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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경제연구원 'TPP 이후 주목해야 할 사업환경 변화'



통상질서는 일부 전문가들이 주도해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경제환경 변화로 무역 현장에 나타난 새로운 갈등 요인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들의 산물이다. 그런 맥락에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타결은 양자간 FTA 중심으로 이뤄져 오던 세계경제 통합 움직임이 생산분업 확대와 GVC(Global Value Chain) 세분화 등에 따라 다자간 Mega FTA 위주로 바뀌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지난 2월 4일, 공식 서명이 이루어진 TPP는 이제 각국의 국내 비준 절차를 거쳐 빠르면 2년 내에 미국, 일본을 비롯한 태평양 주변 12개국의 경제통합체로 출범한다.


TPP가 출범하면 95~100%에 이르는 높은 수준의 상품시장 자유화, 각종 비관세 장벽 및 규제 철폐, 지재권 강화 등 여러 분야에서 적극적인 개방이 이루어진다. 또한 국가간 거래에서 공정한 룰의 준수가 중요해진다. 미국 등 TPP 참여 국가들은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기업들이 경쟁력 유지를 위해 노동, 환경 등 여러 면에서 공정한 룰을 잘 지키지 않는 것이 결과적으로 정당한 기업과 노동자의 이익을 침해한다고 판단, 이와 관련된 해결책들을 TPP 협정문에 상당수 포함시켰다. 그 결과, TPP 출범 이후 기업들은 ①무역 블록 간 경쟁 심화, ②대 중국 전략의 불확실성 확대, ③게임의 룰 강화, ④정부 역할 축소 및 기업 책임 증가, ⑤사업 환경(형태 및 영역) 변화에 따른 신흥 강자 출현 등에 직면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같은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 ▲손실 최소화 관점에서 TPP 참여를 서두르고, ▲미래형 혁신 산업에 대한 관심을 더욱 확대하면서, ▲한국 경제와 산업의 미래 밑그림을 고쳐 그리는 동시에, ▲TPP가 요구하는 새로운 제도와 규제 환경을 받아들이기 위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 목 차 >

 

1. TPP 출범의 배경과 의미
2. TPP 이후 예상되는 다섯 가지 변화
3. 한국경제에 주는 의미와 시사점

 


설 연휴 직전이었던 지난 2월 4일, 미국과 일본을 비롯해 태평양 주변 12개국이 참여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 이하 TPP)의 공식 서명식이 뉴질랜드에서 열렸다. 힘겹게 협상을 마무리한지 4개월만이다. 이제 2년 내에 전체 회원국이 국내 비준 절차를 완료하면 그 60일 후부터 발효된다. 설령 2년 안에 비준을 마무리하지 못하더라도 12개국 GDP 총액의 85%를 차지하는 6개국 이상이 절차를 마치면 해당 국가들 내에서는 효력을 갖는다. 다만, 각국의 정치 상황이 복잡하고 국내 법률 및 제도 정비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만큼 조기 발효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대부분의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반응이 그렇듯이 TPP에 대한 의견도 사뭇 엇갈린다. 수요 위축, 금융 불안 등의 악재 속에서 뚜렷한 활로를 찾지 못했던 세계경제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불러올 것’이라는 기대부터 ‘자유 무역’과 ‘공정 경쟁’을 앞세워 역외 국가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회원국들만의 잔치’라는 비판,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산업구조 변화에 발맞추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숙명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견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1. TPP 출범의 배경과 의미

 


여러 논란 속에서도 이번 TPP 타결을 계기로 세계 통상환경의 지형 변화 속도가 한층 더 빨라졌다는 점은 분명하다. 경제 통합과 개방 논의에 소극적이었던 일본의 태도 변화나 미국이 보여준 지속적이고 구체적인 타결 의지 등에 비춰볼 때 TPP는 한 번 불고 금세 사라지는 돌풍이라기보다 계절의 변화를 예고하는 마파람이나 하늬바람에 가깝다.


통상질서는 일부 선진국 통상 관료들이 사전적으로 주도한다고 해서 바뀌는 것이 아니라 세계경제 환경 변화와 산업기술 발달로 무역 현장에 새로운 흐름이 나타나고, 이에 따른 갈등이나 비효율이 커지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사후적 노력들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글로벌 생산분업 확대로 Mega FTA 필요성 증가


통상환경 변화를 촉발시킨 대표적인 요인은 글로벌 생산분업 확대라 할 수 있다. 21세기 초, BRICs와 신흥경제권(Emerging Market Economy)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기 시작한 뒤로 10여 년이 흘렀다. 이런 관심은 관련 지역에 대한 직접투자, 특히 제조업체들의 해외 생산기지 조정 및 확대 움직임으로 이어졌으며, 이는 곧 보통 2~3개 정도에 불과하던 국가 간 생산분업 단계를 점점 더 세분화하고 정교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이와 같은 국가 간 생산분업 단계의 세분화는 양자간(bilateral)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 이하 FTA)의 실효성을 떨어뜨렸다. FTA의 관세 유예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원산지 규정, 즉 해당 상품의 전체 부가가치 중 일정 비율 이상을 FTA 참여 국가 내에서 만든다는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는데 글로벌 생산분업 단계가 여러 나라로 확대될수록 개별 국가가 기여하는 부가가치 비중은 낮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소고기나 오렌지, 수산물처럼 한 나라 안에서 부가가치의 상당 부분을 창출하는 상품은 양자간 FTA라 하더라도 원산지 규정을 만족시키는데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제조업, 특히 첨단 제조업일수록 하드웨어부터 소프트웨어에 이르기까지 생산에 필요한 여러 요소들을 다양한 나라에서 조달하는 경우가 많다. 자연히 전체 부가가치에서 최종 수출국이 기여하는 몫이 적어질 수밖에 없어 FTA 혜택에 필요한 원산지 비율을 충족시키기가 쉽지 않았고, 이런 변화가 복수의 국가들끼리 누적원산지 규정을 적용할 수 있는 다자간(multilateral) Mega FTA의 출현을 불러온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변화가 나타나게 되었을까?


세계경기 침체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줄곧 두 자리 수를 기록하던 세계교역 증가율이 전년 동기 대비 1~3% 수준에 머무는 부진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소비와 투자 수요가 함께 위축된데다 자원 수요마저 크게 줄어든 탓이다. 이처럼 부족해진 수요를 두고 전세계 기업들이 가격 경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주요 산업의 글로벌가치사슬(GVC) 세분화(fragmentation)가 두드러졌고, 인건비, 임대료 등 요소가격 인하와 통화 약세를 앞세워 치열한 가격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조금이라도 더 효율적인 생산 방식을 찾기 위한 기업들의 노력이 국가별 분업 확대로 이어졌다.


이처럼 각국의 비교우위를 바탕으로 여러 나라가 함께 참여하는 ‘국가 간 생산분업’이 늘어나면서 GVC 영향을 받는 업종이나 공정도 점점 더 확대되는 추세다. 경쟁 기업이 다자간 FTA 기반의 GVC 참여를 통해 생산비용을 낮추고 시장 접근을 개선해 가는 상황에서 나 홀로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산업 기술의 변화 역시 이런 움직임을 더욱 부추긴다. 상품들의 경박단소화가 빨라지고 상품 전체 부가가치에서 소프트웨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확대되면서 전통적인 의미의 시장 접근이나 물류 전략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즉, GVC 확대처럼 개별 국가 입장에서 쉽게 통제할 수 없는 외부 환경의 변화와 이에 따른 개별 기업 차원의 전략 변화, 그리고 주요 선진국들 중심으로 앞다퉈 진행된 산업기술 발전 등이 맞물려 서로 밀고 당기면서 TPP와 같은 다자간의 Mega FTA 체결 필요성이 점점 커지게 된 것이다.


중국 제조업의 기여도 확대와 미국의 견제


2012년까지도 성공 가능성이 불투명했던 TPP 협상에 갑자기 참여 희망 국가들이 몰리고 급기야 타결에까지 이르게 된 데는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GVC의 영향력 확대가 크게 기여했다. 동아시아 지역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의 무게 중심이 중국 쪽으로 쏠리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지정학적(geo-political), 지경학적(geo-economic) 경쟁자인 미국과 일본의 위기 의식이 커졌다는 풀이다.


세계투입산출(World I/O) 모형에 아시아 5개국을 추가한 아시아개발은행(ADB) 투입산출 데이터베이스(ADB Multi-Region Input-Output Database)를 이용해 분석한 결과,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TPP 국가들의 불안은 충분히 타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제조업 패권이 확대되면서 미국, 일본, 멕시코 등 현재 TPP에 참여하는 국가들의 경제적 영향력은 계속 위축됐기 때문이다.


2000년과 2006년, 2011년 자료를 이용해 NAFTA(미국, 캐나다, 멕시코)와 일본의 산업별 수입 수요에 대한 TPP(NAFTA, 일본, 호주 등)와 동아시아(중국, 한국, ASEAN)의 기여도를 분석한 결과, NAFTA와 일본을 비롯해 TPP의 기여도는 줄곧 감소한 반면 동아시아, 그 중에서도 특히 중국의 기여도가 크게 증가했다.


전체 산업의 경우 2000년~2011년에 걸쳐 NAFTA 수입 수요에 대한 TPP 국가들의 비중은 총생산 기준으로 3.15%p 줄었고 부가가치 기준으로는 1.83%p 감소했다. 총생산 기준보다 부가가치 기준 감소 폭이 더 작은 이유는 글로벌 분업이 주로 저부가가치 산업을 이전하는 형태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같은 기간 일본에 대해서는 감소 폭이 조금 더 커 각각 4.36%p, 3.52%p씩 줄어들었다. 그러나 중국의 비중은 NAFTA에 대해 1.80%p, 0.86%p씩 증가했고, 일본에 대해서는 1.43%p, 0.75%p씩 증가해 대조를 이뤘다. 한국과 ASEAN 역시 소폭이나마 늘어났다(<표 2> 참조).


전자, 화학, 자동차 세 개 산업에 대해 분석한 결과 역시 증감 방향은 대체로 비슷했으나 전체 산업에 비해 그 폭은 더욱 확대됐다. 이는 전체 산업의 경우 서비스업 등 상대적으로 글로벌화가 더딘 내수산업이 포함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세 산업 중에서도 특히 전자산업의 국가별 차이가 두드러져 NAFTA에 대한 TPP 국가들의 비중은 총생산 기준 7.90%p, 부가가치 기준 5.88%p 감소했고, 일본에 대해서는 각각 -6.20%p, -6.49%p를 기록했다. 반면, 중국의 비중은 NAFTA에 대해 8.20%p(총생산), 3.50%p(부가가치)씩 늘었고, 일본에 대해서는 각각 3.70%p, 2.28%p 확대됐다. 전자산업보다 변화 폭은 다소 작지만 화학 및 자동차 분야에서도 같은 추세가 나타났다(<표 3> 참조).


이와 같은 변화에 대한 미국의 불편한 입장과 대응 방향은 미국 무역대표부(USTR) 홈페이지에도 잘 드러나 있다. 특정 국가를 지칭하지는 않았으나 노동 착취, 환경 파괴, 정부 지원 등의 불공정한 행위를 통해 경쟁 우위를 유지하는 국가들이 적지 않으며, 그 결과 미국을 비롯해 원칙을 지키면서 정당하게 일하는 노동자와 기업들에게 피해가 돌아온다는 입장이다.


미국은 TPP가 이런 불공정한 피해를 최소화 하는데 상당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면서 관세 자유화 일정뿐 아니라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여러 조치들을 협정문에 포함시켰다. 즉, TPP를 통해 회원국들 사이에 존재하는 각종 경쟁 환경의 차이를 조정(leveling)함으로써 특정 국가 기업이나 노동자들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뜻이며, 어느 나라든 TPP에 가입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전제 조건을 받아들인다는 의미이다.

 


2. TPP 이후 예상되는 다섯 가지 변화

 


① 무역 블록 간 경쟁 심화


TPP 타결을 계기로 지난 1990년대 후반 이후 대세로 자리잡아온 두 나라 사이의 자유무역협정, 즉 양자간 FTA에서 여러 나라가 참여하는 다자간 Mega FTA로의 진화 속도가 한층 더 빨라질 전망이다. 과거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 WTO) 출범이나 북미자유무역협정(North America Free Trade Agreement, NAFTA) 체결이 세계무역 질서에 중대한 구조적 변화를 가져왔던 것처럼 TPP 역시 양자간 FTA 시대에서 다자간 무역 자유화를 추구하는 시대로 넘어가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기존에도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유럽연합(EU) 등 여러 나라가 참여하는 경제블록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국경을 맞대거나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라들을 중심으로 이뤄져 왔다. 그런데 이제 TPP처럼 거리가 멀고 이질적인 산업 구조를 가진 국가들끼리도 경제를 통합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생산에 관여한 모든 역내 국가들의 부가가치에 대해 누적원산지 규정이 적용된다는 장점을 비롯해 표준이나 통관 절차 등을 여러 나라가 공유할 때 얻을 수 있는 이점도 클 것으로 기대된다. 이와 함께 세계경제 통합 확대로 투자 및 교역 장벽이 낮아지고 소프트웨어, 운영체제(OS) 등 디지털 재화의 거래 비중이 높아진 것도 상품 생산의 국가별 분업을 촉진해 Mega FTA 확산에 기여할 전망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다자간 무역자유화 움직임은 앞으로 더욱 빨라질 가능성이 높다. 과거에 한미 FTA가 한EU FTA, 한중FTA 등을 촉발한 것처럼 TPP 타결을 계기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이하 RCEP),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ransatlantic Trade and Investment Partnership, T-TIP) 등에 대한 중국과 EU의 관심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자간 Mega FTA라 하더라도 그 형태와 특징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다. 각 FTA마다 강조하는 부분이 다양하고, TPP에 적합한 산업과 RCEP에 적합한 산업이 다르다는 의미다. FTA를 추진하는 목적이 역내 기업 및 관련 GVC의 국제 경쟁력 강화인 만큼 각국의 경쟁 우위나 주력 산업 특성에 따라 관세 장벽 제거에 초점을 맞출 것인지 비관세 장벽을 강조할 것인지, 혹은 전통 제조업과 미래형 제조업 중 어느 산업에 유리한 FTA를 만들 것인지 등을 FTA에 참여하는 회원국들이 다양하게 결정한다.


따라서 우리 역시 이런 여러 조건들을 고려해 적절한 대책 마련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가 이미 미국, EU, 중국 등 거대 경제권과 FTA를 체결해 주요 시장에 대한 차별적인(preferential) 접근 권한을 확보한 것은 맞지만, 양자간 FTA의 한계를 고려할 때 TPP나 RCEP과 같은 추가적인 접근 트랙 발굴이 필수적인 탓이다.


한 예로, GVC가 세분화되고 고부가가치 컨텐츠 비중이 높은 산업일수록 미국과 일본, 베트남 등 TPP 참여 국가들이 역내 국가들과의 배타적 협력을 통해 글로벌 분업구조 재편 경쟁에서 더 유리한 입지를 확보할 가능성이 높다. 각국에서 생산해 수출하는 상품이나 서비스가 온전히 그 나라 내에서 만들어진다면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 확대로 다양한 국적의 중간재가 투입되는 상황에서는 다자간 FTA, 특히 TPP처럼 자원, 노동, 기술, 시장 등 다양한 특장점을 보유한 보완적인 국가들끼리의 경제통합체가 양자간 FTA에 비해 원산지 규정을 충족시키기가 유리하기 때문이다.


② 대 중국 전략의 불확실성 확대


기업들의 중국 전략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중국을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이 다양해지는 추세고 TPP에 대한 중국의 입장도 아직 확정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우리 역시 중국 전략의 스펙트럼을 더욱 넓게 가져가야 할 필요성이 크다.


TPP로 중국은 업종마다 희비가 엇갈릴 전망이다. 진입 장벽이 낮아 후발국 기업들이 바짝 따라붙은 업종들은 타격이 크겠지만, 이미 압도적 경쟁력을 확보한 분야의 기업들은 별 걱정을 하지 않는 눈치다. 오히려 베트남 등이 TPP 활용을 위한 아시아의 새로운 생산지 허브로 부상할 경우, 이 지역에 대한 중국의 수출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마저 나온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질 때마다 TPP 협상 진행 속도가 빨라지는 특징을 보여줬다는 데서 향후 중국의 행보에 관한 실마리를 찾기도 한다. 한중 FTA 타결 가능성이 높아지자 곧이어 일본이 TPP 참여를 선언했고, 중국이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출범을 서두르면서 TPP 협상 속도가 빨라져 마침내 타결에 이른 것처럼 중국 역시 미국이나 일본의 움직임에 모종의 반응을 보일 것이라는 해석이다.


한 예로, 중국이 TPP에 참여할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협상 타결 직후 발표된 요약문에 따르면 TPP는 배타적으로 닫혀 있는 경제블록이 아니라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체의 자유화를 높이기 위한 ‘플랫폼’ 역할을 지향한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중국을 비롯한 어느 나라도 TPP에서 요구하는 무역 및 투자 자유화 수준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다는 의미다. 더군다나, TPP 회원국들이 합의한 국유기업과 규제의 투명성, 지적재산권, 중소기업, 노동 및 환경 관련 규범 등이 중국 정부가 성장 정체의 덫에 빠지지 않기 위해 추진 중인 ‘신창타이(新常態)’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중국이 마땅히 가야 할 길이기도 하다.


다만, 과거 중국이 WTO 가입 조건을 충족시키는데도 십여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섣부른 가입보다 당분간은 ‘무시 또는 무관심 전략’을 유지하면서 그 동안 추진해 온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나 ‘ASEAN+3(한, 중, 일)’ 중심의 동아시아 협력을 공고히 하고, 한국이나 아세안 등 이미 FTA를 체결한 인접 국가들과의 경제통합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중국의 TPP 대응 전략이 아직 불확실한 상황인 만큼 TPP와 중국 사이의 연결 고리에 대한 우리의 시각 역시 여러 가능성에 대해 열어두는 편이 낫다. 예컨대, 중국이 예상보다 빨리 TPP에 적극 참여한다거나, 혹은 반대로 TPP 확대를 견제하기 위해 역외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 결과 중국과 독일, 혹은 유럽연합(EU)이 함께 주도하는 새로운 기술이나 제조 관련 표준이 출현할 수도 있다.

 

산업의 특성에 따라서도 대응을 달리해야 한다. 전통 산업 영역의 경우, 계속 지원은 하되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체질 강화를 요구한다는 것이 중국 정부의 기본 입장이다. 한계 상황에 내몰린 기업에 대해서도 섣부른 정리보다는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꾸준히 지원하면서 안정적인 재도약과 혁신을 유도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조립 등 단순 공정을 중심으로 베트남 등 역내 신흥 국가들과 중국과의 생산 분업이 늘어나고, 일부 저부가가치 공정에서는 탈 중국화가 서서히 진행될 수도 있다. 따라서 중국 내 기존 공정의 추가 투자는 보수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래형 혁신 산업들에 대해서는 중국 정부가 ‘Made in China 2025’ 계획 등을 발판으로 더 이상 선진국 산업 기술에 종속되지 않도록 제조업 발전 모델의 새 틀을 짜겠다는 전략을 밝힌 바 있다. 기술집약형 10대 중점 분야를 육성하고 제조업 고도화를 추진하는 것이나, 고속열차 제조에 필요한 모든 부품을 국산화하겠다고 선언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전기차, 우주항공 등 미래 혁신 산업 분야에서는 TPP 내 선진국들과 중국 간의 경쟁이 불가피할 전망이어서 우리 기업들로서는 심사숙고가 필요한 상황이다. 중국의 제조업 발전 모델이 독일의 ‘Industry 4.0’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과 독일이 기술 개발과 표준 선점을 위해 공동 전선을 형성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미국과 유럽이 양분해 온 ‘글로벌 스탠다드’ 구도에 상당한 변화가 올 수도 있다.


③ 게임의 룰 강화

 

TPP는 기존의 무역협정들에 비해 전반적으로 높은 수준의 시장 개방을 요구하고 있으며, 관세뿐 아니라, 비관세 장벽 해소를 위해 다양한 부문에서 자유화를 강조하고 있다. TPP의 이러한 특징이 반영되어, 공정경쟁 환경 조성, 각종 규제 완화 및 철폐 등이 TPP 협정에 중요한 항목으로 추가되었다.


TPP는 최종 자유화 품목이 95~100%에 이를 정도로 개방 수준이 높다. 국가별 민감도가 높은 제품들의 경우 유예기간이 길어 실제 효과는 발효 후 5-10년차부터 본격화될 전망이지만, 대부분의 제품들이 즉시 관세가 철폐됨에 따라 많은 산업들이 경쟁환경 측면에서 영향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일본의 대미수출액 중 50% 이상이 관세 부과 대상 품목에 해당되고, 이는 TPP 국가 중 최대 규모여서 관세 효과 측면에서는 일본이 가장 큰 수혜를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달리 말하면 일본과 경쟁 관계에 있는 다른 국가들에게는 위협요인이 될 것이다. 일례로, TPP가 발효되면 미국으로 수출하는 일본의 자동차부품의 87.4%(품목 수 기준)가 즉시 관세철폐가 된다. 이는 한미 FTA 기준(83%)을 웃도는 것으로 미국 시장에서 경쟁관계에 있는 한국 기업에 타격을 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높은 수준의 자유화는 비단 관세 철폐를 통한 가격 경쟁 측면에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TPP는 규제 완화와 철폐를 통한 비관세 장벽의 해소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각종 규제로 인해 해외진출이 어려웠던 금융, 통신, 유통 등 서비스 산업의 해외진출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전통적으로 서비스 산업은 내수 중심의 성격이 강했고, 관련 제도와 규제가 엄격해 적극적인 해외진출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TPP 이후 서비스 기업들의 해외진출이 활발해지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경쟁이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서비스 부문의 개방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중남미, 동남아 일부 국가들의 경우 TPP로 인해 높은 수준의 시장개방이 요구될 것으로 보인다. 말레이시아는 TPP가입 이후 외국은행의 점포 수 제한규정 완화, 편의점 등에 대한 외국계 자본출자 제한규정 완화 등을 도입할 예정이며, 베트남은 회원국 중 투자 및 서비스 분야 개방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일본도 서비스 산업의 자유화에 대해 큰 기대를 가지고 있는데, 회원국 중 신흥국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으로 진출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TPP가 추구하는 공정한 경쟁 환경 조성을 위한 노력은 기업 입장에서 보면 기회와 혜택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이기도 하다. TPP 중소기업 챕터는 당사국이 중소기업에 대하여 관련 정보지원 강화, 서류 및 통관절차 간소화, 수출상담, 교육 프로그램 등을 제공함으로써 중소기업이 TPP의 실질적 혜택을 향유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중소기업에게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창출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해외진출에 대한 위험 회피 성향이 강했던 일본의 중소기업들의 경우 내수 부진이 지속되면서 해외진출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정부 차원에서 아베 정권의 해외진출 추진 전략에 따라 중소기업들의 적극적인 해외진출 지원 방안을 마련 중이며 TPP와 같은 다자간 FTA가 일본 중소기업의 해외진출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중소기업들은 TPP에 가입할 경우 단기적으로 다른 회원국과의 경합도가 높은 일부 업종, 제품에서 피해를 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중소 제조업 전반의 수출입, 생산과 부가가치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중소기업의 적극적인 해외진출은 해당 사업 영역의 글로벌 경쟁을 심화시킬 수 있으며, 경쟁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중소기업들의 경우에는 시장 개방이 오히려 생존을 위협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④ 정부 역할 축소, 기업 책임 증가

 

TPP 협정문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 중의 하나가 주요 협상 분야에서 불필요한 장벽을 해소하기 위해 규제 완화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TPP는 포지티브 방식의 규제에서 네가티브 방식의 규제로의 전환을 강조한다. 네가티브 규제는 ‘원칙 허용·예외 금지’를 의미하는 것으로 ‘원칙 금지·예외 허용’을 뜻하는 포지티브 규제에 비해 자율적 허용 폭이 더 큰 규제 방식이다. TPP의 이러한 규제 방식 기조에 따라 TPP 회원국들도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포지티브 규제 비중이 높은 일본의 경우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베트남 등과의 기존 서비스 무역에 대해 포지티브 방식을 채택 중이나 TPP 참여로 네거티브 방식을 도입함에 따라 앞으로 자유화 분야가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의 경우에도 포지티브 방식의 규제 비중이 높은 편으로, 그 동안 신사업 추진의 걸림돌 중의 하나로 규제가 지목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기업의 활동을 지원하는 차원에서 네거티브 규제 방식 적용 확대를 위한 규제 개혁이 추진되고 있으며, TPP 가입이 현실화될 경우 이를 계기로, 한국의 규제 방식도 변화가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규제완화와 더불어, TPP는 여러 항목에서 ‘일반원칙 준수’를 명시적으로 규정한다. 이로 인해 각국 정부가 자국 기업을 배타적으로 보호하거나 규제하기 위해 마련한 정책들의 상당수가 효력을 잃을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것이 각국의 환율정책이다. TPP 가입 12개국은 수출에 유리한 통화하락 유도 자제, TPP 회원국에 환율개입 실태 공개, IMF의 외환 보유액 통계작성 참여 의무화, 최소 3개월마다 외환시장에 개입한 상황 공표 의무화 등을 내용으로 하는 재무 공동 선언을 공표하였다. 물론, 협정문의 공식 조항이 아닌 공동선언 형식으로 발표되어 구속력이 없고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의견도 있으나, 이는 기존 무역협정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으로 정부의 환율개입에 대해 엄격한 규제를 공식화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TPP의 이러한 환율에 대한 입장으로 인해 일부 국가들은 환율 정책을 펴는데 어려움이 야기될 것으로 예상된다.


환율과 더불어 정부의 역할을 제한하는 조항 중 대표적인 것으로 기존 FTA에는 없던 국영기업(State-Owned Enterprises) 관련 항목을 들 수 있다. TPP는 국영기업에 대해 정부조달 관련 우선권 등 상업적 경쟁을 왜곡하는 어떤 특혜도 부여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TPP 협정문의 국영기업 챕터에서는 국영기업이 민간기업과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국영기업이나 지정독점(Designated Monopolies) 기관이 상품·서비스를 사거나 팔 때 국내외 기업을 차별 없이 대우하고, 통상적인 민간 기업의 영업 관행과 일치하도록 해야 하는 상업적 고려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이는 공정한 경쟁환경 조성을 위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국영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을 제한함으로써, 정부의 역할을 축소시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TPP는 기본적으로 기업의 자율을 중시하며 정부의 규제나 간섭을 최소화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으나, 한편으로 기업의 책임을 강조하며 자율을 일정 부분 제약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TPP의 투자 챕터를 보면 기존의 다른 투자협정과 달리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을 명문화해서 규정하고 있다. 물론, 강력한 수준의 의무조항은 아니지만, 기업의 책임을 통해 기업의 활동을 제약할 수 있다는 점에서 TPP 이후 글로벌 교역 확대로 기업의 해외진출이 활발해 지면, 다양한 부문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중요하게 다뤄질 가능성이 높다.


⑤ 사업 형태와 영역의 변화로 신흥 강자 출현

 

TPP를 통해 사업 형태나 아이템에 대한 각종 사전적 규제가 사라지고 참여 국가들 간에 제도 및 경쟁 환경의 격차가 해소되면(leveling) 실리콘밸리 등 선진국 일부 지역에 집중되던 창업의 바람, 즉 새로운 사업과 기술의 출현 및 융합 움직임이 TPP 전역으로 확대될 수 있다. 실리콘밸리나 뉴욕의 비싼 임대료와 인건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벤처 업체들 입장에서는 기술 유출과 불공정 경쟁의 우려만 불식시킬 수 있다면 후발국으로의 사업 이전을 마다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미개척 영역에서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는 신흥 유망 기업들이 사업 영역의 지리적 제약이나 제도적 구분에 얽매이지 않고 국경을 넘어 활발히 움직이면 이는 TPP 전체의 성장 활력 제고에도 긍정적인 기여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먼저, 사업 형태의 재정의가 이뤄질 전망이다. 기존의 전통적 제조기업을 대신해 소프트웨어 역량이 있는 기업의 영향력이 확대되거나 신흥 강자가 등장할 수도 있다. 아울러 경쟁력의 핵심이 제품 그 자체에서 제품의 업그레이드 혹은 제품을 통한 서비스의 수준을 좌우하는 소프트웨어로 옮겨가면서 제조의 부가가치에 대해서도 재조명이 필요하다. 타사와의 협업에 의한 제조가 활발해지고, 최종재 생산업체보다 핵심 부품 공급업체의 가치가 더 부각되는 상황도 생각해 볼만하다.

 

기술 발전과 국가 간 규제 장벽 해소로 지리적 한계 역시 큰 의미가 없어진다. 소매업 진출, ‘해외직구’ 등에 대한 규제 완화로 국경을 초월한 서비스 전개가 활발해지면서 국내 수요 중심으로 발전해 왔던 서비스 업종의 사업 무대가 글로벌로 확대된다는 뜻이다. 일본 은행이 미국에 진출한 일본계 편의점을 통해 미국인들에게 금융 서비스를 제공한다거나, 호주 게임 회사와 베트남 엔지니어, 미국 디자이너가 함께 게임을 만들어 공급하는 협업도 빈번해질 것이다.

 


3. 한국경제에 주는 의미와 시사점

 


그렇다면 한국 경제와 기업들은 이런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첫째, TPP가 모든 회원국들의 국내 비준 절차를 무사히 마치고 발효된다는 것을 전제로 가늠해본다면, 우리가 TPP에 가입하지 않을 경우 일본과 베트남을 비롯한 TPP 회원국들에게 미국 시장을 잠식당할 우려가 크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한미 FTA를 통해 누려온 상대적 우위를 더 이상 향유할 수 없고, TPP 회원국들이 서로의 비교우위를 바탕으로 글로벌 생산분업 체제를 강화하는 것도 우리 기업들에게는 부담될 수밖에 없다. GVC가 확대될수록 우리 기업들의 대미 수출 상품이 특혜관세를 받기 위해 필요한 한국 내 원산지 비율을 충족시키기가 어려워지는 반면, 일본 기업들은 여러 TPP 회원국들과의 다각적인 분업구조를 통해 훨씬 손쉽게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 기업들의 글로벌화가 많이 진전된 고급 의류, 자동차 부품, 정밀화학 등의 분야에서 시장 잠식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 시장 개방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뒤처졌던 일본이 TPP를 디딤돌 삼아 우리를 앞지를지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우리의 TPP 참여는 이익 극대화보다 손실 최소화 관점에서 불가피한 결정이 될 가능성이 크다.


둘째, 우리 기업들도 미래형 혁신 산업에 대한 관심을 더 키워야 한다. TPP 출범을 계기로 교역구조가 ‘규모’보다 ‘부가가치’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바뀌겠지만, 그 속도와 폭은 산업과 업종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효과가 두드러질 것으로 예상되는 혁신적 산업을 키우는 동시에 기존의 ‘글로벌 전략’이나 ‘생산지 결정 요인’에 대해서도 이런 변화에 맞춰 재검토가 필요하다. 산업기술의 변화, 그 중에서도 제조업의 소프트화와 디지털화에 주목해야 한다. 최근 교역 증가율 둔화가 두드러진 상품들은 전통적인 상품, 즉 생산 공정이 비교적 단순한 1차 상품이나 제조업 분야에 집중되어 있다. 반면, 혁신적인 제조업 상품이나 서비스, 혹은 이 두 가지를 함께 결합시킨 사물인터넷 등의 교역은 계속 늘어나고 있고, 무엇보다 최근 통상 분야의 최대 이슈인 GVC 세분화를 선도하는 분야기도 하다.


셋째, 한국경제와 산업의 미래 모습에 대한 밑그림도 새롭게 고쳐 그려야 한다. 기존의 양자간 FTA가 전통적 제조업 부문의 시장 개방에 초점을 맞췄다면 TPP나 RCEP와 같은 다자간 Mega FTA는 혁신적인 미래형 상품, 서비스 및 디지털 비중이 높은 상품의 교역 자유화를 강조하는 만큼 우리가 추구하는 미래 산업 구도나 경쟁우위 분야의 밑그림을 그릴 때도 이런 점을 반영해야 한다. 또한, 현재는 존재하지 않지만 앞으로 나타날 새로운 상품이나 서비스 분야의 GVC가 어떤 형태로 만들어지고, 우리는 그 가치사슬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할 것인지 등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하다. 향후 우리 산업과 기업들이 미국이나 일본 등과의 차별화에 실패할 경우 큰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TPP가 요구하는 제도적 환경과 우리 사회의 규제 수준 사이에는 아직 상당한 차이가 존재하는 만큼 이에 대한 준비도 필요하다. 일차적으로는 해외직접투자 요건을 활용해 국가 간 산업 내 분업 확대가 늘어나겠지만, 그 다음 단계로 기술이나 지식, 정보 중심 중소기업들의 해외 직접 진출을 위한 회원국들의 관련 제도 정비를 본격화할 가능성이 높다. 사전적 규제 중심인 우리의 제도 환경도 사후적 규제 중심으로의 변화가 요구될 것이다. 예컨대, 법률이나 규정에 신고 및 등록이 가능하다고 명시된 사업만을 허용하는 체제(포지티브 방식)에서 특별히 금지된 상품이나 업종 외에는 모두 진출 가능한 체제(네거티브 방식)로 전환할 것을 요구할 수도 있다.


물론 자유롭고 창의적인 기업 활동을 위해서는 사전적 규제보다 사후적 규제 환경이 더 유리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우리와 더불어 사전적 규제 중심이었던 일본이나 베트남 역시 앞다퉈 바꿔가는 중이다. 그러나 지난 반세기 동안 자리잡아온 시스템인 만큼 그 변경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실제 발생할 손실과 편익이 어느 정도이고, 우리 국민과 기업들이 감당할만한 변화는 어느 정도 수준인지 등에 대해 면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TPP 참여를 결정한다면, 관세 장벽 제거보다 제도와 규제의 불일치 해소가 더 힘든 난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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