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 '규제 많은 미국이 핀테크를 선도하는 이유'
금융과 IT가 결합한 핀테크 산업이 빠르게 출현하고 있다. 올 10월에 출시된 애플페이는 간편성과 보안성을 발판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며, 알리페이와 페이팔 등 IT결제업체들은 예금과 송금, 대출 등 다양한 영역으로 성장하고 있다. 과거에는 보지 못했던 자산관리 앱, 투자자문 앱들도 빠르게 출시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공인인증서 규제, 대면 확인의무, 과도한 개인정보보호 규제 등으로 핀테크 산업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인터넷 뱅킹이 성장했다지만 조회와 이체 서비스만 활성화되어 있다. 대면확인 비용 등으로 인터넷 예금의 비중은 전체 예금의 10%대에 불과하고 금융정보를 공유하여 자산관리와 투자자문을 제공하는 새로운 핀테크 서비스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금융기관의 공인인증서 사용 의무로 소비자 불편과 핀테크 성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규제의 양도 문제이지만, 더 큰 장애물은 규제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투자자 보호와 금융기관 건전성을 위해 세계에서 가장 많고 복잡한 규제 체계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되는 미국이 혁신적인 핀테크 산업 역시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규제의 비용편익 분석에 기반하여 비합리적인 규제를 최소화하고 있고, 비조치 의견서라는 면책 제도 등 규제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한 장치들이 활성화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혁신적인 핀테크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규제완화와 더불어 예측가능한 규제 환경이 만들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 목 차 >
1. 핀테크 시장 급성장
2. 핀테크 영역의 확대
3. 핀테크 산업이 성장 가능한 규제 환경
4. 맺음말
애플은 올해 10월 아이폰 신모델을 출시하면서 애플페이(ApplePay) 서비스를 출시하였다. 애플페이는 아이폰에 탑재된 지문인식 센서를 통해 온·오프라인 상점에서 결제를 안전하고 손쉽게 만든 모바일 결제 서비스이다. 2013년 기준 전세계 신용카드 및 직불카드 관련 사기행위 피해액 1위라는 불명예를 차지한 미국의 신용카드업체인 비자와 마스터카드는 자신들과의 잠재적 경쟁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애플페이의 보안성에 주목하여 애플페이 결제시스템을 지원하기로 결정하였다. 2015년에는 애플페이 서비스가 애플워치를 통해서도 제공될 예정이다.
2004년 중국 최대의 온라인 쇼핑몰인 타오바오의 물품대금결제 솔루션으로 서비스를 시작한 알리페이는 타오바오의 틀에서 벗어나 2013년 기준으로 가입자 8억명에 달하는 초대형 결제, 송금, 예금 서비스업체로 성장하였다. 국내 면세점과 상점들도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중국 관광객들을 위해 올해부터 알리페이를 경쟁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하였다.
플랫폼 업체와 인터넷 기업들의 영향력이 온라인, 모바일을 넘어 오프라인까지 확대되는 움직임이 ‘핀테크(Fintech)’ 서비스를 통해 본격화되면서, 국내에서도 ‘핀테크’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다. 공인인증서, ActiveX 기반 결제 시스템에 불만이 많은 국내 소비자들은 모바일 기반의 간편한 결제 서비스들이 국내에서도 빠른 시일 내에 사용 가능하게 되기를 바라는 의견에서부터 인터넷 주권, OS 주권에 이어 금융 주권까지도 해외 업체들에게 내줄 수 있다는 우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견들을 개진하고 있다.
1. 핀테크 시장 급성장
핀테크는 Financial Technology의 약어로, 점포 중심의 전통적 금융 서비스에서 벗어나 소비자 접근성이 높은 인터넷, 모바일 기반 플랫폼의 장점을 활용하는 송금, 결제, 자산관리, 펀딩 등 다양한 분야의 대안적 금융서비스를 통칭한다.
스마트폰 보급, 핀테크 성장의 토대
전통적인 금융기관들은 오프라인 점포를 기반으로 강력한 보안 시스템 및 고객 상담, 제도권 기관들과의 데이터베이스 연계에 기반한 신용 평가 등을 통해 금융서비스에 필수적인 접근성, 보안 및 신뢰성을 확보해 왔다. 결제 서비스에서는 신용카드 업체들이 조기에 시장을 선점하여 결제 시장을 주도해왔다.
반면 핀테크 기업들은 스마트폰 위주의 모바일 단말기에 기반한 서비스, 빅데이터 분석을 통한 재무관리 및 신용 리스크 평가 등을 통해 기존 금융기관 보다 현저히 낮은 비용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또한 결제 서비스에서도 스마트폰을 활용한 접근성, 기술적인 이점을 활용한 편의성, 보안성을 제공한다.
기업의 입장에서도 핀테크의 사업 가치는 분명하다. 일상 생활에 필수적인 서비스를 경쟁력있는 가격에 제공할 경우 시장 선점을 통한 빠른 ‘규모의 경제’ 확보 및 유지가 가능하기에, 스타트업들은 물론 기존의 플랫폼 업체들도 자신들의 영역 확장을 위해 핀테크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핀테크 사업의 본격적인 확장은 스마트폰 이용자 수의 급격한 증가와 함께 가능해졌다. 수취를 기본으로 하는 금융거래의 특성 상 특정 방식의 수취를 가능토록 하는 결제 수단 및 시스템의 확산 정도, 즉 이용자의 수에 따라 결제 방식이나 플랫폼으로서의 채택 여부가 결정된다. 스마트폰의 급격한 확산은 손쉽게 많은 사람들이 관련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였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통한 결제서비스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은 또다른 금융 서비스들을 모바일 단말기를 통해 이용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크게 느끼지 않게 되면서 핀테크 업체들이 새로운 사업을 시도해볼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것이다.
결제시장 넘어 여수신 영역으로
핀테크 서비스는 결제, 송금 등의 지급결제 영역과 예금, 대출 영역 그리고 투자자문 등 기타 금융 영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최근에는 지급 결제 및 예금, 대출 영역 외에도 소비자들이 기업에 직접 투자하고 지분을 확보하는 방식의 서비스와 자산관리 서비스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추세를 반영하듯 핀테크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액은 2008년의 9.3억 달러에서 2013년에는 29.7억 달러로 규모가 3배 이상 증가하였는데, 주로 미국과 유럽 지역에 투자가 집중되고 있으나 최근에는 아시아 지역에서도 투자액이 크게 증가하는 추세이다.
결제 및 송금은 온라인 결제, 사이버 머니 등에 이미 익숙한 소비자들의 거부감이 적어 오래 전부터 사업화가 시도되어 왔다. 전자 화폐 영역은 온라인 쇼핑의 보완재로 시작되었다. 온라인 상에서 개인간 물품 거래 시 신용카드가 없는 개인들이 거래 건마다 일일이 은행계좌를 통해 거래금액을 송금하는 불편을 덜어주고자 온라인 가상 계좌에 현금을 이체하여 사이버 상의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특히 지급 안전성 확보를 위해 물품 인도까지 거래대금 지급이 보류되는 에스크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타국 신용카드 및 계좌이체가 제한되어 있는 사이트에서 결제 중계기능을 제공하는 등 소비자들의 거래 편의를 향상시켜 왔다. 대표적인 서비스는 미국 이베이의 전자화폐로 시작한 페이팔과 중국 알리바바의 전자화폐인 알리페이 등으로, 2013년 거래액은 650조원(알리페이), 180조원(페이팔)에 달한다.
오프라인 결제 및 예금과 대출에도 진출
전자결제는 지갑의 불편함을 덜어주고자 신용카드 또는 예금계좌를 스마트폰에 연동하여 스마트폰 하나로 온, 오프라인 결제가 가능하도록 해주는 서비스로, 구글 월렛, CurrentC, 애플 페이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 서비스는 개인의 신용카드를 스마트폰에 등록한 후 스마트폰을 오프라인 매장의 결제 단말기에 접촉하여 지문인식이나 서명을 통해 최종 결제가 이루어지는 방식으로, 스마트폰의 보급량과 매장 내 결제 단말기의 보급 정도에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최근 스마트폰 보급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오프라인 매장들의 NFC 결제 단말기 채택율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대출에서는 P2P(Peer to Peer) 방식을 통한 서비스가 부상하고 있다. 대출형 클라우드 펀딩으로 불리우는 P2P 대출 서비스는 온라인 및 모바일의 장점인 접근성에 기반하여 대출을 원하는 기업이나 개인(수요자), 그리고 높은 이자 및 낮은 거래비용을 원하는 개인과 기업(공급자)을 동일 플랫폼 내에서 연결시켜주는 서비스를 지칭한다. 특히 신용평가, 채권회수 등 리스크에 대한 우려를 빅데이터 및 소셜데이터 등을 통해 해결하여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실제로 2013년 기준 중국의 P2P 기반 대출 취급액은 11조, 미국은 2.5조, 영국은 0.8조원에 육박한다.
그 외에도 모바일을 통해 이용자가 보유한 자산 규모를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자산관리 서비스, 관심있는 투자 영역에 대한 맞춤형 투자 정보를 제공하고, 원스탑으로 각종 투자상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해주는 투자 서비스 등 핀테크의 영역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2. 핀테크 영역의 확대
위에서 언급한 영역들 중 결제와 송금 영역은 플랫폼의 확장성에 기반한 모객 및 사용 접근성에서, 대출 및 투자 관련 업무는 소셜데이터와 빅데이터를 통한 높은 예측성에서 기존 금융 산업에 큰 위협으로 작용할 수 있다.
결제 및 송금 서비스는 이용 빈도가 높고 플랫폼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신규 업체들이 다른 금융 서비스로 진출할 발판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경우 기존 금융업체들에게 큰 위협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실제로 알리바바의 경우 결제서비스인 알리페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금융관련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올해는 은행 허가를 취득하는 등 금융업 전반에 걸친 서비스 포트폴리오를 이미 확립하였다. 애플과 구글도 알리바바의 금융업 진출 모델을 따라갈 가능성이 있다. 모바일 결제시장의 확산으로 소비자들이 모바일을 통한 오프라인 결제에 친숙하게 되어 향후 애플과 구글의 결제서비스 성공가능성을 밝게 보는 분위기도 확산되고 있다. Juniper Research는 애플페이와 구글 월렛 등의 NFC 기반 결제 서비스가 확산되면서 2014년 1억명인 NFC 사용자가 2019년에는 5억명 이상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과거의 모바일 결제와는 달리 상당한 성공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소매금융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미비한 개발도상국의 경우 전통적인 금융 인프라 확보 시기를 거치지 않고 핀테크 기반의 결제 및 송금 시스템으로 곧바로 이행할 수 있다. 이런 시나리오가 아프리카 일부 국가들 뿐아니라 중국 등의 대형 시장에서도 일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의 신용카드 보급율은 8%에 불과한 반면 스마트폰 보급율은 2013년 기준 70%에 달하여 오프라인에서의 모바일 결제가 성공하기 쉬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또한 단기간에 다수의 이용자 확보가 가능한 자원과 이용자 기반이 확보된 대형 플랫폼 업체들이 진출한다면 시장의 파급력도 클 수 밖에 없다. 알리바바와 티몰을 통해 결제 및 송금 서비스 분야 세계 최대 업체로 성장한 알리페이는 이용자들의 알리페이 계좌에 들어있는 잔액을 MMF에 투자하여 오프라인 은행의 두 배인 연 6%의 이자를 제공하는 위어바오 서비스를 출시하였다. 1년만에 가입자 9,000만 명, 자금 5,740억 위안을 유치하는데 성공한 위어바오는 중국 자산운용사 중 최대 규모로 올라섰다. 또한 2014년 9월에는 은행 허가를 취득하여 본격적으로 금융관련 서비스를 확대할 발판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빅데이터를 이용한 대출리스크 관리
대출 및 투자 관련 업무의 경우 빅데이터와 소셜데이터 등 대안적인 데이터를 활용한 프로세스를 통해 기존 리스크 산정 및 예측 방식보다도 높은 정확성을 확보하는 등 기존 금융기관들의 핵심 경쟁력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다. 앞에서 언급한 크라우드 펀딩은 전통 금융업의 핵심인 대출과 증권 시장을 잠식하기 시작하고 있다. 크라우드 펀딩은 단순히 온라인 플렛폼에서 정보를 모아서 투자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빅데이터 기법을 이용하여 소비자들과 벤처기업의 신용도를 분석함으로써 투자 위험은 최소화하고, 성장력 있는 기업이 대출과 투자를 유치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금지되고 있지만 영국에서는 빠르게 성장하여 2013년에 대출형 크라우드 펀딩은 4.8억 파운드, 지분형 크라우드 펀딩은 2,800만 파운드에 달했다. 앞으로 빠르게 대출과 증권투자 시장을 잠식할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경로를 통해 수집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신용도를 결정하는 방식은 전자상거래 등 인접 서비스를 통해 방대한 거래정보를 보유한 플랫폼 업체들에게 유리하다. 알리바바는 자사의 서비스 플랫폼을 통해 수집된 데이터들을 통해 대출 심사를 수행하고 있다. 2011년에 시작한 알리파이낸스는 자사의 온라인 쇼핑몰 사이트인 티몰과 B2B 전자상거래 사이트인 알리바바에 입점을 원하는 사업자들을 대상으로 입점에 필요한 비용 및 사업 비용을 대출하는 서비스이다. 알리파이낸스는 B2B 전자상거래 서비스인 알리바바와 B2C 온라인 쇼핑몰인 티몰을 통해 축적된 거래량, 재구매율, 만족도 등 정형데이터와 판매자와 구매자간 대화 이력, 구매 후기 등의 비정형데이터, 그리고 SNS 등의 외부 데이터를 바탕으로 대출 심사 대상자의 신용도를 자체적으로 평가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발생된 대출의 불량채권 비율은 0.9%로 시중은행의 2%보다 오히려 낮았다.
자산관리와 투자자문에도 핀테크 기업 진출
결제와 대출, 투자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자산관리에도 핀테크 기업들이 진출하고 있다. 자산관리 앱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Mint.com이다. 쉽게 말하면 일종의 가계부인데, 소비자가 가지고 있는 모든 금융계좌와 신용카드 정보 등을 종합하여 자산 상황을 종합적으로 알려준다. 심지어 주택과 증권가격 등도 수집하여 순자산의 가치를 실시간으로 산정해준다. 지출이 수입보다 많은데도 알지 못하고 있다가 겪게 되는 곤경을 막아줄 수 있는 것이다.
투자자문 시장에도 핀테크 서비스가 진출하고 있다. 지금까지 소비자들이 투자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개별 금융기관의 지점과 웹을 통해 자문을 구하고 투자를 결정했지만, 투자자문 앱은 실시간으로 금융시장의 정보를 종합적으로 제공하고 투자자문을 제공할 것이다. 오프라인 지점에 가지 않아도 앱을 통해 투자자문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미국에서 Wealthfront, Betterment 등과 같은 투자자문 앱이 성장하고 있는데, 전통적인 지점 위주의 투자자문 역시 IT 발전에 따라 도전받을 것이다. 과거에는 자산관리와 투자자문은 은행의 PB와 증권사 지점에 가야만 제공받을 수 있었지만, 핀테크의 새로운 새로운 앱들은 자산관리와 투자자문 서비스를 보다 저렴하게 제공할 것이다.
3. 핀테크 산업이 성장 가능한 규제 환경
글로벌 수준에서는 이미 수 년에 걸쳐 핀테크 기업들이 활발하게 창업을 하고 혁신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추세가 자리잡았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올해 해외 소비자들이 국내 온라인 쇼핑몰에서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어렵다는 불만이 제기된 후에야 상품구매시 공인인증서 의무화를 폐지하고, 최근에 들어서야 다음카카오가 국내 14개 은행과의 제휴를 통해 ‘뱅크월렛 카카오’ 서비스를 출시하는 등 핀테크에 기반한 글로벌 차원의 금융업 혁신 추세 대응이 미흡한 실정이다.
금융규제로 세계적인 핀테크 기업은 하나도 없는 상황
글로벌 수준에서는 핀테크 기업들이 활발하게 창업을 하고 혁신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우리는 매우 뒤떨어져 있다. 국내에서 핀테크가 성장하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은 역시 금융 규제이다. 사실 우리 금융업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규제 강화 추세 속에 성장률이 떨어져서, 금융업의 성장률이 경제 성장률보다도 낮아지게 되었다. 금융업의 기초체력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글로벌 핀테크 기업들까지 우리 시장에 진출한다면 금융업은 앞으로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거대 플랫폼 기업들과 결제 기업들의 진출은 이미 시간 문제다. 또한 글로벌 핀테크 기업들은 자산관리와 투자자문 앱 등에서 경쟁력을 기르고 있는 반면, 우리 기업들은 규제로 인해 경쟁력은 커녕 창업의 기회도 가질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과도한 규제로 인해 IT 인프라와 IT 제조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세계 Fintech 100대 기업 가운데 우리 기업은 단 한 개도 없는 상황이다.
핀테크 발전의 걸림돌이 되는 금융 규제들은 금융실명제법상 비대면 본인인증 금지, 금융기관들의 공인증서 사용 강제 등이 대표적이다. 엄격한 금산분리, 개인정보 공유를 금지하는 개인정보 보호법 등도 핀테크의 발전을 제약하는 요인들이다. 이러한 규제들의 결과 선진국에서는 자유롭게 출현하는 핀테크 서비스가 국내에서는 불가능하다. 앞에서 언급한 Mint.com 과 같은 자산관리 앱은 우리나라 벤처들이 제공하고 싶어도 금융규제들로 인해 제공할 수 없다. 향후 자산관리 핀테크가 허용되고 외국 기업들의 진출이 허용된다면, 경쟁력 있는 외국기업들이 주도할 것이 뻔하다. 금융당국의 공인인증서 강요로 인해 결제산업이 경쟁력을 상실하고 페이팔과 같은 경쟁력 있는 결제기업이 성장하지 못하였는데, 자산관리와 투자자문 서비스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예상된다. 향후 자산관리 앱 시장이 크게 성장할 것으로 보이는데, 글로벌 기업들이 모두 성장한 다음에야 우리 금융당국이 규제를 완화한다면, 글로벌 기업들이 시장을 주도하고, 우리 기업들은 후발 주자의 어려운 처지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예측하기 어려운 금융규제
금융규제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사실 우리나라가 법률의 양만 놓고 볼 때 금융규제의 양이 다른 나라보다 과도한 것은 아니다. 미국은 금산분리, 일반인의 크라우드 펀딩 투자 금지 등 금융질서와 투자자보호를 위해 다른 나라보다 엄격한 금융규제를 유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미국은 전세계 금융산업과 핀테크를 선도하고 있다. 유럽과 일본이 크라우드 펀딩을 허용하고 금산분리를 채택하지 않고 있지만 미국보다 핀테크에 뒤지는 이유는 미국의 규제가 예측가능한 규제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규제가 복잡하기는 하지만, 명확하게 금지되지 않는 한 새로운 비즈니스가 허용되고 있다. 그 때문에 미국의 IT기업들과 금융기관들이 혁신적인 핀테크 산업을 리드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규제는 예측하기가 어렵다. 포괄적인 금지 규정도 많고, 법률상 근거 없이 자의적으로 규제하는 사례도 많으며, 심각한 금융 사고가 발생하면 금융기관의 책임을 종전보다 엄격하게 추궁하는 경우도 많다. 공인인증서의 경우 명확한 법률적 근거 없이 금융당국이 10여년간 강제했다가, 법률 개정 없이 올해 완화했다. 현재 온라인 구매를 할 때에는 공인인증서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지만 정작 금융기관은 의무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감독도 일관성이 없다. 2014년 카드사들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 때 개인정보절차를 위반한 금융기관을 과거와 달리 대표 해임으로 강력히 징계한 결과 신용카드사들은 전자결제업체들과의 카드 정보 공유에 소극적이게 되었다. 일관성 없는 규제로 인한 대표적인 부작용인 것이다. 페이팔, 알리페이와 같은 전자결제업체들이 예전부터 카드정보를 제공받아 사용하기 간편한 글로벌 결제기업으로 성장하였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정부의 불확실한 징계 때문에 성장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다.
선진국들, 금융규제의 비용편익 분석을 통해 비합리적 규제 폐지
핀테크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비합리적인 규제가 완화되고, 규제를 집행할 때에는 혁신적인 서비스가 출현할 수 있도록 일관성과 예측성이 있어야 한다. 규제완화와 규제의 일관성 모두 쉽지 않은 과제이지만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행정규제기본법상 규제개혁위원회는 규제의 비용편익분석을 통해 규제의 비용이 사회적인 편익보다 크다는 점을 입증한다면 규제를 폐지할 수 있다. 물론 규제의 비용편익 분석이 모든 입법을 결정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비용편익분석을 통해 비합리적인 규제를 줄여갈 여지가 많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규제 도입 시 비용편익분석 제도가 의무화되었지만, 제대로 활용되지 않고 있다.
선진국들은 비용편익분석을 통해 비합리적인 규제를 정비하는 것이 의무화되어 있다. 이는 핀테크와 같은 혁신적인 비즈니스 출현에 도움을 주면서도 투자자보호와 금융질서 유지와 같은 다른 목적도 동시에 달성할 수 있게 해 주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회는 2012년 크라우드 펀딩을 허용하는 법률, 이른바 JOBS 법(Jumpstart Our Business Startups)을 통과시켰지만, 미국 증권위원회는 일반인들의 투자는 당분간 금지하기로 결정했다. 그 이유는 일반 투자자들의 손실을 우려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비용편익분석 상 기업들에게 그리 큰 이득이 없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증권위원회는 기업이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10만 달러의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지불해야 할 비용이 자산실사 등 다양한 절차 준수 비용으로 최대 4만달러가 소요될 것이고, 결과적으로 기업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규제의 비용편익 분석은 나라마다 다르다. 예를 들어 영국 금융위원회(FCA)도 2014년 크라우드 펀딩 규정을 재정비하면서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업체의 추가 비용을 분석하였다. 추가 규제로 전체비용에 비해 증가하는 부분이, 소규모 플랫폼 업체의 경우에는 초기에 4%, 그 이후에는 연간 4%가 비용이 증가할 것으로 보았고, 대형 플랫폼 업체는 초기에 2%, 그 이후에는 연간 3%의 비용이 증가할 것으로 보았다. 영국은 이러한 비용이 과도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여 크라우드 펀딩 산업을 육성하면서 일부 규정을 재정비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미국과 영국의 사례를 보면 비용편익분석이 각국의 경제환경과 제도적 차이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지만, 이러한 절차를 통해 비합리적인 규제가 도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무조건적인 규제 완화가 아니라 비합리적인 규제의 폐지를 통한 경쟁력 제고가 목표인 것이다.
각국마다 핀테크 산업을 어디까지 허용할 지는 투자자 보호와 금융기관 건전성 등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하여 다르게 판단하고 있지만, 비합리적인 규제를 폐지하는데 노력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규제의 비용편익 분석이 형식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앞으로는 금융당국이 비용편익을 중요한 절차라고 인식하여 비합리적인 규제를 정비하는데 노력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비조치 의견서 제도(No action letter), 규제의 예측성에 기여
또한 금융감독의 예측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비조치 의견서 제도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비조치 의견서는 금융기관이 특정 사업이 합법인지에 대해 감독당국에 질의하면 감독당국이 합법 여부를 결정하는 제도이며, 여기서 허용한 것은 추후 감독당국이 징계하지 못한다. 선진국에서는 혁신적인 비즈니스를 시도할 때, 비조치 의견서를 통해 합법성을 보장받을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비조치 의견서 제도가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 2001년 이후 14년간 비조치 의견서는 고작 12건만이 발급되었으며, 올해는 한 건도 발급되지 않았다.
반면 미국에서는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다. 미국의 증권감독을 담당하는 증권위원회(SEC)와 선물위원회(CFTC)는 2014년에만도 각각 59건, 76건을 발급하였으며, 2011년 설립된 금융소비자 보호국(CFPB)도 금융혁신을 위해 비조치 의견서를 발급할 계획이다. 지난 100여년간 금융감독기관들이 발급한 수많은 비조치의견서는 규제의 예측력을 높이는 역할을 하였다. 대표적으로 미국 증권위원회는 앞에서 언급한 크라우드 펀딩 허용 법률이 2012년 통과되자 일반인의 투자는 금지했지만, 전문투자자들에 한해 크라우드 펀딩에 투자하는 것을 허용하는 비조치 의견서를 발급하였다. 이러한 비조치 의견서로 인해 전문투자자들이 크라우드 펀딩에 적극 투자하여, 세계에서 미국기업의 크라우드 펀딩 점유율이 가장 높아지게 되었다. 호주 역시 ASIC에서 많은 비조치의견서를 발급해 주고 있다. 이처럼 비조치 의견서는 금융업의 혁신을 위한 중요한 의미를 가지지만 지금까지 우리 금융기관들은 섣불리 발급을 청구하지 못하였다.
4. 맺음말
핀테크에 대한 관심의 증가로 우리나라의 금융 시스템과 금융 제도에 대한 개혁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다양한 사업자들의 기술적 진보를 금융권에도 적극 활용하여 효율성과 소비자가치를 증대시키기 위해서는 금융규제의 예측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사업자들의 신규사업 기획 시 제도적으로 사업이 가능한 영역을 분명하게 인지할 수 있도록, 그리고 불확실한 부분은 규제 기관과의 논의를 통해 확실한 대답을 들을 수 있도록 규제 적용의 일관성을 확보하고 기업 및 기관 대상 규제검증 프로세스를 양성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공인인증서 사례에서 보듯 국내 금융 관련제도의 변화 속도와 기술 및 소비자 행동의 변화 속도 간 시간 격차가 확대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투자자문 앱, 온라인 대출시장, 크라우드 펀딩 등 빠르게 성장하는 핀테크 서비스들이 우리나라에서는 금융규제로 인해 아예 시도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최근 금융감독원이 핀테크 상담지원센터를 만들어서 규제 개혁을 지원하기로 하는 등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다만 보다 근본적으로 과거의 비합리적인 규제 관행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성장한 뒤에 규제를 완화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규제 비용과 소비자 효용을 감안하여 개선이 필요한 우선 영역을 선정하고, 이를 통한 제도 개선을 본격화해야 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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