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 '2012년 글로벌경제, 혼돈 속의 순탄치 않을 리밸런싱'
2012년엔 ‘터널 끝’을 볼 수 있을까. 리먼의 파산으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와 이어진 경기침체가 3년을 넘어섰다. 금융위기를 초래했던 글로벌 불균형은 오랜 기간 모순이 누적된 결과였던 만큼 균형을 되찾는 과정(리밸런싱)도 지난하다.
2000년대 초 글로벌 경제성장을 이끌었던 미국경제는 가계, 정부 할 것 없이 부채상환에 매달리고 있다. 위기의 진원지였던 부동산시장은 반등기미가 엿보이지만, 아직 회생을 속단하기엔 이르다. 재정적자 감축을 둘러싼 정치권의 힘겨루기 양상은 올해도 지속돼 국가신인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빚을 갚아가야 하는 미국 경제에 당장 과거와 같은 성장활력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유럽은 민간부문 채무가 정부 부채로 이전되면서 재정감축이 화두로 올라선지 2년이 지났다. 특히 남유럽 국가들의 텅 빈 정부 곳간 탓에 유로존의 허술했던 통화통합의 문제점이 분명해졌다. 유로존의 지속성은 올해 강력한 도전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재정통합과 구제금융 등 위기 해법을 둘러싼 이견이 심각해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
2012년은 아시아의 전략적 중요성이 한층 빛을 발할 것이다. 지난 연말 미국이 ‘태평양 시대’를 선언한 뒤 중국, 인도 등 아시아시장의 가치와 지역안보 측면에서의 중요성은 새삼 부각되는 중이다. 중국 위안화 절상이나 중국 내수시장 접근성 이슈에서 미국은 중국을 단단히 벼르고 있다.
세계는 이제 경제정책은 물론 지역안보 및 외교, 재정지출, 복지 패러다임 등에서 대전환기를 맞고 있다. 불균형의 해소는 소리 없이 진행되지 않는다. 불균형이 확대되는 시기 형성됐던 가격변수의 급등락이 일차적으로 지나간 뒤, 이제 국력의 재조정, 자산 및 부채의 조정, 소득계층이나 세대간 분배 몫의 조정 등이 뒤따라야 한다. 위기 직후 과도하게 형성됐던 녹색 성장에 대한 기대도 현실적으로 재조정되는 양상이다.
2012년의 글로벌 리밸런싱은 특히 불안정하다. 재조정을 위한 패러다임의 변화는 불가피하지만, 민주사회의 유권자들은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다. 연내 예정된 주요국의 선거가 이 불안정성을 증폭시키고 있다.
< 목 차 >
Ⅰ. Global Rebalancing과 불확실성
Ⅱ. 2012년 Global Rebalancing의 5대 양상
1. 통합과 분열의 갈림길에 선 유로존의 Rebalancing
2. 본격화하는 미국의 Deleveraging
3. 미국의 동진(東進), 아시아경제와의 Rebalancing
4. 민의 확대와 정치, 복지의 재조정
5. Green Growth의 궤도 수정
Ⅲ. 맺음말
Ⅰ. Global Rebalancing과 불확실성
세계경제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올해엔 결국 ‘터널 끝’을 볼 수 있을까, 아니면 선진국 침체가 개도국으로 확산돼 더 어둡고 깊은 터널로 들어서게 되는가. 연초마다 찾아오는 궁금증이지만, 올 한 해의 글로벌 경제 기상도는 유달리 불투명하다.
재정위기로 2년째 몸살을 앓고 있는 유럽은 시장불안이 지속되는데다 유로존 회원국 간 입장 차이로 갈팡질팡,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 대서양 건너 미국 역시 재정적자 감축 및 부동산시장 부진 등으로 저성장이 예상되는 가운데 재정적자 감축 방법을 둘러싼 정치권의 의사결정 과정이 순조롭지 않은 모습이다. 빠른 성장세를 보여 온 거대 개도국들도 순탄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글로벌 경제성장의 버팀목이란 중국경제는 여전히 경착륙 리스크를 완전히 떨쳐내지 못하고 있고, ‘포스트 차이나’로 찬사를 받던 인도경제는 산업생산이 급감하며 외화유동성 부족을 겪고 있다.
세계경제는 경기 면에서나 정책 면에서 전환기에 서 있다. 경기 면에서는 2000년대 초 고성장과 이후 리먼사태 등으로 급등락을 겪은 뒤 장기 저성장 단계의 초입에 들어섰다는 시각이 확산되는 중이다. 정책 면에서는 주요국에서 지난 30여 년을 풍미했던, 금융자유화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적 정책기조가 정부 역할 강화 및 복지 증대 쪽으로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특히 올해엔 미국과 중국, 프랑스 등 주요국의 리더십 교체를 앞두고 있다. 경제정책 기조에 대한 이견이 팽배한 상황에서 맞게 되는 선거정국은 정책 불확실성을 높일 게 확실하다.
2008년 후반 글로벌 금융위기로 글로벌 불균형의 실체는 보다 분명해졌다. 대륙간의 경제력 불균형은 물론 같은 경제블록 내 회원국간의, 한 나라 소득계층간의, 세대간의 불균형은 각종 가격변수의 지속성에 중대한 의문부호를 던졌고, 이러한 회의가 확산돼 증폭되면서 결국 시장 참여자들에게 충격적인 재조정으로 나타났다.
최근 글로벌 경제가 경험하는 경기둔화와 정책 전환은 이러한 재조정의 한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글로벌 불균형이 몇 년 만에 축적된 것이 아닌 만큼, 새로운 균형을 찾아가는 리밸런싱 과정도 상당한 시일이 필요하다.
1990년대 이후 미국 경제의 장기 호황은 기축통화국이란 유일한 우월적 지위에 강 달러 기조가 더해지면서 가능했던, 막대한 해외차입 덕택에 지속될 수 있었다. 반면 미국이란 최대의 상품시장을 개척하는 데 성공한 중국 등 아시아 각국은 열심히 미국에 빚을 내줬던 것이다. 유럽 각국은 통화동맹을 통해 유로란 단일 화폐의 주권을 나눠 갖고 ‘하나 된 유럽’에 더 가까이 갈 수 있었다. 그러나 경쟁력이 다른 회원국을 하나로 묶은 후유증은 곧바로 거시경제 불균형의 확대로 나타났으며, 이 과정에서 유럽의 남쪽 국가들은 북쪽 국가들에게 거액의 빚을 지게 된다.
빚으로 연명하는 경제가 장기간 지탱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이 같은 불균형은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면서 재조정되고 있다. 미국경제는 내부적으로 급격한 디레버리지 경향을 나타내면서 이제 아시아 지역의 고통분담을 요구하고 나섰다. 유럽은 유로존의 설계도면을 바꿔 불균형을 시정할 항구적 체제를 마련하던지, 아니면 각자도생(各自圖生)해야 할 판이다.
빚잔치를 벌였던 국가들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미래세대가 누릴 과실을 당겨 써버린 위 세대는 재정긴축을 피하기 어렵고, 생산성보다 높은 소득을 누렸던 계층은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려야 하며, 경우에 따라선 임금삭감이나 복지감축을 받아들여야 할 판이다. 글로벌 세계는 경제정책은 물론 지역안보 및 외교, 복지 패러다임 등에서 대전환기를 맞고 있다.
2012년의 글로벌 리밸런싱은 이 때문에 더욱 고통스러울 것이다. 고통의 시기를 늦춰왔던 정부 재정이란 실탄이 선진국에선 고갈되고 있다. 개도국도 선진국 시장에서 몰아치는 외풍을 내수경기 부양으로 차단하는 데 한계가 있다.
올해의 리밸런싱은 특히 불안정성이 두드러질 것으로 여겨진다. 2008년 이후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주요국 경제주체들의 피로도와 위기감은 한껏 팽창해 있다. 미 월가의 점령시위는 좋은 방증이다. 이런 가운데 주요국의 선거나 정권교체가 차례차례 예정돼있다.
다양한 지역과 차원에서 진행되는 리밸런싱이 반드시 매 순간 합리적 방향으로, 즉 불균형의 원인을 시정해가는 방향으로 진행된다는 보장은 없다. 선진 각국에서도 정책입안자와 시행자를 뽑는 선거는 때때로 합리적 유권자의 기대를 저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는 2012년 신년호 특집으로 글로벌 경제의 5대 리밸런싱 트렌드를 5가지로 선정했다. ▲갈림길에 선 유로존의 미래 ▲본격화할 미국의 디레버리징 ▲미국과 아시아의 새로운 균형 찾기 ▲각국의 민의 확대와 정치, 복지의 재조정 ▲Green Growth 궤도 수정 등이다. 글로벌 리밸런싱 관점에서 그 배경과 해결방안의 올해 추이를 전망해본다.
Ⅱ. 2012년 Global Rebalancing의 5대 양상
1. 통합과 분열의 갈림길에 선 유로존의 Rebalancing
2010년 초 그리스에서 시작된 유로존 재정위기가 2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수습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아일랜드와 포르투갈에 이어 이탈리아와 스페인마저 위험에 처해 있다. 더 강한 통합이냐 분열이냐의 갈림길에 서 있는 유로존이 어떤 방향으로 해법을 모색해 나갈 지 주목된다.
통화통합 한계가 거시경제 불균형 확대
유로존이 휘청거리며 세계경제 불안의 진원지로 전락한 것은 재정통합을 배제한 채 통화만을 우선 통합한 결과, 회원국 간 거시경제 불균형이 확대된 때문이다. 1999년 통화통합 이후 국가간 경쟁력 격차가 더욱 커지면서 독일을 중심으로 한 북유럽 국가들은 경상수지 흑자가 쌓인 반면, 남유럽 회원국들은 적자가 쌓여왔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배경이 ‘태평양 동쪽의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와 태평양 서쪽의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였던 것처럼 유로존의 위기는 ‘북쪽의 흑자와 남쪽의 적자’라는 구조적 요인에 기인한다.
유로화 출범 이후 그리스와 같은 주변국들은 금리가 중심국 수준으로 크게 낮아지면서 신용팽창과 고성장의 축복을 누린다. 하지만 속으로는 경상수지 적자가 쌓여가는 등 통화통합의 모순과 불균형이 확대되는 과정이었다. 더욱이 경상수지 적자와 이를 메우기 위한 해외차입이 미래 경쟁력과 상환능력과는 거리가 먼 건설부문 등 자산시장의 버블로 이어지는 등 비생산적, 비교역재 분야로 집중됐다.
유로존의 내부 불균형이 원활히 조정되지 못했던 것은 단일통화를 사용하는 탓이다. 고물가, 고임금, 저생산성으로 인해 전통적으로 약세 통화국이었던 남유럽 국가들은 유로 출범 이후 환율조정 수단이 사라지면서 경쟁력이 크게 저하됐다. 반대로 저물가, 저임금, 고생산성의 북유럽 국가들은 유로 출범이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남유럽 국가들의 제조업 비중이 유로 출범 이후 급속히 하락한 데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이로 인해 민간부문에서 누적된 불균형이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자산가격 급락, 경기침체를 통해 불거지면서 재정 부담이 일시에 늘어난 것이 현 국채위기로 나타나고 있다.
저성장과 구조개혁, 고통스런 Rebalancing
재정위기가 불거진 지금, 남유럽 국가들은 대규모 수요 감축과 정부지출 축소를 통해 경상수지 적자를 줄이고 재정건전화를 기해 나가는 과정을 진행 중이다. 그 동안 공무원 임금삭감을 비롯해 재정지출 전반을 감축하는 한편, 관대했던 복지제도에도 손을 대기 시작했다. 국유자산 매각에도 보다 속도를 낼 전망이다. 대단히 고통스런 과정일 수밖에 없다. 그리스는 2010년 5월 구제금융을 받기 시작한 이래 마이너스 성장을 지속하고 있으며, 지난해 3분기에는 실업률이 17.7%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여타 남유럽 국가들의 심각한 경기침체를 겪고 있는 등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유로존 내에서 환율 변화를 통한 경쟁력 조정 메커니즘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수요 감축을 통해 발생하는 경제 전반의 디플레이션은 경쟁력 강화의 한 방안이 될 수 있다. 임금과 물가가 하락하면, 환율은 고정되어 있더라도 실질적으로 경쟁력이 높아지는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유로 출범 이후 축소를 지속해 오고 있는 남유럽 국가들의 제조업을 비롯한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남유럽 국가들에서 이런 과정마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대다수 남유럽 국가들은 노동시장의 경직성으로 말미암아 임금이나 물가가 신축적으로 조정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질실효환율을 기준으로 볼 때, 공공부문의 임금 인하와 물가하락으로 경쟁력을 회복하고 있는 아일랜드만이 예외일 뿐이다. 대부분 남유럽 국가들은 여전히 위기 이전의 실질실효환율과 비슷한 수준에 머물고 있어 산업경쟁력이 개선되는 효과가 아직 가시화되지 못하고 있다.
리밸런싱은 불균형의 양 당사자가 모두 문제 해결에 나설 때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남유럽의 재정취약국이 수요 감축과 재정축소에 나서는 과정을 효과적이고 덜 고통스럽게 하기 위해서는 형편이 나은 독일 등 북유럽권의 노력도 필요하다. 경상수지 흑자국이 수요 확대와 임금인상, 더 높은 물가를 감수하면서 상대적으로 남유럽 국가들의 경쟁력 향상을 도와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독일을 비롯한 북유럽국가들 모두 재정건전화에 신경을 쓸 뿐 거시경제면에서 남유럽 국가들의 리밸런싱 과정을 지원하는 역할은 관심권 밖이다.
재정통합 첫 걸음… 구제금융 확대방안은 표류
유로존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 동안 누적된 거시경제의 불균형이 해소되는 것과 함께 재정통합이 필수적이다. 재정통합은 회원국간 경기상황이 상이할 때 이를 조정하는 부담을 한 나라에 지우기보다 유로존 차원에서 떠안는다는 의미가 있고, 해당국의 위기가 시스템 위기로 비화되는 것을 차단할 수 있다. 재정 건전국에서 취약국으로 재정이전을 통해 취약국이 직면한 거시경제 불균형을 완화하고 보완한다는 의미도 있다. 통화동맹의 약점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8, 9일 열린 유럽연합 정상회의는 재정통합과 관련한 첫 합의를 이뤘다. ‘새로운’ 안정성장협약에 명시된 재정규율을 위반할 경우 강도 높게 제재한다는 내용이다. 안정성장협약(SPG; Stability and Growth Pact)을 통해 연간 재정적자(경기변동 효과를 제외한 구조적 적자, Structural deficit)를 명목 GDP의 0.5% 이내로 유지하도록 하면서 이를 위반한 회원국은 자동적으로 제재를 받고 집행위원회 이사회로부터 조정방안을 승인 받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1996년 합의된 협약의 GDP 대비 재정적자 3% 이내 기준보다 훨씬 강화됐다.
유럽 정상들이 화려한 수사를 동원해 재정통합에 큰 진전을 이룬 것으로 포장한 것과는 달리, 신용평가기관이나 유럽 전문가들은 합의안에 대해 긍정적이지 않다. 재정규율 강화는 유로존 국가들의 재정건전성 및 안정성을 중장기적으로 개선시키는 장치이긴 하나, 실질적인 재정통합을 위한 첫걸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아직 재정통합을 위해서는 갈 길이 많이 남았다는 평가다.
더욱이 이번 합의안은 당장 남유럽 국가들의 국채상환 방안과는 거리가 있다. 올 한해 이탈리아는 약 3,100억 유로, 스페인은 1,200억 유로 규모의 국채가 만기를 맞는다. 특히 이탈리아 국채의 절반 가량은 2~4월에 만기가 몰려있다. 최근 10년 만기 국채의 유통수익률이 7%선을 오르내렸던 이탈리아의 경우, 신규 국채발행이 차질을 빚으면서 올 상반기 만기를 맞는 국채의 차환 발행이 가능할 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경제력 불균형의 시정에 앞서 단기적으로는 역내 국가들의 연쇄 국가부도 발생을 막아야 한다. 그러나 이탈리아나 스페인에 대한 지원이 불가피해질 경우 현재 거론되는 구제금융 재원으로는 상당 부분 부족하다.
유로존 회원국간 의견 차이 커
유로존은 단기적으로 국채상환에 어려움을 겪는 나라들에 대한 지원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통화동맹의 한계를 치유하는 근본적 해결방안을 모색해 나가야 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단기적, 중장기적 해법을 둘러싸고 유로존 내 국가간 입장 차이가 적지 않아 시장에서 요구하는 과감하고 실효성 있는 합의안을 도출해 내지 못하고 있다.
유로존 내에서 경제대국이면서 가장 많은 구제금융 재원을 부담하고 있는 독일과 프랑스의 생각과 태도가 중요하다. 독일과 프랑스 두 나라의 현 집권 세력 모두 표면적으로는 유로존을 유지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단일주권의 유럽 연방에 대해 상당한 애착과 강력한 지지를 가진 야당(독일의 SPD, 프랑스의 사회당)에 비해 연방 유지에 대한 의지는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다.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도 미묘한 차이가 존재한다. 프랑스는 구제금융 재원의 확대나 유로본드의 도입 등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입장이다. 자국 대형은행들의 재정취약국에 대한 투자 규모가 많아 재정취약국의 생존 여부가 자국 금융기관의 손실 규모와 금융시스템 안정에 중요하기 때문이다.
독일의 경우 겉으로는 유로존 유지가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실제 재정취약국의 지원이나 유로존의 취약성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는 데에는 신중하고 인색한 편이다. 재정취약국에 대한 지원이 불가피하더라도 최소한 재정취약국에 대한 재정 규율을 강화하고 이를 어길 경우 재정주권을 박탈하는 등의 사전 정비작업이 더 중요한다고 본다. 무작정 재정적 곤경에 빠진 재정취약국을 지원하는 데에 우선하다 보면 도덕적 해이 문제를 방치하게 되거나 유로존의 근본 문제 해결이 지연된다는 생각인 것이다. 네덜란드나 핀란드, 오스트리아 등도 기본적으로 독일과 유사한 입장이다.
2012년은 유로체제의 운명을 가름할 중요한 시기
향후 유로존의 약점을 해소하는 근본 방안은 통화동맹을 재정동맹 수준으로 강화하는 등 통합의 강도를 높여 나가는 것이다. 다른 한편 유로존의 해체 또는 재편을 통해 각국이 자국통화를 부활하거나 국가군별로 통화를 달리하는 방안도 있다. 이 가운데 유로존의 분열은 구제금융을 지원하는 재정건전국이나 외부 도움이 불가피한 재정취약국 모두에게 이롭지 않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고려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유로존의 해체 또는 일부 국가의 유로존 탈퇴로 인해 야기될 단기적인 금융 혼란과 소득 감소 등을 감내하기 어려울 수 있다.
따라서 당분간은 유로존을 유지하면서 해결책을 모색할 가능성이 높다. 우선 당면한 위기 해소 방안으로서 ECB의 개입 확대나 EFSF의 지원여력 확대, IMF를 통한 지원 등의 직접적인 지원방안들에 대해 논의가 올해 중 일정부분 진전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는 모든 방안에 대해 미온적이거나 반대하는 입장인 독일도 향후 재정규율 강화 또는 구조조정 확대 등을 조건으로 입장을 바꿀 가능성이 있다. 국채시장의 여건 호전, 또는 ECB의 건전성 유지를 위해 EFSF에 레버리지를 부여함으로써 지원여력을 확대하는 방안을 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가장 큰 위험요인은 구제금융 체제가 장기화되면서 구제금융국이나 지원국 모두 상대방에 대한 불만의 정도가 점차 높아질 가능성이다. 더욱이 유럽 및 세계경제의 경제상황이 점차 악화되는 추세여서 재정취약국의 재정건전화 작업을 더디고 어렵게 할 수 있다. 당초 계획에 비해 재정건전화 작업이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 경우 독일 등 지원국의 입장에서는 피지원국들에 대해 더 많은 긴축과 구조개혁을 요구해야 하는 반면, 피지원국 국민의 입장에서는 경제적 고통의 확대가 장기화, 더 나아가 영구화될 지도 모른다는 데 대한 불만과 우려가 점차 커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유로존에 머무르기보다는 유로존을 떠나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의견이 대두되면서 피지원국 또는 지원국 중 일부 국가의 유로존 탈퇴가 현실화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특히 프랑스와 스페인 등 2012년 중 유로존 내에서 선거를 앞두고 있는 나라들이 적지 않아 자칫 합리적인 사고보다는 급진적 성향이나 포퓰리즘적 목소리가 득세할 가능성이 우려된다.
2. 본격화하는 미국의 Deleveraging
2012년 세계경제는 부채를 줄여나가는 디레버리징이 더욱 본격화할 것이다. 금융위기 이후 지난 수년간 가계부채가 정부부채로 주체만 바뀌었을 뿐 총 부채규모는 오히려 더욱 늘어났다. 정부부채가 국가신뢰를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면서 향후 부채축소와 이에 따른 성장 둔화 추세는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디레버리징의 중심에 미국이 있다. 미국의 부동산 거품과 함께 진행된 가계부채 증가가 현 세계경제 위기를 촉발시킨 주 원인이기 때문이다. 부채가 끌고 갈 만한 수준으로 안정될 때까지는 미국경제 및 미국 정부에 대한 신뢰문제가 제기되면서 혼란과 불안이 지속될 것이다. 따라서 경제의 잠재력에 미치지 못하는 저성장기조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 20세기 세계 수요를 이끌어온 미국의 부채문제 해결은 결국 세계경제의 중기적 진로를 결정하는 중요 요인이 될 것이다.
미국이 빚 문제에서 풀려나 정상 성장경로에 돌아오려면, 2000년대에 과도하게 부풀려진 각종 지표들이 정상화되어야 한다. 대표적인 지표로 주택가격, 가계부채, 그리고 위기해결 과정에서 크게 늘어난 국가부채를 들 수 있다.
주택가격 하락세 올해 멈출 수도
2000년대 빠르게 상승했던 미국의 주택가격은 2006년을 피크로 최근까지 계속 떨어지고 있다. 주택가격 하락세가 지속되는 한 가계의 모기지 부실이 계속 늘어나면서 정상적인 금융 및 소비활동을 제약하는 요인이 된다. 또 건설투자도 2006년 이후 마이너스 성장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이에 따른 경기의 위축은 부동산시장 전망을 어둡게 해 다시 주택가격을 하락시키는 악순환을 발생시킬 수 있다. 결국 주택가격 하락이 멈춰야 가계와 금융기관의 추가 부실이 줄고 수요위축의 악순환이 멈추면서 경제가 정상 궤도로 복귀하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최근 미국의 주택 관련 지표는 서서히 개선되는 추세가 나타난다. 미국의 대표적 주택가격지수인 ‘케이스-쉴러 지수’는 여전히 전년 동기비 마이너스 성장세이지만 마이너스 폭이 5월 이후 계속 줄어들고 있다. 연방주택금융청(FHFA)이 발표하는 주택가격지수는 9월 중 전월에 비해 반등했다. 주택가격의 하향 추세가 완화되면서 신규 모기지 대출 수요도 3분기부터 증가세로 돌아섰고 모기지 연체비율도 낮아지고 있다. 재고주택 수도 2011년 하반기부터 줄어드는 추세이다.
다만 그 동안 주택경기가 워낙 큰 폭으로 위축되어 있었기 때문에 최근 개선 흐름에도 불구하고 주택지표들이 정상화됐다고 판단하기엔 이르다. 주택재고는 330만 채로 금융위기 이후 최저수준으로 낮아졌지만 2000년대 초반(2000~2005년 평균) 230만호 수준에 비하면 여전히 크게 높다. 주택수요가 빠르게 늘어나지 않는 한 재고물량이 주택가격 반등을 막는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다. 모기지 연체율이나 신규주택 차압 비율도 낮아지고는 있으나 여전히 위기 이전에 비해 크게 높다.
주택가격은 2006년 고점 대비 32.5% 하락하면서 2000년대 이전의 추세선에 거의 근접했다. 주요 전문기관들은 미 주택가격이 올 초까지 하락하다가 상반기에 바닥을 찍으면서 완만하게 반등할 것으로 내다본다. FannieMae, 주택모기지 연합(MBA) 등은 올 초를 저점으로 예상하고 있다.
다만 부채조정 과정에서 미 경제의 잠재적 성장능력이 약화됐다는 점을 감안할 때 주택가격의 추세선 자체가 아래로 이동했을 가능성이 있다. 미국의 성장이 전문기관들이 예측하는 것보다 낮은 수준을 유지한다면 주택가격 하락추세도 예상보다 길어질 수 있다. 또 하락추세가 멈추더라도 이후 반등 속도 역시 빠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가계부채 조정 속도 둔화
금융위기 이후 미국 가계부채 조정은 꾸준히 진행됐다. 미국의 가계부채 규모는 2008년 3분기 14.1조 달러로 역대 최고수준을 기록한 이후 2011년 3분기에는 13.3조 달러로 줄었다. 특히 가계부채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모기지 부채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데 이는 금융위기 이후 모기지 차압이 늘면서 부채가 정리되었기 때문이다.
지난해엔 은행권 신규대출이 다시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는 가운데 가계대출도 3분기부터 증가세로 돌아섰다. 모기지 대출이 늘어나고 자동차 및 학자금을 비롯한 소비자신용이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정부의 부실자산 매입, 양적 완화 등에 힘입어 미 은행권의 건전성이 제법 개선된 데 따른 것이다. 3분기 중 미 은행들의 총 순익은 350억 달러로 전년 동기비 50% 증가했으며, 부실은행 수도 감소세로 돌아섰다.
그러나 가계부채 조정이 끝났다고 판단하기엔 여전히 섣부르다. 가계부채/GDP 비중은 2008년 100%까지 급격히 늘었다가 현재 90%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2000년 72%에 비하면 크게 높다. OECD 평균인 77%보다도 높다. 높은 부채가 국가에 대한 신뢰 저하로 이어진다는 점을 감안할 때 가계부채 조정은 추가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최근 미국경제가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이는 유가안정, 대지진에 따른 생산차질 극복 등에 따른 반등효과가 크며 중기적으로 세계경제 환경 악화, 재정지출 축소 등으로 2% 밑의 저성장 기조를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고실업과 낮은 임금상승세가 지속되면서 가계가 부채를 지속적으로 늘릴 여력이 크지 않을 것이다. 또 향후 미국 부동산 가격의 하락이 멈추더라도 빠른 반등을 기대하기는 어려우며 부동산 구입목적의 대출 수요도 크게 늘기 어렵다.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보유하고 있는 유로존 국채가 부실화할 가능성이 있어 은행의 수익성 악화가 우려된다. 이미 재정위기 우려로 신용평가기관인 S&P사가 미국 주요 대형은행의 신용등급을 떨어뜨렸다. 금융건전성 규제 강화 추세에 따라 ‘바젤 Ⅲ’가 도입되면서 금융기관들은 위험자산 대비 자기자본을 2.5~5% 정도 더 쌓아야 한다.
당분간 미국 은행권의 자금운용은 전반적으로 보수적인 형태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며 부채비율이 높은 가계부문보다는 상대적으로 재무적으로 안정된 기업 대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가계부채/GDP 비중은 경기 상황에 따라 등락을 보이겠지만 장기적으로 완만한 하락 추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재정적자 감축 2013년부터 본격화
미국의 재정적자는 2000년대 초반에는 GDP의 1~3%에 달했으나 금융위기 극복과정에서 크게 늘어 지난해 말 GDP 대비 10%를 넘어섰다(<그림 8>참조). 금융기관, 모기지 전문회사에 대한 자금 지원과 실업수당 및 사회보장 지출이 크게 늘어난 반면 경기부진으로 세수가 위축된 탓이다.
올해엔 재정적자 축소가 불가피하다. 미국의 국가부채 규모는 지난 해 2차 대전 이후 처음으로 GDP 규모를 넘어섰으며, 정부 부채 한도를 높이는 과정에서 2021년까지 2조 달러 규모의 재정적자 감축에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향후 10년간 2조 달러의 감축만으로 국가신뢰를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합의된 재정적자 감축 계획이 원만히 시행돼도 2021년 재정적자의 GDP 비중은 5% 이상이 될 것이다.
재정적자 규모가 줄더라도 적자기조가 지속되는 한 국가부채 규모는 꾸준히 늘어날 것이다. IMF 전망에 따르면 미국의 국가부채는 2015년에 GDP 대비 120%까지 늘어난다. 재정적자 축소가 계획보다 더디게 이뤄진다면 부채확대엔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미국의 재정적자 축소가 미흡할 경우 신용등급 저하, 달러화에 대한 신뢰 하락 등 금융시장의 혼란이 커질 수 있으며 수요위축으로 실물경기도 어려워지게 될 것이다. 이에 따라 오바마 대통령은 2021년까지 3.7조 달러 규모의 과감한 재정적자 감축안을 통해 재정적자 비율을 GDP의 2% 수준으로 줄이는 방안을 제시했다. 미 의회 통과 여부는 불투명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추가적인 감축계획이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 부채가 다시 합의된 상한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는 올 상반기 중 부채한도 추가증액에 대한 논의가 다시 진행될 수 있다. 이 때 보다 강도 높은 적자 감축 논의가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미 정부의 과감한 적자축소 계획과 실행은 별개의 문제이다. 미국 정부는 중기 성장세를 3% 가까운 수준으로 예상하고 있으나, 세계적인 디레버리징 과정에서 실제 성장은 이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계획했던 것보다 세수가 줄면 적자비중이 높아질 수 있다. 아울러 성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현재 8%대를 기록하고 있는 실업률이 떨어지기 어렵고 이는 추가적인 부양책 유인을 확대시킬 수밖에 없다. 결국 상당기간 동안 미국의 재정적자는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국가부채가 늘어나는 모습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디레버리징 장기화로 성장활력 저하
종합해보면 향후 미국의 부채 축소 과정은 빠르게 이루어지기보다는 경기상황에 따라 완만하게, 그리고 장기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민간부문은 금융위기 이후 부채조정이 어느 정도 진행되어 왔지만 아직 조정 여지가 남아 있다. 다만 부풀려졌던 주택가격이 추세 수준으로 크게 떨어지면서 추가적인 하락폭이 크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되며 은행 부문의 건전성이 상당부분 회복되었다는 점에서 향후 가계부채 축소가 경제에 미치는 충격은 과거만큼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 부문의 부채축소 노력은 장기간에 걸쳐 완만하게 지속될 것이다. 미국의 부채 조정이 완만하게 진행된다면 수요에 미치는 단기적인 충격은 그만큼 줄어들 수 있지만 이와 동시에 미국 정부, 달러화에 대한 신뢰가 위협받으면서 금융불안이 심화되고 실물경기도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결국 향후 미국의 디레버리징은 전반적인 성장 활력의 둔화와 함께 신뢰위기 지속에 따른 금융시장의 혼란을 간헐적으로 수반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3. 미국의 동진(東進), 아시아경제와의 Rebalancing
높아가는 아시아의 위상
글로벌 금융위기가 미국경제와 아시아, 특히 중국경제간의 불균형(imbalance)에 뿌리를 두고 있는 만큼, 이후 조정(Rebalancing) 과정은 태평양을 사이에 둔 양 대륙간 제반 국력의 조정양상이 될 수밖에 없다. 한 경제권 내에서의 균형 찾기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경제정책이 자국 내 정치과정을 통해 관철되지만, 대륙 간의 조정은 경제적 수단뿐 아니라 지역안보 및 외교적 수단 등 다양한 채널이 동원될 것이다.
금융위기 이후 아시아경제의 위상은 더욱 높아가고 있다. 반면 글로벌경제를 이끌어온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 경제의 침체는 장기화될 조짐을 맞고 있다. 2006년 세계경제의 30%에 불과했던 아시아경제는 올해 35%까지 커졌다. 글로벌경제의 성장기여율도 같은 기간 44%에서 57%로 높아졌다(<그림 9> 참조). 아시아경제가 글로벌 경제의 급락을 막는 버팀목으로 기능하고 있는 셈이다.
글로벌 헤게모니를 유지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해외에서 발굴해야 하는 미국 입장에서 아시아 대륙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양차대전 과정에서 미국의 적극적인 관여(engagement) 정책으로 이후 냉전시대 미국의 든든한 전략적 동반자가 됐던 유럽은 이제 유로존의 해체론까지 거론되고 있다. 태평양 건너 아시아대륙의 전략적 우선순위를 유럽대륙의 수준으로 높이는 것은 미국으로선 자연스런 조정과정이다.
태평양을 사이에 둔 양 대륙의 리밸런싱 과정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중국의 경제적 구심력 강화와 외교적 팽창이다. 중국 정부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중국의 수출환경에 먹구름을 드리우기 시작한 2008년 4분기부터 대규모 재정투자를 집행해 성장률의 급락을 차단한 데 이어 지난해부터 시작된 12차5개년 규획에서 내수의 성장동력 확대를 가장 중요한 정책목표로 설정했다. 주변국 입장에서는 연해 수출거점 지역에 국한됐던 중국 시장이 중서부 내륙으로 확산돼 진정한 ‘13억 시장’의 흡인력을 갖추게 될 것임을 의미한다.
중국 정부는 인접경제권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을 연이어 체결함으로써 표면적으로나마 시장의 진입장벽을 낮추고 보다 긴밀한 경제협력의 터를 닦고 있다. 파키스탄, 뉴질랜드, 아세안, 싱가포르 등에 이어 대만과도 준(準) FTA(ECFA)를 맺었다. 여기에 더해 2009년부터 단계적으로 위안화 무역결제를 허용함으로써 중장기적으로 위안화 무역블록의 조성을 시도하고 있다. 동아시아 교역상품의 대부분이 자국의 관세영역을 넘나들기 때문에 위안화 무역블록의 규모는 단기간 크게 신장되고 있다.
중국 인민은행의 저우샤오촨(周小川) 행장은 이미 2009년 미 달러화의 기축통화로서의 안정성에 문제를 제기했다. 미 국채의 최대보유국인 중국의 문제 제기는 국제 금융시장에 적지 않은 파장을 미쳤고, 올 여름 미 국가신용등급의 하락이란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파장이 이어졌다. 국제통화로서 위안화의 위상은 달러화에 비할 바 못되지만, 중국으로선 미국 달러패권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위안화의 잠재력을 과시한 셈이다.
2011년 한해 동안 중국 정부는 6%를 넘어선 인플레이션에 대응해 긴축적 통화정책 기조를 유지했다. 그런데도 9%대의 성장세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일본 경제규모를 추월한 중국은 여전히 큰 보폭으로 세계 최대 미국경제를 따라잡고 있다. 최근 폐막한 중국 공산당 중앙공작회의는 2012년 정책기조를 ‘안정 속에서 발전을 추구한다(穩中求進)’로 확정했다. 1년 전 ‘안정성장 속에서 물가상승을 억제하고 구조개선을 추진한다’는 정책기조에서 ‘물가안정’ 목표가 빠졌다. 긴축적 통화정책이 올해 경기상황에 따라 느슨해질 수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이런 흐름이라면, 올해 중국경제는 지난해보단 낮지만, 선진국경제보단 월등히 높은 8%대를 유지할 것이다. 중국시장의 흡인력은 더욱 커질 것이란 전망이다.
미국의 아시아 중시전략
미국의 아시아 재개입 (Rengagement) 정책은 지난해 11월 공식화됐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포린 폴리시(FP) 11월호 기고문에서 “미국은 지난 10년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 등의 위협에 막대한 자원을 집중했으나 향후 10년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집중해 글로벌 리더십과 핵심 이익을 지킬 것”이라고 천명했다. 아시아전략의 포괄범위는 인도양∼태평양을 아우르는 지역이다. 특히 힐러리 장관이 이 기고에서 열거한 아시아 맹방은 일본, 한국, 호주, 필리핀, 태국 등 5개국으로서, 이들의 연결선은 곧 중국을 에워싸는 구도를 형성한다. 아시아 재개입 정책이 중국 견제에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대만에 대한 전투기 현대화 사업계획(9월), 미 해병의 호주 주둔계획 발표(11월)도 같은 맥락이다.
이 같은 미국의 행보는 아시아와 미국 간 글로벌 불균형의 해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클린턴 장관은 FP 기고문에서 “번영하는 미국은 중국에도 좋은 것이며, 중국의 번영도 미국에 유리하다”고 썼다. 이를 다르게 표현하면, 중국의 강성해진 국력과 달라진 위상을 인정하는 대신 미국도 중국의 부상에서 이익을 취할 수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가 된다. 불균형의 해소가 중국의 일방적 부상으로만 귀결되는 것은 용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은 장기 침체위기에 빠진 경제를 회복시키는 유력한 수단으로 ▲수출의 획기적 증대와 ▲해외 진출한 미국기업의 시장입지 강화를 꼽고 있다. 미 경제위기의 원인이 된 쌍둥이 적자 중 경상수지 적자를 흑자로 돌리기 위함이다. 지구촌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살고 있는, 세계교역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아시아는 핵심 타깃이다.
이 같은 미국의 아시아전략에 비춰볼 때 올해는 어느 때보다 중국 위안화 절상을 둘러싼 파열음이 크게 울릴 수 있다. 미국은 위안화 절상이 중국뿐 아니라 일본, 한국, 대만 등 인접국 통화의 동반 절상을 유도해 이 지역에 대한 무역수지 적자를 만회할 유효한 카드로 인식하고 있다. 일본 경제의 부상국면에 엔화 절상을 압박해 일부 효과를 보았던, 플라자합의(1985, 뉴욕)의 유혹을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패전 후 군사강국의 길을 포기한 일본은 미국의 안보우산을 빌려 쓰고 있기에 플라자 합의가 탄생할 수 있었지만 중국은 아시아 지역안보에선 미국의 대척점에 서있다.
일반적으로 특정 통화의 절상은 국력의 신장을 반영하는 종속변수에 가깝다. 환율변화는 교역국 경제 펀더멘탈에 영향을 끼치는 독립변수라기보다 소비, 투자 등 거시경제 상황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즉 미국경제가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는 반면, 중국은 저축을 줄이고 소비를 획기적으로 늘리는 펀더멘탈의 변화가 전제되지 않는 한 환율조정만으로 미중 간 불균형은 해소되기 어렵다는 게 일반적 평가이다.
2005년 중국의 환율개혁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가 표면화되기까지 위안화는 거의 20% 절상됐고 2010년 5월 이후 현재까지 연평균 5% 정도의 절상흐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대중 무역수지 적자는 같은 기간 오히려 심화됐다. 오늘날 중국 전체 수출의 절반 이상을 맡고 있는 외자기업들은 대부분 글로벌시장에서 자재와 부품을 들여와 조립, 가공한 뒤 3국에 수출하는 조업 패턴을 정착시켰다. 애플의 아이폰도 ‘Made in China’이지만, 고가의 부품들은 미국이나 한국 등지에서 수입해 가공조립을 거친 뒤 재수출된다. 위안화 가치가 상당 폭 조정되더라도 이런 가치사슬 구조엔 큰 영향을 미치기 어렵다. 이런 탓인지 미 행정부는 이미 종합무역법(1988년)과 환율감독개혁법(2011년) 등 ‘환율조작국’에 대한 보복수단을 마련해뒀지만 외교적 압박수단으로만 활용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중국 위안화의 절상세는 올해는 물론 이후 기간에도 이어질 수 있다. 수출부문의 성장기여를 낮추고, 내수를 확대하기 위한 정책방향으로서 12차5개년 규획의 주요 과제이기도 하다. 다만 절상속도를 놓고 미국과 갈등을 빚을 것이다. 지난해 중국경제는 대대적인 내수부양 정책에도 불구하고 1분기 이후 성장세는 투자가 주도하는 모양새를 나타냈다. 소비의 성장기여를 높이는 것은 가격 및 에너지 개혁, 분배개혁, 금융기능 확충 등 구조적 이슈를 해결해야 하는 것인 만큼 당장 성과를 내기 어렵다. 따라서 수출이란 성장동력을 한동안 유지할 수밖에 없으며, 이것이 중국이 미국의 요구보다 더디게 절상세를 진행시키는 배경이 되고 있다(<그림 10> 참조).
미국의 아시아태평양권 국익은 미국 기업의 시장 접근성을 제고시켜 늘릴 수도 있다. 미국은 이미 호주, 한국 등 개별 동맹국과 FTA를 맺어 시장의 문턱을 낮춘 데 이어, 미얀마, 인도와의 경협도 강화할 태세다. APEC, 아세안,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메콩강 이니셔티브 등 지역 그룹에도 전 방위적으로 손길을 뻗고 있다. 물론 아시아 시장의 핵심인 중국시장에 대한 접근성은 ‘전략경제대화’란 채널을 가동한다.
미국이 제기하는 중국의 불공정사례는 다양하다. 기술표준의 차별적 적용, 외국기업의 시장접근 차단, 지적재산권 침탈 등이다. 대부분 중국 국유기업의 경쟁력에 위협을 줄만한 미국기업의 진입을 차단하거나 중국 독자적인 산업체인을 형성하기 위한 자국 편향적 조치들이다. 특히 중국이 차세대 산업으로 육성하는 전략적 신흥산업에서 로컬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과 외자지분 제한 등이 타깃으로 거론되고 있다.
미국은 중국 정부가 이 같은 불공정 관행을 철폐할 경우 미국기업의 앞선 기술 및 소프트경쟁력으로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출 수 있다고 판단한다. 아울러 그 과정이 글로벌 리밸런싱 과정인 만큼 양국 이익은 물론 글로벌 경제에도 긍정적으로 기여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걸림돌은 중국의 사회경제 체제이다. 중국 특유의 사회주의 시장경제는 핵심 산업에서의 공유원칙을 포기할 수 없다. 핵심 국유기업의 경쟁력이 글로벌기업 수준에 도달해 시장에서 탄탄한 국유원칙을 지킬 수 있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시장보호 장치를 제거할 수 없을 것이다.
30년에 걸친 고도성장을 이끌었던 중국식 발전모델은 국가주도 특성이 강했다. 아직도 행정부에 의한 자원 배분 및 자원가격 통제가 수시로 나타나고 있으며, 진입규제도 자의적으로 이뤄지곤 한다. 미국의 ‘공정한 대우’ 요구는 행정부 권한의 위축으로 이어지는 만큼 제도적으로나 관행적으로 단기간내 시정될 리 만무하다.
파열음 낼 미중 리밸런싱
태평양을 사이에 둔 양 진영의 리밸런싱 과정은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구조적인 걸림돌이 수두룩한 만큼 쉽게 진행되진 않을 것이다. 미국은 근 10년 동안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 테러전쟁을 주도하면서 중국의 협조가 절실했다. G20 무대나 국제기후변화협약 등에서 중국이 개도국 진영을 대표한다며 미국의 이익에 도전해도 정면으로 대응하진 않았다. 이제 사정은 달라졌다.
글로벌 불균형은 현 달러패권 체제에서 중국경제의 경쟁력 강화와 미국경제의 약화를 양대 축으로 형성됐다. 하지만 중국의 경제력은 여전히 미국의 40%대에 머물고 있으며, 과학기술, 군사적 역량, 소프트 파워는 미국과 비교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미국은 이런 현격한 격차를 자신감으로 중국에 성장의 과실을 나누라고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중국이 지난 30년 동안 공을 들여온 제3세계 외교는 최근 난조에 빠져있다. 북한 핵, 이란 핵, 아프리카 자원외교, 중동 민주화 등 이슈에서 중국은 전략적 판단미스로 사면초가에 몰리는 양상이다. 연말 잡음 없는 지도부 교체를 희망하고 있는 중국 공산당으로선 미국과의 관계 재정립(리밸런싱)이 발등의 불로 떨어졌다.
4. 민의 확대와 정치, 복지의 재조정
지난해 봄부터 유럽 각국에서는 재정 긴축 반대 시위가 빈발했다. 정부가 재정적자 축소를 위한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서자 시민들은 복지예산 감축, 공무원 임금 삭감 및 고용 축소, 세금 인상 등에 반발하며 대책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어 가을 미국 뉴욕에서 ‘월가를 점령하라’는 구호를 내건 시민들의 시위가 두 달 넘게 이어졌다. 세계 각국으로 급격히 확산된 시위대의 주장은 일자리 확대에서 이라크 전쟁 반대 등에 걸쳐 다양하게 나타났지만, 그 밑바닥에는 경제위기의 도화선이 된 금융자본의 탐욕과 사회부패에 대한 항의가 깔려있었다. 이른바 ‘1%의 지배에 대한 99%의 저항’이었던 셈이다.
신흥국 민심도 격렬하게 저항했다. 2010년 말 노점상이었던 한 튀니지 청년의 분신으로 촉발된 재스민 혁명은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으로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수십년 철권통치를 휘둘렀던 튀니지와 이집트, 리비아 독재자들이 비참하게 물러났으며 예멘, 시리아 등 주변국들도 성난 시민들의 저항물결을 피할 수는 없었다.
소득불평등 확대에 복지축소, 실업률 상승 등이 사회 불안으로 폭발
선진국 대중들의 분노는 크게 두 가지 흐름이 배경이다. 그 중 하나는 2008년 경제위기와 이후 정책 대응에서 비롯됐다. 과도한 가계부채로 형성된 부동산 버블의 붕괴가 리먼 사태를 초래했는데, 국제 금융시장이 충격에 빠지고 세계경기가 급락하자 주요국 정부는 대폭적인 재정지출 확대를 통해 경기부양에 나섰다. 그러나 이는 가뜩이나 심각했던 미국, 유럽 등 선진국 정부부채를 급격히 늘리는 계기가 되었다. 정부의 부채관리 능력에 의문이 제기되고 국채에 대한 신뢰가 급락하는 등 유로존을 중심으로 심각한 재정위기가 진행되면서, 각국은 이제 다시 재정지출을 크게 삭감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했다. 긴축방안 가운데 복지 및 연금 혜택 축소 등 대중의 희생을 요구하는 부분이 극심한 반발을 사고 있는 것이다.
금융위기 이후 급등한 실업률도 사회불안의 주 요인 중 하나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사회불안을 야기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 실업률의 상승을 지적한 바 있다. 선진국의 실업률은 2007년 5.5%에서 2011년 7.9%까지 상승했으며, 그 가운데 유로존은 같은 기간 7.6%에서 9.9%로 높아졌다. 스페인의 실업률은 현재 20%를 넘나들고 있고, 미국도 8~9%대의 높은 수준을 기록하는 중이다.
새로 노동시장에 진입해야 하는 청년층이 상대적으로 더 큰 피해를 보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경기가 위축될 때 신규 채용을 억제하는 기업들의 인사관행으로 중, 장년층에 비해 타격이 더 클 뿐 아니라, 연금 지급액 축소를 위한 정년연장 논의까지 겹치면서 일자리를 두고 세대간 갈등양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금융 및 재정위기의 여파와 그에 대한 정책 대응이 대중들의 분노를 야기한 단기적인 배경이라면, 지난 30여 년 간 규제 완화와 감세, 금융자유화 등으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 흐름은 장기적 배경으로 작용했다. 신자유주의가 일반 대중의 삶의 질을 떨어뜨렸다는 인식이 팽배해있다.
금융회사를 중심으로 기업들의 부가 크게 늘어난 반면 일반 대중들의 삶은 개선 속도가 더뎠고, 특히 중산층이 몰락하면서 소득 불평등도가 지속적으로 악화됐다. OECD 회원국들의 지니계수는 1970년대 중반 0.30 미만이었으나 2008년에는 0.32까지 확대되었으며, 1990년대 이후에는 북유럽에서도 소득 불평등이 심화된 것으로 나타난다. 미국에서 상위 0.01% 계층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80년대 초반 1%대 수준에 불과했지만,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가 풍미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에는 5%를 넘어서기도 했다.
이러한 소득 불평등의 확대는 그 동안 세계화와 금융완화, IT기술 발전으로 높아진 생산성에도 불구하고 모든 계층이 생산성 향상의 혜택을 향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불균형성장론을 뒷받침하던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에 대한 회의가 일어나면서, 성장에서 소외된 계층의 불만이 지속적으로 누적돼온 셈이다.
선진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시민 분노의 장단기적 배경은 신흥국에서도 비슷하게 관찰된다. 다만 높은 실업률과 소득 불평등이 독재로부터 기인하고 있다는 점은 다르다. 오랜 기간 수탈과 압제를 겪으면서 중동과 북아프리카 경제의 기초 체력은 매우 취약해져 있었으며, 경제적 부를 누리는 것은 독재자 및 그 일가에게만 허용된 것이었다. 여기에 글로벌 금융위기로 그 이전부터 높았던 실업률이 더욱 치솟았고 2010년 말 이후 공급 충격으로 물가까지 폭등하면서, 독재와 경제적 곤궁에 신물이 나있던 민초들의 분노가 극에 달한 것이다.
남유럽, 복지 재조정 놓고 갈등 고조
가장 큰 변화를 맞을 지역 가운데 하나는 재정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이탈리아 등 남유럽이다. 이 지역의 위기가 과도한 복지로부터 기인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위기의 결과로 복지지출 및 재정 시스템이 재조정 압력을 받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탈리아의 마리오 몬티 내각은 지난 해 12월 초 세금을 올리고 예산을 삭감하며 연금을 개혁하는 200억 유로(약 3조원) 규모의 긴축안을 입안했다. 의회가 이 긴축안을 통과시킬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특히 연금을 수급하게 되는 연령이 높아지고, 그만큼 연금 납부 기간이 길어지는 국민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하지만 EU 차원의 지원을 얻기 위해선 강도 높은 재정 구조조정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리스는 연립내각의 올해 긴축예산안을 의회가 승인했다. 국회의사당 주변에서 시위대가 화염병을 던지는 등 격렬한 반발이 있었지만, 벼랑 끝에 몰려있는 그리스 정부로서는 유럽연합과 유럽중앙은행, 국제통화기금의 지원을 얻어내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을 하였다. 사실 그 동안 유로화 편입에 따른 과잉 복지와 경제 성장의 혜택을 누린 남유럽은 복지개혁과 증세에 소홀했다는 평가이다.
스페인의 Ponticelli와 Voth 등의 연구에 따르면 1919~2009년 동안 유럽 각국의 예산삭감 사례와 사회불안 케이스간에 상당한 상관성을 발견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현재의 재정위기로 예산 증액이 어렵다는 점을 유럽 국민들은 인식하지만, 위기 책임을 국민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여론도 비등해질 수밖에 없다. 정치권 무능에 대한 비판이 확산되면서 남유럽을 중심으로 한 복지삭감과 사회적 갈등은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고, 정치권은 예산 총액을 줄이는 가운데 국민들의 반발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기 위한 미세 조정에 상당한 시일을 소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보다 스웨덴, 독일의 복지사정이 나은 이유
기축통화인 달러의 발권력을 보유한 미국은 사정이 다소 낫긴 하지만, 재정긴축과 증세를 놓고 민주당과 공화당이 팽팽한 줄다리기를 벌이는 중이다. 지난해 11월 여야 동수로 구성된 수퍼 위원회(Super Committee)는 공화당 측이 증세를 일부 받아들이고 민주당 측이 지출 삭감을 부분 수용하는 방식으로 토론을 진행하였지만, 결국 향후 10년간 1조2천 억 달러의 적자 감축안에 대해 합의에 실패했다.
월가 시위가 고조된 것은 이 무렵이다. 금융위기의 책임은 지지 않고 부담을 일반 국민에게 전가하려는 월 스트리트와 정부의 개혁 난항을 거세게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미국 내 0.1% 부유층의 상징과도 같은 워렌 버핏 등은 증세 논란에 불을 지핌으로써 경제적 상위 계층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나섰다. 오바마의 민주당은 이에 힘입어 그 동안 복지축소로 저소득층이 더 큰 피해를 입어왔음을 강조하면서 저소득층 지원 및 의료 강화와 증세 카드를 버리지 않고 있다.
미국 정치의 복잡한 지형으로 향후 변화를 쉽게 예측하기는 어렵다. 올해 미국은 장기간의 대선 레이스를 소화해야 하는 상황인데, 민주당은 오바마의 지지율 하락을, 공화당은 후보들의 취약한 경쟁력과 정책 차별성 부각을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 재정위기를 겪으면서 시민사회의 요구가 더욱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그 동안 규제완화와 감세, 막대한 재정적자, 상대적으로 빈약한 복지체계 등으로 상징되던 미국식 경제 모델 또한 ‘99%의 저항’을 받고 있다. 조정은 불가피할 것이다.
반면 상대적으로 이번 위기에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스웨덴 사회민주주의 모델의 경우 변화의 압력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인상을 준다. 지난 1990년대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선제적으로 재정개혁을 실시, 복지의 리밸런싱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 한때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이 12%를 넘기도 했던 스웨덴은 근로자들의 퇴직연령 상향과 연금지급 축소, 공기업 민영화 등을 단행했다. 조세수입도 꾸준히 증가시켰다. 여기에 유로화를 사용하지 않는 통화정책의 자율성까지 유지되면서 이후 경상수지 흑자기조를 꾸준히 지속해왔다.
독일도 2007년 증세와 노인연금 수급연령의 상향을 통해 지속 가능한 복지와 재정건전성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다. 물론 이 과정에서 국민의 반발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금융위기가 닥치기 이전에 갈등의 조정 과정을 거치면서 재정과 복지 개혁에 일정한 성과를 냄으로써, 시급한 상황에 처해있는 남유럽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리밸런싱 압력을 적게 받게 될 것이다.
2012년 각국 정부, 더욱 거세진 변화요구에 직면
올해 중동 및 북아프리카 지역 역시 국제 사회의 주목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화로의 여정은 아직 갈 길이 훨씬 많이 남았다는 평가이다. 혁명의 단초가 되었던 한 청년의 분신 이후 이 지역은 불과 1년 만에 급격한 정치사회적 변화를 맞았으나,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과 반혁명 세력 사이의 충돌은 아직까지 계속된다.
튀니지의 경우는 비교적 착실히 민주주의로의 개혁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집트에서는 여성시위대에 대한 군부의 강경한 진압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여성과 야권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카다피 정권이 무너지면서 민주주의가 쉽게 정착될 것으로 보였던 리비아에서도 각 부족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좀처럼 민주화로의 진전을 이루어내지 못하고 있다.
각국의 경제적 곤궁도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시민들의 봉기로 첫 단추를 꿴 정치 민주화가 외견상 결실은 맺겠지만, 정치 및 사회시스템으로 정착되어 안정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이다.
이제 각국 정부는 더욱 거세진 대중의 분노와 국민적 요구에 직면한 상태에서 2012년을 맞이해야 한다. 선진국들의 경우는 재정지출을 줄여야만 하는 경제적 압력을 우선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긴 하다. 눈앞에 닥친 부도사태를 피하기 위해서는 빚을 줄이는 디레버리징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 선진 각국의 고유한 복지 모델이 획일적일 수는 없다. 과도한 지출 부문에 대한 조정, 세율 인상 및 세원 확대 등의 재조정 움직임이 국민적 반발을 뚫고 나타나는 중이다.
주지해야 할 것은, 과거에 비해 시민사회의 영향력이 더욱 확대되는 추세에 있다는 점이다. SNS의 발달로 시민사회의 여론화 과정 및 확산 속도가 과거보다 훨씬 빨라진 것도 정치지형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심지어 정당 정치가 힘을 잃고 특정 의제마다 사람들의 이합집산이 온라인을 통해 손쉽게 이루어지는 ‘자유주의 게릴라’ 시대를 예견하는 사람도 있다.
더욱이 올해는 주요국에서 선거라는 형식으로 국민들의 의사가 직접적으로 정치에 반영될 수 있는 해이기도 하다. 따라서 선진국에서는 높은 실업률과 소득 불평등, 연금 삭감에 대한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재정긴축을 시행하면서도 지출 부문의 미조정과 고소득층에 대한 증세로 정책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 또 독재와 경제적 곤궁에 대한 불만을 시민 혁명으로 승화시켜 민주주의를 이루어내기 시작한 중동 및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이러한 경험들이 더욱 확산될 것이다. 선후진국을 가리지 않고 올해엔 대중계층의 바닥에서부터 정치적 요구가 거세게 밀려오는 한 해가 될 전망이다.
5. Green Growth의 궤도 수정
Green Growth에 대한 기대와 우려 교차
2008년 리만 쇼크 이후 세계경제는 위기탈출의 원동력으로서 그린 산업에 큰 기대를 걸었다. 미국에서는 경제회생과 환경보호를 동시에 추구하는 ‘그린 뉴딜’ 정책이 추진돼왔다. 실제 그린 산업은 글로벌 경제 위기 이후 높은 성장세를 보여 왔다. 예를 들어 지난해 일본의 신차 시장에서는 친환경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매출 비중이 처음으로 연간 10%를 넘어섰다. 지난해 11월엔 14%까지 늘어나기도 했다.
블룸버그 New Energy Finance의 추계에 따르면 풍력, 태양광, 조력, 바이오매스 등 세계 신재생 에너지 관련 발전사업에 투자된 자금은 2010년 한해 1,870억 달러이다. 천연가스, 석유, 석탄 등에 투자된 1,570억 달러를 넘어섰다. UN 지구온난화 방지 협의가 부진하고 지난해 포스트 교토 협약의 합의도 이루지 못했는데도 세계는 신재생 에너지를 기반으로 하는 경제구조로의 이행을 멈추지 않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회의적 시각도 있다. 유럽 재정위기와 함께 그린 산업을 보는 시각은 다소 조심스럽게 바뀌고 있다. 그린 산업의 경쟁력이 아직 취약해 각국 정부의 재정지원이 절실한 마당에 구미 각국의 재정위기가 심화된 탓이다.
최근 수년 새 그린 산업의 급성장을 기대하여 세계 각국 기업이 대거 이 시장에 진출하면서 수익성 확보가 어려워지는 현상도 나타난다. 과잉투자로 가격급락 사태를 맞은 태양전지 산업이 대표적이다. 전반적으로 올해는 그린 산업에 대한 지나친 낙관이 퇴조하고, 정책 당국의 기대도 수정되면서 그린산업의 성장세가 중장기 안정성장세에 수렴하는 모양새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린 성장이라는 것은 한국정부 제안으로 OECD에 의해 정립(OECD, Towards Green Growth, 2011)된 국제적 목표의 하나이다. 당초 환경 규제는 성장을 제약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으나 환경 규제가 오히려 그린 산업과 그린 이노베이션을 촉진하고 새로운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성장을 이끈다는 개념이다. 그린 성장이 경제성장을 이끈다면, 궁극적으로 정부의 재정수입 확대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런데, 그린 성장의 선순환은 중장기적으로나 나타날 것으로 인식하는 측면이 강한 것도 사실이다. 미국, 중국 정부가 지구온난화 규제에 동참하기를 꺼리는 것도 환경규제 강화가 관련 산업 위축을 가져와 경제성장에 역효과를 낼 것으로 우려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려는 그린 성장이 부분적으로 이뤄져 그 효과를 실감하게 되면, 점차 약해질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일본이나 유럽의 경험에서 보면 환경 규제는 중장기적으로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경우 고도성장 말기인 1970년대 초에 심각해진 공해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가 환경규제를 강화하자 일본기업은 막대한 환경 투자를 집행해야 했다. 당시 일본기업의 공해방지 투자는 전체 설비투자의 18%, GDP의 8.5%에 달했다(일본경제연구센터, 2011). 당초 우려와 달리 투자 결과 경제성장이 가속되면서 기업 수익도 늘어나고, 새로운 환경 비즈니스를 창출할 수 있었다. 철강, 화학, 자동차 등 일본의 기간산업의 국제경쟁력 향상에도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이다.
미국이나 중국도 단기적 경제 충격이나 기득권의 저항을 극복하면서 환경 규제가 갖는 중장기적 순기능을 옹호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시대의 흐름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올해는 Green Growth의 활력 약화
그렇더라도 올해 그린 성장이 제약 받을 가능성은 농후하다. 미국 및 유로존의 재정위기 지속으로 세계경제의 성장세 둔화는 불가피하며, 주요국의 기후변화협약에 대한 타결의지가 강하지 못해 수년 간 탄력 받았던 녹색성장의 활력은 다소 약화될 전망이다.
수년 간 신재생 에너지의 발전단가 하락 등 그린 이노베이션이 진전돼 왔지만, 태양광 등 대부분의 신재생 에너지는 여전히 석탄과 천연가스 등 기존 화석에너지에 비해 단가가 높아 보조금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스마트 그리드(Smart Grid)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과 연계되는 에너지 인프라 구축에는 상당 기간에 걸친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 정부 부문의 화석 에너지 사용절감을 유도하는 규제뿐만 아니라 재정지원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녹색성장을 제3의 산업혁명으로 보고 재정투입을 늘려왔던 미국, 유럽 등 주요 선진국들이 재정위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만큼 이러한 난관들은 올해 유난히 뚜렷하게 다가올 것이다. 녹색성장을 주도해 온 선진국 경제가 녹색성장을 이끌 여력이 많지 않아 세계적인 녹색성장 기조도 다소 흔들릴 수 있다. 당장 선진권 수요 의존도가 큰 태양광 등은 다른 신재생 에너지보다 더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세계경제의 성장세 둔화는 민간부문의 자생적인 녹색성장 노력에도 제한을 가할 전망이다. 이미 선진권의 저성장 기조는 중국 등 개도국 기업들의 수출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신재생 에너지의 수요 위축은 현재의 공급과잉이 상당기간 해소되기 어려움을 의미한다. 태양전지의 경우 현재 공급과잉 규모는 글로벌 수요의 절반 이상인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지정학적 긴장과 이상기후로 인한 공급차질로 지난해 초 급등세를 보였던 석유와 석탄 등 화석 에너지 가격이 수요둔화 속 공급사정 개선으로 인해 올해엔 안정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경기둔화로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을 소비자에게는 신재생에너지 사용부담이 가중되고, 신재생에너지 관련 기업은 채산성 악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한편 매출부진을 경험하게 될 일반 기업들 역시 생산공정 등에서 시도했던 ‘녹색화’ 의지가 약화될 것이다.
2015년까지 진행될 기후변화협약 회의도 불확실성 속에서 큰 진전을 보이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녹색성장 활력을 확산시킬 계기가 시기적으로 미뤄짐을 의미한다. 기후변화협약 회의가 개도국들도 ‘의무 감축국’으로 편입되는 등 급 물살을 탄다면 지구촌의 거의 모든 경제에서 온실가스 배출규제가 엄격해지면서 글로벌 녹색성장 활력이 배가될 수 있다. 지난해 12월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기후변화협약 회의에서는 ‘신 기후변화협약 체제의 2013년 출범’이라는 당초 목표가 무산됐다. 대신 교토의정서 체제 종료를 최소 5년 최대 8년 연장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중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이 참여하는 광범위한 기후협약 협정을 2015년까지 맺기로 합의했다.
지난 회의에서 의무감축 대상국 중 하나인 캐나다가 기존 교토의정서 체제 탈퇴를 선언했고, 러시아 등 일부 참여국들의 의지도 약화되는 모습이 나타났다. 온실가스 감축 의무의 법적 구속력 부여와 개도국 지원금 등을 둘러싼 의견 대립이 해소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내년 카타르 회의에서도 의미 있는 성과가 도출되기는 힘들 것으로 예상돼 불확실성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Green Growth는 필연... 속도조절 국면에 진입
이상 본 바와 같이 올해 그린성장의 제약요인은 무척 많다. 이에 따라 그린산업의 성장세 자체는 유지되겠지만, 그 동안의 지나친 기대가 후퇴하면서 부분적으로는 공급과잉의 부담을 안게 될 전망이다. 이러한 리밸런싱은 중장기적인 차원에서 그린산업에 대한 지나친 기대를 합리적인 수준으로 조정하여 2013년 이후엔 보다 안정적인 성장경로를 되찾게 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일각에선 그린성장 자체가 신기루였을 지 모른다고 지적하지만, 그린성장이 완전히 무너질 가능성은 여전히 낮다. 자원 및 환경제약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경제가 크게 둔화해도 국제 유가는 올해 연평균 배럴당 100달러 수준(두바이유 기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Easy Energy 시대는 적어도 수십년 동안은 오지 않을 것이며, 자원가격의 중장기적 고공행진은 불가피하다. 제2차 유가파동 이후 세계경제가 위축되고 유가가 급락하여 각종 그린산업이 무너졌던 패턴은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다. 중국 등 신흥국 입장에서는 그린 산업의 성장기여가 커지는 데다, 신재생 에너지의 확보가 안될 경우 중장기적으로 성장을 지속할 수가 없기 때문에 공포감은 더 크다.
따라서 올해 그린성장을 제약할, 선진국 재정위기에 따른 그린산업 투자 감소는 상대적으로 재정에 여유가 있는 신흥국 등으로까지 확산되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선진국도 그린성장의 중장기적 재정수입 창출효과와 그린산업의 경쟁열위에 대한 우려 등으로 그린성장 관련 지출을 지속적으로 삭감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구온난화 등 기후변화로 인한 환경재해는 갈수록 그린투자 필요성을 키우고 있다. 원자력에 대한 불안감 등을 고려하면 선진국, 개도국을 막론하고 유권자들은 정부의 환경정책 후퇴를 용납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린 성장 자체는 갈수록 심화될 자원 및 환경 제약을 고려하면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린산업의 산업체인이 정착되고, 유관 산업에 긍정적 연관효과를 미치면 성장 기여는 보다 분명해질 것이다. 재정 창출 여력이 입증되기 시작하면, 그린투자도 본격화돼 그린 성장은 선순환 고리를 형성할 수 있을 전망이다.
Ⅲ. 맺음말
2012년과 이후 세계경제의 모습은 어느 때보다 불투명하고 이러한 양상은 우리 경제에 그대로 투영될 것이다. 유로존 재정위기를 비롯, 여러 리스크 요인이 산재한데다 주요국의 정치역학 및 정책 변수가 상당히 크게 작용할 전망이다. 경제적 압력과 정치적 요구 사이에 갈등이 증폭되면서 국가마다 다양한 균형점을 찾을 것이다.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은 2012년에도 지속될 것으로 판단된다. 유로존 문제의 논의과정을 지켜보는 시장은 일희일비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시장심리가 취약한 가운데 주요국의 GDP 성장률 등 부정적인 경기지표에도 시장은 증폭된 반응을 나타낼 가능성이 크다. 개방도가 높고 외국인 투자자의 비중이 늘어난 우리나라의 금융시장이 이러한 불안정성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금융시장 불안이 심화될 경우 투자와 소비 등 실물부문이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도 있으며, 특히 김정일 사망 이후 북한정세의 난기류가 더해진다면 여파가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글로벌 리밸런싱의 가장 주목할 영향은 세계경제의 저성장일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가계부채 및 재정적자 감축노력은 선진국을 중심으로 한 성장세 하향압력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세계교역이 특히 선진국 경기와 밀접하게 움직인다는 것을 감안하면 우리경제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는 수출 증가세가 둔화될 가능성은 매우 높다. 이는 상대적인 고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되는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신흥시장에 대한 시장개척 노력을 요구하는 동시에 내수기반을 확충할 필요성을 배가시키게 된다.
저성장은 세입을 줄여 재정적자 감축노력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선진 각국은 수요확대에 나서게 될 것이다. 민간의 소비와 투자, 재정확대 여력이 달리는 선진 각국의 선택은 대외수요 확대, 즉 수출증대가 될 것이다. 이는 첫째, 통상압력 강화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통상압력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주요국을 정조준할 가능성이 크다. 환경이나 기술규제 등의 측면에서 신보호주의를 강화할 수 있고 개도국에 대해서는 시장개방 압력이 늘어날 것이다. 주요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우리나라에게는 추후 협의키로 한 지재권보호나 반덤핑 등과 관련해 보다 강경한 입장을 취할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둘째, 환율 공세다. 그 동안에도 중국에 대해 위안화 절상압력을 지속해 왔지만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는 미국과 유럽 각국이 중국 위안화뿐 아니라 경상수지 흑자를 지속하고 있는 우리나라 원화에 대해서도 압박의 수위를 높일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지난 1980년대의 플라자합의와 같은 포괄적인 환율협약을 통해 글로벌 불균형을 완화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나타날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지난해 나타난 전세계 대중들의 복지요구 혹은 금융자본에 대한 항의 시위가 선거와 맞물려 확산될 수 있을 것이다. 중동 및 북아프리카 지역의 민주화 시위도 이어질 전망이다. 이러한 전세계적인 움직임은 총선 및 대선과 맞물려 복지증대, 세율조정 등과 관련된 논의를 더욱 확대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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