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 '금융시장의 예상보다 금리 인상 서두르는 미 연준, 신흥국發 리스크 우려된다'
국제금융시장 참가자들은 연내 미국의 금리인상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지만 미 연준은 시장 예상보다 조기에 그리고 빠른 속도로 금리를 올리려 하고 있다. 금리 인상 시 충격이 신흥국에 집중되면서, 2004년 미국 금리 인상 당시 보다는 1994년 금리 인상 당시와 유사한 신흥국 금융 불안이 예상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외환위기로까지 확대될 가능성은 낮아 보이지만 신흥국 수출이 위축되면서 경제 성장세가 약화될 수 있다.
미 연준이 지난 9월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에서 금리를 동결했지만 미국의 금리 조정을 둘러 싼 불확실성은 도리어 고조되는 분위기다. 금리 인상이 연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금리 동결 발표 직후 선진국 증시는 하락했고, 신흥국 금융시장 역시 외국인자금 이탈이 계속되는 가운데 통화가치는 하락하고 금리는 상승하는 등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 미국 금리정책 결정에 대한 투표권을 가진 미 연준 이사들의 발언마저 엇갈리며 향후 미국 금리 조정에 대한 예상을 어렵게 하고 있다. 9월 17일 FOMC 직후 기자회견에서 “중국을 비롯한 세계경기 불안이 금리 동결의 배경”이라고 지적했던 재닛 옐런 미 연준 의장은 일주일 뒤인 9월 24일에는 “세계 경기가 미국의 금리 인상 계획을 바꿀 정도로 중요하지는 않다”고 발언했다. 한편, 지난 9월 28일에는 찰스 에반스 시카고 연방준비은행 총재가 “연준이 금리 인상을 서두를 필요가 없으며 적절한 금리 인상 시기를 내년 중반으로 생각한다”고 밝혔지만, 같은 날 월리엄 더들리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연준이 올해 안에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며 이르면 10월 FOMC에서 금리를 올릴 가능성도 있다”고 언급했다.
미 연준 내 컨센서스는 연내 금리 인상 개시
미국의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미 연준 내에 매파적 성향(자산가격 버블 및 인플레 문제를 중시하며 선제적 금리 인상을 통한 통화정책 정상화를 주장)을 지닌 이사들과 비둘기파적 성향(경기 부진 및 실업 문제를 중시하며 경제 회복을 위한 완화적 통화정책의 지속을 주장)을 지닌 이사들이 모두 존재하며 각기 자신들의 주장을 피력하는 상황임을 감안할 때, 향후 미 연준의 통화정책 변화를 예상하기 위해서는 미 연준 이사들의 컨센서스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밴 버냉키 전임 의장 이후 금융시장과의 소통 개선을 위해 제도를 개선해 온 미 연준은 1년에 8번 열리는 FOMC 중 3, 6, 9, 12월에 열리는 4번의 FOMC 후에는 미 연준 이사들을 대상으로 각 개별 이사들이 예상하는 향후 경제 상황 및 바람직한 금리 정책 방향에 대해 서베이를 하여 그 결과를 공개한다.
지난 9월 FOMC 직후 공개된 미 연준 이사들을 대상으로 한 서베이 결과에 의하면, FOMC에 참석한 17명의 미 연준 이사 중 ‘적절한 금리 인상 개시 시점’이 2015년이라고 응답한 수는 13명, 2016년이라고 응답한 수는 3명, 2017년이라고 응답한 수는 1명이었다. 지난 6월 FOMC 당시의 서베이 결과에 비해 그 수가 다소 줄어들기는 했지만, “올해 안에 금리 인상을 개시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미 연준 이사들의 비중이 76%로 전체 이사의 4분의 3 이상이었다.
연내 금리 인상 시 12월 인상 가능성 높아
금리인상 속도와 관련해서는, 2015년 말 기준 적정한 정책금리 수준이 0.25~0.5%라는 응답자가 7명으로 가장 많았고, 0.5~0.75%라는 응답자가 5명으로 뒤를 이었으며, 응답의 중간값은 0.4%였다. 2016년 말 기준 적정 정책금리 수준에 대해서는 1~1.25%라는 응답자가 4명으로 가장 많았고, 응답의 중간값은 1.4%였다. 올해 안에 0.25%p 정도의 금리 인상을 하고, 내년 중에는 1%p 정도의 금리 인상을 하는 것이 컨센서스임을 알 수 있다.
이를 감안하면, 미연준은 금리 인상을 내년 이후로 미루기보다 올해 안에 개시하려 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성 유지 측면에서 금리 인상 개시 시점을 내년 이후로 미루는 것은 그 동안 연내 금리 인상 방침을 꾸준히 밝혀 온 미 연준에게 부담스러운 선택이다. 고용의 질 개선이 미흡하고, 물가상승률이 목표치인 2% 수준에 못 미친다는 점이 걸림돌로 지적되지만, 실업률이 완전고용 수준에 가까운 5.1%까지 낮아진 가운데 미 연준은 추세적인 물가 상승 압력에 대한 선제적 대응을 강조해 왔다.
미 연준이 연내에 금리 인상을 개시한다면 그 시점은 10월보다는 12월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9월 FOMC에서 미 연준이 금리 동결의 주된 이유로 언급한 대외 불확실성이 한 달 만에 해소되기는 어렵고, 최근 발표된 9월 비농업부문 신규 취업자 수가 전문가 예상치 20만 1천명에 크게 못 미친 14만 2천명을 기록한 것으로 발표되어 고용시장 회복을 조금 더 확인할 필요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특히 미 연준은 인상 여부로 관심을 모았던 지난 9월 FOMC에서 금리를 동결하면서 FOMC 성명서를 통해 대외 불확실성에 대한 명시적인 우려를 표명했다. “최근의 글로벌 경제 및 금융 상황 변화가 미국 경제 활동을 저해하고 단기적으로 물가 상승 압력을 낮출 수 있다” 및 “미 연준이 해외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의 2개 문장은 FOMC 성명서에 새롭게 추가한 것이다. 2013년 5월 양적완화 규모의 축소를 시사한 이후, 여러 신흥국들에서 금융불안이 반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미 연준이 FOMC 성명서에서 신흥국 불안 및 이로 인한 세계경제의 충격 우려에 대해 공식적으로 언급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과 비교하면 매우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미 연준이 최근의 글로벌 경제 상황을 이전의 신흥국 금융 불안과 다르게 간주하고 있는 것은 결국 ‘차이나 리스크’에서 비롯된 것으로 판단된다. 즉, 규모가 작은 여타 신흥국들의 경제 불안과 달리 G2 국가 중 하나인 중국의 경기 둔화 우려 및 증시 급락은 미국으로서도 간과하기 어려운, 즉 미국의 경제에까지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으로 미 연준이 고려하고 있음을 반영하는 결과로 해석된다.
실물경기 회복세가 금리 인상 시도의 배경
이러한 대외불안 요인에도 불구하고, 미 연준이 금리 인상에 나서려는 것은 경제성장률 등 미국의 실물경기가 꾸준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월 25일 발표된 미국 2분기 경제성장률 추정치는 전분기 대비 연율 기준 3.9%를 기록했다. 이는 1분기 경제성장률 0.6%보다 크게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앞서 7월 30일에 발표되었던 최초 추정치 2.3% 및 8월 27일에 발표되었던 추정치 3.7%보다도 각각 1.6%p 및 0.2%p 상향 조정된 것이다. 즉 시간이 지날수록 2분기의 미국 경제 회복 속도가 당초 판단보다 빨랐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각 부문별로 보더라도, 개인소비지출, 고정투자, 정부소비지출투자 등 수출을 제외한 대부분 부문의 증가율 추정치가 상향 조정되었다. 특히, 2분기 고정투자 증가율은 5.2%에 달해 여타 부문 대비 가장 큰 폭으로 상향 조정되었다.
9월 FOMC 성명서에 나타난 미 연준의 최근 미국 경제 상황에 대한 평가 역시 이전에 비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9월 FOMC 성명서 상의 “미국의 경제 활동이 완만한 확장세를 지속하고 있다”는 총평 및 개인소비지출, 주택시장, 노동시장에 대한 평가는 지난 6월의 FOMC 성명서와 동일했다. 그러나 지난 6월 FOMC 성명서에서 “약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stay weak)”고 평가되었던 기업고정투자에 대한 평가가 “완만하게 증가하고 있다(increase moderately)”로 바뀌었다. 이러한 미국 경제 회복 추세에 대한 판단에 기반하여 “인플레이션이 단기에는 현재의 낮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면서도, “중기적으로는 2% 수준으로 점차 오를 것”이라며 향후 예상되는 물가상승 압력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국제 금융시장은 금리 인상 지연 및 완만한 인상 예상
반면, 현재 국제 금융시장 참가자들은 미 연준의 연내 금리 인상 개시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근 발표된 고용 지표가 예상보다 매우 부진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올해 1월부터 9월까지의 월평균 신규 취업자 증가 수가 고용 회복 기준으로 간주되는 20만명에 못 미치자 미 연준이 금리 인상을 연기할 것이라는 예상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 시카고거래소그룹(CME)의 연방기금금리선물(fed funds futures)은 국제 금융시장 투자자들이 향후 미국의 정책금리 수준을 대상으로 거래를 하는 파생금융상품이다. 이 가격에 내재된 향후 미국 정책금리 수준 변화에 대한 예상치를 추산해 보면, 9월말 기준으로 국제 금융시장 참가자들은 미 연준이 올해 10월 및 12월 FOMC에서 금리 인상을 개시할 가능성이 각각 5% 및 30%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전망했다. 내년에 가서도 3월 FOMC에 이르러서야 금리 인상 개시 가능성이 52%로서 절반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국제 금융시장 참가자들은 일단 금리 인상이 이루어지더라도 이후 인상 폭이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9월말 기준 연방기금금리선물 가격에 의하면, 올해 12월 FOMC에서 미국의 기준금리 수준이 현 수준과 동일한 0.25%일 확률이 69.5%로 가장 높았고, 0.5% 및 0.75%일 확률은 각각 29.2% 및 1.3%에 불과했다. 내년 9월 FOMC에 이르러서도 미국의 기준금리 수준이 0.5%일 확률이 36.7%로 가장 높았고, 0.75%일 확률은 27.9%, 1% 이상일 확률은 15% 수준으로 나타났다.
미 연준이 금융시장 예상보다 금리 인상 서두를 경우 세계경제 충격 예상
이처럼 금리 인상 개시 시점 및 인상 속도를 두고 미 연준 내부의 컨센서스와 국제 금융시장 참가자들의 전망 사이에 상당한 괴리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미 연준이 미국 경제의 성장세에 초점을 맞추어 금융시장의 예상보다 조기에 또는 빠른 속도로 금리를 인상한다면 금융시장의 기대가 조정되는 과정에서 상당한 충격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최근 세계경제 성장세가 전반적으로 부진함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제가 견조한 성장세를 이어가면서 자국 경제 상황에 초점을 맞춘 미국의 통화 긴축이 여타 국가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가중시킬 위험성은 더욱 높아졌다. IMF에 의하면, 2011년 4.2%였던 세계경제 성장률은 2012년부터 2014년까지 3년 연속으로 3.4%에 정체되어 있었고, 올해에도 3.5%에 그칠 전망이다. 반면, 2011년 1.6%였던 미국경제 성장률은 꾸준히 높아져 올해 3.1%에 달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미 연준은 대외적인 세계경제 성장세 둔화에도 불구하고 대내적인 미국경제 회복세를 고려하여 2014년에 양적완화 규모를 점진적으로 축소한데 이어 이제는 금리인상을 단행하려 하고 있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미달러화가 기축통화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많은 국가들과 금융시장 참가자들은 미달러화를 발행하는 미 연준이 ‘세계의 중앙은행’ 역할을 수행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그 동안 미 연준은 여타 국가들의 상황을 중시하기보다 미국 경제의 완전고용과 물가안정이라는 미국 법률상 명문화된 목표 달성을 우선시하는 ‘미국의 중앙은행’으로서의 역할에 보다 집중해 왔다. 이처럼 세계경제가 미 연준에 기대하는 역할과 실제로 미 연준이 수행하는 역할이 일치하지 않는 상황에서 현재와 같이 세계경제와 미국경제가 서로 상이한 흐름을 보일 경우 미 연준의 ‘통화정책 마이웨이(my way)’는 여타 국가들에게 상당한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
2013년 5월 당시 미 연준 의장 벤 버냉키가 양적완화 규모 축소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국제 금융시장이 크게 요동쳤던 ‘버냉키 쇼크’ 발생 이후 국제 금융시장 불안이 꾸준히 반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미 연준이 양적완화 규모를 당초 계획대로 축소하고 지난해 양적완화를 종료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특히, 일부 취약신흥국들의 금융위기 가능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도 미 연준은 단 한 차례도 FOMC 성명서에서 이를 공식적으로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미국의 통화정책은 미국 경제의 움직임에 기반하여 결정됨을 보인 바 있다.
미국 금리 인상의 부정적 영향, 선진국보다 신흥국에 집중될 듯
신흥국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가 높은 가운데 국제 금융시장 불안이 진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의 금리 인상 개시 시점이 예상보다 앞당겨지거나 이후 금리 인상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진다면 그 부정적 영향은 선진국보다는 신흥국, 특히 취약신흥국에 집중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최근 세계경제의 흐름을 살펴보면, 선진국 경제는 다시 살아나고 있지만 신흥국 경제는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IMF에 의하면, 2012년 1.2%까지 낮아졌던 선진국 경제의 성장률은 이후 점차 상승하여 올해 2.4%까지 높아질 전망이다. 미국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충격에서 벗어나고 있는 가운데 유로존은 재정위기가 완화되고 일본은 아베노믹스의 성과가 가시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2011년 6.2%에 달했던 신흥국 경제의 성장률은 이후 점차 하락하여 올해 4.3%까지 낮아질 전망이다. 중국의 성장세 둔화가 주변 동남아 국가들에까지 악영향을 미치는 가운데 석유를 비롯한 국제원자재 가격마저 하락하면서 러시아, 중동, 베네수엘라 등 산유국들과 브라질, 남아공 등 자원수출국들의 경제가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인한 부정적 영향은 선진국보다 신흥국에 집중적으로 나타날 전망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은 미달러화 강세 및 여타 통화들의 상대적 약세를 심화시킬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 영향이 선진국들과 신흥국들에 차별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유로존, 일본 등 선진국들의 경우에는 유로화, 엔화 등 통화의 추가 약세가 수출 확대, 기업이익 증가 등을 통해 경기회복에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미국의 금리 인상의 배경이 되는 미국 경제의 회복세는 선진국 수출 경기 회복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신흥국들의 경우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인한 자국통화 가치의 추가 하락이 금융 불안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높다. 국내외 금리차가 축소되는 가운데 신흥국 통화가치마저 하락할 경우 이는 신흥국에 대한 외국자본의 투자수익률을 낮추고 신흥국으로부터의 자금 이탈이 늘어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 경우 미국의 양적완화 중단 및 금리 인상 시사, 중국의 경기 둔화 우려, 석유 등 국제원자재 가격 하락 등으로 이미 주가 하락, 금리 상승, 통화 가치 하락 현상을 겪고 있는 신흥국들의 어려움이 더욱 가중될 전망이다.
이러한 전망을 반영하듯, 미국의 통화긴축 개시 이후 신흥국들의 주가는 선진국들의 주가에 비해 더욱 큰 폭으로 하락했다. MSCI 주가지수를 기준으로 할 때, 미국이 양적완화 규모 축소를 처음으로 시사했던 2013년 5월 22일부터 지난 2015년 9월 30일까지 G7 주가는 6.8% 상승한 반면, 신흥국 주가는 24.4% 하락했다. 특히, 미국이 금리 인상을 시사하는 가운데 중국 증시 급락이 발생했던 올해 5월 이후부터 지난 9월말까지 G7 주가는 12.3% 하락한 반면, 신흥국 주가는 24.4% 하락하여 신흥국 주가는 선진국 주가에 비해 2배 가까이 하락했다.
거대신흥국 성장세 둔화 및 신흥국 통화 가치 급락으로 신흥국 금융위기 가능성 고조
특히, 이번 미국의 금리 인상은 과거 미국의 금리 인상 시기 중 2004년 금리 인상 시기보다 1994년의 금리 인상 시기와 유사하게 취약 신흥국의 금융위기를 촉발시킬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미국의 통화정책이 금리 중심 체제로 전환된 1990년대 이후 미국은 크게 2차례의 금리 인상 사이클을 경험했다. 1990년대에는 1994년 초부터 약 1년간, 2000년대에는 2004년 중반부터 약 2년간에 걸쳐서 금리 인상이 이루어졌다. 조만간 미국의 금리 인상이 개시된다면 거의 10년을 주기로 세 번째 금리 인상 사이클이 반복되는 셈이다. 그러나 지난 1994년의 금리 인상과 2004년의 금리 인상이 신흥국에 미친 영향은 매우 상이했다. 1994년의 금리 인상 당시에는 중남미 국가들을 중심으로 신흥국 금융시장이 매우 불안한 모습을 보이다가 멕시코 외환위기가 발생했고, 이는 수년 후 발생한 아시아 외환위기의 시발점이 되었다. 반면, 2004년의 금리 인상 사이클 당시에는 오히려 글로벌 증시가 상승하는 가운데 신흥국 금융시장에 별 다른 충격이 발생하지 않았다.
1990년대에 이루어진 미국의 금리 인상과 2000년대에 이루어진 미국의 금리 인상이 신흥국 경제에 미친 영향이 이처럼 크게 달랐던 것은 2000년대가 BRICs라 불리던 거대신흥국들의 세계경제 편입 효과가 본격화되던 시기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당시 중국, 인도, 브라질, 러시아 등 신흥국들의 생산과 교역이 크게 늘면서 세계경제는 낮은 물가상승률 하에서 높은 경제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었고, 신흥국 역시 이러한 경제 활력을 바탕으로 미국의 금리 인상이라는 충격을 무난히 감당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인도를 제외한 여타 거대신흥국들의 경제 성장세가 둔화되는 가운데 금융불안마저 고조되고 있다. 중국은 올해 경제성장률이 6%대로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올해 5월 이후 급격한 주가 하락을 경험하며 정부의 금융시장 관리 능력에 대한 의구심마저 제기되고 있다. 브라질은 만성적인 쌍둥이 적자 문제에 주요 수출품인 국제원자재 가격 하락까지 겹쳐지면서 최근 국가신용등급이 하락한 데 이어 화폐가치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낮아졌다. 러시아는 수출과 재정수입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 원유 가격이 하락하면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며 외자이탈로 인한 금융불안이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 연준이 금리 인상 임박을 시사하고 미달러화 강세가 심화되면서 신흥국 금융시장으로부터 대규모로 자금이 이탈하는 가운데 신흥국 통화 가치가 급락하고 있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올해 3분기에 신흥국을 이탈한 해외자금 규모는 400억 달러, 약 48조 원에 달했다. 특히, 주식시장뿐만 아니라 채권시장에서도 대규모로 자금이 이탈하면서 주식시장에서 190억 달러, 채권시장에서 210억 달러가 순유출 되었다. 최근 신흥국 통화 가치는 2000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하락했다. JP모건 신흥국 통화지수 기준, 2000년 초 수준을 100이라 할 때, 올해 9월 말 신흥국 통화 가치는 62.1에 불과하다. 특히, 미 연준이 양적완화 규모 축소를 시사했던 2013년 5월 이후에만 신흥국 통화 가치는 31.3%나 하락했다.
물론 통화가치 급락시 저평가된 통화 가치는 외국인들의 신규 투자 유인이 될 수 있지만 최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취약신흥국들과 같이 성장률 하락, 경상수지 및 재정수지 악화, 정정 불안 등으로 경제 전망이 어두운 상황에서 대규모 외채, 부족한 외환보유고 등으로 금융시장 체질마저 허약할 경우 통화가치 급락은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즉 통화가치 하락이 외국인 자금 이탈을 유발하고 통화가치가 더욱 떨어져 대외 채무 부담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신규 해외 차입이 어려워지면 외환위기 가능성이 고조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향후 취약신흥국의 금융위기 발생 가능성과 관련하여 대외채무 중 외화표시, 특히 강세가 예상되는 미달러화 표시 채무가 어느 정도인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역시 금융시장 충격 불가피, 수출둔화로 인한 실물경로 타격이 더 위협적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인해 국제 금융시장 여건이 악화되고 일부 취약신흥국들의 금융위기 가능성이 고조될 경우 일정 기간 금융시장 충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금리 인상에 앞서 이루어진 미국의 통화 긴축 조치라 할 수 있는 2013년 이후의 양적완화 규모 축소 및 중단 과정을 돌아보면, 우리나라는 국제 금융불안 상황에서 여타 신흥국들과 확실하게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2013년 5월 버냉키 쇼크 발생 당시, 불안 초기에 우리나라는 취약신흥국들과 마찬가지로 주가 및 통화가치가 하락하고, CDS 프리미엄은 상승했다. 국제 금융시장 참가자들에게 우리나라가 여전히 ‘상황이 더 나은 신흥국’ 정도로 평가되고 있으며, 국제 금융불안 상황에서 ‘안전한 도피처’로 자리매김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보다 자세한 내용은 2014년 2월 12일자 LG Business Insight “신흥국 금융 불안, 금융경로보다 실물경로가 더 위협적” 참조).
그러나 버냉키쇼크가 진정 국면에 접어들면서 취약신흥국들에 비해 주가와 통화가치가 먼저 큰 폭으로 회복되고, CDS 프리미엄 역시 빠르게 낮아지는 모습을 보였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의 금융시장, 특히 외환 부문의 방어 능력은 취약신흥국들에 비해 양호한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해 891억 달러의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를 낸데 이어 올해에도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1,100억 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외환보유액 역시 8월말 기준 3,679억 달러에 달해 세계 6위 수준이다. 이를 감안하면 미국의 금리 인상이 예상보다 앞당겨지거나 이후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경우, 2013년 버냉키 쇼크 당시와 유사한 ‘긴축발작(tapering tantrum)’이 발생할 가능성은 높지만 이것이 취약신흥국들처럼 금융위기 또는 외환위기로까지 확대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평가된다.
우려되는 것은 미국의 금리 인상이 신흥국에 악영향을 미쳐 최근 빠르게 둔화되고 있는 수출이 더욱 위축되는 ‘실물경로를 통한 충격’이다. 올해 들어 우리나라 상품 수출은 전년대비 감소세가 지속되고 있으며 8월에도 전년동월대비 -11.7%를 기록했다. 내수 부진의 영향으로 수출보다 수입이 더 크게 위축되면서 불황형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지만 수출 부문의 부진으로 인한 경제 악영향이 우려된다. 특히, 최근 우리나라의 전체 수출 중 신흥국에 대한 수출의 비중은 60% 수준에 달해 선진국에 대한 수출을 크게 상회하고 있으며,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중국에 대한 수출은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4분에 1을 상회한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향후 미국 금리 인상으로 인한 부정적인 영향이 선진국보다 신흥국에 집중된다면 미국에 대한 수출은 늘더라도 중국 등 신흥국에 대한 수출이 더 많이 줄어드는 식으로 우리나라 수출 및 경기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금리 인상 연기되더라도 글로벌 환율전쟁 발생시 수출 둔화 우려
금융시장의 기대대로 미국의 금리 인상 시점이 상당 기간 늦추어지더라도 이를 긍정적으로만 보기는 어려워 보인다. 금융 불안을 겪고 있는 신흥국들은 한숨을 돌릴 수 있겠지만, 미국이 금리를 올리지 못할 정도로 미국경제 및 세계경제의 회복세가 미약한 결과로서 미국의 금리 인상이 연기된 상황이라면 우리 수출에 악영향이 예상된다. 또한, 미국의 금리 인상 연기가 알려지지 않은 불확실성에 대해 미 연준이 우려하고 있는 결과로 해석된다면 국제 금융시장에 호재가 아닌 악재가 될 수 있다. 실제로 9월 FOMC에서 미 연준이 금리를 동결한 직후, 선진국 증시는 하락세를 나타낸 바 있다.
또한, 미국의 금리 인상 연기로 미달러화 강세가 주춤한 가운데 상대적으로 유로화 및 엔화의 강세가 심화된다면 수출 증대를 통한 자국 경기의 회복을 바라는 유로존 및 일본이 추가적인 양적완화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질 전망이다. 이와 관련하여 브누아 쾨레 유럽 중앙은행 집행이사는 미국의 9월 금리 동결 직후인 9월 18일 “유로존의 양적 완화를 당초 예정된 2016년 9월 이후에도 연장할 수 있다”고 밝혔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 중앙은행 총재 역시 2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진 가운데 지난 9월 15일 금융정책위원회 회의에서 “물가 상승률이 목표에 미달할 경우 추가 양적완화를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여기에 앞서 금리 인하에 이어 위안화 평가절하 조치를 단행했던 중국이 위안화 가치를 추가적으로 떨어뜨릴 가능성도 있다.
결국, 미국의 금리 인상 지연시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주요국들이 경쟁적으로 자국 통화의 가치를 떨어뜨림으로써 수출을 늘리고자 하는 ‘글로벌 환율전쟁’ 양상이 전개될 가능성이 높아질 전망이다. 지금부터 30년 전인 1985년에는 환율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적 공조의 결과로서 플라자 합의가 이루어졌지만 현재 상황은 이와 유사한 국제적 타협을 기대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정치적, 군사적 측면에서 미국이 과거 플라자합의 당시와 같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려운데다, 저성장세가 지속되면서 주요국들이 자국 경기 회복을 최우선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통화완화 정책을 강력하게 시행하고 있는 유로화, 엔화, 위안화 등 주요 통화들에 대하여 우리나라 원화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행이 추가적인 금리 인하에 대하여 조심스러운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원화가 여타 주요 통화들에 대하여 평가절상 된다면 최근 둔화되고 있는 수출은 가격 경쟁력 약화로 인해 더욱 위축될 위험성이 높아질 수 있다.
수출 부진 및 경기 둔화에 대응한 신축적인 통화정책 고려해야
내수 회복세가 예상보다 미약한 상황에서 미국의 금리 인상 및 이로 인한 신흥국 경제 충격으로 인해 수출 부문의 부진이 더욱 심화된다면 우리 경제 성장세는 더욱 약화될 수 있다. ‘긴축발작’으로 인한 금융시장 불안이 실물경제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도 우려된다.
대외 악재가 현실화될 경우 적극적인 정책 대응이 요구되지만 선택 가능한 정책 수단은 매우 제한적이다. 예상보다 빠른 국가채무 증가로 인해 내년 이후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4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당장 재정지출을 크게 늘려 경기 둔화에 대응할 여력은 많지 않아 보인다. 특히, 유로존 재정 위기를 거치면서 국가 재정 건전성 유지가 더욱 강조되고 있는 국제적 상황과 장기적으로 통일에 대비해야 하는 우리나라의 특성을 감안할 때 재정건전성 유지는 매우 중요하다.
재정정책과 비교할 때, 통화정책 측면에서의 경기 대응 여지는 아직 남아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미국이 금리 인상을 개시하더라도 우리도 곧바로 미국을 좇아 금리를 올리기보다는 국내 경기 부진 및 낮은 물가상승률 등을 고려하여 상당 기간 금리 인상을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인해 신흥국 경제가 더욱 위축되고 금융불안마저 심화되어 우리 수출 및 경기에 대한 악영향이 가시화된다면 추가적인 금리 인하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상당 기간 연기되는 가운데 앞서 언급한 글로벌 환율전쟁 움직임이 구체화되고 이로 인해 우리 수출에 부담이 가중되는 경우에도 금리 인하 필요성이 높아질 수 있다.
우리나라가 금리 중심 통화정책을 실시하기 시작한 2000년대 이후 있었던 미국의 2004년 금리 인상 시기에도 우리나라와 미국의 금리 조정은 일치하지 않았다. 미국은 2004년 6월부터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지만 우리나라는 2004년 8월과 11월에 각각 0.25%p씩 금리를 인하했다. 한국은행이 금리 인상에 나선 것은 미국이 금리를 올리고 나서 16개월 후인 2005년 10월이었다. 이처럼 상당 기간 우리나라의 금리정책이 미국과 비동조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자본유출이라던지 금융불안은 나타나지 않았다. 현재 우리 경제의 외환 건전성 역시 추세적이 아닌 일시적인 금리 정책의 비동조화 및 이로 인한 국내외 금리 격차 축소를 감당할 수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통화 완화가 이루어질 경우 지난해 가을 이후 빠르게 늘고 있는 가계부채 문제가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가계부채 증가 속도 조절 및 가계부채 구조조정 문제는 금리정책과 같이 경제 모든 부문에 영향을 미치는 거시정책으로 대응하기보다 부채 상환 능력이 취약한 계층의 부채 증가 속도를 낮추는 것과 같은 미시적 금융감독정책으로 대응하는 것이 적절한 것으로 판단된다. 완화적인 통화정책은 미국 금리 인상시 국내 시중금리가 동반 상승하여 크게 늘어난 가계부채의 이자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완화하고 가계부채 문제의 연착륙을 유도하는 측면에서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앞으로 대외 불확실성과 관련하여 가장 예의주시해야 할 변수는 미국의 금리 인상 개시 시점 및 이후 인상 속도와 함께 중국 경제의 둔화 정도를 확인할 수 있는 지표들인 것으로 보인다. G2 국가로서 세계 경제 및 신흥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클 뿐만 아니라, 금융시장 측면에서도 미국의 금리 인상과 중국 경제의 둔화라는 두 가지 악재가 결합되어 나타날 경우 그 충격은 더욱 확대되어 나타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난 2013년 5월 22일, 미 연준 의장 버냉키의 양적완화 규모 축소 가능성과 중국 PMI 지수의 급격한 하락이 공교롭게 같은 날 발표되면서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버냉키 쇼크가 발생한 바 있다. 결국, 미국의 금리 인상이 진행되는 가운데 중국의 경기 급락에 대한 우려가 해소되지 않는 한, 향후 상당 기간 동안 국제 금융시장은 미국의 통화 정책과 중국의 경기 관련 뉴스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불안한 양상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 금융시장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적기에 우리 경제 상황에 맞는 정책으로 대응하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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