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 '수출에 대한 원고 압박, 이미 위험 수위'
최
근 수출부진에는 세계교역 둔화와 국제유가 급락 외에 원화가치 상승의 영향도 상당부분 작용하고 있다. 명목환율이 달러당 1,100원
내외 수준을 유지하는 가운데서도 유로와 엔화의 대폭 절하로 인해 국제결제은행(BIS)이 산출하는 원화 실질실효환율은 올해 들어
4% 넘게 절상되었다. 이제 글로벌 금융위기의 발생으로 야기된 원화의 저평가 상태는 거의 해소되어가는 것으로 판단된다. 현재
원화는 실질실효환율 기준으로 볼 때 장기평균보다 4% 남짓 강세를 보이고 있으며, 2000년대 들어 나타난 경상수지 균형 시점과도
거의 비슷해졌다.
세계수요 부진이 장기화되고 선진국과 신흥개도국간 기술격차가 줄면서, 향후 환율을
매개로 한 가격경쟁은 더욱 격화될 전망이다. 세계시장 전반에서의 경쟁관계를 반영한 새로운 실질실효환율 지표를 통해 볼 때,
2015년 상반기 현재 원화값은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직전에 기록한 최고치(달러당 900원 내외)와의 격차가 7% 남짓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난다. 특히 BIS 기준 실질실효환율 지수보다 높은 수준으로 나타나 수출기업들이 체감하는 원고압박이 명목환율이나
국제기구가 산정하는 원화가치보다 클 것으로 판단된다. 세계교역의 신장세가 전반적으로 둔화하는 가운데 제반 교역여건도 우리 수출에
불리한 방향으로 변화해가고 있다. 원화절상과 여타 경쟁국 통화의 절하 효과는 이미 철강과 석유화학, 자동차 산업을 중심으로
가시화되기 시작했으며, 향후 우리 수출산업 전반으로 확산될 전망이다.
올해 하반기 미국이 금리인상을 시작해 원/달러 환율이 상승압력을 받더라도,
실질실효환율이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한 우리 수출이 본격 회복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워낙 크고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원화의 추가 절상을 요구해 올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적극적인 외환시장 정책의 여지도 크지
않다. 수출 일선에서 체감하는 원고압박을 위해서는 해외투자를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며, 보다 근본적으로는 내수경제의 활력을 북돋아
현재 심화양상을 보이는 대외 불균형을 해소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 목 차 >
1. 실효환율로 본 원화가치
2. 체감하는 원고 압박이 큰 이유
3. 맺음말
수출 부진이 장기화될 조짐이다. 지난 2000년 이후 평균 두 자릿수 성장을 보이던 우리나라 수출이 2012년 이후로는
줄곧 제자리 걸음이다. 올해 들어서는 지난 1~5월 5개월 연속 감소세를 나타내고 있다(<그림 1> 참조).
수출 부진의 주요 일차적인 원인으로 세계교역 부진을 들 수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이후 2012년부터 선진국 수요의
회복속도가 더뎌지고, 내구재를 중심으로 수출유발 효과가 큰 품목들의 수요 비중이 낮아지면서, 세계교역은 평균 1~2%대의 낮은
증가세를 보였다. 이는 지난 2000년대 중반 세계경제 호황기 때 연 15%씩 증가하던 추세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분업화의 추세가 주춤한 것도 교역부진을 심화시키는 요인이다. 더욱이 지난해 하반기 이후 국제유가
급락으로 수출단가까지 하락하면서, 올해 들어서는 금액 기준으로 10% 이상 감소하는 상황이다.
원고의 수출제약 효과 가시화
원화절상에 따른 부담도 누증되고 있다. 올 들어 달러 대비 원화환율은 1,100원 내외 수준에서 등락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주요통화인 유로와 엔화는 지난 수년 이래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2000년대 들어 주요 시장으로 부상한 인도,
브라질, 러시아 등 신흥시장에서는 해당국가 통화의 절하와 심각한 수요부진의 압박에 동시에 직면에 있다. 이처럼 원/달러 환율에 큰
변화가 없더라도 평균적인 원화가치, 즉 실효환율이 꾸준히 절상되면서 가격경쟁력을 제약하는 효과가 이미 상당한 정도로 가시화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원화의 실질실효환율 수준을 가늠해 봄으로써 현재 환율이 수출에 어느 정도 부담을 주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특히 세계시장에서의 경쟁 및 경합 정도를 고려한 새로운 개념의 실질실효환율 지표를 산출해 살펴보고, 이를 통해 현재 우리수출이
직면한 환율상황을 재평가하고자 한다.
1. 실효환율로 본 원화가치
국제결제은행(BIS)이 집계하는 주요국들의 실효환율 지수를 보면, 지난 4월 원화의 실효환율은 명목과 실질 기준 모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2009년 2월 기록한 최저점으로부터 38% 가량 절상된
수준이며, 지난해 말에 비해서도 4.6% 상승했다. 다른 주요국들의 환율여건은 대체로 반대 양상이다. 지난 5월을 기준으로
BIS가 실질실효환율을 추계하는 61개국 가운데 39개국이 지난해 연말에 비해 통화가치가 하락했다(<그림 2> 참조).
경기부진과 디플레이션 위험에 대응하는 한편, 자국통화의 빠른 절상을 우려해 금리인하 등 강한 통화완화 정책을 펴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야기된 원화의 저평가, 거의 해소되는 중
다만 일정 기간 통화가치의 절상 또는 절하 여부로 수출에 미치는 영향을 모두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정 시점의
환율에 대해 장기적으로 균형이거나 적절하다고 여겨지는 수준과 견줘 어느 정도인지 역시 중요하다. BIS가 발표하는 실효환율 지수
또한 그 값 자체보다는 일정한 기준과의 비교를 통해 원화가치의 고평가 또는 저평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첫째, BIS가 산정한 원화의 실질실효환율 지수를 과거 평균 수준과 비교하면, 원화가치는 이미 고평가 상태인 것으로
나타난다. BIS가 주요 신흥국들까지 포함해 실효환율 값을 산출하고 있는 지난 1994년 이후, 약 20여년 동안의 평균적인
원화가치 수준보다 지금(2015년 1~5월 평균)이 4.3% 더 높다. 미국(0.6% 고평가), 영국(2.1% 저평가) 등이 장기
평균과 비슷한 수준인 것에 반해, 유로존 국가인 독일과 프랑스는 각각 10.9%와 9.2%, 그리고 1990년대 장기침체기 이후
줄곧 저물가 상태가 지속돼 온 일본의 경우 무려 32.7%나 저평가 상태로 나타난다.
장기평균은 단순한 산술평균값이다. 따라서 경제적 의미에 기반한 ‘균형’이나 ‘적정 수준’에 개념에 꼭 부합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원화가치가 오랜 기간 경험해 온 평균 수준을 상회한다는 것은 수출기업에게 환율여건이 어려운
시기가 도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둘째, 과거 우리나라의 경상수지가 균형이었던 시점과는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속돼 온
원화의 저평가 상태가 거의 해소되었다는 의미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경상수지가 기조적으로 균형에 가까웠던 시점은 2001년
3분기에서 2002년 3분기로, 외환위기 이후 크게 절하되었던 원화가치가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가던 시기에 해당한다. 원화강세가
한창 진행 중이던 2006년 2분기와 3분기에도 경상수지가 소폭의 적자와 흑자를 기록해, 일정 기간 평균적으로 균형상태에 가까웠던
시기로 볼 수 있다. 또 글로벌 금융위기의 초입이던 2008년 1분기에서 같은 해 3분기 동안에도 경상수지가 균형에 가까웠다. 올
들어 5월까지 평균 실질실효환율(114.3)은 과거 세 차례 경상수지 균형 시점의 평균치(116.6)에 거의 근접하고
있다(<그림 3> 참조). 즉 원화의 저평가가 거의 해소되었으며, 고평가 국면으로의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같은 판단은 현재 경상수지가 막대한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현재 상황에 부합하지 않는다. 지난해 우리나라
경상수지는 892억달러의 대규모 흑자를 기록했으며, 올해는 유가하락 효과까지 더해져 1,000억달러 이상의 흑자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경상수지 균형 환율 개념이 현실과 잘 부합하지 않는 까닭은 현실에서 경상수지에 영향을 주는 다른 변수의 영향력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대표적으로 국내외 경기 수준을 꼽을 수 있다. 국내경제가 부진하면 수입을 줄임으로써
경상수지 흑자를 늘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 같은 국내경제 부진 요인을 비롯해 생산 및 교역구조의 변화, 고령화 같은 요인들이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과거 특정 시점의 교역 측면만을 직접적으로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원화에 비해 통화가치 절하된 시장에서 수출 둔화 폭 커
올해 들어 수출이 계속 감소추세를 나타낸 데에는 이 같은 원화 실효환율의 절상이 상당부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수출과 환율의 관계를 추정한 결과 원화의 실질실효환율이 10% 상승, 즉 절상될 경우 1년간 수출은 9.8%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지속돼 온 원화 실질실효환율의 절상이 최근까지 일정한 시차를 두고 순차적으로 수출에 반영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통화가치가 원화에 비해 큰 폭의 약세를 나타내고 있는 국가 및 권역으로의 수출부진이 두드러진다(<그림 4>
참조). 일본과 유로존의 경우 내수경기를 부양하고 디플레이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강도 높은 통화완화 정책을 펴고 있다.
엔/달러 환율이 120엔/달러를 넘어서고 원/엔 환율도 동반 하락하면서, 올해 우리나라로부터 일본으로의 수출은 지난해에 비해
20% 가량 감소했다. 유로지역 역시, 유로화 가치가 지난해 1유로당 평균 1.4달러에서 올해 1.1달러 내외로 하락하면서,
우리나라의 대유로 수출이 10% 내외로 감소했다. 반면 이들 국가 및 권역의 수출은 유로존의 경우 지난 3월까지를 기준으로 전년
대비 3.2%(유로화 기준), 일본은 5월까지 8.8%(엔화 기준) 늘었다.
신흥국에서는 수요부진과 원고부담의 이중고
통화약세와 더불어 실물경제도 부진한 시장에서는 더 큰 타격이 나타나고 있다. 브라질, 러시아 같은 거대 신흥국의 경우
자원가격이 하락한 데다, 정치 불안정과 지정학적 위험까지 가중되면서 과거 평균 수준에 비해 큰 폭의 저평가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지난해 브라질 0.1%, 러시아 0.6%로 사실상 제로 수준의 성장을 한 데 이어 올해는 두 나라
모두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4월 전망에서 올해 브라질의 경제성장률을 -1.0%로, 러시아는
-3.8%로 내다봤다. 이들에 대한 우리나라의 수출은 이미 전년 대비 30%나 줄고 있다.
2. 체감하는 원고 압박이 큰 이유
세계경기가 호황일 때는 수출이 환율에 덜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과거 원화 절상은 대체로 세계경제의 호황기에
발생했다. 1980년대 후반의 3저 호황 때와 2000년대 중반 신흥국 주도의 호황기 때가 그랬다. 외환위기 발생의 단초를 제공한
1990년대 중반의 원고 시기도 세계경제가 3저 호황 직후 나타난 경기부진 국면에서 회복되던 시기였다. 이들 시기에 우리 수출은
원고부담이 가중되는 가운데서도 연 15% 이상의 높은 증가 추세를 나타냈다.
세계수요 부진으로 가격 및 환율 경쟁력 부각
그러나 최근처럼 세계수요 부진으로 경쟁이 치열해 지는 시기에는 수출이 환율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 세계경제가 장기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면서 수요가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일부 국가에서는 디플레이션 우려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다. 소비수요를 이끌었던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들은 GDP증가율이 연 1%대에 그치는 저성장 국면에 빠졌다. 원자재 생산과 투자를 중심으로 한
거대 신흥국들의 고성장세도 막을 내렸으며, 일부 국가는 올해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된다.
더욱이 세계경제의 공급능력은 이미 과잉상태라는 지적이 많다. 중국을 중심으로 생산능력이 비약적으로 확대되면서 세계 수출
단가가 하락했다(<그림 5> 참조). 2000년대 들어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하기 시작한 중국은 경공업분야의 단순
가공품에서 시작해 철강, 석유화학 등의 자본재, 그리고 이제는 스마트폰을 비롯한 첨단기기 분야에서까지 빠른 성장을 보이고 있다.
제품의 단가하락은 생산성의 향상을 반영하는 측면도 있으나, 최근처럼 세계 수요가 부진한 상황에서는 이 같은 공급능력의 확대가
가격경쟁을 더욱 치열하게 만들고 있다.
기술 평준화로 가격경쟁 더욱 치열해져
선진국과 신흥국간의 기술격차 축소도 가격경쟁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과거에는 글로벌 분업의 구도가 비교적 명확했다.
선진국에서 기술과 부가가치 수준이 높은 제품을 생산하고 신흥개도국은 경공업과 단순한 조립·가공 등 노동집약적 산업의 비중이
높았다. 제조기술과 상품의 부가가치 등에 있어 양자간에 명확한 격차가 존재했기 때문에 선진국 수출산업들은 상대적으로 고가의 제품을
내 놓으며 일정 부분 기술과 디자인, 브랜드 등의 프리미엄을 누릴 수 있었다.
이제는 이같은 격차가 많이 줄었다. 실제로 지난 수년 사이 주요 품목의 수출단가의 국가별 편차가 축소되고 있다(<그림
6> 참조). 최근에는 단순 가공품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등 고부가가치 제품군에서도 중국, 인도 등 개도국의 자국생산 비중이
확대되는 추세다. 중국의 화웨이, 레노버, 샤오미가 자국의 막대한 수요기반을 배경으로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3~5위를
차지한 바 있다. 지난해 인도에서는 휴대폰 시장의 32%를 마이크로맥스, 카본 등 인도 현지업체들이 차지하면서 내수시장에서 입지를
굳히기 시작하였다. 우리 수출산업으로서는 이들 시장에서 성과를 거두기가 점점 어려워질 뿐만 아니라, 세계시장 전반에서 이들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기술력만으로 제품 우위를 지켜나가기 어려워 지면서 가격이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주요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
세계시장에서의 경쟁관계 반영하면 원화절상 압박 더욱 가중
기존의 실질실효환율 개념은 이같은 경쟁요인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물가가 경쟁력을 대변하기는 하지만, 그
가중치가 교역 상대국에 국한된다. 나머지 세계시장에서의 경쟁은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게 된다. 예를 들어 대만은 우리나라 교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 내외로 크지 않지만, 세계시장에서는 전자부품, 반도체 등의 품목에 걸쳐 우리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기존 실질실효환율 산식을 따를 경우 대만달러의 가치가 하락했을 때 우리나라 수출가격 경쟁력을 잠식하는 효과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 같은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세계시장에서의 경쟁을 반영한 새로운 실질실효환율 지표를 계산해 보았다. BIS가 실효환율
지표를 산출하는 61개 국가 및 권역을 대상으로 우리나라와의 교역 비중에, 경쟁의 강도를 나타내는 지표로서 수출유사성지수를 곱한
다음 가중치의 합이 1이 되도록 조정하였다. 2014년을 기준으로 수출유사성 지수를 기준으로 한 우리나라와의 수출 경합도는 대만,
일본, 미국, 유로존 등의 순으로 높다. BIS의 실효환율 산출방식에 의거한, 우리나라와의 교역비중이 높은 중국, 미국, 홍콩,
베트남 등으로 나타나는 순서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세계시장에서의 경쟁관계를 반영한 원화가치는 최근들어 BIS 기준의 실질실효환율 지표에 비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그림 7> 참조). 근래 대폭 절하된 유로와 엔화, 즉 독일 등 유로존 국가들과 일본의 경우 우리나라와
경합도가 높기 때문에 새 지표에서 두 통화에 대한 가중치가 커졌고, 그 결과 평균적인 원화가치가 기존 지표에서보다 높아졌다. 새
원화가치 지표는 이미 지난해 하반기에 2007년 금융위기 직전, 즉 원화 실효환율이 최고 수준을 기록했던 때와 유사한 수준으로까지
절상되었다. 이는 원화가치의 고평가 문제로 리먼사태 직후 크게 증폭되었던 우리 외환시장 불안의 시발점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직전 BIS 기준 원화의 실질실효환율은 131.2(명목환율 기준 달러당 900원)까지 상승해 현재(2015년
1~5월) 실효환율 114.3과 13% 가량 차이가 난다. 반면 경합도를 고려한 실질실효환율 지표는 위기 이전 최대값이
126.4이고 지금은 117.3으로 그 차이가 7% 남짓에 불과하다. 지난해 말에는 일시적으로 그 격차가 2% 내외까지 줄어들기도
했다.
이같은 결과는 수출 일선에서 선진국 및 신흥국과의 경쟁에 직면한 우리 기업들이 원화절상의 부담을 체감하는 정도가 이미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을 수도 있음을 방증한다. 2005~2007년과 2012년 이후 두 시기 동안, 비슷하게 원화가 절상되는
가운데서도 수출실적이 크게 다른 이유 또한 기존 실질실효환율과 세계시장에서의 경쟁을 고려한 실질실효환율 지표간의 관계를 통해
설명할 수 있다(<표 1> 참조). 2005~2007년에는 기존 지표가 세계시장에서의 경쟁을 고려한 지표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경쟁 측면을 더 고려할 경우 원화의 고평가 부담이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따라서 원화절상이
수출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도 그만큼 줄어들 여지가 있었다. 2012년 이후 최근까지는 반대의 양상이다. 기존 지표에 비해
세계시장에서의 경쟁을 고려한 실질실효환율 지표가 더 높게 나타난다. 이는 원화절상이 수출에 주는 부담이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커졌음을 의미한다.
우리 수출산업의 경쟁력 또한 점차 줄어들었을 수 있다. 지난 2008~2010년 원화가치가 크게 절하된 시기 동안 확보한
가격 경쟁력과 그 이전부터 장기간 축적해 온 본원적 경쟁력이 최근의 변화된 환율여건과 경쟁의 구도에서는 서서히 한계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통화가치가 크게 절하된 일본 및 유로존 국가들의 수출산업이 살아나기 시작하고, 중국 등 신흥국과의 격차도 과거에
비해 크게 줄면서 우리 수출산업이 설 입지도 조금씩 좁아질 가능성이 크다.
세계경제 및 교역 여건도 수출에 불리한 방향으로 변화
세계경제 및 교역 여건에도 작지 않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2005년 당시는 세계경제가 고성장하던 시기였다.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신흥국들의 고성장세가 이어지면서 원자재 소비량이 급증하고 가격도 오르면서 교역도 빠르게 늘어났다. 신흥국에 대한
생산설비 및 인프라 투자 확대도 관련 품목의 교역을 이끌었다. 글로벌 분업이 심화되면서 산업내 무역도 빠르게 늘었다. 관세와
투자장벽을 낮추기 위해 양국간 또는 다자간의 자유무역협정(FTA) 및 투자개방이 잇따랐다. 그 결과 교역이 경제성장 속도 이상으로
빠르게 늘어났다.
반면 2012년 이후 최근까지는 과거 세계경제 호황기에 수출을 더욱 신장시켰던 요인들이 반대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3%대 초·중반의 저조한 성장세가 이어지면서 세계수요가 전반적으로 크게 위축된 상황이다. 특히 달러화가 강세를 나타내는데 반해,
여타 주요 통화들이 달러는 물론, 원화보다도 약세인 경우가 많아 우리 수출산업의 가격경쟁력이 광범위하게 잠식되고 있다. 원자재
가격은 크게 낮아졌고,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자국에 제조업 투자와 생산을 유치하려는 정책적 노력이 강화되고 있다. 수요부진이
장기화되면서 신흥국에 대한 설비투자와 그로부터 야기되는 교역 또한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3. 맺음말
일각에서는 2000년대 들어 환율이 수출에 미치는 영향이 과거에 비해 많이 줄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는 지난
2000년대 중반, 세계경제 고성장기 원고 경험의 반영으로도 볼 수 있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이제는 과거와 같은 우호적인
세계경제 및 교역 여건을 기대하기도 어려워지고 있다. 세계수요의 부진이 이어지고, 생산기술 등의 국가간 격차가 줄어들면서 오히려
가격경쟁이 더 격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같은 경쟁 요인을 보다 적극 감안해서 보면, 수출현장에서 체감하는 원화가치는 지표상으로
나타나는 것보다 더 절상된 상태인 것으로 판단된다. 수출현장에서는 쉽게 늘리기 어려운 매출, 낮아진 수익성으로 이미 가격경쟁력의
잠식을 상당부분 체감하고 있다.
하반기 미 연준이 금리인상을 시작하면 단기적으로는 원/달러 환율도 상승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원/달러 환율의 상승이
부분적으로는 원화절상압력을 완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수출이 본격 회복되기는 쉽지 않다. 원화가 절하될
때 다른 나라 통화들도 함께 절하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대외충격에 대한 우리경제의 완충능력이 과거에 비해 크게 개선되었기
때문에, 강 달러 상황에서 통화절하 폭이 여타 신흥국들에 비해 오히려 우리가 작은 편일 가능성이 높다.
원화절상에 보다 근본적인 대책 필요
원화절상 압력을 완화시키기 위한 지금 우리나라의 환율정책 여건은 결코 만만한 상황이 아니다. 올해 1,0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경상수지 흑자와 외환보유액의 점진적 증가추세는 외환정책의 운신의 폭을 좁게 만들고 있다. 오히려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들로부터 절상압력이 가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제통화기금(IMF)이나 국제경제 분야에서 미국의 씽크탱크로
꼽히는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Peterson Institute of International Economics)는 아직 원화가
4~7% 가량 저평가 상태에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원화절상 압력을 완화할 보다 근본적인 대책의 모색이 필요하다. 과거 환율의 방향성이 크게 바뀐 사례들을 보면, 정책의 큰
단절적 변화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았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유럽 국가들에서 나타난 금 본위제로부터의 순차적인 이탈이 대표적이다.
서방 7개국 재무장관들의 플라자 합의는 일본의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에 막대한 절상압력으로 작용했다. 1990년 독일의 통일이
마르크화의 절하를 이끈 반면, 유로화의 사용은 일부 그리스를 비롯한 남유럽 국가들의 통화를 과도하게 절상시켰다. 최근
유럽중앙은행의 국채매입 결정이나 일본의 아베노믹스 등 통화정책의 큰 변화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현재 우리경제 상황에서 원화절상압력을 줄이기 위한 이같은 계기를 찾기는 쉽지 않다. 단기적으로는 오히려 반대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과 국제사회가 우리나라의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를 근거로 원화의 저평가 해소를 강하게 요구할
수도 있다. 특히 중국의 경우 환율결정에 정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데다 금융시장이 충분히 개방되지 않아 서방세계가
압박하기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창 끝이 우리나라나 대만, 말레이시아 등을 향할 개연성도 있다.
당장은 해외 금융투자의 확대를 통해 원화에 대한 절상압력을 완화하는 정책이 준비되고 있다. 근래까지는 주식 등 금융상품에
대한 투자에 있어 해외투자에 비해 국내투자를 세제 등을 통해 더욱 우대하는 것이 현실이다. 양자 사이의 간극을 줄임으로써
해외투자에 대한 유인을 확대시켜나가는 것이 첫 걸음이 될 것이다. 사실상 허가제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 해외 부동산 구입과 이와
관련된 외환관리 규제 등도 좀더 자유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그림 11> 참조).
직접적인 외환수급 측면에서 원화절상압력을 완화하기 위해 해외투자를 활성화할 필요성이 제기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국내경제에서 소비 및 투자가 활성화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수입 개방도를 점진적으로 높여나가야 할 것이다. 현재 심화되고
있는 대외 불균형은 이처럼 내수경제의 성장활력을 높임으로써 시정해나가는 것이 근본적이고도 바람직한 대안이 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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