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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경제연구원 '경직된 관료주의를 극복한 기업들'

혁신과 변화가 절실한 기업 환경 속에서 기업 내 관료주의의 부정적 측면이 부각되고 있으나, 많은 기업들이 관료주의의 굴레를 벗어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직된 관료주의를 벗어난 기업들의 혁신적 처방전을 살펴봄으로써 기업 관료주의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살펴본다. 

자신이 속한 조직을 그림으로 그려보라고 하면 대부분 피라미드 모습의 조직을 그린다고 한다. 종교계 인사든, 병원의 간호사든, 또는 대기업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든 거의 예외가 없다는 것이다. 그만큼 피라미드형 조직은 오랜 시간 모두에게 익숙한 보편적 조직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세계적 석학 게리 하멜(Gary Hamel)이 피라미드 조직은 관료주의의 외적 형태라고 했듯이 우리에게 익숙한 이 피라미드형 조직 안에는 관료주의가 내포되어 있다. 경영자들 사이에서 관료주의의 부정적 측면을 극복하는 것은 오랫동안 과제가 되어왔다. 하지만 세계적인 혁신 기업으로 꼽히는 구글(Google)도 관료주의에 따른 문제들을 피해가지 못할 정도로 관료주의의 굴레는 매우 깊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2010년 말, 구글의 인재들이 페이스북(Facebook)으로 이직하고 있다는 내용이 뉴욕타임즈(NewYork Times)에 대서특필된 적이 있다. ‘꿈의 직장’이라고 불렸던 구글에서 두뇌 유출이 발생한 이유는 다름아닌 구글의 규모가 커짐으로 인해 나타난 ‘조직 관료주의(Organizational Bureaucracy)’였다고 한다. 실제로 2008년 구글에서 페이스북으로 이직한 한 엔지니어는 월스트리트 저널(Wall Street Journal)과의 인터뷰에서 ‘구글의 규모가 커지면서 관리자 역할 비중이 커지고 구성원 자율성이 위축되며 조직 운영 방식이 점점 경직되어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여전히 구성원 중심으로 민첩하게 움직이는 페이스북을 택했다’며 이직의 원인을 밝히기도 했다. 뉴욕타임즈는 혁신의 메카인 실리콘밸리 성공 기업들이 기업 규모가 커지면서 점차 관료주의에 빠지게 되고 이로 인해 일의 속도가 느려짐은 물론 창의성과 혁신성이 위축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기도 했다. 

혁신의 발목을 잡는 기업 관료주의 

가장 혁신적인 기업 중 하나인 구글조차도 그 폐해에서 자유롭지 못한 관료주의란 무엇인가? 이와 관련해서는 2012년 글로벌 드러커 포럼(Global Drucker Forum)에서 논의된 바 있는 “관료제 기반의 조직 운영 방식의 한계”라는 내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시 게리 하멜 교수는 관료주의의 부정적 현상으로 다음과 같은 사항을 꼽았다. 첫째, 권력이 상층부에 집중되어 있어 최고경영층이 고객과 환경 변화에 동떨어진 전략을 세팅하거나 둘째, 조직의 규칙들이 구성원들의 자율적 재량권을 제한하고 셋째, 구성원들이 일에 열정을 갖고 성취감을 느끼기보다 포지션에 연연하게 되는 승진 경쟁에 매몰되고 넷째, 일은 리더로부터 할당되어지면서 구성원들이 주도적으로 일하기보다 수동적으로 주어진 일만 하는 현상들이 관료주의 조직에서 보이는 대표적 부정적인 모습이라는 것이다. 어찌보면 관료주의는 기업이 성장하거나 조직 규모가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일 수도 있다. 규모가 큰 기업에서 수많은 구성원들이 동일한 목표를 향해 움직이기 위해서는 위계적 피라미드 조직 형태를 갖추어서 상위 조직이 하위 조직을 관리/통제하고, 일을 나누고, 규정과 절차 등 체계적 시스템에 의해 처리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막스 베버(Max Weber)는 조직이 존속하는 한 관료제 조직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자율과 창의에 기반한 혁신이 절실한 오늘날의 경영 환경에서 관료주의의 형식적 논리와 통제, 경직성이 기승을 부린다면 근본적으로 조직의 혁신성을 저해하는 치명적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관료주의로 인한 대표적 부작용의 하나는 조직 내 의사결정 속도를 저하시키고 더 나아가 잘못된 의사결정을 내릴 위험성을 높인다는 점이다. 예컨대, 위계적인 조직에서는 최고경영층 등 소수 리더에게 의사결정 권한이 집중되어 있다. 문제는 여러 계층의 중간관리자들과 관련 부서장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 모든 결재 라인을 다 통과해서 최종적인 의사결정을 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또한 밑에서부터 올라온 생생한 정보와 의견들이 의사결정 단계를 거치면서 순화되거나 때로는 의미 왜곡을 가져오는 경우가 발생해 결국 처음의 의도와 다른 의사결정이 일어날 수도 있다. 게다가 조직 내 전문가들에게 권한위임이 되어 있지 않다 보니 전문성이 떨어지는 최고경영자가 잘못된 의사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 

둘째, 구성원들이 완결적인 일을 수행하는 경험이 부족하여 기업가로서의 성장과 동기부여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조직이 커지고 분화되면서 일이 잘게 쪼개지면 구성원들은 자신이 맡은 한 부분의 일만 수행하게 되므로 일의 처음부터 끝까지 완결성을 경험하기가 어렵다. 이럴 경우 구성원들이 기업가로 성장하는데 한계가 발생한다. 또한 일의 목적이나 중요도에 대해서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 채 리더로부터 일을 지시 받는 업무 환경에서는 구성원들의 열정도 저하되어 수동적 태도를 취하기가 쉽다. 

셋째, 관료주의는 불규칙적이거나 새로운 변화를 쉽게 수용하기 어렵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본질적으로 관료주의는 일사불란한 질서와 통제를 기본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또는 전략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정해놓은 원칙이나 절차가 매우 중요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다. 또한 조직 내부에서 통하는 성공 방식이나 관성대로 움직여야 된다는 조직 논리가 강한 것도 관료주의가 자리잡은 기업의 특징이다. 이는 경영 환경이 비교적 예측 가능하고 경쟁 구도가 단순했을 때는 효과적이었겠지만 오늘날의 환경은 그렇지 않다. 때로는 절차를 건너뛰는 빠른 실행,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방법의 적용이 중요하다. 그러나 관료주의 문화 속에서는 이런 것들이 시도되고 발현되기 어렵다. 

따라서 기업이 혁신과 변화에 앞장서기 위해서는 관료주의가 내포하고 있는 부정적 현상을 철저히 경계하고 이를 벗어나기 위한 노력들을 기울여야 한다. 이미 많은 기업들이 관료주의의 문제를 인식하고 있지만, 정작 이를 벗어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이와 관련하여 게리 하멜 교수는 ‘조직 구조는 수평화하지만 정작 위계를 제거하지 못하고, 권한 위임이 필요하다고 얘기하나 진정으로 리더의 권한을 배분하지 않으며, 관료주의에 대해 비난하나 그것을 몰아내지 못하고 있다’며 혁신을 추구하는 기업들이 정작 혁신의 장벽들을 해체시키지 못하는 문제를 꼬집은 바 있다. 그렇다면 이미 오랫동안 너무 익숙한 관료주의의 굴레를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일까? 그리 많지는 않지만 실제로 관료주의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경영하는 기업들의 주요 특징들을 꼽아보았다. 

관료주의를 극복한 기업들의 주요 처방 

1. 현장 중심의 조직 구축 : 유니클로 

관료주의가 만연한 조직의 특징 중 하나는 고객이나 시장과 상당히 동떨어진 최고경영층이나 관리 부서에 권한이 상당히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현장의 상황과 목소리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채 보고에 의해 내용을 간접적으로 파악하게 되고, 결국 고객이나 시장의 변화, 니즈 등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잘못된 의사결정을 내릴 확률이 높아진다. 때로는 고객에 대한 정보가 더 많은 구성원들이 리더들의 의사결정이 잘못되었음을 인지하면서도 따라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발생한다. 

유니클로(UNIQLO)는 1994년 히로시마 증권거래소에 상장한 뒤 승승장구하는 듯 했다. 그러나 전체 매출 규모는 커졌지만 점포 매출이 마이너스 성장세였다. 원인을 살펴보니 조직이 커지면서 CEO 산하의 본사 특정 부서가 소위 핵심 부서로 자리매김하며 다른 부서들과 매장들을 컨트롤하면서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고객과 제일 동떨어져 있는 본사는 머리가 되고, 매장은 시키는대로 움직이는 손발이라는 인식이 만연해졌고, 그러다 보니 매장에서는 고객 니즈에 융통성 있게 대응하기보다 본사에서 내려온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등 수동적인 태도가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이다. 

유니클로 창업자인 야나이 다다시 사장은 이러한 관료주의 행태를 벗어나기 위해 본사 관리 중심에서 점포 자립 중심으로 조직 운영 체계를 전환했다. 사내 인재들을 대상으로 점포 경영을 맡길 경영자를 육성하고, 점장이 직접 매출이나 재고 관리를 할 수 있도록 경영권을 부여하였다. 그 결과 본부 관리 부서 주도의 일방적이고 수동적 경영에서 매장 중심의 능동적 경영으로 전환이 가능하게 되었고, 매장 직원들도 고객 니즈에 더 귀 기울이고 직접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면서 고객 니즈에 맞춘 발 빠른 경영을 실천할 수 있었다. 

2. 중간관리자 계층 축소 : 자포스 

피라미드 조직은 수많은 중간관리자를 양산하는데, 이들이 오히려 의사결정 속도를 저하시키고 정보를 왜곡하는 등의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수평적 조직 구축을 통해 중간관리자 계층을 대폭 축소하고 모든 구성원들이 주도적으로 일하도록 한 회사가 있다. 온라인 신발 의류 유통 기업인 자포스(Zappos)다. 

자포스의 CEO 토니 셰이(Tony Hsieh)는 ‘어느 누구도 좋은 아이디어를 죽일 수 없고, 누구든 리더가 될 수 있으며, 독재자들을 견딜 필요가 없고, 열정을 죽이는 정책은 뒤집는’ 조직을 만들겠다며 전통적 계층제 피라미드를 없애고 구성원들의 자율성을 기반으로 하는 홀라크라시(Holacracy) 조직을 만들겠다고 선포했다. 이에 따라 사람을 관리하고 의사결정을 승인하는 감독 역할을 계속 하고 싶은 관리자들은 회사를 떠나줄 것을 요구했다. 그 결과 구성원 중 14%가 사직서를 냈다. 짧은 기간에 14% 인력의 퇴직은 조직에 상당히 타격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토니 셰이는 구성원들이 자율적으로 모이는 서클(Circle)형 조직을 구성함으로써 구성원들이 직접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지위에 의한 권위보다 구성원들이 전문성을 발휘하고 동료를 돕고 의미있는 일을 주도적으로 수행하는 형태로 조직을 운영하겠다는 철학을 고수하고 있다. 

자포스와 같은 조직 형태는 최근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 추세이다. 이미 고어(Gore)나 모닝스타(Morning Star) 등이 중간관리자 없는 조직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고, 최근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중고 의류 판매 스타트업인 스레드업(ThredUP)이나 클라우드 기반 서비스를 제공하는 루커(Looker)등 스타트업 기업들도 중간관리자급을 없애는 추세다. 

3. 관리 계층이 기득권을 내려놓기 : 뉴코 

관료주의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관리 계층이나  특정 부서에 집중되어 있는 기득권 또는 특권의식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특권의식이나 기득권을 내려놓고 조직을 위한 제 역할에 집중하는 솔선수범을 통해 비로소 구성원들의 신뢰가 견고해지고, 조직 전체의 변화의 물꼬를 틀 수 있기 때문이다. 

철강회사 뉴코(Nucor)의 리더들은 특권을 누리기보다 평등 의식을 기반으로 구성원들과 동등한 혜택을 추구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뉴코의 전 CEO 켄 아이버슨(Ken Iverson)은 ‘회사 계층 구조 맨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특권을 부여하고 이를 과시하면서 정작 지출을 줄이고 수익률을 올리라는 자신의 말에 왜 구성원들이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는지 의아해한다’고 말한 바 있다. 위기경영이라며 구성원들이 사용하는 작은 비용 하나하나 통제하면서 정작 경영층들은 고급 차량 리스 비용, 운전기사 비용, 넓은 응접실과 집무실 등의 기득권을 놓지 않는 현상을 지적한 것이다. 뉴쿄의 경우 예를 들어 CEO를 비롯한 모든 리더들은 해외 출장 시 구성원들과 마찬가지로 이코노미 클래스를 이용한다. 또한, 회사 차량, 회사 전용기, 특별 주차 구역 등의 혜택도 없으며, 손님 접대도 회사 근처 샌드위치 가게 등에서 가볍게 한다. 리더의 기득권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리더가 기득권보다는 솔선수범하여 회사 업무에 집중하는 올바른 경영자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구성원들과의 신뢰를 견고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켄 아이버슨의 철학을 곱씹어볼 필요는 있다. 

4. 구성원들의 참여 유도 : TMNS 

의사결정은 무조건 리더가 하고, 구성원들을 관리하고 통제함으로써 생산성을 높인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구성원들이 직접 참여하고 구성원들이 행복해야 한다는 경영 철학을 실천함으로써 관료주의를 벗어난 사례도 있다. HBR(Harvard Business Review)과 맥킨지(McKinsey)가 함께 선정한 ‘관료주의를 넘어선 혁신적 기업(Winners of the Beyond Bureaucracy Challenge)’의 하나로 꼽힌 일본 IT 기업 TMNS (Tokio Marine Nichido Systems)가 그 주인공이다. 

TMNS는 위계가 강하여 관료주의적 문화가 팽배했고 구성원들이 상사의 말에 수동적으로 움직이며 구성원들이 일을 통해 성취감을 느끼기보다 서열화를 통한 내부 경쟁에 지쳐있는 상태였다. 회사를 진단한 컨설팅 회사는 ‘지금까지 본 가장 관료주의적인 조직이 한 지방자치 단체였는데, 여긴 그 곳보다도 더 안좋다’고 진단할 정도였다. 이에 TMNS는 30~40대 구성원 중 지원자를 받아 ‘Work Style Reform Committee’를 구성하였다.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경영층과 함께 변화의 주체가 되도록 한 것이다. 

이 위원회는 동기부여, 혁신, 즐거움, 커뮤니케이션, 다양성, 자율성이라는 6가지 변화의 키워드를 선정하고, 각각에 따른 변혁 활동을 시작하였다. 관료주의 문화를 벗어나기 위해 위원회가 추진한 변혁 활동의 예는 다음과 같다. 우선, 중간관리자들이 의사결정 속도를 지연시킨다는 문제에 대해 결재 라인을 모두 검토하고 54개 결재 종류 중 약 89%에 해당하는 48개의 승인 절차를 제거하였다. 또한 리더들의 권위로 자유로운 토론이 어렵다는 문제에 대해서는 회사 건물에서 5분 떨어진 거리에 ‘Future Center’를 만들고, 잠시 업무 환경에서 벗어나서 권위의 장벽을 없애고 구성원들이 재미있고 자유롭게 토론하는 환경을 조성하기도 했다. 이때 토론이 익숙치 않은 구성원들을 위해 점토(Clay) 등 토론을 재미있게 활성화할 수 있는 도구와 방법들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이외에도 고객 방문 프로그램,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테마를 선정하고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Next Dream’ 제도, 사내 즐거운 문화 공간 창조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조직 문화 변혁을 시도하여 권위적이고 수동적이며 침체된 분위기를 열정적이고 행복한 회사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 

5. 작은 별똥부대 활용 : 록히드 마틴 

사실 기업 규모가 클수록, 그리고 오래될수록 뿌리 깊이 박혀 있는 관료주의 사상과 제도를 바꾸는 데는 한계가 있다. 경직된 관료주의를 벗어나기 위한 변화를 시도한다 해도 조직 전체적으로 개혁하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일부 회사들은 특정한 프로젝트나 부서 중심으로 조직 내 관료주의적 통제를 벗어날 수 있는 특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주기도 한다. 기업 내의 통제를 벗어나서 자유롭게 혁신적 시도를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함으로써 기업 혁신을 이끄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록히드 마틴(Lockheed Martin)의 스컹크 웍스(Skunk Works)다. 

스컹크 웍스는 2차 세계대전 중인 1943년 미국 국방부 요청으로 록히드가 비밀리에 긴급하게 구성한 개발팀명이었다. 이들은 미처 작업 공간을 마련하지 못해 공장 주변 빈 터에 천막을 세우고 작업했는데 악취가 심해서 본사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아 의도치 않게 비밀조직화 되며 본사의 관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당시 스컹크 웍스는 약 50명의 소수 인원으로 예상 기간보다 한 달이나 빨리 신형 제트기 설계라는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였다. 스컹크 웍스는 이후에도 여러가지 혁신적인 제품을 내놓는 성과를 발휘했다. 스컹크 웍스가 혁신적 성과를 낼 수 있었던 이유는 회사 내 만연했던 사내 정치, 절차, 프로세스 등으로부터 격리하고, 다양성을 갖춘 소수 구성원으로 구성하며, 폭넓은 재량권을 부여함으로써 자유로운 토론과 빠른 실행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이후에도 스컹크 웍스와 같이 기업의 관료주의에서 벗어나 별도의 방식으로 혁신적 시도를 하는 소규모 팀의 활용 사례는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IBM은 기존 조직과 완전히 분리된 사업개발팀을 별도로 구성하고 최고경영진에게 직보하는 체계를 만들면서 1980년 중반 이후 PC 사업 활성화를 이끄는 성과를 보였다. 

6. 혁신적 개혁가를 통한 쇄신 : 일본항공 

관료주의가 심할수록 자신의 특권을 기반으로 사람들을 좌지우지하며 만족해하는 ‘지위 중독’ 현상이 심화된다. 그리고 이로 인해 기득권을 잃는 것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게 되고,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현상 유지를 쫓는 보신주의 경향이 강해진다. 특히 상대적으로 권력이 더 많은 리더 계층이 보신주의나 복지부동의 자세를 취할 경우, 그 조직 스스로 관료주의를 벗어나기란 상당히 어렵다. 강력한 혁신적 개혁가를 통해 이런 경우를 벗어난 사례들이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회생 불능 조치를 받았던 일본항공(JAL)이다. 
일본 항공은 포퓰리즘 정치에 휘둘려 적자인줄 알면서도 전국 각지에 노선을 늘렸고, 은행으로부터 융자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사원들의 인건비는 줄이면서 정작 정년 퇴직한 스튜어디스들에게 지급했던 월 500~600만원 선의 고액 연금은 유지하고 있었다. 경영진들은 이런 방만한 경영이 일본항공을 쓰러지게 만드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재임기간에 건드렸다가 일이 크게 터질 것을 우려한 나머지 망하기 직전에도 ‘조금만 손대면 좋아질 것’이라는 안일한 태도를 보였다. 

이때 교세라(Kyocera)의 창립자 이나모리 가즈오가 일본항공을 쇄신하기 위해 등장했다. 혁신적 개혁가 역할을 수행한 이나모리 가즈오는 경영층들의 보신주의를 지적하였고, 그 어느 누구도 건드리지 못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서둘러 시행했다. 특히 일본항공을 살리기 위해서는 기득권을 내려놓고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줘야만 한다며 장기간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단카이 세대라 불리는 중년 기득권층을 구조조정 하는데 성공했고, 강성 노조를 기반으로 똘똘 뭉쳐있었던 퇴직자들에게도 연금액 인하에 동의하는 싸인을 받아내기도 하였다. 물론 일본 정부의 여러 지원도 있었지만 혁신적 개혁가 이나모리 가즈오의 냉철한 판단과 강한 추진력이 없었다면 일본항공의 부정과 관료주의의 병폐 고리를 끊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관료주의의 무게를 이겨낼 수 있는 리더 

이미 많은 기업과 정부 조직의 사례에서 보듯 관료주의 병폐로 인한 여러 문제가 조직에 얼마나 심각한 타격을 주는지는 불 보듯 뻔하다. 특히 끊임없는 혁신의 노력이 중요해지는 시기인만큼, 최근 세계적인 리더나 학자들 사이에서 기업의 관료주의가 주요 쟁점이 되고 있다. 여든이 훨씬 넘은 워렌버핏(Warren Buffett)의 핵심 고민 중 하나도 바로 관료주의의 타파다. 2014년 워렌버핏의 편지를 보면 GM, IBM, Sears 등이 최고의 자리에서 추락한 원인이 오만함, 관료주의, 기존 성과에 대한 안주에 있었다며 버크셔 헤서웨이(Berkshire Hathaway)의 후임자는 이러한 문제들과 싸울 능력을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관료주의가 계층과 권력에 기반을 두고 있는 만큼, 관료주의에 따른 문제들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개인보다 조직을 먼저 생각하고 리더 스스로가 먼저 행동으로 옮기는 모습에서 비로소 관료주의의 무게는 가벼워질 수 있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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