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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경제연구원 '전자금융이 쌓아 온 금융아성, 핀테크가 뒤흔든다'

핀테크가 금융권의 최대 화두다. 전세계적으로 자금과 인재가 핀테크로 몰리며 금융혁신에 속도가 붙고 있다. 국내에서는 상대적으로 뒤늦게 전자결제를 중심으로 논의가 시작되었으나 핀테크의 영역은 지급결제, 예금과 대출 등 자금중개, 자산운용, 위험관리, 신용정보관리 등 기존의 금융서비스 영역 중 미치지 않는 것이 없다. 핀테크는 기존의 전자금융과는 다르다. 전자금융이 현재의 금융시스템을 발전시켜 온 지속적 혁신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면, 핀테크는 기존의 금융업 가치사슬을 뒤바꿀 수 있는 파괴적 혁신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핀테크 스타트업은 금융의 본질이 정보란 것을 파악하고 소프트웨어를 무기로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금융서비스(banking)를 금융업(bank)에서 분리하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위기 의식을 느낀 글로벌 은행들은 핀테크의 파괴적 혁신 가능성을 직시하기 시작하고 있다. 

핀테크가 만들어낸 흐름은 금융업의 기능과 특징을 크게 바꿀 것으로 보인다. 지급결제 기능은 디지털시대의 ID로 통합되어 자리매김해 나갈 것이다. 자금중개는 플랫폼이 대신 수행하면서 금융업의 큰 변화를 야기할 것으로 보인다. 위험관리와 정보관리는 소셜 네트워크와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알고리즘이 처리해 나갈 것이다. 핀테크의 성장은 금융업의 망산업적 특색을 바꾸고, 금융회사와 비금융회사의 경계도 달라지면서 규제 변화의 필요성을 높일 것이다. 법을 통해서 확보되던 신뢰는 기술로 대체되고, 돈보다는 정보가 중요해질 것이다. 

핀테크가 불러온 변화는 금융회사에게 새로운 생존방식을 요구하는 것이다. 디지털 혁명이 와해시켰던 이전의 산업들을 되새겨보고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디지털 경제에 맞는 새로운 규제 체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규제 당국의 자의적인 재량권이 행사되던 그림자 규제 관행, 산업의 성장을 막는 규제 회색지대 등 불투명한 규제는 적극적으로 개선해 나가야 한다. 혁신적인 시도가 장려될 수 있도록 사전적 규제는 과감히 완화하고 사후적 규제에 자원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핀테크로 인한 혁신이 건전하게 발현될 수 있도록 소비자 보호 및 통화정책 유효성 개선을 위한 노력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 목 차 > 

1. 새로운 변화의 물결
2. 핀테크 현상이 던지는 의미
3. 금융의 Unbundling(분해)
4. 파괴적 혁신이 가능한 규제환경 돼야
 
  

금융과 ICT(정보통신기술)의 융합을 의미하는 핀테크가 금융권의 최대 화두다. 전세계에서 금융 전 분야에 걸쳐 핀테크 스타트업이 활발히 생겨나고 있으며, 자금과 인재도 핀테크로 몰리고 있다. 벤처 전문 조사회사 Venture Scanner에 따르면 2015년 6월 9일 현재, 전세계 53개국에서 1,141개 핀테크 기업이 결제, 개인금융, 기업금융, 자산운용, 해외송금, 보험 등 금융업 전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2014년 핀테크에 투자된 자금은 122.1억 달러로 2013년 40.5억 달러에 비해 3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 전체 벤처투자 증가율 63%를 크게 상회하는 빠른 속도다. 성공적으로 상장(IPO)한 핀테크 기업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로렌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이 이사회에 합류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던 P2P 대출업체 렌딩 클럽(Lending Club)은 2014년 12월 14일 뉴욕증시에 상장하면서 8억 7000만 달러를 조달하였다. 이어서 12월 17일에는 소상공인을 주 고객으로 하는 온라인 대출업체 온덱(OnDeck)이 상장하면서 2억 달러를 조달하는데 성공했다. 렌딩 클럽은 2014년 미 증시에 상장한 기업 중 알리바바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기업공개 규모를 기록하였고, 온덱은 여섯 번째에 해당하는 대규모 기업공개였다.
우리나라는 주요국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뒤늦은 시기인 지난해 3월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대통령의 ‘천송이 코트’ 발언으로 ActiveX와 공인인증서를 비롯한 전자결제 분야 규제 문제가 거론되면서 핀테크가 관심 대상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이후 9월 미국 나스닥 사상 최대의 공모금액으로 주목을 받은 알리바바의 금융서비스인 알리페이(Alipay)가 혁신적 금융서비스로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어서 금융위원회를 필두로 하여 정부가 대대적인 핀테크 육성 정책에 나서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보다 앞서서 핀테크가 부상된 해외와는 달리 국내에서의 핀테크 논의는 간편결제, 인터넷전문은행 등의 특정 전자금융 이슈에 집중된 면이 없지 않아 보인다. 간편결제를 힘들게 했던 ActiveX와 공인인증서 논란은 10년이 다 되어가는 이슈이고, 인터넷전문은행은 2001년 논의된 이후 3번째 부각된 이슈다. 해외의 핀테크 논의 흐름과는 다소 이질적인 형국이다. 본고에서는 금융의 본질과 ICT와 금융 혁신의 관계에 대해서 살펴보고, 핀테크의 부상 배경과 의미에 대해서 논의해 본다. 특히, 핀테크(Fintech)가 기존의 전자금융(Electronic Banking)과 어떠한 맥락에서 구별될 수 있는지 살펴봄으로써 금융과 금융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를 가늠해 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핀테크 현상이 우리나라 금융산업과 금융정책에 주는 시사점에 대해서 살펴 본다. 
  

1. 새로운 변화의 물결 
  

정보통신기술과 동반 발전해 온 금융업 

금융(金融)이란 사전적으로 경제주체 간의 자금 융통을 의미한다. 즉, 자금이 남는 경제주체에서 자금이 부족한 경제주체로 화폐(구매력)를 이전하는 것이다. 금융업은 효율적인 자금 융통을 위한 정보수집 및 처리 수단으로서 이미 어느 산업보다 ICT를 적극적으로 도입해왔다. 이미 핀테크가 알려지기 전부터 금융 IT, 스마트금융 등으로 불린 전자금융(Electronic Banking), 금융공학(Financial Engineering), 기술금융(Technology Financing) 등 ICT와 금융이 융합된 금융서비스들이 존재했고, 현재에도 일상적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은행의 인터넷뱅킹, 증권사의 HTS(홈트레이딩시스템), 보험사의 다이렉트자동차보험, 카드사의 후불교통카드 등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다. 90년대 후반 이후 상당기간 인터넷 강국으로 자리매김 해온 우리나라는 전자금융에 있어서 선도적인 입지를 다져온 것으로 평가된다(<그림 1, 2> 참조). 

그렇다면 최근의 핀테크 열풍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금융과 ICT가 결합된 전자금융이 엄연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핀테크가 부상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편, 최근에야 인터넷전문은행을 출범시킨 중국이 핀테크에서 앞서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모바일 인터넷의 확산에 의한 새로운 변화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핀테크 부상을 이끈 공통적인 배경은 ‘디지털 혁명’으로 요약할 수 있다.  전례 없는 빠른 속도로 보급된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하는 디지털 혁신 환경은 핀테크가 전세계적으로 부상하게 된 핵심적인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2007년 아이폰 출시 이후 새롭게 전개된 모바일 인터넷 시대는 이전과는 또 다른 차원의 디지털 혁신 환경을 조성하였다. 소비자 대부분의 손에 들린 고성능 모바일 기기가 광대역 인터넷 망으로 24시간 연결된 오늘날의 모바일 인터넷 환경은 새로운 디지털 혁명의 패러다임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이러한 환경 변화의 본질적 속성은 실리콘 밸리의 대표적 벤처투자가 마크 앤드리슨이 2011년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글에서 언급한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집어삼키고 있다(Software is eating the world)"라는 말에 잘 녹아있다. 그는 정보통신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정보처리비용이 극적으로 낮아지고, 전세계가 인터넷으로 연결됨에 따라 물리적 인프라 구축이나 인력 충원 없이 소프트웨어를 통해서 기존의 비즈니스가 대체되고 있음을 주장하였다. 도서 산업에서의 아마존, 유료방송산업에서의 넷플릭스, 음반산업에서의 애플 아이튠즈와 스포티파이 등을 예로 들면서 금융도 그러한 트렌드에서 예외일 수 없음을 강조하였다. 

핀테크를 이끈 디지털 혁명의 기저에는 모바일, 소셜, 클라우드, 빅데이터 등 4가지 중요한 기술이 자리하고 있다. 모바일 기기를 접점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고, 컨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소셜 네트워크 환경이 만들어졌다.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서 쏟아지는 막대한 데이터는 빅데이터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데이터의 수집과 분석은 클라우드 컴퓨팅 환경을 통해서 저렴한 비용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서로 상호 보완적인 이 4가지 기술은 각기 융합되어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리서치 업체 Gartner가 ‘The Nexus of Forces’라고 명명한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 디지털 혁명을 이끄는 중요한 동인이다. 

금융서비스와 금융업의 분리가 가능한 기술환경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은행서비스이지 은행이 아니다” 

인터넷이 막 태동하던 1994년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는 오늘날까지 인용되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인터넷의 부상으로 은행을 방문해야만 가능했던 은행업무가 온라인으로 수행될 수 있음을 직시하고 강조하면서 했던 말이었다. 빌 게이츠의 예언은 인터넷 초창기에는 본격적으로 실현되지 못하다가 모바일 인터넷 시대가 열린 최근에 와서 핀테크라는 현상으로 실현되고 있다. 디지털 혁명이 핀테크의 동인으로 부각하게 된 것도 기본적으로 금융서비스(‘banking’)와 금융회사(‘bank’)를 분리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기존 금융업이 막대한 투자로 유지하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대한 부담 없이도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은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핀테크에 진출하고 있는 중요한 배경이다. 단적인 예로 전국 각지에 뻗어있는 지점망을 보유한 금융회사와 이들 금융회사를 연결시키는 금융인프라를 거치지 않더라도 앱스토어를 통해서 금융 소프트웨어를 설치하면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고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다. 개인과 기업간에 언제든 연결할 수 있는 모바일 기기와 클라우드 기술의 발전으로 막대한 물리적 자산에 대한 투자를 대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단순히 인터넷 뱅킹에서 진화한 모바일 뱅킹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아프리카 케냐의 M-Pesa 사례처럼 금융 인프라가 미흡한 상황에서도 이러한 투자를 건너뛰고 이동통신 인프라를 통해서 지급결제, 송금 등의 기본적인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것이다. 

한편, 소셜 네트워크와 빅데이터는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금융업의 중요 역할인 정보 비대칭성 완화를 보다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인터넷 쇼핑몰이 고객을 분석하여 상품을 추천하는 것에서부터 최근에는 신문기사 작성까지 알고리즘이 대신 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면서 금융업도 알고리즘이 대신할 영역이 많아지고 있다. 막대한 자금에 대한 투자여력이 있어야 가능했던 금융업에 대한 진입장벽이 디지털 혁명으로 말미암아 보다 낮아졌음을 의미한다. 고객접점을 확보하고 있는 SNS, 모바일 메신저, 전자상거래 등의 플랫폼 업체들이 은행의 주요 경쟁자로 부각된 배경도 마찬가지다. 

금융위기 이후 대안적 금융서비스의 수요 증가 

핀테크의 부상은 금융위기 이후 일어난 중요한 경제환경 변화인 저성장, 저금리, 금융규제 강화 등을 포괄하는 ‘뉴 노멀(New Normal)’의 영향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위기 이후 전세계적으로 진행된 디레버리징 과정에서 저성장,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되고, 금융회사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서 담보가 부족하거나 신용도가 낮은 가계나 중소기업은 금융회사를 통한 자금 조달이 더욱 어려워 졌다. 기존 금융회사에 대한 접근이 어려운 자금 수요자들이 존재하는 가운데 '대마불사' 논란, 금융시장 조작 스캔들 등으로 기존 금융회사에 대한 불신이 높아짐에 따라 대안적인 금융수단에 대한 소비자의 욕구가 커지게 되었다. 

미국의 혁신형 창업 생태계와 규제의 변화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대표적으로 애플의 전 CEO 이름을 본따 일명 '잡스법'이라고 불리는 창업지원법(Jumpstart Our Business Startups Acts)은 기업공개(IPO) 절차와 규제를 간소화하고 크라우드펀딩을 전격적으로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담고 있다. 벤처 투자 생태계 활성화를 통해서 핀테크를 비롯한 다양한 스타트업들이 투자를 받을 수 있는 환경 조성을 목적으로 제정된 법안이었다. 특히, 법안 입안시 가장 논란이 되었던 지분투자형 크라우드 펀딩은 소비자 보호 문제 등으로 2012년 4월 법안 발효 이후 여전히 적격투자자(accredited investor)에게만 제한적으로 허용되고 있으나, 크라우드 펀딩, P2P 대출과 같은 대안적인 금융수단에 대한 전세계적 관심을 환기시킨 효과가 있었다. 미국의 잡스법 시행 이후 영국, 이탈리아, 일본 등 세계 주요국도 법개정을 통해서 크라우드 펀딩 활성화에 동참하였다. 

영국과 중국, 정부의 적극적 지원 

소비자의 수요에 부응하여 나온 각국 정부의 적극적인 육성 정책도 핀테크 바람을 확산 시킨 중요한 동인이다. 금융이 대표적인 규제산업인 만큼 규제당국의 입장에 따라서 기업가 정신의 발현 여부와 투자가 크게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은 정부 차원에서 핀테크를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채택하여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런던의 중심지에 실리콘 밸리를 표방하며 추진한 기술 창업기업 클러스터인 테크시티와 런던의 세계적 수준의 금융경쟁력을 바탕으로 핀테크 산업이 급성장하고 있다. Accenture에 따르면, 2008~2014년간 런던의 핀테크 관련 누적투자 성장률이 74%로 실리콘 밸리와 뉴욕을 제치고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에 힘입어 런던 소재의 대형 금융회사가 핀테크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와 제휴를 확대하는 것도 중요한 성장 배경으로 지적된다. 

중국은 기존 국영은행 중심의 금융체제를 혁신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핀테크를 전향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최근 텐센트의 인터넷전문은행 ‘위뱅크’의 출범 기념 행사에 참석한 리커창 총리는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류한 닐 암스트롱의 명언을 인용하여 “위뱅크는 작은 걸음이나 금융개혁에는 거대한 발자취가 남을 것이다.”라고 발언함으로써 ICT를 통한 금융혁신의 강한 의지를 드러내기도 하였다. 중국은 선진국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낙후된 금융인프라를 모바일 인터넷을 통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소위 ‘퀀텀 점프’하는 양상으로 혁신하고 있다. 알리바바를 필두로 텐센트, 바이두 등 주요 ICT 기업의 금융업 진출을 적극적으로 장려함으로써 기존 금융회사가 충족시키지 못하는 소비자들의 금융서비스 수요를 충족시키고 있다. 기존 금융업의 레거시가 존재하는 선진국에 비해서 오히려 빠른 혁신 속도를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선진국에 비해서 현저히 낮은 중국의 신용카드 보급률은 전자지급결제 발전의 걸림돌이 아니라 글로벌 최대 결제 플랫폼으로 성장한 '알리페이'가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출시 1년도 안되어 중국 최대의 MMF로 성장한 알리바바의 온라인 금융상품 위어바오는 알리페이의 고객 기반을 바탕으로 예금 금리 규제를 우회하는 대안적인 투자상품 수요를 충족시킴으로써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2. 핀테크 현상이 던지는 의미 
  

‘전통적 핀테크’와 ‘신흥 핀테크’ 

금융과 정보통신기술의 융합이 공통적인 배경인 전자금융과 핀테크는 개념적으로 어떻게 구분해 볼 수 있을까? 둘의 구분은 핀테크의 정의를 보다 명확히 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뉴 노멀과 규제 환경, 디지털 혁명 등 금융위기 이후 특정한 수요와 공급조건의 변화 속에서 부상한 핀테크는 인터넷이 부상하던 시기부터 존재하던 전자금융(Electronic Banking)과는 분명히 맥락을 달리하는 개념이다. 

핀테크 육성을 담당하고 있는 영국 무역투자청이 Ernst & Young에 의뢰하여 작성한 핀테크 보고서는 ‘핀테크’를 전통적 핀테크(Traditional Fintech)와 신흥 핀테크(Emergent Fintech)로 구분하였다. 둘의 가장 큰 차이점은 전자는 기존 금융서비스의 가치사슬상에 포함되어 서비스의 효율을 높이는 조성자(facilitator)로서 포지셔닝하는 반면 후자는 기존 금융서비스 전달체계를 와해시킬 수 있는 파괴자(disruptor)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 전자금융이 바로 전통적 핀테크 기업에 의해서 지원되고 있다고 할 수 있고, 후자는 현재 부상하고 있는 핀테크라고 할 수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전자금융을 "전자적 채널을 통하여 금융상품 및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정의하는데, 전통적 핀테크는 금융회사의 가치사슬 상에 포함되어 금융업무가 ICT를 통해서 자동화되고, 효율화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금융회사의 금융 인프라 지원 성격이 강한 것이다. 전자금융의 대표적 형태인 인터넷 뱅킹은 IT솔루션 기업, 보안회사 등의 지원을 통해서 은행 지점 업무를 온라인화 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전자금융은 금융회사가 가치사슬의 핵심에 위치하고, ICT기업은 이를 후방에서 지원하는 역할에만 그친다. 금융거래의 흐름도 기존 지점을 통한 업무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기존의 가치사슬을 와해시킬 수 있는 혁신 

반면에 핀테크는 기존 가치사슬을 와해시킬 수 있다는 점이 두드러진 특징이다. 핀테크 기업은 금융회사의 솔루션 역할을 벗어나 고객과 직접 소통함으로써 금융업 가치사슬의 핵심을 담당할 잠재력을 가진다. 반면, 금융회사는 핀테크 기업의 금융서비스 제공을 위한 보조적인 역할에 그치는 양상을 나타낸다. 예를 들어, Zopa와 같은 P2P 대출 플랫폼은 투자자와 대출자의 매칭은 플랫폼이 수행하고, 은행은 자금을 이체하거나 수탁하는 역할에 그치게 된다. 스마트폰의 부상으로 이동통신회사들이 단순히 인프라의 역할에 그치는 ‘Dumb Pipe’가 되는 것을 걱정했던 것처럼 고객의 접점이 모바일 기기에 쏠림에 따라 핵심 가치사슬은 앱을 제공하는 소프트웨어 기업이 담당하고, 금융회사는 금융거래의 후방에서 보조적인 업무만을 담당한다. 때로는 기존 금융인프라 전체를 거치지 않고 금융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할 수도 있다. 은행이나 금융망은 물론이고 중앙은행과 SWIFT망 등을 거치지 않더라도 인터넷을 통해서 전세계 개인간 금융거래를 가능케 한 비트코인은 기존 금융 인프라를 대체하는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핀테크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특징과 기존 연구들을 반영하여 핀테크의 정의를 내리면, ‘기술을 핵심 요소로 하는 금융서비스 혁신’이라고 할 수 있다. 핀테크에서 기술은 모바일, 소셜, 클라우드, 빅데이터 등은 물론이고, 서서히 현실화되고 있는 IoT(사물인터넷), VR(가상현실) 등 다양한 ICT 기술을 포괄한다. 기술이 금융서비스를 새로운 방식으로 개선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주요 주체는 창의적 아이디어를 보유한 스타트업이 되겠지만, 기존 금융회사도 새로운 시도와 변화를 통해서 혁신의 주체가 될 수 있다. 

주체와 역할, 포지셔닝 등에서 핀테크가 전자금융과 구분되는 지점이 많다. 그러나 여전히 정의에 대해서는 정확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사전적인 정의에 집착하여 핀테크 기업이나 영역을 사전에 예단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기존의 금융업에서 수행하거나 법에서 규정하지 않았던 현상이 디지털 혁명을 배경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신용카드는 65년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현재는 존재하지 않거나 정의하기 힘든 현상이지만, 기술을 통해서 기존 금융서비스를 혁신함으로써 우리의 일상을 편리하게 해줄 수 있는 아이디어들이 핀테크라는 현상으로 현실화되고 있다. 

지속적 혁신 vs 파괴적 혁신 

클레이튼 크리스텐슨(Clayton Christensen) 교수는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와 이것이 경제 성장 동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이론을 바탕으로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이라는 개념을 소개하였다. 제품을 고도화 시켜 기존 주류시장을 만족시키는 기술 개선을 지속적 혁신(sustaining innovation)이라고 한 반면, 새로운 방식의 기술을 통해서 시장을 창출하여 지속적 혁신이 주류를 장악하고 있는 기존 시장을 대체하는 것이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이라고 정의하였다. 그의 저서 ‘혁신 기업의 딜레마(The Innovator’s Dilemma)’에서 성공한 기업이 과거의 성공 방식을 답습하는 동안 혁신 기업은 이들을 추월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고, 이것이 결국 새로운 경쟁환경에서 혁신 기업이 우위를 가지게 되는 배경이 됨을 주장하였다. 

크리스텐슨 교수의 지적은 모바일 인터넷 시대의 도래로 인한 디지털 혁명이 금융업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 핀테크를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 지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전자금융이 지점을 통한 대면 거래를 온라인화 시킨 지속적 혁신이라면, 핀테크는 기존 비즈니스 모델이나 가치사슬의 일부가 아니라 전체를 완전히 대체하거나 재조직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혁신 기업의 딜레마, 즉, ‘올바른 일을 하는 것이 곧 잘못된 일이다’라는 것이 되는 역설을 피하기 위해서는 핀테크가 금융업에 미치는 파괴적 속성에 대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금융권, 상황을 직시하기 시작 

핀테크 현상에 대한 주요 기관의 평가 역시 대체로 파괴적 혁신으로 수렴한다. 골드만 삭스는 핀테크의 부상이 새로운 형태의 그림자 금융(Shadow Banking)이 부상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기존의 그림자 금융이 은행을 위시한 전통적인 금융중개기관을 우회하여 자금을 중개하는 것이었다면, 새로운 그림자 금융은 P2P 대출이나 크라우드 펀딩처럼 비금융회사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2014년 기준으로 미국 전체 은행 이익의 7%에 해당하는 110억 달러의 이익이 기존 은행으로부터 핀테크 기업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추정하였다. 도이체방크는 핀테크를 금융업에서의 디지털 혁명으로 정의하고, 인터넷 기업이 금융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하여 산업을 구조적으로 바꿀 것으로 전망하였다. 미국 최대은행 제이피 모건 체이스의 CEO Jamie Dimon은 최근 주주에 보낸 서한에서 "실리콘 밸리가 몰려온다(Slilcon Valley is comming)"는 표현을 통해서 핀테크 기업의 금융업 진출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내었다. 반면에, 크레딧 스위스의 회장 Urs Rohner는 핀테크 기업이 기존 금융업의 백오피스를 혁신하는데 도움을 줌으로써 핀테크 기업이 파괴(disruption)가 아니라 건설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하였다. PwC는 은행이 디지털을 비즈니스의 핵심으로 삼고 있는 과정이라고 표현하였고, 맥킨지는 디지털로 가는 것이 은행의 생사를 가르는 문제라고 표현하며 핀테크에 대한 대응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영란은행은 현재의 디지털 혁명을 근본적인 변화(fundamental changes)로 인식하고 중앙은행 차원의 대응책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제기하였다. 또한, 중앙은행이 디지털 화폐를 발행하면 어떻게 될지를 중요한 연구주제로 제시하며 핀테크 현상에 대해서 매우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한국은행 이주열 총재는 2015년 1월 신년사에서 비금융기업들의 금융 진출 확대로 인한 탈중개화가 돌이킬 수 없는 큰 흐름임을 지적하고, 디지털 혁명에 적응하지 못하여 도태한 노키아 사례를 언급하며 대응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3. 금융의 Unbundling(분해) 
  

Unbundling의 시작 

“돈에 대한 정보는 돈 그 자체만큼이나 중요해졌다.” 

폴 볼커 전 연준의장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금융혁신이라 칭송했던 ATM을 최초로 소개한 前 씨티은행 회장 월터 리스턴(Walter Wriston)은 금융업에 있어서 정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위와 같이 표현하였다. 그는 금융업의 본질이 정보라는 것을 직시하고 정보사회의 도래가 금융업을 크게 바꿀 것임을 전망하였다.
월가를 대표하는 은행가의 직관을 실리콘 밸리의 대표 벤처투자자인 마크 앤드리슨은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그는 2014년 10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금융 거래는 정보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였다.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삼키고 있다는 주장의 연장선에서 금융거래가 ICT기업에 의해서 처리될 경우 새로운 방식으로 재탄생할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그의 이런 시각은 핀테크 기업이 금융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대변하고 있다. 

‘Unbundling of a Bank’는 핀테크가 금융업을 어떻게 바꾸어 나갈 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이다. 은행의 인터넷 웹사이트에서 제공하고 있는 거의 모든 금융서비스들에 대응하는 핀테크 스타트업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들이 은행의 영역을 하나하나 혁신하면서 은행서비스를 분해(unbundling)해 나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은행의 전통적인 서비스들, 예컨대, 예금, 대출, 결제, 송금 등 각 서비스들은 핀테크 스타트업이 만들어내는 앱(모바일 결제, 송금 등)과 소셜 비즈니스 모델(P2P 대출, Crowdfunding 등)을 통해서 분해되어 일상재화(commoditized)될 것임을 예견하고 있다. 

현재 시점에서 수백 년간 검증된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서 운영되고 있는 은행이 인적, 물적 자산의 규모나 영업능력 등에서 비교할 만한 수준도 되지 않는 신생기업들에 의해서 순식간에 도태된다는 것이 아니다. 초기에는 틈새(niche) 시장에서 시작하여 은행의 금융서비스들이 조금씩 잠식당해 갈 수 있다는 의미이다. 보수적인 조직으로 정평 나있는 은행의 부서가 만들어내는 금융서비스와 모바일 인터넷 시대를 지렛대 삼아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핀테크 서비스의 대결에서 종래에는 후자가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빌 게이츠가 예언했던 금융과 금융회사 분리의 구체적인 양상이다. 은행서비스는 계속되지만, 그것을 제공하는 오늘날의 은행은 완전히 새로운 핀테크 기업들이 대신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의 미래의 모습은? 

‘Unbundling of a Bank’는 <표 2>와 같이 금융의 기능별로 재구성 해볼 수 있다. 오늘날에는 금융 겸업화의 흐름 속에서 은행을 중심으로 대부분의 금융기능이 통합되기는 하였지만, 이러한 기능에 따라서 은행, 금융투자, 보험, 카드 등의 금융업권으로 분류할 수 있다. 금융기능별로 다양한 핀테크 기업들이 나타나고 있다. 기존 금융회사에 비해서 매우 낮은 수준의 고정비를 부담하면서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는 핀테크 기업의 수익모델은 기존 금융회사의 수익하락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러한 압력이 점차 현실화됨에 따라 기존 금융회사는 핀테크 현상에 대해서 크게 다음과 같은 4가지 선택으로 대응하고 있다(<표 3> 참조). (1)조인트 벤처(협업), (2)M&A, (3)벤처 육성, (4)자체 서비스 출시. 어떠한 선택이 되었든 새로운 경쟁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금융회사들의 선택은 금융업을 바꾸는 또 다른 요인이 될 것이다. 

● 지급결제, ID와 통합된다 

오늘날 우리가 소지하고 있는 형태의 지갑이 나온 것은 최초의 현대적 중앙은행인 스톡홀름 은행이 지폐를 발행하기 시작한 17세기 중반부터다. 이전까지 무거운 금으로 발행하던 화폐가 종이로 발행되면서 지갑이 얇아지게 된 것이다. 오늘날 지갑에는 지폐는 점점 사라지고 있고,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멤버십카드, 할인쿠폰 등의 ID카드, 신용카드, 체크카드 등의 지급카드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스마트폰이 보급된 현재는 물리적 카드들이 점점 소프트웨어로 대체되고 있으며, 웨어러블 디바이스, IoT가 확산되면 결국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ID카드와 신용카드가 함께 사라진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일까? 물리적 증표가 아닌 소프트웨어로 본인임을 증명한다는 것은 디지털 공간의 금고를 열수 있는 권한을 획득하는 것, 즉, 신용카드와 같은 지급수단을 통해서 화폐적 가치를 이전시키는 것과 동일해 진다. 현실 세계에서 신분증의 사진, 주민번호 등을 통해서 개인의 존재를 확인시켜 주었다면, 물리적 증표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는 생체인식(Biometrics)과 같은 기술을 통한 대안적 본인인증 절차가 디지털 세계와 현실 세계의 개인을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지급결제에 대한 권한을 관리하게 된다. 최근 금융당국의 유권해석 변경으로 기존의 대면확인, 공인인증서 이용 등으로 기술적 다양성을 제한하던 본인인증 방식이 대안적인 방식으로 대체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것은 늦었지만, 환영할만한 변화다. 기존의 천편일률적인 인증방식을 대체하면서도 편의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향상시킨 인증 방식들이 나올 것이다. 최근 출시한 애플페이의 지문인식 기능, 알리페이의 안면인식 기능 등과 같이 다양한 시도들이 경쟁하면서 디지털 시대의 소프트웨어화된 ID로서 자리매김해 나갈 것이다. 

● 자금중개는 플랫폼이 대신 - P2P 대출, 크라우드 펀딩 

자금중개는 투자자(흑자주체)와 대출자(적자주체)가 원하는 자금규모, 이자율, 대출기간, 상환방법, 부채 혹은 지분 여부 등 다양한 조건이 일치할 경우 성립할 수 있다.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는 대기업의 경우 금융시장을 통해서 직접 유가증권을 발행하여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지만, 일반적으로 가계나 중소기업은 요구조건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금융기관을 통하는 간접금융으로 자금을 조달한다. 대표적인 간접금융 수단인 예금과 대출은 은행의 자산변환기능을 통해서 자금을 공급해왔다. 즉, ‘다수의 소규모 자금을 모집한 뒤 이를 만기, 금액, 위험 측면에서 특성을 변환시켜 자금을 공급’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거래비용을 줄이고 원활한 자금중개가 가능할 수 있었고, 은행은 예대마진을 통해서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투자자와 대출자의 다양한 조건을 저렴한 비용으로 매칭시킬 수가 있다면 가계나 중소기업도 직접금융을 통해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정보수집과 처리의 비용이 비약적으로 감소함에 따라 플랫폼이 금융에서의 매칭을 대신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우버(Uber)와 같은 주문형 서비스가 드라이버와 승객을 필요한 시간, 거리, 요금에 맞추어 매칭을 시키는 것과 같이 P2P 대출 플랫폼,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이 이러한 역할을 대신 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은행이나 금융투자회사의 간접금융기능이 온라인 금융 플랫폼에 의해서 대체되고 있는 것이다. 

기존 금융회사에 비해서 고정비 부담이 낮을뿐더러 예금보험, 자본 규제 등 금융 규제가 적용되지 않음으로써 발생한 규제차익으로 경쟁력 있는 자금중개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다. 한편, KickStarter와 같은 후원형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은 단순히 자금중개뿐만 아니라 창업 지원, 제품 및 서비스의 홍보 등 부가적인 기능까지 수행함으로써 플랫폼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있다. 크라우드 펀딩 시장은 2009년부터 2015년까지 연평균 100% 이상 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러한 추세는 올해에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과 같이 대안적인 금융 플랫폼은 크게 두가지 측면의 변화를 이끌 수 있다. 먼저, 기존 금융회사의 간접금융 기능을 대체함으로써 그림자 금융의 확대를 초래할 수 있다.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파급경로가 구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고객 중심의 자금중개 서비스가 공급될 수 있다. 전통적으로 간접금융은 은행이나 금융투자회사가 만드는 예금, 펀드 등의 상품이 지점망 등을 통해서 고객에게 판매된다. 소품종 대량생산을 통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는 것이 주요 수익 기반이다. 반면에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은 고객에 맞추어 금융상품이 천자만별로 달라질 수 있다. 투자자든 대출자든 원하는 조건에 따라 매칭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Zopa와 같은 P2P 대출 플랫폼은 상품명이 고객명으로 정해진다. 금융업이 공급자 주도에서 소비자 주도로 바뀐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 위험관리와 정보관리는 알고리즘이 대신한다 

대출심사, 자산운용, 보험인수 심사 등 Pricing업무는 대표적인 위험관리와 정보관리의 영역이다. 이러한 기능들은 알고리즘에 의해서 대신 수행될 것으로 보인다. 소셜 네트워크 등이 만들어내는 막대한 데이터를 빅데이터로 분석한 정보가 기존의 금융 전문 인력들이 처리한 정보보다 비용이 저렴하고 정확도가 높다면 알고리즘이 기존 업무를 대신할 수가 있다. 이미 투자분야에서는 알고리즘 트레이딩이 매우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데, 은행의 여신담당자나 보험사의 언더라이터(인수 심사 담당자) 등의 업무에도 알고리즘이 도입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모벤의 크레드스코어(CREDScore)는 페이스북, 트위터, 링크드인 등의 다양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서 개인의 소셜 영향력을 가늠하고 신용등급을 매기고 있다. 자산관리 및 대출심사는 Wealthfront, OnDeck 등의 핀테크 기업이 두각을 내고 있다. 

달라질 금융업의 특성 

산업으로서 금융업은 망산업, 규제산업, 신뢰산업, 정보산업이라는 특징을 가진다. 핀테크는 이러한 금융업의 산업적 특징을 바꿀 것으로 보인다. 금융업은 대표적인 망산업(network industry)으로서 네트워크로 연결된 지점과 금융회사가 많을 수록 규모의 경제와 네트워크 효과가 발생한다. 금융 하부구조를 이루는 금융망에 대한 과잉투자를 막고,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망에 대한 접근은 규제 당국의 엄격한 감독하에서 자격요건을 갖춘 은행 등 일부 금융회사에게만 허용되어 왔다. 

디지털 혁명에 기반한 핀테크의 성장은 망을 기반으로 하는 금융업의 자연독점적 성격을 바꿀 것이다. 클라우드 컴퓨팅이 뒷받침하는 모바일 인터넷 시대에는 기존 금융인프라를 우회하여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금융회사와 비금융회사의 경계가 보다 옅어 지면서 금융업에 대한 규제의 관점이 달라질 것이다. 예컨대, 자금공여자와 자금수요자를 매칭시키는 크라우드 펀딩, P2P 대출 등의 플랫폼은 은행의 고유업무인 예금과 대출 업무의 중요성을 약화시키면서 기존 규제의 존재 이유에 대한 의문을 던질 것으로 보인다. 국경을 초월한 인터넷망을 통해서 금융서비스가 전달되면서 국가간 경계도 옅어질 것이다. 예를 들어, 전세계 1억 요우커를 기반으로 중국을 넘어 확장하고 있는 알리페이는 국가간 규제 차이를 보다 희석시킬 것으로 보인다. 소셜 네트워크 등 정보 공유의 확대로 소비자의 관점에서 금융서비스의 공급주체보다는 서비스의 질이나 사용자 경험을 중시하는 시대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신뢰와 정보가 생성되고 이용되는 방식도 달라질 것이다. 금융업에서 취급하는 금융상품은 기본적으로 계약이며, 금융상품을 소비자가 구매한다는 것은 계약이 이행될 것이라는 믿음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거래 상대방의 의지는 외부에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정보 비대칭성이 중요한 이슈가 되는 산업이다. 기존의 금융산업은 오랜 역사적 경험을 거치면서 법적 기제를 통해서 금융거래의 신뢰를 확보해 왔다. 계약 불이행에 대한 법적 처벌규정은 가장 직접적인 형태의 장치이다. 지급준비제도, 예금보호제도, 중앙은행의 최종대부자 기능, 금융회사 건전성 규제, 신용평점제도 등은 금융시장의 안정을 통해서 신뢰를 확보하기 위한 역사적 산물이다. 핀테크는 법을 벗어나 새로운 방식으로 신뢰를 형성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소셜 네트워크와 빅데이터를 통하여 정보 비대칭성을 줄이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들이 나올 것이다. 전 씨티은행 회장 월터 리스턴이 언급하였듯이 금융업은 점점 더 돈 자체보다 정보가 중요해지는 산업으로 바뀔 것이다. 고객에 대한 다양한 데이터를 분석하여 의미있는 정보를 이끌어 내는 것이 핵심 경쟁력으로 대두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금고로서 은행의 역할은 전통적인 금고, 즉, 돈과 재산을 보관하는 금고가 아니라 데이터를 안전하게 보관하는 금고가 될 것이다. 데이터 테크놀로지를 전면에 내세우고 금융업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는 샤오웨이금융그룹(蚂蚁小微金融服务集团; 알리바바의 금융자회사)은 이러한 경쟁 환경의 변화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4. 파괴적 혁신이 가능한 규제환경 돼야 
  

작년 5월에 유출되어 전세계 언론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뉴욕타임즈의 혁신보고서는 디지털 혁명으로 인한 신문산업의 변화에 대해서 가장 선도적인 언론사도 변하지 않으면 도태될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담고 있다. 동 보고서는 뉴욕타임즈가 버즈피드와 같은 새로운 유형의 언론사와 대응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우선(digital first) 전략을 통해서 조직을 전면적으로 개편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경고는 핀테크가 급부상한 금융업에도 곧바로 적용할 수 있다. 거스를 수 없는 흐름으로 자리잡은 디지털 혁명은 신문 산업뿐만 아니라 다수의 미디어 산업과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와해시켰고, 이러한 흐름이 이제는 금융업에도 핀테크라는 이름으로 닥치고 있다. 

디지털 혁명은 고객과 기업의 관계를 바꾸어 놓고, 산업의 주도권을 공급자의 손에서 소비자의 손으로 넘어가게 만들었다. 고객들은 낮은 비용으로 자신의 요구에 맞는 금융상품과 금융회사를 찾을 수 있게 된 반면 금융회사들은 고객의 지속적 관심을 유도하기 어려워짐에 따라 고객을 잃을 확률도 높아졌다. 결국 공급자 중심의 비즈니스 모델은 고객중심의 비즈니스 모델로 급변하고 있다. 제한된 금융상품과 영업시간, 그리고 지점에 국한되었던 고객접점은 24시간 인터넷에 연결된 스마트폰을 통해서 고객의 요구를 즉각적으로 반영해야 하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이전과 다른 모바일 인터넷 시대에 맞는 새로운 전략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금융 혁신을 막는 사전적 규제는 사후적 규제로 

아날로그 규제에서 디지털 규제로 규제 패러다임을 적극적으로 바꾸어 나가야 한다. ICT 회사의 금융업 영위가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금융과 비금융업의 경계가 갈수록 옅어지고, 디지털 상에서의 상거래가 더욱 확대됨에 따라 국경간 거래의 의미는 갈수록 낮아진다. 국내의 과도한 규제로 인하여 국내에서 사업을 접고 해외로 진출하는 기업이 있을 수 있고, 규제차익(regulatory arbitrage)을 목적으로 해외에 본사를 두고 국내에 서비스를 함으로써 규제를 우회하려는 시도가 발생할 수 있다. 현행 규제의 수준이 법률의 제정 목적에 부합하는 규제인지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관성적으로 지속되고 있는 규제인지 적극적으로 따져볼 필요가 있다. 또한 이른바 ‘그림자 규제’로 명명되는 규제 당국의 자의적인 재량권, 보이지 않는 업무 관행이나 보신주의를 타파하고, 규제 회색지대(gray zone) 공백은 적극적으로 메꾸어 나가야 할 것이다. 

금융 혁신에 친화적인 규제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규제 체계는 효율적인 열차 승객 관리를 위해서 ‘폐쇄형 개찰구’에서 ‘개방형 개찰구’로 변화한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모든 승객을 무임승차자로 보고 꼼꼼히 검표하는 전자의 관점에서 예외적인 부정승객에 대해서 엄중한 페널티를 매기는 후자의 관점으로 규제 체계를 정비해 나가는 것이다. 규제 당국이 사전적 규제에 사용하는 자원을 사후적 평가에 집중함으로써 혁신의 이득을 극대화하고, 혁신의 부작용을 최소화 하는 방향으로 규제 체계를 전략적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특히,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으로 인한 새로운 시장창출이 중요해지는 상황에서 규제 당국이 이러한 흐름을 쫓아서 일일이 진입을 규제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지 따져보는 것은 중요하다. 

혁신의 대가 조셉 슘페터(Joseph Schumpeter)는 “마차를 아무리 연결해도 철도가 되진 않는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전통적 운송 수단(마차)과 혁신적 운송 수단(기차)의 근본적인 단절과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해서 언급한 것이다. 새로운 아이디어의 진입을 막는 규제는 산업 전반에 있어서 '마차'를 이용하여 '기차'를 만드는 혁신을 유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일 수 있다. 

부작용에 대한 고려도 병행해야 

핀테크 기업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적 시도들은 양날의 칼과 같다. 금융업의 효율성을 높이고,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을 개선하여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반면, 때로는 프라이버시 침해나 불완전 판매와 같이 소비자의 권리를 침탈할 수 있다. 디지털 상에서의 금융 서비스에 대한 규제가 보다 낮아지는 만큼 소비자 보호를 위한 법적 뒷받침이 매우 중요해 질 것이다. 

한편, 핀테크 기업이 금융시장을 잠식하는 추세가 임계점을 넘게 되면 이른바 탈중개화(disintermediation)의 확대로 인한 통화정책 유효성 하락, 그림자 금융 확대 등의 문제가 대두될 수 있다. 고삐 풀린 혁신이 어떠한 비용을 초래하게 되는지를 보여준 것이 지난 금융위기의 교훈이다. 혁신을 장려하되 이것이 또 다른 위기의 단초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발목 잡는 규제’ 완화 한 켠에서 안전장치에 대한 고민도 계속 되어야 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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