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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경제연구원 '글로벌 행보 속도내는 중국가전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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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년 새 열린 국제가전박람회는 중국기업들의 ‘잔치상’처럼 여겨졌다. 대형 부스와 미디어 행사, 전시장 인근 도심을 꽉 채운 광고판 등에서부터 한달이 멀다하고 미디어를 달구는 중국 가전기업들의 해외 브랜드 인수 소식까지 중국기업들의 상승세는 도처에 두드러진다. 이같은 해외 마케팅 및 인수합병 열기는, 한편으로는 해외사업에 자신감이 쌓인 덕분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 본토시장이 성장한계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주요 가전브랜드의 글로벌 경쟁력 현황을 브랜드, 기술수준, 재무역량 등 다방면에서 살펴보고 그들의 성공 가능성을 조망해봤다. 글로벌 시장의 문을 선행적으로 두드렸던 일부 중국 브랜드들의 실패, 선진기업과의 여전한 기술격차, 재무지표의 전반적인 악화 등을 고려하면 중국 가전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의 판도를 좌우할 만한 주요 플레이어로 부상할 가능성은 현재로선 높지 않다.  그러나 메이디와 같이 글로벌 매출비중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리면서 연구개발에 주력해온 몇몇 브랜드들은 몇 분야에서 성공적으로 안착할 가능성이 높다.

 


< 목 차 >


1. 중국시장 부진이 글로벌행 가속
2. 중국 가전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현황
3. ‘평균’ 보다 ‘선두’기업 경계해야

 


중국어로 ‘제판샤(接盘侠, JP Man)’라는 말은 다른 이로부터 좋지 않은 일을 모두 받아내는 사람(협객)을 뜻한다. 그런데 최근 들어 중국 가전기업들을 이렇게 부르는 경우가 많아졌다. ‘몰락한 귀족’격인 일본 가전기업을 접수하는 중국기업이 많아진 때문이다. 중국 여론의 반응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인수하는 일본 기업은 중국시장이 아닌, 글로벌 시장진출을 위한 발판 임에 틀림없다.

 


1. 중국시장 부진이 글로벌행 가속

 

 

중국 경제 둔화와 시장 수요 부진으로 중국 가전시장이 침체를 향해가는 지금, 해외시장 진출이 다수 중국기업의 선택지로 떠오르고 있으며 해외시장에 대한 야심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1) 부진한 중국시장


중국정부는 금융위기 이후 소비 부양을 위해 대규모의 보조금 정책을 시행했다. 가전기업에게 지급되는 보조금은 ▲에너지 절약 보조금 ▲이구환신(以旧换新) 보조금 ▲가전하향(家电下乡) 보조금의 3종이었다. 2013년 5월 31일 에너지절약가전 보조금 정책이 만료되면서 모든 가전 부양 정책이 종료돼 중국 가전시장도 침체기에 들어섰다.


2014년 냉장고, 세탁기, 평판TV 3종의 가전제품이 모두 소폭의 역신장을 기록했고, 2015년에도 부진을 이어갔다. 4대 주요 가전제품 중 세탁기와 평판TV는 각각4%, 3%의 플러스 성장을 유지했으나 에어컨과 냉장고는 각각 -10%, -7%로 대폭 하락했다. 비록 양문형 냉장고, 차세대 디스플레이 기술 적용 대화면 TV, 대용량 인버터 세탁기 등 프리미엄 제품은 높은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들 제품 군의 시장비중은 크지 않다. 최근의 부진상황은 향후 3~5년 중국 가전시장의 ‘신창타이’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첫째, 중국정부가 추진하는 ‘공급측 개혁’ 으로 인해 산업정책의 수단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 과거처럼 기업 판매 실적을 직접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보조금 정책은 사라지고, 기업의 생산효율과 제품의 질 측면에서 우수기업에게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변화할 것이다. 지난해 11월 공신부 등 3개 부서가 새로운 가전산업 지원 정책으로 공개한 ‘가전 에너지효율 선도자(领跑者)’ 제도가 대표적이다. 이 제도는 냉장고, 에어컨, 평판TV 3종을 대상으로, 에너지 고효율 제품 생산 장려가 목적이다. 지원 방식은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 아닌, 에너지효율 기준에 부합하는 가전제품에 대해 정부 구매시 우선 고려하고, 정부 인증을 이용해 관련 제품을 홍보할 수 있다는 정도이다. 올해 3월 초에는 발개위 등 10개 부서에서 <녹색소비 촉진에 관한 지도의견>을 발표, 향후에도 선도자 제도를 통해 녹색소비와 기업의 공급측 개혁을 촉진하겠다고 밝혔다.


둘째, 과거 소비 부양책의 영향으로 중국 가정 내 가전 보유량이 거의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3종 소비 부양책으로 인해 농촌의 냉장고, 세탁기, 컬러TV 보급률이 각각 2009년 37%, 53%, 108%에서 2013년 73%, 71%, 113%로 상승했다. 도시의 경우 보급률이 거의 100%에 달한다. 부양책에 힘입어 소비자들이 소비를 앞당겼고, 대형 가전제품은 내구연한이 길어 조만간 대규모 교체 수요가 발생하기 어렵다. 앞으로 3~5년은 내수 부진의 상황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중국의 가전시장은 부동산시장 경기와 연동돼 있다(<그림 1> 참조). 현 경제지도부는 투자를 통해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는 방식을 거부하고 있다. 따라서 이전 경제성장에 중요한 기여를 했던 부동산 시장에 불확실성이 커졌다. 도시 집값 상승세에 알레르기가 있는 정부는 부동산 부양정책을 출시하는데 있어 전보다 신중해졌다.


정부는 농민공들을 도시로 유입하여 도시화를 촉진하고 부동산 재고를 소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2020년까지 도시화율을 6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가전 연구기관들은 도시화 정책이 만약 순조롭게 목표를 달성한다면, 2020년까지 약 1,800만 대(가전제품 1종 기준)의 신규 가전제품 수요가 발생할 것이라 추정한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부진에 빠진 가전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긴 어렵다.


2) 호시탐탐 해외시장을 노리는 중국 가전기업

 

글로벌 명품 브랜드 샤넬의 영국 플래그쉽 매장 면적은 약 1,100㎡다. 올해 CES에서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한 TCL의 전시장이 이 만큼 넓었다. 창훙(长虹·Changhong), 하이센스(海信·Hisense) 등도 TCL처럼 전시행사에 공을 들였다. 한국과 일본의 주요 소비가전 기업들과 공동으로 전시장 옥외광고에도 투자했다. 삼성전자 부스 옆에는 하이얼(海尔·Haier)의 곡면 TV가 들어섰다. 전체적으로 중국기업들의 화려한 마케팅이 호평을 받았는데, 전자 산업 전문 컨설팅 회사인 IHS는 “화려한 부스를 선보인 중국 브랜드들이 지난해보다 더욱 강력해 보인다(Chinese brands looked stronger than 2015 with slicker booths)”라고 평가했다.


글로벌 전시행사 외에도, 최근 중국 가전기업들이 주요 광고 포인트들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국경절(10월 1일) 연휴기간에는 하이얼, 하이센스, 거리(格力·Gree), TCL, 스카이워스(创维·Skyworth) 등 중국 가전 10개사의 광고를 뉴욕 타임스퀘어의 거대한 스크린에서 볼 수 있었다. 중국 기업들의 타임스퀘어 집단 광고는 당시가 처음으로, 엄청난 예산을 들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이얼, 하이센스는 지난해 1월, 8월에도 독자적으로 타임스퀘어 광고를 집행했다.


중국 가전기업들의 해외 인수합병 뉴스도 계속해서 화제가 되고 있다(<표 1> 참조). 한 해 한 두 차례 나오던 뉴스가 아예 월 한 건씩 쏟아지고 있다.


가장 최근의 인수합병 소식은 메이디(美的·Midea)의 도시바 백색가전사업 인수였다. 메이디가 중국 A주 시장에 발표한 공고에 따르면 메이디는 일본, 동남아시아 등지에 분포해 있는 도시바의 공장, 판매채널 및 R&D센터를 인수한다. 메이디가 현재 전세계에 7개의 생산기지와 3개의 R&D센터를 보유하고 있지만, 자체 브랜드 판매비중은 글로벌 매출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도시바의 유통역량을 활용해 자사 브랜드 제품의 영향력을 키우겠다는 의도다. 메이디는 GE 가전부문 인수 논의에도 참여했었으나 결국은 하이얼에게 기회를 빼앗겼다.


하이얼은 올해 1월 54억 달러로 GE의 미국 공장과 R&D 부문, 글로벌 물류 채널을 손에 넣었다. 인수의 목적은 GE의 역량을 빌려 제품 라인, 판매 네트워크, 글로벌소싱 분야를 보강하여 미국 백색가전 시장 3위로 올라서는 한편 글로벌 영향력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하이얼과 메이디 외에도 많은 중국기업이 M&A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 대한 중국 가전업체들의 열정은 이제 모두가 아는 사실이 됐다. 이들 기업의 경영진들도 공식석상에서 글로벌 전략을 잇따라 발표하며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표 2> 참조).


중국기업이 진정한 글로벌 강자로 부상하려면, 일본 및 한국기업들이 밟았던 것처럼 브랜드 영향력과 기술수준 등에서 대대적인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이 같은 조건을 갖추기 위한 두터운 자금력과 지속적인 수익능력도 뒷받침돼야 한다. 이하에서 중국 가전기업이 각 분야에서 어느 수준에 도달했는지 평가해보기로 한다.

 


2. 중국 가전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현황

 


먼저 중국의 대표적인 가전기업의 현재 국내 시장 및 해외시장의 실적을 살펴보자(<그림 2> 참조). 각 기업의 사업보고서를 살펴보면, 전체적으로 중국 기업의 해외 매출 비중은 비교적 낮은 수준임을 알 수 있다. 일찍이 1999년 해외시장에서 글로벌화를 실현하겠다고 선언했던 하이얼의 경우에도 매출의 80% 이상이 여전히 중국 본토시장에서 발생한다. 메이디와 TCL은 다른 중국 가전기업들보다 글로벌화에 앞서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선두 한국기업들과는 격차가 적지 않다.


1) 브랜드 영향력


포브스 글로벌 2000(Forbes Global 2000)은 매출, 이익, 자산 및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글로벌 1~2,000위 기업을 선정한다. 중국 가전기업의 순위는 최근 5년 동안 빠르게 상승해왔다. 2011년에는 1,000위권 밖이었던 메이디, 거리, TCL은 2015년엔 각각 385위, 436위, 820위로 올라섰다.


그러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브랜드 인지도 조사 순위에서는 여전히 중국 가전기업의 이름을 찾아볼 수가 없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밀워드브라운(Millward Brown)이 매년 회사의 매출과 소비자의 인지도를 종합하여 발표하는 글로벌 100대 브랜드(BrandZ Top 100 Global Brands) 순위에는 아직까지 중국 가전기업이 포함된 적이 없다. 글로벌 소비자들 사이에서 중국 가전 브랜드의 영향력은 매우 취약하다고 볼 수 있다.


대대적인 브랜드 홍보를 통해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 수는 있었지만, 특정한 시장에서 장기간 유효한 브랜드 영향력을 갖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래의 하이얼과 하이센스의 미국 시장 사례에서 알 수 있듯, 특정 제품에 대한 시장의 관심은 금방 끌어 모을 수 있지만 브랜드 영향력은 하루 아침에 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이얼은 1999년부터 글로벌화에 시동을 걸면서 첫 번째 목표로 미국시장을 선정했다. 그러나 17년이 지난 지금도 미국 소비자들에게 하이얼이라는 브랜드는 낯선 이름이다. 구글 트렌드를 통해 분석해보면 미국시장에서 하이얼과 월풀의 영향력에는 큰 격차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그림3> 참조). 이번 GE 인수 자체가 하이얼이 미국시장에서 자체 브랜드 경영에서 좌절감을 겪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이센스는 작년 8월 샤프의 멕시코 공장을 인수한 후 미국에서 대대적인 제품 발표회와 광고를 진행하면서, 하이센스와 샤프의 듀얼 브랜드 전략을 펼치고 있다. 그 덕택에 구글 검색량에서 하이얼과의 격차를 점차 좁혀나가고 있으며, 한 때 하이얼을 넘어서기도 했지만 선진 브랜드와 격차는 여전히 크다.


17년의 노력을 쏟은 하이얼도 확고한 브랜드 파워를 지니지 못했으니, 기타 중국 기업들이 3~5년 내에 이 목표를 실현하겠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TCL의 리둥성(李东生) 대표조차 작년에 “현 단계에서 중국 브랜드는 외국 브랜드와 격차가 크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중국 브랜드가 향후 3~5년 내 성공적으로 글로벌 브랜드 입지를 다지기는 쉽지 않은 일이며, 최근 해외 브랜드 인수합병 후에도 모두 멀티 브랜드 전략을 채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 기술 수준

 

기술수준 평가는 글로벌 선두를 차지하고 있는 한국 가전기업을 비교대상으로 특허 수, R&D 투입, 최신 제품의 기술트렌드 반영 여부, 프리미엄 시장 내 위상 등으로 나눠 살펴봤다.


특허와 R&D 투자


중국 정부기구 홈페이지는 자국시장에서 기업들이 판매하는 가전제품의 분야별로 특허현황을 공개하고 있다. 이 중에 2011~2015년 특허 현황을 통해 중국기업과 해외기업 간 격차와 발전 추세를 살펴볼 수 있다.


먼저 가전 전체 분야에서 특허수(누적)의 절대강자는 한국 기업이다. 보유한 특허 수가 중국 7개 기업의 총합을 넘어선다. 메이디는 가전제품 전 분야를 감안할 때, 특허 수에 있어서 중국 최고기업이지만, 한국 양대 기업을 합친 숫자의 7%에 불과하다.


중국 기업들은 제품분야 별로 격차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메이디는 특히 냉장고 분야의 특허가 가장 많아 하이얼의 두 배에 달했다. 메이디가 보유한 에어컨 특허 역시 에어컨 전문기업인 거리를 넘어선다. 반면 세탁기 분야의 강자는 단연 하이얼로서, 나머지 6개 기업의 총합을 뛰어넘는다. 컬러TV 분야에서는 TCL이 약 5,000건의 특허로 모든 경쟁자들을 제쳤다. 
둘째, 비록 절대 수량으로는 중국기업이 한국기업에 크게 못 미치지만, 최근 발전추세만 따지면 대다수 중국기업의 특허 신청 건수 증가세가 더 높다. 메이디는 최근 5년간 30% 이상의 증가세를 보여주고 있다(<그림 4> 참조). 연구개발 투입을 끊임없이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7개 중국기업 중 2014년 매출 대비 연구개발 투입이 가장 높은 기업은 하이센스(4%)와 TCL(3%)이었다. 지출액 절대치로는 매출이 하이센스의 5배에 이르는 메이디가 선두(40억 위안)다. 메이디의 연구개발 비중은 2012년 바닥권인 0.9%에서 2.8%까지 빠르게 치솟았다. 이 추세가 유지된다면, 백색가전 분야에서 한국기업을 따라잡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설사 메이디가 신규 특허 수를 매년 50%씩 늘린다 해도, 한국 기업의 수준(양대 회사의 평균치)에 도달하기까지는 5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한국기업들은 가전 외 사업분야가 다각화돼 있어 기업 전체의 R&D투자 비율 자체가 높다. 중국 기업들의 따라잡기란 결코 쉽지 않은 과제다.


최신 제품의 산업발전 트렌드 반영도


해마다 연초에 열리는 CES는 전세계 소비자 가전산업의 풍향계일 뿐 아니라 선진기업들이 핵심기술과 견본을 공개하는 마케팅 무대이기도 하다. CES가 끝나고 두 달 후인 3월 초 중국 가전협회 주최로 열린 상하이 가전박람회(AWE)는 중국시장에 관심이 큰 중국 안팎의 브랜드들이 총 참가한 ‘중국향(向)’ 마케팅 무대였다. 다만 AWE는 주로 백색가전 위주 전시회이기 때문에 본고에서는 CES에서 전시된 TV제품과 AWE에 전시된 백색가전 제품을 통해 주요 중국기업들의 기술 현주소를 비교해봤다.


올해 CES에서는 파나소닉을 제외한 모든 주요 TV업체들이 초슬림 TV 제품을 내놨고, 하이얼을 제외하고 모두 HDR 화질의 TV를 내놨다. 슬림한 외관과 HDR급의 영상효과, 그리고 퀀텀닷과 OLED를 포함한 차세대 디스플레이 기술이 미래 TV 하드웨어 발전의 큰 트렌드임을 알 수 있다. 한국과 일본 기업은 두께가 4.9~6㎜에 불과한 초슬림 제품을 내놨고, 이미 양산 단계에 진입했다고 밝힌 반면, 하이센스의 초슬림 TV두께가 11mm였다.


CES 개막 몇 일 전, UHD 얼라이언스(UHD Alliance)는 ‘Ultra HD Premium’ 인증을 시작했다. 이 새로운 인증은 UHD TV의 해상도, 색재현율, HDR 디스플레이 효과 등 분야에서 규정된 조건을 갖춘 제품에만 부여한다. 한국과 일본 기업이 주로 이 인증을 받은 TV 제품을 선보였는데, 중국기업 중에선 처음으로 TCL이 이 인증을 받은 제품을 발표했다.


이는 TCL이 프리미엄 제품에서 글로벌 브랜드와의 격차를 좁혔음을 보여주지만, 사실 TV 디스플레이 기술이 부단히 발전하고 TV 모듈의 외주 생산이 추세가 됨에 따라 TV 업체가 자체적으로 기술적 혁명을 이룰 수 있는 여지는 이미 크지 않다. TCL은 중국 TV 제조사로는 유일하게 한국 기업들과 같이 자체 디스플레이 기업을 보유하고 있다. 이 점이 TCL의 강점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TCL산하의 디스플레이 기업은 아직 차별화된 기술력이 미흡한 상황이다.


상해 AWE에서 나타난 백색가전의 경쟁 포인트는 외관과 스마트 기능이었다. 삼성전자가 CES에서 21.5인치 디스플레이를 내장한 양문형 냉장고로 시선을 끌자, 중국 업체들도 AWE에서 이를 모방한 제품들을 쏟아냈다. 메이디는 쇼핑, 음식물 성분 측정, 안면 인식이 가능한 대형 스크린을 장착한 양문형 냉장고를 내놨다. 하이얼은 한 면은 스크린, 한 면은 투명한 유기유리로 되어 있으며 SNS 기능까지 담고 있는 양문형 냉장고를 선보였다. 다만 대부분 컨셉 제품 단계에 머물고 있고 아직 출시 계획은 없다.


각 업체들의 스마트 가전제품을 비교해보면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중국 가전업체들은 주로 인터넷과 센서 등 IoT 기술을 이용해 기계와 인간의 소통을 실현하는 방식으로 가전제품의 스마트화를 강조하는 반면, 하드웨어 제품 자체의 스마트화에는 다소 둔감하다는 인상을 준다. 하이얼과 메이디의 가전제품들은 대부분 스마트폰 앱을 통해 원격조작이 가능하다. 하이얼의 경우에는 스마트폰으로 에어컨 원격 조정이 가능하다. 또 에어컨이 스마트폰의 GPS정보를 받아 사용자가 집에 가까이 오면 저절로 켜지도록 설정할 수도 있다. 메이디는 적외선 센서와 음성 센서 등으로 소비자들이 손짓과 목소리로 에어컨을 조작할 수 있다. IoT 영역의 스마트홈 제품 라인을 갖추기 위해 하이얼은 U+Home, 메이디는 M Smart라는 스마트홈 플랫폼을 구축하여 개발자들이 더 많은 제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중국기업과 달리 일본 및 구미 기업들은 하드웨어 제품 자체의 스마트화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다. 예를 들어 일본기업은 제품 내의 스마트 통제시스템을 통해 소비자의 사용습관을 기억하고, 외부환경을 감지하여 가전제품이 스스로 최적의 에너지를 소모하도록 조절한다. 제품에 인터넷 기능을 연결시키는 형태는 아닌 것이다. 월풀 세탁기는 세탁물의 종류와 양에 상관 없이 소비자가 버튼만 누르면 세탁기가 스스로 무게와 질, 오염도에 따라 세탁방식을 조절한다.


한국기업은 두 가지를 모두 결합한 형태이다. 제품 자체의 스마트 기능과 함께IoT 쪽에도 노력을 쏟고 있다. 하드웨어 제품 자체에 각종 스마트 기능을 넣는 한편 자사의 스마트TV 제품을 허브로 하여 기타 가전 제품을 조작할 수 있도록 하며, 각종 센서 제품도 연구개발하고 있다.


중국 가전기업들은 백색이든 흑색이든 인터넷 포털 등 업계 외부와의 공조를 통해 소프트웨어 역량을 높이고 있지만, 하드웨어 제품 자체의 스마트화에는 아직 격차가 느껴진다. 그 이유는 첫째, 중국기업이 쌓아올린 하드웨어 기술이 부족하고, 둘째 중국 업계 내에서 아직까지 스마트 가전제품에 대한 정확한 표준이나 정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의 2011년 스마트가전 표준은 가전제품이 전력공급원의 신호나 사용자의 요구에 따라 자체적으로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중국은 하나 또는 여러 스마트 특성을 갖춘 가정용 전기로 간단하게 정의하고 있다. 중국기업들이 중국 시장 외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려면 해당 시장에 맞는 스마트 기능을 탑재해야 하는데 이것 역시 간단치 않은 숙제다.   
<그림 5>는 글로벌 및 중국의 주요 가전 브랜드들의 스마트화 수준을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 기술력으로 나눠 차별화시켜 본 것이다.


프리미엄 제품의 시장 점유율도 낮은 수준

 

글로벌화를 꿈꾸는 모든 기업에게 프리미엄 제품은 반드시 정복해야 할 시장이다. 프리미엄 제품은 핵심 기술력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중국기업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내수시장에서도 백색가전이든 흑색가전이든 프리미엄 영역은 모두 외국계 브랜드가 점하고 있다. TV를 예로 들어 살펴보자.


GfK 통계에 따르면 2015년 중국 6대 TV 제조업체들이 전체 시장의 70%를 차지하는 훌륭한 성적을 올렸으나, 프리미엄 제품 영역에서는 이와 상반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화면 및 기술 트렌드를 반영하여 60인치 이상, 4K 디스플레이 기술 적용제품을 프리미엄 제품으로 봤을 때 삼성, 샤프, 소니, LG 등 해외 브랜드가 약 65%의 시장을 차지하고 있다(<그림 6> 참조). 중국시장에서도 중국 브랜드의 프리미엄 제품이 시장에서 완전히 자리잡지 못한 상황이니 해외시장에서는 더 어려울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기술측면의 다방면의 격차를 고려할 때 중국기업들이 자국시장을 넘어서 세계시장의 주요 플레이어로 올라서려면, 상당한 투자를 오랫동안 지속해야 함을 알 수 있다.


3) 재무상황의 허실


가장 먼저, 최근 3년간 매출 증가율이 계속 ‘+’로 나타난 기업은 TCL, 하이센스, 메이디 뿐이다(<그림 7> 참조). 하이얼과 거리는 2015년 오히려 매출이 감소했다. 양 사의 주력 제품인 에어컨 매출이 부진한 것이 직접적인 요인 중의 하나이긴 하지만, 매출이 증가한 다른 기업들과 비교했을 때 두 기업의 중국 국내시장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이 매출 부진의 중요한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메이디는 해외 매출이 40%에 달하고, 지난해 TCL, 하이센스, 스카이워스가 해외시장에서 좋은 성과를 올린 것을 볼 때 해외시장 확대가 앞으로 중국 기업의 성장에 중요한 요인이 될 것임을 알 수 있다.


둘째, 백색가전 위주인 메이디 거리 양사는 영업이익률이 최근 5년간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그림 8> 참조). 이는 백색가전 분야의 원자재 가격이 대폭 하락하여 기업 비용이 개선된 것에 힘입은 바가 크다. 성장속도가 가장 빠른 거리의 예를 살펴보면, 2015년 3분기 영업비용이 20% 하락한 상황에서 영업이익규모는 전년대비 2.7% 하락했다. 메이디는 대폭적인 매출증가에 힘입어 영업이익률이 2011년의 6%에서 2015년 12%로 상승했다. 그러나 기타 기업의 지속적인 수익능력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TCL은 영업이익률이 비교적 낮고, 하이센스는 최근 수년간 영업이익률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TV 시장은 최근 1년간 전반적으로 원자재 가격도 하락하고 있지만 TV 완제품 가격도 하락하여 TV 업체의 이윤폭도 점차 감소하고 있다. 영업이익률 면에서는 중국 백색 가전업체들이 수익성이 높았던 것은 원자재 하락이 주된 요인이며 TV업체 경우는 영업이익 수준도 낮고 변동성도 심해 안정적이지 못하다. 전반적으로 중국 가전기업들의 수익성은 그리 좋지 않은 상황이다.


마지막으로, 각 기업의 가장 최근인 지난해 3분기 현금흐름을 2년전과 비교해 보면, 각 업체별로 잉여현금흐름에 큰 차이가 있다(<그림 9> 참조). 전반적으로 잉여현금흐름이 하락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TCL의 경우 영업현금흐름 상황은 좋은 편이나, 공장건설을 위한 투자 등 현금유출이 증가하면서 잉여현금흐름은 계속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거리의 경우, 영업이익이 계속 증가하는 등 수익창출능력이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고, 대규모 투자나 M&A 등을 통한 현금유출이 없어 높은 수준의 잉여현금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메이디도 거리와 비슷한 상황이나, 최근 도시바 백색가전사업 인수 선언으로 현금흐름의 변화가 예상된다. 해외 M&A를 선언했던 하이센스, 스카이워스 등은 2015년 3분기 누계로 잉여현금흐름이 모두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이들 기업의 수익능력과 성장성이 지속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한 대규모의 해외 M&A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이얼의 경우에도 자사의 현금흐름 상황이 좋지 않아 결국 GE를 인수할 때 국가개발은행에서 30여 억 달러를 대출하여 ‘현금+대출’을 통한 인수방식을 선택했다.


재무상황을 전반적으로 살펴보면, 일부 기업의 매출이 지속적으로 성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매출 규모, 수익성, 현금흐름은 모두 여전히 취약함을 알 수 있다. 해외 M&A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기업의 경우 현금흐름이 충분하지 못해 수익능력이 대폭적으로 개선되지 않는다면 해외 인수합병을 통해 글로벌화를 실현하겠다는 목표를 이루기 쉽지 않아 보인다. 수익성의 개선은 또한 제품의 품질개선, 혁신 등 경쟁력 향상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하이센스, 스카이워스 등 중국기업들이 수익성을 대폭 개선할 가능성도 높지 않다.


반면 수중에 대량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거리전기의 경우는 앞으로 해외 인수합병의 길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거리는 지난해 말, 처음으로 대규모 해외 경소상 대회를 개최한 자리에서 정식으로 글로벌 시장 정복에 대한 야심을 드러냈다. 다만 매출의 90% 이상을 국내시장에 의존하고 있는 거리가 에어컨시장 부진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수익능력을 유지할 수 있는가는 고민해봐야 할 부분일 것이다. 메이디의 경우 수익능력이 강할 뿐 아니라 현금흐름도 양호하며, 장기간 고성장을 유지해온 기업이다. 그러나, 도시바 인수로 인해 인수대금 및 인수 초기 융합 비용 등 비용이 증가해 현금흐름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여 당분간은 기반이 탄탄한 국내시장에 주력하면서 재무상황을 개선할 것으로 보인다.

 


3. ‘평균’ 보다 ‘선두’기업 경계해야

 

 

2015년의 해외 M&A를 통해 메이디, 하이얼, 스카이워스, 하이센스 등 기업은 브랜드 사용권을 획득한 동시에 선진국의 생산기지 또는 선진국에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얻었다. 이들 기업의 글로벌 사업 능력을 높이고, 선진국 시장 공략에 있어서도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은 분명하다(<표 3> 참조).


중국 가전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활발한 모습을 보이자 중국 언론에서는 ‘중국 가전기업이 세계를 흔들고 있다’는 보도가 끊이지 않고 있다. 메이디가 도시바의 백색가전 사업을 인수했다는 소식에 한 중국언론은 ‘하이얼과 메이디, 글로벌 백색가전 양대 산맥으로’라는 헤드라인을 달기도 했다. 그러나 앞의 분석에 비춰보면, 이러한 평가는 과장된 면이 있다.


브랜드 영향력, 기술력, 글로벌 사업 능력 등 어느 면에서 보나 중국 가전기업이 3~5년 내에 글로벌 가전업계를 이끌 선도자가 되기는 어렵다. 그러한 실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대규모의 시간과 경험을 들여 한걸음 한걸음씩 쌓아가야 한다. 해외 M&A라는 지름길을 통해 단점을 보완할 수는 있지만, 현재 중국기업의 수익성과 현금흐름으로는 연속적인 인수합병을 성공시키기 힘들다. 만약 자신의 실력에 의존하여 진정한 브랜드 영향력을 수립하려고 한다면, 첨단기술과 유연한 글로벌 운영능력을 갖춰야 할 것이다.


또 M&A가 항상 지름길이 될 것인지도 미지수이다. M&A는 최종적인 목적이 아니다. 이를 통해 자신의 브랜드와 해외진출 능력을 길러내는 것이 최종 목적이다. 이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서 중국기업은 인수 후에도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다. 동서양의 문화적, 법적 차이와 비즈니스 룰의 차이로 인해 중국기업이 인수 후에도 상당한 시간을 들여야 최종적으로 인수 및 융합의 과정을 마무리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인수한 해외브랜드와 설비, 역량 등이 반드시 중국 기업에 긍정적인 성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도 확신할 수 없다. 중국의 지리자동차는 2010년 볼보를 100% 인수했지만 5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 인수가 지리자동차의 브랜드 이미지를 개선하는데는 크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와 유사한 상황이 하이얼, 메이디, 스카이워스에게도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특히 하이얼은 자신의 2년간의 순익을 내놓고 GE를 손에 넣었다는 것은 미국시장에 대한 강한 결심을 보여주지만, 이로 인해 하이얼은 30여 억 달러의 부채를 짊어지게 됐다. 이는 하이얼의 향후 발전에 있어서 제약이 될 것이며, 더 좋은 사업 기회를 놓치게 될 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은, 향후 중국 정부의 가전업계에 대한 지원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3월 중순 공개된 <중국 13차 5개년 규획 강요>에는 중국정부가 향후 5년간 육성하고자 하는 산업이 드러났는데, 이 리스트에 가정용 전기기기 산업은 없다. 과거 보조금 지원 정책으로 가전산업 자체가 이미 과잉이 되어가고 있는 상황이고, 중국 정부가 주목하는 산업도 전통 제조업에서 반도체 등 첨단제조업으로 바뀌고 있다. 중국경제의 새 성장동력 산업에서 가전은 찬밥신세가 돼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글로벌 시장에선 중국 ‘평균’보다 ‘선두’ 기업과 경쟁을 염두에 둬야


여러 방면의 격차가 엄연히 존재함에도 중국 가전기업들의 성장세를 경계해온 것은, 이들이 중저가 영역에서 쌓아온 탁월한 원가경쟁력 때문이다. 이 강점 덕택에 중국 기업은 프리미엄 시장을 내주고도 지속적인 이익을 낼 수 있었다. 중국 기업의 기술이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고, 브랜드 파워 면에서도 쇠락한 일본 브랜드 정도의 수준에 도달하게 되면, 중저가는 물론 고가 프리미엄 영역에서도 원가경쟁력은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평균적으로 볼 때’ 중국 가전기업들의 글로벌 사업 역량이 부족한 것은 맞지만, ‘선두’ 기업만 놓고 보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다시 말해 글로벌 가전 브랜드들은 중국 가전의 선두주자가 조만간 강력한 경쟁자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음을 염두에 두고 경계를 늦춰선 안 된다. 현재의 기세만 볼 때 적어도 5년 내 특정 제품영역을 제패할 중국기업의 등장은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다.


앞에서 말한 전체적인 분석에서 메이디는 매우 강한 인상을 주고 있다. 메이디 브랜드의 글로벌 영향력은 찾을 수 없지만, 기술수준에서나 수익성에서나 현금규모에서나, 메이디는 모든 중국기업 중에서 단연 돋보인다. 비록 글로벌 사업 능력은 아직까지 취약하지만, 2015년에는 해외매출 비중이 50%를 넘어섰을 것으로 추정된다. 도시바 인수를 통해 메이디는 자신이 원하는 해외공장 및 해외 판매채널을 손에 넣을 것이며, 이는 글로벌 사업 능력 강화로 이어질 것이다. 물론 전제는 인수 후에 쌍방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융합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도시바를 인수한 후에도 5년 정도 메이디의 연구개발 투자, 기술수준, 수익성이 모두 현 수준의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다면, 아마도 메이디가 중국기업 중에서는 처음으로 글로벌 시장의 강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기업을 비롯한 글로벌 가전 브랜드와는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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