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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경제연구원 '신용등급 깎인 브라질, 월드컵만으로는 중산층 달래기 어렵다'

최근 S&P가 브라질 장기국채의 신용등급을 한 단계 하향 조정한 것은 브라질 정부의 정책 기조 혼선과 성장 둔화 전망 때문으로 풀이된다. 현재 브라질 경제가 처한 상황과 브라질 국민들의 새로운 정책 요구 등을 감안할 때 정부 지출 확대는 불가피하겠으나, 그 성과는 부패와 비효율을 제거하기 위한 정치 개혁의 성공 여부에 의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월 24일, 세계 3대 신용평가 회사 중 하나인 스탠다드앤푸어스(Standard & Poor’s, 이하 S&P)가 브라질 연방정부가 발행한 외화 표시 장기채권의 신용등급을 BBB에서 BBB-로 한 단계 하향 조정하였다. 
  
S&P의 평가 등급 분류 체계에 따르면 BBB-는 여전히 투자 적격 등급에 속한다. 아울러, S&P의 강등 조치 이후에도 브라질 주식시장이나 외환시장에서는 별다른 특이 상황이 나타나지 않았고, 무디스, 피치 등 다른 신용평가사들이 하향 조정에 동참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점을 들어 이번 조정에 큰 의미를 둘 필요 없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렇지만, 2002년 이후 12년 만에 처음으로 취해진 하향 조치인데다 이제 한 단계만 더 내려가면 투자 부적격 등급으로 분류된다는 점에서 그 배경과 향후 전망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브라질을 금융 투자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서구 투자은행들과 달리 직접 상품을 수출하거나 현지에서 생산해야 하는 한국 기업들로서는 훨씬 더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등급 하향은 정책 혼선과 경제전망 악화 때문 

S&P는 신용등급 조정을 발표하며 여섯 페이지짜리 보고서 앞에 세 문장으로 구성된 짧은 요약을 덧붙였다. 그 첫 문장은 S&P가 브라질의 신용등급을 한 단계 낮춘 이유로 정책의 비일관성(mixed policy signaling)과 둔화되는 성장 전망 등 두 가지를 꼽고, 다음으로는 외화 표시 장기 채권의 신용등급을 BBB에서 BBB-로, 헤알(Real, R$)화 표시 장기 채권의 등급을 A-에서 BBB+로 낮춘다는 사실을 알렸다. 반면 마지막 문장에서는 최근의 몇 가지 정책적 불안에도 불구하고 균형 잡힌 대외수지와 재정수지 등에 비춰볼 때 향후 전망은 안정적일 것으로 예상한다는 긍정적인 설명을 덧붙였다. 

이 보고서 내용에 비춰볼 때 S&P가 브라질에 대한 평가를 다소 비관적으로 바꾼 이유는 브라질 정부의 정책 혼선 측면과 브라질 경제의 성장 전망 조정 부분으로 나눠서 생각할 수 있다. 먼저 최근 브라질 정부가 보여준 정책 기조가 다소 혼란스러워 향후의 정책 방향을 짐작하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GDP 대비 3%를 유지하겠다고 천명했던 기초재정수지 목표조차 충족시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각종 인프라 투자를 비롯해 감세와 복지 혜택 등 세금 들어갈 약속들이 자꾸만 늘어왔다. 지금 제대로 고삐를 틀어쥐지 못할 경우 6월 월드컵, 10월 대선 등과 맞물려 감당하기 어려운 혼란을 초래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올만하다. 선거 욕심에 공약들을 남발하다 보면 한 편으로는 재정 건전성에 대한 불안감을 키우고, 다른 한 편으로는 정책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성장 둔화 가능성에 대한 걱정도 크다. 선진권 경기의 회복이 예상보다 더디고, 원자재 최대 수입국인 중국경제의 고성장 기조가 조금씩 꺾임에 따라 3~5% 내외 성장을 예상했던 장기 전망의 하향 수정이 불가피한 탓이다. 특히 지난 글로벌 금융위기를 전후해 수출 호조와 외국인투자 유입 증가로 브라질의 경제성장률이 한 단계 높아진 것은 환영할만하지만, 뒤집어서 생각해 보면 과거에 비해 외부의 충격에 취약한 구조로 바뀌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약점들이 갑자기 제기된 것은 아니다. S&P는 이미 지난 해 여름부터 두 세 차례에 걸쳐 브라질 정부가 성장 동력 소진과 재정 건전성 개선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신용 등급이 하향 조정될 수 있다는 시그널을 보냈으며, 브라질 정책 당국 역시 이런 문제점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현재는 이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경제가 계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경제 발전 단계에 따라 노동, 자본, 제도 등의 확충과 개선이 꾸준히 이뤄져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교육, 인프라, 설비 등 각 단계에 걸맞은 적절한 투자가 필수적이다. 2~3년 전까지만 해도 수출과 외국인투자를 통해 조달된 자본이 그 역할을 담당해 왔지만 미국 등 선진권의 양적완화 축소 움직임이 본격화 되면서 이 채널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줄어든 해외자본의 몫을 정부가 감당하거나, 아니면 그 만큼 성장에 대한 욕망을 양보하고 저성장 구조에 익숙해져야 할 텐데 그 어느 쪽도 쉬운 선택이 아니다. 

성장세 유지 위해서는 정부 지출 확대 불가피 

특히 룰라 정부 출범 이후 지금까지 10여 년 간 이뤄낸 각종 발전과 변화가 오히려 이런 선택을 더 어렵게 만드는 형국이다. 브라질 경제는 2000년 이후 상당한 구조 변화를 경험했다. 1990년부터 99년까지 10년 간 연평균 1.7%에 불과하던 경제성장률이 2000~2009년에는 3.3%로 두 배 가까이 높아졌으며, 소득 5분위 분류 중 네 번째 하위 그룹(월 가구소득 500달러 미만)에 속하는 인구 중 약 4천 만 명이 월 가구소득 500~2천 달러 그룹으로 새롭게 진입했다. 자녀들의 학교 출석률에 따라 생계비를 제공하는 저소득층 소득 지원 프로그램(Bolsa Familia)을 통해 교육 기회가 확대되면서 저임 근로자의 노동생산성도 높아졌다. 
  
이와 같은 긍정적 변화는 지금까지 브라질 정부와 국민들이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정책 환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만성적인 인플레 공포, 숙련 노동자 부족, 전국적인 축구 붐 등 ‘브라질’ 하면 떠오르던 몇 가지 특징들이 사라지면서 그 빈 자리를 새로운 요구들이 채워가는 중이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브라질에는 두 자리 물가상승률에 대한 공포가 지배적이었고, 그에 따라 소비자와 기업 모두 높은 금리 부담을 당연히 여겼다. 그러나 2003년 14.7%에서 2004년 6.6%로 떨어진 이후 10년 동안 단 한 해도 7% 이상의 물가상승률(CPI 기준)을 기록하지 않았다. 그 결과 기준 금리를 낮출 여유가 생겨났고, 연 50~100%를 기록하던 비정상적인 할부 금리가 점차 제자리를 찾아가면서 할부 대상도 TV, 냉장고 등의 가전제품 구매 일색에서 벗어나 자동차, 마이크로 창업 설비 등으로 그 규모와 범위가 확대되었다. 

이전에는 부실한 초·중등교육 기반 탓에 단순 저임 인력만 넘쳐날 뿐 일정 수준 이상의 인력을 필요로 하는 기업들은 늘 노동력 부족과 그에 따른 인건비 부담에 시달려야 했다. 제대로 교육받은 인력이 워낙 적어 다른 나라에 비해 턱 없이 높은 임금을 주고라도 고용할 수밖에 없었고, 자연히 브라질 제조업의 임금 경쟁력 역시 형편없었다. 그러나 Bolsa Familia 프로그램을 통해 초·중등 교육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서 새로운 변화가 나타났다. 길거리에서 축구나 범죄로 소일하던 청소년들이 학업을 통해 일자리를 갖기 시작했고, 어느 정도 숙련된 노동 공급이 늘어나면서 중산층 자녀들이 독점하다시피 했던 직종으로도 진출하게 된 것이다. 

축구에 대한 맹목적인 애정도 바뀌고 있다. 교육과 취업에서 소외된 저소득층 청소년들에게 축구는 몇 안 되는 레저 수단인 동시에 신분 상승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전세계로 축구 선수들을 수출해온 브라질인 만큼 뒷골목 출신에서 세계적 스타로 거듭난 성공 신화도 많았다. 그 과정에서 브라질 축구 팬들은 어릴 때부터 특정 선수를 자신의 롤모델로 삼거나 못 이룬 꿈을 투사할 대상으로 삼는 사례가 많았기에 축구에 대한 열정 역시 극성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지난해 여름부터 브라질 곳곳에서 월드컵 반대 시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작년 6월에는 대중교통 요금 인상 이슈 등과 맞물리며 100만명에 가까운 인파가 월드컵 반대 시위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극적인 변화 역시 새로운 경제 환경에서 한 가지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축구 외에 다른 선택이 없었던 과거와 달리 교육과 취업 기회 확대를 계기로 축구보다 더 나은 가치를 찾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즉, 교육의 가치를 직접 체득하면서 월드컵 개최를 위해 쏟아 붓는 50~100억 달러의 정부 예산을 차라리 교육 기회 확대나 대중교통 인프라 개선 등을 위해 사용하는 편이 미래를 위해 훨씬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늘어난 것이다. 이런 변화를 반영하듯 브라질 월드컵 개최 결정 직후 80%에 육박하던 월드컵 개최 지지율이 최근에는 50%대 초반까지 떨어졌다. 

브라질 국민들의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정부에 대한 기대와 요구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 등을 반대하거나 지지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의 시위가 주를 이뤘다면 최근의 시위는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생활 밀착형 이슈들을 앞세워 진행된다. 시위에 참여하는 계층도 다양해졌다. 과거에는 빈민층과 저소득층,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중심이었지만 요즘은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갖춘 화이트칼라들의 참여가 두드러진다. 그러면서 추상적이거나 거대 담론에 가까운 정치 구호는 점점 사라지고 피부에 와 닿는 문제들에 대한 요구가 늘어나고 있다. 워낙 당연한 요구라 정책 담당자 입장에서 거부할 명분조차 찾기 힘든 경우도 많다. 시위 현장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까지 확장되면서 구체적인 정책 방안이나 예산에 대한 의견들이 함께 첨부되기도 한다. 자연히 정치인이나 정책 담당자들이 국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사례가 늘어나게 되었고, 이런 움직임이 정부의 재정 지출 확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재정 건전성과 경제성장의 두 마리 토끼 잡으려면 정치 개혁 필수 

S&P를 비롯해 해외의 투자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점은 성장이 정체된 가운데 유권자들의 요구에 따라 무작정 재정 지출을 확대하다 감당할 수 없는 위기에 빠져들게 되는 상황일 것이다. 실제로 브라질을 비롯한 라틴아메리카 몇몇 나라는 1970~90년대에 이미 여러 차례 비슷한 경로를 밟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과거의 악몽을 핑계로 빠져 나가기에는 최근 브라질의 경제 상황과 전망이 상당히 좋지 않은 편이다. 지난해의 경우에도 외국계 기업과 공기업 등을 중심으로 투자가 6.3%나 늘어난 덕분에 겨우 2.3%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을 뿐 나머지 민간소비(2.3% 증가), 정부지출(1.9% 증가), 순수출(5.9% 감소) 등은 성장에 별 기여를 하지 못했다. 

결국 브라질 경제의 성장 잠재력 제고에 확실히 도움이 될만한 지출이라면 당장 재정에 부담을 주더라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입장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일반 국민이나 정치권, 국내와 국외에서 모두 공통적으로 제시하는 해법은 정치 개혁을 통해 부패와 비효율을 제거하는 것이다. Forbes가 ‘상파울루주 산업연맹(FIESP)’의 연구 결과를 인용해 보도한 기사에 따르면, 브라질의 정치 부패에 따른 비용은 GDP의 1.4~2.3%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2013년 기준으로 320억~530억 달러에 달하는 규모이며, 월드컵을 50번 이상 개최할만한 금액이다. 지난 2005년에 발생한 브라질 최대의 정치 스캔들이었던 ‘의회 표 매수’ 사건 당시 40억 달러 이상의 세금이 정치인들 주머니로 사라졌다는 수사 결과 역시 이 분석 결과를 어느 정도 뒷받침해준다. 

브라질은 곧잘 멕시코와 더불어 라틴아메리카를 이끄는 쌍두마차로 꼽힌다. 이 지역의 패권을 놓고 경쟁할 뿐 아니라 서로의 장점을 배우고 단점을 줄이는 최선의 파트너이기도 하다. 1994년 멕시코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참여하며 세계시장을 향해 한 발 나아가자 브라질 역시 까르도주(Cardoso) 대통령의 헤알플랜(Real Plan)을 앞세워 개방과 경쟁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2000년대에는 멕시코의 학자와 정책 담당자들이 브라질국영석유회사(Petrobras) 개혁의 성공을 벤치마킹 하기 위해 브라질을 찾았다. 

이제는 브라질과 멕시코가 성공적인 정치 개혁과 부패 해소를 위한 경쟁에 나서게 되었다. 현재 시점에서는 멕시코가 조금 앞선 것처럼 보인다. 2012년 말 취임한 멕시코의 페냐 니에토 대통령이 에너지, 조세, 교육 등의 3대 개혁을 의욕적으로 추진하면서 정치 개혁 부분에서도 미약하게나마 성과를 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브라질에서는 지우마 호세프 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인 만큼, 페냐 니에토 대통령이 갖지 못한 4년의 경험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따라 결과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집권 2기를 맞아 확실한 정치 개혁을 이뤄내는 것이 월드컵마저 포기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던 국민들에게 보답하는 길이 될 것이다. 

브라질의 정치 개혁 성공은 브라질 국민못지않게 브라질에 진출하는 외국 기업들이 바라는 바이기도 하다. 정책의 예측 가능성이 높아질 뿐 아니라 브라질 진출 희망 기업들이 하나같이 지적해 온 ‘브라질 코스트’, 즉 각종 규제와 부패의 장벽이 낮아질 것으로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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