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 '준비된 기업이 버릴 수 있다'
장수하는 글로벌 기업들은 꾸준히 ‘버림’을 통해 경쟁기업과 차별화하며 고객가치를 만들어냈다. 고군분투하며 일궈온 자산을 버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다. ‘버림’은 오랜기간 고민과 준비 끝에 내린 ‘그들의 내일’에 대한 결론이다. 버릴 수 있는 용기는 이러한 결론에 대한 확신에서 나온다.
기업의 변신, 버림의 미학을 생각할 때
인간의 평균 수명은 계속 늘어나고 있는 반면, 기업의 수명은 날로 줄어들고 있다. 맥킨지는 1935년 90년에 달하던 기업의 평균 수명이 1975년에는 30년, 1995년에는 22년으로 단축되었으며 2015년에는 더 짧아져 15년에 불과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다. 글로벌 기업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포브스는 글로벌 100대 기업의 평균 수명도 약 30년에 불과하며 이들 기업이 70년간 존속할 확률은 18%에 불과하다고 발표하였다. 이처럼 생존이 점점 어려워지는 불확실한 환경 속에서 기업들은 살아남기 위해 선택과 집중을 통해 변신을 꾀하고 있다. 즉,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과감히 버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세계적인 전략가 마이클 포터는 ‘전략의 본질은 무엇을 하지 않을지를 선택하는 것이다’라며 버림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선택과 집중은 최근 국내에서도 활발하게 나타나고 있다. 과거 IMF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망가진 사업들을 헐값에라도 넘기기에 급급해하던 모습과는 달리 장기 전략에 따라 흑자 사업에 프리미엄을 얹어 매각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시장도 미래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사업구조 재편을 반기는 분위기이다.
버림, 왜 어려운가?
하지만 선제적 사업구조 재편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 중에서도 기업들이 가장 어려워하고 고민하는 점을 꼽으라면 ‘어떤 사업을 버릴 것인가?’일 것이다. 객관적인 입장이 되어 더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구분하고, 덜 중요한 것을 포기하는 일은 매우 고통스러운 과정이며 엄청난 용기가 수반되기 때문이다. 사업을 버린다는 것은 왜 이렇게 어려울까?
● 보유효과(Endowment Effect): 내 것에 대한 애착
행동경제학에서는 잘 버리지 못하는 습성을 ‘보유효과’로 설명한다. 보유효과란 어떤 대상을 소유하거나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대상에 대한 애착이 생겨 객관적인 가치 이상을 부여하는 심리 현상을 의미한다. 이처럼 애착을 갖고 있는 자신의 소유물에 대해서는 시장에서 평가하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판매하려고 하지 않는다.
카너먼 연구팀이 코넬 대학교 경제학부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실시하였다. 학생들을 무작위로 2개의 그룹으로 나누고, 한 그룹에만 대학의 로고가 그려진 머그잔을 선물했다. 머그잔을 가진 그룹과 머그잔을 가지지 않은 그룹 사이에서 머그잔 경매가 이루어지도록 했다. 머그잔을 가진 그룹이 팔려고 하는 금액은 머그잔을 가지지 않은 그룹이 사려고 하는 금액의 약 2배였다.
이처럼 작은 물건에 대해서도 소유로 인한 애착이 생기는데 고군분투하며 이끌어 온 사업을 정리하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다. 꾸준히 매출이 발생하고 적자 상황에 놓인 것도 아니라면 결정은 더욱 어려워진다.
● 매몰비용의 오류(Sunk Cost Fallacy): 이미 투자한 것에 대한 미련
매몰비용의 오류란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지금까지 투자한 것이 아깝거나 그동안 투자한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더 깊이 개입해가는 의사결정을 말한다. 매몰비용의 오류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주식시장이다. 보유하고 있는 주식의 주가가 하향세를 보이고 있지만 손실된 원금이 아까워서 주식을 매도하지 못하다가 더 큰 손해를 입는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이러한 행태는 사업 운영에서도 나타난다. 대표적 사례로 ‘콩코드 오류’가 있다. 콩코드 비행기는 1962년 개발 초기부터 한정된 탑승인원, 과다한 연료비, 엄청난 소음 등으로 사업성 이슈가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이미 막대한 개발비가 투자된 상황에서 의사결정자들은 계속 사업 추진을 고집하였고 만성 적자에 시달리다가 2000년도에 들어서야 시장에서 철수하였다.
기업, 버릴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장수하는 글로벌 기업들은 꾸준히 선택과 집중을 통해 경쟁기업과 차별화하며 고객가치를 만들어 냈다. 이러한 과정에서 흑자사업을 버린 기업도 있었고 주력사업이나 모태사업을 버린 기업도 있었다. 아예 사명을 바꿔 버린 기업도 있었다. 이들은 어떤 원칙과 준비로 버림을 실천했을까?
① ‘1등이나 2등’이 아니면 버린다: GE
2015년 4월, GE는 금융 부문을 매각 또는 분사의 형태로 최대 75%까지 정리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9월 가전사업 매각에 이어 2013년 그룹 전체 수익의 55%인 금융 부문까지도 정리하기로 한 것이다. 이멜트 회장은 “저성장과 낮은 금리, 풍부한 유동성, 투자자들의 고수익 추구 등 지금이 금융 부문을 매각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시기”라고 말했다. GE는 123년의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구조조정을 단행함으로써 제조, 미디어, 금융 등을 아우르는 복합기업에서 원자력, 항공엔진, 의료기기 중심의 제조업체로 다시 돌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잭 웰치 전 회장도 현명한 선택이라며 반겼다. 주식 시장 역시 이날 주가가 10% 이상 급등하며 지난 2009년 금융위기 이후 하루 최대 상승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GE가 이처럼 버림의 미학을 성공적으로 실천할 수 있던 것은 잭 웰치 시절부터 원칙으로 자리 잡아온 ‘1등 아니면 2등’ 전략이 큰 힘을 발휘했다고 볼 수 있다. 잭 웰치는 1등이나 2등이 아니면 도태시킨다는 경영철학으로 150개가 넘는 사업분야를 12개 사업군으로 재편성하였다. 그 결과, 잭 웰치가 재임하던 20년 동안 매출이 270억달러(1981년)에서 1259억달러(2001년)로 늘어났고, 주가는 40배 이상 뛰었다. 수익성이 낮은 사업은 지체 없이 정리하고 경쟁력을 갖춘 기업은 적극적으로 인수하는 GE의 경영 방식은 전세계 여러 기업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멜트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사업재편의 원칙으로 실천되고 있다. GE는 “무엇을 버릴 것인가?”에 대한 확고한 원칙을 갖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수시로 사업재편을 수행한다. 전략과 맞지 않거나 수익성이 악화된 사업을 과감히 도려내고 새로운 중점사업에 역량을 쏟아 경쟁력을 확보한다. 이처럼 위기가 오기 전에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가며 123년 동안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② 자신이 예측하는 미래에 부합하지 않으면 버린다: 지멘스
2014년 5월, 지멘스는 ‘지멘스 비전 2020’을 발표했다. 핵심내용은 전력화, 자동화, 디지털화 분야에 대한 집중투자와 이에 맞춘 조직개편을 단행한다는 것이다. 이어 9월, 가전 사업 철수와 함께 미국 에너지 장비업체인 드레서랜드 인수를 발표했다. 100년의 역사를 이어 온 가전 사업은 판매도 순조롭고 흑자를 기록해왔으나 에너지 사업에 자원을 집중하여 경쟁업체인 GE를 추격하기 위해서 철수를 결정하였다. 이러한 과감한 결정이 가능했던 이유는 지멘스가 끊임없는 사업재편으로 선택과 집중을 체화한 기업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업재편 과정에서 엿볼 수 있는 지멘스의 특징 중 하나는 자사 제품과 독점 기술 노하우를 먼저 분석하여 장기 성장과 고수익 관점에서 판단한다는 점이다. 장기 성장과 고수익이 보장되지 않는 사업은 예외 없이 버린다. 이러한 과정에서 Picture of Future(PoF)라 불리는 정교하고 정확도 높은 고유의 미래예측 연구기법을 활용한다. 매년 2회 발간하는 PoF보고서는 각 산업에 대한 트렌드와 미래 전망, 시나리오, 전문가 인터뷰 등을 담고 있다. PoF보고서를 통해 관련 분야의 최신 연구와 사업 동향은 물론 지멘스가 바라본 미래 사회와 기술까지 파악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미래 예측 연구를 통해 사업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고 새로운 사업기회를 발굴한다.
이러한 노력으로 현재 지멘스는 전력화·자동화, 가스 터빈, 해상풍력 분야에서 세계 제일의 수준을 자랑한다. 또한 포브스가 선정하는 ‘글로벌 2000대 기업’에서 대기업 부문 2위, 파이낸셜타임스가 선정하는 ‘글로벌 500대 기업’ 중 일반 산업 부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피터 드러커는 그의 저서 ‘피터 드러커의 위대한 혁신’에서 “혁신의 조건은 통찰력과 실행력에 있다”고 말했다. 자신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미래를 읽는 힘을 바탕으로 꾸준히 대안을 만들어가는 노력이 지멘스의 버릴 수 있는 용기의 원동력이자 지속적인 성장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일 것이다.
③ 고객의 요구에 따라 버린다: 슈나이더
슈나이더는 1836년 철강업체로 시작하여 전기설비 제조업체를 거쳐 지금의 에너지관리 솔루션 제공업체로 변신했다. 2013년, 235억유로의 매출을 기록하였으며 그 해 1월에 열린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서 ‘글로벌 지속가능경영 100대 기업’ 13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슈나이더는 산업혁명에 맞춰 중장비, 철도, 조선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1890년 이후에는 전력시장, 전쟁으로 혼란스럽던 19세기 초에는 군수사업에도 참여했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사업영역을 넓혀가던 슈나이더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군비, 중공업, 철강 등의 핵심사업에서 과감히 철수하고 미래 주력사업으로서 전기설비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1990년대, 전기설비 제조업체로 전성기를 맞이한 슈나이더는 에너지관리 분야에 눈을 돌리면서 다시 한번 과감한 변신을 한다. 매출이 꽤나 컸던 전력사업에서 손을 떼고 전력관리 회사로 거듭난 것이다. 1999년 5월 ‘슈나이더’에서 ‘슈나이더 일렉트릭’으로 사명을 바꾸고 전력관리 분야에 주력해오고 있다. 현재 발전플랜트, 전력인프라, 빌딩, 데이터 센터, 공장 등 다양한 시장에서 에너지의 안전성, 신뢰성,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에너지관리 통합 솔루션을 공급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변신의 성공 비결에 대해 CEO 장파스칼 트리쿠아르는 “변화를 꿈꾸는 기업은 고객이 원하는 것을 따라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한다. 당시만해도 생소하던 에너지 관리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 역시 고객에게 집중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기 시스템을 자동화해 줄 수는 없나요?” “전기 시스템을 더 효율적으로 운영하여 에너지 낭비를 줄이고 싶어요.” “전기 시스템을 제어할 수 있는 제어장치와 소프트웨어 프로그램도 만들어 주세요.” 등 고객의 요구사항에 귀 기울이며 에너지관리 분야라는 해답을 찾았다. 그는 “고객이 요구하는 사항을 수렴해서 필요한 해답을 건네 줄 수 있는 바로 그 시점이 기업이 변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④ 주력사업을 버리는 용기가 위기를 이긴다: 히타치
히타치는 2008년도에 일본 제조업계 사상 최대 규모인 7800억엔의 적자를 냈다. 심각한 위기 속에서 대규모 구조조정에 나섰다. 한국 업체들에 밀린 반도체, 디스플레이, PC, TV사업 등을 정리했다. 대신 인프라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신흥시장의 인프라 사업이 활발해질 것이라는 예상과 IT·제어기술 등 자체 기술이 강점이 될 것이라는 분석을 바탕으로 내린 결정이었다. 글로벌 인프라 전문기업으로 변신하기 위해 사회기반시설·IT시스템·전력·건설기계·특수전자기기·자동차부품 등 5대 사업구조로 재편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역량을 집중했다. 그들의 사업재편 과정은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온 일본기업들과는 다르게 진행되었다. M&A에 관해서는 상당히 보수적인 일본기업들과는 달리, 인프라 전문기업으로 변신하기 위해서 최근 3년간 20여개사를 M&A하였다. 또한 잘 나가는 사업도 전략과 맞지 않으면 과감하게 구조조정하였다. 완전히 망하기 전까지는 사업을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는 다른 일본기업들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었다. 일례로 당시만 해도 수익성이 높았던 LCD 사업은 파나소닉에,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 사업은 웨스턴디지털에 과감히 매각했다. 매각대금은 인프라 사업을 위한 M&A에 투입하였다. 이 같은 변신 속에 히타치 매출 구조는 안정적으로 바뀌었다. 가전사업 비중은 전체의 10% 아래로 떨어졌다. 반면 정보기술, 사회산업, 전자장치, 고기능소재 부문이 골고루 10% 이상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2013년(매출 9조 6162억엔, 영업이익 5328억엔)과 2014년(매출 9조 7619억엔, 영업이익 6004억엔) 연속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낸 히타치는 2015회계연도에도 사상 최대 규모인 6800억엔의 영업이익을 예상하고 있다.
⑤ 주력사업은 물론 모태사업까지도 버린다: 필립스
필립스는 전구를 만드는 회사로 시작하여 라디오, 전기면도기, 진공청소기, TV까지 다양한 전자 제품을 출시하며 성장했다. 1990년대까지 세계 최대 전자기업 중 하나였으나 반도체와 전자 사업의 주도권이 아시아 기업으로 넘어가면서 2001년 26억유로의 적자를 냈다.
크리스 주크는 그의 저서 ‘멈추지 않는 기업(Unstoppable)’에서 ‘산업 전체가 성숙기 또는 쇠퇴기에 들어간 경우’, ‘강력한 경쟁자의 출현으로 핵심사업이 직접적인 위협에 처한 경우’를 핵심사업을 재정의해야 할 위기로 언급했다. 필립스는 이러한 위기 속에서 “우리 회사의 위치는 어디이며 어떤 기술과 역량을 갖추고 있는가?”와 “지금 세상은 어떻게 흘러 가고 있으며, 그 변화 방향은 우리 회사의 현실과 맞아 떨어지는가?”를 고민하고, 핵심사업을 대상으로 빠르게 변화를 시도했다. 고민에 대한 해답으로서 2006년 반도체 부문을 매각하고 TV사업을 분사하여 전자사업 분야를 정리했다. 2013년에는 ‘로얄필립스일렉트로닉스’에서 ‘로얄필립스’로 기업 이름까지 바꿨다. 일렉트로닉스를 떼어내는 것은 더 이상 전자업체가 아니라는 공식 선언이었다. 대신 노년층이 늘고 건강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시장의 흐름에 따라 의료기기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최근에는 모태사업인 조명사업부 분사를 결정하여 의료기기와 소비자생활 부문에 더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2000년 44%를 차지하던 전자사업 부문 매출은 2012년 24.4%까지 떨어졌다. 반면 의료기기 부문 매출은 2010년 전체 매출의 약 34%에서 2012년 40%를 넘어 2014년 44.2%까지 성장했다. 2013년 기준 의료기기 부문에서 150억유로의 매출을 올렸다. 전자제품 시장 경쟁 과열로 2000년대 초반 260억유로 넘는 적자를 냈던 필립스는 선택과 집중으로 2012년에는 유로존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도 2억유로의 흑자로 전환했다. 시장의 흐름을 읽고 주력사업은 물론 모태사업까지 과감히 정리하는 사업재편으로 부활에 성공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무엇이 그들에게 버릴 수 있는 용기를 주었을까?
“인생은 삶과 죽음 사이 선택의 연속이다(Life is Choice Between Birth And Death).”
인간이 태어남과 죽음에 대한 선택권을 허락하지 않았다며 신에게 불평했다. 그러자 신은 인간에게 태어남과 죽음은 선택할 수 없지만, 대신 사는 동안 매 순간 선택할 수 있도록 선택의 자유를 줬다. 다만 선택할 때는 ‘얼음(ice)처럼 냉정하라’는 뜻에서 Choice 안에 ice를 심어두는 지혜를 발휘했다고 한다. 장수하는 글로벌 기업들은 ‘내 것에 대한 애착’과 ‘이미 투자한 것에 대한 미련’을 벗어나 객관적인 입장에서 의사결정을 하였다. 무엇이 그들에게 선택할 수 있는 냉정함과 버릴 수 있는 용기를 주었을까?
● 추구해야 할 미래상 정립
미국의 유명한 연설가 하르세 윌슨이 어린 시절 친구 두 명과 함께 누가 철로 위에서 떨어지지 않고 멀리 가는지 시합하기로 했다. 하르세는 뚱뚱한 자크와 마른 필립을 보며 ‘자크는 뚱뚱하니까 분명 몇 발자국도 못 가서 떨어지고 말거야. 필립만 이기면 돼’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뚱뚱한 자크만이 흔들리지 않고 계속 철로 위를 걸었다. 놀란 하르세는 자크에게 달려가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자크가 대답했다. “너희들이 발 밑만 보고 걸을 때 그저 먼 곳을 바라보며 걸었을 뿐이야." 자크는 철로 위의 먼 지점을 목표로 잡고 목표점만을 향해 걸었다. 그리고 그 목표에 다다르면 더 먼 곳에 새로운 목표를 정하면서 걸었기 때문에 철로 위를 떨어지지 않고 걸을 수 있었다. 기업도 마찬가지이다.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기 위해서는 추구해야 할 미래상을 정립해야 한다. 이러한 미래상은 자신과 시장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미래 예측을 바탕으로 나온다. 슈나이더는 꾸준히 고객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자신의 강점을 바탕으로 전력관리 회사를 목표로 민첩하게 진화하였다. 지멘스는 자신만의 미래예측 연구기법을 통해 그려본 미래와 자신의 강점을 연결하여 새로운 미래상을 만들어 나간다.
● 버림에 대한 원칙의 일관된 실천
흔들리지 않는 명확한 원칙을 세우면 대상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1886년 설립된 웨스팅하우스는 GE와 라이벌이었던 전기회사이자 원자로 제조기업이었다. 1979년 미국에서 발생한 원전 사고 이후, 미국 최대 원전 건설업체였던 두 기업은 가장 큰 타격을 입게 되고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각자의 선택에 따라 두 기업은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된다. GE는 1981년 잭 웰치의 등장과 함께 ‘1등 아니면 2등’의 일관된 전략과 이에 따른 사업구조 재편을 통해 세계 최대의 기업으로 성장한다.
반면 웨스팅하우스는 1980년대 중반부터 1997년까지 CEO가 4차례나 바뀌는 등 혼란을 겪으면서 뚜렷한 원칙이 없는 M&A로 실패를 거듭했다. 결국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지 못한 채, 2006년 그룹의 모체인 웨스팅하우스일렉트릭컴퍼니까지 도시바에 넘어가며 사실상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 원점으로 돌아가보기 “새로 시작해도 이 사업을 할 것인가?”
1980년 대 중반, 메모리 반도체로 승승장구하던 인텔은 일본 기업들과의 가격경쟁에 밀려 심각한 사업 위기에 빠졌다. 틈새시장 공략, 특수 목적의 칩을 통한 고부가가치 설계 등 여러 방면으로 노력하였으나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앤디 그로브(창업주)와 고든 무어(CEO)가 인텔에 닥친 위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앤디 그로브는 고든 무어에게 “만일 주주들이 우리를 내쫓고 새로운 경영진을 들여온다면 그들은 무엇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나?”라고 물었다. 고든은 “DRAM에서 철수하겠지”라고 답했다. 그러자 앤디는 그 말을 받아 “그렇지. 저 문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옵시다. 그리고 메모리 사업을 끝냅시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메모리를 버리고, CPU 사업에 집중하는 과감한 선택을 한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인텔은 탄탄대로를 걷게 된다.
현재의 사업을 판단하고 ‘버림’을 결정하는 것은 새 사람이 되어서 객관적으로 보지 않는 한 어렵다. 추구해야 할 미래상과 원칙에 비추어 버리는 것이 옳다는 판단이 들어도 땀과 눈물로 일궈온 사업을 정리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내 것에 대한 애착과 이미 투자한 것에 대한 미련을 잠시 잊고 사업을 시작하기 전의 원점으로 돌아가서 단순하게 질문해보자. “처음 사업을 시작한다면, 그래도 이 사업을 할 것인가?”
용기 있는 기업들의 ‘버림’은 외부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루어지거나 비용 절감 차원 때문에 일어나는 하나의 이벤트가 아닌, 오랜 기간 고민과 준비 끝에 내린 ‘그들의 내일’에 대한 결론이다. 버릴 수 있는 용기는 이러한 결론에 대한 확신에서 나온다. ‘버림’은 준비된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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