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 '디지털 경제, 과소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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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화두는 세계화에서 디지털화(digitalization)로 이동하고 있다. 스마트폰이 새로운 변화의 시작이었다. 소프트웨어가 모든 산업에 스며들면서 산업 구조를 바꾸어나가고 있으며, 데이터는 의미 있는 산출물(output)이자 생산의 중요한 투입물(input)이 되고 있다.
과거의 패러다임에 머물러 있는 통계, 제도 등은 빠르게 전개되고 있는 경제의 디지털화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는 모습이다. 공짜로 소비되는 다수의 디지털 콘텐츠들이 본연의 효용에도 불구하고 생산 통계에는 나타나지 않고, 점점 더 확대되는 프로슈머 현상도 제한적으로 반영되고 있다. 플랫폼은 기업의 전략과 규제에 새로운 관점을 요구하고 있으며, 디지털 거래는 조세체계의 유효성을 약화시키고 있다.
통계 상의 과소 평가는 공공정책이나 기업전략 등에 있어서도 과소 대응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이슈다. 통계부터 규제, 조세제도까지 디지털 경제를 제대로 담지 못하는 조짐들은 사회의 변화 속도에 법규 및 제도가 뒤쳐지고 있다는 경고의 신호일 수 있다. 디지털 시대에 맞지 않는 제도와 규제는 경계를 넘나들며 혁신을 전파하는 흐름을 막는다.
Digital 시대는 세상에 깔려 있는 수많은 디지털 자원들의 상당부분을 거의 대가 없이 마치 내 것인 양 사용할 수 있는 세상이다. 국가적으로는 그것을 최대한 가능할 수 있게 특히 그 흐름이 막히지 않게 해 주어야 할 것이다. 기업과 개인은 그것들을 얼마나 창의적으로 활용하느냐에 따라 그 경쟁력과 위상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 목 차 >
1. 디지털 경제, 새로운 국면으로
2. 현재의 틀로는 담기 어려운 디지털 경제
3. 시사점
1990년대 인터넷 보급이 시작되던 시기에 부상했던 디지털 경제가 최근 다시 주목 받고 있다. 디지털 경제의 최전선에 있는 미국의 실리콘 밸리뿐만 아니라 중국의 ‘산자이 생태계’도 두각을 나타내면서 새로운 경제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영국, 독일 등 주요국은 최근 들어 디지털 경제 관련 이니셔티브를 확립하고 지원정책 강화에 나서며 새 흐름에 합류하고 있다. 2015년 11월 터키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의에서는 디지털 경제를 주도하는 ICT 다국적 기업의 조세회피 방지가 주요 목표인 ‘BEPS Action Plan’, 이른바 ‘구글세’ 도입이 최종 합의되었다. 국제 무역에 있어서는 EU, 한-중-일 등 디지털 싱글 마켓 도입을 위한 노력이 확대되는 한편, 디지털 거래(digital trade)를 두고 주요국간 무역마찰의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현실에서 존재감이 확대되고 있는 디지털 경제는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력이 점점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개최된 세계지식포럼에서 다룬 ‘제4차 산업혁명(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이 대표적이다.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등으로 인한 디지털 혁명으로 생산성이 급증하고, 경제 전반의 대대적인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세계 경제가 ‘뉴노멀’ 상황에 빠져 ‘구조적 장기침체(secular stagnation)’를 고민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인 논의였다. 미래학자나 SF소설가를 통해서 접했던 미래가 그리 멀지 않았음을 ‘알파고 쇼크’를 통해서 크게 체감하였던 우리 사회도 디지털 경제에 대한 논의의 필요성이 높아졌다.
1. 디지털 경제, 새로운 국면으로
모바일 시대 이후 디지털 경제, 산업 전반으로 확산
디지털 경제는 간단하게 정의해서 디지털 기술에 기반한 경제를 말한다. OECD(2012)는 디지털 경제를 ‘전자상거래를 촉진하는 디지털 기술에 기반한 시장으로 구성된 경제’라고 정의하였다. 호주 정부(2009)에서는 “정보통신기술에 의해서 촉진되는 경제적, 사회적 활동의 글로벌 네트워크”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컴퓨터, 소프트웨어 등 정보처리 기술과 네트워크 등 정보통신 기술 발전의 결정체인 인터넷을 통한 디지털 정보의 자유로운 생산, 유통, 공유, 소비 등이 디지털 경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Internet Economy, Information Economy 등 인터넷, 정보통신기술 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다양한 용어들이 존재해 왔으나 최근에는 디지털 경제(Digital Economy)로 용어가 수렴하는 모습이다.
디지털 경제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된 것은 인터넷이 급속도로 보급되기 시작한 1990년대 중반 이후이다. 1998년 미국 상무부에서 작성한 보고서 ‘The Emerging Digital Economy’가 대표적이다. 동 보고서에서는 당시 신경제(New Economy) 현상으로 주목 받고 있던 미국 경제 장기 호황의 배경이 컴퓨터, 인터넷 등 정보통신기술의 발전과 이로 인한 경제 전반의 생산성 향상에 있었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나 디지털 경제의 장밋빛 환상에 대한 투자자들의 과도한 기대에 힘입어 형성되었던 주식시장의 거품이 꺼지면서 디지털 경제에 대한 논의도 크게 위축되었다.
디지털 경제는 모바일 인터넷과 함께 새로운 흐름에 접어 들었다. 과거 전자상거래나 ICT 산업 중심의 특정한 산업으로 이해되었던 디지털 경제가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새로운 흐름이 디지털 차원의 뉴 노멀(New Normal)에 해당할 만큼 거대한 구조적 변화라고 지적하고 있다. 올해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세계의 리더들이 모여서 논의했던 ‘제4차 산업혁명(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도 이러한 인식과 궤를 같이 한다. 디지털 경제의 새로운 변화들에 대한 공통된 이해를 바탕으로 대비하자는 것이 핵심 메시지였다. 혁명(revolution)이라고 부를만한 거대한 변화가 우리 앞에 놓여 있으며, 이미 거스를 수 없는 양상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소프트웨어, 플랫폼, 데이터가 그 흐름의 중심에 있다.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집어삼킨다
PC와 인터넷의 보급에 기반한 디지털 혁명의 기대로 부풀어 있던 1995년, MIT의 니콜라스 네그로폰테(Nicholas Negroponte)가 쓴 ‘디지털이다(원제: Being Digital)’는 ‘디지털 바이블’이라 불리며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세상의 최소단위가 물질(‘Atoms’) 중심에서 정보(‘Bits’) 중심로 바뀌는 시기가 임박했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닷컴버블의 붕괴와 함께 수많은 장밋빛 전망들도 한동안 수면아래로 가라앉았다.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집어삼킨다(Software is eating the world)”. 오늘날 세상의 변화를 한마디로 표현한 마크 앤드리슨의 2011년 월스트리트 저널 기고문은 네그로폰테의 예언이 뒤늦게나마 현실화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의 일상과 산업 전반이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양상은 ‘Atoms to Bits(아톰에서 비트로)’ 바뀌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ICT의 중심이 모바일로 바뀌면서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더 빨리 삼켜나가고 있다. PC시대부터 이미 소프트웨어로 녹아 들었던 백과사전, 지도, 음반, 신문, 잡지 등 콘텐츠에 이어서 지갑, 신용카드, 나침반, 전화기, 카메라, 녹음기, 네비게이션, 미디어 플레이어 등의 다양한 내구재도 스마트폰의 앱으로 녹아 들어가 버렸다.
인터넷의 시작과 함께 불어 닥쳤던 전자상거래, 전자금융의 확대에도 건재했던 소매유통, 은행 산업의 ‘Brick-and-Mortar’(오프라인 소매점포)도 모바일 커머스, 핀테크(fintech)에 의해서 점점 더 소프트웨어 기업의 앱으로 옮겨가고 있으며, OTT(Over-the-Top)의 등장으로 ‘Cord-cutting’현상이 벌어지며 TV 중심의 방송환경도 소프트웨어로 옮겨가고 있다. O2O, 온디맨드 이코노미, 공유경제 등으로 지칭되는 모바일 기반의 플랫폼 서비스들은 택시, 세탁, 청소, 배달, 의료, 법률 등 거의 모든 서비스 업종을 소프트웨어로 삼켜나가고 있다.
모바일 생태계를 기반으로 꽃피고 있는 IoT(사물인터넷), VR(가상현실), 3D 프린터 등은 우리 삶의 더 많은 부분을 소프트웨어가 삼켜갈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에 더 많은 사물이 연결될수록 소프트웨어의 역할은 더 커질 것이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자동차, 드론 등 운전에 있어서 사람보다는 인공지능과 같은 소프트웨어의 역할이 더 커질 것이다. 또한, 집에서부터 농장, 공장, 상점, 사무실까지 인터넷에 연결되는 모든 것이 ‘스마트’해지는 이면에도 소프트웨어가 자리매김 할 전망이다. VR(가상현실) 기술이 발전하여 점점 현실과의 경계가 사라지면 극장, 공연장, 경기장에서부터 전세계의 유명 관광지를 포함한 수많은 명소들까지 소프트웨어가 삼켜나갈 것이다. 3D 프린터는 물리적 제품마저 ‘비트화’시켜서 배나 비행기가 아니라 광케이블이나 무선 광대역망을 통해서 배송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스마트폰이 새로운 변화의 시작이었다. 데스크탑과 랩탑에 기반해 있던 인터넷의 잠재력은 스마트폰이 가세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되었다. 스마트폰의 빠른 보급으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사람의 수뿐만 아니라 시간과 장소의 제약도 급격히 낮아졌다. ‘고체’(Desktop PC)에 머물러 있던 소프트웨어는 ‘액체’(Labtop PC)’를 지나 현재에 이르러 ‘기체’가 되었다. 모바일 인터넷 시대는 일상생활 속 매 순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언제 어디서라도 ‘숨 쉬는 것’처럼 소프트웨어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손안의 고성능 컴퓨터는 모바일 시대와 함께 등장한 클라우드 컴퓨팅을 지렛대 삼아 어떠한 소프트웨어도 큰 부담 없이 구동할 수 있게 되었다. 앱스토어와 같은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전세계의 개발자들이 수십억 사용자들과 상호작용하면서 수백만 개의 다양한 앱들이 만들어지고, 다운로드되고 있다. SNS는 모바일과 접목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을 가상공간에서 만날 수 있게 하면서 다양한 가능성을 만들어내고 있다. 가상공간에서의 활동이 늘어나는 만큼 생산되는 데이터도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스마트폰은 PC 중심의 ICT 생태계를 모바일 중심으로 완전히 바꾸어 버렸다. 카메라 모듈에서부터 GPS, 자이로스코프와 같은 수많은 센서, 멀티터치 디스플레이, 배터리 등이 스마트폰 시장의 확대와 함께 가격이 하락하면서 점점 더 범용화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생태계는 마치 레고(Lego) 블록처럼 각각의 요소들이 재조합되면서 새로운 기술과 제품의 출현을 앞당기고 있다. 노트북 PC의 강력한 대항마로 떠오른 태블릿은 모바일 부품 생태계에서 탄생하였고, 웨어러블 디바이스, 드론, VR(가상현실)에서부터 차세대 자동차까지 다수의 새로운 산업들도 모바일 생태계를 기반으로 커나가고 있다. 수많은 사물들에게 부착될 센서가 핵심인 IoT(사물인터넷) 시대도 모바일 생태계가 없었더라면 더 먼 미래가 되었을 것이다.
세계 최대 택시회사 우버에는 택시가 한대도 없다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삼켜나가는 과정의 선봉에 있는 회사들은 단순히 디지털 기술만 이해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들의 핵심 역량은 제품에도 서비스에도 있지 않다. 미디어 전략가 톰 굿윈(Tom Goodwin)이 ‘테크크런치(TechCrunch)’에 기고한 기사의 한 대목은 달라진 비즈니스 환경을 단적으로 잘 보여준다.
“우버는 세계에서 가장 큰 택시 회사지만 차를 소유하고 있지 않다. 세상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미디어를 보유한 페이스북은 아무런 콘텐츠를 만들지 않는다. 세계 최대의 소매업체인 알리바바에는 재고 물품이 없다. 세계 최대의 숙박업체 에어비앤비가 가진 부동산은 없다.”
이들의 핵심 경쟁력은 바로 플랫폼 기반의 비즈니스 모델에 있다. 플랫폼은 정보를 중개한다. 모바일 브로드밴드에 연결된 스마트폰 덕분에 언제든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정보를 생산, 공유, 소비할 수 있는 사람 수와 시간, 공간의 범위도 넓어졌다. 디지털 세계와 현실 세계의 접점이 그만큼 늘어난 것이다.
위의 기사를 다시 번역해 보면, 우버는 운전이 필요한 사람과 운전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의 정보를 획득하여, 매칭시켜준다. 페이스북은 이야기(디지털 콘텐츠)가 필요한 사람과 해주는 사람이 만나도록 해준다. 알리바바는 물건을 사고자 하는 사람과 팔고자 하는 사람의 정보를 중개한다. 에어비앤비는 방이 필요한 사람과 남는 사람의 정보를 중개해 준다.
무어의 법칙이 지난 50년간 잘 작동한 덕분에 이들 정보는 생산하고, 저장하고, 배송하고, 복제하는데 거의 아무런 추가 비용이 들지 않는다. 대신에 더 많은 사람의 정보가 플랫폼에 유입될 수록 수요측면의 규모의 경제, 즉, 네트워크 효과에 의해서 플랫폼의 가치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
소비자가 한 명 더 플랫폼에 합류하면, 더 많은 공급자가 플랫폼에 합류할 유인이 생긴다. 동시에 공급자가 한 명 더 플랫폼에 합류하면, 더 많은 소비자가 플랫폼에 합류할 유인이 생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러한 양의 되먹임(positive feedback) 구조로 인해서 한번 성장 탄력을 받은 플랫폼은 인터넷을 타고 순식간에 글로벌 스케일의 기업으로 성장한다. 우버, 샤오미, 에어비앤비, 스냅챗 등 몇 년 전에는 존재도 몰랐을 많은 스타트업들이 유니콘의 반열에 오른 것도 모바일 인터넷 시대를 지렛대 삼아서 플랫폼의 가치를 높였던 것이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데이터는 새로운 석유다
리서치 회사 가트너(Gartner)는 “Data is the new oil”라고 말했다. 데이터를 석유(oil)에 비유한 것은 데이터의 중요성을 직관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석유산업에서 원유를 정제하여 아스팔트에서부터 석유화학제품, 의약품까지 다양한 고부가가치 제품들을 만들어 내듯이 데이터를 정제하여 정보를 뽑아내는 것이 중요한 시대에 접어 들었기 때문이다.
중고 자동차를 구입할 때 딜러가 전달하는 정보나 가격표가 제공하는 정보보다는 연비, 유지보수, 보험, 사고 이력 등의 데이터가 더 정확한 선택을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마찬가지로 데이터에 대한 접근도가 높아질수록 만들어 낼 수 있는 정보, 지식, 아이디어의 가치도 훨씬 더 높아질 수 있다.
최근 인공지능 발전을 주도하고 있는 딥러닝(deep learning)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딥러닝은 인공신경망에 기반한 기계 학습(machine learning) 기술의 한 종류로 최근 화제를 일으킨 알파고의 핵심 기술로도 잘 알려져 있다. 딥러닝의 이론적 배경은 1980년대까지 이미 충분히 연구된 바 있으나, 구현을 위한 컴퓨팅 환경과 데이터 마련이 매우 힘들었다. 2010년을 전후로 고성능 병렬 컴퓨팅을 큰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게 됨과 동시에 인터넷 사용자들에 의해 축적된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통해서 학습이 가능하게 됨에 따라 딥러닝은 오랜 암흑기를 거쳐 각광을 받고 있다.
인터넷에 연결되는 기기가 많아 짐에 따라 데이터의 양은 기하급수적으로 급증하였다. IBM에 따르면 지난 2년간 생성된 데이터가 유사이래 만들어진 데이터의 90%를 차지할 만큼 성장속도가 빠르다.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로 데이터를 원격으로 저장하고, 여러 장치에서 액세스할 수 있게 되었으며, 슈퍼컴퓨터급 컴퓨팅 자원을 필요할 때만 구입하여 방대한 데이터 분석에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동시에 ‘무어의 법칙’에 힘입어 데이터 저장, 처리 비용은 계속 저렴해졌다. 특히, 데이터 저장을 위한 비용이 급속도로 하락하였기 때문에 데이터를 사용한 후 새로운 데이터를 저장할 공간을 만들기 위해 데이터를 삭제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 결과, 여타 다른 자원들과는 달리 데이터는 고갈되지 않는다.
이러한 환경 하에서 데이터는 다른 데이터 집합과 결합해서 새로운 데이터로 재탄생 할 수 있게 되었고, 모바일 기기부터 클라우드 컴퓨팅까지 우리 곁에 넘쳐나는 컴퓨팅 파워를 이용하여 데이터를 ‘정제’하면 할 수록, 처음에 접했을 때 알지 못했던 문제점에 대한 해답도 찾을 수 있는 재생 가능한 자원이 되었다. 예를 들어, 날씨 데이터는 우산을 준비할지 결정하는 데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작물 수율을 예측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전세계 인터넷 트래픽은 1992년 0.001GBps(초당 전송된 기가비트, 초당 1,000,000,000 bits)에서 10년후 100GBps를 기록하였는데, 이 수치가 2014년에는 16144GBps까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CISCO에 따르면 스마트폰, 태블릿 등의 모바일 디바이스의 보급에 이어서 IoT(사물인터넷)가 점차 확대되어 기계와 기계간 통신, 즉, M2M(Machine To Machine) 통신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면서 2019년에는 인터넷 트래픽이 51794GPbs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2019년이 되면 1시간에 5,800만개의 DVD에 해당하는 데이터가 발생한다는 의미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데이터가 하루 하루 생성되고 있는 셈이다.
2. 현재의 틀로는 담기 어려운 디지털 경제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화두는 세계화에서 디지털화(digitalization)로 이동하고 있다. 소프트웨어가 모든 산업의 물리적 외피들을 벗겨내고 있다. 디지털 기업들은 플랫폼의 네트워크 효과를 이용하여 새로운 규모의 경제를 만들어 내고 있다. 데이터는 디지털 콘텐츠와 같이 소비자에게 효용을 주는 의미 있는 산출물(output)이자 ‘딥러닝’과 같이 빅데이터 기술로 정제되어 생산의 중요한 투입물(input)이 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은 ICT 산업을 넘어 전산업의 생산과정에 깊숙이 개입하여 새로운 기술과 발전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자동차, 유통, 방송, 금융, 교육, 의학 등 전산업의 작동방식이 디지털 기술이 융합되면서 그 근본부터 바꾸기 시작했다. 내연기관을 걷어내기 시작한 자동차 산업은 인공지능과 결합하면서 자율주행자동차 시대로 접어 들고 있다. 전통 제조업의 생산설비는 인터넷과 결합되면서 디지털 자동화에 접어 들고 있다.
이렇게 새로운 궤도에 올라선 디지털 경제는 현재의 틀로는 점점 더 담기 힘들어 지고 있다. 과거의 패러다임에 머물러 있는 법률, 조세, 무역, 통계 등은 빠르게 전개되고 있는 기술 혁신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의 서비스화(servitization)를 넘어서 경제의 디지털화(digitalization)라고 명명할 수 있을 만큼의 변화가 나타나면서 제조업 등 전통산업 중심으로 짜인 기존 체제와의 갈등이 점점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따라 국제기구, 정부, 학계, 산업계 등도 이에 대한 논의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통계에서 누락되는 디지털 경제
공짜경제, 공유경제, 디지털 융합 등 디지털 경제에서 자주 목격할 수 있는 현상들은 기존 통계에 여러 가지 과제를 던진다. 우선, GDP 통계에 포착되지 않는 문제이다. 1987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로버트 솔로(Robert Solow)가 “컴퓨터의 시대는 도처에서 확인되고 있지만 생산성 통계에서는 그렇지 못하다.”라는 이른바 ‘생산성 역설(productivity paradox)’을 주창한 이래로 이 문제는 여전히 학자간에 논쟁 중인 이슈이기도 하다. 현재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경제의 저성장을 두고서도 기술비관론자(techno-pessimist)들은 정보통신기술의 혁신에 의한 생산성 향상은 90년대 중반부터 시작해서 2000년대 중반에 모두 반영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에 기술낙관론자(techno-optimist)들은 혁신은 고갈되지 않았으며, 디지털 혁신의 많은 성과들이 통계에 누락되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낙관론자와 비관론자의 논쟁은 아직 결론 나지는 않았지만, 최근에 GDP 통계의 측정오류에 대해서 눈 여겨 볼만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5월 골드만 삭스의 얀 해치우스(Jan Hatzius)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세계 중앙은행들이 측정오류(Mismeasurement)에 대해서 주목할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예를 들어, 현행 GDP 통계가 빠르게 출시되는 소프트웨어와 디지털 콘텐츠를 포착해내지 못하고 있으며, 물가통계는 스마트폰의 급격한 품질 향상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사례로 거론되었다. 생산성은 과소평가되고 있고, 물가는 과대평가되고 있어서 실질 성장률이 실제 경제상황보다 낮게 계산된다는 것이다. 중앙은행이 현행 통계를 기준으로 정책 판단을 하게 되면 ‘비둘기파’ 성향(통화완화정책 지지 성향) 으로 편의 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기술 변화에 의한 통계의 유효성에 대해서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었다.
현행 GDP 통계에서는 ‘경제적으로 의미 있는 가격(economically significant prices)’을 통한 시장거래가 아니면 대부분이 누락된다. 예를 들어, 공짜경제처럼 가격이 사라지면, 통계에서도 사라지는 효과가 나타난다. 공짜경제 모델을 통해서 누군가는 효용을 얻고 있지만, 국가 전체의 효용을 측정하는 GDP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공유경제, 크라우드소싱(crowdsourcing) 등 디지털 경제의 주요 비즈니스 모델은 전통적인 소비자였던 가계의 지위를 바꾸고 있다. 개인이 소비자로서뿐만 아니라 생산자로 활동하는 이른바 ‘프로슈머(prosumer)’가 경제활동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GDP를 집계하는 국민계정체계(System of National Accounts, SNA)에서 가계는 일부 제한적인 경제활동을 제외하면 생산자보다는 최종 소비자로서만 활동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공유경제, 크라우드소싱과 같은 새롭게 출현한 비즈니스 모델의 경우에는 규제 사각지대에 머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지하경제와 같이 비관측경제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디지털 경제는 GDP 통계뿐만 아니라 기존의 산업분류체계의 유효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버는 소비자에게 택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기존 택시 사업자와 유효한 경쟁을 펼치지만, 정작 택시회사와 같이 택시를 보유하거나 운전기사를 직접 고용하지 않는다. 기존에 택시 산업을 정의했던 법규가 무력해 질 수 있는 것이다. 2013년 9월 우버를 합법화한 캘리포니아 주는 ‘네트워크 기반의 교통회사(Transportation Network Company)’라는 새로운 산업 분류를 통해서 우버를 양성화 시켰다. 산업분류체계는 인허가 규제, 조세 지원 등의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융합 산업의 정의와 분류에 대한 정부의 고민이 커질 수 있다.
무형재, 무형자산도 기존 통계에 일부만 반영
디지털 경제는 과거에 비해서 무형의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서 무형자산을 더 많이 활용한다. 그 중심에 데이터가 자리잡고 있다. 무형의 상품에는 서비스가 대표적이지만, 디지털 경제에서는 데이터와 같은 디지털 재화도 새로운 산출물의 하나로 인정되어야 할 만큼 비중이 커지고 있다. 디지털 재화는 재화와 서비스의 특성을 일부 보유하고 있으나 본질적으로 둘과는 다른 산출물이다. 디지털 재화는 서비스와 같이 형태가 없지만(무형성), 서비스와는 달리 사람이 직접 가치를 전달하지 않기 때문에 생산과 소비가 분리될 수 있다(분리성). 또한 재화와 달리 물리적인 형체가 없지만, 소비한 이후에도 내구재와 마찬가지로 스톡으로 유지할 수 있고(저장성), 이후에도 동일한 품질의 효용을 누릴 수 있다(동질성). Michael Mandel(2012)에 따르면 GDP 통계에서 누락되는 디지털 재화(데이터)의 경제에 대한 기여도를 고려하면 2012년 상반기 미국 경제성장률은 1.7%에서 2.3%로 높아진다고 추정하였다.
사용자 생성 콘텐츠가 누락되는 것은 현재 통계가 가진 한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에릭 브린욜프슨과 앤드루 맥아피가 공저한 ‘제2의 기계시대’에서는 이를 두고 이렇게 설명한다. “사용자 생성 콘텐츠는 측정되지 않는 소비자 잉여를 만들어 내기 위해, 측정되지 않는 방식으로 소비되는, 측정되지 않는 자산을 생성하는, 측정되지 않는 노동을 수반한다.” 다시 말하자면, 가격이 존재 하지 않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소비자 잉여의 누락, 화폐 교환 없는 소비, 공식 통계에 포착되지 않는 무형자산의 형성, 공식 고용 통계에 포착되지 않는 노동 등이 사용자 생성 콘텐츠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과정에 녹아 있는 것이다.
특히, 개인들이 생산하는 평가 및 리뷰 정보는 정보 비대칭성을 크게 축소시켜서 시장이 보다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게 해주고 있으나, 기존 GDP 통계에는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 소비자들은 제품 및 서비스에 대한 정보와 가격, 대안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쉽게 확인할 수 있게 됨에 따라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해외 여행에 대한 판단에서부터 해외직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거래를 온라인을 통해서 수행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정보들이 소비자의 선택뿐만 아니라 기업의 시장 조사에서도 중요한 기여를 하면서 새로운 상품이나 서비스들이 나올 수 있는 토대가 되기도 한다.
생산의 과정에서 활용하는 무형자산에는 조직 자본도 있다. 조직 자본(organizational capital)은 비즈니스 모델, 조직 형태, 생산 기법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디지털 경제를 주도하는 기업들이 대부분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이듯이 조직 자본은 과거 전통 산업에서의 공장 입지, 교통 및 물류 인프라 등과 같이 중요한 자본임에도 불구하고 통계상에는 여전히 제대로 다루어 지지 못하고 있는 영역이다.
이렇듯 디지털 경제가 확대됨에 따라 무형재와 무형자산의 기여도는 점차 높아지고 있지만, GDP와 같은 공식 통계에서는 여전히 누락되는 경우가 많다. 즉, 디지털 경제가 과소평가될 개연성이 높은 것이다. 통계가 다양한 정책적 판단의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 이러한 한계들을 보완할 필요는 높아질 것이다.
플랫폼은 새로운 규제와 전략을 요구
칼 샤피로(Carl Shapiro)와 할 베리안(Hal Varian)은 디지털 경제의 교과서라고도 불리는 Information Rules(1999)에서 전통 경제와 디지털 경제의 핵심적인 차이점이 네트워크 효과(network effect)에 있다고 설명하였다. 제조업 기반의 산업 경제가 공급 측면의 규모의 경제(supply-side economies of scale)를 통해서 효율성을 달성해 왔다면, 디지털 경제에서는 수요 측면의 규모의 경제(demand-side economies of scale), 즉, 네트워크 효과를 통해서 효율성을 달성하는 것이 크게 다른 점이다.
공급 측면의 규모의 경제가 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던 제조업 중심의 시대에서는 가동률, 생산단가, 시간당 생산성 등이 중요한 지표였다. 반면에 디지털 경제에서는 MAU(월간 활동사용자), Session time(체류시간), Retention rate(재방문률), LTV(고객생애가치)와 같은 지표들이 중요한 경쟁력 지표로 떠오른다. 디지털 경제를 주도하는 기업의 플랫폼에 이용자들이 얼마나 머무르고 상호작용을 하면서 네트워크 효과를 만드냐가 경쟁력의 근원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규제 측면에서도 새로운 관점이 요구된다. 전통 산업 경제에서는 공급 측면의 규모의 경제로 경쟁하는 기업들간에 과점 시장이 형성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디지털 경제에서는 네트워크 효과로 인하여 일시적인 독점(temporary monopolies)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전통 산업에서의 경쟁 규제를 디지털 경제에 일괄적으로 적용하기 힘든 이유이다.
플랫폼은 한쪽 집단의 수가 늘어날수록 상대 집단이 누릴 수 있는 효용도 증가할 수 있기 때문에 기존의 단면시장(one-sided market)과는 다른 가격 정책이 시행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신용카드라는 플랫폼에는 결제 서비스를 사용하고자 하는 가맹점과 신용카드를 사용하고자 하는 회원(소비자)이 결제 수단에 대한 수요를 통해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 이렇게 복수의 집단을 상호 중개하여 간접네트워크 효과를 내부화하여 효용을 얻는 시장을 양면시장(two-sided market)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신용카드사는 이 두 집단으로부터 수익을 얻는다. 하나의 집단에 대한 가격정책은 다른 집단의 수요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신용카드 회사가 회원에게 무료로 결제 서비스를 제공할 경우 신용카드 가입자수는 늘어나게 되고, 이로 인해서 가맹점은 더 많은 신용카드 사용자를 잠재적 손님으로 확보할 수 있다. 반대로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가맹점 수가 늘어난다면, 사용자가 결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대상도 늘어나게 되므로 회원에게도 이익이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용카드 회사는 가맹점으로부터 수취하는 결제 수수료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신용카드 회원에게 무료로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심지어 손해를 보면서 쿠폰 등 혜택을 제공하여 회원 모집에 나설 수 있다. 전통적인 단면 시장에서는 이러한 가격정책은 약탈적 가격정책(predatory pricing)으로 반경쟁적(anti-competitive)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양면시장의 관점에서는 신용카드 회사의 수익 극대화 전략으로 인정할 수 있다. 신용카드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네트워크 기반의 플랫폼들이 이런 속성을 갖고 있다. 2014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장 티롤(Jean Tirole) 교수는 이러한 양면시장에서 균형가격정책에 대한 연구를 수행해 경쟁당국의 시장규제정책에 있어서 중요한 시사점을 제시하였다.
지리적 경계는 점점 더 덜 중요해져
새로운 자원으로 부상한 데이터는 인터넷을 통해서 국경을 넘나들며 ‘디지털 거래(digital trade)’라는 새로운 개념을 탄생시켰다. USITC(미국 국제무역위원회)는 ‘디지털 거래’를 국내 상거래 또는 국제 무역에서 인터넷 기반의 기술이 상품 및 서비스의 주문, 생산, 배송에 상당한 역할을 하는 거래로 정의하였다. 디지털 거래(digital trade)는 전자상거래(e-commerce)와 유사한 개념이나,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SNS, 클라우드 컴퓨팅 등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등장으로 디지털 재화의 거래가 유의미한 규모로 성장한 것을 반영하여 보다 확장된 개념이다. USITC의 분석에 따르면, 디지털 거래는 생산성을 증가시키고 교역비용은 감소시켜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디지털 거래의 확대로 세계화의 초점은 상품 및 서비스, 사람, 자본 등의 자유로운 이동뿐만 아니라 디지털화된 정보의 국경간 흐름으로 확장되면서 ‘디지털 세계화(Digital Globalization)’의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맥킨지는 최근 보고서에서 21세기 세계화를 상징하는 데이터의 국경간 흐름이 전통적인 무역, 금융거래에 비해서 더 큰 경제적 기여를 했다고 분석하였다. 전세계 상품·서비스·자본 교역과 데이터, 인력 유출입 등은 글로벌 국내총생산(GDP)을 지난 10년간 10% 끌어올린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로 인한 글로벌 GDP 증가분은 2014년에만 7조8천억달러에 달했다. 이중 데이터 유출입이 기여한 부분은 2조 8천억달러(전체 대비 36%)로, 상품교역이 기여한 2조 7천억달러(전체 대비 35%)를 넘어섰다.
디지털 세계화 시대에 맞지 않는 기존의 과세 방식
디지털 세계화는 국민 국가의 중요한 주권인 조세체계의 유효성을 크게 잠식하고 있다. 디지털 경제에 제도적 대응이 과거의 패러다임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직접세와 간접세 측면 모두에서 허점들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G20 정상회의에서 합의한 BEPS 실행계획의 첫 번째 항목도 ‘디지털 경제가 직면한 세무적 과제의 지목’이었다.
전통적인 거래방식과 달리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사업활동의 경우 물리적인 사업장이 없이도 거래활동이 가능하다. 그러나 기존의 법인세 등의 과세는 고정사업장의 소재로 과세 권한을 결정한다. 고정사업장(permanent establishment)은 조세조약 등에서 다국적 기업에 과세 권리를 결정하는데 사용되는 개념이다. 고정사업장이 없이 디지털 상에서만 존재한다면, 과세의 근거가 사라지게 되므로 법인세 등의 부과에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다. OECD는 디지털 존재(digital presence)라는 새로운 개념의 도입을 통해서 고정사업장 규정의 한계를 보완하는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부가가치세는 소비에 대해 과세하는 간접세로서 세계화의 진전에 따라 소비지국 원칙에 따라 과세하도록 국제적인 합의가 이루어진 상황이다. 소비지국 원칙은 생산이 발생한 국가에서 과세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가 발생한 국가에서 과세관할권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재화의 경우에는 생산과 소비 국가의 식별이 비교적 용이하였기 때문에 소비지국 원칙으로 과세하는 것이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다양한 형태의 무형자산과 서비스, 디지털 재화의 국제거래가 활발해 지면서 소비지 판정에 대한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재화와 달리 물리적 실체가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다. 더군다나 디지털 재화의 경우 인터넷을 통해서 전달됨에 따라 생산과 소비 국가가 다르게 발생할 수 있으나 여행과 같이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발생하는 용역과는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과세의 어려움이 발생하고 있다.
3. 시사점
디지털 시대, 디지털 경제라고 하면 이미 20년은 된 오래된 이야기 같다. 그러나 손에 잡히는 것은 거의 생산하지 않는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알리바바 등의 기업들이 요즘과 같은 저성장시기에 꾸준히 주가를 올리며 세계 최대의 기업군을 형성하고 있는 데서 보듯이 디지털 경제의 위력은 최근으로 올수록 더 커지는 모습이다. 심지어 창업한지 몇 년 되지도 않은 우버 같은 기업이 GM, 포드 등의 시장가치를 웃도는 시대가 되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저성장의 늪에 빠져 있는 각국은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서 디지털 경제로 한 발짝씩 나아가려 하고 있다. 영국은 ‘Digital Economy Strategy’, 독일은 ‘Digital Germany 2015’, 호주는 ‘National Digital Economy Strategy’, EU는 ‘A digital agenda for Europe’ 등을 추진 중이다. 특히, EU는 내부적으로는 역내 디지털 단일 시장을 통해서 유럽 ICT기업의 성장 발판을 마련하는 한편, 미국 ICT 기업에 대해서는 보호주의 정책을 통해서 견제에 나서고 있다.
디지털 경제는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삼키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지만 통계적으로는 잘 포착이 안되고 있다. 기존 통계의 정의와 분류에 해당하지 않는 경제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 플랫폼, 데이터 등 디지털 경제의 핵심 구성 요소들이 모두 무형재라는 특징도 중요한 배경일 것이다. 이것들은 모두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공간을 기반으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산업, 기술 분야간 울타리를 넘나들면서 새로운 사업모델이나 디지털 재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누군가는 분명 효용을 얻고 있지만 통계에는 나타나지 않는 역설이 발생할 개연성이 매우 높다. 특히, 제조업 중심의 전통경제 기반에서 유지되어 왔던 많은 제도나 관행들의 관성으로 새로운 형태의 현상이나 결과물들이 과소평가될 경향이 있다.
통계 상의 과소 평가는 공공정책이나 기업전략 등에 있어서도 과소 대응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이슈다. GDP의 과소평가나 물가지수의 과대평가는 통화정책, 재정정책 등 거시정책의 오판을 야기할 수도 있다. 기업도 디지털 경제에 대한 투자의 타당성을 검토함에 있어서 과소평가의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앨빈 토플러는 부의 미래(Revolutionary Wealth, 2006)에서 “부(富)는 사회의 변화 속도에 맞춰 나라 법규 및 제도가 따라갈 때 창출된다.”라고 했다. 통계부터 규제, 조세제도까지 디지털 경제를 제대로 담지 못하는 조짐들은 사회의 변화 속도에 법규 및 제도가 뒤쳐지고 있다는 경고의 신호일 수 있다. 디지털 시대에 맞지 않는 제도와 규제는 경계를 넘나들며 혁신을 전파하는 흐름을 막는다.
Digital 시대는 세상에 깔려 있는 수많은 디지털 자원들의 상당부분을 거의 대가 없이 마치 내 것인 양 사용할 수 있는 세상이다. 국가적으로는 그것을 최대한 가능할 수 있게 특히 그 흐름이 막히지 않게 해 주어야 할 것이다. 기업과 개인은 그것들을 얼마나 창의적으로 활용하느냐에 따라 그 경쟁력과 위상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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