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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경제연구원 '세계경기 둔화와 통화정책 한계 노출로 글로벌 금융리스크 더 커졌다'



최근 일본 및 유럽발 금융시장 충격은 독일 도이치뱅크의 수익 악화, 일본 마이너스 금리 도입에 따른 불안심리 확산에 의해 촉발되었다. 현재 금융불안은 어느 정도 진정되었지만 위기 리스크는 여전히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불안심리 확대의 근저에는 세계 실물경기의 하향흐름이 지속되는 가운데 효과가 점차 약해지고 있는 통화완화 정책 이외에는 마땅한 정책 수단이 없다는 인식이 작용했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미국, 일본, 유럽, 중국 등 대부분 국가의 성장활력이 낮아지고 있으며 저유가에 따른 신흥국 불안까지 겹치는 상황이다. 수년간 3%대 초반 성장세를 가까스로 이어가던 세계경제는 올해 2%대 성장으로 하향 흐름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양적 완화 등 기존 통화정책의 확대가 어려워지는 가운데 2014년 이후 도입되기 시작한 마이너스 금리 정책도 아직 효과가 검증되지 않았다. 불확실성 증대로 전반적인 소비 및 투자심리가 위축된 상황에서 마이너스 금리 정책의 수요확대 효과는 제약될 것으로 보이는 반면 은행권의 수익성 저하라는 부작용 우려는 높은 상황이다.


향후 세계경제의 하향흐름이 지속되는 가운데 금융시장의 변동성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몇 년간 불안의 초점이 취약 신흥국에 맞춰져 있었지만 최근 금융불안 국면에서는 불안의 양상이 더 폭넓게 확산되고, 위험기피 경향도 더욱 심화되고 있다. 마이너스 금리가 확대되면서 유럽은행의 순이자마진이 축소되고 유럽 국채수익률도 낮아지면서 유로존 은행 리스크는 쉽게 사라지기 어려울 것이다. 일본에서도 마이너스 금리 정책 강화와 안전자산 선호 현상으로 인한 환율급변동 상황이 재발할 위험이 크다. 더욱이 원유공급 조절 실패로 저유가가 이어지면서 산유국 리스크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구제금융을 신청한 국가 외에 베네수엘라나 이집트, 이라크 등의 위기가능성이 높다. 사우디 등 중동산유국의 국부펀드 회수 과정에서 각국 금융자산 가격 하락 및 위험기피 경향 확대가 예상된다. 실물경기 및 금융상황이 취약한 국가들이 많기 때문에 한 지역의 리스크 발생시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면서 전세계적인 금융위기가 도래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세계경기의 하향흐름과 금융리스크 확대로 국내경제 역시 지난해에 못 미치는 성장을 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으며 금융지표들의 변동성도 커질 전망이다. 국내 자금흐름의 모니터링과 거시건전성 감독을 강화하고 통화스왑 확대를 통해 불안감 상승을 방지할 필요가 있다.

 


< 목 차 >

 

1. 최근 금융시장 급변동의 원인
2. 향후 금융불안 확산 가능성
3. 맺음말

 

 

2월 들어 글로벌 금융시장은 주요 국가의 주가가 급락하고 환율변동성이 높아지는 등 또 한차례의 급격한 충격을 받은 바 있다. 지난해 8월 중국의 위안화 절하 쇼크에 이어 6개월만에 다시 금융불안이 재발한 것이다. 금융불안을 촉발시킨 나라는 유럽과 일본 등 선진국으로 그동안 원자재 중심 개도국이나 중국리스크가 컸던 것과 대조적이다. 유럽에서는 은행부실 리스크가 확산되면서 위험프리미엄이 급등하고 주가가 급락했다. 비슷한 시기 일본에서는 경제불안감이 증폭되면서 마이너스 금리 도입에도 불구하고 엔화가치가 급등했다. 주요 선진국의 금융시장 충격이 전세계로 확대되면서 대부분 국가들의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이 출렁였다. 현재 금융시장 상황은 다시 안정되었지만 경제주체들의 불안감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이번 금융충격의 원인과 의미를 짚어보고 향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1. 최근 금융시장 급변동의 원인

 


유럽 은행부실 리스크 확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수차례의 금융충격 사례와 마찬가지로 이번 사태도 금융지표나 정책방향의 변화가 경제주체들의 불안감을 급속하게 확대시키면서 촉발되었다. 유럽에서는 도이치뱅크의 수익발표가 도화선이 되었다(<그림 1> 참조). 도이치뱅크는 지난해 4분기 21억 유로의 순손실을 기록해 지난해 전체 순손실 규모는 68억 유로, 약 9조 3천억원에 달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기록했던 순손실 38억 유로를 넘어서는 규모다. 이와 함께 금융시장에서는 도이치뱅크가 발행한 코코본드에 대해 이자가 제대로 지급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유럽 재정위기 이후 취약한 주변국들을 지탱해 온 독일의 최대은행이 거액의 손실을 기록했고, 더욱이 채권 이자 지급에 대한 불확실성이 제기되자,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으로 발생되었던 글로벌 금융위기를 떠올리며 매우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이미 지난해말 미국의 금리 인상, 올해 초 중국 증시 급락으로 불안한 모습을 보이던 유럽 금융시장은 은행들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며 변동성이 크게 확대되었다. 일본의 갑작스런 마이너스 금리 정책 발표로 글로벌 증시 전체가 하락하는 가운데서도 유럽은 다른 나라에 비해서 큰 폭의 하락세를 경험했다. 특히 은행이 속한 금융업종의 경우 주가가 올해 들어 2월 11일까지 28.6%나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고, 우려의 시발점이었던 독일 도이치뱅크의 부도위험을 반영하는 CDS(신용디폴트스왑) 프리미엄은 지난해 말 대비 최대 127bp나 상승했다.


세계 경제의 저성장, 특히 중국, 산유국 등 신흥국 경기의 둔화, 유럽 경제의 미약한 회복세, 해소되지 않은 과다한 부채와 고질적인 부실채권 문제 등 유럽 은행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왔다. 더욱이 지난해 말 포르투갈 은행권의 부실채권 처리 과정에서 채권투자자들이 대거 손실을 입게 되면서 채권 투자 및 은행권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안 심리가 높아져 있는 상황이었다. 지난해 12월 30일 포르투갈 중앙은행은 Novo Banco 부채의 일부를 부실채권 처리를 위한 배드뱅크(Bad Bank)로 이전했는데 그 과정에서 원리금상환에 있어 우선 순위에 있는 선순위채권을 보유한 투자자들마저 하루 동안에만 채권가격이 80%나 급락하는 손실을 입게 되었다. 당시 사전 예고 없는 전격적 정책 발표로 금융당국의 정책 신뢰성 저하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었지만, 무엇보다도 안전하다고 여겨지던 선순위채권 보유자들마저 은행 부실화로 인해 손실을 입을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취약 은행권으로 채권투자 기피 현상이 빠르게 확산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주변국 중 부실채권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이탈리아 은행권의 채권금리가 급등하기 시작했고, 실제로 이후 이탈리아 4개 지방은행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코코본드를 포함한 채권을 보유하고 있던 투자자들이 손실을 입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여겨지던 독일의 최대 은행마저 대규모 손실을 기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유럽 은행권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 마이너스 금리 정책에 대한 불안감 증폭


일본에서는 중앙은행의 마이너스 금리 정책 발표가 금융시장의 불안을 촉발시킨 요인이 되었다. 이미 2015년 10월의 금융정책회의를 통해 2015 회계연도의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7%에서 1.2%로, 2016 회계연도의 성장률 전망치를 1.5%에서 1.4%로 하향 조정하며 성장세 둔화에 대해 우려하던 일본 중앙은행은 엔화마저 강세를 나타내자 올해 1월 29일 통화정책회의에서 전격적으로 마이너스 금리 도입을 발표했다.


그러나 일본의 마이너스 금리 도입은 금융시장 안정, 엔화의 약세 전환 등 당초 일본 중앙은행이 기대하던 성과를 거두기보다는 주가 급락, 엔화 가치 급등과 같은 기대와 정반대의 현상을 초래했다. 정책발표 이후 수일간은 주가가 상승하고, 엔화 가치가 하락했으나 이후 일본 주가는 1만 5천선이 붕괴될 정도로 급락했고, 엔화 가치는 달러당 112엔 수준까지 급격히 상승한 바 있다(<그림 3> 참조).


돈을 더 공급하고 시중금리를 낮추기 위한 마이너스 금리 도입에도 불구하고 엔화 가치가 오르고 금융시장이 불안한 모습을 보인 것은 금융시장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일본 중앙은행의 마이너스 금리 도입이 오히려 일본경제가 좋지 않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일본 중앙은행의 구로다 총재는 지난 1월 18일과 21일의 일본 의회 답변에서 “현 시점에서 마이너스 금리를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금리를 인하함으로써 일본경제 상황 악화가 긴급대책이 필요한 정도가 아닌가 하는 우려를 금융시장에 불러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이는 연초의 중국 증시 불안 및 최근의 유럽 은행 위기설과 맞물려 국제 금융시장 내의 위험회피 성향을 확대시켰고 그 결과 국제 금융시장이 불안할 경우 여전히 안전자산으로 선호되는 엔화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마이너스 금리 도입의 효과에 대해서도 우려가 부각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도입한 마이너스 금리 정책은 앞서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시행하던 중 은행 수익성 악화 문제가 불거진 유럽 국가들과 유사하다. 이러한 우려를 반영하듯 마이너스 금리 도입 직후 증시 급락 과정에서 일본 종합주가지수가 11.7% 하락하는 동안 은행 업종은 23.8%나 하락하여 가장 큰 폭의 하락률을 기록했다.


실물경기 하향 우려가 불안감 확산의 배경

 

현재 금융시장의 충격은 진정되는 분위기다. 유럽의 경우 독일 도이치뱅크가 최근 50억 달러 규모의 채권 재매입 계획을 발표하면서 파산우려가 크게 줄어들었다. 급락했던 주가는 다소 회복되었고, 급등했던 주요 유럽 은행들의 CDS프리미엄도 하락세로 돌아섰다. 독일 최대 은행인 도이치뱅크와 스위스 최대 은행인 크레딧스위스는 지난해 순손실을 기록했지만, 코메르츠뱅크, BNP파리바, HSBC 등 여타 대형 은행들은 순이익을 기록한 것으로 확인된 점도 불안감을 완화시켰다. 도이치뱅크의 경우에도 지난해 대규모 순손실을 기록했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자회사 매각에서 58억 유로, 소송 비용으로 52억 유로, 구조 조정 비용으로 10억 유로 등 대규모 손실이 발생했으며 이러한 일회성 비용을 제외한 경상이익은 43억 유로의 흑자를 기록했다는 점도 고려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유럽 은행 위기에 대한 불안이 다소 완화되고 춘절 이후 개장한 중국 증시가 예상보다 선전하면서 일본 주식 급락세와 엔화 가치 급등세도 완화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위기 상황이 완전히 해소되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유럽에서는 도이치뱅크의 적자에 의해, 일본은 마이너스 금리 도입에 따른 불안감 등이 금융불안을 촉발시킨 원인이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일본과 유럽, 나아가 세계 실물경제에 대한 어두워진 전망이 기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지난해 4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서면서 연간 2분기 역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다(<그림 4> 참조). 일본경제의 활력을 높이기 위한 부양책들이 제시되어 왔지만 일본정부가 원하는 경기선순환 흐름은 좀처럼 나타나지 못하고 있다. 엔저에 따른 기업수익 확대가 설비투자의 완만한 증대로 이어지고 있지만 실질임금은 여전히 마이너스 증가세에 머물면서 소비부진이 해소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경제가 플러스와 마이너스 성장을 반복하면서 아베노믹스 효과에 대한 회의감도 커지고 있다. 추가적인 엔화약세 기대가 높지 않은 상황에서 세계교역 부진으로 수출이 크게 위축되면서 일본의 수요확대를 이끌 것으로 예상되었던 기업수익성도 점차 둔화될 가능성이 높다. 올해 1%대 성장을 예상했던 투자은행 등 전망기관들도 전망치를 0%대로 낮추고 있는 상황이다.


2014년 하반기 이후 회복의 힘이 점차 높아졌던 유로존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다시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산업생산이 감소세로 돌아서고 올들어서도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크게 하락하는 등 수출부진으로 인한 제조업 경기 위축이 가시화되고 있다. 특히 유로존 경제를 이끌고 있는 독일경제의 하향흐름이 뚜렷하다. 마이너스 금리 도입 등 과감한 통화완화책이 제시되고 있지만 미국의 금리인상 속도가 기대에 못미치고 일본도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하는 등 환율경쟁 속에 유로화 약세 속도는 낮아질 것이다. 세계교역 위축 현상이 더욱 뚜렷해지고 최대 교역국인 미국의 수요도 둔화되면서 수출과 제조업이 유로존 경제를 이끄는 힘이 약해질 가능성이 크다.


미국과 중국 성장둔화로 세계경기 하향 흐름 예상


일본과 유럽의 경제전망이 불투명해진 데는 세계경기를 이끄는 미국의 힘이 점차 약화되는 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세계교역 부진과 달러화의 상대적 강세로 수출이 마이너스 성장하고 저유가로 에너지산업 생산도 위축되면서 제조업 경기 위축이 이어지고 있다. 임금상승 압력이 뚜렷하지 않은 가운데 취업자 증가 속도가 둔화되면서 가계소득 증가가 여의치 않게 되자 그동안 미국경기를 이끌어 왔던 소비 증가 추세가 약화되는 모습이다(<그림 5> 참조). 미국경제의 잠재성장세 둔화 우려가 커지고 세계경기 불확실성도 확대되면서 가계가 소비를 하지 않고 저축하는 경향은 계속 커지는 상황이다. 향후 미국경제의 성장 하향추세는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실업률이 완전고용 상황이라고 이야기되는 5% 아래로 떨어진 상황에서 추가적인 고용증가 속도가 둔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연준의 기준금리 인상도 계획대로 이루어지기 어려운 상황이다. 실질임금 상승률이 계속 높아지기보다는 2% 내외에서 진정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유가하락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은 낮아지는 모습이다. 유럽, 일본이 마이너스 금리 등 강한 통화완화정책을 사용하는 점도 강달러로 수출의 위축이 심한 미국경제의 부담요인이다. 추가적인 금리 인상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며 경기 둔화가 더 뚜렷해질 경우 금리를 다시 떨어뜨릴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글로벌 금융불안의 진원지였던 중국의 부진 역시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중국은 수출경기가 크게 악화된 상태에서 제조업과 부동산 부문의 투자부진이 겹치며 성장세 둔화흐름이 지속되고 있다. 공급과잉 및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인한 생산자물가 하락세가 심화되면서, 제조 기업들이 직면하는 디플레 압력과 그에 따른 실적 부진의 압박도 커지고 있다(<그림 6> 참조). 특히 철강, 시멘트 등 설비과잉 산업들은 기업 부실 및 도산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기업 부실이 은행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부동산 경기 역시 과잉공급 물량이 해소되지 못하면서 침체를 지속할 전망이다. 중국정부의 재정여력이 높고 통화정책 대응 카드가 남아 있어 단기간 내 경착륙 가능성은 낮지만 성장저하 추세가 이어지면서 금융시장의 우려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2010년대 들어 세계경제가 과거에 미치지 못하는 부진한 성장을 지속해 왔지만 3%대 초반 수준의 성장세는 꾸준히 지켜온 것이 사실이다. 2012년 이후 세계경제성장률은 4년간 3.0~3.5% 범위 안에서 안정적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지난해 성장률이 3% 내외 수준으로 낮아진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올해에는 세계경제 성장률이 2%대까지 낮아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세계경기를 선도하던 미국의 힘이 약화되고 제조업 성장을 주도하던 중국 역시 하향흐름을 이어갈 전망이다. 특히 저유가로 개도국 경제의 어려움이 심화되면서 세계교역의 위축현상이 더욱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


마땅한 경기부양 정책이 없다는 점이 문제

 

문제는 이와 같은 세계경기 둔화에 대응할 만한 적절한 정책수단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하버드대 로고프 교수는 제3차 부채 슈퍼싸이클이 도래할 것이라고 발언한 바 있다. 2008년 리먼쇼크에서 비롯된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1년 유럽재정위기에 이어 세계경제가 이제 3차 경제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주요국가들이 과감한 재정부양과 통화완화 정책을 통해 수요를 촉진했기 때문이다. 이 기간의 재정확대에 따른 국가부채 누적으로 유럽 재정위기 이후의 경기부진에 대한 주된 정책 수단은 통화정책이었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은 유례가 없는 대규모 양적 완화 정책을 통해 시중에 통화를 공급한 바 있다. 정책효과의 크기에 대한 이견들이 존재하지만 적극적인 통화정책이 세계경기의 하향세를 막는 데 기여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현재 상황에서는 통화정책의 효과도 어느 정도 한계에 부딪힌 것으로 보인다. 경기의 회복 흐름이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이 지난해 말 금리를 올렸던 것은 노동시장에서 나타나는 임금상승 압력을 경계했기 때문이다. 제로금리와 양적완화 정책 등을 통해 늘어난 수요가 고용 및 소득 증대와 소비확대로 이어졌지만 실업률이 완전고용 수준인 5% 아래로 낮아진 상황에서는 추가적인 금융완화 정책이 생산은 늘리지 못하면서 임금을 높여 물가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이다. 미 연준이 금리인상을 멈추거나 다시 인하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지만 통화정책의 효과는 과거보다 더욱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양적 완화 정책의 한계에 대한 지적도 많다. 기본적으로 유로존 및 일본의 중앙은행이 시행 중인 양적 완화는 국채 등 우량자산을 매입 함으로써 시중에 추가로 유동성을 공급하는 구조이다. 그러나 양적 완화의 규모가 늘어나고 기간이 길어지면서 최근 매입 가능한 국채 등 안전자산이 부족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일본 중앙은행의 연간 국채매입 목표액은 80조엔에 달하는데 일본 정부의 국채 발행 능력이 한계에 가까워지는 모습이다. 지난해 12월 일본 정부가 40년 만기의 장기 국채 발행을 20% 늘리는 대신 단기 국채의 비중을 줄이기로 한 것은 국채 발행 규모 및 양적 완화 규모 확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본 정부와 일본 중앙은행의 상황을 반영한 결정으로 해석된다. 그 결과, 향후 일본 중앙은행이 양적완화의 규모를 늘리기보다 장기 일본 국채의 비중을 늘리는 ‘질적’ 완화를 확대하거나, 국채 대신 상장지수펀드(ETF)의 매입 규모를 확대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유럽 중앙은행 역시 현재 1조 5천억 유로 규모의 채권 매입을 통한 양적완화를 시행 중이지만 규모 확대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독일 등 유럽 주요국들의 국채 물량이 제한적이라는 점과 함께 단기 국채를 중심으로 국채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지면서 양적 완화 확대를 위해 채권을 매입하면 오히려 이자를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유럽의 경우 기업자금 조달 방식이 금융시장에서 직접 채권을 발행하기보다 은행에서 차입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금융시장에서 매입할만한 우량 채권이 많지 않다는 점도 제약 요인이다.


양적 완화 정책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마이너스 금리 정책 역시 효과가 불투명하다. 마이너스 금리는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통해 풀린 자금을 다시 중앙은행으로 들고 와 안전하게 맡겨 두려는 은행들에게 자금 예치에 대한 이자를 주기는커녕 도리어 보관료를 내게 함으로써 대출을 늘리도록 하는 방식이다. 중앙은행에조차 돈을 맡기는 것이 어려워지고 비용이 드는 상황에서 부담을 느낀 금융기관들이 가계, 기업 등 민간 부문에 대한 대출을 늘린다면 마이너스 금리 정책은 시중에 풀리는 유동성, 즉 돈의 양을 늘리게 된다. 즉 마이너스 금리 정책이 완화적인 통화정책의 기능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은행들이 대출 또는 채권매입 등을 통해 여신을 늘리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과도한 부채 규모, 약화된 부채상환능력 등으로 인해 민간의 대출 수요 자체가 크지 않은 상황이거나 악화된 경기 전망, 부채 부실화 리스크 상승 등으로 인해 대출 자체가 위험한 상황이라면 은행의 대출이 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일본과 같이 은행 예금에 대한 선호도가 높고 고령화로 인해 예금에 대한 이자수익에 기반하여 생활하는 고령층의 비중이 높은 국가에서는 은행권의 예금금리 인하가 가계 소비를 늘리는 효과가 제약될 수 있을 것이다.

 


2. 향후 금융불안 확산 가능성

 


금융시장 급변리스크 더욱 커져

 

향후 세계경제의 하향흐름이 지속되면서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충격의 크기나 빈도가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로고프 교수가 3차 경제위기를 언급한 것은 중국 리스크를 염두에 둔 것이지만 이번의 충격은 선진국에서 촉발되었다. 지난 몇 년간 불안의 초점이 취약 신흥국에 맞춰져 있었다면 최근 금융불안 국면의 특징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불안의 양상이 더 폭 넓게 확산되고, 위험기피 경향도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주요 선진국들은 강한 통화완화를 통해 불안을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지만 선진국의 통화완화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마저 높아지면서 금융불안은 더 이상 신흥국만의 문제가 아닌 상황이 되었다.


금융지표의 변화를 보더라도 위험자산인 주식의 경우 이번에는 선진국과 신흥국의 주가가 동반 하락했다. 이는 최근 몇 년간의 불안국면에서 주로 신흥국 주가의 하락폭이 훨씬 컸던 것과는 다소 다른 모습이다(<그림 7> 참조). 불안의 범위가 확대되면서 선진국 주식에 대한 투자심리도 빠르게 위축되고 있다. 반면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가 강해지며 채권가격은 오르는 양상이다.


이번 사태가 금융시장에 준 충격의 강도는 2013년 버냉키 쇼크나 지난해 중국 우려가 불거지던 때에 비해 더 크다. 투자자들의 불안을 나타내는 VIX 지수는 유로존 재정위기 당시에 육박하고 있고, 신흥국 국채에 대한 위험기피도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그림 8> 참조). 주가하락 폭도 지난 해 중국 불안으로 이미 조정을 받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적은 수준이 아니다.


향후 원자재 가격 약세가 더 길어지고 일본 경기악화, 유럽 금융기관 부실 등 위험요인이 더욱 악화될 경우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이 위기로까지 비화될 우려가 있다. 이미 불안의 강도가 유럽 재정위기 당시를 넘어서고 있는 상황에서, 글로벌 금융위기에 버금가는 혼란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유로존 은행부실 위험 확대될 것

 

저유가가 지속되는 가운데 유로존의 마이너스 금리 정책이 지속되면서 유로존의 은행부실 리스크는 향후 지속적으로 제기될 가능성이 크다. 유럽 주요 은행들의 총 대출 대비 에너지 부문에 대한 익스포져 비중은 5~11%으로서, 1~3%인 미국 주요 은행들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저유가가 지속되어 산유국을 중심으로 신흥국 경기 부진이 지속되고 에너지 기업의 상황이 어려워질 경우, 더욱 타격을 입을 수 있는 구조다.


마이너스 금리 정책으로 시중금리가 하락할 경우 은행들로서는 예금금리와 대출금리의 격차가 더욱 축소되어 이익률에 해당하는 순이자마진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자금 운용이 어려워진 금융기관들의 매수세가 몰리면서 유럽 주요국들의 국채수익률마저 마이너스로 떨어져 금융기관들의 투자수익률이 더욱 낮아지는 요인이 되고 있다.


유로존 은행들은 여전히 2014년 유로존 GDP의 9.2%에 해당하는 1조 유로 규모의 부실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유로존 경기 부진, 유가 하락, 신흥국 경기 둔화에 따라 그 규모가 더욱 늘어날 위험성을 안고 있다. 이러한 부실채권을 정리하려 하더라도 지난해 말 포르투갈과 이탈리아에서 벌어진 투자자 손실 및 이로 인한 투자심리 위축이 재연될 위험성이 상존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올해 1월부터 유로존 통합 금융감독체제 도입의 일환으로 시행되는 ‘단일은행정리체제’, 즉 은행이 부실화되어 구제기금을 투입해야 할 경우 은행에 투자하거나 돈을 빌려준 주주와 채권자들이 먼저 일정 부분 손실을 부담하도록 하는 ‘Bail-in’ 규정이 적용되기 시작함으로써 향후 부실우려 은행에 대한 투자자들의 기피 현상이 더욱 심화될 수 있다.


더욱이 유로존은 정책금리의 마이너스 폭을 더욱 확대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유로존, 스웨덴, 덴마크, 스위스가 마이너스 정책 금리를 도입하여 시행 중이다(<표> 참조). 재정 위기를 겪을 정도로 취약해진 유럽 국가들의 재정 상황과 유로라는 단일통화로 묶인 환율제도를 감안할 경우 향후 경기 둔화에 대응하여 유로존 국가들이 선택할 수 있는 정책 대안이 양적완화 확대, 마이너스 금리 인하 폭 확대 등 통화완화 정책 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유럽 은행들은 그 동안 마이너스 정책금리로 인한 수익성 악화에도 불구하고 예금금리 차등 적용 등을 통해 손실을 내부화하면서 일반 가계예금에 적용하는 금리는 소폭이나마 플러스로 유지하려고 노력해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일부 은행들에서 악화된 수익성 및 자금운용의 어려움을 예금금리 인하로 예금자들에게 전가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만약 향후 예금금리가 상당 폭 마이너스로 전환되고 이러한 현상이 확산된다면 예금에 대한 보관료를 견디지 못한 가계들의 대규모 예금인출, 이로 인한 은행의 유동성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 즉 대출 확대, 통화 평가 절하, 경기 회복 등을 위해 시행되는 마이너스 금리 정책이 은행 수익성 악화, 뱅크런 현상과 같은 부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상존할 것으로 예상된다.


엔화가치 급변 지속되는 가운데 일본 은행 수익성 악화 우려


일본 역시 엔화가치의 급변 현상이 재발할 가능성이 크며 마이너스 금리로 은행권의 수익악화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경기 회복을 위해 일본 중앙은행이 추가적인 금리 인하를 통해서라도 엔화의 약세 전환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유럽과 마찬가지로 일본 역시 막대한 정부 부채로 인해 재정 확대 여력이 크지 않기 때문에 금융정책 의존도가 높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경제의 하향흐름에 따른 금융리스크 증대로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 역시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금리인상이 예상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큰 점도 엔화강세 요인이 될 것이다. 금융시장의 위기리스크가 커질 때마다 안전자산으로 인식되는 엔화수요가 늘면서 환율변동성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과 마찬가지로 일본 은행들의 수익성 악화도 우려된다. 최근 일본 국채수익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진 상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그림 9> 참조). 자금 운용이 어려워진 금융기관들의 매수세가 몰리면서 국채 가격이 급등한 결과지만, 마이너스 국채수익률은 국채 매입을 통해 자금을 운용하는 은행의 수익성을 악화시킬 수 있다. 또한 비싼 가격에 샀던 국채 가격이 갑자기 하락하는 경우 국채를 보유하고 있던 금융기관은 커다란 손실을 입을 수 있고 금융기관의 자금난, 연쇄적인 자산 매도로 인한 가격 급락과 같은 혼란을 초래할 위험성을 안고 있다. 엔캐리 트레이드 등을 통해 우리나라로 유입된 일본 금융기관들의 자금이 적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에서 일본 금융기관들의 수익성 악화 및 자금난은 국내 금융시장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할 움직임이다.


저유가 이어지면서 자원수출국 어려움 증폭


특히 저유가가 지속되는 가운데 선진국 경기불안도 확대되면서 자원보유국의 리스크는 더욱 커졌다고 볼 수 있다. 올해 들어서도 국제유가는 여전히 배럴당 30달러 전후에 머물고 있다. 공급 과잉의 조정이 당초 예상에 비해서도 훨씬 더디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들은 원유생산량을 올 1월 수준으로 동결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1월 산유량이 사상 최대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현재에도 나타나고 있는 공급과잉 현상이 앞으로도 이어질 것임을 의미한다. 더욱이 동결 약속마저도 이행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경제 제재 해제로 원유수출을 재개한 이란은 산유량이 제제 이전 수준을 회복할 때까지 증산을 지속할 방침이며 다른 산유국들의 동참 여부도 아직 불확실하다. 기존 유전 및 오일샌드의 공급조절이 기술적으로 어려운 측면이 있는데다 셰일오일 등 비전통적 부문의 기술력 증진으로 생산단가가 낮아진 점도 공급 조정을 지연시키는 요인이다. 미국이 주된 플레이어로 참여하면서 세계 석유시장은 완전경쟁에 가까운 구도가 되어 가고 있으며 시장에서 담합에 의한 공급조정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미국에너지정보청(EIA) 및 주요 투자은행의 전망을 보면, 올해 국제유가가 상승세로 돌아서더라도 그 속도는 그리 빠르지 못할 것이라는 데에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2016년 2월 초 기준, WTI 가격은 올해 배럴당 30달러대 후반, 내년 평균도 40달러 후반에 머물 것으로 전망된다(<그림 10> 참조). 2010년 이후 5년간 평균인 배럴당 92 달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기타 원자재 가격도 상황은 비슷하다. 천연가스 및 석탄 등 에너지 자원 뿐만 아니라 금, 구리, 철광석 등 금속자원들도 지난 해부터 이어진 극심한 약세 흐름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자원가격 하락에 따라 자원수출국 경제도 더욱 악화되고 있다. 세계 경제 부진으로 수요확대가 제한적인 상황에서 원자재 가격 약세는 고스란히 자원수출국의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들 국가에서 수출 감소는 단순한 경기 둔화 뿐만 아니라 재정 및 외환건전성의 악화를 야기시키는 삼중고를 초래하게 된다. 펀더멘털의 불안이 금융위기로 비화될 우려도 있다. 실제로 최근 금융시장에서는 원자재 수출 비중이 높은 국가들을 중심으로 위험프리미엄이 확대되고 있다(<그림 11> 참조). 대내 불안과 해외투자자들의 투자기피가 맞물릴 경우, 취약국을 중심으로 해외자금이 대거 유출되거나 만기가 돌아오는 외채의 상환에 실패하면서 금융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주요 산유국들은 원유 수출대금이 재정수입의 원천이기 때문에, 수출이 감소할 경우 동시에 재정긴축의 강도를 높여야 하는 내핍(austerity)의 압박이 크다. 뿐만 아니라 자국통화를 달러화에 페그(peg)해 놓은 국가들의 경우, 통화강세로 수출 가격경쟁력이 악화되는 한편 자국통화로 환전한 수출대금은 줄어들어 경상수지 및 재정수지 적자압력이 더욱 큰 상태다.


주요 산유국의 재정균형 유가수준은 가장 낮은 국가가 50달러 대 초반으로 알려져 있다. 올해 및 내년의 유가 전망을 감안하면 거의 모든 산유국에서 재정적자 압력이 발생하는 것이다(<그림 12> 참조). 이미 나이지리아, 아제르바이잔은 세계은행 및 국제통화기금 등에 구제금융을 요청한 상태다. 저유가의 충격이 누적되면서 원유의 원가 경쟁력이 낮고 대외건전성이 취약한 국가들을 중심으로 위기에 빠지는 국가가 더욱 늘어날 우려가 크다. 금융시장에서는 베네수엘라가 올해 중 외채부담을 견디지 못해 구제금융을 신청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그 이외에도 이집트, 이라크, 리비아 등이 불안한 국가로 지목되고 있다.


국부펀드 회수 및 통화제도 변경 과정에서 산유국發 금융불안 우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등 거대 산유국들도 직면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차이점이라면 지금까지 쌓아놓은 오일머니가 많아 당장의 위기 가능성이 높지는 않다는 점이다. 2015년 말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의 국부펀드 규모는 약 6,400억 달러, 아랍에미리트는 약 1조 2천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쿠웨이트(5,900억 달러), 카타르(2,500억 달러) 등도 위기에서는 한발 비켜나 있는 상태다.


그러나 외환위기 가능성은 낮다고 하더라도 글로벌 금융시장에는 충분히 큰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지난 해부터 이미 GDP의 20%가 넘는 막대한 재정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유가하락에 비해 재정 감축의 강도가 충분치 않았던 셈이지만, 경기위축 우려 및 정치적 부담을 감안하면 현실적으로 긴축이 어려운 측면도 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국부펀드를 회수해서 재정적자를 충당하거나 심할 경우 페그제를 포기하고 통화약세를 유도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재정감축을 최소화하는 대신 축적된 자금을 이용해 재정적자 압력에 대응하는 것은 비단 사우디아라비아만의 일은 아니다. 국부펀드 규모가 충분하고 외채 문제가 심각하지 않은 국가들, 자국 내 제조업 기반이 어느 정도 갖추어져 있는 국가들도 비슷한 선택을 할 공산이 크다.


실제 글로벌 국부펀드 규모는 지난해 초 이후 이미 줄어들기 시작했으며 이는 대부분 원유 등 자원수출국의 자금으로 추정되고 있다(<그림 13> 참조). 특히 산유국의 경우, 유가가 재차 하락하던 지난해 하반기 이후 약 1,000억 달러 이상의 국부펀드를 회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국부펀드의 회수가 또 다른 불안을 야기한다는 점이다. 자금이 회수되는 과정에서 각국 금융자산 가격은 하락 압력이 불가피하며, 대규모 자본 회수 과정에서 금융시장 전반의 위험기피 경향이 확대될 우려도 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취약 신흥국은 우선적 자본유출의 대상이 되며 위기 가능성이 더욱 커질 수 있다.


페그제를 포기하고 통화약세를 유도하는 국가들도 더 많아질 전망이다(<그림 14> 참조). 재정수입을 위해서는 수출을 늘려야 하지만 유가를 고려하면 감산의 필요성이 커지는 일종의 딜레마 속에서, 산유국들은 결국 지금껏 포기했던 통화정책으로 눈을 돌릴 가능성이 높다. 수출 물량을 확대시키지 않으면서도 자국화폐로 표시된 재정수입은 늘릴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재정감축을 최소화하면서 재정균형 유가수준을 낮추는 셈이다.


그러나 이 역시도 많은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다. 환차손 우려로 당장의 자본유출 가능성이 커질 뿐만 아니라 구조적인 경기 개선도 장담하기 어렵다. 사실 산유국 입장에서 통화 약세를 유도하는 것은 일종의 고육지책에 가깝다. 제조업 기반이 약해 수입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통화 약세는 수입부담 증대로 이어질 수 있다. 외화표시 부채가 많은 산유국의 경우 외채 부담이 증가하며 재정수지 개선의 이점이 상당부분 상쇄될 가능성도 있다. 이와 같이 페그제를 포기한 상황에서 오히려 펀더멘털이 악화될 경우 자본유출이 확대되며 금융불안이 심화될 수 있다.


브라질 위기가능성 경계해야


브라질 등 거대신흥국의 금융위기 가능성도 여전히 높은 상황이다. 원자재 가격 하락, 중국 수요둔화, 해외자본 이탈 등 대외 불안요인의 직격탄을 맞은 브라질은 지난 해에 이어 올해도 큰 폭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전망이다.


브라질은 악순환의 굴레에 갇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경제는 넓은 의미의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에 접어든 상태다. 울며 겨자먹기 식의 금리인상은 자본유출과 물가급등을 막지 못한 채 경기하방 압력만 키운 셈이 되었다. 원자재 가격 약세에 대내 경기침체가 더해지면서 재정수입이 크게 줄었고, 정부부채도 급증하면서 부채를 통한 적자 재정도 한계에 이르렀다(<그림 15> 참조). 헤알화가 상당 폭 절하되었지만 원자재 가격 추가 약세로 경상수지 개선은 미미할 것으로 보인다. 재정건전화와 경기회복 중 어느 하나에도 성공하지 못한 정부에 대해 국민들의 신뢰는 크게 낮아졌고, 여기에 부패 스캔들까지 겹치면서 난관을 타개할 정치 리더십을 기대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졌다.


올해 브라질 성장률에 대한 전망 컨센서스는 -3%대 초반이지만 잠재 불안요인이 확대될 경우 침체의 폭은 더욱 깊어질 수 있다. 그 뇌관으로 지목되는 것이 기업 부실이다. 이미 신용등급이 여러 차례 강등된 바 있는 PETROBRAS社로 인해 향후 브라질 GDP의 2%가 넘는 구제금융이 필요할 수 있다고 지적되고 있다. 에너지 산업을 중심으로 한 기업 부실 확대가 대형은행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경제에 미치는 충격은 상당할 전망이다.


러시아의 경우 경상수지가 흑자로 돌아서고 단기외채가 많지 않지만 저성장-고물가가 지속되는 가운데 서방국들의 경제제재도 이어지면서 위기발생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3. 맺음말

 

 

국내경기 하향 및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에 대비해야


세계경제의 하향 흐름과 금융시장의 변동성 확대는 우리 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세계교역이 위축되면서 이미 1월 수출이 20% 가까이 감소한 바 있으며 금년 전체로도 마이너스 증가율을 기록할 가능성이 크다. 국제금융시장 불안이 소비와 투자심리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그동안 경기회복세를 지탱해오던 내수부문의 활력도 점차 둔화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2%대 중반을 기록했던 지난해보다 더 높아지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금융시장의 리스크가 불거질 경우 크게 낮아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울 것이다.


국내 금융지표들의 변동성도 높아질 것이다. 산유국의 국부펀드 유출이 지속되는 가운데 글로벌 금융불안이 확대될 때마다 선진국 자금유출로 인한 환율급등락 현상이 지난해보다 더 빈번해질 가능성이 크다. 유럽 글로벌 은행들의 위기가 현실화될 경우 이들이 국제 금융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할 경우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사한 연쇄적인 충격이 예상된다. 특히, 우리와 근접한 일본 금융시장의 불안은 엔캐리 자금의 회수 등을 통해 우리 경제에 상당한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국내 금융시장에 유입된 오일머니, 유럽계 자금, 엔캐리 자금 등 향후 금융시장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자금들의 동향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이러한 자금들의 급격한 유출에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국내 금융기관 및 기업들의 단기 외화 차입금, 선물환 계약 등 민감 부문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한다. 이와 함께, 외환 건전성 3종 세트 시행으로 안정성이 강화된 은행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외변동성에 취약한 비은행권 금융기관에 대한 거시건전성 감독 강화가 필요해 보인다. 유사시 제2의 외환보유고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여타 주요국과의 통화스왑 계약을 확대함으로써 우리 금융시장에 대한 불안감 상승을 사전에 방지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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