면서 동시에 가격은 유지한 제품이다. 따라서 어포더블 프리미엄 제품에 요구되는 역량은 세상에 없었던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내는 역량과는 다르다.
완전히 새로운 제품을 내놓는 데는 근본적 혁신을 요구한다. 고도의 창의성과 그 창의성을 수용해 줄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필요하다. 반면, 어포더블 프리미엄은 수많은 작은 혁신이 누적되어야 가능하다. 오랜 시간도 필요하다. 한마디로 은근과 끈기가 필요하다.
앞서 우리 기업의 특징을 성공적인 제품에 대한 모방, 신속한 실행 등으로 요약해봤다. 공교롭게도 이러한 특질은 어포더블 프리미엄에서 요구하는 역량과 아주 잘 맞아떨어진다.
사실,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세계 제조업을 리드했던 일본 산업의 특징도 지금 논의하는 어포더블 프리미엄 전략과 유사하다. 미국이나 유럽 기업이 내놓은 제품과 비슷하면서 고장률은 더 낮은 제품을 더 싼 가격에 내놓았다. 그런데, 이러한 일본의 제조업은 더 이상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에 한국도 과거 일본과 비슷한 어포더블 프리미엄 전략을 채택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반론도 있다.
그러나, 일본이 어려운 상황에 놓인 것은 제조업 중심이라는 지향점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라 보기는 어렵다.
일본 기업들이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저렴한 양질의 제품을 내놓기 시작하던 1960년대에는 철저히 서구 선진국의 제품을 모방하고, 선진 시장에서 팔릴 만한 제품을 만들었다. 그러나, 점차 일본 내수 시장이 커지고, 일본 기업들의 절박함도 약해지면서 일본 기업들은 자국 소비자의 니즈에 충실한 제품들로 관심을 돌리게 된다.
냉장고나 세탁기 등 백색 가전 제품의 경우, 이러한 특성이 잘 드러난다. 누가 보더라도 일본 제품은 다른 나라 기업들의 제품에 비해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지금 일본 가전 제품은 소형, 저전력에 소박한 디자인 등 자국 시장에서만 통하는 독특한 특성들을 갖고 있지만, 과거에도 일본 가전 제품이 지금처럼 로컬 지향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자동차를 보더라도 다이하츠, 스바루, 스즈키 등의 브랜드에서 일본 시장에 적합한 작고 실용적인 다양한 차량들이 나오고 있다. 소형과 실용성은 고유가 시대에 많은 국가의 소비자들이 요구하는 사양이다. 그런데 일본의 소형차 혹은 경차는 소형차의 수요가 큰 유럽 시장에서 그다지 환영 받지 못한다. 그 이유는 일본 특유의 기능과 디자인, 그리고 높은 가격이다.
일본이 아날로그 휴대폰 시절부터 PHS(Personal Handyphone System) 등에서 독자 표준을 추구하다가 글로벌 시장에서 밀려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고립된 섬에서 독자적인 진화가 이루어진 갈라파고스 섬에 빗대어 갈라파고스 현상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 일본 기업의 고립주의가 없었다면 일본은 지금도 어포더블 프리미엄을 넘어선 어퍼 프리미엄(Upper Premium) 시장의 강자가 되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또, 일본 기업들의 지나친 혹은 편협한 장인 정신(모노즈쿠리)도 일본 기업이 경쟁력을 잃은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지나친 장인 정신은 제품화에 걸리는 시간을 지연시키기 때문이다. 또, 장인 정신은 공급자 중심적인 경향을 띠게 되는데, 이 때문에 고객의 요구가 무시되는 경우도 생기게 된다.
이러한 일본의 사례를 바탕으로 한국 기업을 생각해보면, 한국 기업은 일본만큼 충분한 크기의 내수 시장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어려움이면서 동시에 자국에 안주하지 않게 하는 긍정적 요인이 된다. 또, 일본 기업만큼 집요하지 않다는 점이 신속한 실행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Ⅴ. 어포더블 프리미엄의 성공 포인트
한국 기업들이 어포더블 프리미엄 시장에 적합한 특징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특질은 어포더블 프리미엄 시장에 성공하기 위한 필요 조건에 불과하며 충분 조건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성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핵심 니즈 파악
우리 기업들은 지금까지 주로 선진국의 완성품을 모방해왔기 때문에 고객의 니즈 자체에 천착하여 고민하지 않았다. 따라서 전반적인 니즈를 알더라도 무엇이 핵심 니즈이고 무엇이 부차적인 것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어포더블 프리미엄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프리미엄 제품이나 매스 제품보다 고객의 니즈를 더 깊이 파악해야 한다. 저렴한 가격을 구현해야 하기 때문에, 값비싼 재료를 마음대로 쓸 수도 없고, 이것저것 좋은 기능들을 모아 놓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꼭 필요한 니즈와 가치만을 고를 줄 아는 능력이 필수적이다.
예컨데, 영국의 스타벅스라고 할만한 프렛(Pret A Manger)은 고급 커피와 함께 천연 재료만 사용한 샌드위치와 베이커리, 수프 등을 판매한다. 그럼에도 가격은 인근의 웬만한 식당보다 싸다. 프렛이 고품질의 다양한 먹거리를 판매하는데도 저렴한 가격을 설정할 수 있는 것은 음식 자체에만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프렛의 음식들은 거의 셀프 피킹(Self Picking)하는 것이기에 맥도날드보다도 적은 인력을 필요로 한다. 서비스는 거의 없고, 의자도 불편하다. 그러나, 음식 자체에 대해 신뢰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만족한다. 그 결과 매장의 회전율은 매우 높아지고, 회사는 고품질의 음식을 더욱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할 수 있게 된다.
고객 니즈를 파악하는데 왕도는 없다. 그러나, 과거에 비해 고객 니즈가 빨리 변화하고, 고객 스스로도 잘 표현하지 않거나 표현하지 못하는 숨겨진 니즈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 같은 환경에서는 전통적인 설문 조사 등의 방법은 효과적이지 않다. 제품을 기획하는 사람 스스로가 항상 고객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변화를 거부하지 않는 젊고 개방적인 사고가 필요함은 물론이다.
오픈 이노베이션의 허브
제품이나 서비스를 먼저 내놓기 위해서는 씨앗이 되는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아이디어와 실행력을 모두 갖춘 국가가 되는 것이 이상적이겠으나, 어느 한쪽에 중심을 둘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창의력과 실행력은 서로 다른 DNA를 요구한다. 한국이 어포더블 프리미엄이 되기 위한 실행력에 초점을 맞춘다면, 아이디어는 강하지만 실행력이 약한 해외 기업 등과 협력하는 방법을 생각해봐야 한다.
아이디어에 강한 기업들에게 한국은 아이디어를 현실로 옮기는 공방(Workshop)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인식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부품 소재 경쟁력 강화
아이디어를 현실로 옮기기 위해서는 최종 제품을 잘 만들 줄 아는 능력으로는 부족하다. 제조업에서 경쟁력의 상당 부분은 부품 또는 소재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좋은 성능의 저렴한 부품 소재가 없이는 어포더블 프리미엄 제품이 나올 수 없다.
한국 산업은 부품 소재를 수입하여 최종 제품을 수출하는 가공 무역에서 출발했고, 지금도 그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품질과 가격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하기 위해서는 부품 소재 등 가치 사슬의 전방(Upstream)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
글로벌 브랜드 확보
최근 국내 기업들이 타이틀리스트(Titleist), 카스텔바작(Castel Bajac) 등의 유명 브랜드를 인수했다. 선진국의 소비가 줄어들면서 브랜드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경영 자원이 충분치 못한 기업들이 도태되고 있다. 특히, 유럽 금융 위기가 쉽게 잦아들기 힘들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많은 유럽 브랜드들이 매물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
자동차 산업의 경우에는 최근 10년간 재규어, 랜드로버, 볼보, 사브, 허머 등 많은 브랜드가 매각되었는데, 앞으로도 이러한 브랜드 거래는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경쟁력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는 한국 자동차 기업도 글로벌 브랜드의 인수를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역사(History)와 독특한 스토리(Story)가 있는 브랜드는 어포더블 프리미엄 제품을 떠받치는 기둥이 될 수 있다. 운영상의 문제로 기업 가치가 저평가되어 있지만, 브랜드 가치는 유효한 경우를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 물론 브랜드를 인수하기보다 새로 구축할 수도 있겠으나, 이미 수많은 브랜드가 소비자들의 마음 속에 포화된 성숙 산업에서는 기존 브랜드를 적절히 리뉴얼하여 활용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
의사 결정 속도 제고
경쟁사보다 비싼 값을 받는 가장 확실한 방법 중 하나는 먼저 시장에 내놓는 것이다. 그런데, 시장에 가장 먼저 내놓는 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니다. 완성도가 떨어지는 제품을 힘겹게 먼저 내놓으며 역량을 허비하기보다는, 시장이 본격적으로 성장하는 시점에 고객이 원하는 적절한 기능을 지닌 제품을 고객이 받아들일 만한 가격으로 내놓는 것이 더 적합한 경우가 많다. 이를 위해서는 시장이 열리는 시점에 급격하게 활동 속도를 올릴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다.
앞서 우리 기업의 강점으로 빠른 실행력을 들었다. 우리 기업의 빠른 실행력은 장시간의 노동 시간에 따른 결과인 경우가 많았다. 앞으로 노동 시간은 계속 짧아질 수밖에 없으므로, 생산성 향상을 위한 혁신 활동이 필요하다. 또, 기업 차원을 넘어 사회적인 속도를 높이는 노력도 필요하다. 연관 산업을 클러스터화하여 물류 시간을 줄이고, 도시의 과도한 확장을 방지함으로써 통근 시간을 줄이는 등 사회 경제적인 차원에서의 노력도 필요하다.
적절한 타이밍에 시장에 제품을 내놓기 위해서는 기업의 생산성과 사회시스템 전반의 속도 향상뿐 아니라 신속한 의사 결정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국 기업은 현장에서의 실행 속도는 빠르지만, 본사의 의사 결정은 느린 경우가 많다. 책임지기 싫어서 끝없이 회의하고 수많은 사람에게 메일을 보내는 가운데 시간은 흘러간다. 빠른 의사 결정을 위해서는 임직원 개개인의 역량을 키우고 과감히 권한을 위양해야 한다.
저비용 사회 시스템 구축
프리미엄 제품을 어포더블하게 제공하기 위해서는 원가 혁신이 있어야 한다. 기업은 가치 사슬(Value Chain)의 모든 단계에서 원가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겠지만, 한국 기업의 원가 절감은 기업만의 노력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인 비용 절감이 같이 이루어져야 한다.
교육비나 의료비 등이 오르면 인건비에 직접 반영될 뿐만 아니라, 부동산 가격과 물류비 등 여러 간접 비용에까지 어떻게든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 모두는 코스트 경쟁력에 저해 요인이 된다.
글로벌 스탠더드란 이름 아래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많은 고비용 활동에 대해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대학 교육의 경우도 교수 학생 비율을 높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잘 가르치는 교수는 대형 강의실에서도 좋은 수업을 만들어낸다. 또, 인터넷 강의 등을 적절히 병행하는 것도 교육 비용을 줄이는 대안이 될 수 있다.
선진국 경제는 고비용 구조에 따라 힘을 잃고 있다. 한국이 맹목적으로 선진국을 모방하면 한국도 코스트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어포더블 프리미엄이 한국의 산업과 기업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목표는 아닐 지도 모른다. 우리 경제도 진정한 창의성에 바탕을 둔 아이디어의 리더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구가 5000만명이나 되는 작지 않은 나라가 어느날 갑자기 그렇게 바뀌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홈런 한방으로 미래를 열겠다는 무리한 생각보다 작은 안타를 쳐나가듯이 수많은 작은 아이디어를 모아서 가치를 높이는 실천이 필요하다. 수많은 작은 창의성이 쌓이고 쌓이면 언젠가는 거대한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끝>
사업자 정보 표시
(주)부동산중개법인이산 | 박우열 | 서울시 마포구 마포대로 63-8, 지하1층 69호(삼창빌딩) | 사업자 등록번호 : 528-88-00035 | TEL : 010-3777-1342 | Mail : 1004kpwy@hanmail.net | 통신판매신고번호 : 해당사항없음호 | 사이버몰의 이용약관 바로가기
'■ 경제보고서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잘 되는 사업에서도 철수하는 지혜, SMART EXIT (0) | 2011.12.11 |
---|---|
◎정서적 유대가 소비자를 움직이게 한다 (0) | 2011.11.06 |
◎진화하는 클라우드, 모바일의 변화를 이끈다 (0) | 2011.11.06 |
◎하이퍼컴피티션 헤쳐가려면 강점도 스스로 허물 수 있어야 (0) | 2011.11.06 |
◎특허전쟁 속 IT 공룡의 속내 (0) | 2011.1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